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372)
372화. 분열 (2)
레반테라는 데스나이트는 아이작과 곧바로 부딪치는 대신 약간 떨어진 거리에서 멈춰 섰다.
아이작은 그가 방심하는 틈을 타 목을 날려 버리는 상상을 했지만, 그랬다간 엘릴 군의 사기도 떨어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함께 마주 섰다.
엘릴 기사들 대신 앞에 선 이상, 상대방이 정정당당하게 나온다면 아이작도 정정당당하게 맞서야만 했다.
“아이작 이사크레아. 이사크레아 여명군의 총지휘관이다.”
[아이작! 그 이름 높은 성배기사로군. 귀하의 위명은 이 먼 땅까지 널리 퍼져 익히 들었소! 그런데 어찌하여 큰 전장을 두고 이렇게 도적처럼 몰래 들어오셨소?]언데드 군대 사이로 조롱의 웃음이 몰래 퍼져 나갔다. 아이작이 엘릴 기사라면 약간 부끄러워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저들은 상대를 잘못 골랐다.
아이작은 싸늘하게 대답했다.
“그야 난 이기러 온 거지 멍청한 게 아니니까.”
분위기가 급격하게 얼어붙었다. 패배자 주제에 저렇게 입을 터는 것이 아이작에게는 우스울 뿐이었다. 아이작은 이 정도면 서로 자기소개를 마쳤다고 생각하고 말을 박찼다.
콰두두두! 전조 동작도 없이 말이 쏘아지듯 빠르게 달려갔다.
레반테는 급히 칼을 들어 아이작의 칼을 막아 냈다. 쩍! 날카로운 금속음이 울려 퍼졌다. 레반테는 휘청거렸지만 가까스로 넘어지는 것만은 피했다.
‘그야 막으라고 휘둘렀으니.’
기습이었다느니 비겁하다느니 하는 헛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일종의 종을 울린 것이다.
잡소리 말고 덤비라는 의미로.
아이작은 레반테의 동작이 다시 회복되길 기다렸다.
레반테는 지금 한 수로 이미 아이작이 자신보다 월등히 강하다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적이 강하다고 물러나면 엘릴 기사가 아니다.
언데드가 되어서도 여전히 정신 나간 자들이었다.
[한 수 배우겠소!]“뭐, 그럴 재주가 된다면야…….”
레반테가 달려든 순간, 아이작은 카훌린에 검기를 불어넣었다. 보랏빛 검기가 불길하게 일렁이자, 카훌린의 형체와 문양이 섬세하게 드러났다. 엘릴의 성검을 알아본 레반테가 움찔했지만, 다음 순간 그 성검은 이미 그의 정수리를 쪼개고 있었다.
콰드드드득! 카훌린은 레반테의 검과 투구, 두개골, 갑옷, 심지어 타고 있던 팬텀스티드까지 단숨에 반으로 갈라 버렸다. 믿기지 않는 광경에 엘릴 기사들조차 놀라 바라보았다.
에델레드도 칼드부흐의 힘을 끌어다 쓰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저렇게 종잇장 찢어버리듯 베어낼 자신은 없었다.
검기의 영혼 포식 능력 덕분에 레반테는 다시 재생하지 못하고 있었다. 영양소가 될 정도는 아니지만 재생을 막기에는 유용했다.
데스나이트가 다시 일어나지도 못하는 압도적인 광경에 잠깐 전장이 침묵에 휩싸였지만, 잠시뿐이었다. 이내 불을 붙인 듯 전장의 열기가 확 붙었다.
언데드 군대 쪽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두 명의 데스나이트가 튀어나왔다.
[템펠 가문의 아나벨……!] [오를랑 기사단의 기수 비드릭…….]둘은 딱히 동시에 공격할 생각은 없었는지 서로를 바라보며 당황한 시선을 교환했다. 하지만 양보하는 대신 둘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아이작 정도의 강자라면 절대로 싸움을 피할 리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아이작은 그들을 힐끔 보고는 미련 없이 말머리를 돌려 엘릴 군 쪽으로 되돌아갔다. 두 데스나이트는 살짝 당황한 듯했지만, 마치 아이작과 교대하듯 툭 튀어나오는 두 기사를 보고 칼을 들어 올렸다.
리안나와 시드리크가 검기를 뿜어내며, 달려드는 기사들과 교차했다.
캉! 카드드득. 시드리크는 검을 세 번 부딪치기도 전에 상대를 꺾어 쓰러뜨렸다. 상대가 쉽사리 회복되지 못하게 말로 두개골을 밟아 부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리안나는 상대를 꺾는 대신 칼로 찍어 누르며 힘겨루기를 하고 있었다.
그녀가 시드리크보다 약해서 시간을 끄는 것은 아니었다.
“템펠 가문의 아나벨이라면 내 외증조모 아니십니까! 어찌 이런 황량한 곳에서 후손들 앞을 막아서십니까!”
상대에게는 얼굴 근육이 없어서 무슨 표정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칼끝이 잠깐 흔들렸을 뿐, 다시 리안나를 밀쳐낸 뒤 검을 휘두르는 데에는 주저함이 없었다.
캉. 칼끝에 살기가 서렸다는 것을 안 리안나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루미아드를 내리쳤다.
콰두두두두! 난폭하리만큼 살벌한 냉기가 죽은 자의 싸늘함마저 꿰뚫고 전신을 파괴했다.
조상님을 상대할 때에도 봐주지 않는 것이 엘릴의 예의범절이었다.
정정당당한 결투에서 적의 세 기사가 연달아 패배하자 엘릴 군대의 사기가 급격하게 상승했다. 반대로 언데드 군대의 사기는 하락해야 했지만, 별로 그런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깃발을 들고 있던 기수가 깃발을 한번 펄럭이자, 모든 기사들이 일제히 리안나와 시드리크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에델레드가 분노를 드러냈다.
“저런 비겁한 놈들이…… 전군 돌격하라!”
이내 우르단투 제국 안에서의 첫 번째 전투가 시작되었다.
***
“시작이 좋군. 훌륭한 승리야.”
전투를 마치고 돌아온 아이작은 지휘관들과 전과 보고를 비롯한 회의를 시작했다. 아이작과 엘릴 군대는 언데드 부대를 상대로 절반 이상을 쓰러뜨리는 전과를 거뒀다.
투할린 말대로 ‘훌륭한 승리’였다.
상대가 인간이었다면 말이다.
아이작은 엘릴군의 승리를 퇴색시킬 생각은 없었지만, 이 점을 지적해야 했다.
“언데드 군대를 상대로는 얼마나 피해를 입히든 크게 의미가 없습니다. 저들은 시간이 지나면 뼛조각을 다시 수습하고 갑옷을 찾아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올 테니까요.”
반면 인간은 상처 입고 지친다. 엘릴 군대 역시 대승에 사기가 올라가긴 했지만 사상자가 발생하기는 했다. 지금은 의기양양해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성지 루아를 점령하기 전까지는 승리라는 게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최대한 시신을 불태우고 파괴하려고 노력했지만 이런 사막 한가운데선 장작도 구하기 힘들다. 그렇다고 부상병들을 치유해야 할 사제들에게 시체나 태워달라고 부탁하기도 어렵고.
“그래도 상대 쪽에 루아 벨린이 없다는 것이 확인되었으니 짐의 기사들은 한동안 안도할 것이오. 소드마스터 전력도 없는 것 같더군.”
에델레드가 말했다.
소드마스터는 죽어서 언데드가 되어도 검기를 쓸 수 있다. 엘릴의 반역자 빌론 게오르크가 그 훌륭한 표본이라 할 수 있겠다. 아이작은 불사 교단 안에서 검기를 쓸 수 있는 자들을 몇 명 떠올렸지만, 그중 누가 올지는 알 수 없었다.
“수준도 그렇지만 애초에 적들의 수가 그리 많지 않았소. 애초에 견제나 정찰 목적이었던 것 같더군. 그래서 생각한 것인데…….”
에델레드가 무언가 더 말하려 했을 때 투할린이 더 보고할 것이 있었는지 잠시 제지했다.
“에델레드 폐하의 말대로, 사실 총지휘관이 전방으로 달려갔을 때 측후방 쪽에서도 적이 발견됐네. 이사크레아 성기사단 방면이었지. 그놈들도 정찰 목적인지 약간의 교전 후 후퇴했네.”
아이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 예. 들었습니다. 로튼해머 단장님과 투할린 님이 활약해 주셨다면서요. 감사합니다.”
“아니, 누가 활약하고는 지금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건 적들의 정체인 것 같더군. 이사크레아 성기사단이 놈들을 꽤 신경 쓰는 것 같던데.”
“정체요?”
지이이익, 쿵.
그때 아이작에게로 누군가 다가왔다. 게벨이었다.
그는 묵직한 갑옷을 양손으로 질질 끌고 다가오고 있었다. 아이작과 눈이 마주친 게벨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아발란체 성기사단이었다.”
그가 끌고 온 갑옷에는 초승달과 겹쳐진 칼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게벨의 몸에 새겨진 것과 같은 문신.
아발란체 성기사단의 문양이었다.
아이작은 그의 표정이 전에 본 적 없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것을 보고 긴장했다. 매사에 늘 관심 없는 표정을 하던 게벨이 왜 과거엔 ‘미친개 망나니’라고 불렸는지 알 것 같았다.
“누굽니까?”
“모르겠다. 말도 안 하고, 저항이 심해서 조금 심하게 다뤘다.”
게벨이 끌고 온 자의 신원은 알 수 없으나, 두개골은 물론이고 갑옷, 뼈 마디마디가 온통 칼에 찍혀 엉망진창 걸레짝이 된 모습이었다. 게벨이 아발란체 성기사단에 원한이 있었나 잠깐 생각했지만, 그 나름대로 상대가 도망치지 못하게 조치하기 위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게벨은 데스나이트의 두개골을 떼어내고, 사제를 통해 밀봉 조치를 취했다. 부활과 삿된 기적, 속삭임을 저지하는 의식이었다.
어차피 상대는 지금 말할 생각이 없는 듯하니 차차 심문하면 될 일이다.
***
‘아발란체 성기사단이라.’
아발란체 성기사단이 등장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아이작은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자신이 그 현장에 없어서 어땠는지는 알 수 없지만, 누가 얼마나 배교했는지가 관건이었다. 게벨의 반응을 볼 때 적은 수는 아닌 것 같았다.
“대화를 나눠 본 자는 있습니까?”
게벨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무겁게 대답했다.
“다만 그중 한 명이 특이한 문양의 환도를 가지고 있었다. 불사 교단의 장인이 만든, 괴상하게 기교를 부린 칼이지. 그리고 내가 알기로 그 칼을 쓰는 사람은 한 명뿐이다.”
“누굽니까?”
“린데 단장. 그녀가 불사 교단 장인에게서 검을 빼앗은 다음 시체를 산산이 태워 버렸거든.”
아이작은 그 이름을 아주 오래전 언뜻 지나가듯 들은 기억이 났다. 로튼해머와 게벨이 재회했을 때 나왔던 이름이었다.
아이작의 기억에서, 로튼해머의 ‘린데 단장은 어떻게 됐냐’는 질문에 게벨은 ‘죽었다’고 대답했다.
‘아발란체 성기사단의 단장이군.’
다른 누가 린데라는 성기사를 죽이고 그 칼을 빼앗은 게 아니라면, 데스나이트가 된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린데가 데스나이트가 되었든, 린데를 죽이고 그 칼을 빼앗은 자든, 게벨은 그자를 쫓아야만 했다.
게벨의 눈 속에 차갑게 타오르는 불길이 보였다.
“아이작. 미안하지만 나는…… 여기서 잠깐 갈라져야 할 것 같다.”
아이작은 복잡한 표정으로 게벨을 바라보았다.
아발란체 성기사단을 쫓는 것은 게벨의 의무이자 권리다. 아이작은 그걸 막을 권리가 없다. 하지만 그가 혼자 아발란체 성기사단을 뒤쫓는 것은 죽으러 가는 것을 방치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최악의 상황은 불사 교단의 일원이 된 게벨을 전장에서 다시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아발란체 성기사단이 단체로 배교했다면,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게벨도 합류하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병력은 원치 않아. 아니, 제공하겠다고 해도 거절하마. 사지로 병사들을 끌고 갈 수는 없지. 나는 진상만 알아도 충분하다.”
“아니, 누구 마음대로?”
그때 으르렁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로튼해머였다. 그가 성큼성큼 다가오며 게벨에게 삿대질을 했다.
“로튼해머 단장…….”
“미친개 실력이 여전하다고 생각했는데, 언제 그렇게 말랑말랑해졌나? 언데드는 무조건 박살 내고 태우는 것이 당연한 건데, 사지로 혼자 걸어 들어가겠다고? 당장 잡아 죽일 테니 병력을 달라고 요청해야지!”
“……사적인 용건입니다. 아이작에게 부담을 줄 수는…….”
“정 가겠다면 이사크레아 성기사단도 함께 하겠다! 전장의 전우들이 전역도 못 하고 구천을 떠도는데 내버려 두면 쓰나?”
로튼해머는 허락을 구하는 듯 아이작을 바라보았다.
투할린은 갈 길이 한참 남았는데 갈라져 나가겠다는 이 어이없는 발언을 두고 제발 말려 보라는 표정을 했다. 다른 곳도 아니고 보급조차 불가능한 적지 한복판이다. 심지어 적은 약탈 보급도 불가능한 언데드다. 지금 병력을 나눈다는 것은 자살 행위다.
그때 설상가상으로 에델레드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아까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하겠소. 엘릴 기사단은 전방에서 급습했던 그 벨린 가문기를 든 언데드 군세를 뒤쫓으려 하오.”
“…….”
아이작의 표정이 한결 더 심란해졌다.
“설마 그 도굴당한 조상님들 때문입니까?”
“리안나 경과 싸웠던 템펠 가문의 아나벨이라는 이름을 기억할지 모르겠소. 리안나 경의 외조모인데, 템펠 가문에 여명군 참전자는 없소. 그녀를 비롯해 도굴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가문의 깃발이나 갑옷이 발견되었지.”
에델레드 역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심란하다는 듯 복잡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말했다.
“그들을 추격하지 않으면 엘릴 군의 사기를 보장하기 힘들 것 같소.”
그제야 아이작은 불사 교단이 노린 이번 전투의 진짜 목적을 알아차렸다.
저들은 케케묵은 원한, 애정, 그리움으로 이사크레아 여명군을 갈기갈기 찢어 놓으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