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418)
418화. 성지 루아 (5)
포환은 펠트런을 낙마시키며 날려보냈다. 펠트런은 거의 수십 미터를 나뒹굴고서야 멈춰 설 수 있었다. 그 모습에 기사들이 경악하며 다급히 다가왔다.
“단장님! 기사단장님!”
기사들은 펠트런이 이미 죽었다고 생각했지만, 그가 벌떡 일어나는 모습을 보고 경악했다. 심지어 펠트런은 그 자리에서 날아간 어깻죽지에 찢어진 망토를 칭칭 감아 지혈하는 모습까지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인 듯, 휘청거리며 무너지려는 그를 다른 기사들이 가까스로 지지했다.
“오크놈들! 우샤크를 약탈하게 내버려 두고 왔는데 언제 이렇게 따라붙었지?”
“기, 기사단장님! 사방이 오크입니다! 퇴로가 완전히 막혀있습니다.”
‘시끄러워, 닥쳐, 제발 좀 조용히 해.’
기사들은 펠트런의 지시를 기다리며 쉴 새 없이 보고를 올렸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붉은 성배의 축복만 아니었다면 쇼크로 죽고도 남을 상처였다. 통증보다는 피가 한꺼번에 많이 빠져나가면서 온 저체온이 더 괴로웠다.
하지만 시간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포성을 들은 오크들이 전투가 시작된 줄 알고 너나 할 것 없이 뛰어들면서 산발적으로 전투가 일어났다.
여명군은 갑작스러운 공격에 우왕좌왕했지만, 그것은 칸의 군대 쪽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누구야! 누가 마음대로 대포를 쐈어!”
“적이다! 적이 나타났다! 반격해!”
뒤늦게 포성을 들은 칸의 군대에서도 소란이 일어났다. 적을 봤다고 다짜고짜 대포를 갈긴 백부장은 정강이를 얻어맞을지도 모르지만, 이제 그게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미 산발적으로 시작된 소규모 전투는 대규모 접전으로 번져가고 있었다.
“대체 어떤 놈이!”
아틀란은 떨어진 곳에서 분노하여 소리쳤다. 그 역시 여명군과 불사 교단이 서로 치고받다가 어느 한쪽으로 기울었다 싶으면 쳐들어갈 생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펠트런의 회군으로 인해 충돌이 일어나면서 그 모든 계획은 어그러졌다.
아틀란은 여명군의 보병 병력 1/3가량이 빠져나온 모습에 경악했다.
“정찰병들은 뭐 하고 있었나! 저 규모의 병력이 움직이는데 놓쳤다고?!”
“가, 감시하고 있었습니다만 도무지 예상할 수 없는 방향에서 움직여서…….”
정찰병을 탓할 일은 아니었다. 펠트런은 가급적 천사들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평범한 후퇴로가 아닌 협곡 쪽으로 병력을 움직였고, 그곳은 하필 정찰병의 시야로부터 벗어난 곳이기도 했다.
펠트런의 회군이 너무나 갑작스럽게, 그리고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일어나 놓친 것이다.
아틀란은 저 큰 병력이 이유 없이 움직일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빛의 법전 명천사들이 자신들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드디어 배제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확신했다.
아틀란은 사납게 으르렁거리면서 황천을 집어 들었다.
“우릴 저지하려고 했으면 우샤크에서 저지했어야지! 이제 와서 양면 전선을 펼치고도 무사할 것 같은가? 저놈들의 두개골을 땅속 깊숙이 박아줘라!”
아틀란의 명령이 순식간에 전파되며 전군으로 퍼져나갔다.
이미 전투가 시작된 지는 오래였지만, 아틀란의 명령이 떨어지고서야 칸의 군대는 비로소 그 거대한 몸집을 일으켜 세웠다.
“우오오오오!”
“젠장, 여명군! 저 야만인들을 죽여라! 여길 돌파해야 살아 돌아갈 수 있다!”
오크들이 순식간에 밀어닥치자 펠트런의 지시를 기다리던 기사들도 어쩔 수 없이 반격을 지시했다. 후퇴한다는 말만 듣고 뒤로 빠지던 병사들은 새롭게 나타난 오크 무리에 맞서 간신히 창칼을 빼 들었다.
콰두두두두!
칸의 군대와 여명군, 어느 쪽도 전투에 대비한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진형은 금세 엉망진창이 되었다. 오크 기마병은 종횡무진 병사들을 짓밟고 다니다가 낫에 목이 걸려 낙마했고, 제국 기사는 소규모 병사들을 이끌고 진형을 돌파하려다가 대포에 산산조각 났다.
생김새 외에는 누가 적이고 아군인지도 알 수 없는 아비규환이 펼쳐졌다.
‘조졌군.’
펠트런은 자신이 끌고 나온 여명군이 벌써 패배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제국 기사들을 제외하면 개개인의 기량은 말을 탄 오크들이 더 우월하다. 이런 상황을 타파할 수 있는 사제들은 이미 자신의 손으로 죽였다. 반면 칸의 군대는 장군 무당들과 조상신의 가호를 받고 있다.
“펠트런 기사단장님! 피하셔야 합니다! 손실이 너무 큽니다!”
‘어디로? 우리가 죽인 그 사제들의 시체 사이로?’
펠트런은 비꼬듯 속으로 중얼거렸다. 여명군을 패배시킨다는 계획은 성공했는데, 같은 동맹의 손에 어처구니없이 병력을 잃게 되다니.
이 아이러니에 웃음마저 나왔다.
그러나 그 웃음기가 가시기도 전에, 하늘에서 맹렬한 섬광이 터져 나왔다.
쿠쿠쿠쿵! 번뜩이는 섬광이 피아를 가리지 않고 단숨에 가르고 지나갔다. 펠트런은 자신을 부축하고 있던 기사의 머리가 힘없이 바닥에 나뒹구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자신도 허리를 숙이지 않았다면 잘려 나갔을 위치였다.
하늘에서 오월의 검이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불타는 처녀와 함께 성지 루아를 감시해야 할 오월의 검이 그들이 있는 곳으로 온 것이다.
‘왜?’
펠트런은 그녀가 왜 자신을 돕나 생각했지만, 오월의 검은 배신자를 돕거나 처단하려고 내려온 것은 아니었다.
단지 이 전장에서 여명군의 숫자가 줄어들면 곤란하기 때문이었다.
“오월의 검!”
전장 한쪽에서 우렁찬 고함이 터져 나왔다. 터질듯한 근육과 말과 합쳐진 거대한 몸을 가진 오크, 아틀란이 황천을 들고 하늘을 겨냥하고 있었다.
“제법 반짝거리는 재주가 있군! 네 놈의 몸값은 얼마냐?”
드드드드득, 드득. 팽팽하게 당겨진 황천의 활시위가 비명을 질렀다. 말 허벅지만큼 부풀어 오른 아틀란의 오른팔이 마침내 활시위를 놓은 순간, 일대가 정적에 빠졌다.
황천을 떠난 화살이 오월의 검의 날개 죽지 일부를 크게 갈라놓고 하늘을 꿰뚫었다. 마치 황천의 화살이 일대의 공기와 소리마저 다 집어삼켰다는 듯이, 뒤늦게 엄청난 후폭풍과 함께 소음이 터져 나왔다.
아틀란 주변에 있던 오크와 인간들은 고막이 나간 듯 휘청거리다가 픽픽 쓰러져 나갔다. 오월의 검도, 아틀란도, 상대가 만만찮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이내 둘은 맹렬한 싸움에 돌입했다.
하지만 펠트런은 그 싸움에 관심이 없었다.
‘불사 황제는?’
불타는 처녀 혼자서 불사 황제를 상대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상황 파악을 위해 뒤를 돌아본 순간, 펠트런은 리히트하임에서의 트라우마가 다시 도지는 것을 느꼈다.
***
“이게…… 대체 무슨 난장판인가?”
투할린은 성지 루아에 도착하자마자 신음하듯 중얼거렸다. 아이작 역시도 비슷한 감상이었기에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했다.
성지 루아의 돔 위로 불사 황제가 그 기운을 일으켜 세우고 있고, 여명군과 천사들이 성지를 향해 들이닥친다. 그 반대편에서는 외경을 뚫고 나온 괴물들이 성지 루아의 성벽을 갉아먹고 있다. 그런데 어째선지 여명군 병력 중 일부가 후방으로 빠지면서, 올칸 규율의 군대와 충돌하고 있었다.
어디가 전선이고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가늠도 되질 않았다.
‘뭐지? 대체 왜 저렇게 비효율적이고 정신 나간…… 전장을 형성하고 있는 거지? 다들 성지 루아를 눈앞에 두고 미쳤나?’
여명군 본대가 순식간에 수도 우샤크를 돌파하고 성지 루아를 향해 진격하고 있다는 소식을 시에로로부터 들은 것이 불과 이틀 전이었다. 설마 그 난공불락의 수도를 하루아침에 정복할 줄 몰랐던 아이작은 황급히 성지 루아로 향해야만 했다.
애당초 여명군 본대가 성지 루아를 점령하기 전에 자신이 점령한다는 것이 그의 계획이었다. 여명군 본대가 무슨 수를 써도 그 육지의 저항을 전부 뚫고, 바다로 최단 루트를 돌파한 자신보다 빠를 수는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저쪽도 만만치는 않군.’
그들이 어떻게 저렇게 빨리 달려왔는지는 직접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수도 우샤크가 그렇게 빨리 공략되었다는 사실은 이해할 수 없었다.
‘설마 내가 성지 루아에 저지른 일 때문인가?’
성지 루아에 이름 없는 혼돈의 괴물들이 들이닥치면서 불사 황제가 수도를 방어할 수비 병력을 불러들이고, 여명군 본대는 빈집 털이를 했다고? 기가 찬 일이지만 가능성은 있었다.
불사 교단은 애초에 묘지 군주를 자신 쪽에 돌렸을 때부터 이런 상황을 예상했어야 했다.
어쨌든 상황은 벌어졌고, 이제는 저 난장판에 아이작도 뛰어들어야 했다. 하지만 전장의 광기에 빠져든 저들과 달리 맨정신인 에델레드와 투할린은 껄끄러운 표정이었다.
“……대충 정리된 다음 들이치는 것도 방법이지 않나?”
에델레드조차도 투할린의 말을 비겁하다고 하지는 않았다.
저런 혼잡한 전장이라면 전선을 형성하기도 쉽지 않았다. 대충 오크, 언데드, 괴물이면 적이기에 구분은 쉽겠지만, 피해가 막대할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아이작은 어쩐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천사들이 괜히 미친 짓을 벌이고 있을까? 아이작은 그들이 무언가에 쫓기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것’이 오기 전에 성지 루아를 점령해야 한다고. 서둘러야 한다고.
‘그게 누군데?’
[이름 없는 혼돈이 당신을 주시합니다.]아이작은 고개를 들었다.
‘설마 나?’
천사들은 아이작이 오기 전에 이 전쟁을 마무리 지으려 하고 있었다.
여기까지 아이작이 올 수 있게 지원해놓고 이제 와서 경계하는 것을 이해할 순 없었지만, 어쩌면 명천사 둘을 제거하는 것으로 아이작의 쓸모가 다 했다는 뜻일 수도 있었다.
‘그 말은 즉…… 나도 서둘러 성지 루아를 점령해야 한다는 뜻이군.’
‘적’들이 서두르고 있다면, 당연히 자신도 서둘러야 한다.
아이작은 홀린 듯 카훌린을 뽑아 들었다. 투할린은 당황하여 아이작을 한 번 더 불렀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성배기사!”
그를 멈춰 세운 것은 갑작스레 정면에서 나타난 한 여인, 레오노라였다. 그녀와 함께했던 상단의 사람들이 곁을 지키고 있었다.
***
아이작은 가까스로 말을 멈춰 세우고 그녀를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말에 받혀도 상관없을 만큼 튼튼한 모양입니다?”
“멀리서부터 소리 지르고 팔을 휘둘렀는데도 못 보고 달려온 건 그쪽인데요? 그러다 제가 말에 치이면 당신 잘못이지 제 잘못인가요?”
아이작은 책임 소재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일단 말에서 내렸다.
왜 그렇게 다짜고짜 달려갔는지 알 수 없었다. 마치 성지 루아가 자신을 끌어들이고 있는 듯한 초조함이 들었다.
“무슨 일입니까? 수도 우샤크로 간다더니 용건은 잘 해결됐습니까?”
“물론이죠.”
레오노라는 그렇게 말하면서 슬쩍 아수라장이나 다름없는 성지 루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설마 저기에 뛰어들 생각은 아니시겠죠?”
“성지 루아를 점령하기 위해 이곳까지 온 겁니다. 당연히 싸워야지요.”
레오노라는 씩 웃었다.
“그러지 말고, 제가 성지 루아로 향하는 비밀통로를 알아냈습니다. 굳이 싸울 필요 없이, 그쪽으로 들어가도록 하죠.”
아이작은 바로 대답하는 대신 레오노라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이작은 여전히 그녀가 왜 성지 루아까지 위험을 무릅쓰고 찾아왔는지 잊지 않고 있었다.
“미다스의 손은 찾은 겁니까?”
레오노라는 피식 웃었다. 그녀는 잔잔한 미소를 띤 채 말했다.
“불사 황제가 당신을 저지하면 미다스의 손을 넘기겠다고 하더군요.”
예상 못 한 일은 아니다. 레오노라가 미다스의 손을 얻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거란 건 불사 황제도 진작 꿰뚫어 보았을 테니까.
하지만 관건은 레오노라에게 그럴 능력이 있느냐다.
“그 말은 즉, 미다스의 손이 아직 성지 루아에 있다는 뜻이지요. 불사 황제는 안젤라에게 미다스의 손을 들켰는데도 옮기지 못했습니다. 그럼 우리끼리 가서 회수할 수 있다는 뜻 아니겠어요?”
아이작은 헛웃음지었다.
“꽤 태연하게 배신을 말하는군요?”
“배신이라니. 미다스의 손은 원래부터 황금 우상 상단의 소유물입니다. 회수라고 불러야지요.”
신을 면전에서 속이고 배신할 만큼 배짱 있는 사람은 얼마 없을 것이다.
레오노라는 그 극소수의 인물 중 하나고.
물론 아이작은 레오노라가 자신을 속이고 거짓말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판단했다.
그때였다.
하늘이 찢어지는 듯한 섬광이 번졌다. 마치 허공에서 해가 떠오르는 듯한 광경이었다. 모든 대화와 전투가 중단되고 모두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아침 여명처럼 빛나는 여섯 개의 등대가 나타났다. 그 중심에서 날개가 한 장 한 장 펼쳐지기 시작했다.
세상의 모든 빛이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하늘이 순식간에 시커멓게 물들었다.
빛이 없는 세상에서 오로지 그 존재만이 온전한 형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병사들은 감히 신음을 내뱉으며 눈을 가린 채 주저앉았다. 아이작 역시 리히트하임에서 그런 적 있었다. 도저히 눈으로 보지 못하고, 오직 망막에 순간적으로 새겨진 형상만이 기억에 상처처럼 남을 뿐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처럼 고통스럽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욱 또렷하게 그 형상이 보였다.
여섯 개의 등대에 새겨진 무늬와 열여섯 장의 날개로 이루어진 깃털들까지. 그 날개 속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예전처럼 현저한 격의 차이가 나진 않는다는 것은 분명했다.
아이작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등대지기.”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