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62)
62화. 일인공성전 (2)
원래 세 갈래 정도로만 나타나던 궤적이 다섯 갈래로 늘었다. 강철로 이루어진 갑옷을 베는 위력도 위력이지만, 터져 나온 폭음만으로도 고막이 나가 넋을 잃은 기사도 있었다. 왜 게벨이 이 기술이 난전에서 유용하다고 한 건지 알 것 같았다.
얼추 게벨이 쓰던 것보다 약간 아래 정도로 생각되었다.
‘그간 알게 모르게 쌓인 실전 경험이 위력을 더해 준 건가?’
물론 여전히 몸에 부담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다행히 갑옷 안에 몸을 감싸고 있는 촉수들이 완충재가 되었는지 충격을 경감시켜 주었다.
아이작은 온몸이 삐걱거리면서 비명 지르는 것을 느끼면서도 웃었다.
주변의 기사들이 모두 자신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숨차니까 너희들이 와라.”
아이작은 칼을 들어 기사들을 겨냥했다. 기사들은 폭음의 충격에서 벗어나 비틀거리면서 다가오기 시작했다.
가장 가까이 있던 놈이 아이작을 향해 플레일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백작님! 성기사님!”
그때 요란한 말발굽 소리와 함께 르하르트 군의 기사들이 들이닥쳤다. 플레일을 휘두르려던 헨드락 영지 기사는 순식간에 말발굽에 짓밟혀 곤죽이 되었다. 후방에 있던 기사들이 합류하고, 처음의 기습 충격에서 벗어난 기사들도 병사들을 규합해 반격에 나선 것이다.
어설픈 군대라면 처음 기습의 충격만으로도 와해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르하르트가 기사들을 헛 키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그들은 흩어진 조직을 규합해 반격하고 있었다. 아이작이 기세를 꺾은 덕분에 나올 수 있는 반격이었다. 그가 나서지 못했다면 초반의 기습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와해되었을 것이다.
르하르트 군이 조직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하자 결국 헨드락 기사들은 그 힘과 기세로도 점차 밀려나기 시작했다.
“백작님은 무사하십니까!”
헨드락 기사들을 방패 벽과 긴 창으로 몰아세우고, 플레일을 든 기사를 짓밟은 기사가 다가와 물었다.
이름은 기억 안 나지만 르하르트 기사단의 단장이라고 했던가 그랬던 것 같았다.
“넋이 나가긴 했는데 괜찮습니다.”
아이작은 여전히 충격에 빠져 있는 르하르트가 흑마 위에 올라타 있는 것을 보았다. 정신을 차리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았다.
“우선 백작을 데리고 빠져나가십시오. 적들을 정리해야겠군요.”
아이작은 난전이 벌어지는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헨드락 기사단은 비정상적인 투지와 완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숫자가 적고 제대로 된 조직력을 이루지 못했다.
그들이 진압당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왜지?’
아이작은 이 와중에도 후퇴하라는 지시를 내리지 않는 헨드락 성채를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이대로 가면 소중하게 키운 헨드락 기사들은 전멸이다. 벡스터의 처형과 함께 기사들도 같이 치워버리기로 한 건가?
‘버림패로 쓴 건가? 이 정도 충격만 주면 충분하다고?’
결국 헨드락 성채에서 후퇴 지시는 내려오지 않았다. 헨드락 기사단은 기사단장이었던 벡스터 경을 포함해 대부분이 사망하고 일부가 포로로 잡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헨드락 성채 안쪽에는 아이작이 심어 놓은 존재가 움직이고 있었다.
***
헤사벨에 대한 암살 미수 사건 뒤, 아이작은 당연히 손 놓고 있지 않았다.
표면적으론 헨드락 기사단 소속 기사의 암습이었지만, 그 배후에 붉은 성배가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아이작은 르하르트의 부탁대로 기다리는 척하면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지힐렛을 성채 안으로 잠입시켰다. 아이작의 전쟁은 이미 그때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지힐렛은 녹아 흐르는 듯한 모습으로 성벽을 기어올랐다.
헨드락 성채에 숨어든 지힐렛은 벡스터와 카일이 벌이는 촌극도 모두 지켜보았다.
벡스터가 결국 오언의 칼에 목이 베이는 광경도.
이후 헨드락 성은 카일이 다시 장악하게 되었지만, 실권이 카일에게 있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라엘라.’
지힐렛은 그녀를 주시했다.
아이작을 통해 지식을 받은 지힐렛은 헨드락 성채 안에 붉은 성배 클럽의 추종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벡스터의 반란을 진압한 것은 오언이지만 라엘라가 배후에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반란을 진압한 후, 오언은 기사들을 체포해 성채로 끌고 갔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반쯤 미쳐 버린 기사들이 르하르트의 병사들을 향해 돌진했다.
그때 아이작은 ‘벽 속의 쥐’ 능력을 통해 이미 그 모든 모습을 관찰하고 있었다.
다만 라엘라가 좀 더 본색을 드러내게 하기 위해 방치하고 있던 것뿐이었다. 해서 르하르트가 살해당하기 전에 개입하여 막을 수 있었다.
만약 좀 더 일찍 개입했다면 병사들이 당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만큼 라엘라를 처치하기 어려워졌을 것이다.
‘성채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아이작은 지힐렛의 눈과 귀를 통해 적막한 풍경이 계속되고 있는 헨드락 성채를 관찰했다.
기사들을 내보낸 뒤 라엘라는 성채 안에서 뭔가를 계속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힐렛의 몸은 내부를 정탐하기에 적당하지 못했다.
지금도 어디든 숨어들기에는 나쁘지 않지만, 더 자세히 듣거나 보기 위해서는 다른 형태가 필요했다.
구체적으로는 인간의 형태가 필요했다.
마침 지힐렛은 적당한 몸을 찾아냈다.
성벽 아래 구덩이에 버려진 벡스터의 몸뚱이였다.
구덩이 안에는 벡스터 외에도 소수였지만 끝까지 저항한 것으로 보이는 기사나 병사의 시체가 보였다.
하지만 지힐렛은 굳이 벡스터의 시체를 골랐다.
[가죽 아래에: 상대방의 내부를 ‘포식’하고 그 가죽을 당신의 외피로 이용합니다.]한때 아이작에게 주어진 특전 선택지 세 가지 중 하나였지만 포기했던 그 능력이었다. 이제 그 능력은 사도로 승격된 지힐렛에게 부여되었다.
아이작에 의해 재탄생된 후, 지힐렛은 명확한 형태를 가지지 않았다. 기본적으로는 쥐에 가까운 외형이었으나 생전에 비해 체구가 많이 줄어 날렵한 형태였다.
하지만 몸은 수많은 촉수 다발이 얽혀 있는 실타래 같은 꼴이었다. 그 안에 무수히 많은 이빨과 눈을 감추고 있었고, 원한다면 얇은 피막을 형성해 피부 비슷한 것을 만들 수도 있었다.
그 말은, 원한다면 거대한 곰만큼 몸을 부풀릴 수도 있지만, 동시에 딱 사람 크기만 한 외형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지힐렛은 벡스터의 몸 안으로 파고들었다. 누군가 봤다면 그 기괴한 모습에 기겁했겠지만, 시체가 방치된 구덩이를 굳이 들여다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구덩이 안에서 벡스터의 몸을 장악한 지힐렛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
머리가 떨어진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차피 몸은 껍데기일 뿐, 본체는 지힐렛이었으니까.
지힐렛은 촉수들을 이어 머리와 몸통을 연결했다. 표정이 다소 어색할 수는 있겠지만 몸을 움직이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강인하고 단련된 벡스터의 몸을 차지하자 단순히 그 껍데기를 뒤집어쓴 것을 넘어 어느 정도 검술 흉내까지 낼 수 있을 정도였다.
다만 죽었다고 알려진 사람이 돌아다닐 수는 없기에, 정체를 숨겨야 했다.
다행히 성채 안은 전투 준비와 혼란스러운 내부 상황 덕분에 온갖 병장기가 어지럽게 방치되어 있었다.
지힐렛은 굴러다니는 투구 하나 집어 어깨 위 투구 걸이에 씌웠다. 옷에 다소 피가 묻어있긴 했지만 어두운데다 흙먼지투성이였던 탓에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저 평범한 병사처럼 여겨질 뿐이었다.
“이봐!”
지힐렛이 성채 안으로 어떻게 들어갈까 생각하고 있을 때,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계급이 높아 보이는 병사 하나가 지힐렛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아직도 여기서 뭐 해? 매장 작업 중단하고 모이라는 명령 못 들었나?”
지힐렛이 대답을 하지 않자 병사는 더욱 화를 내며 다그쳤다.
“당장 따라와! 전투가 코앞이다!”
지힐렛은 얌전히 그의 뒤를 따라갔다. 피나 흙이 묻은 것도 매장작업 때문으로 오해한 것 같았다. 뜻하지 않게 일이 쉽게 풀렸다.
병사장의 뒤를 따라가 도착한 곳은 성 안쪽의 연회장 같은 곳이었다. 많은 인원들이 모일 수 있는 유일한 실내 공간이었다. 아이작은 지힐렛을 통해 헨드락 성채의 병사 대부분이 그 안에 모여있다는 것을 알아보았다.
‘뭐지? 전투가 코앞인데 연설이라도 하려는 건가?’
하지만 영주인 카일은 보이지 않았다.
카일을 체포하려던 벡스터의 반역은 실패한 데 더해 엉뚱한 자에게 권력이 넘어간 것 같았다.
바로 눈앞에 있는 두 남녀, 오언과 라엘라에게.
병사들도 이 상황이 두렵고 낯선 듯 동요하는 기색이 강했다. 하지만 벡스터의 목이 달아난 데다, 카일 헨드락이 공들여 키우던 기사들도 성채 밖에서 전멸하는 꼴을 보았다.
누구도 이 상황에서 나서서 불만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그때 라엘라가 일어섰다.
술렁이던 병사들이 일제히 침묵했다.
라엘라는 천천히 병사들 사이를 가로지르더니 테이블 위로 올라갔다. 병사들은 눈앞에서 맨발의 라엘라가 걷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정확히 병사들 한가운데 선 라엘라는 그 무수한 시선 속에서 속삭였다.
“경외하라.”
숨소리조차 멎은 듯한 침묵이 찾아왔다.
오직 들리는 것은 자기 자신의 심장 박동뿐이었다. 아니, 몸 안의 피가 흐르는 소리까지도 들려올 정도였다. 그러다 문득, 지힐렛은 그 소리가 너무 조용해지거나 감각이 예민해진 탓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정말 성 전체를 울리는 심장 박동이 들리고 있었다.
성안에 맥동하는 핏줄의 생명력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때 지힐렛의 머리 위로 무언가 떨어졌다. 검붉은 액체였다.
‘피?’
동시에 성채의 벽 틈과 돌 사이로 무수한 피들이 흘러내렸다. 피가 비처럼 쏟아졌다. 병사들은 혈향 가득한 폭우 속에서 정신 나간 듯 천천히 흐느적거리는 라엘라를 바라보았다.
라엘라는 춤을 추듯 그들 사이를 가로질렀다.
피를 흠뻑 뒤집어쓴 그녀의 모습은 피부가 벗겨진 여인 같기도 했고, 팔다리가 아홉 개인 것 같기도 했으며, 살점으로 점토를 빚어 만든 인형 같기도 했다.
지힐렛은 속이 울렁이는 것을 느꼈다. 혈류의 흐름이 빨라지고 있었다.
‘기적인가?’
아이작은 이변을 알아차리고 지힐렛의 의지를 더욱 강하게 붙들어 맸다. 이제는 신수의 격에 속하는 지힐렛이었지만, 눈앞의 강력한 신적 존재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은 불가능했다.
다행히 아이작이 통제력을 강화하자 지힐렛은 다소 흥분감을 느끼는 정도에서 그칠 수 있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달랐다.
신수인 지힐렛조차도 영향을 받는 기적이었다.
라엘라가 다시 입술을 달싹였다.
“적의 살을 그릇 위에 올리고, 피로 잔을 채우라.”
피의 소나기가 그친 순간, 병사들의 눈과 입은 광기와 투지로 물들어 있었다. 르하르트의 기사들을 급습했던 기사들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아니, 한층 더 강한 광기에 물들어 있었다.
아이작은 이 전투가 결코 쉽게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
“공성전을 포기하겠다구요?”
“예.”
르하르트는 다 죽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르하르트는 그날 전투의 충격이 컸는지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작은 놀라지도 서운해하지도 않았다.
‘당장 짐 싸서 영지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한 것만으로도 다행이지…….’
충격을 받은 것은 르하르트만이 아니었다.
마을 주민들조차도 좀 멍청하지만 사람은 좋은 영주가 이런 일까지 저질렀다는 사실에 경악하며 집에 틀어박혀 있었다. 그것도 주민 대피까지 시키지 않은 상태에서 말이다.
병사들이 주민들을 상대로 화풀이라도 했다간 대학살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 르하르트는 그런 명령 따윈 내리지 않았다. 충격으로 그럴 기력도 없었거니와, 이미 절반에 가까운 병사와 기사들을 잃은 상태에서 주민들까지 적으로 돌리는 것은 멍청한 짓이었다.
‘사실 이 정도 피해라면 패배를 인정하고 후퇴하는 것이 맞긴 한데…….’
하지만 르하르트가 병력의 절반 가까이 손실을 보았다고 해도, 헨드락 쪽은 벡스터를 포함해 기사들이 전멸하다시피 했다. 기사들이 실질적으로 장교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헨드락 영지는 농민병이나 다름없는 어중이떠중이만 남은 셈이었다.
게다가 헨드락 영주는 지원군이 올 가능성이 전무하지만, 르하르트에게는 실시간으로 지원군이 계속해서 도착할 예정이다.
이미 포로로 삼은 기사들을 통해 헨드락 성채 안에서 이단에 가까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증언을 얻은 상태였다. 원래 증언할 만한 상태가 아니었지만 아이작이 나서서 손을 보자 그나마 봐줄 만한 상태가 된 것이다.
“빛의 법전 교단에서 성기사와 사제들을 보내줄 겁니다. 그러면 저 성벽도 무너지겠지요.”
르하르트는 힘없이 중얼거렸다. 기적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 사제들에게 의존하는 것은 가장 효율적인 공성방법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작은 상황이 쉽게 호전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저 성벽 뒤에는 라엘라가 있다.’
아이작은 지힐렛을 통해 어젯밤 헨드락 성채에서 벌어진 광경을 떠올렸다.
그리고 라엘라를 본 순간 나타난 이름 없는 혼돈의 메시지를 떠올렸다.
[이름 없는 혼돈이 당신을 주시합니다.] [이름 없는 혼돈이 당신이 ‘붉은 살점의 선지자’를 포식하길 원합니다.] [혼돈의 포상이 당신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