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89)
89화. 시체들의 밤 (2)
“……그러니 빛께서 아무리 우리에게 든다 한들, 우리가 외면하고 고개 돌리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가장 빛과 가까운 자리에서 빛의 따뜻함을 느끼고 있지만, 그 빛은 감히 바라보지 못하는 죄인들은 누가 있습니까?”
“빛의 법전이시여!”
“굽어살피소서!”
“눈을 뜨고 등불을 높이 들어 올리십시오! 빛의 법전께서 당신의 앞길을 비추고 있음에도 보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열정적인 분위기 아래 아이작이 설교를 끝마쳤다.
예배를 들으러 온 것은 사제와 성기사들만이 아니었다. 성배기사가 하는 말을 듣고 싶어서 찾아온 일반 주민들도 끼어 있었다. 심지어는 자클렛과 함께 온 바르바리도 일부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아이작의 설교를 듣고 가장 열정적으로 반응한 청중이었다.
아이작은 너무 열정을 다해 연설한 나머지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아 내며 생각했다.
‘이 세계에 와서 누굴 때려죽이고 포식하는 게 아니라 설교하고 전도하는 일을 하게 될 줄은 몰랐군…….’
다행히 아이작은 잘 해낼 수 있었다. 아니, 잘할 수밖에 없었다.
붉은 살점의 선지자를 포식하고 얻은 효과인 ‘붉은 예배’ 특전 때문이었다.
[붉은 예배(A+)] [대중으로부터의 호감도와 매력이 상승합니다. 호감도가 일정량 상승하면, 당신과 감정적 동조가 일어납니다.]이 특전 효과 덕분에 아이작은 대충 그럴듯하게만 말해도 대중들의 호감을 끌어낼 수 있었다. 무엇을 어떻게 연설해야 할지는 온전히 아이작이 노력해야 할 부분이었지만, 쉽게 호응해 주는 청중을 상대한다면 초보 연설가라도 능숙하게 연설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이작은 자신이 가진 의외의 재능에 놀라고 있었다.
‘사이비 교주로서의 재능이라는 게 문제지만.’
솔직히 말해, 아이작이 하는 설교는 빛의 법전에 대한 설교가 아니었다.
교묘하게 아이작이 만든 이름 없는 혼돈의 교리가 담긴 설교였다.
당연히 사제나 성기사들이 듣기에는 다소 파격적이거나 도발적인 말이 들어갈 수 있었다. 게다가 막바지에 울거나 환호하는 등, 격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도 원래의 엄격한 설교 분위기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렸을 때 엄마 따라 교회를 다닌 게 설마 이런 곳에서 도움이 될 줄이야.’
지금 생각해 보면 다소 사이비 성격이 짙은 교회였지만 열정적인 연설과 방언을 터뜨리는 신도들, 열광하는 분위기 같은 것을 끌어내는 데 참고할 수 있었다.
문제 삼을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아이작이 사제가 아닌 성기사라는 점 때문에, 그리고 바르바리조차 끼어 있는 ‘누구든’ 들을 수 있는 예배 자리라는 특성 때문에 그냥저냥 넘어가는 듯했다.
그 사이, 사제들과 성기사들의 귀에도 아이작만의 ‘사상적 독’이 퍼져 나가고 있었다.
아직 그들은 완전히 아이작의 편이라 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들이 교단으로 돌아가서 전통적인 예배와 전통적인 설교를 듣고 나면 갑갑함을 느낄 것이다.
저들이 아이작의 편이 되는 것은 바로 그때가 될 것이다.
***
다만, 한 사람에게만큼은 이 독이 통했을지 아이작도 확신할 수 없었다.
“훌륭한 설교였습니다. 성배기사님.”
이솔데가 싱긋 웃으며 다가왔다. 이솔데는 지난 시간 동안 아이작이 하는 일에 참견하거나 훈수를 두는 대신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다. 아이작이 한 달 안에 기적을 보여 주겠다는 약속을 충실하게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바로 그 한 달의 기안이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감사합니다. 이단심문관님.”
“그런데 그런 말을 함부로 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말씀 말이시죠?”
아이작은 뭘 염두에 두고 말하는지 알면서도 시침을 떼며 말했다.
“가장 빛과 가까운 자리에서 빛의 따뜻함을 느끼고 있지만, 그 빛은 감히 바라보지 못하는 죄인이라…… 성도의 교황 성하와 주교들에 대한 은유로 들리는군요.”
“등하맹인 말씀이시군요.”
아이작이 대놓고 말하자 이솔데는 당황한 듯했지만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종종 그렇게 부르는 분들이 있곤 하지요.”
“혹시 그것 때문에 제가 심문을 받게 될까요?”
아이작이 생글생글 웃으며 말하자 이솔데는 어째선지 얼굴을 붉혔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 침착함을 되찾고 대답했다.
“교황 성하나 주교님에 대한 멸칭이 얼마나 풍부한지 알면 놀라실 겁니다, 성배기사님. 등하맹인정도는 예의 바른 편이죠. 제가 그들을 다 잡으려 한다면 저는 이교도나 배교자들을 잡을 시간이 부족해지겠죠.”
하지만 그녀는 쉽게 넘어갈 생각이 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
“문제는 그 말을 공개적으로, 가르치듯 하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아이작은 그녀의 의도를 깨닫고 조금 놀랐다. 이솔데에게도 붉은 예배의 효과가 통하나?
“걱정되시나 보군요?”
“……솔직히 조금 통쾌했다고밖에 말씀 못 드리겠군요. 하지만 누군가 문제 삼을지도 모릅니다. 사제와 성기사들은 후안 주교가 보낸 사람들인데, 그 뉘앙스를 모를 리가 없습니다. 혹여 지원이라도 끊는다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이단심문관님.”
사제와 성기사들은 아이작에게 강한 호감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문제 삼지 않을 것이고, 설령 후안 주교의 귀에 들어가더라도 그는 아이작을 잘라 낼 수 없었다. 아이작의 영향력을 부정하고 별일 아닌 양 취급하겠지.
전통적으로 성배기사란 누굴 죽이는 사람이지, 누굴 이끄는 사람이 아니다.
물론 아이작은 전통적인 성배기사는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슬슬 한 달이 되어가는군요.”
아이작은 슬쩍 화제를 돌렸다. 이솔데는 그가 말을 돌린다는 것을 알았지만 성배기사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해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작이 이솔데에게 기적을 보여 주고 증명받기로 한 시한이 한 달이었다. 물론 이솔데는 아이작이 한 달을 넘기더라도 재촉하지 않고 얼마든지 기다릴 예정이었다.
“그렇군요. 이 영지에 일어난 일만으로도 충분히 기적 같습니다만.”
이솔데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물론 ‘당신이 보고 싶었던 기적은 바로 이 마을에 피어난 사람들의 미소입니다’ 같은 진부한 말씀은 하지 않으시겠지만, 충분히 가치 있는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하하, 농담도.”
이솔데는 아이작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동안 아이작의 공개적인 행보를 거의 놓치지 않고 지켜봐 왔다. 확실히 이단심문관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정도로 아이작은 기적을 사용하지 않았다. 수도원의 사제들조차 촛불을 밝히는 기적 정도는 발휘하는 것을 생각하면 이상할 정도였다.
“대단한 기적을 보여달라는 것도 아닙니다. 성배기사님. 그저 주변을 밝히는 정도여도 충분합니다. 권능을 허락받았다는 표식은 되니까요.”
“그럼 만약 제가 기적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그건 제가 신으로부터 권능을 허락받지 못했다는 뜻이 될까요?”
“그건…….”
이솔데는 말끝을 흐렸다. 사실 기적은 아이작이 이룬 업적 그 자체가 기적이다. 어떻게 보면 아이작 자체가 기적이라고 해도 좋았다. 촛불을 붙이거나 주변을 밝히는 기적 따위는 그저 요식에 불과하다.
이솔데는 타락하고 방탕한 사제조차도 어렵지 않게 초를 밝히는 기적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이작이 촛불 하나 밝히지 못한다고, 그보다 못한 존재가 되는 걸까?
가장 기본적인 모순이지만 그녀는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그냥 기적 없이 천사를 물리칠 수 있다는 것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도 믿기지 않는 일이니까요. 만약 성배기사님이 기적을 못 쓰신다고 해도 그게 큰 문제가 되진 않을 겁니다. 다만 어떻게 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계속 남을 뿐이겠지요.”
이단심문관은 의심병자 같은 집단이지만, 원래 내사 조직이란 의심병자가 될 수밖에 없는 집단이다. 더군다나 칼센 밀터 같은 정신 나간 배교자가 최근에 발생했었다면 더더욱.
아이작은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 저 혼자 힘으로는 부족하지요. 당연히 기적을 사용했습니다.”
“과연…….”
이솔데는 환한 얼굴로 아이작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저는 신께서 허락하신 권능을 겨우 제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삿되게 쓰고 싶진 않군요.”
“아, 물론입니다.”
신실한 성직자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었다. 책 읽기 불편하다고 기적을 남용하는 사제들과는 다른 신실한 마음가짐에 이솔데는 솔직히 탄복했다.
“조만간 이단심문관님께도 제 기적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겁니다.”
***
아이작은 높은 피라미드 위에 있었다.
그는 노란 옷을 입고 있었다. 손에는 자글자글한 주름이 가득했으며, 구불구불한 제사용 단검을 쥐고 있었다. 눈앞의 제단 위에는 약에 취한 남자가 몽롱한 눈동자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이작은 남자의 시선을 따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보랏빛 하늘이 기이하고 얼룩진 굴곡을 만들어 내며 울렁이고 있었다. 그 구름 속에서 형상을 알 수 없는 거대한 물체가 희끄무레하게 흐르고 움직이고 있었다.
그때 그의 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이작은 단검을 높이 들어 남자의 가슴에 내리꽂았다. 남자의 찢어진 가슴에서 선혈이 튀어 올랐다. 하지만 선혈은 바닥으로 흐르는 대신 칼날을 타고 기어오르다가, 하늘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아이작은 칼을 그어 남자의 배를 크게 갈랐다. 이제 노출된 내장과 장기가 피와 함께 솟구치기 시작했다. 이어 뼈가, 살이, 근육이, 핏줄이 올올이 풀려나가며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마침내 완전히 뒤집혀 껍데기만 남은 가죽만이 펄럭거렸다.
아이작은 그 가죽을 움켜쥐고 크게 흔들었다.
뒤집힌 가죽 안에서 어린아이의 손가락이 기어 나왔다. 텅 빈 살거죽 안에서 새로운 무언가가 태어나려 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피라미드 아래쪽에서 무언가 소란이 벌어지고 있었다.
일군의 전사가 군중을 뚫고 피라미드 위로 치고 올라오고 있었다. 군중 속에 숨어있던 칼을 든 무리들은 순식간에 성기사들을 제압하고 치고 올라왔다.
아이작은 뒤집힌 가죽을 더욱 세차게 흔들어 가죽 속에서 태어나려는 존재를 부추겼지만, 그것의 움직임은 느리기 그지없었다.
의식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순식간에 치고 올라온 무리가 아이작의 코앞까지 들이닥쳤다. 아이작은 한기를 느꼈다. 그는 무언가를 하려고 했지만 싸늘하게 얼어붙는 한기에 손끝조차 움직이기 힘들었다.
이내 날카로운 칼끝이 아이작의 복부를 후벼팠다. 아이작은 자신을 찌른 사람의 얼굴을 확인하려고 했다. 하지만 아이작은 그의 표정을 볼 수 없었다. 여자인지 남자인지도 알 수 없었다.
그는 새파란 안광을 불태우는 백골의 기사였으니까.
***
아이작은 눈을 떴다.
눈을 뜨자마자 아이작은 천장에 매달려 있는 노란 눈동자와 마주쳤다. 어둠 속에서 노란 눈을 반짝이며 자신을 응시하고 있던 헤사벨이 입을 열었다.
“또 악몽을 꾸셨나요?”
“음.”
아이작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몸을 일으켜 세웠다. 헤사벨에게 야간 호위를 부탁한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밤잠이 없는 그녀가 뭔가를 하기에 이 영지는 너무 평화로웠다.
‘자꾸 같은 악몽을 꾸는군.’
이 세계에 넘어온 뒤로 악몽을 꾼 적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촉수 때문이든, 쥐 사체를 먹던 기억 때문이든, 처참한 사람 시체 때문이든, 정신적으로 건강할 리가 없는 환경이었기에 아이작이 악몽을 꾸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이 꿈은 달랐다.
거의 항상 같은 배경에 같은 인물이었다. 이마에는 식은땀이 가득했지만, 손끝에는 아린 한기가 느껴졌다. 마치 꿈이 아닌 것처럼.
그리고 마지막 순간 늘 그를 찌르는 것은 백골의 기사였다.
아이작은 한기를 다루는 백골 기사들이 누군지 잘 알고 있었다.
‘불사 교단의 데스나이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