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83)
83화. 이름 없는 벌레의 책 (1)
리스헨이 숨긴 석판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리스헨은 예상치 못하게 급사했고, 석판을 제대로 숨길 시간이 없었다. 석판은 은근히 찾기 쉬운 곳에 있었는데, 아이작은 석판을 책상 아래쪽에서 찾아냈다.
석판은 미완성 상태였다.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고, 아무런 힘도 깃들어 있지 않았다.
“이거 미완성 상태인 거 같은데, 여명 석판을 따라서 만든 거 맞지?”
에이단의 눈동자가 정신없이 흔들렸다. 아이작이 석판을 움직이자 바로 눈동자가 쫓아가는 모습이 노골적일 만큼 속내를 보여 주고 있었다.
아이작은 에이단이 왜 이 석판을 탐내는 건지 궁금했다.
‘신이 될 만한 그릇은 아닌 거 같은데.’
칼센은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신이 되려는 시도를 하기에 충분한 업적과 힘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신들의 도움까지 얻는다면 못 할 것도 없어 보였고.
하지만 눈앞의 남자, 에이단은 정말 평범한 상인처럼 보였다.
“이걸 가져다 어디에 쓰려고 했는지 말해봐.”
“…….”
역시나 에이단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아이작은 대답을 채근하는 대신 석판을 높이 들어 올렸다. 당장 내동댕이쳐 깨뜨리려는 듯한 모습에 에이단이 다급히 말했다.
“무명 성서! 그건 무명 성서입니다! 저희 의회에 필요해서 찾고 있었습니다!”
“의회?”
아이작은 눈살을 찌푸렸다가 입을 열었다.
“너 소금 의회 신도냐?”
아홉 신앙 중 하나인 소금 의회.
한때 대제국을 건설했지만, 지금은 망국의 길을 걷고 끊임없이 몰락의 길을 걷고 있는 뱃사람들의 신앙이었다. 그들이 아홉 신앙 중 하나임에도 몰락의 길을 걷고 있는 이유는 단순했다.
아이작은 석판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이게 너희의 성서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
에이단은 애타는 눈으로 아이작을 바라보았다.
소금 의회에는 성서와 성물은 물론, 신전조차 거의 없다. 당연히 사제도 적고, 쓸 수 있는 기적도 한정적이다.
한때 잘나가던 그들이 이렇게 된 데에는 다 자업자득인 역사가 있지만, 그래도 영광을 되찾고자 노력 중이라는 설정을 아이작은 떠올릴 수 있었다.
‘무명 성서라…….’
아이작은 석판을 들여다보았다.
이름을 듣고 나자 어떤 용도인지 알 수 있었다. 여명 석판이 빛의 법전의 전언을 기록했듯이, 여기에도 어떤 신의 전언이든 적을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스스로 새기거나.
성서와 성물을 분실한 소금 의회는 잃어버린 신의 전언을 다시 적기 위해 무명 성서를 찾던 게 분명했다.
‘그리고 칼센은 여기에 자기가 직접 경전을 적어서 신이 되려 한 거고. 그럴듯하군.’
국가의 시작은 법률이다. 그렇다면 종교의 시작은 경전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 성서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면 이걸 누가 만들었는지도 알고 있겠지? 누가 리스헨 헨드락에게 협력했는지 말해봐. 아니, 누군지는 사실 알고 있어. 인위적으로 무명 성서 같은 걸 만들 수 있는 자들은 세상의 화로 장인뿐이지.”
타천사를 흙 주무르듯 주물러서 원하는 것을 만들려면 신이 개입하거나, 아니면 세상의 화로 장인들이 개입해야 한다. 물론 무명 성서를 만든 다음 거기에 전언을 옮겨적는 것은 신이 할 일이지만.
에이단은 이제 어딘가 아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이작은 시간 끌지 말라는 듯 턱짓했다.
“소금 의회 놈들은 어차피 거짓말 못 하잖아. 빨리 말해. 어차피 네가 아니라 세상의 화로 장인에게 용건이 있으니까.”
소금 의회 신도들에게는 한 가지 유명한 특징이 있었다.
거짓말을 할 수 없다는 것.
이 역시도 성서를 잃어버린 그들의 역사와 관련이 있었다.
사실 아이작은 소금 의회가 성물을 찾건 성서를 찾건 관심 없었다. 그가 관심이 있는 것은 만능 대장장이인 세상의 화로 장인이었다.
그래도 에이단의 대답이 늦어지자 아이작은 모범적인 성기사인 척, 손에 든 루앗딘 열쇠에 열기를 피워 올렸다. 어둠 속에서 검신이 뜨겁게 달아오르며 주변을 밝히기 시작했다.
루앗딘 열쇠가 무명 성서 근처로 다가가자 에이단은 얕게 신음하며 입을 열었다.
아이작은 이제 당근을 던져 줄 때라고 생각하고 살살 타일렀다.
“화로 장인에게 부탁할 것이 있어서 그렇다. 내 목적은 성유물 회수와 괴물 퇴치라, 화로 장인을 괴롭힐 생각은 없다. 비록 이교도라지만 화로 장인들은 존경받을만한 이들이지.”
“부탁이 뭡니까?”
“네가 화로 장인이 아니라면 알 필요 없다.”
“……세상의 화로 장인이 어디 있는지는 압니다.”
‘역시.’
이게 바로 아이작의 목적이었다.
세상에서 은둔한 화로 장인은, 그 본거지인 북쪽의 스반바르 군도까지 가지 않는 이상 찾는 것조차 힘들다. 하지만 그 북쪽에서 독수공방하는 히키코모리들이 대륙에 들어와 있다면 반드시 붙잡아 둬야 했다. 타천사의 유해로 물건을 만들기 위해서는 화로 장인의 손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이작은 루앗딘 열쇠의 열기를 꺼뜨렸다. 하지만 달궈진 검은 쉽게 식지 않고 은은한 주홍빛으로 남아 있었다.
에이단은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다가 자신이 들고 있는 검을 발견했다. 루앗딘 열쇠에 비하면 가느다란 바늘이나 다름없는 검이었기에, 그는 고분고분 허리춤에 꽂아 넣었다.
“화로 장인은 어디에 있지?”
“그게…… 부탁이 뭔지 먼저 알려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아이작은 대답 대신 검이 반짝거리게끔 흔들어 보았다.
에이단은 떨떠름하게 말했다.
“……화로 장인은 함부로 사람을 만나지 않습니다. 만약 제가 모르는 사람을 데리고 가면 도망칠 겁니다.”
“쉽게는 도망 못 칠걸.”
“하지만 모르는 일이죠. 도망치게 되면 저도 다시는 못 만납니다. 그렇게 되느니 그냥 제게 의뢰를 하시죠.”
“의뢰?”
소금 의회 신도들은 상인이자 뱃사람으로도 유명하지만, 거짓말을 할 수 없다는 특징 때문에 각광받는 중개인이기도 했다. 그들은 중립적인 위치에서 사람들을 연결해 주며 정직한 중개인으로서 나름의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
“화로 장인께서는 본인이 직접 의뢰인을 만나는 대신 저를 부려서 필요한 재료를 모으고 다른 사람들을 만나게 합니다. 만약 의뢰를 받을 필요가 있다면 제가 대신 전달할 수 있습니다.”
“의뢰라는 건 대가를 받겠다는 거겠지?”
솔직히 목숨만 살려줘도 어디냐 싶겠지만, 소금 의회 신도들은 필사적이다. 그들이 이 ‘무명 석판’에 품는 기대는 보통의 것이 아닐 것이다.
실제로 에이단은 갈증 나는 눈으로 아이작이 든 석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작은 아무리 작아도 교단 하나가 죽자고 달려드는 꼴은 원하지 않았다.
그는 미리 선수를 치기로 했다.
“중개 하나 해주고 무명 성서를 달라고 하는 도둑놈 심보는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차근차근 신뢰와 대가를 쌓아가도록 하지.”
아이작은 그렇게 말하면서 힐긋 타천사에게로 눈을 돌렸다.
“원하는 게 타천사 아니었나?”
“……예, 사실 그것만 있어도 충분합니다.”
무명 성서는 타천사로 만들어졌다.
물론 타천사만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닐 테고, 온갖 신들의 손길과 신성력, 재료들이 들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인 베이스가 타천사라는 것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에이단도 이 봉인된 폐광에 숨어들어왔을 테고.
“좋아. 너희에게 타천사를 팔겠다.”
“예?”
“적당한 가격에 타천사 유해의 일부를 팔 테니, 직접 만나자고 전해라. 하지만 내가 필요한 물건도 만들어줘야 해. 그러니까 내가 직접 화로 장인을 만나야 한다.”
타천사를 팔겠다는 말에 에이단은 경악하는 표정이었다.
타천사를 발굴하는 것도 불경하다 여겨지는데 그걸 누구 손에 들어갈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팔아?
아이작은 에이단의 얼굴에 불신이 감도는 것을 보고 성큼성큼 걸어가 금줄을 손에 움켜쥐었다.
“아……!”
에이단의 경악성이 터진 순간 아이작은 금줄과 봉인구를 뚝뚝 끊어 버렸다. 이미 금줄의 약점을 모조리 파악한 데다 ‘신앙의 증명’이나 ‘심판의 검’조차 아이작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못했으니, 아무런 타격도 없는 것은 당연했다.
금줄을 모조리 뜯어 버린 아이작은 타천사 날개 일부를 뚝 떼어내 에이단에게 던졌다.
“선불금이다.”
들고 도망칠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소금 의회 신도에게 계약은 신성한 것이다. 아니, 신성함을 넘어서 두려워하는 것이었다. 목숨 걸고 거래하려는 황금 우상과 달리, 소금 의회는 목숨이 걸린 일이 아니면 함부로 약속이나 계약을 하지 않았다.
에이단은 망설이는 기색을 보였지만, 결국 타천사 조각을 쥐었다.
“만남을 주선해 보겠습니다.”
에이단이 계약을 받아들였다는 것은, 타천사를 구해오는 일이 그에게 목숨이 걸린 것만큼 중요하다는 뜻이었다.
‘물론 만나게 해주지 않는다면 목숨이 걸릴 만큼 중요한 문제로 만들어줄 생각이지만.’
다행히 거기까지 상황이 험악해지지는 않았다.
에이단은 타천사 조각을 소중하게 보자기에 감싸고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동굴 밖으로 달려갔다.
***
에이단이 아무것도 뛰쳐나간 동굴의 어둠 속에서, 거꾸로 매달려 있던 헤사벨이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쫓아갈까요?”
“아니.”
괜히 추적자를 붙였다가 화로 장인이 도망치면 그게 더 곤란했다. 화로 장인은 그 능력이 출중한 만큼, 노리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극도로 폐쇄적이었다.
그리고 아이작은 에이단이 약속을 어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저놈 소금 의회의 신도잖아. 약속을 어길 리가 없지.”
“소금 의회…….”
헤사벨은 그 이름을 중얼거렸다.
내륙국인 왈라이카에서는 뱃사람을 만나는 일 자체가 적었다.
헤사벨 역시 이번에 아이작을 추적하기 전까지만 해도 왈라이카 안에서만 활동했기 때문에 소금 의회의 존재에 대해서는 이름만 들어본 수준이었다.
“그런데 소금 의회 신도랑 약속을 안 어기는 거랑 무슨 상관이죠?”
아이작은 게임 속 존재라고 할 수 있는 헤사벨이 자신에게 ‘설정’을 묻는 것이 묘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동시에 말문이 막혔다. 아이작에게 있어 소금 의회 신도라는 점은 ‘당연히’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존재였다.
왜냐면 게임 설정이 그랬기 때문이다.
“그 이유를 설명하려면 소금 의회의 탄생 설화를 아우르는 서사시를 얘기해야 하는데?”
“많이 긴가요?”
아이작은 궁금하다는 헤사벨의 표정에 혀를 찼다. 사실 아무래도 상관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아이작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라도 입을 열었다.
갑자기 소금 의회가 세상의 화로와 무슨 관계인지 의아해졌기 때문이었다.
아이작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소금 의회는 원래 다른 이름의 신앙이었다. 일단 뱃사람들이라고 부르지. 뱃사람들은 바다 밑에 있는 도시의 어떤 고대신을 섬기는 집단이었다. 옛날에는 남쪽 바다를 지배할 정도로 강성했다더군.”
아이작은 이 세계가 유럽 지도와 대략적으로나마 비슷하다는 것을 떠올렸다. 과거 소금 의회는 아프리카 북부와 섬들을 지배했던 카르타고 정도의 지배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 뱃사람들 사이에서만 암암리에 전해지는 종교가 되었다.
“저는 왜 들어본 적이 없죠?”
“아주 옛날이니까. 빛의 법전 교단이 제대로 시작되기도 전이다. 심지어 불사 교단은 물론이고 엘릴이나 붉은 성배 클럽, 세상의 화로 교단조차 없던 시절이군.”
지금 세상을 지배하는 아홉 신앙은 전부 빛의 법전이 새롭게 규칙을 쓰기 시작한 뒤 나타난 신앙이다. 그 외에 있던 자잘한 고대신들은 전부 죽거나 사멸했고, 빛의 법전에 협력하거나 분파된, 혹은 발아래 엎드린 신앙만 살아남았다.
“여튼 그때 뱃사람들은 사실상 전성기를 누리는 세계의 패자나 다름없었지. 하지만 그 강대함 때문에 교만해진 뱃사람들 앞에…… 변화가 시작되었다.”
“변화요?”
“루앗딘이 나타났지.”
화형대 속의 화염 속에서 ‘여명 석판’, 이른바 빛의 법전을 들고 나타난 첫 번째 선지자. 그저 토속 신앙에 불과했던 빛의 법전을 처음으로 제대로 된 신앙으로 만들고, 마침내 승천해 첫 번째 천사가 된 으뜸 천사.
고대신들의 종말이 된 자가 나타난 것이다.
신들의 시대는 루앗딘의 등장 전후로 분류해도 된다고 할 정도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그때 루앗딘은 다른 고대신을 섬기는 제국에게 쫓기고 있었다. 화형대에 올라 불탔다가 다시 살아 돌아오기까지 했지만, 여전히 세력은 미약했지. 결국 루앗딘은 추종자들을 이끌고 성지를 벗어나 서쪽으로 향했다.”
이 신화에서 언급되는 ‘성지’가 백제국이 그토록 수복하고 싶어하는 그 성지다.
지금은 흑제국의 치하에 점령당한 상태인.
“그렇게 무작정 서쪽으로 향하던 루앗딘은 바다를 맞닥뜨렸지. 그리고 그 당시의 바다의 지배자, 뱃사람들을 만났다. 루앗딘은 그들에게 대가를 지불하고 추종자들과 함께 바다를 건너기로 했다. 하지만 소금 의회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지.”
소금 의회가 협조하지 않은 이유는 설정에서도 명확하게 나오지 않았다.
돈을 더 받아 내려는 욕심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루앗딘을 잡으려는 세력과의 갈등을 피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이도 저도 아니라면 그냥 루앗딘이 불타는 몸을 가지고 있으니까 배가 상할까 봐서일 수도 있다.
루앗딘의 불꽃이 아무도 다치지 않게 한다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루앗딘은 사흘을 기다렸지만, 뱃사람들은 협조하지 않았다. 오히려 항구에 서 있는 루앗딘을 조롱하고 모욕했지. 그러자 루앗딘은 빛의 법전께 청원해 뱃사람들의 교만을 징벌했다.”
“징벌요?”
“사흘 동안 해가 지지 않았다. 그러자 바다가 맹렬하게 뜨거워졌다. 끓어오르는 바다에 뱃사람들은 뒤늦게 후회하고 비명 지르고 애원했지만, 해는 움직이지 않았다.”
아이작은 잠시 이야기를 멈추고 침묵했다.
이 징벌이 정말 실현 가능한 기적일까? 그런 힘이 있다면 그냥 쫓는 세력과 맞서면 되지 않나?
뭐, 신화의 내용이란 게 모두 합리적인 것은 아니니까.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흘렀을 때, 바다가 있던 자리에 남은 것은 말라붙은 거대한 소금 사막뿐이었다. 강대했던 뱃사람들의 거대한 함대와 소금 사제들, 성유물, 바다 밑 도시들은 모조리 수백 미터 두께의 소금 사막 아래에 갇혀버렸지.”
헤사벨은 듣기만 해도 몸의 피가 메마르는 기분을 느끼는 듯 입술을 매만졌다.
“그리고 루앗딘과 추종자들은 말라버린 소금 사막 위로 걸어갔다. 이후 살아남아 빛의 법전 교단을 세웠지. 하지만 뱃사람들은…….”
아이작은 그 찬란했던 신앙이 어떻게 한순간에 몰락했는지 생각하며 쓰게 웃었다. 전성기를 구가하던 제국이 몰락한 이유는 약속을 단 한 번 어긴 것, 그뿐이었기 때문이다.
“……명맥이 끊기고 전 세계로 흩어졌다. 이후로 그들은 소금 의회라는 이름으로 이름을 바꾸고, 망국(亡國)의 유산을 찾아 헤매고 있지. 잃어버린 경전을 되찾기 위해.”
“그래서 약속을 못 어긴다는 거군요.”
“교단의 집단적 트라우마가 됐으니까. 사실을 숨길지언정, 입 밖에 냈으면 거짓말은 안 할 거다.”
이건 단순히 정신적인 문제가 아니다. 게임 내에서는 아예 거짓말이 불가능하다는 점이 페널티로 적용되어 있었다. 물론 그에 상응하는 대가도 가지고 있었다.
‘몰락해 가는 신앙의 후계자라는 우울한 설정이 좋았지…… 그나저나 소금 의회와 세상의 화로 교단, 둘이 동시에 나타나다니. 이 동네는 무슨 마가 낀 건가?’
따지고 보면 이 영지에 빛의 법전과 붉은 성배, 소금 의회, 세상의 화로, 네 신앙이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것이다.
아이작까지 포함하면 이름 없는 혼돈, 그리고 간접적으로는 불사 교단까지 여섯.
아홉 신앙 중 여섯이나 관심을 두고 있다는 것은 결코 보통 일이 아니었다.
‘나머지 엘릴과 황금우상, 율칸은 중립이거나 고립주의적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사실상 모일 수 있는 신앙은 다 모인 거군. 역시 비밀이 드러나진 않았어도 암암리에 눈치채고 있던 건가? 아니면 새로운 신앙의 탄생을 이때부터 예측하고 있었던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