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403)
403화. 묘지 군주 (3)
성지 루아는 최소 수천 년 전에 세워진, 어쩌면 인류가 처음 세운 도시일지도 모르는 오래된 도시다.
모든 기록에서 ‘시초’, ‘고대로부터 내려온’이라고 기록되었고, 가장 오래된 신들조차 그 기원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도시.
다르게 말하자면 성지 루아는 아득한 세월부터 그 양분을 인류에게 모조리 빨아 먹힌 상태였다. 이 도시는 불사 교단이 생기기 전, 외경에 침식되기 이전부터 황무지나 다름없었다. 단지 오래전부터 살아온 역사 깊은 땅이었기에 관성적으로 숭배받아 왔을 뿐.
도시로서도, 요새로서도, 농경지로도 의미가 없는 이 성지의 유일한 기능은 그저 신을 숭배하기에 좋은 장소라는 것뿐이다.
하지만 이 빈곤한 땅은 천 년 동안 전쟁에 휩싸여 있었다.
그리고 300년 전 불사 교단에 의해 관리되기 시작한 이래, 성지 루아는 세상 그 어디에도 없는 기괴한 모습의 도시로 탈바꿈한 상태였다.
‘몇 번을 봐도 기괴한 형태로군.’
아이작은 먼 거리에서 성지 루아를 보며 복잡한 기분에 휩싸였다.
성지 루아는 일종의 거대한 돔에 둘러싸여 있었다.
거대한 도시를 돔으로 둘러싼다는 것은 SF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초월적인 풍경이다.
하지만 불사 교단은 해냈다.
창백이라는 예술가와, 전세계 각지(특히 세상의 용광로)에서 끌어모은 전문가들, 그리고 온갖 위험천만하고 난이도 높은 공사에도 기꺼이 투입할 수 있는 언데드 노동자들까지.
돔 위에는 자글자글한 옹벽과 첨탑들이 가득했고, 빈자리에는 불사 교단에 재산을 헌납하고 들어온 부자들의 금과 은으로 기도문이 자글자글하게 적혀 있었다. 치장된 축성과 성물만으로 가지런한 문양을 형성하고 있었다.
어지간한 천사조차 함부로 접근하기 어려운 강력한 기적이 성지 루아를 둘러싸고 있었다.
아이작은 바로 그 성지 루아를 향해 진격해 들어가고 있었다.
그는 가면을 다시 한번 잘 눌러쓰고, 외경의 괴물들 사이에 섞여 성지 루아를 향해 빠르게 들이닥쳤다.
외경의 괴물 무리를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성지 루아 주변을 순찰하는 데스나이트 순찰대였다. 데스나이트들이 비명에 가까운 정신적 파장을 외치기 무섭게, 돔 위를 날아다니던 죽음의 천사들도 경고음을 울렸다.
‘하지만 너무 늦었어.’
데스나이트들이 칼을 뽑아 들었다. 훌륭한 정예임이 틀림없었지만, 아무리 대단한 검사라 해도 이 정도 군세의 ‘질량’은 버텨내지 못한다.
말 그대로 밀어닥치는 해일 같은 괴물들의 무리에 데스나이트들은 칼 한번 휘두르지 못하고 짓밟혀 버렸다.
[오오오오오!]외경의 괴물들이 토해 내는 울음소리와 함께 미지근한 바람이 뒤에서 밀어닥쳤다.
기분 탓이 아니다. 실제로 하늘의 구름들이 빠르게 북상하며 밀려 올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쪽으로 더 많은 외경의 괴물들이 따라오고 있었다.
‘……이거 생각보다 일이 훨씬 더 커질 거 같군.’
당연하지만 저 무리들까지 전부 아이작이 권속으로 들인 것은 아니다. 아이작이 권속으로 들인 것은 이 무리의 극히 일부다. 하지만 그보다 수십, 수백 배 많은 외경의 괴물들이 아이작 무리를 따라 북상해 왔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외경이 무너졌다! 외경이 무너졌다!]성지 루아를 둘러싼 첨탑 위의 병사들이 비명을 질렀다.
***
여명군을 상대하기 위한 본대는 수도 우샤크와 서쪽의 묘지 군주 쪽으로 나뉘어져 있다.
최전선도 아니고 상주인구가 있을 리도 만무한 이 도시에 남은 병력은 오백 남짓한 수비대뿐이었다.
이 수비대만으로도 어쩌다 찾아오는 외경의 괴물들을 격퇴하는 데에는 아무런 무리가 없었다. 하지만 이 정도 무리, 이 정도 ‘군세’는 감당할 수 없었다.
[묘지 군주…… 아니, 불사 황제께 알려라! 외경이 무너졌다고! 근처 도시에 있는 모든 신도들이 결집해야 한다고 일러라!]언데드들은 당혹감 탓인지, 혹은 외경의 괴물들이 들을 리가 없다고 생각해서인지 정신이 활짝 열려 있어서 그들이 떠드는 생각을 아이작도 선명하게 엿들을 수 있었다.
성지 루아 곳곳에서 죽음의 천사들이 파발처럼 날아올랐다.
우르단투 제국 곳곳에 구원을 청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들은 하늘 위에서 날아온 비행형 괴물, 나이트 스토커에게 붙잡혀 온몸이 으스러졌다.
그 모습을 본 언데드들은 경악했다.
외경의 괴물들은 말 그대로 혼돈, 방향성이 없는 존재들이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도시로 들어오려 들긴 하지만, 외경에서 멀어진 영향으로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지다가 사냥당하는 게 전부다.
하지만 지금 이것은 말 그대로 군대, 그것도 조직적인 기습이었다.
수백 년간 한 번도, 아니, 역사가 기록된 이래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왜 외경의 괴물들이……?!]‘그러게나 말이다.’
사실 이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 아이작도 설명하긴 힘들었다. 설명할 단서가 있다면 그가 북쪽으로 괴물들을 많이 보내면 보낼수록 더 많은 괴물들이 따라오기 시작했다는 것.
아이작이 일찌감치 추가 소집을 포기하고 북상한 이유 중 하나였다.
그 이상은 감당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건 즉…… 내가 보낸 괴물들이 댐에 뚫린 구멍처럼 작용했다는 것이군.’
댐은 얇은 벽으로도 엄청난 수압을 견뎌낸다.
하지만 구멍이 나는 순간, 구멍은 점점 커지면서 댐을 무너뜨리고 하류를 휩쓸어 버린다. 아이작이 괴물들을 외경 안으로 강제로 들여보내기 시작한 순간, 미르미아에서 일어났던 것과 같은 외경의 붕괴가 국소적으로 일어난 것이다.
아이작이 준비한 깜짝 선물은 불사 교단에 대한 진짜 위협이 되어 있었다.
쾅! 쿠르르릉…… 외경을 둘러싼 첨탑 중 일부가 무너져 내렸다.
던지기만 하면 적을 꿰뚫어 죽인다는 불사 투창병들이지만, 이런 숫자로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애초에 꿰뚫어야 할 머리가 어딘지도 알 수 없는 괴물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런 대혼돈 속에서도 영웅은 나타난다.
[어딜 감히 이 신성한 땅에 발을 내미느냐, 이 괴물아!]어디선가 나타난 데스나이트 하나가 일갈하며 기어 오던 수십 미터짜리 인간─하지만 팔다리가 지네처럼 많은─을 단숨에 베어 버렸다.
그 대단한 위용에 아이작마저 감탄해 버렸다. 자세히 보니 칼에 검기가 불꽃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소드마스터는 외경의 괴물들에게 휩쓸리지 않게 이리저리 날뛰면서 가차 없이 베어 넘겼다. 혼돈의 군세를 반으로 쪼갤 듯한 기세였다. 생전에 대단한 위용을 이루었던 영웅임이 분명했다.
[천사들께서 오시면 이 벌레들은 금방 처리할 수 있다! 이 불경한 것들이 감히 침입하지 못하게 막아라!]‘맞아. 너희는 묘지 군주가 올 때까지 버티기만 하면 돼. 그때까지 울고불고 질질 짜보라고.’
아이작은 불사 교단 안에 있을 소드마스터 목록을 머릿속에 떠올려 보았다. 하지만 그 이름을 머릿속에서 떠올리기도 전에 이미 그는 소드마스터의 지척까지 다가간 상태였다.
소드마스터는 괴물들 사이에 섞인 이질적인 기운을 느낀 듯 흠칫하며 고개를 돌렸다.
이내 그는 가면을 쓴 아이작과 눈이 마주쳤다.
[뭐…….]카드드드득. 카훌린이 그대로 땅을 긁으면서 소드마스터를 향해 날아들었다. 시커멓게 타오르는 검기를 본 소드마스터는 기겁하며 방어 자세를 취했지만, 아이작의 검기는 그대로 검과 갑옷을 통째로 우그러뜨렸다.
베었다기보다 산산조각, 산산조각보다는 물어뜯는 것에 가까운 기세로 소드마스터의 몸통과 검기가 통째로 ‘삭제’되었다.
적당히 싸우면서 이름을 물어보려고 했던 아이작은 허망한 결과에 살짝 당황했다.
‘이거…… 외경에서 포식을 한 성과가 너무 대단한 것 같군.’
외경의 괴물들이 포식 효율이 좋다지만, 지금 아이작은 분신을 만들기 이전보다 더 힘이 넘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영향은 아이작만이 아니라 그의 권속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헤카틀리가 첨탑 곳곳을 향해 쉭쉭거리며 뭔가를 속삭였다. 첨탑에서 열심히 투창을 던져 대던 불사 투창병들의 몸 곳곳에서 흰개미 떼가 끓어올랐다. 흰개미들은 뼈를 아낌없이 갉아 먹으며 첨탑의 경계병들을 붕괴시켰다.
경계병들이 형편없이 무너져 내리자 마침내 외경의 괴물들이 파도처럼 성지에 들이닥쳤다. 그러나 외경의 괴물들은 성벽 앞으로는 갈 수 없었다.
명천사 창백의 편집증적인 집착과 불사 황제의 아낌없는 지원 속에 만들어진 성지 루아는 불사 교단만이 이뤄낼 수 있는 궁극적인 방어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문이 없는 것이다.
***
벽에 부딪힌 외경의 괴물들은 마구 벽을 긁어대며 포효하고 울부짖었지만, 성벽의 하단부는 엄청난 두께의 화강암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리고 성지 루아를 방어하는 것은 병력과 튼튼한 성벽만이 아니다.
외경의 괴물이 성벽에 손을 대자, 성지 루아는 방호 기적을 발동했다.
치직, 치지지지직! 앞에서 벽을 긁어 대던 괴물들이 빠르게 말라붙기 시작했다.
성벽 전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서늘한 기운이 인근의 생명력이란 생명력을 모조리 착취하고 있었다. 외경의 괴물들은 산채로 미라가 되어 버렸지만, 뒤에 밀려오는 괴물들의 군세에 오히려 짓눌려 벽의 무늬가 되어 버렸다.
이대로 가면 외경의 괴물들이 전멸해 버릴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아이작은 눈을 가늘게 뜨고 성벽을 노려보았다.
‘강력한 기적이지만 한계가 있지…….’
생명력 착취는 한꺼번에 착취할 수 있는 양에 한계가 있다. 어느 정도 물량은 소화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감당이 안 될 수준으로 몰리면 과부하가 걸린다.
아이작은 유난히 괴물들이 많이 짓눌려 두터워진 부위를 주목하고 울가레에게 지시를 내렸다.
과부하가 걸리기 시작한 자리였다.
울가레는 외경에서 대체 뭘 잡아먹었는지 머리 위에 큼직한 뿔이 나 있었는데, 지금 그 뿔이 대단히 유용해 보였다.
‘가라.’
울가레는 명령을 받자마자 빠르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수많은 외경의 괴물들을 짓밟으면서 성벽을 단숨에 들이받았다. 성벽에 새겨진 기적이 당연히 울가레에게도 영향을 미쳤지만, 두껍게 쌓인 동족들의 시체가 그 기적을 경감시켰다.
쿵, 쿵, 쿵!
울가레는 한 번의 돌격으로 안 되자 몇 번 반복해서 머리를 부딪쳤다. 그 과정에서 울가레의 뿔은 물론 머리통까지 완전히 부서져 버렸다.
“키이이이잇!”
하지만 울가레는 되려 그 머리를 네 갈래로 쪼개면서 다시 한번 밀어닥쳤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외경의 괴물들도 함께 그쪽으로 몰려갔다. 울가레는 앞에 괴물이 있건 없건 마구 들이받으며 통째로 돌조각과 괴물들의 사체를 함께 씹어 삼켰다.
그리고 마침내.
콰드드드득! 굉음과 함께 성벽이 안쪽으로 무너져 내렸다.
울가레는 성벽 안으로 머리를 집어넣고 탈진해 버렸다. 이내 울가레의 몸을 짓밟고 무수한 괴물들이 성벽 안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헤카틀리, 울가레를 끄집어내라. 그리고…….’
그때 엄청난 광풍이 몰아닥쳤다. 달려오던 괴물들은 물론, 아이작마저 휘청거릴 정도의 바람이었다. 아이작은 하늘의 먹구름들이 전부 미친 듯이 형태를 뒤트는 모습을 발견했다.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의 내장처럼 움직이는 그 모습에 정신이 이상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성지 루아의 성벽에 구멍이 나자 외경이 더욱 빠르게 침습해 오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은 해야 했다.
‘지힐렛.’
조용히 울가레가 벽을 뚫기를 기다리던 지힐렛은 지시를 받자마자 조용히 성벽 안으로 들어갔다. 이대로 외경의 괴물들에게 성지 루아가 점령당한다면 그건 그거대로 곤란하겠으나, 어차피 아이작은 그렇게 되진 않을 거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성지 루아는 물량 만으론 점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콰르르르릉. 벼락이 울려 퍼지는 듯한 소리가 성지 루아 안에서 들렸다. 내성에 들어간 외경의 괴물들이 피떡이 되어 쏟아져나왔다. 마치 건물이 피를 토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구멍 속에서 온갖 기괴한 형태의 언데드들이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나왔군. 황제의 친위대.’
성지 루아를 지키는 진정한 수호자들.
불사 교단의 고인물, 고행과 신체 개조로 정신이 망가진 언데드들.
신도들의 자유를 존중하는 불사 황제지만, 이 광신도들은 사회적으로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는 성지 루아에 정신 나간 광신도들을 몰아넣은 다음 문도 없는 성벽을 쌓았다. 정신병원인지 성지인지 알 수 없는 이 아무것도 없는 어두컴컴한 공간에서 오로지 신을 향한 신앙심으로 수백 년의 세월을 버텨낸 불사 교단의 광신도들이 포효했다.
[죽어라! 살아서 불사 황제 폐하를 섬길 수 없다면 죽어서 섬겨라!]여기까지 왔으니, 아이작은 곧 벌어질 일도 예상할 수 있었다.
아이작은 하늘에 들이닥친 어둠이 외경의 먹구름을 밀어내는 모습을 발견했다. 그는 예상대로 불사 황제가 이 땅에 도래했음을 깨달았다.
더 이상 아이작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이제는 빠져야 할 때였다.
‘헤카틀리, 울가레를 데리고 후퇴해라. 여기 용건은 다 끝났다.’
이제는 본대 쪽으로 복귀할 시간이다.
아이작은 이 많은 괴물들과 외경의 침식이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불사 황제도 그렇게 생각할까?
전선이 셋으로 나뉜 상황에서 벌어진 성지 습격이 등대지기의 음모가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등대지기와 불사 황제가 어떤 야합을 벌였든, 불사 황제는 등대지기를 의심하고 밀어내는 수밖에 없다. 등대지기 또한 성지 루아가 공격받는 상황에서 여명군을 가만히 내버려 둘 수 없다. 서로가 서로의 능력과 의도를 의심하는 상황에서 분열이 시작될 것이다.
아이작이 둘 사이에 박아 넣은 쐐기는 천상의 야합조차 갈라놓기 시작했다.
불사 황제의 표정이 어떨지 보고 싶었지만, 대신 꽁무니에 불붙은 듯 달려올 묘지 군주의 표정이나 구경하는 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어차피 둘 다 변변찮은 표정도 못 지을 테고.
아이작은 그대로 외경 쪽으로 도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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