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426)
426화. 아름다운 가죽 아래 (1)
두두두두두─
말발굽이 대지를 때리는 소리가 오크들의 가슴을 두들겼다.
오크들은 지구력 좋고 초원의 잡초도 잘 먹는 자신들의 말을 좋아한다.
하지만 엘릴 왕국의 말들은 덩치가 크고, 무겁고, 겁 없는, 오로지 전장에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 낸 군마다. 말발굽 소리도 그만큼 우렁찼다.
전장에서 나팔 불고 북 치는 취향만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엘릴 기사들의 말발굽 소리에서 오크들은 벅찬 감정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꼈다.
“전사로군.”
아틀란 역시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그는 황천의 활시위를 재면서 에델레드에게 살짝 감탄했다. 서쪽에 기사 왕국이 있다고 듣긴 했지만, 아이작 이래 맞수라고 할 만한 이를 만나지 못했다. 그런데 드디어 전사다운 전사를 만난 것이다.
엘릴의 왕이라는 것은 알지 못했지만, 상당히 지위가 높은 자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황천을 막아내고 있다는 것은 천사의 가호를 받고 있다는 뜻일 테니.
‘심지어 기수도 평범한 자가 아니다.’
아틀란은 리안나 역시 눈여겨보았다.
스치는 것만으로도 팔다리가 날아가고도 남을 황천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리안나는 기가 막히게 에델레드가 공격하기 좋은 위치, 둘러싸이지 않고 돌파할 수 있는 맹점을 찾아내 말을 몰았다.
오크들도 감탄할 만한 배짱과 실력이었다.
‘말과 기수, 전사가 한 몸처럼 혼연일체를 이루었군. 부러운 조합이야.’
꽈드드득, 퉁! 또 한발, 황천의 화살이 에델레드를 향해 날아갔다. 이미 네 번이나 화살을 쳐낸 에델레드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화살을 퉁겨냈다.
이제 서로의 얼굴이 보일 정도의 거리였다.
“칸이시여, 일단 뒤로 물러서면서 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케식 하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확실히 그게 더 상식적인 전술이다. 오크들의 기마 궁술은 훌륭하다는 수준을 뛰어넘는 적중률을 자랑한다.
멀어지면서 계속 황천을 쏜다면, 아무리 명천사가 가호하는 기사라 할지라도 버텨낼 재간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틀란은 그러지 않았다.
“아니, 됐다. 적장이 진중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난동을 부리는데 내가 물러날 수는 없지.”
칸은 지도자이자 신의 선택을 받은 신앙의 수호자다. 쉽게 물러나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특히 저 엘릴 기사를 상대하기 위해 오월의 검을 만생자에게 견제해 달라고 부탁한 참이다.
아틀란은 황천을 등에 메고 한 쌍의 만곡도를 뽑아 들었다. 애당초 황천은 강력한 무기지만 아틀란이 즐겨 사용하는 무기는 아니다.
그의 진짜 무기는 명천사 만생자가 선물한 이 만곡도였다.
“어떻게든 접근하면 될 거라고 생각한 건가? 그렇다면 큰 착각이다!”
두두두두두! 마침내, 에델레드와 리안나가 탄 말이 최후의 방어선을 뚫고 돌격해 들어왔다. 그 기세가 얼마나 험악한지 속도가 전혀 줄어들지 않고 그대로 케식 하나를 짓밟아 버릴 지경이었다.
“칸!”
에델레드가 투구 속에서 벼락같은 눈빛을 발하며 포효했다. 그의 검, 갑옷,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무수한 엘릴 기사들의 함성을 들으며 아틀란도 그의 정체를 직감하고 화답했다.
“왕.”
그 이상의 인사는 필요 없었다. 에델레드는 그대로 기세를 몰아 아틀란에게 들이닥쳤다.
***
“엘릴! 엘릴! 엘릴!”
왕과 칸이 맞부딪친 순간, 기사들의 연호는 더욱 커졌다.
하지만 에델레드는 조급증을 느꼈다.
지금 기사들의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는 아틀란의 목을 최대한 빨리 베어야 했다. 하지만 이미 에델레드의 무지막지한 힘을 본 아틀란은 정면으로 부딪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았다.
캉, 카라라라락, 까각!
반인반마인 아틀란은 말에 탄 에델레드와 대등할 정도로 덩치가 컸으며, 말에게 기대하기 어려운 절묘하고 정교한 움직임이 가능했다.
아틀란은 에델레드와 부딪치는 동시에 바닥으로 미끄러지면서 말의 무릎을 베었다.
리안나는 재빨리 뛰어올라 공격을 피했다. 하지만 이곳은 적진 한복판이었다. 케식들이 기다렸다는 듯 창을 내질러 말의 동선을 차단하면서 몸을 찔렀다.
말이 기세를 죽이지 못하고 고꾸라지자 둘은 급히 뛰어내렸다.
케식들이 에델레드와 리안나를 포획하기 위해 투망을 던졌다. 그러나 빠르게 뒤따라온 엘릴 기사들이 난입하면서 순식간에 전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곳곳에서 난전이 벌어졌다.
“엘릴! 엘릴! 엘…….”
쾅, 우드드득! 아틀란은 자신을 향해 들이닥치며 창을 내지르던 기사를 붙잡아 그대로 바닥에 내리꽂았다. 머리가 사라진 기사는 부르르 떨다가 축 늘어졌다. 에델레드 역시 자신의 몸을 휘감은 투망과 함께 가까이 다가온 케식을 단숨에 반으로 쪼개 버렸다.
명천사의 후광을 받고 있는 두 사람을 상대할 수 있는 이는 서로뿐이었다. 자연스럽게 공간이 만들어지면서 둘을 위한 전장이 생겼다.
아틀란은 에델레드를 보며 히죽 웃었다.
“급한 건 자네 아닌가, 왕? 먼저 오시게.”
에델레드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달려들었다. 적들 한복판에 고립된 것은 엘릴 기사들이다. 투할린이 이끄는 여명군이 칸의 군대를 차근차근 무너뜨리며 다가오고 있겠지만, 언제 올지는 알 수 없었다.
쾅, 쿠쿵! 칼드부흐와 만곡도가 부딪치면서 벼락이 튀는 듯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에델레드는 칼드부흐를 막아낸 아틀란을 보면서 경악했다.
아틀란은 아이작조차도 감탄했던 괴력을 가진 사내다. 에델레드가 사자 기사의 힘을 빌려도 아틀란에게 칸으로서의 힘과 명천사의 축복이 있는 이상 난적일 수밖에 없다.
에델레드는 조급증을 느끼면서 거칠게 검을 휘둘렀다. 지금 이 시간에도 기사들이 죽어가고 있다. 그들을 전장에 끌고 온 것이 자신인 이상, 살려 보낼 의무도 에델레드에게 있었다.
쾅, 쿠쿵. 아틀란과 에델레드가 무기를 맞부딪치는 것만으로도 주변이 충격파에 밀려나고 살기에 살갗을 베일 지경이었다.
그러나 아틀란은 눈살을 찌푸렸다.
‘강해. 강하지만…… 어리군.’
돌격해 올 때 기대했던 실력은 리안나라는 걸출한 기수 덕분인 것 같았다. 에델레드는 사자 기사라는 강한 명천사의 힘을 빌리고 있었지만, 자신의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그 힘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사실 당연한 결과였다. 살아온 세월과 경험의 격차 자체가 두 배 이상이다. 거기에 에델레드는 청년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애송이고, 아틀란은 육체의 최전성기를 맞이한 노련한 전사다.
가끔 날카롭게 들어오는 검기가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검기라는 사기적인 힘도 축복받은 만곡도로 막아 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빨리 전투를 끝내야 한다는 조급증 탓인지 자꾸 치명적인 부위만을 노리려 들어서 오히려 막아 내기 쉬웠다.
‘결국 아무리 검이 날카로워도 닿지 못하면 의미가 없지.’
쉭, 서걱! 그때 아틀란은 에델레드의 날카로운 검기가 목을 스치는 것을 가까스로 피했다.
순간 아틀란의 이마에 식은땀이 솟았다.
“뭐야?”
에델레드는 아틀란의 의미를 알 수 없는 질문을 알아듣지 못했다. 대신 그는 몰입한 듯 재차 검을 휘둘렀다.
턱, 터텅! 아틀란은 재빨리 만곡도를 교차로 찔러 넣어 공격이 제대로 발휘되기 전에 힘으로 찍어 눌렀다.
‘공격이 끝까지 이루어지게 하면 안 된다.’
아까는 분명히 여유롭게 피할 수 있던 공격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슬아슬했다. 아틀란과 에델레드가 싸운 시간은 극히 짧은 시간이지만, 그 사이 에델레드는 ‘성장’한 것이다.
아틀란은 이런 말도 안 되는 실력 향상과 기교를 딱 한 사람에게서밖에 보지 못했다.
‘세상에 그런 괴물이 하나 더 있다고?’
“이놈!”
에델레드는 칼이 봉쇄된 것에 분노한 듯 소리치며 거칠게 떨쳐냈다. 아틀란의 몸이 들썩일 정도의 힘이었다. 다음 순간, 에델레드의 검이 기묘한 각도로 움직였다. 이삭 검술: 여덟 갈래가 발동하면서 사나운 기세가 아틀란을 물어뜯기 위해 달려들었다.
텅, 텅, 텅, 텅! 아틀란은 침착하게 하나하나 공격을 튕겨내며 조금씩 물러섰다.
확실했다. 이건 성배기사, 아이작의 검술이다.
그가 보여 주었던 그 괴물 같은 위력의 검술을 떠올린 아틀란은 등골이 서늘해졌지만, 역시 아이작과 비교하면 미숙한 감이 보였다.
아틀란은 이를 악물고 마지막 공격을 가하는 에델레드를 향해 파고들었다. 에델레드에게 불운한 점이 있다면, 아틀란은 이미 이 검술의 정수를 달성한 자와 겨뤄 봤다는 점이었다.
아이작과 비교하면 모든 공격이 느리고 지루해 보일 지경이었다. 그에게 에델레드는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콰드드드득! 아틀란의 만곡도가 칼드부흐를 후려친 순간, 에델레드가 빈틈을 드러냈다. 아틀란은 주저 없이 말발굽으로 에델레드의 가슴을 후려갈겼다.
성인 남자의 머리통도 날려버리는 뒷발질이다.
에델레드는 순식간에 나가떨어졌다. 칼드부흐로 인해 강화된 갑옷을 입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숨도 쉬기 힘들 정도의 격통이 전해졌다. 갈비뼈가 최소 몇 대는 부러진 듯한 느낌이었다.
“폐하!”
리안나가 급히 달려오려 했지만 어느새 다가온 아틀란이 에델레드의 가슴 위에 말발굽을 올려놓고 칼을 겨누자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아틀란은 에델레드를 바라보며 갈등에 휩싸였다.
‘이건 괴물 새끼다. 그놈이 새끼라도 놓은 건가? 아니면 설마 엘릴의 현신이라도 된단 말인가?’
지금 이 정도면 제대로 성장했을 때 얼마나 대단한 괴물이 될는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어쩌면 세상에 없는 업적을 세우고 명천사의 반열에 오를지도 모르는 또 다른 영웅의 어린 시절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올칸을 위해서, 그리고 이 전쟁의 승리를 위해서 당장 이 괴물을 지금 죽여야 했다.
“너, 성배기사와 무슨 관계냐?”
하지만 동시에, 이 애송이가 얼마나 더 대단한 존재가 될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아틀란은 결국 호기심을 누르지 못하고 물었다. 에델레드는 아틀란의 말을 무시하려 했지만 아이작이 언급된 이상 그럴 수가 없었다.
“내 선생님이시다.”
‘역시 그런가.’
아틀란은 쓰게 웃으면서 만곡도를 날카롭게 부딪쳐 불꽃을 튀겼다.
“물러나라. 네 부족민들을 이끌고 부락으로 돌아가라. 지금 물러난다면 무사히 돌아갈 수 있도록 배려하지.”
***
에델레드는 아틀란이 무슨 속임수를 쓰는 건가 의심했다.
하지만 아틀란이 굳이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었다. 아틀란의 실력이 자신보다 우위라는 것은 분명했고, 그의 기사들은 완전히 포위당한 상태였다.
아틀란이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었다.
‘돌려보내 주겠다고?’
에델레드의 시선이 쓰러지고 죽어 가는 기사들을 향했다. 치열하게 싸우면서도 자신을 구하려 하는 리안나와 호위 기사들을 보았다.
시선을 낮추고서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이미 죽은 기사들, 진창을 구르며 고통을 호소하는 기사들, 팔다리 어딘가를 잃은 채 기어다니는 기사들.
말 위에서는 보기 힘든, 명예와 용기와 거리가 먼 풍경들.
‘이 한심한 작자들, 고향의 밀밭과 가족들을 두고 뭐가 좋아서 이렇게 먼 곳까지 와서 죽음을 자초하는가?’
에델레드는 명예와 용기를 쫓아 달려오다가 고꾸라진 기사들을 보며 그들의 어리석음에 슬픔을 느꼈다. 에델레드는 여전히 기사가 싫었다. 그들이 이 먼 타지에서, 오직 명예를 얻고 용기를 증명하기 위해 기꺼이 죽을 수 있는 자들이라는 것이 싫었다.
하지만 그들을 살릴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돌아간다고.’
죽을 각오를 하고 시작한 원정이지만, 어떻게든 기사들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하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아틀란이 왜 이런 동정을 베푸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그때, 에델레드의 시선이 성지 루아에 닿았다.
아이작이 목숨 걸고 뛰어든 그 장소에.
‘선생님을 두고 돌아간다고…….’
그 순간, 에델레드는 아틀란의 발을 붙잡았다. 아틀란은 순간 자신의 발에 가해지는 엄청난 압력에 다리가 부러지는 꼴을 막기 위해 재빨리 뛰어 물러났다.
에델레드는 피가 섞인 기침을 격하게 토해내면서도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누가 봐도 정상이 아닌 꼴. 다시 승부를 겨루기는 어려워 보이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아틀란은 그에게서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기이한 기세를 느꼈다.
“모두들 미안하오.”
에델레드는 자신을 따라온 기사들을 향해 속삭였다. 문득 불어온 산들바람이 그의 목소리를 전장의 소란 속에서도 기사들 모두에게 전달했다. 기사들은 자신도 모르게 에델레드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바로 지금, 바로 이곳에서야말로, 나는 친구를 지킬 명예가 필요하오. 이 최후의 전쟁터에서 모두 나와 함께 용기 있게 죽어주시오.”
어디선가 불어닥친 나뭇잎이 사방에 흩날렸다. 오크들은 우르단투 제국에 들어온 이래 맡아본 적 없는 싱그러운 풀잎과 잎새의 산뜻한 공기를 느꼈다. 그리고 동시에 수십만 오크들은 공기를 떨리게 하는 살기를 느끼고 숨을 멈췄다.
[아틀란, 물러나라!]오월의 검을 견제하던 만생자로부터 급박한 전언이 전해졌다.
[저 어린 왕에게 엘릴이 현신했다! 이 미친 것은 정말로 이번 전쟁을 마지막 전쟁으로 삼을 셈인 건가?!]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