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91)
91화. 시체들의 밤 (4)
“이단심문관님이요?”
이단심문관의 무력은 조사나 잠입, 암살 쪽에 치중되어 있어 전투 면에서는 성기사보다 못하다. 물론 이솔데는 어지간한 성기사와 맞설 정도는 되지만, 그래도 개인의 무력에 지나지 않는다.
이솔데 역시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성배기사님은 더 많은 주민들을 지키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상인들을 지켜야겠지요.”
만약 아이작이 남동쪽으로 움직이면 영지 북서쪽에서 한기를 뿜어내고 있는 정체불명의 적이 영지를 급습할 것이다. 느껴지는 기운으로 보건대, 성기사 한둘로는 대응하기 힘들어 보였다.
아이작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성기사 둘을 붙여드리지요.”
귀중한 전력이지만 성채를 끼고 있는 아이작보다는 이솔데에게 무력이 더 필요할 것이다. 이솔데는 고개를 끄덕이며 지목된 성기사들과 함께 서둘러 나갔다.
“나머지는 즉시 방어 준비를 시작합시다. 그리고 사제 한 분은 남아서 피난 온 신도들과 함께 구원기도회를 부탁드립니다.”
아이작의 지시가 내려지자 모두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공격당하는 상황에서 기도회라고 하면 어이가 없게 들리겠지만, 이 세계에서는 기도에 응답이 뒤따른다.
신도들이 구원 요청을 하면 신이든 천사든 아니면 교단의 누군가든 듣고 도와주는 것이다. 실제로 고립된 상황에서 이런 기도를 통해 구원받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상대방은 움직이지 않고 단지 위협 시위를 하고 있을 뿐이지만 최대한 준비를 할 필요가 있었다.
한편, 아이작은 안도하고 있었다.
‘이솔데가 먼저 나서줘서 다행이군.’
아이작은 이미 불사교단이 접근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에이단의 암시뿐만이 아니라 많은 전조와 정황들이 있었다. 무엇보다 불사 교단이 많은 노력이 들어간 이 영지를 쉽게 포기할 리도 없다는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오늘 모습을 드러낸 이유는 바로 화로 장인 때문일 것이다.
에이단이 화로 장인에 대한 보호를 부탁한 직후 아이작은 즉시 지힐렛과 헤사벨을 시켜 인근 일대에 수색을 지시했다. 그리고 성역에서 끊임없는 탐색을 통해 조금의 이변도 놓치지 않고 탐지했다.
그 결과, 아이작은 이미 불사 교단의 접근을 예측하고 있었다.
에이단은 조심한다고 조심했겠지만, 그들은 이미 에이단을 추적하고 있었다. 그리고 숨어 있는 화로 장인을 찾을 수 없다고 판단되자 일부러 에이단을 놓아주었다. 그 뒤 화로 장인이 영지에 접근하자 그 틈을 노려 습격을 시작한 것이었다.
‘바로 에이단이 소속된 북부 상단의 행렬.’
불사 교단은 화로 장인을 손에 넣기 위해 아이작을 견제할 주력을 이쪽에 두고, 몇 안 되는 상인들과 용병들을 상대할 전력을 상단 쪽으로 보낼 것이다. 아이작은 진작에 이솔데에게 부탁할 생각이었다. 아무래도 소금 의회와 세상의 화로라는 이단 신앙까지 한꺼번에 영지에 들이는 것이 걸렸기 때문이다.
이미 바르바리와 황금 우상까지 영지에 들인 상황에서 한꺼번에 많은 신앙들이 유입되는 것은 쓸데없는 의심의 눈초리를 살수도 있었다.
즉, 아이작은 이솔데까지도 자신과 함께 엮을 생각이었다.
‘이용당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당신은 앞으로도 쭉 빛의 법전의 눈가리개가 되어줘야겠어.’
***
기묘한 전조는 어두워진 산 능선 쪽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주민 대피가 이어지는 와중에 수성 준비를 마친 병사들은 산 능선 위에서 기이한 그림자들이 움직이는 것을 발견했다. 병사들은 그 기이한 움직임을 보며 술렁였다.
“좀비다…….”
좀비는 지성이 없는 살아 있는 시체라는 점에서 붉은 성배 클럽에서 만들어 내는 구울과 자주 혼동되곤 하지만, 엄연히 다르다.
일단 구울은 썩지 않는다. 썩어 가는 모습은 아름답지 않기 때문이다. 붉은 성배는 아름답지 않은 것을 싫어한다.
하지만 불사 교단이 만들어 내는 좀비는 다르다. 좀비는 ‘완전히’ 불사 교단에 입교하기 전에 거치는 중간 과정에 불과하다. 갓 죽은 시체에서 일일이 살점을 벗기고 피를 빼기는 번거로우니 자연스럽게 백골이 될 때까지 좀비로 부려 먹는 것이다.
그렇게 완전히 백골이 된 다음에서야 불사 교단의 개종 자격과 흑제국의 주민이 될 기본 조건이 갖춰진다. 이때에는 이미 돌이킬 방법이 없으니 어지간히 신앙심이 강한 경우가 아니라면 불사 교단에 소속되게 된다.
아이작은 움직이는 좀비 무리를 보면서 사제에게 물었다.
“지하 묘지는 축성이 끝났지요?”
“예. 움직일 수 있는 시체는 없습니다.”
백제국에서 시체는 주로 화장하곤 했다. 정신 나간 흑제국의 사제가 ‘징집’해가는 경우를 막기 위해서다. 하지만 간혹 피치 못할 사정으로 시체를 태우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럴 때에는 입안에 돌을 물려 두고 단단한 석관에 봉한 뒤 지하 묘지에 안치했다.
좀비 무리는 느리게 성 주변으로 다가왔다. 기이하게만 보이던 실루엣은 가까이 다가오자 달빛 아래 제대로 된 모습을 드러냈다. 다들 어떻게 죽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모습이었다. 가끔은 그 원인이 된 무기를 이제 자기가 들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역겨운 불사 교단 놈들…….”
병사들은 그 처참한 모습에 분개하며 중얼거렸다. 물론 저들 중 대부분은 바르바리거나 이교도인 화전민 출신이겠지만, 저들의 모습에서 자신이나 가족의 모습을 투영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아이작은 내심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실 불사 교단으로 개종한 사람들의 삶의 만족도는 나쁘지 않은 것 같던데…….’
흑제국의 주민이 되기만 하면 이성도 돌아오고, 기아나 병마에 대한 고통도 없이 살 수 있다.
그것이 과연 삶인가에 대해 고찰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긴 하겠지만, 먹고 사는 문제만 해결되면 세상 고민의 대부분은 해결되는 법이다. 남은 긴 시간은 정서적 충족감을 채우며 살면 되는 것이다.
물론 지금 당장은 불사 교단에 대한 분노가 필요한 시점이었기에 그 사실에 대해 굳이 말할 생각은 없었다.
좀비들은 제법 가까운 거리까지 다가와 성채를 포위했다. 예상대로 마을을 약탈하거나 불태우는 놈들은 없었다.
놈들의 포위망이 어느 정도 갖춰졌을 때, 좀비 무리 중 한 놈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원래 밀렵꾼이었던 건지 사냥꾼 복장에 덩치가 큰 사내였다.
“칵!”
놈은 거하게 피 기침을 한번 토하더니 목을 기괴하게 꺾었다. 그리곤 이상한 자세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결국 구원병을 보냈더군요. 생각보다 여유가 있으십니까?”
그로테스크한 외모와는 달리 기품있는 말투였다.
아이작은 이 좀비 무리를 조종하는 불사 교단의 사제가 이 사냥꾼을 통해서 목소리를 전달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역시 신중한 놈이야.’
성역을 통해서도 놈의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기운을 숨기는 방식은 신앙마다 다양하니, 모종의 방법을 통해 몸을 숨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아이작이 대답하지 않자 사냥꾼은 다시 헛기침을 했다.
“저희는 여러분께 용무가 있어서 온 것이 아닙니다. 굳이 빛의 법전 사제나 성기사들을 해치고 싶지 않으니, 아까 성 밖으로 나간 분들이 돌아가도록 지시해주신다면 여러분은 건드리지 않겠습니다.”
“개소리 집어치워, 이 썩다 만 놈아!”
성기사 한 명이 꽤 거친 어조로 욕설과 함께 쏘아붙였다. 품위 있는 태도와 정숙한 말투를 지켜야 한다는 규칙은 불사 교단을 상대로 할 때에는 해당 사항이 없는 모양이다. 사냥꾼은 성기사를 가만히 응시했다.
“성기사 안셀. 거친 태도로 두려움을 숨기고 있군요. 네 자루의 창을 주의하십시오.”
대뜸 이름을 불린 성기사 안셀은 숨을 헉 들이켰다.
아이작은 혀를 찼다.
‘역시 보통 놈이 아니군.’
방금 그 말로 상대방이 역시나 보통 직급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한 것이다.
‘이름을 확인했다는 건 죽을 자의 명부를 읽을 수 있다는 건데. 설마 진짜 주교급인가?’
죽을 자의 명부는 불사 교단 특유의 예지 능력이다. 상대방이 어떻게 죽을지 알 수 있는 능력인데, 그 시기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정확해졌다. 네 자루의 창 어쩌고 하는 걸 보니 만약 전투가 벌어지면 성기사 안셀은 죽을 확률이 높았다.
단지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사기를─게임에선 수치적이었으나 이젠 ‘진짜’인─ 쫙쫙 떨어뜨렸기 때문에 악명 높은 능력으로 소문나 있었다.
안셀이 몸을 조금씩 떨기 시작하자, 아이작이 그의 어깨에 손을 짚었다.
“헛소리에 일일이 귀 기울이지 마십시오. 그냥 헛소리를 떠드는 경우도 많습니다.”
아이작이 그렇게 말하자 안셀은 눈에 띄게 안도하듯 호흡을 가다듬었다. 아이작 말대로 불사 교단 사제들은 되는대로 떠드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어차피 확인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사기를 떨어뜨리기에는 좋은 방법이었으니까.
사냥꾼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당신이군요. 이름난 성배기사 아이작. 꼭 한번 뵙고 싶었습니다.”
사냥꾼은 과장된 동작으로 허리 숙여 인사했다. 기괴하게 꺾인 목이 달랑거렸다. 아이작은 화살이 닿을만한 거리라는 것을 확인하고 사격을 지시할까 했지만, 벌벌 떨고 있는 병사들의 모습을 보고 그만두기로 했다.
성배기사의 병사니 어쩌니 해도 이들의 근본은 변방 촌뜨기다. 불사 교단에 대한 혐오만큼이나 두려움도 컸다. 괜한 명령을 했다가 항명이라도 나왔다간 그대로 붕괴될지도 모른다.
‘어떻게든 사기를 높여야겠군.’
아이작은 곁에 있던 베르너에게 지시를 속삭였다. 베르너는 그 지시를 듣고 흠칫했지만 아이작의 지시에 의문을 표하지는 않았다. 그는 즉시 성벽 아래쪽 어딘가로 향했다.
지시를 내린 아이작은 대범하게 성벽 위로 올라갔다.
“성배기사님!”
곁에 있던 병사들이 기겁하며 아이작을 말리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아이작은 성벽 끄트머리에 아슬아슬하게 서서 사냥꾼과 좀비 무리들을 내려다보았다. 활을 가진 놈도 있었지만 상대가 배짱을 보여 준다면 이쪽도 비슷한 배짱을 보여 줘야 했다.
“불쌍한 사람들을 희생시켜 조잡한 무리를 만들었구나, 잔반통 같은 사제야!”
“잔반통?”
사냥꾼이 생소한 비유에 의아한 듯 묻자 아이작이 대답했다.
“구더기가 만찬을 즐긴 잔반만 남은 놈이니 잔반통 아닌가.”
푸흡. 성벽 어디선가 웃음이 흘러나왔다.
사실 아이작은 그다지 재미없는 농담이라고 생각했지만, 병사들에게는 그 사소한 여유가 필요했다. 팽팽하게 긴장된 상황에서 아이작이 던진 말 한마디는 병사들에게 여유를 되찾아주었다.
“화전민과 밀렵꾼, 그리고 방랑객 몇 명 쥐어짜 만든 잡탕으로 이사크레아 수도원을 어떻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그 불쌍한 사람들의 시신으로 어떻게 공성전을 하려고? 성벽에 몸통 박치기라도 할 건가?”
아이작의 지적에 병사들도 냉정을 찾고 좀비들을 볼 수 있었다. 좀비들의 기괴한 몰골은 생리적인 거부감을 안겨 주었지만, 그들은 질긴 내구력을 가지고 있을 뿐 일반인보다도 느린데다 제대로 된 장비조차 없었다.
“댁들의 조잡한 마을을 불태우고 우물에 시체를 빠뜨릴 수는 있지요.”
사냥꾼은 아이작의 말에 협박으로 대응했다. 확실히 아이작이 성에만 틀어박힌다면 아이작이 기껏 자리 잡은 영지가 못 쓸 꼴이 되는 것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할 수 있으면 해보든가.”
아이작은 스산한 웃음을 띠며 대답했다. 사냥꾼이 그 미소에 의아함을 느낀 순간, 아이작의 손이 위로 올라갔다가 단숨에 내려갔다.
“발사!”
신호를 받은 누군가의 외침과 동시에, 화살들이 좀비 무리들을 향해 가득 발사되었다. 화살은 성벽에서 발사되지 않았다. 마을 쪽에서 발사되고 있었다.
“저 썩다 만 것들을 마저 묻어줘라!”
자클렛이 용병으로 고용된 바르바리들과 함께 마을 건물들에 매복하고 있다가 동시에 공격을 시작한 것이었다. 마을 주민들이 성벽 안쪽으로 대피를 시작했을 때, 그들은 함께 돌아가지 않았다. 바르바리들은 되레 마을에 남아 매복을 준비 중이었다.
화르르르륵. 송진을 바른 불화살이 타오르며 좀비들에게 옮겨붙었다. 순식간에 좀비 수십여 구가 불타오르기 시작했지만, 사냥꾼은 비웃을 뿐이었다.
“고작 이따위 매복을 믿고 교만하게 군 건가?”
그가 보기에는 매복 따위는 성벽의 이점을 포기하고 나와서 자발적으로 좀비들의 이빨 앞에 살점을 내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허름한 나무집 따위는 좀비 군세가 밀어붙이면 무너질 꼴이었다.
그러나 그가 좀비들에게 공격을 지시하려 했을 때, 이사크레아 수도원의 성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성벽 문을 연 순간 아이작을 선두로 성기사들과 기마병들이 일제히 돌격해 뛰쳐나왔다. 심지어 그 뒤로 병사들까지 몰려나오고 있었다.
“뭐?”
더 이해할 수 없는 모습에 사냥꾼이 당황한 순간, 이미 아이작은 이 죽음의 군세에 대한 공략에 마무리를 짓고 있었다.
진짜 매복은 외부가 아닌, 바로 놈들의 내부에 있었다.
이미 수십 일 전부터 창궐하기 시작한 파리와 지네, 구더기의 무리가 좀비들의 몸 안에서 만찬을 벌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