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391)
391화. 가면 쓴 괴물 (3)
올칸 규율의 생각과는 달리, 빛의 법전 교단은 그들을 전혀 무시하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 때문에 수뇌부가 내부적으로 찢어지기 직전이었다.
다만 수뇌부의 동요 따위가 열광적인 광신도로 가득 찬 최전선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 뿐이었다.
“등대지기께서 천국으로 가는 길을 빛으로 비춰 주신다! 그 길의 끝은 성지 루아다!”
바위 위에 올라선 사제가 갈라진 목소리로 외쳤다. 그의 유리알 눈동자가 기이한 섬광으로 번뜩여서 동공조차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불사 교단의 궁수들이 사제를 향해 활을 쏘았지만 애초에 맞지도 않을 거리였다.
“보아라! 등대지기께서 나를 지켜주고 계신다! 가라!”
“오오오오오!”
여명군 무리가 함성을 내지르며 사제의 발 아래로 지나갔다. 사제는 경전을 미친 듯이 흔들어대며 경전의 내용을 빠르게 읊었다. 너무 빠르게 흘러나오는 탓에 기도문이 아니라 흥얼거리는 노래처럼 들릴 지경이었다.
무수한 축복이 쏟아지는 가운데, 여명군이 오늘만 7번째로 언데드 군세와 충돌했다.
갑옷은커녕 제대로 된 넝마조차 걸치지 못한 최전선의 병사들이 순식간에 죽었다.
찰나의 충돌로 수천 명에 달하는 병사들이 죽었지만, 그들은 누군가를 원망하거나 고통스러워하는 대신 희열에 찬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들의 삶은 온통 고통과 공포로 가득했다.
그러나 이 죽음으로 그들에게 천국의 문이 열렸다. 천국에서의 삶은 이렇게 고통스럽지 않을 것이다.
물론 불사 교단은 그렇게 쉽게 그들을 천국으로 보내 줄 생각이 없었다.
갑작스레 싸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전장에 있던 병사들, 심지어 후방의 사제들조차 어떤 환각을 느꼈다.
좁고 숨 막히는 공간에 갇혀 있는 듯한 어둠이었다.
썩어가는 흙 내음, 낡은 나무 냄새, 온몸을 기어다니는 구더기와 지네들, 폐소공포증을 유발하는 팔다리 하나 움직이기 힘든 공간.
그것은 관이었다.
그들에게 진실을 보여 주는 거울이었다.
“묘지 군주! 명천사 묘지 군주다!”
주교가 고함을 지르며 성가를 열창하자 사제단이 함께 합창하며 묘지 군주의 환각을 몰아냈다.
묘지 군주의 환상이 전장을 장악한 것은 아주 짧은 순간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 전장의 분위기를 뒤바꾸기에는 충분했다.
묘지 군주는 전장 어딘가에서 가볍게 손가락을 꼬는 것으로, 방금 죽은 수천 명의 병사들을 일제히 일으켜 세웠다.
“가아아아앍!”
방금 전까지 불사 교단을 향해 뛰어들었던 병사들이 눈을 까뒤집고 뒤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이미 뒤에서 짓눌리고 앞에서 난자당한 탓에 부활한 병사 중 제대로 움직일 수 있는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공격당한 여명군 역시, 기다렸다는 듯 능숙하게 덤벼드는 좀비들을 해체했다.
창으로 찔러 묶고, 낫으로 걸어 당기고, 도끼로 찍으면 해체는 순식간에 끝난다. 그 뒤 뒤따라오는 수만 명의 병사들 발에 짓밟히고 나면 부활은 먼 훗날의 일이 된다.
그때, 하늘 위로 뜨거운 광채가 하나 더 떠올랐다. 불타오르는 날개를 휘감은 눈동자가 전장을 굽어보고 있었다.
명천사 오월의 검은 전장에 흩뿌려진 수많은 무기들을 하나하나 회수해 자신만의 후광을 만들어 냈다.
명천사의 등장에 병사들과 성기사, 사제들조차 감탄했다.
오월의 검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그저 이 자리, 이곳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여명군의 사기를 북돋웠다. 사기가 오른 성기사들이 미친 듯이 달려들기 시작하자, 불사 교단이 틀어막고 있던 일부 전열도 뚫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사제가 목이 터지라 외쳐댔다.
“보라! 천국! 천국으로 가는 문이 열리고 있다! 오월의 검께서 천국으로 가는 문을 열어주고 계신다!”
오월의 검은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지만, 성기사들을 필두로 여명군은 ‘천국의 문’을 부르짖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그들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천국이 아니라 서서히 몸을 일으켜 세우기 시작하는 거대한 백골 드래곤이었다.
육신에 영이 속박된 병사는 피로 만들어진 진창 속에서, 으스러진 머리통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렇게나 날이 화창한데, 천사들은 아직 천국의 문을 열어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
전투가 끝난 후.
여명군 본대 주둔지는 전투가 끝났음에도 여전히 성가를 열창하고 기도문을 줄줄 읊는 소리로 시끄러웠다.
누가 봐도 제정신인 사람보다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그들 나름대로 제정신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였다.
처음부터 그들이 이렇게 광신적인 행태를 보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여명군 내내 끔찍하고 무의미한 고통과 죽음들을 목격하면서, 병사들은 ‘이유’를 찾아 헤매지 않을 수 없었다.
어째서 세상이 이렇게나 끔찍하고 부조리한 것인가?
그것은 아름다운 천국에 가기 위해서다.
신이 안배한 천국으로 가기 위해 세상은 이렇게 고통으로 가득한 것이다. 이 세상의 삶은 고행에 불과하고 진정한 보상은 사후에 있다. 만약 천국으로 가지 못한다면 대체 내 형제, 친구, 부모, 동생은 왜 그렇게 허망하게 죽었단 말인가?
그리고 천국의 문 너머 기다리고 있는 진정한 천국, 천년왕국을 이 땅에 도래시키려면 성지 루아를 점령해야만 한다.
일을 저지른 다음에서야 이유를 찾고, 근거도 없는 목적에 집착하는 모습이었지만, 그러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다.
그러나 바깥과 달리 지휘 막사 내부는 고요하기 짝이 없었다.
일반병들은 이 무수한 죽음의 이유를 그저 신에게서 찾으면 되지만, 수뇌부인 이들은 그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생각을 해야 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오늘의 졸전을 설명할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침묵을 견디다 못한 로헨 오터가 입을 열었다.
“마침내 묘지 군주를 끌어내는 데는 성공했군요. 이제 녀석을 물리치기만 하면 됩니다.”
그 말에 묵묵히 침묵을 지키던 데라 헤만이 손에 쥐고 있던 잔을 움켜쥐고 부숴 버렸다. 그는 일어나 로헨 오터를 향해 맹렬하게 손가락질했지만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데라 헤만이 하려는 말을 알 수 있었다.
호르헬이 입을 열어 데라 헤만을 진정시켰다.
“그만하십시오. 데라 헤만. 당신 말도 옳습니다. 당신 제안대로 칸의 군대를 먼저 물리치고 전장의 상황을 안정시킨 다음 공격했다면 이렇게 무리해서 묘지 군주를 끌어낼 필요는 없었겠지요. 하지만 이건 전부 필요한 일입니다.”
데라 헤만은 고개를 휙 돌려 호르헬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차마 교황 대행이자 파수자 회의의 수장인 호르헬에게조차 삿대질을 할 수는 없었다.
그는 부서진 잔을 테이블 위에 쾅 소리 나게 뭉개 놓고는, 막사 밖으로 나가 버렸다.
잠시 뒤 로헨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진정되면 다시 데려올까요?”
“아니. 데라 헤만 형제는 자신이 명목상의 총사령관이라는데 자괴감을 느끼고 있다. 전략이며 전술이며, 어느 것 하나 자기 뜻대로 하지 못하니 분노할 수밖에 없겠지.”
모든 지휘권은 사실상 파수자 회의, 아니, 명천사들에게 있었다. 명천사 중 누군가 나타나 지시한다면 파수자 회의는 그저 그 말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끔 이행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진정한 신앙인이다. 결코 교황 성하의 말을 거역하지 못할 거야.”
얼굴 마담에 불과한 자는 데라 헤만 만이 아니다. 교황, 호르마 크무엘 역시 교황의 어가(御駕)에서 꼼짝도 안 하고 있었다. 후안 추기경이 그 곁에서 보필하고 있으니, 사실상 파수자 회의가 아닌 자들은 회의에 참가조차 할 수 없었다.
교황 역시 여명군에 참전한 경력이 있지만, 지금 이곳의 처참한 광경은 참전용사에게도 익숙해질 수 없는 전장이었다.
“하지만 호르헬 형제님. 결국 오늘만 만 명이 넘는 순교자가 발생했음에도 카틀라 능선을 넘지 못했습니다. 이대로면 수도 우샤크에 가기도 전에 남아나는 병사들이 없을 겁니다.”
로헨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을린 자들이 있지 않나. 오늘만 해도 그을린 자들이 천 명이 넘게 생겨났다. 천국의 문이 착실하게 열리고 있다는 뜻이지.”
“그을린 자들의 전력은 보존하고 있습니다만…….”
여명군이 진행되면서 생겨난 선택받은 자들, 이른바 ‘그을린 자’들은 여명군 안에서 새로운 지위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불꽃에서도 타지 않고 금속 같은 피부를 자랑하는 그들은 무시무시한 전력이었다. 내부에서는 그들이 천국에 가도록 벌써 선택받았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을린 자들이라고 해서 죽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납치당한 자들도 있고요. 그을린 자들이 언데드가 되어서 나타나면 병사들이 동요할 겁니다.”
호르헬은 대답하지 않았다. 로헨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지금 저희는 게헨나 감옥요새에 있는 죽은 십이월, 카틀라 능선을 지키는 묘지 군주, 북쪽의 칸의 군대. 이렇게 셋에게 포위된 형세입니다. 그중 타협이라도 가능한 것은 칸의 군대뿐입니다.”
“그렇지.”
“그럼 역시 올칸 규율과 협약을 맺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거기 제 조카가 ‘파견’되어 있습니다. 성언을 전달하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호르헬도 로헨의 조카가 인질로 잡혀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둘 중 누구도 이교도와 타협할 생각은 없었지만, 수월한 여명군의 진행을 위해서라면 생각해 볼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합리적인 선택’을 하기 위해 꼭 넘어야 하는 관문이 아직 남아 있었다.
“그럼 명천사들께 의향을 여쭙도록 하지.”
***
로헨은 막사 밖으로 나가 호르헬의 기도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지휘 막사 내부는 작은 신전처럼 꾸며졌고, 최대한 조용하고 정숙한 환경에서 천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했다. 그런 분위기에서 숨소리도 조심하며 기다리는 것도 고역이었으므로, 그냥 나가서 호르헬이 대화를 마치길 기다리는 편이 나았다.
잠시 뒤, 호르헬이 피곤한 표정으로 걸어 나왔다.
로헨은 서둘러 다가갔다.
“누구를 만나 뵈셨습니까?”
“등대지기께서 직접 오셨다.”
로헨의 눈동자가 커졌다. 등대지기가 직접 의지를 내비쳤다는 것은 그 어떤 왜곡도 없는 진실한 빛의 법전의 의지라는 뜻이다.
“어떻게 됐습니까? 후방을 안정시켜도 괜찮다고 합니까?”
“……전략은 그대로 유지한다.”
로헨은 한순간 소리를 지를 뻔했다. 가까스로 비명을 삼킨 로헨은 속으로 수백 번 자신은 충실한 빛의 법전 신도이며, 명천사들의 의지를 수행할 명예로운 지위를 가진 파수자 회의 참가자라는 사실을 되새겼다.
어색할 만큼 침묵이 흐른 뒤에 로헨이 되물었다.
“그대로 불사 교단을 계속 공격하란 말씀이십니까? 게헨나 요새도 무시하고, 올칸 규율도 무시하면서?”
“그래.”
로헨은 혹시 등대지기께서는 저희가 여기서 죽기를 바라시는 겁니까?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그걸 참을 수 있었던 이유는 호르헬의 뒤이은 말 덕분이었다.
“성배기사가 명천사 창백을 소멸시켰다고 하더군.”
로헨의 얼굴이 이번에는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는 할 말을 찾아 버벅거리며 헤매다가 가까스로 단어들을 찾아 하나하나 나열했다.
“성배, 기사가, 창백, 그 명천사 말입니까? 그것을? 소멸?”
“그래.”
“그게…… 어떻게? 인간이 천사를 퇴치도 아니고 소멸시켰단 말입니까? 창백이 결코 약한 천사도 아닐 텐데?”
오늘 전투 막바지에서 성기사단 하나를 전멸시켰던 백골 드래곤, 그 괴물을 만들어 낸 자도 명천사 창백이었다. 창백은 그 기괴하고 잔혹한 예술성을 창의적으로 살려 성지 루아를 난공불락 요새로 새롭게 설계하기도 했다.
“경사스러운 일이지. 우리의 싸움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호르헬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로헨 역시 마찬가지였다.
등대지기가 계속해서 불사 교단을 공격하라는 말은, 아이작이 이끄는 이사크레아 여명군에 불사 교단의 병력이 쏠리지 않도록 붙잡고 있으라는 뜻이나 다름없다.
하루에 수천, 수백 명씩 희생되는데, 그들은 주인공조차 아닌 셈이다.
“성배기사…… 아이작 이사크레아는 정말 우리의 성기사가 맞습니까?”
로헨이 문득 입을 열었다.
아이작이 명천사 창백을 해쳤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가 처음 느낀 감정은 충격, 그다음은 ‘불경함’이었다.
호르헬은 로헨을 바라보았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가?”
“대체 인간이 어떻게 ‘감히’ 명천사를 해친단 말입니까? 그게 인간이 맞기는 한 겁니까?”
아이작은 오월의 검의 선택을 받은 성배기사이며 성자다. 엘릴이 그의 배후를 봐주고 등대지기도 그의 원정을 돕고 있다. 하지만 로헨은 아이작을 향한 선명한 의심을 내비쳤다.
명천사들과 대화하고 그 명령을 수행함에도 주인공으로 ‘선택받지 못했다’는 불쾌감이 그를 움직였는지도 모른다.
“그가 이단이며 불경한 존재와 접촉했다는 의심과 보고는 몇 번이나 있었습니다. 이단심문관 솔트나 컬베인도 비슷한 보고를 올린 바 있었지요. 이런 말은 그렇지만…….”
로헨은 질투와 분노로 일그러진 감정을 숨기지 않고 속삭였다.
“혹시 저희가 아름다운 가면을 쓴 괴물에게 속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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