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373)
373화. 분열 (3)
불사 교단의 영토가 왜 사시사철 겨울인지에 대해서는 정해진 결론이 없다.
가장 많은 의견은 죽은 자가 뿜어내는 사후세계의 냉기가 겨울을 불러온다는 것이고, 불사 황제 베셰크가 저승을 끌어내렸을 때가 겨울이었기 때문에 그 당시로 고정되었다는 말도 있었다.
다만 다소 시적이지만 색다른 의견으로는, 눈 덮인 겨울이야말로 죽은 과거를 덮어 주고 회생을 위한 봄을 준비하는 기간이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었다.
그러나 이곳에 회생을 위한 봄은 찾아오지 않는다. 불사 교단의 언데드들은 영원한 겨울 속에서 영원한 삶을 살아간다. 그들을 위한 추모도, 비석도 필요치 않은 채로.
아이작이 싸우는 대상은 바로 그 과거의 잔해들이었다.
“……정리해 봅시다.”
아이작은 이 자리에 모인 각 군의 지휘관들, 로튼해머, 투할린, 에델레드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로튼해머 단장은 당연하지만 게벨을 혼자 보낼 마음이 없겠지요?”
“아발란체 성기사단과는 나도 오랜 시간 함께 알고 지내왔네. 그들을 저렇게 둘 수는 없어. 그리고 병사들이 게벨을 얼마나 따르는지 아나? 게벨이 혼자 사지로 갔다는 걸 알면 분명 동요할 거야.”
아이작도 물론 잘 알고 있다. 때문에 억지로 게벨을 붙든다면 모를까 혼자 보낼 생각은 없었다.
“에델레드 폐하께서도 도굴당한 시신들을 찾으러 가야겠지요?”
“참가한 기사들 가운데선 선조의 유해를 찾기 위해 참전한 자들도 적잖이 있소. 일전에 이야기한 바 있지만…….”
“예. 기억합니다. 그때가 된다면 함께 하겠다고 말씀드렸었죠.”
아이작은 에델레드와 했던 약속을 잊지 않았다. 에델레드는 아이작이 먼저 그 약속을 언급하자 안도한 듯했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함께 하지 못하겠다 하더라도 이해하겠소. 다만 잠시 다른 길을 걷는 것을 이해해 주시면 좋겠구려.”
로튼해머도 흥분을 가라앉히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이작. 자네는 이사크레아 성기사단의 수호성자이자 총지휘관이야. 나는 그 권위를 부정하거나 맞설 생각 추호도 없네. 만약 가지 말라고 하면 가지 않겠어. 하지만…….”
반면 투할린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넌더리를 쳤다.
“이게 다 무슨 미친 소리인지 모르겠군. 아직 갈 길이 먼데 벌써 갈라서다니? 언제 어디서 다시 만날 줄 알고? 여기가 무슨 놀이터인 줄 아나? 흑제국 영토 한복판이야!”
가장 늙은 언데드보다도 더 늙은 탓에 딱히 불사 교단에 쌓인 원한이 없는 투할린만이 이 상황을 황당해할 뿐이었다. 아이작은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어느 한 편으로는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은 부하가 아니라 동맹이다.
동맹이란 제각각의 목표로 향하는 길이 겹쳐서 동행하는 이들일 뿐이다. 원래 동맹은 반목하고 분열하고 반발하는 것이 일상이다. 지금까지 이사크레아 여명군이 기이할 정도로 잘 따라준 것이다.
가장 열심히 진군을 주장하는 투할린조차도 이번 여명군에 참전할 동기가 가장 희미했다.
이사크레아 성기사단과 엘릴 군이 갈라서겠다고 하면, 투할린도 ‘이런 오합지졸들과는 함께 못 하겠다’면서 돌아설 가능성도 있었다. 역사적으로도 얼마나 많은 동맹이 목적지를 코앞에 두고 내분으로 갈라섰던가.
‘불사교단 놈들, 전략을 잘 짰군…… 오월의 검이 경고했던 것이 이건가?’
오월의 검은 분열에 대해 경고했었다. 아이작은 그게 사망보험으로 인한 배신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전조는 드러나지도 않고 단지 적들이 모습을 보인 것만으로 갈라지고 있었다.
어떤 의미에선 가장 효율적으로 이사크레아 여명군을 공격하는 방식이었다.
이미 여명군 초창기에 비슷한 일이 벌어진 적 있긴 했지만, 그땐 백제국 영토였고 보급도 어렵지 않았다. 지금은 심리적으로도 실질적으로도 훨씬 어려운 상황이었다.
아이작은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이사크레아 여명군의 총지휘관으로서 명령하겠습니다.”
***
아이작이 한번도 한 적 없는 권위를 빌린 명령에 다들 긴장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물론 그들은 아이작을 총지휘관으로 추대한 이상 그 권위에 응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사기가 하락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아이작은 로튼해머와 게벨을 먼저 바라보며 말했다.
“이사크레아 성기사단과 게벨 크란츠는 아발란체 성기사단의 실체를 파악하고 그들이 그릇된 길을 걷고 있는 것이 확인된다면 즉시 구원을 행하십시오.”
게벨의 눈이 커졌지만 아이작은 그 대답을 듣기 전에 에델레드에게도 지시를 내렸다.
“엘릴 군은 벨린 가문의 깃발을 든 자들에 대해 조사하고, 선조들의 유해를 수습하십시오. 집나간 치매 노인을 구출해 무사히 데려오는 것은 후손들의 몫이지요.”
“기꺼이 따르겠소.”
에델레드의 얼굴에 미소가 담기고, 투할린은 얼굴을 찡그렸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총지휘관의 명령입니다. 여러분은 본인들 목적에 따라 이탈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동맹은 분열하지 않았으며, 여러분들은 총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특수작전을 실행하는 것입니다.”
아이작은 엄격하게 강조하며 말했다.
“이 작전은 단 일주일만 실행되며, 일주일 후에는 결과가 어떻게 되든 반드시 다시 합류해야 합니다. 만약 합류하지 않는 부대가 있을 경우, 탈영병으로 간주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지 않아도 될 경고지만, 아이작은 명령의 심각성을 강조하기 위해 더했다. 에델레드도 로튼해머도 상황이 상황인 만큼 기분 나빠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반드시 돌아오겠소.”
“아이작. 다 좋지만…….”
투할린이 걱정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렇게 되면 정작 성지 루아를 반드시 수복하겠다는 절실한 목표가 없는 세상의 화로만 전장에 뛰어들게 된다. 하지만 아이작은 그들만 사지로 내몰 생각이 없었다.
“투할린. 걱정 마십시오. 세상의 화로 교단은 이사크레아 여명군의 중심축을 지탱하는 중심이 될 겁니다. 투할린 님이 든든하게 기둥이 되어 주지 않는다면 제가 이런 계획을 꿈이나 꿀 수 있었겠습니까?”
“달콤한 말이나 듣자고 하는 게 아닐세.”
“저는 진심입니다. 세상의 화로 교단은 우직하게 중심으로 나아가 주십시오. 이사크레아 여명군이 고작 이 정도로 분열되거나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투할린께서 보여주시면 됩니다. 특수 작전을 진행하던 군대가 다시 돌아올 기준점이 있어야지요.”
아이작은 너스레를 떨며 투할린에게 속삭였다.
“애초에 저는 얼굴마담인 애송이에 불과합니다. 관록 깊은 어르신께서 이사크레아 여명군에 무게감을 더해주셔야 다들 동맹이 흔들리지 않으리라고 믿지 않겠습니까?”
투할린은 얼굴을 찡그렸다. 그는 아이작을 한참 노려보다가 헛웃음을 터뜨리며 중얼거렸다.
“이제보니 그 반들반들한 얼굴이랑 주둥이로 총지휘관이 된 것 같군. 하, 나참. 알겠네. 천둥 장인이 불사 교단 군대를 망치로 족족 쪼개놓는 모습을 보여줘야겠군.”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이작은 가장 아슬아슬했던 투할린까지 설득에 성공하자 안도했다. 하지만 분열을 막았다고 해서 문제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아직 산더미, 아니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봐야 했다.
투할린은 아이작을 바라보며 물었다.
“제각기 목표를 추구하는 건 좋아. 그런데 이러다 각개격파라도 당하면 어쩌려고 그러나?”
가장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아이작의 답변도 준비되어 있었다.
“저는 제 전우, 동맹, 친구들을 믿습니다.”
***
동맹을 신뢰한다는 아이작의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만약’에 대비해 두면 신뢰는 더더욱 든든해진다.
아이작은 헤어지기 전에 자신이 취할 수 있는 조치는 다 취해 둘 생각이었다.
이사크레아 여명군이 세 갈래로 쪼개진다는 소식에 병사들은 당황했지만 제각기 지휘부에 대한 신뢰로 기꺼이 따르며 움직였다.
아이작은 우선 헤사벨에게 명령을 내렸다.
‘넬과 함께 엘릴군, 여의치 않다면 에델레드 만이라도 확실하게 보호하도록. 엘릴 출신 언데드 군대가 보여준 전력대로라면 걱정할 거 없겠지만 명천사가 나타나면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몰라.’
‘알겠습니다. 걱정 마세요!’
저주받은 태양의 영역에서 벗어난 헤사벨은 팔팔해진 상태였다. 언데드의 피를 빨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그녀가 활약하기 어려운 환경은 아니었다.
아이작은 투할린에게도 선물을 준비했다.
그는 어디 처박혀 있던 건지도 잊고 있던 성물들을 짐짝 속에서 꺼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다름 아닌 해방주교 알 두아자드를 물리치고 빼앗은 성물, ‘예비된 자의 영대’였다. 투할린은 아이작이 내민 불길한 기운이 느껴지는 영대를 받아 들고 떨떠름한 표정을 했다.
“이게 대체 뭔가?”
“투할린. 이쪽으로 쭉 진군하면 아마 요새가 하나 나올 겁니다. 거트루드라는 이름의 요새인데, 투할린 님이 그 성벽을 벼락같이 쪼개지 않는다면 아마 우리는 그곳에서 만나게 될 겁니다.”
투할린은 미심쩍은 표정으로 아이작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이 영대는 불사 교단에서 저희 영지를 침입해 왔을 때 빼앗은 전리품입니다. 원래 올칸 규율이 침입해 왔을 때 영지를 방어하려고 사용하려고 했는데, 어르신께서 오신 덕분에 다시 처박아 뒀었죠. 혹시나 싶어서 챙겨 왔습니다. 요새 공략에 유용하게 쓰일 겁니다.”
“지금 불사 교단을 상대로 불사 교단의 성물을 쓰라는 건가?”
“원래 성물은 그 신앙을 믿는 상대에게 더 잘 통하지 않습니까?”
기적과 성물이 품은 힘은 믿음에 비례한다.
명천사들이 괜히 크고 권위적이고 기괴한 모습을 취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응당 그럴만한 힘을 발휘할 것처럼 보이기에’ 사람들을 상대로 막강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이게 베셰크가 주교 시절 쓰던 영대라는 것을 알면 다른 이들은 몰라도 리치들은 발작할 것이다.
“영대에 표시된 횟수만큼 불사 교단의 기적을 쓸 수 있습니다. 필요한 제물은 준비되어 있고, 기도문을 낭독하기만 하면 됩니다.”
“내가 망치 대신 이런 불경할 물건을 쓸 일이 있기나 할는지 모르겠군.”
“뭐, 정 쓸 일 없으면 그걸로 리치 목이라도 졸라서 죽이시던가요.”
성공한다면 투할린은 최초로 언데드를 목 졸라 죽인 자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아이작이 그 외에도 이것저것 성물과 장비들을 건네주자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아이작이 이제 나름 ‘본대’라고 할 수 있는 세상의 화로 교단과 함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자네는 어떻게 할 생각인가?”
“저는 우선 이사크레아 성기사단과 함께 할 예정입니다.”
“왜지?”
“저는 아발란체 성기사단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게벨이 놀란 표정으로 아이작을 바라보았다.
아이작은 게벨을 향해 말을 이었다.
“게벨, 저를 보낼 때 했던 말씀 기억하시죠? 복수를 위해 저를 키우셨다고. 복수를 위한 칼끝은 지금 갈 길을 잃었으니, 지금이야말로 제가 움직여야 할 때 아닌가 싶습니다.”
“그건…….”
“이제라도 검술 배운 값을 해야죠.”
이 순간만큼은 총지휘관으로서의 신분을 내려놓고 말했다.
투할린도 이번 일이 아이작에게 가볍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린 듯 한숨을 쉬며 승낙했다.
“좋아. 성배기사가 함께하니 최소한 이사크레아 성기사단은 무사히 돌아오겠군.”
투할린의 말에 아이작은 그가 어느 정도 자신의 속내를 파악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사실 아이작이 이사크레아 성기사단을 고른 것은, 이쪽이 이번 분열 진군에서 가장 취약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숫자와 규모는 이쪽이 가장 크다. 일반병의 숫자가 가장 많이 포함되어 있으니까. 하지만 불사 교단과 싸울 때에는 숫자가 의미가 없다. 아니, 오히려 어설픈 숫자는 적을 늘릴 수도 있었다.
특히 아이작은 이번 분열에서 심상찮은 계략의 냄새를 맡았다.
‘이건 베셰크의 방식이 아냐.’
불사교단의 명천사 중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한 명이 지금 이 상황에 개입하고 있었다.
그 말은 즉, 갈라진 군대 중 누군가는 명천사를 만나게 될 것이란 뜻이었다.
투할린에게는 천둥 장인의 가호가, 에델레드에게는 사자 기사의 가호가 뒤따르고 있다. 하지만 이사크레아 성기사단에게는 마땅한 명천사나 가호가 없었다. 오월의 검이 아이작을 자주 돕긴 하지만, 진정한 수호천사라기보다 전략적 목표를 위한 사업 파트너에 가까웠다.
그러니 전략적 취약성을 보완하기 위해서라도 아이작은 이사크레아 성기사단을 도와야만 했다.
‘게벨을 도와야 한다는 명분도 달성하고 말이지.’
사실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게벨을 도왔을 것 같긴 했다. 하지만 전략적 목표가 더해진다면 더 좋은 것 아닌가.
나타날 명천사가 누군진 몰라도 만약 제일 약한 부대를 골라 공격한다면, 아이작이 빨리 쳐 죽이고 다른 군을 돕는 것이 시원시원한 진행을 위한 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