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419)
419화. 불사 황제 (1)
등대지기가 현현하여 존재감을 드리우는 것만으로도 하늘이 요동치고 바람이 미친 듯이 불어왔다. 그 존재감만으로 치열하게 벌어지던 전투가 멈출 정도였다.
“등대지기까지 강림했군…….”
투할린조차 신음하듯 중얼거렸다.
그는 등대지기의 빛이 버거운지 손으로 막고 있었지만 힘겹게나마 서 있을 수 있는 소수의 사람 중 하나였다. 그 소수의 사람이란 바로 리안나와 레이나 같은 징조를 가진 자들이었다.
그들은 두려움과 경외에 찬 시선으로나마 등대지기를 응시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레오노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이작은 레오노라가 황금우상 상단 인원 중 유일하게 일어서서 등대지기를 응시하는 인물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레오노라의 눈동자는 황금색으로 물들어 등대지기의 빛을 난반사시키고 있었다.
등대지기는 완전히 현신하자 힘을 조절하는 듯 고통스러운 열과 빛을 줄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권위는 확실하게 드러냈다.
그 어떤 명천사도 등대지기에 감히 비견하기 힘들 것이라고.
등대지기는 성지 루아를 응시했다.
이제 슬슬 힘을 드러내라는 듯한 기색이었다.
그러나 등대지기의 등장에도 불사 황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조용히 성지 루아를 감싼 그림자를 확장해 나가고 있었다. 그 그림자는 더욱 크고 짙어지고 있었다. 마치 등대지기의 강한 빛을 받고 음영이 더 강해지기라도 한 것처럼.
두근.
그때 아이작은 심장이 크게 뛰는 것을 느꼈다. 무언가 크게 잘못된 느낌이 들었다.
아이작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떠오른 태양과 등대지기로 밝아야 할 하늘은 어째선지 시커먼 먹물 빛이었다.
등대지기의 빛 때문에 알아차리는 것이 늦은 것이다.
[아이작.]갑작스레 불사 황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작은 시선을 돌려 성지 루아, 그 돔의 천장 위로 시선을 향했다. 그곳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오래전에 생을 버렸지만 눕지 않고 방랑하는 사제이자 황제인 남자가.
“불사 황제…….”
“불사 황제라고? 어디? 저 전장에 불사 황제가 모습을 드러냈나?”
투할린이 다급하게 물었지만, 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허나 아이작은 혼돈의 눈을 발동하지 않았는데도 아주 먼 곳에 있는 불사 황제의 모습이 이상하리만치 또렷하게 보였다.
마치 불사 황제가 직접 보여 주는 것처럼.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거대한 등대지기의 모습에 비해, 너덜너덜한 넝마를 온몸에 감싼 신의 모습은 작고 가련해 보였다.
하지만 그는 돔 위에 당당하게 서서 한때나마 자신이 섬겼던 명천사, 등대지기를 응시했다.
[잘 보십시오. 한 인간이 당연한 섭리에 맞서기 위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아이작은 왜 불사 황제가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불사 황제는 보충 설명을 하는 대신 후드를 벗었다.
안쪽에는 시커먼 어둠만 도사리고 있을 뿐,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시커먼 연기만이 가늘게 피어오르다가 터번마저 바람에 날아가자 함께 흩어져 버렸다.
불사 황제는 이내 모든 옷가지들을 바람에 흩날려 보냈다.
찰칵.
그와 동시에, 등대지기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여섯 개의 등대 중 두 개가 번뜩였다. 찬란한 광선이 순식간에 불사 황제를 불태웠다. 그러나 광선이 사라진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성지 루아를 감싼 새카만 재만이 흩날릴 뿐이었다.
시커먼 재는 바람에 날리는 듯하다가, 불타는 처녀가 만들어 낸 화염 기둥을 타고 올라가 순식간에 하늘에 흩뿌려졌다.
지상부터 하늘까지, 마치 칼처럼 길게 늘어진 연기는 단숨에 하늘을 죽 그었다.
[죽은 자는 다시 죽일 수 없나니.]문득, 하늘을 올려다보던 사람들은 하늘과 구름이 양옆으로 밀려나는 것을 보았다.
마치 하늘에 커다란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어둠이, 다시 찾아온 밤하늘이, 종말과 나란히 선 남자가 종언을 고했다.
쿠득, 쿠드드, 쿠드드드드득.
하늘에서 불쾌한 소음이 울려 퍼지며 대기가 떨리기 시작했다. 세상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천국이 찢어지면서 그 내장과 피를 쏟아내는 소리였다. 마침내 갈라진 하늘에서 굉음이 멈추자, 불사 황제가 가두고 있던 무수한 유령과 악령들이 뒤섞여 쏟아져 나왔다.
끼아아아아악!
비명, 흐느낌, 귀곡성, 절규, 비탄, 단말마.
무수한 악령들이 폭우처럼 쏟아져 내렸다. 불사 교단의 영토 안에서 죽은, 천국도 지옥도 가지 못한 영혼들이었다.
그들 모두에게 육신을 부여할 수는 없었던 불사 황제는 천국을 봉합해 가두어 두었지만, 이제 그들이 다시 풀려나고 있었다.
등대지기는 즉시 등대를 가동하여 악령들을 닥치는 대로 태워 버렸다. 그러나 태풍 속에서 쏟아지는 빗물을 하나하나 쳐내는 꼴이었다.
무엇보다 이것은 신의 권능이다.
신은 세상의 규율 그 자체를 결정한다. 불사 황제는 이곳이 이미 죽은 자들의 땅이라고 선언했다. 등대지기가 아무리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한들 규율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었다.
“아아아아!”
지상에 있던 오크들과 병사들은 순식간에 무수한 악령들에게 노출되었다. 죽음의 고통을 되풀이하며 빙의하려 드는 악령들은 그 자체로 큰 정신적 충격이다. 특히 여명군은 병사들에게 간단한 퇴마 주문을 펼칠 사제조차 줄어든 상태였다.
동시에, 곳곳에서 시체를 차지한 악령들이 벌떡 일어났다.
그들의 목적은 단 하나, 더 많은 시체를 만들어 내는 것뿐이었다.
산 것의 온기, 산 것의 살갗.
농부가 더 많은 밭을 개간하고 파종하는 것처럼, 그들은 더 많은 시체를 만드는 데 집착했다.
이제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아비규환이 펼쳐졌다.
상반신과 하반신에 각각 다른 악령이 뒤섞이기도 하고, 신체 대부분이 결손된 시체들조차 기어다니며, 하나의 육신에 수십의 악령이 뒤섞여 기괴하게 부풀어 오른 형태로 뒤틀리기도 했다.
그 가운데 누워 있는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이곳은 죽은 자들의 땅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평안을 얻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
“아니, 벌써?”
아이작은 불사 황제가 후드를 벗어던진 순간부터 무슨 짓을 벌이려 하는지 알아차렸다.
여명군으로서 성지 루아를 정복할 때, 칼센마저 꺾고 나면 불사 황제가 보여주는 마지막 페이즈였다. 그걸 시작하자마자 꺼내 든 것이다.
아이작은 표정을 일그러뜨린 채 급히 지휘관들에게 지시했다.
“가지고 있는 퇴마 기적을 전부 사용하십시오! 빨리!”
“뭐? 아, 알겠네!”
모든 신앙에는 저마다 악령을 방지하기 위한 기도문과 기적이 있다. 심지어 불사 교단도 마찬가지다. 악령은 불사 교단이라고 특별히 봐주는 것이 아니라, 단지 육신을 탐내 빼앗으려 하기 때문이다.
불사 황제가 열어 버린 저승의 여파는 제법 멀리 떨어진 이사크레아 여명군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아이작이 미리 경고한 덕분에 악령의 물결에 휩쓸리는 사태는 막을 수 있었지만, 머리 위를 악령들이 비명 지르며 날아다니는 것만으로도 기가 약한 병사들은 정신적 고통을 호소했다.
“썩 꺼져라, 망령들아!”
투할린은 망치를 들어 땅을 크게 후려갈겼다. 지축을 흘리는 천둥소리가 울려 퍼지자 악령들은 혼비백산하여 흩어졌지만, 거리를 두고 계속 맴돌았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돌아오기 시작할 것이다.
투할린은 투덜거리며 성지 루아를 응시했다.
무수하게 쏟아져 내리는 악령들은 눈 폭풍처럼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거대한 음영이 성지 루아 전체를 드리우고 있었다. 등대지기의 빛조차도 그 거대한 폭풍 앞에서는 가냘픈 등대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불사 교단이 탄생할 때와 같은 일이 반복된 겁니다.”
“예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고?”
아이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전, 이미 성지 루아에 같은 일이 있었다. 베셰크 주교가 불사 황제가 되던 날이었다.
그는 의식을 통해 하늘의 배를 가르고 천상의 피로 지상을 적셨다. 천상의 일부를 끌어내려 지상을 뒤덮는 데 성공했지만, 모든 죽은 자들을 다 품을 수는 없었다.
불사 황제는 죽은 자들도 산 자처럼 행세하고 산 자처럼 살아가길 원했다. 그 기만을 위해 그는 다시 하늘의 구멍을 꿰매 육신을 갖지 못한 영혼들을 돌려보냈다. 오로지 되살릴 자격이 있는 자들만 살려내기 위해.
그리고 지금, 불사 황제는 하늘의 뱃가죽을 다시 찢었다.
그때에는 특별한 의식과 도구가 필요했지만, 이미 찢어졌던 하늘을 다시 찢는 데에는 불사 황제 본인의 힘만 있으면 충분했다.
이제 죽은 자들은 그들의 육신을 부여할 묘지 군주, 그들의 형상을 보존하고 다듬어 줄 창백, 그들의 정신을 보살피고 가르칠 죽은 십이월 없이 제멋대로 육신을 차지하고 탐내며 땅 위를 걸어 다녔다.
완벽한 방종, 죽은 자와 산 자의 구분이 없는 세상.
사실상 불사 황제가 모든 제한을 풀어 버린 것이다.
“이런 망할. 그렇게 끔찍한 상황이라면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거 아닌가?”
“아뇨. 이 상태를 지속할 수는 없습니다. 이런 광란 속에서는 불사 황제도 신앙을 수급할 수 없으니까요.”
불사 황제가 ‘자유의지’를 존중하는 이유는 그 개인의 신념도 있겠지만, 정신을 지배당하는 노예에게서는 신앙을 수급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신지배로 자신을 신앙하라고 강요한다면 불사 황제는 진작에 최강의 신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은 당연히 불가능하다.
“이런 광란 상태는 불사 황제 본인의 살을 파먹는 짓입니다. 이게 계속된다면 자신의 신성조차 흔들리겠죠. 아마 등대지기를 몰아내려는 거겠지만…….”
“그럼 얼마나 버티면 되는 건가? 한 시간? 한나절?”
아이작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으며 손가락 세 개를 펼쳤다.
“3일? 미쳤군. 그 정도면…….”
“30년 정도는 유지할 수 있을 겁니다. 성지 루아 안에 그를 지지해 줄 언데드들이 단단히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들은 고립된 상황에서도 죽지 않으니까요.”
아이작이 대충 가늠한 것이 아니라 실제 게임에서 확인해 본 수치다.
사실상 여명군 내내 저 상태를 유지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갈라진 천국을 봉합하는 것이 쉬운 일도 아니고 언데드의 평균적인 ‘질’도 상당히 나빠지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최후의 수단이었다.
아이작은 등대지기를 바라보았다.
등대지기는 이런 상황에서도 꾸준하게 버티고 서서 불사 황제의 힘에 대적하고 있었다. 폭풍이 몰아닥친다고 등대가 무너지지는 않는다. 그저 단단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선 채 배에게 빛을 보내 위치를 알려 줄 뿐이다.
그런 등대지기의 모습은 마치 아이작에게 전하는 명징한 메시지처럼 보였다.
‘여기서 내가 패배하면 불사 황제는 온 세상을 이런 꼴로 만들 거다. 너는 그걸 방치할 건가?’
아이작은 애당초 그런 상황을 막기 위해 온 것이기도 했다.
다음 여명군은 없다. 불사 황제는 시간을 동맹 삼아 세계를 지배할 것이다.
아이작은 입술을 깨물었다. 이건 세상을 볼모 삼아 협박하는 강요다. 하지만 동시에…….
‘완벽한 기회이기도 하군.’
***
아이작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는 채 투할린은 심각한 표정으로 전장을 주시했다.
“아까도 난장판이라고 생각했지만, 한층 더 끔찍해졌군.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더 이상 없을 것 같은데…….”
이미 이 자리에 있는 신이 하나, 천사가 최소 넷이다.
간접적으로 끼어든 천사들까지 헤아리면 몇일지 가늠도 안 된다. 이사크레아 여명군이 끼어들면 영웅들을 후원하는 천사들도 반드시 개입할 것이다.
‘이곳은 인간의 전장이라기보다 신들의 전장이군.’
이런 전장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아니, 있긴 할 것이다.
신앙을 공급하는 빨대 역할로.
그 위에서 신과 천사라는 거인들이 나뒹굴면, 인간의 역할은 개미처럼 처참하게 짓밟히는 것밖에 남지 않을 것이다.
아이작은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굳이 저 난장판 한가운데로 기어들어 가는 것은 자살이나 다름없겠지요.”
아이작은 지휘관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하지만 구경이나 하자고 여기 온 것은 아닙니다. 투할린, 부대를 맡아 주십시오. 이대로 내버려 두면 올칸 규율의 군대가 여명군을 모조리 박살 낼 겁니다. 칸의 군대 후방을 견제해 주십시오.”
“뭐라고? 여명군은 자네를 제대로 돕지도 않은…….”
“무슨 상관입니까? 저들 중 대부분은 평범한 병사입니다. 이런 곳에서 의미 없이 죽어 나자빠질 필요는 없어요.”
아이작이 순수하게 생명을 아끼는 마음으로 호의를 베푸는 것은 아니다. 아이작도 우르반수스가 굴러가는 이치와 천사들의 힘의 원천을 이해하고 있다.
저 여명군 병사들이 다 죽어 나자빠지면, 그게 전부 다 불사 교단의 병사가 된다. 아이작에게는 그게 더 최악의 상황이었다.
“어째선지는 모르겠지만 여명군 병사들은 지금 제대로 된 지휘를 못 받고 있습니다. 천사들이 그들을 일일이 챙길 것 같지는 않으니, 병사들을 이끌어 합류시키십시오.”
투할린은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다.
아이작 말대로 여명군은 어째선지 극도의 혼란 상태에서 오크 기병대와 악령들, 모두에게 도륙당하고 있었다.
이사크레아 여명군이 그들을 이끌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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