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406)
406화. 묘지 군주 (6)
묘지 군주는 보이는 것에 비해 몸이 그렇게 단단하지 않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는 시체를 주렁주렁 매달고 다니다가 불사 교단의 망자들에게 새 육신을 내려주곤 한다. 육신에 일일이 천사의 신성이 깃들게 해서는 자기 힘만 낭비할 뿐이다.
또 다른 이유로는, 맷집을 상회하는 어마어마한 복구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성배기사!]묘지 군주는 고함지르며 거대한 검을 횡으로 휘둘렀다. 주변에 있던 모든 것의 허리가 썽둥 잘려 나갔다. 아이작은 몸을 숙이며 재빨리 파고들었다. 순간 묘지 군주의 몸에 달라붙어 있던 시체들이 발작적으로 일어나 아이작을 움켜쥐기 위해 손을 뻗었다.
묘지 군주의 몸에 붙어 있는 수백 구의 백골들이 전부 아이작을 잡기 위해 악다구니를 썼다. 그 사이 일부는 잘려 나간 다리를 붙들고 순식간에 이어 붙였다.
[쥐새끼처럼 굴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맞서라, 전사답게!]“엘릴 신도도 아니면서 왜 정정당당함을 찾지?”
아이작은 비아냥거렸다.
묘지 군주는 수백 년간의 전쟁 속에서 닳고 닳은 장군이다. 아이작이 정정당당하게 싸우려고 마음먹은 순간,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아이작을 죽이려 들 것이다.
그는 생전에도 같은 방법으로 여러 번 적을 쓰러뜨렸다. 아이작도 딱히 비겁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전쟁터에서 정정당당함을 찾기에는 그들이 책임지고 있는 부하들이 너무 많으니까.
“애초에 천사가 인간에게 ‘정정당당’을 찾는 건 너무 치사한 거 아닌가?”
묘지 군주에게 얼굴 근육이 있었다면 히죽 웃었을 것이다. 대신 그는 광란에 가까운 정신적 파장을 터뜨리며 아이작을 난타했다.
아이작은 스치기만 해도 몸이 휘청거리고 땅이 패이는 공격에 등골이 오싹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거리를 벌릴 수는 없었다. 이 커다란 덩치를 상대로는 파고드는 것부터가 어렵다. 그나마 아이작이 붙어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에이단의 작살이 묘지 군주의 움직임을 방해하고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
묘지 군주는 아이작을 잡기 위해 미친 듯이 날뛰었다. 언뜻 보기엔 이성을 잃은 듯 보였지만, 사실 묘지 군주는 지극히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전력을 조금이라도 보전하려면 내가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
명천사 아문달라스는 위협이 아니다. 눈앞에 있는 아이작도 위협이 될 정도는 아니다. 퇴각전이 어려워진 이상, 아문달라스는 반전의 한 수를 꾀하고 있었다.
‘눈앞의 성배기사가 진짜든 가짜든, 놈을 죽여야 이사크레아 여명군의 사기가 꺾인다!’
이사크레아 여명군의 사기가 꺾이면 월식군의 후퇴는 훨씬 수월해진다. 묘지 군주 본인은 그때 가서 빠져나가도 늦지 않았다. 따라서 아이작이 가까이 다가온 것은 오히려 기회였다.
묘지 군주와 아이작은 동상이몽 속에, 서로의 약점을 취하고 죽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쉭, 까드드득! 루앗딘 열쇠와 맞부딪친 묘지 군주의 대검이 거친 쇳소리를 내며 깎여 나갔다.
묘지 군주의 대검은 언뜻 보기에 이 칼 저 칼 다 뭉쳐서 녹인 다음, 뼈로 엮어 놓은 것이나 다름없는 형태였다. 하지만 이미 묘지 군주가 사용하는 무구라는 점에서 루앗딘 열쇠와 대등한 등급의 성물이었다.
그것을 아이작은 정교한 검술과 검기로 깎아내고 있었다. 이미 묘지 군주의 대검이 몽둥이나 다름없는 물건이기에 큰 의미는 없는 일이었지만, 묘지 군주는 다르게 생각했다.
‘저 검기…… 심상찮군.’
그의 대검은 육신과 마찬가지로 빠르게 수복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아이작과 맞닿은 부위는 신체건 대검이건 유독 회복이 느렸다. 묘지 군주는 뒤늦게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이작의 검기와 맞닿은 부위가 크게 ‘소실’된 것이다. 마치 베인 부위가 소멸하기라도 한 것처럼.
복구할 파편을 찾을 수 없다면 대체할 부위를 찾아야 하니 재생이 늦을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맞으면 위험할 수도 있는 공격이지만, 한계가 뻔했다.
눈앞의 아이작은 약해 빠졌기 때문이다.
‘놈은 이 이상 강력한 공격을 할 힘이 없다. 전력을 다해 봐야 외피만 긁어내는 정도!’
언제든지 신체를 ‘대체 가능한’ 묘지 군주의 육신은 아무리 손상되어도 타격이 크지 않다. 아이작을 힘을 가늠한 묘지 군주는 다소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빠르게 끝내는 길을 선택했다.
묘지 군주는 짐승이 울부짖는 듯한 포효와 함께 대검을 크게 들어 올렸다. 마치 벨 테면 베라는 듯한 동작에 아이작은 홀린 듯이 파고들어 칼을 휘둘렀다. 그 순간, 묘지 군주의 앞가슴에 달려있던 무수한 두개골들이 입을 쩍 벌리더니 아이작의 검을 물어뜯었다.
루앗딘 열쇠에서 타오르는 열기가 구멍을 통해 새어 나오고, 검기가 이빨과 턱뼈를 으스러뜨렸지만, 그들은 아이작을 놓아주지 않았다.
묘지 군주는 아이작을 향해 대검을 내리쳤다.
아이작은 칼이 닿기도 전에 몸을 짓누르는 엄청난 압력을 느꼈다. 묘지 군주가 가진 고유의 상급 검술이었다. 살점을 잡아 찢는 듯한 중압감과 함께 칼날이 아이작을 수직으로 내리쳤다.
다음 순간.
굉음과 함께 일대를 휘청이게 만드는 충격파가 밀어닥쳤다.
그리고 묘지 군주는 당혹감과 충격 섞인 감정으로 자신의 대검을 내려다보았다.
지금까지 뭐든 통째로 뭉개고 쪼개 버렸던 그의 대검은 아이작의 머리에 닿지도 못했음에도 균열이 생기고 있었다.
에델레드가 식은땀 맺힌 얼굴로 그의 대검을 밀어 내고 있었다.
완력으로는 엘릴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전설을 가진 명천사 ‘사자 기사’의 맹렬한 힘이, 묘지 군주의 칼날을 되레 밀쳐내고 있었다.
“빈틈을 드러내는 게 너만 할 수 있는 재주인 줄 알았나?”
아이작의 비아냥과 함께, 묘지 군주는 등 뒤에 날아드는 맹렬한 타격에 휘청거렸다.
쾅! 투할린이 내리친 망치의 충격이 그의 스무 줄이 넘는 척추를 단숨에 으스러뜨렸다. 빠직거리며 타고 올라오는 뇌격은 단숨에 묘지 군주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을렸다.
그러나 공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묘지 군주는 자신의 가슴에 박힌 아이작의 검에서 이질적이면서도 익숙한 기운을 느꼈다.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의 통증.
오월의 검과 데라 헤만이 만들어 낸 상처를.
“아무리 재생력이 좋다고 해도…… 쉽게 낫지 않는 상처가 있는 법이지.”
아이작은 내면의 금사자를 불러냈다.
이미 오월의 검의 축복이 덧씌워진 검에, 데라 헤만의 검술이 더해지면서 묘지 군주의 가슴을 후벼파기 시작했다.
기적은 역사적 사건의 재현이다. 천사는 이 ‘기적’이 불러오는 ‘당연한’ 결과에 저항할 수 없다.
아이작의 검은 단숨에 묘지 군주를 가슴부터 어깨까지 분리시켰다.
***
콰드드드드…….
묘지 군주는 가슴을 경계로 상반신과 하반신이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꼴이었다. 세 줄의 작살과 쇠사슬이 오히려 그의 몸이 쓰러지지 않게 고정하고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이어져 있던 부위마저 떨어지려고 하자, 수십 구의 백골들이 일제히 일어나 몸을 떠받쳤다. 하지만 상처와 재생 능력이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는, 누가 봐도 빈사에 가까운 상태였다.
아이작의 검기보다 이미 일어났던 사건의 재현이 묘지 군주에게 치명적이었다.
‘결국 그때 입은 상처가 문제였군.’
이 사건이 우르반수스에 기록된 것 자체가 묘지 군주에게는 큰 약점이었다.
‘명천사 묘지 군주 퇴치법’이 기록된 셈이니까.
묘지 군주는 여명군 본대와 거리가 상당한 아이작이 대체 어떻게 ‘사건’을 알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아마도 천사가 일러주었겠거니 했다.
[이 시대의 영웅이라기에 정면 승부를 기대했는데…….]“정정당당하게 싸워 줄 줄 알았다고?”
[기대 이상의 멋진 승부였다는 뜻이다.]아이작이 묘지 군주를 상대하던 것은 단순한 시간 끌기에 지나지 않았다.
묘지 군주는 창백과 달리 정면 대결에서도 강한 존재고, 아이작은 분신이었기에 가진 힘도 한정적이었다. 창백과 싸울 때처럼 혼자서 상대했다면 묘지 군주 생각대로 ‘피부나 긁다가’ 끝나버렸을 것이다.
따라서 아이작은 애초에 묘지 군주와 결투를 벌일 생각 따윈 없었다.
그저 투할린과 에델레드가 수확자들을 처리하고 올 때까지 발목을 잡았을 뿐.
그리고 묘지 군주가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하게 만든 순간, 그 두 사람이 개입할 빈틈을 만들어냈다. 에델레드와 투할린은 명천사의 선택을 받은 영웅들답게 강력한 위력을 발휘했다.
그다음은 묘지 군주가 무릎 꿇은 사건을 재현했을 뿐이다.
[허.]묘지 군주는 찬찬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가 무너지는 모습을 본 이사크레아 여명군은 사기충천하여 월식군을 도륙하고 있었다.
“이사크레아 여명군은 패배하지 않는다!”
우렁찬 구호가 전장을 가득 메웠다. 월식군은 혼란 속에서도 퇴각하려 애썼지만, 최후열에 있던 후발대 외에는 거의 전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도 징집한 월식군의 대부분은 이 자리에서 전멸할 것이다.
물론 묘지 군주는 월식군 전부를 이곳에 데려오진 않았다. 수도 우샤크도 방어해야 하고, 예비대도 더 있다. 하지만 이번 전투의 손실은 충분히 불사 교단에 치명적이었다.
[황제 폐하께 뭐라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군…….]월식군 후퇴도 이끌지 못했고, 명천사인 자신마저 소실된다면 불사 교단의 패배는 기정사실이었다. 수백 년 만에 성지 루아를 빼앗기는 것이 마지막으로 성지 루아를 정복했던 자신 때문이라니, 묘지 군주는 이 아이러니에 말을 잇지 못했다.
“총지휘관.”
투할린이 엄격한 태도로 아이작에게 신호를 주었다.
명천사를 잡졸처럼 죽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복잡한 절차를 거쳐 의식을 치러야만 최소한의 봉인이라도 할 수 있었다. 창백 때는 그럴 겨를이 없어 달아났었다.
“명예로운 최후를 원한다면 가만히 있으시오.”
에델레드가 긴장한 듯 말했다. 물론 이렇게 한다고 묘지 군주가 창백처럼 소멸하지는 않을 것이다. 창백의 소멸은 사실상 불사 황제의 방임 덕분이었으니.
하지만 제대로 봉인한다면 적어도 백 년은 역사에 등장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묘지 군주는 순순히 당해 줄 생각이 없었다. 그는 자신이 불사 교단으로 개종한 이유를 잊지 않았다.
[월식군은 들어라! 전군, 성지 루아 방향이 아닌 사방으로 흩어져라!]순간 투할린의 얼굴이 꿈틀하더니, 망치로 단숨에 묘지 군주의 머리를 후려쳤다. 묘지 군주의 두개골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몸통에서 떨어져 나갔지만, 묘지 군주는 금이 간 두개골로 반복해서 외쳤다.
[월식군은 온 사방에 흩어져 끝까지 이사크레아 여명군의 진군을 방해해라! 놈들이 성지 루아에 도착하기 전까지 괴롭혀라!]“이런…….”
그의 명령이 전달되기 무섭게 자아를 속박하던 정신 억압도 일제히 풀려 버렸다. 월식군은 일정하던 후퇴 방향에서 곧 사방으로 흩어졌다. 자아를 갖게 된 언데드들은 이제 개별적으로 알아서 판단하여 전투 행동에 들어갈 것이다. 한 방향으로 도망치는 적보다 흩어지는 적을 잡기가 더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에델레드는 곧 병사들이 과하게 흩어지지 않게 다급히 부대별로 움직이도록 지시를 내렸다.
투할린은 또 한 번 망치를 내리치려 했지만 아이작이 가로막았다. 정신적 파장으로 내뱉은 목소리다. 입을 틀어막을 수도 없고, 의사가 전달되는 순간은 순식간이다.
대신 아이작은 묘지 군주의 두개골을 움켜쥔 채 ‘감춰진 제례’를 발동시켰다. 힘을 분열시킨 아이작일지라도 자신의 몸을 가릴 정도의 장막은 두를 수 있었다.
시커먼 구체가 둘을 집어삼키듯 둘러싼 순간, 묘지 군주는 자신이 천상에서도 지상에서도 완전히 고립된 것을 느꼈다. 우르단투 제국 전역에 그가 영향력을 미치는 언데드들로부터 정신적 연결이 완전히 끊어진 것이다.
[재밌는 수작을 부리는군. 성배기사. 하지만 나는 이미 지시를 내렸다. 소용없어.]이미 명령이 전달된 이상, 막을 방법은 없었다. 하지만 아이작은 미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명령이 내려진 것은 상관없다는 듯, 아니,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한 태도였다.
“불사 황제의 명령을 어겨도 상관없나 보군?”
[어차피 내 육신이 모조리 박살 나는 것은 기정사실 아닌가?]“그렇다면 망령이 되어서 불사 황제에게 돌아가 부활을 청해야 할 텐데, 지금 월식군더러 산산이 흩어지라고 명령한 네가, 불사 황제의 명령을 어긴 네가 그에게 부활을 청할 수 있을까?”
묘지 군주의 정신적 파장이 가늘게 떨렸다.
‘불사 황제께서 내게 퇴각 명령을 내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건가? 어떻게?’
불사 황제의 명령은 오직 자신에게만 내려왔고, 묘지 군주는 그 사실을 들키지 않고 퇴각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아이작은 처음부터 들여다보고 있었다는 태도였다.
하지만 묘지 군주는 금방 동요를 잠재웠다.
[역시 성지 루아에 일어난 일은 네 수작인가 보군. 어떻게 한 건진 모르겠지만 이미 무슨 상황인지 아는 모양이지?]불사 황제는 불확실하게 말했지만, 역시 그의 말이 옳았던 셈이다.
묘지 군주는 깊게 한탄했다. 주군을 의심하지 말고 손해를 감수해서라도 즉시 퇴각했어야 했다. 일말의 의심이 물러나려는 군세의 발목을 잡았다.
[나는 장군이다. 주군의 명령도 어기고 전쟁에서도 패배한 장군이지만, 그래도 장군이지.]묘지 군주는 달각거리며 아이작을 응시했다.
[내 판단에는 변함이 없다. 너는 실수했어. 내가 비록 여기서 육신을 잃더라도, 내 여명군이 네 군대를 붙잡아 둘 거다. 그러면 진짜 성배기사는 성지 루아에서 고립되겠지.]묘지 군주는 성지 루아에 진짜 아이작이 있든 없든, 자신이 처리할 수 없다면 거기서 고립시키기라도 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장수가 홀로 적진 깊숙한 곳에 파고들다니, 그가 보기에는 미친 짓이다. 그렇다면 그 미친 짓을 써먹어 줘야 한다.
[너희는 어차피 나를 부술 텐데, 여기서 더 나빠질 게 더 있나? 나는 불사 황제께 충성하고, 불사 황제께서는 내게 불멸을 약속하셨다. 그뿐이야.]묘지 군주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는 불사 황제가 자신을 부활시켜 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작은 그의 빈약한 상상력을 비웃었다.
“하, 똑똑하군. 그런데 창백이 어떻게 소멸했는지는 모르는 모양이지?”
“됐고, 네 친구나 만나러 가라.”
밀착한 아이작의 왼손바닥에서 촉수가 튀어나와 묘지 군주의 두개골 안쪽으로 파고들어 갔다.
그리고 그의 내면 깊은 곳을 게걸스레 핥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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