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422)
422화. 불사 황제 (4)
나팔 소리. 북소리. 군가. 말발굽 소리. 웃고 떠들며 포효하는 기사들의 저속한 농짓거리.
엘릴 기사들은 거의 광란이나 다름없는 호쾌한 소음을 만들어 내며 올칸 규율의 군대를 향해 파죽지세로 파고 들어갔다.
그들에게는 악령이나 저승의 부정한 기운도 접근하지 못했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모든 소음과 찬양, 모든 것이 부정하고 삿된 것을 몰아내는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엘릴께서 이 전장을 굽어보고 계신다!”
“엘릴! 엘릴! 엘릴!”
에델레드의 선포에 기사들은 반복적으로 엘릴을 외치면서 달려들었다.
콰두두두두. 오크 병사들이 갑자기 나타난 이 새로운 적에 맞서 새롭게 전열을 짜 보려 했지만, 엘릴 기사들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순식간에 창과 말발굽들이 그들을 짓밟고 지나갔다.
“엘릴! 엘릴! 엘릴!”
그때, 경험 많은 오크 천호장 하나가 믿기지 않는 영웅적인 괴력으로 거대한 대포를 통째로 들어 올렸다. 그는 엘릴군 최선두, 에델레드를 향해 겨냥하며 외쳤다.
“대포에 불붙여!!”
대포가 깨지거나 살갗이 타들어 갈지도 모르지만 천호장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에델레드는 그 모습을 놓치지 않고 오히려 빠르게 돌격해 들어갔다. 병사들은 눈치 빠르게 심지를 자른 다음 바로 불을 붙였다. 대포는 불이 붙자마자 동시에 굉음을 내며 불꽃을 토해 냈다.
쾅! 마구잡이로 겨냥한 대포였지만, 오크 조상신의 가호를 받은 대포는 순식간에 에델레드를 향해 날아들었다. 하지만 에델레드는 날아드는 포환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의 검이 기묘하게 움직이는가 싶더니, 칼드부흐가 단숨에 포환을 휘감아 베어 버렸다.
이삭 검술: 익사자의 손이었다.
콰드득, 콰콰쾅!
대포를 쏜 천호장은 믿기지 않는 광경이 입이 쩍 벌어졌다.
포환이 두 쪽 난 것은 그렇다 칠 수 있었다. 하지만 에델레드는 그 두 쪽 난 포환을 칼로 휘감아 되레 칸의 군대가 밀집한 방향으로 되돌려 던져 버린 것이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포환을 움켜쥐고는 엉뚱한 방향으로 던진 것만 같았다.
그 광경에 오크들은 전의를 잃었고, 그만큼 엘릴군은 사기가 올랐다.
왕이 최전선에 뛰어들어선 안 된다는 말 따위는 엘릴 왕국에서 헛소리다. 왕은 최고의 기사고, 언제든 필요하다면 전장에 뛰어들어 용맹을 증명해야 한다.
“엘릴! 엘릴! 엘릴!”
이제 오크들은 엘릴이라는 단어에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었다. 하지만 엘릴 기사들은 그들의 이름이 공포의 상징으로 남도록 확실하게 각인시킬 생각이었다.
엘릴 군대는 칸의 군대에 비하면 소수였지만, 당혹감을 줄 만큼 흔들기에는 충분했다. 특히 모든 전력이 성지 루아 방면, 여명군 본대 쪽을 향해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불사 황제가 불러낸 악령들의 무리는 칸의 군대에게도 불쾌하고 불편한 존재였다. 때문에 그들은 도저히 전방에서 신경을 뗄 수 없었다.
아틀란이 자리를 비운 사이 지휘를 대신 맡고 있던 테헤르마 장군 무당이 다급히 지시했다.
“놈들은 한 줌이다! 케식, 전열을 정비해서 막아 내!”
하지만 후방을 공격당하면 병사들은 평정심을 잃는다. 자신들이 포위당했다고 착각하게 되기도 하지만, 적들이 실제보다 더 많아 보이기도 한다.
특히 그 적들이 기동성 빠른 기사들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기사들은 지치지도 않고 엘릴의 이름을 연호하며 전장을 누볐다. 오히려 에델레드가 그들을 통제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깊게 파고들지 마라! 바깥쪽에서 긁듯이 적들을 깎아내! 고립당하면 죽는다!”
“엘릴! 엘릴! 엘릴!”
다행히 기사들이 전장의 흥분보다 왕의 명령을 우선시할 줄 알았기에 가까스로 통제할 수 있었다. 에델레드는 이 정신 나간 기사 무리의 난동에 넌더리를 쳤지만, 그 자신도 가슴이 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기사들이 전장에서 웃고 떠들고 농담하는 것이 어느 정도는 이해될 지경이었다.
“가자! 한심한 빛의 법전 놈들을 우리가 구해주는 거다!”
같은 국민들을 상대로 내전을 벌일 때와 달리, 숭고한 이상과 정의를 가지고 펼치는 전장은 완전히 달랐다.
에델레드는 어쩌면 사실 자신이 기사를 좋아하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선생님, 역시 당신을 따르길…….’
에델레드는 가장 기사다운 기사, 아이작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콰콰쾅! 그때, 갑작스러운 굉음이 돌격하던 엘릴 군을 뒤흔들었다. 아찔한 충격이 에델레드를 엄습했다.
에델레드는 허공으로 튕겨 날아갔다가 바닥을 거칠게 나뒹굴었다.
‘대포인가?’
에델레드는 어지러운 정신 속에서도 생각했다. 그럴 가능성이 높았지만 어떠한 기척도 살의도 느끼지 못했다. 그런 감각적인 것보다 더 빠른 무언가가 에델레드를 덮쳤다.
간신히 고개를 들자 리안나가 다급히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폐하, 폐하! 무사하십니까?”
“괜찮습니다. 누님.”
다행히 어딘가 부러지거나 내상을 입은 곳은 없는 것 같았다. 있다 해도 칼드부흐의 힘으로 회복시키면 그만이었다.
“그보다 병력을 수습하십시오. 적들이 곧 포위하려 할 겁니다.”
이미 칸의 군대는 움직이고 있었다. 엘릴군은 빠른 속도로 달리다가 부딪친 갑작스러운 이 공격에 제법 충격을 받은 듯 빠르게 수습하지 못하고 있었다. 에델레드는 온몸이 비명을 지르는 것을 느꼈지만 기사들에게 멀쩡하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거뜬히 일어섰다.
“멈추지 마라, 엘릴의 기사들아!”
에델레드가 소리치자 엘릴 기사들은 정신이 번쩍 든 듯 움직였다.
에델레드는 말을 다시 타려고 했지만 자신이 타고 있던 말이 완전히 산산조각 났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엘릴 왕국부터 이사크레아 영지, 악몽 해협을 거쳐 지금까지 내내 함께해 왔던 말이었다.
적은 명백히 자신이 아니라 말을 겨냥하고 있었다.
‘왜지?’
말을 공격해야 상대가 더 분노하고 모욕을 느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에델레드는 그제야 자신을 누가 공격했는지 깨달았다.
그의 시선이 아득히 먼 곳으로 향했다. 조금 전까지 오월의 검과 싸우고 있던 아틀란이, 분노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적어도 수백 미터 이상 떨어진 거리에서 그들을 향해 화살을 날린 것이다.
장군 무당 테헤르마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자 아틀란이 직접 나선 듯했다. 그와 싸우고 있던 오월의 검은 승부를 내지 못한 건지 보이지 않았다.
“폐하, 일단 제 말을 타십시오.”
“아닙니다.”
리안나가 말에서 내리려 하자 에델레드는 만류했다. 대신 그는 성큼 리안나의 뒤에 올라탔다.
리안나가 놀란 얼굴로 돌아보았지만, 에델레드는 오직 아틀란만을 노려보며 말했다.
“나를 저 자에게 데려다주십시오. 칸의 군대는 오늘 그 주인을 잃을 겁니다.”
***
문이 열리자 기분 나쁠 만큼 미지근한 바람이 밀려 들어왔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어두컴컴한 골목이었다. 좁고 밀집된 집들이 어수선하게 서 있는 지저분한 골목. 하지만 아이작은 그 수백 년 묵은 공기 냄새를 맡자마자 이곳이 어딘지를 자각했다.
그의 뒤를 따라 들어온 로튼해머 역시 들어오자마자 신음하듯 중얼거렸다.
“이곳이 성지 루아로군…….”
평범하고 오래된 건물들이 무계획적으로 어수선하게 세워진 도시지만, 아득한 세월과 역사가 새겨놓은 무수한 상처들이 그들에게 무언의 압박을 가하고 있었다. 특히 신성을 느낄 수 있는 성기사나 사제들은 이 성지 루아에서 풍겨 오는 신성한 기운에 압도당할 지경이었다.
이 오래된 도시에 태어나고 자란 이들이 몇이며, 이곳을 고향 삼은 신과 천사들은 몇인가.
하지만 지금 이 황폐한 도시에 살아 숨 쉬는 자들은 아이작 일행뿐이며, 배회하는 것은 유령과 시체, 그리고 먼지뿐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섬뜩한 것은 바닥에 깔린 흰 모래였다.
“이 모래는 뭔가? 평범한 모래는 아닌 거 같은데.”
로튼해머는 성지 루아 바닥에 소복하게 쌓여있는 흰 모래를 보며 물었다. 아이작은 거기에 시선도 주지 않으려 애쓰며 무심히 대답했다.
“백사병의 잔해입니다.”
“백사병? 아…….”
로튼해머는 300년 전 일어난 재앙을 떠올렸다. 너무 오래되어 강박적인 이단심문관이 아닌 이상 잘 떠올리지도 못하는 사건이지만, 언급하면 누구라도 알아듣는 역사상 최악의 사건.
인류의 1/3을 지워 버린 백사병은 바로 이곳, 성지 루아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성지 루아에 살던 주민들 대부분이 흰 모래가 되어 무너져 내리면서 이곳은 완전히 죽음의 도시가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인원들도 마저 문밖으로 나왔다. 안젤라가 게벨의 손을 붙잡고 성지 루아에 발을 딛는 순간, 아이작은 익숙한 메시지를 들었다.
[이름 없는 혼돈이 당신을 주시합니다.] [‘안젤라를 성지 루아로 데려가기’ 임무를 완수하였습니다.] [혼돈의 포상이 주어졌습니다.] [다음 세 가지 포상 중 한 가지]‘응?’
안젤라를 성지 루아에 데려온 순간 임무가 완료될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임무 완료 보상 메시지가 갑자기 부자연스럽게 중단되었다. 어색한 침묵도 잠시, 메시지창은 마치 새롭게 가다듬어 적은 것처럼 다시 메시지를 전해 왔다.
[혼돈의 포상이 주어졌습니다.] [‘혼돈의 대리인’ 능력이 강화됩니다.]‘혼돈의 대리인? 이제 와서?’
아이작은 당황했다.
혼돈의 대리인 스킬은 아이작이 가장 먼저 가진 능력이자 발휘한 능력이었다.
바로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튀어나와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잡아먹는 사악한 촉수 부르기’ 능력이다.
아이작이 거의 죽을 위기에 처해야만 나오는 것이라 어떤 위험부담이 있을지 몰라 거의 쓰지 않았는데, 이제 와서 이 능력이 강화된다는 것은 미묘했다.
심지어 혼돈의 대리인이 튀어나오고 나면 사실상 주변에 정체를 들키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아이작은 이름 없는 혼돈이 원래 주려던 보상까지 정정하면서 이 스킬을 강화했다는 사실이 신경 쓰였다.
‘결국 쓰게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아이작이 만나본 이들 중 가장 강대한 적을 상대하러 가는 길이기는 하다.
아이작은 지금까지 그토록 강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엘릴이나 등대지기를 어떻게 상대할 수 있을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불사 황제 또한 신격인 것을 생각하면 모든 가능성이 희박할 뿐이었다.
‘그럼 이 스킬이 어떻게 강화된 거지?’
아이작은 혼돈의 대리인 능력을 확인했다. 그리고 한층 더 황당한 기분에 빠졌다.
[혼돈의 대리인] [이제 당신은 세상의 문을 여닫을 열쇠를 가질 자격이 생겼다. 가서 취하라.]이전보다 훨씬 더 짧고 간단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설명이었다.
이전에는 아이작에게 상처를 입히는 행위가 더 큰 문을 여는 행위라고 적혀 있었다. 그 뜻은 ‘아이작에게 큰 상처가 생기면 촉수가 튀어나와 다 잡아먹는다’는 것이었다.
‘그럼 이 설명은…… 마치 내가 마음대로 촉수를 불러낼 수 있다는 말처럼 들리는군.’
그가 이해한 것과 실제 효과는 조금 다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코 사람들 앞에서 촉수를 꺼낼 생각이 없는 아이작은 복잡한 기분이 들 뿐이었다.
***
“……일단 빨리 움직이도록 하지요. 월식군이 우리를 먼저 발견하거나, 불타는 처녀가 성지 루아를 완전히 구워버리는 상황이 올 때까지 기다리고 싶진 않으니.”
아이작과 이사크레아 성기사단은 조심스럽게 골목길을 따라 움직였다. 성기사들은 일단 아이작이 앞장서니 따라 움직이긴 했지만, 어디로 가는지는 알 수 없었다.
로튼해머가 아이작에게 속삭이듯 물었다.
“그런데 불사 황제를 어떻게 상대할 생각이지? 불사 황제는 돔 위에 있지 않나? 아까 봤을 때는 그런 거 같았는데.”
아이작은 고개를 돌려 뒤따라오는 안젤라를 바라보았다. 이 말 없는 소녀는 깊고 신비한 눈으로 그저 아이작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이작은 그 눈을 바라보다가 담담히 대답했다.
“불사 황제가 제게 올 겁니다.”
“불사 황제가……?”
“불사 황제는 저를 막겠다고 했지요. 제가 미다스의 손으로 가고 있다는 걸 알면 반드시 막으러 올 겁니다. 저는 불사 황제를 막을 테니, 그때 안젤라를 미다스의 손까지 데려가세요.”
아이작은 그렇게 말하며 로튼해머에게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리고 그걸 아무도 손에 넣지 못하게 해 주십시오. 파괴할 수 있다면 파괴하고, 들고 도망칠 수 있다면 도망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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