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65)
65화. 붉은 살점의 선지자 (1)
“아아아아!”
복도에서 튀어나온 병사가 득달같이 달려들어 아이작을 물어뜯으려 했다. 아이작은 병사의 얼굴을 후려갈기고 성큼성큼 전진했다.
오언 렌리가 병사들을 흡수해 거대한 살점 괴물로 변신하자 아이작은 바로 성 안쪽으로 도망쳤다. 덩치가 커진 놈은 척 보기에도 성안으로 들어오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이작은 자신이 똑똑한 판단을 했다고 생각했다.
오언이 복도를 거대한 살점으로 채우면서 추적해 오기 전까지는.
“으아으아아!”
아이작이 쓰러뜨린 병사가 새롭게 오언의 살점에 짓눌리며 흡수되었다. 아무래도 병사들이 죄다 성안에 매복해 있던 것 같았다. 다행인 점은 어보미네이션의 속도가 그렇게 빠르지 않아서 빠른 걸음만으로도 충분히 따돌릴 수 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어보미네이션 역시 그 나름대로 방법을 찾아 가고 있었다.
“라엘라를 암살하는 데 성공했어요. 그런데…….”
“되살아났지?”
“알고 계셨어요?”
알고 있었다기보다 예측 가능한 선이었다.
붉은 살점의 선지자는 게임을 공략할 때에도 가장 자주 얼굴을 드러내는 천사였다. 당연히 싸울 일도, 퀘스트를 받을 일도 많다. 그리고 그녀는 결코 어지간해서는 본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라엘라는 붉은 살점의 선지자가 쓰고 있는 껍데기다.”
아이작은 복도 저 너머 어딘가에 있을 어보미네이션을 찾으며 말했다. 어보미네이션은 무슨 꿍꿍이인지 더 이상 쫓아오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작은 놈의 기척을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저 어보미네이션, 그러니까 오언이랑은 좀 다르지. 권속이 아니라 아예 천사의 살점을 대량으로 쑤셔 넣어서 그 안에 들어간 셈이니까. 적당히 쓰다 버리기 충분할 정도로 말이야.”
어디부터 붉은 살점의 선지자의 의지인지 라엘라의 의지인지는 알 수도 없고 의미도 없다. 이 정도 권능을 발휘하려면 거의 수족이나 다름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헤사벨은 아이작의 말에 혼란스러운 표정을 했다.
“껍데기에 불과하다면…… 암살을 해도 소용없지 않나요?”
“아니. 충분히 의미 있었어.”
아이작은 세 가지를 노렸다. 헤사벨의 충성심을 시험하는 것과 붉은 살점의 선지자의 주의를 끄는 것. 이 두 가지만 성공해도 시도는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마지막은 라엘라의 생명력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붉은 살점의 선지자가 계속해서 라엘라를 껍데기로 쓰려면 그녀의 육체가 살아 있어야 한다. 그녀가 부상을 당하면 그만큼 붉은 살점의 선지자는 라엘라를 살려 두기 위해 계속해서 자신의 힘을 계속해서 쓸 수밖에 없다.
하지만 헤사벨은 라엘라를 ‘죽였다’고 판단할 정도의 치명상을 입혔다. 그렇다면 붉은 살점의 선지자는 꽤 강한 힘이 유출될 수밖에 없다.
원래 양손으로 자유자재로 휘두르던 무기를 손끝으로만 들고 휘두르게 된 셈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같은 무게의 무기라도 후자의 경우가 훨씬 더 힘들고 고통스럽다.
“너는 지시했던 것 이상으로 잘해 줬다. 잘했다. 헤사벨.”
헤사벨은 아이작의 칭찬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낯설다는 듯 얼굴을 매만졌다.
“어, 음,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하는 거죠? 이제 그 살점 괴물도 쫓아오지 않는 것 같긴 한데, 이러다 붉은 살점의 선지자와 마주치기라도 하면…….”
그때 아이작과 헤사벨은 발걸음을 멈췄다.
그들을 막아서는 새로운 적이 나타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마저도.
복도가 닫힌 자루 주둥이처럼 부자연스럽게 일그러져 있었다.
아이작은 뒤를 돌아보았다. 시커먼 새벽의 복도는 정적과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공기가 밀폐된 것처럼 답답하게 느껴졌다.
마치 짐승의 뱃속에 들어와 있기라도 한 것처럼.
아이작이 입을 열었다.
“몰이사냥에 당했군.”
***
지힐렛은 성의 공기가 바뀐 것을 느꼈다.
온 사방에서 눅눅한 땀과 침 냄새를 느낄 수 있었다. 신성은 잃었지만 한때 짐승이자 수도원 지하에서 지하 세계를 은밀하게 손에 넣었던 존재답게 예민하게 느낄 수 있었다.
지상에 출현했던 기괴한 존재가 결국 성안을 장악한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그 존재가 무슨 짓을 저지르는가는 지힐렛이 알 바 아니었다. 아이작이 그에게 맡긴 임무는 따로 있었다. 지힐렛은 지금까지 하던 대로 성의 지하를 계속해서 탐색했다.
성 지하에는 성의 사용인들과 집사, 그리고 죽여서는 안 되는 예민한 사람들이 감금되어 있었다. 모두 의식을 잃거나 약을 먹은 듯 몽롱하게 취해 있었지만 살아 있었다. 탈출할 만한 상태가 아니었으니 지키는 병력도 없었다.
지킬만한 병사들은 모두 지상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존재가 있었다.
파라라라락!
천장에 붙어서 붉은 눈을 번뜩이던 박쥐 떼가 순식간에 지힐렛을 덮쳤다. 평범한 박쥐가 아닌 붉은 성배의 힘으로 소환된 신수들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목덜미에 이빨만 박아도 순식간에 절명시킬 수 있는 존재들이었다.
지힐렛의 몸 곳곳에 박쥐의 이빨이 박혔다. 그중 한 놈은 기어코 지힐렛의 투구 아래로 기어들어 목을 물었다. 그러나 놈과 이빨을 맞부딪친 것은 혈관이나 살점이 아닌, 또 다른 이빨이었다.
콰드드득!
도저히 입이 있을 리가 없는 위치에 생겨난 입은 박쥐의 머리를 단숨에 물어뜯었다. 박쥐가 파닥거렸지만 겨우 투구를 바닥에 떨어뜨렸을 뿐 결국 벗어날 수는 없었다.
동료 박쥐가 생으로 씹어 먹히는 꼴에 박쥐들은 기겁하며 물러나려 했다. 경고성 음파가 퍼져나갔다. 하지만 지힐렛의 몸에 달라붙은 놈들 중 도망칠 수 있는 놈들은 아무도 없었다.
콰득, 콱, 우드드득.
지힐렛의 몸이 기이하게 휘고 꺾이며 박쥐들의 몸을 낚아채고 사로잡았다. 지힐렛이 갖게 된 포식 특성은 제 발로 먹잇감이 날아오는 것을 막지 않았다. 삽시간에 포식자에서 피식자의 위치가 되었다는 것을 자각한 박쥐들이 날아오르려 했지만 낮은 천장과 좁은 복도는 이제 그들에게 감옥이 되었다.
쉭, 스걱.
복도를 빠져나가려던 박쥐마저도 촉수에 휘감겨 으스러져 잡아먹혔다. 순식간에 복도에는 혈흔만 잔뜩 남을 뿐, 살점 하나, 뼈 한 조각도 남지 않고 사라졌다.
지힐렛은 입맛을 다시면서 투구를 주워 들었다. 그때 그는 옆 감방에서 누군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은 깨달았다.
그는 멍하니 지힐렛을 바라보다가, 아직 형태가 정해지지 않은 모습으로 꿈틀거리는 지힐렛의 얼굴을 정면에서 응시했다. 이내 남자는 뭐라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눈을 까뒤집고 기절했다.
지힐렛은 조용히 그를 바라보다가 감옥 안으로 들어갔다. 쇠창살은 구불거리는 그의 몸을 전혀 제지하지 못했다. 남자의 상태를 확인한 지힐렛은 아이작에게 의지를 보냈다.
[카일 헨드락, 찾았음.]***
오언은 이제 직접적으로 몸을 움직여 덮쳐 오지 않았다. 성안으로 숨어 버린 아이작을 그런 식으로 공격하는 것은 불가능했으니까.
대신 그는 성의 구조에 대해 해박했다. 아이작을 원하는 곳으로 몰아넣는 것은 간단했다. 일찌감치 무너뜨린, 원래대로라면 뚫려 있어야 할 길고 좁은 복도 쪽으로 말이다.
그리곤 그 나름의 공성전을 시작했다.
거대한 덩치를 흐물텅하게 구겨 넣어 뱀처럼 기어가는 형식으로.
복도 너머에서 어보미네이션이 되어 버린 오언이 기어 오고 있었다. 성기사가 되고 싶었던 그는 이제 원래 모습은 흔적은 찾아볼 수도 없는 괴물이 되어있었다.
게다가 수많은 사고와 육신을 통제하기 위해 그의 사고는 극단적으로 단순화되어 있었다.
아이작을 죽여라!
“그어어어어!”
복도를 덜덜 떨리게 만드는 괴성이 울려 퍼졌다. 쿵쿵거리며 좁은 복도를 비집고 들어오는 살점 괴물의 모습은 흉측했다.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빠져나갈 문이나 창문도 없었다.
아이작이 몸을 피하기 위해 들어온 성은 이제 덫이 되어 있었다.
“아이작 님, 제가 막아보겠습니다!”
헤사벨은 재빨리 앞으로 나서더니 뭔가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그녀가 가진 얄팍한 검도, 짧디 짧은 단검도, 달리는 기사도 낙마시키는 석궁도 도저히 어보미네이션을 멈추기에는 어려워 보였다.
그녀는 이런저런 시도를 하려는 듯한 자세를 취하다가 물속에 간식을 빠뜨린 강아지 같은 표정으로 아이작을 바라보았다.
“뭘 어쩌게?”
“이쯤 되면 ‘됐으니까 저리 꺼져’ 하면서 앞으로 나서주실 줄 알고…….”
점수 딸 기회 정도로 생각했지 별 생각은 없었다는 뜻이다. 역시 음모와 기회주의자 집단의 가문 후계자답다.
“됐으니까 저리 꺼져.”
아이작은 검을 끌고 앞으로 나섰다. 사실 아이작도 아무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당장 꺼내 들기 어려운 패라서 그렇지.
아이작이 다가오자 어보미네이션은 다시 포효하며 창칼을 쥔 손들을 뻗었다. 그러나 아이작은 다가오는 그 무수한 무기들을 하나하나 쳐 내기 시작했다.
쩡, 쩌억, 퍽, 콰득!
연달아 울려 퍼지는 뼈와 살을 베는 소리가 섬뜩했지만, 아이작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
“세상에……!”
헤사벨이 아이작의 칼놀림에 놀라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하지만 아이작도 다 계산이 서서 하는 행동이었다.
‘역시 내구력이 약해.’
게임상 어보미네이션은 강력하지만 피돼지, 즉 HP만 비정상적으로 높고 방어력은 극단적으로 낮은 것으로 나타난다.
형태가 자유롭게 바뀌니 근육이 유연해야 하고, 뼈대는 흐물흐물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단단한 갑각을 갖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덕분에 아이작이 화려하게 팔다리를 썰어내는 것은 그저 두부를 베는 것만큼이나 간단했다.
게다가 이 좁은 공간은 아이작을 가두는 덫이지만, 동시에 어보미네이션이 그 커다란 덩치를 살려서 짓누르는 것이 불가능한 지형이기도 했다. 만약 어보미네이션이 이렇게 일직선으로 공격해올 것이 아니라 사방에서 짓누르다시피 했다면, 아이작도 이렇게 반격하는 게 불가능했을 것이다.
남은 것은 그저 HP가 무한대에 가까운, 분노한 초보 검사뿐.
아이작의 상대가 될 수는 없었다.
‘걱정되는 거라면 하나뿐인데…….’
아이작은 어느새 발목에서 찰방거리는 핏물과 살점을 밟으며 생각했다.
아이작의 걱정거리는 체력이 바닥나거나 이 복도가 결국 어보미네이션의 살점과 핏물로 가득 차서 익사해 버리는 것이었다. 그거라면 아이작도 막아 낼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어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조건이 마련되어야만 했다.
그 순간, 지힐렛으로부터 아이작에게 의지가 전달되었다.
[카일 헨드락, 찾았음.]아이작의 입가에 미소가 스며들었다. 이제 마지막 조건이 완료되었다.
어보미네이션은 아이작의 미소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건지, 아니면 도저히 그를 상처입히지 못하고 자신만 공격당하는 상황에 화가 난 건지 더욱 거세게 포효하며 달려들었다.
“이제 이 성안에는 목격자가 될 만한 사람이 없다 이거지.”
어보미네이션의 몸 안에서 갑옷을 통째로 구겨서 만든 것처럼 보이는 갈퀴손이 튀어나왔다. 아이작은 그 갈퀴손을 향해 검을 휘두르거나 피하는 대신, 마주 대하듯 주먹을 내밀었다.
쾅! 굉음과 함께 으스러진 것은 갈퀴손을 감싼 어보미네이션의 주먹이었다.
아이작의 손에서 튀어나온 촉수는 순식간에 어보미네이션의 주먹을 휘감아 조개를 으스러뜨리듯 뭉개 버렸다. 속살이 쥐어 짜내지듯 터져 나오자 어보미네이션은 고통과 공포에 포효하면서도 흥분한 듯 몸을 밀어붙였다.
“오오오오오!”
그때 아이작에게 놈의 찌르는 듯한 생각들이 침투했다. 어보미네이션과 살갗을 접촉하면서 그 안에서 요동치던 의지와 생각들이 아이작과도 연결된 것이다.
‘어리석다! 어리석은 놈!’
‘놈을 먹어! 흡수해 버려!’
‘놈도 우리와 같은 꼴로 만들어 버려!’
어보미네이션은 아이작을 으스러뜨릴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지금처럼 접촉해서 그의 몸을 어보미네이션의 몸 안으로 흡수해 버릴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것이 어보미네이션의 가장 위험한 능력이었으니까.
그리고 놈의 생각이 정답이라도 되는 듯, 촉수가 뭉개진 주먹 안으로 빠르게 녹아내리듯 사라졌다. 상처가 났던 부위 위에는 피부가 덮이고 출혈이 멈췄다.
어보미네이션은 아이작을 흡수하기 위해 온몸으로 덮쳐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이작은 전혀 동요하는 기색 없이 어보미네이션을 응시하고 있었다.
기대하고 있던 메시지가 이미 나타난 상태였으니까.
[‘어보미네이션’을 포식하였습니다.] [‘포식’ 특전으로 섭취 효율이 상승합니다.] [‘신체융합(임시)’ 특전을 습득하였습니다.] [소화될 때까지 축복이 유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