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5)
5화. 포식 (3)
촉수의 존재를 들키면 죽는데, 쓸모 있고 없고는 둘째 문제다.
아이작은 지금이라도 빛의 법전의 눈을 피해 도망쳐야 하나 생각했다. 모처럼 주어진 두 번째 삶이 고작 화형대 위의 잿더미 엔딩으로 끝나는 꼴은 원치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어디로 도망친단 말인가?
‘불사교단조차도 이름 없는 혼돈을 쫓는다고!’
아이작은 한참 동안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이내 자신이 무언가를 해야 할지 깨달았다.
‘그냥 잘 숨기는 수밖에 없겠군.’
어느 교단으로 가도 들키면 위험하기는 매한가지다.
하지만 빛의 법전은 포용력이 넓은 덕분에 규모가 크고 가장 많은 신도를 거느리고 있다. 정체를 숨기기 쉬운 것이다
성기사도 신앙심을 증명해야 하는 직업이지만 수도사만큼 까다롭지는 않다. 수도사처럼 골방 속에 틀어박혀 주구장창 공부만 하는 직업이 아니기 때문에 개인의 단련을 더 중요시했다.
‘기적을 부여받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교단의 권위 정도는 이용할 수 있을지도…….’
뿐만 아니라 먼 곳에 있는 이교도의 영토를 침공하면 그 땅의 영주가 될 수도 있다. 물론 교단에 헌납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결국 교단이 그 먼 곳을 무슨 수로 통치하겠는가. 교단에게는 명예만 안기고 실권은 자신이 갖는 것이다.
물론 수도원을 세우거나 적당한 액수를 지불해야겠지만.
일단 성기사가 되기 위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다 얻은 다음, 숨길 수 있을 때까지 숨겨 보자. 도주는 들킨 다음에 해도 된다.
아니, 생존을 위해서라도 성기사가 되어야만 했다.
나무는 숲속에 숨기라고 했다.
그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성기사 중의 성기사가 된다면 누구도 자신을 이름 없는 혼돈의 신도라고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성물을 찾아내고, 성지를 되찾고, 불사교단까지 아예 박살을 내버리자.
그러면 아무도 자신을 이름 없는 혼돈의 촉수 괴물 같은 것으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아이작은 자신이 가진 모든 특전과 재능, 정보들을 총동원해서 성기사가 되고 말겠다고 결심했다. 아니,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그래야만 했다. 결국 이 촉수가 자신의 인생을 꼬아 놓을 거라면 차라리 빛의 법전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는 쪽이 안전하다.
‘직접 몸으로 부딪쳐 싸워야 하니 잘 단련해야겠지만…… 그건 아직 어리니까 충분히 시간 있어.’
이름 없는 혼돈의 신도가 빛의 법전 교단 안에서 성기사가 된다.
아이작은 생각하면 할수록 괜찮은 생각이라고 느꼈다.
들키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
“쥐 사냥을 돕겠다고?”
“예.”
아이작은 어차피 마음먹은 이상, 꾸준하게 단백질 섭취를 보조할 수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평범한 수도사들은 감자 한 개로도 만족하고 살지만 아이작은 아니었다.
‘촉수로 맛을 느끼지는 못해도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할 좋은 기회다.’
아이작의 몸이 또래의 다른 아이들에 비해 왜소하지는 않았다. 즉 토양이 나쁜 것은 아니다. 충분한 영양만 섭취할 수 있다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지켜본 결과, 포식한 대상은 모두 아이작에게 천천히 ‘소화─흡수’된다. 며칠간 화장실에서 변을 보면서 확인해 봤지만 털이나 이빨, 발톱 같은 것은 나오지 않았다.
말 그대로 완전 흡수한 것 같았다. 덕분에 혈색은 몰라볼 정도로 좋아지고 더 이상 허기에 시달리지도 않았다.
“꼬맹이 손을 빌릴 정도로 바쁘진 않은데. 쥐잡이가 재밌어 보이냐?”
“쥐잡이 말고도 시간 되는대로 다른 일도 도울게요.”
게벨이 수도원에서 도맡고 있는 일들은 상당히 많다. 수도사들이 워낙에 생활력이 없기 때문에 어지간한 잡무는 게벨이 처리하고 있을 정도였다. 안 그래도 일손을 부탁할까 했는데 때마침 아이작이 딱 맞춰 찾아온 것이다.
“꼬맹이 데리고 다니려면 수도사님 허락이 필요하다. 말씀은 드렸냐?”
“알렉 수도사님께 말씀드렸어요.”
어차피 텃밭에서 일을 하는 것도 실제로 크게 도움이 된다기보다 아이들에게 ‘노동’ 그 자체를 가르치는 것이 목적이다. 오히려 게벨이 하는 일은 험하고 궂은 일이 많아 아이들이 기피할 정도였다.
하지만 아이작은 아니었다.
‘지금 내가 건강과 실력, 모두를 챙길 수 있는 방법은 게벨을 따라다니는 것뿐이다.’
아이작의 눈이 욕심으로 번쩍거렸다.
쥐잡이도 쥐잡이지만, 게벨은 성기사다.
성기사는 단순히 축복뿐만 아니라 검술 실력만으로도 일반병 열쯤은 상대할 수 있어야 정식 성기사로 취급해 주었다.
‘더군다나 전장까지 경험한 실전경험 풍부한 노장? 이걸 놓치면 머저리지.’
단순히 짬으로만 생각해도 평범한 성기사를 넘어 지휘하는 단계, 가르치는 단계까지 올라갔을 가능성도 풍부했다.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며 조금이라도 더 친해지고 인연을 쌓는다면 성기사가 되는 길에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게벨은 크게 코웃음 치고는 쏘아붙였다.
“방해되면 엉덩이 맞을 줄 알아라. 알겠어?”
“네!”
아이작은 그날부터 게벨을 따라다니며 일을 도왔다.
쥐 사냥이라고는 해도 정확히 따지자면 덫에 잡힌 쥐들을 수거하거나, 어디선가 게벨이 수북하게 잡아 온 쥐들을 땅에 묻는 일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 쥐들을 촉수에게 먹이는 것이었지만.
고된 일도 많이 했지만, 텃밭에서 일하거나 하나 마나한 잡무를 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오히려 아이작에게는 텃밭 일보다 간단한 일이었다.
뭣보다 하루하루 근육이 붙는 느낌과 일이 수월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감각이 그를 들뜨게 만들었다.
***
게벨은 그런 아이작의 모습을 꾸준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게벨은 사실 아이작을 수도원에 데려온 이후 쭉 관찰해 왔다. 한 달간의 평가는 ‘예쁘장하지만 말이 없고 조용한 소년’이 전부였다.
‘마을 주민들이 전부 살해당했는데 살아남은 유일한 아이…… 하지만 칼센도, 불사교단의 족속들도 모조리 쫓기듯이 사라져서 뭔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냥 운이 좋았던 건가?’
아이작이 살아남은 것엔 뭔가 다른 이유가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덕분에 게벨이 아이작에게 품은 인상은 그냥 운 좋은 생존자, 그뿐이었다. 만약 뭔가 더 있었으면 했던 게벨은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난 몇 주 사이, 아이작의 태도가 뭔가 달라졌다.
‘꽤 하는…… 아니, 잘하잖아?’
지금까지는 단순히 상황 파악이었을 뿐이라는 것처럼 다른 사람이 된 것이다.
게벨은 아이작에 대한 평가를 몇 단계나 끌어올릴 수밖에 없었다. 적당히 열심히 하는 모습만 보여도 긍정적으로 평가해주려고 했는데, 놀랄 만큼 잘 해내고 있었다.
이때까지 그의 일을 돕겠다고 나선 아이들은 많았다.
공부하기 싫어서, 밭일이 힘들어서 등등.
하지만 게벨이 하는 일은 밭일보다 더럽고 고된 일이 많다. 그러면서 눈에 띄지는 않으니 인정받기는 힘든 일이었다. 그런데 아이작은 매일 공부까지 빼먹지 않고 게벨의 뒤를 따라다녔다.
14살인데도 글자를 읽고 수 계산도 할 줄 안다면 머리도 나쁘지 않은 편이다. 나중에 더 편한 일이나 공부에 집중할 수도 있는데, 아이작은 남는 시간을 모두 게벨을 돕는 데 쏟고 있었다. 덕분에 게벨은 어느새 부담을 꽤 덜고 있었다.
더 놀라운 점은 아이작이 게벨로부터 계속해서 무언가를 배우려 한다는 것이었다.
아이작은 단순한 것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원리와 이유를 알려 했다. 게벨로서는 귀찮을 법도 했지만 한 번만 가르쳐도 나머지를 다 알아들을 정도였기 때문에 어려움이 없었다.
나무를 패는 법, 쥐덫을 놓는 법, 짐승을 쫓는 법, 말 편자 관리, 약초 구분 등등 아이작은 한 번만 봐도 쑥쑥 익히고 있었다.
물론 이것만으로는 ‘칼센에게서 살아남은 생존자’에 어울리는 능력이 있다고 할 수는 없었다.
아이작은 나이에 걸맞지 않은 성숙함과 재주를 가진 아이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게벨은 아이작이 마음에 들었다.
어느새 그는 이제 아이작을 조수처럼 부리는 데 익숙해지고 있었다.
한편, 다른 아이들은 따로 놀기 시작한 아이작을 불편한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
아이작은 갑자기 아이들 사이에 들어와서 겉돌던 아이였다. 그런데 그들과 어울리려는 노력은커녕, 어른들하고만 어울리고 아이들은 아예 무시하다시피 했다. 수도사들은 의젓한 아이작을 좋아하니 자연스레 질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애초에 아이작은 또래 아이들 사이에서의 평판에 관심이 없었다.
당장 생존을 위해 모든 것에 매달려도 모자란 상황이다. 그 와중에 애들의 눈치까지 볼 이유가 없었다.
그는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오직 자신만을 위한 공부를 이어가고 있었다.
바로 촉수에 대한 공부였다.
‘이 빌어먹을 것이 멋대로 튀어나오는 걸 막으려면 어떻게 써먹을 수 있고 통제할 수 있는지 알아야 해.’
그간 아이작이 촉수에 대해 알아본 바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하나, ‘소화’는 바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자고 일어나면 다 소화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거의 며칠 동안 배도 고프지 않고 ‘포식’을 통해 얻은 능력도 사라지지 않았다. 덕분에 아이작은 배가 고프지 않은데도 억지로 밥을 먹어야 하는, 다소 고역스러운 상황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바로 이 상태가 유지되는 동안, 아이작은 포식 대상에게서 흡수한 능력을 보유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뭘 먹어도 체내에 상당히 높은 효율로 흡수된다.
당장 체감하기 어려운 효과기는 했지만, 이 시대에 사람들은 부족한 영양과 사소한 원인으로도 픽픽 죽었기 때문에 상당히 유용한 특전이었다.
둘, ‘촉수’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이작에게 호의적이다.
몸속에서 피부를 가르고 튀어나오는 촉수가 호의적이라니 이상했지만, 실제로 촉수들은 아이작에게 친절했다. 그가 무의식중에 멀리 떨어진 물컵을 집으려고 손을 뻗은 순간, 촉수가 튀어나와 물컵을 잡아 가져다주기도 했다.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 없었기에 다행이지, 아이작에게는 심장이 떨어질 뻔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덕분에 촉수를 ‘포식’할 때 외에도 꺼낼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름은 스킬처럼 되어있었지만, 사실상 또 하나의 팔이나 다름없었다.
‘이걸 어떻게 해야 잘 써먹을 수 있지?’
단순히 써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였다.
이름 없는 혼돈은 빛의 법전은 물론 불사교단에서조차 적대하는 존재다. 아이작은 언제고 정체가 들통난다면 홀로 살아남아야만 했다. 결국 믿을 구석은 자신뿐이다. 그리고 이 촉수는 미우나 고우나, 결국 자신과 운명공동체였다.
알렉 수도사는 ‘이름 없는 혼돈’이 아직도 지평선 너머에서 이 세상에 침입하기 위해 촉수를 넘실거린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그 촉수가 넘실거리면서 쥐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그래도 이놈이 없으면 나는 감자나 씹고 있어야 했을 테니.’
우득, 우드득.
아이작은 텅 빈 구덩이 앞에서 촉수가 쥐를 삼키는 모습을 보았다. 촉수는 어쩐지 이전보다 더 굵고 가닥수도 늘어난 것 같았다. 아이작이 건강해지면서 촉수도 강해졌다.
‘우선 이걸 제대로 통제하는 법부터 배워야 해.’
촉수가 사라지길 원하자 촉수는 재빨리 피부 안으로 들어갔다. 사라지길 바랄 때 제때 사라지는 것은 다행이지만, 나타나는 순간은 통제하기 힘들었다.
‘주로 나를 돕고 싶을 때, 혹은 도움이 될 것 같을 때, 아니면 내가 위기에 처했을 때…….’
아이작은 문득 촉수가 보기보다 멍청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저 조건을 다 달성할 때마다 촉수가 튀어나왔다면 아이작은 이미 진작에 들켜서 매달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다. 그 말은 촉수도 나름 눈치가 있다는 뜻이다.
나름의 자의식이 있다는 뜻이기도 했고.
그게 좋은 소식인지 나쁜 소식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당분간은 촉수의 눈치를 믿으면서 통제할 방법을 찾는 수밖에 없겠군.’
***
쥐 한 마리가 쥐덫 미끼 근처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녀석은 미끼에 흥미가 있는 듯 냄새를 맡으며 서성였지만, 망설이다가 이내 포기하고 돌아섰다. 이미 주변에 동족이 죽은 냄새가 가득했던 것이다.
달칵.
순간 놈은 뭔가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리고 맹렬하게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순간 바람을 가로지르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몸이 꿰뚫렸다.
콰드득.
촉수에 꿰뚫린 쥐는 바르르 떨다가 이내 축 늘어졌다. 아이작은 쥐를 씹어 삼키는 촉수를 보며 떨떠름한 표정을 했다.
‘확실히 전보다 굵고 길어졌군.’
단백질을 섭취하면 할수록 아이작의 몸만 건강해지는 것이 아니다. 촉수도 더 굵고 길어지고 있었다. 다만 아이작의 몸은 체질적으로 쉽게 건강해지지 않는 반면, 촉수는 빠르게 더 굵고 길어지고 있었다.
‘이건 신앙 능력과 연관이 있을지도.’
촉수도 엄연히 이름 없는 혼돈 신앙이 부여한 권능이다. 레벨에 걸맞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위력을 보이는 것도 네필림 특유의 높은 신앙 수치와 연관이 있을 것 같았다. 일단은 지금처럼 무기가 없을 때 써먹기 좋아 보였다.
아이작은 쥐를 먹어 치우면서 덫을 살펴보았다.
게벨은 쥐들이 다닐만한 길목에 미끼를 설치하고 먹는 순간 조이는 올가미 덫, 그리고 큰 통에 기름을 발라두고 안에 미끼를 두는 덫을 즐겨 사용했다.
무난한 덫이었다. 이미 통 안에는 서너 마리의 쥐들이 잡혀서 역청에 잠겨 있었다.
‘이전보다 수가 많이 줄었어.’
지금까지는 성과가 제법 좋았지만 이제 슬슬 약빨이 떨어지고 있었다.
쥐의 수 자체가 많이 줄기도 했지만, 영악한 쥐 떼들이 덫을 피해 가는 법을 알아내기 시작한 탓이다. 쥐가 덜 잡힌다는 것은 단백질 공급량이 줄어든다는 뜻이었기 때문에 아이작은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했다.
‘쥐덫의 상태를 좀 살펴봐야겠군.’
아이작은 덫을 관찰하다가 살짝 손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