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410)
410화. 죽은 자들을 위한 나라 (3)
“성배기사가 월식군을 물리쳤다구요?”
시에로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천사들은 여명군에게 아무런 귀띔도 해주지 않았다. 파수자 회의 중에서도 극히 일부만이 정황을 보고 짐작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펠트런은 그만의 고유한 정보통을 통해 전해 들은 상태였다.
펠트런은 밤샘 전투로 인해 피곤한 듯 눈을 비비다가 일어섰다. 그의 시야에 온통 불에 탄 우샤크가 눈에 들어왔다.
“그러니까 수도 우샤크 방위가 이렇게 허술하지.”
“하, 하지만 우샤크에도 월식군과 방어 병력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들이…….”
“전부 성지 루아로 빠져 있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성지 루아에 난리가 났다더군. 불사 황제가 병력이란 병력을 모조리 빼낼 정도로. 수도 따위는 버려도 상관없을 정도의 일이 터졌다는 거지…….”
실제로 수도 우샤크는 노예 계급에 해당되는 좀비나 영혼이 속박된 해골들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시민들이 빠져나간 상태였다.
불사 교단은 그 특성으로 인해 일반인과 군인의 차이가 거의 없다. 자유 의지를 중요시하는 불사 황제가 이 정도로 대규모 징집을 했다는 것은, 교단의 안위가 흔들릴 만한 큰일이 성지에서 벌어졌다는 뜻이었다.
“그 큰일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성배기사가 묘지군주를 물리친 시점과 그리 차이가 나지 않는다더군. 여명군이 진심으로 성지 루아에 위협이 되겠다고 판단한 거 아니겠나?”
명천사가 둘이나 격파당한 상황에서 불사 교단은 전선이 둘로 나뉘는 상황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모든 병력을 여명군의 최종 목표, 성지 루아로 끌어모아 한꺼번에 상대하는 쪽이 낫겠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었다.
“빛의 법전이 의도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머리를 잘 썼어. 큰 위협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성배기사를 이용해서 불사 교단의 명천사를 둘이나 제거하지 않았나? 여명군 내부에 생긴 불화조차도 그들에게는 지렛대에 불과했던 거지. 이제 빛의 법전의 진정한 힘이 불사 교단을 후려칠 수 있게 되었고.”
펠트런은 이 모든 것이 계산된 작전이라고 생각했지만, 확신은 할 수 없었다.
불사 교단을 정말로 위협하는 쪽은 명천사가 셋이나 나선 여명군 본대가 아닌 아이작이 있는 이사크레아 여명군 쪽 같다는 기이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불사 황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번 전쟁은 펠트런에게도, 그를 후원하는 음모의 주인들에게도 곤혹스러운 전쟁이었다.
시에로 역시 난처한 표정이 되었다. 아이작이 활약하고 있다는 것은 고무적인 소식이지만, 이제는 누가 적인지 아군인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과연 성지 루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었다.
“그런데 명천사 죽은 십이월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원래 여명군 본대가 함부로 움직이면 죽은 십이월이 배후를 칠까 봐 걱정하지 않았던가요?”
펠트런의 표정이 묘해졌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죽은 십이월은…… 안 움직일 거 같다. 지금까지 안 움직인 거면, 앞으로도 안 움직인다는 뜻이겠지. 성지 루아보다 게헨나 감옥 요새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걸 수도 있고.”
“성지 루아가 점령당하는 것보다 감옥 하나 지키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겁니까?”
“게헨나 밑바닥에 무슨 심연이 갇혀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잖아. 빛의 법전도 거긴 아예 건드리지도 않았다고. 아니면 처음부터 죽은 십이월은 게헨나 감옥 요새에서 떠날 수 없는 몸인지도 모르지. 언제든 움직일 수 있을 것처럼 협박하기 위해 존재감만 드러냈을 뿐이고.”
“그럼 이제 어떻게 될까요? 원래 당신은 전쟁 이후를 생각하고 있지 않았습니까?”
“글쎄…….”
펠트런은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시에로는 괴상하게 생긴 가죽 공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내 그것이 펄떡이면서 요동치는 것을 보고 기겁했다. 그것은 말리고 무두질한 심장을 어설프게 꿰매 놓은 물건이었다. 아마도 붉은 성배 클럽의 성물로 추측되는 그것을, 펠트런은 귓가에 가져다 댔다.
그러자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면서 무언가를 펠트런에게 속삭였다. 심장의 속삭임을 듣는 펠트런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지만, 이내 심장이 멈추자 조용히 품속으로 집어넣었다.
시에로는 심장이 대체 뭐라고 말한 건지, 정체가 뭔지 묻고 싶었지만 알지 않는 편이 건강에 좋을 것 같았다.
펠트런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일단 성지로 가야겠군. 거기서 모든 변화가 시작될 테니, 그 변화의 현장에 있어야 앞으로의 계획이라도 세울 수 있겠지.”
***
[성지 루아는 여기서 사흘거리입니다. 팬텀스티드가 쉬지 않고 마차를 끌 테니 각오하시고.]알 테오도르가 보낸 마부가 레오노라에게 경고했다.
사흘이나 쉬지 않고 마차를 타고 움직일 것이란 말에 샬록의 얼굴이 창백해졌지만, 레오노라는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차가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레오노라는 북쪽 먼 곳에서 피어오르는 엄청난 잿빛 구름을 응시했다.
이제는 불타버린 폐허, 수도 우샤크에서 흘러나오는 연기였다.
여명군 본대의 갑작스러운 공격은 불사 교단에게도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특히 리치 알 테오도르는 ‘여명군 등하맹인들이 우리 쪽 천사들과 협상했다’라며 자신만만한 상태였기에 더욱 그랬다.
‘그때만 해도 불사 황제와 면담이 조만간 이루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레오노라는 이전에 그러했듯 이번 13차 여명군도 어이없이 끝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불사 황제의 갑작스러운 소집 명령과 빛의 법전 측 명천사들이 나타나면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리치인 알 테오도르와 그의 권속들이 먼저 황제의 부름을 받아 서둘러 성지 루아로 빠져나갔다. 직후 여명군 본대가 수도 우샤크를 급격하게 공격해 오자, 레오노라를 보호하도록 명령받은 테오도르 저택의 하인들은 그녀가 빠져나오도록 도와주었다.
레오노라와 황금우상 상단의 일행들은 함락 직전에 우샤크를 빠져나온 마지막 일행이었다. 덕분에 레오노라는 우샤크의 참상을 대부분 지켜볼 수 있었다.
‘겁에 질린 채 싸우는 여명군, 유리눈깔 광신도들, 그을린 자들, 성가를 부르짖는 사제들과 성기사들, 도시를 불태우는 성물…… 그리고 천사.’
수도 우샤크가 산 사람이 살기 좋은 도시는 아니다. 하지만 소비하지 않고 생산하기만 하는 언데드 인구가 만들어 낸 도시의 풍경에는 대단히 독특한 분위기가 존재했다. 시간이라면 펑펑 남아돌아 밤낮없이 집중하는 장인들과 석공들은 수도 우샤크를 예술 작품에 가까운 수준으로 깎아 놓았다.
그것은 화려함과는 다르다. 어떤 인생을 바친 고행처럼 느껴지는, 일종의 종교화에 가까운 풍경이다.
레오노라는 딱히 그 도시의 풍경을 좋아하진 않았지만, 충분히 인문학적 유산으로는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의미가 없었다. 모든 것이 불태워지고, 무너지고, 짓밟혔으니까.
‘위대한 여명군의 이름 아래 말이지.’
사람들이 시간과 공을 들여 만들어 낸 업적을 천사들은 너무 쉽게 짓밟고 무너뜨린다.
신과 천사들이 만들어 내는 대계라는 이유로 수백 년의 시간에 걸쳐 지어진 찬란한 고도(古都)를 아무렇지도 않게 짓밟고 지나갔다.
짓밟힌 도시도, 쓰러지고 죽어 나간 병사들도, 신들에겐 그저 발자취에 불과할 뿐이다.
그때였다. 갑자기 마차가 크게 흔들리면서 멈춰 섰다. 샬록이 곧바로 칼을 뽑아 들 준비를 했지만, 마부석의 언데드가 창문을 열고 상황을 보고했다.
[실례했습니다. 아가씨. 갑자기 웬 꼬마 하나가 길에 뛰어들어서.]“꼬마요?”
레오노라는 귀를 의심했다.
지금 그들은 불사 교단 영토 한복판에 있고, 이곳은 산 사람이라곤 여명군 광신도 말고는 찾아보기 힘든 땅이다. 마차는 길을 돌아가려는 듯 팬텀스티드를 돌렸지만, 밖에서 애처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도와주세요!”
정신적 파장이 아닌 사람의 목소리였다.
레오노라는 동정심보다 호기심에 창문을 열었다. 길바닥에 널브러진 소년 하나가 몸 곳곳을 붕대로 싸맨 채 울고 있었다.
진짜 살아있는 사람이었다.
소년도 이런 곳에서 살아있는 사람을 만날 줄 몰랐다고 생각한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마부가 난처한 듯 말했다.
[아마 여명군 전쟁포로일 겁니다. 노예로 만들기에는 너무 어려서 키우고 있던 거겠지요. 주인이 황제령에 소집되자 빈집에서 도망쳐 나온 모양입니다. 이런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불사 교단은 정말 어쩔 수 없는 경우 아니면 어린아이를 해치지 않는다. 하지만 여명군은 전쟁에 어린아이를 동원하는데 망설임이 없다. 물론 큰 전력은 안 되지만, 전쟁포로로 잡혀 온 어린아이를 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샬록은 피도 눈물도 없는 레오노라가 무시하고 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녀는 의외의 행동을 보였다. 문을 열어 주더니 손짓한 것이다.
“샬록, 데리고 오세요.”
샬록은 도망치는 와중에 어린애, 그것도 고약한 여명군 포로 출신을 데리고 간다는 말에 기가 막혔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도 아닌 레오노라라면 다른 피도 눈물도 없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소년은 샬록의 손에 끌려 마차에 겨우 탔다.
소년이 타자 마차는 곧바로 다시 출발했다. 겉보기에 크게 다친 상처는 없어 보였다. 붕대는 치유 기적을 쓸 수 없으니 자잘한 자상이나 타박상을 응급 처치한 흔적이었다.
레오노라는 소년에게 먹을 것을 주고 가만히 지켜보았다. 소년은 한동안 굶주린 듯 음식을 주는 대로 받아먹었지만, 시간이 흐르자 레오노라의 시선이 부담스러운 듯 눈치를 보았다. 결국 먼저 입을 연 것은 소년이었다.
“감사합니다. 부인, 저는…….”
“레오노라란다. 자기소개는 할 필요 없고.”
레오노라는 부인이라는 호칭에 잠깐 빈정 상한 듯했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하지만 소년은 더 주눅 든 듯 움찔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꼬마야, 여기서 뭐 하고 있었니?”
“네? 아, 어. 저, 저는 여명군 참전자입니다. 성지 루아를 수복하기 위해…….”
“성지 루아.”
그녀는 소년의 말을 끊고 천천히 미소 지으며 소년을 향해 몸을 숙였다.
“내가 직접 데려다주련?”
레오노라는 거대한 고래들이 부딪치는 틈바귀에서, 미약한 인간이 칠 수 있는 발버둥에 대해 생각했다.
신과 천사들이 부딪치며 시체들이 산더미처럼 쏟아져 나오는 이 잔혹한 전쟁 속에서도,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
신과 천사들, 그리고 자신이 세상의 모든 것을 굽어볼 줄 안다고 믿는 소수의 천재들이 이사크레아 여명군의 업적에 전율하고 그들의 움직임에 주목했다. 하지만 이사크레아 여명군은 묘지군주를 무찌른 뒤 태산 같은 고고함을 지켰다.
아니, 정확히는 그 자리에서 퍼져 있었다.
“기적 후유증이 심각하네.”
게벨은 병사들의 신체적, 정신적 상태를 점검하고 정리해 아이작에게 보고했다.
기적에 후유증이 있다고 하면 의아할 수도 있겠지만, 평범한 부작용 같은 것과는 다르다.
기적은 우르반수스의 힘을 투사하는 것이고, 이 과정에서 정신적 고양감이나 신체적 강화 능력을 얻는다. 하지만 그 힘이 다시 빠져나가면, 상대적으로 기적의 힘이 빈약한 지상에 적응해야 한다.
비유하자면 고산증이나 잠수병에 가깝다.
그런데 이사크레아 여명군은 이번에 묘지군주를 상대하기 위해 이틀이나 고강도의 기적에 노출되었다. 정신적 신체적 부하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천천히 압력을 낮출 필요가 있었지만, 문제는 사제도 성기사도 이제 탈진해 버렸다는 점이었다.
소금 의회만 해도 사제가 되기 위해 일시적으로 저승 문턱에 발을 걸치고 오는 과정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사람이 수두룩하게 죽었던 것을 생각하면 결코 얕볼 만한 일이 아니다.
아이작은 심각하게 지휘관들에게 물었다.
“천사들의 도움을 얻을 수는 없을까요?”
그 말에 에델레드와 투할린도 난처한 표정이 되었다.
“글쎄…… 회복을 위해 돕는다면 모르겠지만 회복 후 후유증을 위해 돕는 기도를 올리는 것도 도와주실지는 모르겠군. 사실 더 무리하는 것 없이 푹 쉬기만 해도 증상은 완화될 걸세.”
잘 먹고 푹 자는 것.
사실 만병통치약이 있다면 이만한 것도 없다. 하지만 문제는 이곳이 적진 한복판이고, 그들은 전쟁 중이라는 점이다. 제대로 안심하고 휴식할 만한 장소를 찾기는 어려웠다.
게다가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성지 루아다.
성지 루아에서는 묘지군주 때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을 전투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병사들은 물론이고 사제와 성기사마저도 탈진한 상태에서 그런 전투에 뛰어들고 싶지는 않았다.
아이작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문득 고개를 돌려 동쪽을 바라보았다.
다른 지휘관들도 그를 따라 바라보았지만 아무것도 없는 천막뿐이었다. 하지만 아이작은 마치 무언가를 듣고 판단한 것처럼 입을 열었다.
“여기서 조금만 동북쪽으로 움직이죠. 거기에 쉴 만한 마을이 있습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