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412)
412화. 죽은 자들을 위한 나라 (5)
“용케 알아보셨군요.”
불사 교단은 항상 ‘새로운 인구’에 굶주린다. 자체적으로 인구를 재생산할 수 없으니까.
그렇다고 왈라이카 인간사냥꾼들처럼 납치해 올 수도 없다. 그들은 ‘시민’을 필요로 하는 것이지 왈라이카처럼 노예나 식량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죽음이 두려워 자발적으로 개종하는 것이 가장 좋고, 일단 죽인 뒤 영혼을 속박해 노예로 부리면서 협박하는 것이 가장 하책이다. 어쨌든 영혼의 자율성이 있어야 제 능력을 발휘하지 않겠는가.
그런 면에서 사망보험은 야만이 판치는 이 세계에서 보기 드문 신사적인 방법이다.
죽음이 두려우신가요? 사망 후 가족들이나 친구들이 슬퍼할 것이 걱정되시나요? 걱정 마세요! 사망 후 삶을 보장해 드립니다! 해지는 언제든지 가능하니 일단 가입하시고 죽음에 대한 공포를 떨쳐보세요!
‘앞으로 천 년쯤 시간이 흐르면 뭐 그런 식으로 홍보를 할 수도 있겠지. 이 세상이 그만큼 갈지나 모르겠지만.’
다른 방법도 있다.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불사 교단의 시민’으로 양성하는 것이다.
불사 교단의 교리를 믿고, 불사 교단의 가치를 위해 빨리 언데드가 되고 싶어 하는 시민들을 키우는 것.
이곳이 바로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 낸 인위적인 공간이었다.
“사실 인간 목장이라고 조금 험하게 말하긴 했지만 생각하시는 것만큼 나쁜 곳은 아닙니다.”
“나쁘지 않다고? 어떻게 그런…….”
“일단 한번 둘러보고 이야기하지요. 우릴 보고 겁먹었을 테니 부드럽게 이야기해 보죠.”
투할린은 어이없다는 듯 눈살을 찡그렸지만, 아이작 말대로 대화해 보기로 했다.
***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 주민들은 이미 도망친 사람들의 경고를 들은 탓인지 목책을 걸어 잠그고 집 안에 숨어 있었다.
군대를 막기는커녕, 투할린이 나서서 노크만 좀 세게 해도 무너질 것 같은 목책이었다. 하지만 목책 뒤의 청년들은 그것이 우샤크의 삼중 성벽이라도 되는 것처럼 뒤에 꽁꽁 숨어 있었다.
투할린이 먼저 헛기침을 하며 앞으로 나섰다.
“이곳 책임자가 누구지? 대화를 하고 싶다!”
“꺼져라, 사르카 누아의 앞잡이들아!”
아이작은 이 병력을 앞에 두고도 소리칠 수 있는 배짱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하지만 투할린은 그 청년이 말한 내용에 눈살을 찌푸렸다.
“저놈들은 왜 자꾸 우리더러 사르카 누아 어쩌구 하는 거야? 불사 교단의 지원을 받고 있는 거 아닌가?”
“제가 이야기해 보지요.”
아이작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네필림의 매력이 조금이라도 강조되길 바라며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 넘겼다. 역시나 늙고 우락부락한 흉터투성이 드워프보다는 젊고 잘생긴 인간이 조금이라도 더 나은지, 목책 너머의 흉흉한 분위기가 조금이나마 누그러드는 것이 느껴졌다.
“우리는 사르카 누아와 관련 없다.”
“거짓말! 빛의 법전 표식을 가진 깃발을 가지고 있잖아! 여명군인지 뭔지 하는 자살 행진에 우리를 끌어들이려고 온 거지!”
투할린은 그 말을 듣고 대충 상황을 짐작했다.
사르카 누아 역시 여명군을 성공시키기 위해 수많은 인간들을 징집하고 끌어들였다. 당시 아직 불사 교단에 잠식되지 않았던, 성지 주변에 있던 마을들은 거의 태반이 끌려갔을 것이다.
이 마을 주민들의 선조는 아마도 그런 징집을 피해 산골로 숨어든 자들이었으리라. 시간이 지나 사르카 누아는 여명군은 커녕 불사 교단의 명천사가 되었지만, 그들에게는 여전히 사르카 누아에 대한 공포만이 남은 모양이다.
아이작도 그 사실을 짐작한 듯 말했다.
“이 마을에 계속 가둬 두려고 일부러 계속 진실을 알려 주지 않았나 보군요.”
“아니, 그래도 그게 몇백 년 전 일인데 사르카 누아가 살아 있다고 믿나? 인간은 그만큼 오래 살지도 못할 텐데.”
“사르카 누아는 불사를 추구하지 않았습니까? 그게 성공했다고 생각했나 보죠.”
언데드 병력이 지키고 있을 필요도 없었다. 그 공포야말로 이 마을 주민들을 가둬 두는 울타리였다.
아이작은 예전에 인터넷에서 본 괴담을 떠올렸다.
학자들이 중국 오지에 고립된 마을을 우연히 찾아갔는데, 그 마을 주민들이 외지인을 매우 두려워하면서 ‘진시황은 아직 살아있습니까?’라고 계속 물었다는 이야기였다.
그 괴담 속에서 그들은 진시황이 불로초를 먹고 여전히 살아 있다고 믿고 있었다.
“썩 물러가라! 그렇지 않으면 우리를 보호해 주시는 자애로운 불사 황제께서 너희를 썩 벌하러 오실 것이다!”
“우리가 바로 불사 황제 폐하의 전령이다.”
투할린과 에델레드가 경악하는 표정으로 아이작을 바라보았다. 아이작은 태연하게 거짓말을 이어 나갔다.
네필림의 진정한 매력은 거짓과 기만, 선동 분야에서 제힘을 발휘하는 능력이다.
“우리는 사르카 누아의 군대를 토벌하고 성지 루아로 복귀하는 중이다. 증거를 보여 주지.”
아이작은 헤사벨에게 손짓을 했다. 헤사벨은 눈치 빠르게 수레에서 뭔가를 한 보따리 끌고 와 바닥에 쏟아버렸다.
보따리 안에서 낡은 병장기와 투구, 갑옷 조각 따위가 쏟아져 내렸다.
묘지 군주를 퇴치한 뒤, 그 잔해 속에서 발견한 무구들이었다. 그럴듯한 성물이기를 바라고 수집했지만 대부분이 낡고 오래된 데다, 너무 커서 쓸 수 없었다.
그나마 쓸 만한 것은 투구 하나뿐이었다.
[수복자 묘지 군주의 투구(S+)] [묘지 군주, 사르카 누아가 생전부터 즐겨 착용하던 투구. 기적에 대한 내성이 증가하고 상처 입어도 피 흘리지 않으며, 통증도 느끼지 않는다. 단, 이 투구를 착용하고 사람을 죽이면 피해자들의 망령에 시달린다.]준수한 성능이지만 아이작이 굳이 쓸만한 것은 아니었다.
뭣보다 사이즈가 너무 크고 멋이 없었다. 나름 고인물인 아이작에게 성능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폼이 사는가’였다.
아이작은 뿔 난 투구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사르카 누아의 투구다. 들어 본 적 있겠지?”
사르카 누아에 대한 공포가 이렇게 선명하다면, 실제로 본 적은 없더라도 그 외형에 대한 묘사도 반드시 내려오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묘지 군주 본인을 봤을지도 모르고. 그리고 이 투구는 묘지 군주가 살아 있던 시절부터 쓰던 투구다.
과연 들어 본 것이 있는지 목책 너머 청년들이 수군대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투구 하나로 의심이 거둬질 리가 없었다.
애초에 아이작 일행에게는 무시할 수 없는, 너무 큰 이질감이 존재했다.
“그, 불사 황제 폐하의 명령을 받드는 군대라면 왜…… 불사의 육신 대신 무거운 육신을 가지고 다니십니까? 전쟁을 수행하기에는 너무 비합리적이지 않나요?”
너무 당연한 지적이었기에 투할린은 아이작의 대답을 기대했다.
아이작은 태연하게 말했다.
“나는 개종자다. 불사 황제 폐하께 충성을 보여 드리기 위해 사르카 누아와 전투를 치렀다. 전장에서 죽게 된다면 그대로 육신을 헌납하여 불사의 축복을 얻고자 했지. 하지만 나는 사르카 누아와 싸워 승리했고, 여전히 살아 있을 뿐이다.”
뻔뻔한 말에 청년은 더 뭐라 하려고 했지만, 아이작은 밀어붙여야 할 때를 놓치지 않았다.
“이 이상 나의 충성심을 의심한다면 불사 황제에 대한 반역일 뿐이다! 사르카 누아를 벤 칼이 이깟 울타리도 부수지 못할 것 같은가?”
아이작은 사르카 누아의 투구를 목책을 향해 집어 던졌다.
쾅. 큰 소리가 나자 목책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결국 청년은 뭘 어쩌든 이 군대를 막을 수단 따위는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국 목책 너머에서 몇 번 큰소리가 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천천히 문이 열렸다.
아이작은 그 모습을 보고 투할린과 에델레드를 향해 씩 웃었다.
“가시지요.”
***
당연하지만 아이작의 ‘거짓말’로 실망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이작은 애초부터 빛의 법전 성배기사이기 때문에 딱히 고립주의적인 세상의 용광로 신도가 트집 잡을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빛의 법전 성기사들은 ‘이교도를 박멸하는데 신의 따위는 사치일 뿐’이라는 실용주의를 채택하고 있었다.
그런 점은 이사크레아 성기사단도 다르지 않았다.
그나마 엘릴 신도들은 조금 떨떠름한 모습이었는데, 에델레드가 말 몇 마디로 찍어 눌렀다.
“그럼 우리가 이 가난하고 모자란 자들을 상대로 칼이라도 휘둘렀어야 한다는 건가?”
헤사벨은 말할 것도 없이 기뻐했다.
아이작의 기만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건지고, 병사들은 피비린내 없이 편한 숙소에 자리 잡아 쉴 수 있었다. 병사들 전부가 지붕 있는 집에서 자기에는 모자랐지만, 습격당할 걱정 없이 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장점이었다. 사투리가 워낙 심해서 병사들이 쓸데없는 말을 섞다가 진실이 들통날 일도 없었다.
결과가 좋으면 곧 모두 좋은 법이다. 사람들은 곧 찜찜했던 기분은 잊어버렸다.
투할린을 제외하고는.
“마을에 서른 이상 먹은 어른이 없더군.”
병사들의 안전을 확인하고, 마을의 상태와 주민들 몇몇을 붙잡아 이야기를 들어 본 뒤, 투할린은 이곳에 위협이 될 만한 것이 없다고 판단했다.
“사실 노인들 말고도 없는 것들이 많아. 위협이 될 만한 건 싹 다 제거한 느낌이야. 저 얄팍한 목책 말고 몸을 지킬 수단은 나무를 깎아 만든 창이 전부더군. 저항 수단을 거세당했다고 해야 하나?”
“불사 교단에서 관리하는 마을이니까요.”
투할린은 끙, 하는 신음을 흘렸다.
“그래, 그거. 제대로 된 어른이 없는 이유는…… 뼈가 삭기 전에 불사 교단으로 끌려가기 때문이지?”
아이작은 어깨를 으쓱였다.
“생각하시는 그대로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고, 때가 되면 추수되는 것이지요.”
성인이 되자마자 끌고 가지 않는 이유는 자식을 ‘재생산’할 필요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마을에는 꽤 어린 부부가 많이 보였다.
“사람을 동물 취급하다니!”
“사람은 동물이 맞습니다.”
아이작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여기 주민들에게 ‘언제 전쟁터에 끌려갈지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 영주에게 착취당하고 노역하는 삶’과 ‘평생 외부의 어떤 위협도 없이 안전하게 살다가 늙으면 영생불사하는 언데드가 되는 것’중 어느 쪽을 선택하고 싶냐고 물으면…… 별로 고민하지 않을 것 같군요.”
“자네 사망보험이라도 들었나?”
“사실을 지적한 것뿐입니다.”
아이작은 담담히 대답했다.
“하지만 말씀하신 대로 이들은 사육당하는 가축이나 다름없지요. 불사 교단은 선택권이나 자유, 존엄성 따위는 전혀 고민하지 않을 테니.”
솔직히 불사 교단이 이들을 그냥 방치해 놓은 것도 ‘행복한 가축이 건강한 가축을 낳는다’는 식의 생각 이상은 없을 것이다. 언데드가 자주 들락거리면 땅이 우르반수스에 잠식될 테니 교리 전도 이상의 영향력을 펼칠 수도 없을 것이고.
“하지만 투할린 님. 혹시 언제부터 세상의 용광로를 섬기기 시작하셨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그야 태어날 때부터…….”
투할린은 그렇게 말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 역시도 무언가를 느낀 것이다.
“이 세상에서 어떤 신앙이든 가장 많은 신자를 모집하는 수단은 ‘모태신앙’입니다. 가족과 친지, 주변 친구들이 전부 그 신앙을 믿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삶의 가치관이 그 신앙의 기준에 맞춰지게 되죠.”
세상의 용광로 한복판에서 빛의 법전을 믿겠다고 하면 괴짜 내지는 이단 취급을 당할 것이다. 같은 백제국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신과 천사들은 국가를 지원하고 계급과 체제, 군대를 후원한다. 단지 교리 전파를 위해서라면 그럴 이유가 없다.
“극단적인 시각에서 보자면, 국가와 교단 역시 신앙을 위한 ‘인간 목장’ 아니겠습니까?”
투할린은 이 과격한 발언에 할 말을 잃은 듯 입을 뻐끔거렸다. 이내 그는 화를 내듯 쏘아붙였다.
“다르지! 우리는 개종할 여지라도 있지 않나? 하지만 이들은 충분히 성장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도축되기를 기다리는 가축에 불과해. 이들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 따윈 없지 않나?”
“이 세계에서 신앙을 고를 자유라는 게 얼마나 사치스러운 일인지 아시잖습니까.”
아이작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무리를 벗어나는 양은 도축됩니다. 혹은 늑대에게 잡아먹히거나요.”
투할린은 아이작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래서 자네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가? 모든 신들이 양치는 목자들이라고? 우리는 그들의 가축이고? 우리에게 밥을 주고 늑대들로부터 지켜 주니까 그들을 신이라고 믿고 있을 뿐이라는 건가?”
투할린은 말하다 벌컥 화를 냈다.
“세상의 용광로는 세상의 향상성을 믿는다! 내일은 더 나아질 것이라고, 더 좋아질 것이라고! 그래서 지금의 빛의 법전을 부정하고 더 밝고 선명한 빛의 법전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 거야!”
더 좋은 태양, 더 따뜻한 태양이라는 게 존재할까? 그런 게 있다고 믿는다면 그들은 분명 세상의 용광로를 믿는 신도들일 것이다.
투할린은 문밖을 가리키며 외쳤다.
“아이작, 사람은 숨을 쉰다고 살아 있는 게 아니야. 이들은 살아 있지만 죽어있는 자들이다. 더 나아지려는 희망이나 미래 없이 300년 전 과거에 멈춘 자들이야. 이들이 꿈꾸는 미래라곤 빨리 낳고 빨리 커서 빨리 죽는 것뿐이지. 나는 절대로 ‘살아 있다’고 인정할 수가 없다.”
그럴 것이다. 더 좋아지기 위해 부딪치고 달궈지고 깨지는 것. 그게 화로 장인인 투할린의 역할이자 사명감일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발아래 떨어지는 차가운 쇠 부스러기까지 보지는 못할 테지만, 그의 믿음까지 부정할 수는 없었다.
아이작이 굳이 이런 문제로 투할린과 말다툼을 할 이유는 없다. 아이작 역시 이런 ‘농장’이 옳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그는 보다 근본적인 부분을 더듬고 있었다. 그가 가진 날카로운 모서리로 세상의 핵을 가리키고 있었다.
“당신의 말이 옳습니다. 투할린.”
아이작은 담담히 말했다.
“하지만 그렇다면 왜 당신의 망치질은 이 마을의 나약한 인간들이 아니라, 신들을 향하지 않습니까? 왜 이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세상을 방치하느냐고 다그치지 않습니까?”
투할린은 말문이 막혔다.
아이작의 말은 사실상 배교를 하라고, 이단 행위를 저지르라고 다그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바로 그 점에서 아이작은 투할린이 아무리 선의를 품고 있다 해도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규율을 깰 수 없는 자는 규율을 고쳐 쓸 수 없다.
하지만 아이작에게는 규율이 없었다.
“당신은 세상을 때릴 망치가 될 각오가 있습니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