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413)
413화. 죽은 자들을 위한 나라 (6)
세상을 때릴 망치.
투할린은 아이작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알아차렸다.
만약 세상의 용광로의 교리가 만약 어긋난 길을 가고 있다고 느낀다면, 그가 직접 바로 잡을 수 있겠느냐고 묻는 것이다.
그렇다면 세상의 용광로가 추구하는 선이란 무엇인가.
무수한 교리와 토론이 있지만 요약하자면 ‘끝없는 개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은 선, 더 나은 정의를 위해 정체되지 않고 변화하는 것.
그 과정에서 작고 나약한 것들이 도태되더라도 어쩔 수 없다.
아니, 오히려 도태되는 쪽이 나쁘다.
이 세상에는 ‘더 좋은 것’이 언제나 존재하므로, ‘더 좋은 것’을 추구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죄악이다. 그리하여 궁극적인 ‘좋은 것’이 있는지는 모른다. 신도 부족하다고 말하는 자들이니 그들이 추구하는 선에는 한계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작은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사람은 아등바등 필사적으로 살기 위해, 더 나은 미래를 추구하기 위해 태어나는 게 아니다.
그냥 태어난다.
천사의 지위에 도달하기 위해 치열하게 투쟁하는 영웅은 대단하지만, 내일도 오늘과 똑같은 하루이기를 기원하는 평범한 농부가 벌을 받을 필요는 없다.
신은 인간의 의지를 대변한다.
신이 인간에게 가혹하다는 것은, 인간이 인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답이기도 할 것이다.
아이작은 투할린도 그 점에 대해 생각해 주기를 바랐다.
그와는 오래 가길 원했으니까.
그리고 언젠가는 투할린이 세상의 용광로를 ‘더 좋게’ 바꿔 줄지도 모르니까.
투할린은 침묵하며 아이작을 바라보았다.
원래 집단의 부조리는 집단 안에 소속된 사람이 가장 잘 아는 법이다. 그래서 가장 뼈아픈 배교는 가장 신앙심 깊은 자가 저지른다는 말이 도는 것이리라.
“자네가 먼저 내 머리를 때리는군.”
투할린은 툭 내뱉듯 말했다. 퉁명스러운 어조였지만 기분 나쁜 어감은 아니었다.
“조금 더 생각해봐야겠네. 일단 이 마을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해봐야겠군.”
그는 지금까지 기나긴 세월을 신앙심 깊은 신자로 지내왔다.
아이작에게 몇 마디 들었다고 해서 갑자기 태도가 바뀌면 오히려 신뢰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스반바르 군도에서 있던 지난 몇백 년보다 지난 몇 개월의 원정이 투할린에게 더 큰 충격을 준 것은 사실이다.
아무리 단단한 금속이라도 달구고 두들기면 바뀐다.
투할린은 좋은 망치이자, 동시에 좋은 쇠였다.
투할린은 아이작의 방을 나가다 말고 문득 멈춰서서 버럭 화내듯 말했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나한테 훈수 뒀다고 생각하진 말게! 세상의 용광로는 언제나 더 좋은 방향으로 개선하는 것을 교리로 두고 있어! 자네가 말하지 않았어도 나는 혼자 깨달았을걸!”
“물론입니다.”
아이작은 웃으며 대답했다.
***
모두가 잠든 시각.
아이작은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밖으로 나섰다. 일찌감치 지붕 밖에서 주변을 감시하고 있던 헤사벨이 소리 없이 아이작 곁에 섰다.
그녀는 긴장한 듯 속삭였다.
“먼저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이작은 고개를 끄덕이고 약속된 장소로 움직였다.
세상으로부터 격리된 마을은 기이할 정도로 조용했다.
온 세상을 뒤집어놓는 전쟁과 천국의 징조들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처럼. 이곳 주민들은 ‘사르카 누아’라는 옷장 속 괴물 같은 존재만 두려워할 뿐, 실제로 세상을 괴롭히는 온갖 위협으로부터 동떨어져 있었다.
아이작은 성지 루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난장판을 알고 있다. 그리고 여명군을 비롯해 온갖 기기묘묘한 세력들이 모여들고 있다는 사실도.
이제 곧 이사크레아 여명군도 그곳에 도착하게 될 것이다.
그전까지 아이작은 병사들이 조금이라도 이 평화 속에서 더 쉬길 바랄 뿐이었다. 언젠가는 그들이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고향을 떠날 때와 같은 모습으로 고향에 돌아가길 바라니까.
“왔군.”
어둠 속에서 기다리고 있던 것은 기묘한 색채로 이루어진 망토에 가면을 쓴 남자였다.
저 너머의 색채로 이루어진 망토는 그, 아니, 아이작의 몸을 효과적으로 숨기고 있었다.
아이작은 가면을 벗었다.
그리고 둘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헤어지기 전보다 훨씬 더 강해졌다는 것을 서로 보자마자 알아차렸다.
둘은 동시에 같은 생각을 했다.
아주 짧은 의심, 그리고 어이없는 헛웃음, 싱거운 상상.
[이름 없는 혼돈이 당신을 주시합니다.]두 아이작은 합의나 서로 떠보는 것 없이 바로 서로의 손을 붙고 부름을 발동시켰다. 이내 둘은 한순간 헝클어지는 듯 형태가 뒤틀리다가, 이내 단숨에 원래 형태로 돌아왔다.
서로가 서로였던 기억을 완벽하게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누가 진짜인지에 대한 혼란이나 당혹감은 없었다.
애초에 분열한 아이작이 서로를 생각하는 감각은 게임 캐릭터를 대하는 것과 비슷했다. 게임 캐릭터에게 자아를 빼앗기거나 분열할까 봐 갈등하는 일 따위는 단지 싱거운 상상에 불과했다.
“으음…….”
“아이작 님?”
상황을 지켜보던 헤사벨이 조심스럽게 바라보았다.
아이작은 그녀에게 잠시 기다려 달라는 손짓을 보낸 뒤 그간 있었던 성취와 경험을 정리했다.
외경에서 무수한 괴물들을 포식하고 권속으로 들였던 경험, 성지 루아에서 본 광경과 대혼돈, 이틀에 걸친 전투와 묘지 군주와의 혈전, 포식하여 흡수한 능력…….
[‘묘지 군주(EX─)’를 포식하였습니다.] [‘죽은 신의 내장’ 특전으로 섭취 효율이 상승합니다.] [‘망자의 외골격’ 특전을 습득하였습니다.] [방어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지구력이 대폭 상승합니다.]‘흠, 이건…….’
당시의 기억이 떠오른 아이작은 팔을 쭉 펼치고 묘지 군주를 포식하여 얻은 능력을 확인해 보았다. 순간, 그의 팔 전체를 가르고 검붉은 뼈들이 튀어나와 팔을 두껍게 뒤덮었다. 체액이 뚝뚝 떨어졌지만 아이작의 피는 아니었다.
[망자의 외골격(EX─)] [영혼에 껍질이 있다면 그것은 살과 뼈라고 부르겠지요. 사람은 연약한 영혼을 보호하기 위해 육신을 몸에 두릅니다. 이 힘은 가장 단단한 부분을 겉으로 드러내고, 대신 영혼을 보호합니다. 단, 사용하는 동안 피를 많이 흘리게 됩니다.]‘이건…… 촉수의 뼈인가?’
그 흐물흐물한 촉수에 뼈가 있다는 것을 상상하기 힘들었지만, 이빨이 있는 걸 보면 턱 정도는 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촉수가 아니라면 상상할 수 없는 기괴하고 험악한 뼈들이었다.
아이작은 두꺼운 뼈에 뒤덮인 팔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았다. 약간 무겁고 두터워지긴 했지만 움직이기 불편하진 않았다. 뼈 자체가 상당히 유연하고 질긴 데다, 애초에 관절 구조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 같았다. 마치 커다란 장갑을 낀 느낌이었다.
‘전신에 두르면 로봇을 탄 느낌이겠군.’
아이작은 전신에서 피를 철철 흘리는 기괴한 뼈투성이 로봇을 상상해 보았다. 묘지 군주보다 더 섬뜩한 모습이 상상됐다. 그 모습 자체만으로도 적들에게 공포를 선사할 수 있겠지만, 아이작은 이 능력의 핵심이 ‘영혼을 보호한다’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사실에 집중했다.
‘피를 흘리는 것은 작은 리스크가 아니야. 대신 영혼을 보호한다는 것은…….’
신과 천사들이 영혼을 좌지우지 못 하게 막을 수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아이작은 성지 루아에서의 싸움에서 이 능력이 중요한 변수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미 그는 갑옷을 몸 안에서 언제든 꺼낼 수 있었지만, 이 능력은 영과 육, 모두를 보호할 수 있으니까.
아이작은 뼈들을 다시 몸 안에 수납하고 돌아섰다.
“앗, 아이작 님. 정리가 끝나셨나요?”
“그래. 이쪽은 별일 없었나? 상황을 공유받긴 했지만…….”
아이작은 별 이질감을 느끼지 못하긴 했지만 헤사벨이 느끼는 것은 또 다를지도 모른다.
헤사벨은 히죽 웃었다.
“아, 별일이야 없었죠. 생각하고 판단하시는 것까지 똑같아서 놀랐어요. 아이작 님은 누가 진짜고 가짜인지 생각하진 말라고 하셨지만…… 그런 게 있잖아요.”
헤사벨은 양손 검지를 좌우로 흔들면서 말했다.
“약간 느낌적인 느낌으로? 진짜는 아닌 것 같다? 라는 느낌? 그런 게 있었어요. 그래서 약간 평범하게 아이작 님처럼 대하기가 어렵더라구요.”
“기분 탓이 아니라?”
“글쎄요. 이게 이성적으로 구분되는 게 아니라 심장이 끌린다고 해야 하나. 제 생각이지만 아마 헤카틀리나 지힐렛에게 물어봐도 같은 대답을 할 것 같아요.”
아이작은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작게 보자면 주인과 권속의 관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권속은 주인이 위치한 영혼의 위치를 본능적으로 알아차리는 것이다. 그리고 크게 보자면…… 신앙적인 무언가와 관계있을 것 같았다.
이름 없는 혼돈이 둘일 수는 없으니까.
아이작은 문득 투할린과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당신을 세상을 때릴 망치가 될 각오가 있습니까?’
그 질문은 사실 아이작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했다.
한때 너도 세상의 날카로운 모서리가 되었으니 조심하라고 했던 아이작은, 이제 세상을 고쳐 쓰게 될지도 모르는 현장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아이작은 자신이 이름 높은 천사들에 비해 약하고 더 환하지는 않을지 몰라도,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자각했다.
이제는 살아남기 위해 싸우는 게 아니라, 살아가기 위한 세상을 위해 싸워야 하는 것이다.
이제 아이작은 자신의 날카로운 모서리로 신들에게 무엇을 보여 주고 무엇을 증명해야 할지, 그 답을 정해야만 했다.
이름 없는 혼돈은 그 무엇도 될 수 있으므로.
***
며칠 후, 푹 쉰 이사크레아 여명군은 마을을 떠났다.
주민들은 말도 잘 안 통하는 병사들을 환대하며 떠나보냈다. 병사 중 일부는 마을에 정이 든 것 같았지만, 남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 마을에 머문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리가 없으니까.
“오히려 이 사람들을 위한다면 원정에서 승리해야 할 겁니다.”
아이작의 말에 투할린이 의아한 듯 물었다.
“이들은 어차피 불사 교단이 절대선이라고 배우면서 살았을 텐데?”
“적어도 선택의 여지는 열리겠지요.”
하지만 평범하게 환송하는 주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사크레아 여명군이 떠나기 시작하자 황급히 나무창을 꼬나쥔 청년 하나가 뛰쳐나와 아이작에게 따라붙었다.
“저도 데려가 주세요!”
워낙 단순한 말인 데다 행동에 선명히 보였기에 병사들도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있었다.
로튼해머가 난감한 표정으로 청년을 떼어놓으려 했다. 그들은 애당초 불사 교단이 아니거니와 아직 성인도 안된 앳된 청년을 전쟁터에 끌고 갈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청년은 쉽게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 마을에서 나가고 싶어요! 데려가 주세요!”
불사 교단에 대한 교리나 충성심으로 군 복무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마을 밖으로 나가고 싶은 모양이었다.
투할린은 아이작이 어떻게 말하려나 싶어서 그를 바라보았다.
“여기 그냥 있어.”
청년은 실망한 표정을 했지만 아이작은 이어 말했다.
“네가 사는 알은 어차피 곧 깨진다. 그때까지 평화를 즐겨.”
말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이내 이사크레아 여명군도 그 뒤를 따라 움직였다.
“알이 한번 깨지면 그 누구도 다시 돌아갈 수는 없을 테니.”
신도, 천사도, 괴물도, 인간들도.
이제 돌아올 수 없는 임계점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