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39)
39화. 황금우상 상단 (2)
아이작은 어차피 성물을 찾으러 쇠르로 가는 길이었다.
기왕 이 사태에 휘말리게 된다면 최대한 자기한테 유리한 쪽으로 이용하고 싶었다.
“저, 그러면 사례금은 얼마나 원하시는지…….”
그때 상인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이작은 공짜로 도와줄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상인이 먼저 입을 열어 준 것이 고마웠다. 하지만 그는 푼돈으로 만족하기 위해 쇠르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 고맙지만 나도 쇠르로 가는 길이니 사례는 거기서 받도록 하지.”
“쇠르에서요?”
“상단 조합이 있지 않나? 거기서 얘기하지.”
상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임시방편으로 사례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뜯어내려고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듯했다. 하지만 목숨을 구원받았으니 별말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곧 바뀌었다.
“황금우상 상단이지? 거기 지부장에게 내가 방문할 거라고 전해.”
상인은 황금우상 상단을 언급하자마자 눈을 크게 뜨더니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그러다 아이작의 말이 예상했던 것과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 그런데 방문하실 예정이라면 저희와 함께 동행하시는 게 아닙니까?”
“아니야. 나는 저 친구들한테 볼일이 있어서.”
아이작은 산적들을 가리켰다. 살아 있는 산적들에게 용무가 있다고 했던 아이작의 말을 떠올린 상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조심스럽게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아이작에게 전했다.
소의 머리뼈가 새겨진 동화 한 닢이었다. 어느 나라에서도 통용되는 화폐가 아니었다.
“제 이름은 비히크라고 합니다. 방문하시거든 안내원에게 그걸 보여주십시오.”
“그래. 고맙군.”
상인들은 다시 한번 아이작에게 고마움을 표한 뒤에 마차를 끌고 움직였다. 마차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던 아이작은 다시 산적들을 향해 돌아섰다. 산적들은 아이작과 눈이 마주치고 움찔했다.
이제 이 산적들에 대한 용건을 해결할 차례였다.
“자…… 그러니까 너희들 전부 신앙이 없다는 거지.”
“……예.”
“저기 기절한 놈도?”
“예.”
신들이 버젓이 존재하고, 그 이름으로 기적도 부리며, 심지어 살아있는 신이 땅 위를 배회하는 세상인데 신앙이 없다는 것은 스스로 약자를 자처하는 일이다. 신앙심이라곤 눈꼽만큼도 없는 아이작조차도 눈앞의 ‘무신론자’들이 이상해 보일 정도였다.
그러니 이 세계 사람들 눈에는 어떻게 보이겠는가.
사람들은 그들을 단순히 ‘이상한 사람’을 넘어서 ‘문명화되지 못한 자들’, ‘가르침 받지 못한 자들’, 심지어 ‘신에게 버림받은 불쌍한 족속’, ‘야만인’, ‘신을 이해할 수 없는 모자란 지성’으로 취급하곤 했다.
보통은 ‘바르바리’라고 부르며 멸시했다
이런 바르바리들은 아홉 신앙을 믿는 국가 어디서도 주류에 속할 수 없었다. 쫓겨나거나 배척당하면 양호한 수준으로, 자연히 가질 수 있는 직업도 산적이나 강도, 화전민, 유목민 정도니 로튼해머가 해 왔던 것처럼 토벌당하는 일도 잦았다.
하지만 아이작은 바르바리들을 그렇게만은 보지 않았다. 애당초 아이작의 눈에는 아홉 신앙의 신들 모두 그냥 게임 캐릭터나 설정처럼 보였으며, 그중에서도 이름 없는 혼돈은 당최 왜 자신에게 힘을 빌려주는지도 알지 못하는 상태였으니까.
오히려 아이작이야말로 진짜 중의 진짜 바르바리였다.
그래서 아이작은 그들에게 기회를 주기로 했다.
“너희 신앙 가져볼 생각 없냐?”
“……신앙이요?”
바르바리들 사이에서 거부감이 스쳐 지나갔다.
바르바리들이 신앙을 갖지 않게 된 이유들은 다양했다. 아홉 신앙에 원한을 가져서, 그냥 세상에 없는 새로운 신을 믿고 싶어서, 이미 믿고 있던 고대신이 죽어 버려서, 신앙 자체에 회의감을 가져서, 교단에 죄를 짓고 도망치거나 쫓겨나서…… 등등.
신앙을 가지고 싶어도 가질 수 없거나, 가질 생각이 없는 자들이 태반이었다.
하지만 아이작은 그들을 위해 대체재를 제안할 생각이었다.
“무슨 신앙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건 꼭 지금 알려고 할 필요 없고.”
아홉 신앙 중 어떤 것을 말하냐는 뜻이었지만 아이작은 대답을 회피했다.
“일단 들어봐. 진지하게 믿을 필요도, 제물을 바칠 필요도 없어. 그냥 간단한 규칙만 몇 가지 지키면서 살면 되니까.”
바르바리들은 미심쩍은 것을 넘어서 불편한 기색이었지만 그렇다고 칼 든 상대 앞에서 싫다고 뺄 수도 없었다. 그러다 한 바르바리가 슬쩍 손을 들었다.
“그 신앙을 가지게 된다면 기사님처럼 강해질 수 있습니까?”
“아니. 그렇게 쉽게 힘을 가지려고 하면 도둑놈이지.”
“그러면 왜 저희가 그 신앙을 가져야…….”
“그러면 내가 살인강도인 너희들을 왜 살려두어야 할까?”
그걸로 설득은 끝이 났다.
바르바리들은 얌전히 입을 다물고 아이작의 말에 귀 기울일 채비를 마쳤다.
“자, 그러면…….”
그렇게 바르바리나 다름없는 성기사는 날강도 같은 포교를 시작했다.
“우선 저 하늘 위에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
“좋아, 그러면 내가 가르쳐준 것들 명심하고 나쁜 짓 하지 말고 살아.”
“예. 어르신.”
아이작은 설교를 마친 뒤 바르바리들을 포박에서 풀어 주었다. 바르바리들은 이렇게 쉽게 풀려난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머뭇거리며 서로 눈치를 살폈다. 결국 한 바르바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어르신. 좋은 가르침이기는 했습니다만 이 말씀이 저희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이작은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수염이 부숭부숭한 피곤한 안색의 중년 남자였다.
‘산적 치고는 좋은 놈이군.’
사실 아이작 앞에서 그냥 알아들은 척하고 도망간 다음 잊어버렸어도 될 일이다. 아이작도 당연히 말 몇 마디로 그들을 개종시켰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묻는다는 사실 자체가 그가 아이작의 설교에 흔들렸으며, 개종의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였다.
“그냥 신앙이 있다고 아니꼽게 구는 놈들이 있어서 해준 말이야. 그냥 앞으로 ‘나한테는 지켜야 할 신앙이 있다’ 정도만 생각하고 살아.”
각 신앙에는 나름의 도덕과 규율이 있고, 거기에 맞춘 사후세계를 보장한다. 하지만 바르바리들에게는 그런 것이 없었다. 그래서 막 살게 되는 경향이 있는데, 아이작은 그걸 좀 바로잡고 싶었다.
그래서 아이작은 그동안 느슨한 도덕 규범을 만들어서 전파하면서 다녔다.
이름 없는 혼돈은 통째로 교단이 날아갔기 때문에 교리도 경전도 없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아이작이 새롭게 즉흥적으로 새롭게 써야 했다. 게다가 이름 없는 혼돈의 규범에는 나쁜 짓을 하면 지옥에 가고, 좋은 일을 하면 천국에 간다는 법칙조차도 없었다.
그냥 가급적이면 나쁜 짓 하지 말고 남들한테 너무 신경 쓰면서 살지 말라는 것이 전부였다. 과연 이 느슨한 교리가 누군가를 교화할 수 있을지 의문이긴 했다.
하지만 오히려 느슨하기 때문에 지키기도 쉬웠다.
이들 대부분은 메이저 종교의 엄격한 규율과 제약에 거부감이 있어서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런 그들에겐 ‘남들한테 민폐 끼치지 말고 남을 신경 쓰면서 살지 말라’는 느슨한 교리가 색다르게 다가갔다.
혹은 아이작의 남다른 외모와 매력에 쉽게 넘어갔거나.
항상 그러했듯, 이번에도 아이작은 교리 전도에 성공했다.
아이작이 교리 전파를 하기 시작했을 때 나타난 메시지였다.
4명 모두 아이작의 말을 귀담아들은 상태였다. 아이작의 매력 스탯은 이 사이비 교주스러운 구도에서 강력하게 발휘될 수밖에 없었다.
아이작이 임의로 만든 교리였지만 시스템은 이를 이름 없는 혼돈의 교리로 인식하는 듯했다. 어쩌면 아이작이 세상의 유일한 신도이자 교리 전파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 수도 있었다.
그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사람들이 이름 없는 혼돈의 교리를 받아들일 때마다, 아이작은 그의 기척과 영향력을 느낄 수 있었다.
신앙심이 강해질수록 더욱 뚜렷해졌다.
아직 눈앞의 바르바리들은 이제 막 아이작의 말을 마음에 담아 둔 정도기만 한 듯, 뚜렷하지는 않았다.
“그럼…… 돌아가 보겠습니다.”
바르바리들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아이작에게 인사한 뒤 시신을 수습해 돌아갔다.
아이작은 돌아가는 그들의 영향력이 멀어져가는 것을 느끼면서 생각했다.
‘이걸로 바르바리 산적들의 본거지 위치도 추적할 수 있겠군.’
아이작은 자신이 저지른 일에 어느 정도 책임감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분명한 기척은 아니지만, 어차피 온 세상에 이름 없는 혼돈의 신도라고 할만한 사람은 극소수였기 때문에 위치를 특정하기는 쉬웠다.
언젠가 아이작은 이렇게 흩뿌린 신앙이 자신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이작은 자신이 언제고 이름을 날리고 명성을 높이다 보면 자신만의 세력이 필요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전도는 그때를 위한 씨앗이었다.
다른 신앙들로부터 버림받고 주린 자들이야말로 아이작의 지지기반이 되어 줄 것이다.
“지힐렛.”
아이작이 부르자 숲속에 있던 기이한 짐승이 튀어나왔다. 아이작이 역병신 지힐렛의 사체를 기반으로 만들어낸 혼돈의 자손, 지힐렛이었다. 한동안 마음껏 포식하지 못한 지힐렛의 몸은 많이 줄어든 상태였지만 그래도 어지간한 말만 한 덩치였다.
아이작은 능숙한 태도로 그 등 위에 올라탔다.
지힐렛은 별 명령이 없어도 아이작의 의지를 느끼고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탑승감이 편하다고는 말할 수 없었지만 인적이 드문 숲속이나 계곡 사이를 달리기에는 말보다 훨씬 나았다. 사람들의 시선만 없으면 벽도 탈 수 있으니까.
‘로어커스 사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쇠르로 가자. 어차피 거기서 성물을 찾기로 했었으니까.’
***
아이작은 쇠르에 도착하자마자 후끈한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남부 지방 곳곳에서 올라온 마차들에서 흙과 로어커스 구근 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이제 초봄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곧 로어커스를 심을 때가 온다. 너무 늦기 전에 농부들에게 팔기 위해 서둘러 가져온 것이다.
하지만 시장에 농부는 거의 보이지 않고 머리가 벌게진 상인들만 보였다. 상인들은 복잡해진 거래 시스템에 핏대를 올려 가며 흥정하고, 싸우고, 간신히 협상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광기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있는 시장 분위기였다.
아이작은 시장을 지나쳐 중심가에 있는 한 상회에 도착했다.
금색 황소가 간판에 그려진 상회였다.
“어서오세…….”
상회의 안내원은 꾀죄죄한 차림새의 아이작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지만, 그가 내민 동전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둘러 어딘가로 달려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2층에서 익숙한 얼굴이 뛰어 내려왔다.
아이작이 구해 주었던 바로 그 상인, 비히크였다.
“기사님, 오셨군요. 바로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비히크는 그를 서둘러 안내하려다가 곧 애매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아이작을 돌아보았다.
“저, 그런데 아이작 님.”
“왜 그러지?”
“바로 지부장님께 안내해드릴 수도 있습니다만 혹시 식사와 목욕, 휴식 중 급하신 것은 없으십니까?”
그제야 아이작은 자신의 행색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한동안 제대로 된 식사를 한 적도, 목욕을 한 적도, 지붕 있는 곳에서 쉰 일도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지금 아이작은 자기가 얼마나 냄새나는지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작은 비히크의 처지를 이해해 주기로 했다.
“우선 좀 씻도록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