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411)
411화. 죽은 자들을 위한 나라 (4)
“쉴 만한 마을?”
투할린은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지금 제대로 들은 건가? 불사 교단 영토 안에 쉴 만한 마을이 있다고?”
“혹시 예전에 들렀던 그 폐허 마을 같은 곳이오?”
에델레드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 마을은 잠깐 묵었다 가기에는 나쁘지 않았지만, 불사 황제 베셰크가 찾아와 잠자리가 뒤숭숭하여 잠을 설친 병사들이 많았다. ‘푹 쉰다’는 개념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
아이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이동하고 나서 이야기합시다.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니.”
아이작이 결정한 이상 더 이상 이견을 내는 것은 트집 잡기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아이작의 인도 덕분에 승승장구 승리를 거듭해 왔으니, 다들 이번에도 아이작이라면 이 차가운 사막 한복판에서도 뜨끈한 온천을 찾아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소금 의회가 참 적절한 타이밍에 합류했군, 에이단.”
아이작은 새롭게 합류한 지휘관, 에이단에게 감사 인사를 표했다.
지금 이사크레아 여명군 일원중에서 기적 후유증에 시달리지 않는 인원은 소금 의회 소속 선원들뿐이었다. 거기다 그들이 가져온 신선한 보급품과 말, 수레는 지친 병사들에게 가뭄 속 단비 같은 존재가 되어 주었다. 에이단은 농담이 아니라 정말 적절한 타이밍에 합류한 것이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성배기사님.”
“거기다 덕분에 명천사 묘지 군주를 물리칠 수 있었어. 명천사 초롱아귀의 전설에 또 하나의 페이지를 추가한 셈이군.”
“아, 제발…….”
에이단은 눈에 띄게 부끄러워하며 몸을 비틀었다.
그는 묘지 군주를 퇴치한 것이 온전히 자신의 합류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묘지 군주는 결사적으로 후퇴하려 했고, 자신은 그저 그 타이밍에 운 좋게 나타났을 뿐이라고.
하지만 일반병사들은 갑작스러운 지원군의 등장으로 동요한 월식군이 붕괴되었다는, 지극히 살아있는 인간의 군대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을 끼워 맞추며 믿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을 놓치지 않은 성배기사의 예리한 안목 또한 찬양했다.
아이작은 이 모든 업적이 에이단에게 넘어가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아이작에게는 업적이 차고 넘친다. 오히려 에이단의 공으로 돌리는 것이 동맹의 필요성과 끈끈함을 강조하기에 적절했다.
“그런데 사실 예상보다는 늦은 편이긴 했어. 물론 레오노라가 보급을 해준 덕분에 늦을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더 늦을 이유가 있었나?”
“아, 그게…… 미르미아 앞바다 상황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미르미아 앞바다? 소금 사막이 있던 곳?”
아이작은 의외의 이야기에 놀랐다.
부르는 자가 벌써 나왔을 리는 없고, 이제 저주받은 태양이 사라진 이상 이상 기후가 발생할 이유도 없다.
하지만 아이작이 생각한 것과는 상당히 다른 변화였다.
“예. 미르미아 일대에…… 거대한 해양생물이나 본 적도 없는 기괴한 물고기들이 관측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황금 우상 상단 쪽 상인들이 겁을 먹고 일정을 늦추더군요. 제가 직접 길 안내를 하고서야 물자를 들여올 수 있었습니다.”
‘거대 해양생물들의 등장이라.’
아이작은 소금 의회의 힘이 강해지면서 그 영향이 드러나는 것인가 싶었다. 생각해 보니 놀랄 일은 아니었다. 게임상에서도 소금 사막을 깨뜨리는 과정에서 서서히 해양 환경이 변하기 시작한다.
소금 의회만이 아니다. 빛의 법전을 비롯한 모든 신앙들이 승리 조건에 가까워질수록 세상 곳곳에 이변과 징조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해당 신앙의 신수들이 심심찮게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물론이고 신체 변화나 예언들이 심심찮게 나타난다.
“에이단, 잠깐 이쪽 좀 보게.”
“예?”
아이작은 에이단의 머리를 돌려 귀 뒤쪽을 살펴보았다. 예상했던 흔적이 생겨 있었다.
아이작이 대뜸 에이단의 귀 뒤쪽 갈라진 틈에 손가락을 넣자 에이단은 기겁하며 몸서리를 쳤다.
“뭐, 무, 무슨?!”
“아가미가 생겼군.”
“예?! 아가미요? 어, 뭐야, 진짜잖아?! 아, 아니. 요즘 간지럽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아가미가 생겼다고 해서 에이단이 뭍에서 숨을 못 쉬게 되는 것은 아니고, 일종의 축복이 더해지는 것이다. 소금 의회에서 주교급 인사를 ‘부레 달린 자’라고 불렀듯이, 명천사의 선택을 받은 에이단에게 신체 변화를 동반한 ‘징조’가 내려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일종의 후천적 성체였다.
‘그럼 지금쯤 여명군 쪽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겠군.’
유리 눈깔을 봤으니 그을린 자들도 몇몇 나타났을 법했다. 다른 신앙들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소금 의회에 이런 변화가 나타난 것을 보면 다른 신앙들도 서서히 세상에 영향을 미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잠깐, 그러면 다른 사람들도…….’
***
아이작은 마을을 찾아 이동하는 동안 이사크레아 여명군 내부에서 신체 변화나 이질감을 느끼기 시작한 사람들을 조사해 보았다.
그 결과 몇몇 놀라운 사실들이 밝혀졌다. 주로 신앙심이 독실한, 그중에서도 명천사가 돌볼 정도의 능력을 가진 이들의 변형이 먼저 진행되고 있었다.
가장 먼저 발현한 사람은 엘릴의 소드마스터이자 2인자인 리안나 게오르크였다. 리안나는 자신에게 드러난 신체 변화를 대단히 부끄러워했다.
“그냥 피곤해서 그런 겁니다.”
“피곤해서 귀가 뾰족해지지는 않아요.”
리안나의 귀는 이전에 비해 다소 뾰족하고 길어진 상태였다.
지금은 멸종되어 사라진, 엘프의 선명한 상징과도 같은 부위였다. 물론 아이작이 우르반수스에서 보았던 엘릴의 귀에 비하면 짧지만, 그래도 인간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물론 외모까지 엘프처럼 변하는 것은 아니라 얼굴은 그대로였다. 하지만 엘릴군 안에서 이런 변화를 겪은 사람은 리안나만이 아니었다.
가장 크고 극적인 변화를 겪은 것은 레이나 힐드였다.
아이작이 엘릴 왕국에 처음 왔을 때 결투를 빙자해 무지막지한 완력을 동반한 상급 검술로 찍어 누를 뻔했던 여기사.
그녀는 귀가 뾰족해진 것은 물론이고 머리카락 사이로 흰 꽃과 잎사귀까지 자라고 있었다.
“그냥 비듬인 줄 알았죠. 씻은 지 한참 됐으니.”
“저는 전쟁 때문에 제 여동생이 미쳐서 꾸미기 시작한 줄 알았습니다.”
“요즘 좀 잘해 준다 싶더니 그거 때문이었어?”
힐드 남매의 반응은 담담했다.
역시 외모가 크게 변화하진 않았다. 레이나 힐드는 여전히 엘릴처럼 호리호리하다기보단 건장한 느낌의 체형이었고, 귀나 머리카락 말고는 엘프를 연상시키는 부분이 없었다.
“다른 변화는 없었습니까?”
“음, 좀 더 몸이 가볍고 유연해진 느낌이긴 하네요.”
리안나에 비해 레이나는 확실히 눈에 띄는 스펙 향상을 보였다.
원래 힘이 좋았으니, 정교해진 신체 제어 능력이 크게 도움이 된 것이다.
그 외에도 엘릴 쪽에선 신체가 변한 것으로 추측되는 사람이 아홉 명 정도 더 있었다.
다음은 투할린과 함께 온 세상의 용광로 교단 측 사람들이었다.
세상의 용광로 사제들은 원래 고립되길 좋아하는 성격 탓에 소리소문없이 변하고 있던 상태였다.
그중 가장 크게 변한 투할린은 전보다 혈관이 좀 더 뚜렷하게 보이는 주홍빛을 띠고 있었다.
어두운 곳에서 보면 은은하게 빛나 보일 정도여서 눈에 띄었다. 평범한 피가 아닌 것은 분명했지만, 남들보다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는 것 말고는 평범한 피와 차이가 없었다.
“원래 천둥 장인께서 임하시면 이렇게 되곤 했지. 그때는 더 선명할 뿐만 아니라 전신이 다 주홍빛으로 변하지만. 그런데 묘지 군주를 물리친 다음부터는 흔적이 어느 정도 남아 있더군.”
그 외에 다른 점이라면 손이 돌처럼 단단해졌다든가, 목소리가 더 커졌다든가 하는 점인데, 이건 원래부터 그랬던 부분이라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사실 같은 이유로 라이칸스로프 전사대의 사람들도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원래 늑대 가죽을 뒤집어쓰고 다니는 데다, 인간인지 짐승인지 구분하기 애매한 영역에 있었으니까.
사실 가장 의외였던 것은 이사크레아 성기사단이었다.
“변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구요?”
“음, 그렇다네.”
이사크레아 성기사단 안에는 그을린 자는커녕 유리 눈알조차 나타나지 않았다.
이사크레아 성기사단 안에 그 정도로 심각한 광신도는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다른 부대에서 최소 열 이상이 징조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을 감안하면 하나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묘한 부분이었다.
‘내 영향력이 짙은 집단이긴 하지만…… 설마 그게 영향을 미치는 건가?’
어쩌면 아발란체 성기사단 단장이었던 린데와 나눴던 대화가 그들의 신앙심에 영향을 미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기적을 발휘하는 데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
징조를 드러내기 시작한 자들이 상당한 전투력 증가를 보이는 것을 생각하면 약간 아까운 일이긴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쩐지 안심이 되는 것을 느꼈다.
저들이 빛의 법전의 교리에 매몰된 광신도들이 아니라, 아이작 자신의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물론 그렇다고 촉수가 나타나거나 하면 곤란하지만.’
***
마을은 마치 마술처럼 나타났다.
능선을 넘어가는 순간, 선두에 서 있던 병사는 갑작스레 풀리는 날씨에 당혹감을 느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우르단투 제국 내에 발을 디딘 이래 한 번도 본 적 없던 초록빛이 눈에 들어왔다.
천천히 들어선 병사들은 이내 그리운 고향의 풍경을 떠올렸다. 따뜻해진 땅에는 봄 추수에 맞춰 심은 호박이 넝쿨을 이루고, 보리싹들이 가지런히 자라고 있었다.
사람이 살고, 농경지를 꾸리고 있다는 뜻이었다. 언데드가 지배하는 죽은 자들의 나라 안에서.
이사크레아 여명군은 귀신에게 홀린 듯한 기분을 느끼며 천천히 나아갔다.
“아니, 어떻게…… 불사 교단 영토 안에 이런 곳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군.”
투할린의 말이 모든 병사들의 생각을 대변했다. 에델레드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성배기사. 혹시 이곳이 전설 속에서만 내려오던 천국과 이어진 땅이오?”
“천국과 이어진 땅?”
“인간이 천국에서 추방된 후 처음으로 지상에 발을 디딘 땅 말이오. 저 동쪽 어딘가에는 아직 그 문이 열려 있어서 천국의 훈풍이 불어온다는 이야기가…….”
“멋진 전설이지만 이곳이 그 정도는 아닙니다. 폐하.”
아이작은 어이없어하며 지적했다. 추운 곳을 헤매다가 들어와서 따뜻하게 느끼는 것이지, 실제 기온을 따지면 초봄 정도 된다.
“물론 불사 교단의 영역 안에 만들어지기 힘든 기적 같은 땅이지만, 실제 이곳은 천국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보다는…….”
아이작은 적절한 단어를 찾아 고민하다가 말했다.
“방목형 목장에 가깝지요.”
“목장?”
“인간 목장 말입니다.”
아이작이 말한 순간, 길 앞쪽에 누군가 보였다.
평화로운 분위기에 취해 있던 병사들은 뒤늦게서야 사람을 발견하고 화들짝 창칼을 꼬나쥐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언데드가 아닌 멀쩡한 인간이라는 사실에 당황했다.
한참 밭을 매던 인간 역시 당황한 표정으로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인간은 뭐라 비명 지르며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가 내뱉는 말에 로튼해머가 당황하는 표정을 했다.
“뭐지? 어느 지역 사투리인지 모르겠군. 서쪽 끝 땅 시라크사 말투도 저 정도는 아닌데.”
“어…….”
그때 신음을 흘린 것은 투할린이었다.
아이작이 말한 ‘인간 목장’의 의미를 고민하다가 비로소 섬뜩한 가능성을 깨달은 것이다. 그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통일제국 시절 말투다.”
“예?”
“300년 전 말투라고. 그때 말투에서 거의 변한 게 없군.”
다른 사람도 아니고 400살 먹은 드워프의 말이니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아니, 애초에 이 자리에서 300년 전 말투를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은 투할린 말고는 없었다.
로튼해머는 더더욱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300년 전 말투를 대체 왜 아직도…… 그리고 왜 우리를 보고 도망친 겁니까?”
“저자가 뭐라고 비명 지르면서 달아났는지 아냐?”
“뭐라고 했습니까?”
“사르카 누아의 군대가 왔다, 누아 왕이 우리를 징집하러 왔다, 라고 말하더군.”
투할린은 확인을 요청하듯 아이작을 바라보며 물었다.
“여기 사람들은 불사 교단이 만들어진 후 내내 고립되어 여기서 살아왔던 거야. 자기들끼리 먹고, 자고, 돌보고, 새끼 치면서 불사 교단에 ‘인구’를 공급해 왔던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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