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43)
43화. 돈 냄새 (3)
유크하르의 집은 쇠르 중심부에서 약간 빗겨 나간 강변 거리에 있었다. 쇠르를 관통하는 강변에 위치한 이곳은 물류의 중심지이자 수많은 방문객들이 찾는 환락가이기도 했다. 놈의 집은 그중에서도 제일 규모가 큰 집이었다.
“유크하르는…… 이 근처에서 제일 큰 조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쇠르 시장과도 친하다고 들었구요.”
쇠르는 황금우상 상단의 무역 거점 중 하나인 만큼 시장 역시 황금우상의 지배하에 있었다. 점점 이 일이 황금우상 상단과 무관할지 의문이 들었다.
자클렛은 아무래도 아이작의 행동이 내키지 않는 듯했다. 하지만 아이작이 벌인 묘기를 봤을 때, 둘 중 어느 쪽이 더 무서운지 확신하기 힘든 눈치였다.
아이작은 자클렛의 말을 무시하고 유크하르의 저택 정문을 바라보았다.
자클렛 말대로 꽤 늦은 저녁임에도 유크하르의 저택 주변에는 경호원들과 순찰을 도는 경비병들이 심상찮게 보였다. 경호원들은 바르바리들과 다르게 제대로 무장을 하고 있었고, 경비병들은 건드리기가 아무래도 껄끄러웠다.
암시장을 지배하고 있던 암흑가의 큰손을 만나러 갈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이작은 자클렛을 통해 몰래 잠입할 수도 있고, 지힐렛을 이용해 밤중에 은밀하게 숨어들 수도 있다. 혹은 배신자들을 잠입시켜 두건을 씌우고 끌고 나올 수도 있었다.
아이작은 길게 고민하지 않았다.
성배기사답지 않은 짓이었기 때문이다.
아이작은 성배기사답게 저택 정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쾅.
요란한 굉음이 새벽녘 저택을 뒤흔들었다.
“뭐야? 무슨 일이야!”
환락가라고는 해도 다들 잠에 들 새벽이었다. 허겁지겁 마당으로 모여든 경호원들은 바닥에 엎어진 거대한 철문을 보고 경악했다. 방금 그 굉음은 철문이 넘어지면서 난 소리였다. 그리고 그 위를 성큼 아이작이 넘어오고 있었다.
“무슨…… 침입자다!”
경호원들은 서둘러 무기를 꼬나쥐고 아이작을 둘러쌌다. 거대한 철문을 무너뜨렸으니 무슨 힘이 있을지 모른다는 것도 있지만, 다른 누가 또 쳐들어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무너진 정문 쪽을 자꾸 돌아보게 만들었다.
“뭐해! 당장 쳐!”
나름 상급자인 듯한 남자가 외쳤다. 경호원 몇이 아이작을 향해 창을 내질렀지만, 아이작은 간단하게 흘려보내며 창대를 후려치고, 발로 밟아 떨어뜨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못해도 기사급이다! 자작님께 당장 알려!”
기사급이라는 말에 병사들은 둘러싸기만 하고 거리를 벌렸다. ‘검술’은 당연하지만 성기사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도 얼마든지 검술을 단련할 수 있었다. 기사들은 그런 검술을 익힌 자들을 의미했는데, 대부분 일반인을 훨씬 상회하는 능력을 가졌다.
아이작은 병사들이 충분히 마당 밖으로 튀어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저택 안에서는 무슨 연회라도 하고 있었던 건지 제법 잘 차려입은 사람들도 무슨 일인가 하며 나오기 시작했다.
곧 범상치 않은 기세의 사람들과 날카로운 인상의 중년 남자가 나타났다. 아이작은 경호원들이 길을 터주는 것을 보면서 저놈이 유크하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부유한 놈이니 당연히 기사급에 해당하는 경호원도 데리고 있을 것이다.
“너는 뭐하는 놈…….”
“나는 성배기사 아이작이다.”
아이작은 충분히 사람들이 모였다고 판단했을 때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크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모두가 아이작을 주목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목소리는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아이작을 둘러싼 사람들의 눈동자가 급격하게 흔들리면서 술렁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성배기사? 요즘도 성배기사가 있어?”
“아니, 성배기사라고 해도 왜 여기에…….”
성배기사라는 호칭 자체는 전설에서 자주 회자되기에 경호원들이 당황하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아직 아이작의 이름이 퍼지기에는 시간도, 업적도 부족했다.
다만 이 자리에서 적어도 한 사람만큼은 다를 것이다.
아이작은 유크하르가 입술을 깨무는 모습을 자세히 관찰했다. 그러나 그의 침묵을 다르게 해석한 경비대장이 거칠게 외쳤다.
“웬 미친놈이 오밤중에 와서 행패야? 궁수!”
테라스 위에서 대기하던 궁수들이 저마다 활시위를 매겼다. 그러나 유크하르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경비대장이 당황하는 동안 유크하르가 다가왔다.
“유크하르 르벤 자작이요. 성배기사면 밤중에 민가로 쳐들어와도 되는 거요?”
아이작은 입술 끝을 끌어올렸다.
유크하르가 이 바닥에서 그렇게 발이 넓다면 아이작이 성배기사라는 것 정도는 이미 파악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를 죽이는데 경호원을 쓸 수는 없었다.
‘성기사를 도시 한복판에서 죽일 수는 없지.’
쇠르는 백제국 영향권에 있다. 귀족인 유크하르는 당연히 빛의 법전 교인이든 아니든 그런 행세를 하고 있어야 한다.
빛의 법전 교인이 빛의 법전 성배기사를 죽인다면 지옥 직행이다. 죽어서 지옥에 가기 싫다면 배교하거나 바르바리가 되는 수밖에 없는데, 가진 게 많은 유크하르도, 다른 경호원들도 그럴 수가 없었다.
즉, 아이작이 정체를 대놓고 까발리며 들어와도 유크하르는 아무것도 못 하는 것이다.
‘손을 쓴다면 바르바리를 써야 했는데 그 기회는 날렸지.’
그래서 자클렛의 암습이 유달리 철저했을 것이다. 유크하르가 신신당부했을 테니까.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여기서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은 아이작의 목숨뿐이다.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였다.
“이단의 성물을 숨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왔다. 즉시 반납해라.”
아이작의 목적은 처음부터 이것이었다.
***
아이작은 경비대원들을 죽이거나 견제당하는 일 없이 흙발로 유크하르의 저택에 들어섰다.
연회 중이었던 저택은 여기저기 초대받은 듯한 손님과 음식들, 그리고 술잔들이 널려 있었다. 유크하르는 그 분위기를 수습해보려는 듯 연회장으로 나갔다.
“별 일 아닙니다. 여러분. 교단에서 오해가 생긴 듯하여 소란이 벌어졌을 뿐입니다. 계속 파티를 즐겨주십시오.”
고급 옷을 차려입은 손님들은 불안한 듯한 눈빛을 주고받았지만 더 이상 소란이 벌어지지 않는 것을 보고 술잔을 나눴다. 이제 그들의 눈빛은 불안보다는 흥미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그 시선 대부분은 유크하르와 함께 들어온 젊은 성기사, 아이작에게로 향해있었다.
그때 아이작은 연회장에 있던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황금우상 상단의 쇠르 지부장, 캐틀린이었다.
그녀는 놀란 눈으로 아이작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작은 입술에 손가락을 대고 유크하르를 따라갔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유크하르는 아이작을 접객실로 안내했다. 그리곤 들어오자마자 하인들에게 최고급 와인과 술상을 차려오라고 지시했다. 어쩌면 술에 독이 들어있을지도 모른다. 칼 든 병사들더러 난입하라는 지시일지도 모르고.
하지만 아이작은 어느 쪽이든 신경 쓰지 않았다.
유크하르는 아이작의 맞은편에 앉았다.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 성배기사님.”
“아직 업적이라고 할만한 것도 이룩하지 못했는데.”
“왈라이카의 인간사냥꾼들로부터 밤새워 추적당하고도 살아남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게다가 브리엔트 성기사단의 성기사도 일방적으로 꺾었다고요.”
유크하르는 귀족이지만 아이작에게는 정중할 수밖에 없었다. 자작이라는 계급이 낮게 취급되어서가 아니라, 아이작을 인정해 준 교단의 권위를 존중해서였다. 이 세계에서 교단의 권위는 압도적이었으니까.
“아부를 들으러 온 게 아니다. 유크하르.”
하지만 아이작은 고압적인 자세를 유지했다. 예의를 차릴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상대방보다 위에 있는 듯한 태도를 취하는 쪽이 유리했다. 이런 놈들은 자기보다 약하다고 판단하면 금방 말썽을 부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이작의 생각과 달리 유크하르는 그다지 기가 눌리는 듯한 모습이 아니었다. 아이작은 눈살을 찌푸렸다. 정말 찔리는 게 없거나, 아니면 성배기사를 압도할 만한 뒷배경이 있다는 눈치였다.
아이작은 유크하르의 비밀을 찔러보기로 했다.
“네가 가지고 있지? 양치기 목상.”
유크하르는 기가 막히게 내심을 숨겼다. 하지만 아이작의 눈은 속일 수 없었다. 어느새 그의 왼쪽 눈은 혼돈의 눈으로 보랏빛에 물들고 있었다. 혼돈에서 기어 올라온 보이지 않는 촉수가 유크하르의 내면을 훑기 시작했다.
[‘그걸 어떻게?’]***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유크하르는 아이작조차 놀랄 만큼 태연하게 연기했다. 아이작을 경계하는 탓인지 내면에 세워진 마음의 벽이 단단해서 자세히 들여다볼 수는 없었지만, 단편적인 정보만으로 충분했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눈꺼풀 뒤에서 촉수가 기어 올라오고 말 것이다.
아이작은 혼돈의 눈을 거두고 입을 열었다.
“나는 처음부터 양치기 목상을 찾으러 쇠르에 왔다. 그게 어디 있는지는 천천히 수소문해볼 생각이었는데, 이 도시에 로어커스로 난리가 나 있더군.”
“…….”
유크하르의 얼굴에 처음으로 약간의 초조함이 내비쳤다.
당연하지만 아이작은 네임리스 카오스에 있던 모든 성물을 기억하지는 못한다. 다만 게임 클리어에 필수적인, 혹은 매우 강력한 성물만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그중에서 양치기 목상은 게임 클리어에 필수적이지도, 강력하지도 않지만 가진 기능이 특별했다.
바로 일정 수치 이하의 정신력을 가진 존재들의 감정을 조종하는 것이다.
보통은 이름답게 짐승들을 통제하거나 적대적인 몬스터들을 우호적으로 만들거나 할 때 쓰였다. 양치기가 양 떼를 통제하듯이 쓰는 물건이다.
하지만 인간처럼 높은 지능을 가진 존재는 통제할 수 없다.
“처음에는 이 사태와 양치기 목상을 연결시키지 못했지. 사람은 양치기 목상으로 통제가 안 되니까. 그런데…… 문득 왜 로어커스일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
“글쎄요. 왜일까요?”
“간단하지. 로어커스는 마법 저항력을 낮추는 효능이 있거든.”
마법 저항력은 마법만이 아니라 신성력에도 영향을 미친다.
유크하르는 우선 로어커스를 고가에 대량으로 사들이면서 유행을 인위적으로 퍼뜨렸다. 물론 그 혼자서 시세를 조종할 정도로 큰돈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욕심은 도미노와 같다.
로어커스를 누군가 급하게 대량으로 사들이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자 온갖 소문이 나돌았다. 로어커스에 새로운 효능이 발견되었다던가, 해외에서 크게 유행하기 시작했다던가.
그러면서 유행에 민감한 상인들도 하나둘 끼어들었다. 온갖 종류의 로어커스들이 쇠르로 밀려들었다. 로어커스가 가진 본연의 능력, 마법 저항력 약화는 구근이든, 개화 형태든, 말려 찧은 것이든 차를 탄 것이든 상관없었다.
쇠르가 로어커스 향으로 가득 차자 자연스럽게 도시 전체의 마법 저항력이 약해졌다.
그 말인즉슨, 평소라면 이런 짓거리에 동참하지 않았을 놈들도 조금씩 동참하게 되었단 소리다. 그리고 양치기 목상으로 군중 의식에 욕심을 부추기면 그만이다.
하지만 진짜 유행을 폭발시키기 위한 단계는 바로 그다음이다.
황금우상 상단을 이 유행에 끼우는 것이다.
그때 문이 열리고 하녀가 술병과 잔 두 개를 가져왔다. 여러 가지 다과들이 테이블에 놓였지만 아이작도 유크하르도 그곳에 시선을 두지 않았다.
“나가서 기다릴까요?”
“금방 치울 것 같으니 기다리거라.”
유크하르의 지시에 하녀는 문 옆에서 대기했다. 하지만 아이작은 하녀를 가만히 주시했다. 평범한 하녀라기엔 단련한 사람 특유의 움직임과 묵직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독과 병사, 둘 다 준비한 것 같았다.
하지만 아이작은 태연히 술병을 기울여 유크하르의 잔에 따랐다.
“파티가 꽤 성대하더군?”
“…….”
이 최고급 와인, 손님들에게 나가는 모든 술상에도 달콤한 향을 가진 로어커스가 첨가되어 있었다. 유크하르가 충동질하고자 한 진짜 대상들은 군중보다 큰돈을 가진 거상들과 권력자들이었다. 그들에게는 특별히 마법 저항력을 크게 떨어뜨리기 위해 직접 로어커스를 탄 술을 먹이고 욕심을 부추긴 것이다.
그 결과 유크하르는 크게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쇠르, 나아가 제국 전체를 삼킬 수도 있는 대폭등의 서막을 열 수 있었다.
“자, 그러면 여기서 문제.”
아이작은 테이블을 술이 가득 담긴 잔을 톡톡 두드리면서 말했다.
“사실 로어커스가 유행하는데 아무런 이유가 없었고, 성물에 의해 조종당했을 뿐이라는 것을 밝히면 어떻게 될까?”
아이작의 손가락이 툭, 술잔을 밀어 쓰러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