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420)
420화. 불사 황제 (2)
아이작은 할 수 있으면 오크들도 설득해 보라고 말할까 했지만, 그만두기로 했다.
세상의 용광로 신도들은 올칸 규율을 증오하다 못해 씹어 먹고 싶어 한다. 그런 지시는 괜한 역효과만 부를 수도 있었다. 하지만 혹시 모르니 에델레드에게는 가볍게 귀띔해 두기로 했다.
“알겠네. 그러면 자네는…….”
아이작은 레오노라를 돌아보았다.
“성지 루아로 들어가는 비밀통로가 있다고?”
레오노라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어떤 비밀을 감추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아이작 역시 성지 루아로 이어지는 비밀통로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그 안으로 들어가는 방법까지도.
레오노라는 자신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통로는 아이작이 그녀를 시험하는 장소가 될 것이다.
“지금 성지 루아로 잠입하겠다고? 미쳤군!”
아이작의 말을 들은 투할린이 재빨리 그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총지휘관의 역할은 병사들을 지휘하는 것이지, 적진을 향해 뛰어 들어가는 게 아닐세! 그것도 상대가 천사와 신들이라면!”
투할린이 보기에는 폭풍과 지진이 싸우는데 인간이 삽을 들고 나서는 꼴이었다. 아이작이 이미 수차례 믿기지 않는 힘을 보여 주긴 했지만, 지금은 뛰어들 때가 아니라고 보았다.
“방법이 없습니다. 투할린.”
아이작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지금 불사 황제를 막지 않으면 다 끝장입니다.”
아니, 오히려 불사 황제가 전력을 드러낸 지금이 기회다.
등대지기를 비롯한 다른 천사들을 꼼짝도 못 하게 묶어 둔 이 기묘한 길항(拮抗) 상태에선, 불사 황제 본인이 발휘할 수 있는 힘도 크지 않다.
어쩌면 아이작이 상대할 수도 있을 정도로.
하지만 투할린은 거기까진 상상할 수 없는 듯했다.
“불사 황제를 막겠다고? 자네 혼자서?”
“혼자는 아니지요.”
그때 누군가 불쑥 나섰다.
로튼해머였다. 뒤이어 게벨과 이사크레아 성기사단의 성기사들이 뒤따라 나왔다.
“아이작 이사크레아는 이사크레아 성기사단의 길을 인도할 성자입니다. 성자 이사크레아가 가는 길이 곧 이사크레아 성기사단이 향할 길이지요. 우릴 떼놓을 생각일랑 말게.”
투할린은 마치 집단으로 자살하겠다는 말을 들은 것 같은 표정을 지었지만, 이사크레아 성기사단 단원 중에 마지못해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두려워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는 확신에 가득 차 있었다.
“성지 루아에 발이라도 디뎌보고 죽는 게 소원이었지.”
게벨이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중얼거렸다.
에델레드가 그때 앞서 나오려 했지만, 리안나가 다급히 붙잡아 나서지 못했다. 아이작도 고개를 가로저어 막았다.
에델레드는 일국의 왕이다. 무게감이 다르거니와, 밖에서 활약할 수 있는 천사가 한 명이라도 더 많아야 더 많은 사람들이 죽지 않게 막아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투할린은 여전히 불안한 투였다.
“그러지 말고 일단 병력을 규합한 다음 상황을 지켜보다가…….”
“언제 말입니까, 투할린? 불사 황제가 모든 빛의 법전 천사들을 떨어뜨린 다음? 아니면 올칸 규율이 성지 루아를 싹 약탈한 다음? 아니면 빛의 법전이 성지 루아를 불태워 버린 다음?”
투할린은 이를 악물고 아이작을 노려보았다.
아이작은 부드럽게 그의 손을 놓았다. 그가 신중해지려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세상의 용광로 신도들이 가진 완벽주의적 성향은 그들이 명품을 만들 수 있게 하는 원천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을 세상의 은둔자로 만든 원인이기도 했다.
“세상의 용광로는 언제고 다시 돌아온 ‘진짜’ 빛의 법전을 기다리고 있지요? 그는 그냥 자리에 주저앉아 기다리고만 있으면 찾아오는 자입니까?”
“그건…….”
“이제 당신이 미뤄 두었던 대답을 할 차례입니다. 저는 세상을 구하러 갑니다. 당신은 세상을 때릴 망치가 되어 주십시오. 너무 오래 자고 있지 않았냐고, 일어나라고 윽박지를 때입니다.”
아이작은 투할린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대신 레오노라를 바라보았다.
팔짱을 낀 채 아이작을 기다리던 레오노라는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아, 저도 감동적인 한마디를 해야 하나요? 그럴 타이밍인가? 하지만 저는 대단한 신념도 없고 그냥 제 몫 챙기러 길잡이 하는 것뿐인데…….”
“그냥 빨리 갑시다.”
레오노라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씩 웃었다. 하지만 그녀는 움직이기 전에 입을 열었다.
“그 전에, 한 사람을 빠뜨리지 않았나요?”
***
레오노라가 지적한 마지막 한 사람은 다름 아닌 안젤라였다.
안젤라가 미다스의 손 위치를 알고 있으니 반드시 데려가야 한다는 것이 레오노라의 조건이었다. 아이작 역시 안젤라를 성지 루아로 데려가라는 임무를 받은 상태였기 때문에 받아들였다.
모든 일이 끝난 다음 데려가는 것도 생각해 봤지만,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이상 차라리 아무도 모를 때 데리고 들어갔다가 몰래 내보내는 쪽이 나을 수도 있었다.
투할린과 에델레드가 이끄는 이사크레아 여명군은 전장으로 이동하고, 아이작 일행은 레오노라의 안내로 비밀통로 쪽으로 이동했다.
비밀통로의 입구는 인근의 버려진 우물 속에 있었다.
우물 바닥은 푸석푸석하고 메말라 있었다.
비좁은 지하통로를 따라 걷는데도 하늘 위에서 악령들이 흐느끼고 울부짖는 소리가 땅을 통해 들려왔다.
아이작은 통로의 벽면을 살펴보며 생각했다.
‘다행히 아는 통로군.’
성지 루아와 이어지는 비밀통로는 한두 개가 아니다. 그 모든 걸 다 알지는 못하지만 이 통로는 다행히 아이작이 아는 통로였다. 그리고 아이작이 알기로는 불사 교단의 신도, 즉 언데드가 아니면 비밀통로를 개방하는 중간 석문을 열 수 없었다.
아이작은 통과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다만 레오노라가 그걸 알고 있을지 궁금했다.
“이런 비효율적인 전쟁이라니. 끔찍하네요.”
아이작 뒤를 따라오던 헤사벨이 투덜거렸다.
세상 잔혹한 음모란 음모는 다 꾸미고 다니는 붉은 성배 클럽은 정작 전쟁 자체는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헤사벨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이작을 따라다니며 수차례 전투를 경험했지만, 머리 위에서 일어나는 전투는 평범한 사람의 인지를 벗어난 광기였다.
“천사들은 왜 저렇게 인간에게 가혹할까요? 저들도 한때는 인간이었는데?”
그것에 대해서는 아이작도 생각한 바가 있었기 때문에 바로 대답이 나왔다.
“인간이 인간 스스로에게 가혹하기 때문이지.”
“인간이 인간에게 가혹하다구요? 왜요?”
“저 거대한 신과 천사들의 힘을 보면 자신이 얼마나 작고 나약해 보이겠어? 그러니 강대한 존재에게 자신의 자아를 의탁하고 그의 결정에 모든 운명을 맡겨버리는 거지.”
그렇게 함으로써 나약한 인간은 자신이 강대한 존재가 하나가 되었다고 착각하는, 동질성의 착각을 겪는 것이다. 이 세계에는 신과 천사로서 그 현상이 일어나지만, 사실 신앙만의 일은 아니다.
국가, 집단, 사상, 이념, 인종, 혈통, 영웅…… 무수한 사람들이 단지 자신이 그 안에 속해있다는 이유로 집단과 스스로를 동일시한다. 이 착각은 인간에게 개인이 이뤄낼 수 없는 거대한 업적을 이룩하는 힘을 주지만, 정작 그 집단 안에서 개개인은 쉽게 뭉개진다.
아이작이 살던 원래 세계의 역사만 뒤져봐도 상대가 자신과 다른 집단에 속해있다는 이유로 벌인 온갖 끔찍한 학살이나 범죄가 있었다.
그들에 비해 천사가 유별나게 잔혹한가? 아이작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결국 천사란 이름을 붙이고 의인화한 집단인 셈이다.
“천사들이 비인간적인 것을 탓할 것도 없어. 인간들이 그런 모습을 바라고 있으니까.”
아이작의 말은 헤사벨만이 아니라 비밀통로를 지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들렸다. 대놓고 배교적인 말이었지만 이제 와서 놀라거나 정색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 말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할 뿐.
하지만 헤사벨은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아이작 님도 천사가 되면 저렇게 잔혹해지실까요?”
아이작은 입을 다물었다.
아이작은 작명고지를 받았다. 사후 그가 명천사가 될 것임을 사전에 고지받았다는 뜻이다. 물론 그게 정말로 실현될 것인지는 그때 가봐야 알 일이지만, 적어도 아이작이 명천사가 되는데 부족함이 없는 업적을 세운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아이작은 대답할 수 없었다.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었지만, 그의 내면에는 이치를 넘어선 무언가가 도사리고 있다. 만약 자신이 죽는다면 그의 육신 안에 있는 괴물이 본모습을 드러내지 않을까? 그리고 그 괴물이 세상을 집어삼키기 시작하면 자신이 그걸 ‘인간들이 원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
“다 왔어요.”
아이작이 대답할 말을 찾기 전에 레오노라가 멈춰 섰다. 그녀는 거대한 석문 앞에서 발광석을 들어 올려 비췄다.
언데드가 아니면 열 수 없는 문.
레오노라는 간단하게 해결했다.
“샬록.”
샬록은 레오노라의 말을 듣자마자 손짓을 했다. 용병 하나가 앞으로 나와 등에 지고 있던 보따리를 풀었다. 여행용 짐이라고 생각했던 보따리 안에 약초를 넣고 문질러 바르자, 갑자기 느리게 꿈틀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레오노라는 그 보따리 안에 손을 넣고 부드럽게 스다듬으며 말했다.
“얘야, 이 문 좀 열어 주지 않을래?”
“아…….”
“그래. 이 장치를 움직여서…… 그렇게.”
보따리 안의 무언가는 레오노라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움직여 문을 조작했다. 거대한 석문은 소년의 손짓에 부드럽게 따라 움직였다.
석문이 열리자 레오노라는 잘했다고 칭찬을 해 준 뒤, 샬록에게 손짓했다. 샬록이 다시 보따리를 챙기려 할 때, 아이작이 갑자기 나서 보따리를 확 잡아당겼다.
벗겨진 천 안에서 드러난 것은 어린 소년이었다. 창백한 안색을 보아 죽은 지 얼마 안 된 것 같았다. 아이작은 소년의 몰골과 복장을 보고 정체를 바로 알아차렸다.
“여명군에 동원된 소년병입니까?”
“그렇지요. 성지 루아로 오는 길에 주웠습니다.”
레오노라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사정이 안 되기도 했고, 불사 교단 상대라면 여차하면 필요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 데리고 왔지요. 어쩌면 미다스의 손이 어린아이의 눈에만 보이는 곳에 있을지도 모르니까.”
레오노라의 시선이 안젤라에게도 향했다. 그녀가 미다스의 손의 행방에 대해 아는 거라곤 성지 루아에서 안젤라라는 어린 소녀 말고는 본 사람이 없다는 것뿐이다.
단 하나의 단서를 놓칠 수 없었던 레오노라는 소년을 데리고 가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석문을 언데드만 열 수 있다는 걸 알고 죽였고?”
“화가 난 것 같네요. 성배기사.”
레오노라는 은은하게 웃으면서 말했지만 샬록은 조용히 칼에 손을 얹었다. 아이작은 기가 찰 지경이었지만 일단은 레오노라가 하는 말을 들었다.
레오노라는 손가락 세 개를 펼쳤다.
“세 가지 이유가 있어요. 첫 번째는 이 문은 언데드만 열 수 있기 때문에 사망보험 가입자를 찾아야 했어요. 이 애는 당연히 불사 교단 포로니까 사망보험에 가입되어 있었죠. 두 번째로, 후각이 살아있어야 약초로 정신지배를 깨뜨릴 수 있어요. 그래서 누구든 한 명은 최근에 죽어야 했다는 거죠.”
“세 번째는?”
“어른을 죽일 수는 없었어요. 들고 다니기 무거우니까. 만약 정신지배를 당해서 우리에게 덤벼도 어린아이라면 제압하기 쉬울 테고.”
“어른의 팔다리라도 자르지 그랬습니까?”
“그러면 문을 열기 힘들잖아요.”
아이작은 사납게 웃었다. 불쾌하리만큼 명확하고 선명한 답변이었다.
그동안 한편이라 잊고 있었지만 레오노라는 원래 이런 여자였다.
극도의 이익률과 효율 추구가 낳은 사이코패스.
“어차피 죽거나 언데드 노예가 되었을 목숨, 세계를 구하는 데 쓴다면 가치 있는 투자 아닌가요? 우리 모두 이미 그러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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