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94)
94화. 해방주교 (2)
똥 싼 놈이 성낸다고 눈앞에서 촉수를 보여 놓고선 아이작은 되레 화를 냈다.
“아닌데…… 분명 다른 신앙의 기적인데…….”
하지만 논쟁은 더는 이어지지 않았다.
아무려면 어떤가? 어차피 죽을 놈인데.
아이작과 알 두아자드, 양쪽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먼저 움직인 것은 아이작이었다.
땅을 박찬 아이작은 빠르게 알 두아자드와의 거리를 좁혔다. 당연히 기적에 대한 대비를 하려고 했던 알 두아자드는 되레 당황했다.
‘기적도 안 쓰고 맨몸으로?’
제법 빠르긴 했지만 맨몸으로 달려오는 검사 따위를 상대하기에는 차고 넘치는 거리였다. 알 두아자드는 자신의 두개골을 아이작을 향해 겨냥하고 기도문을 외웠다.
즉사 저주는 사용하지 않았다. 직감으로 즉사 저주를 피하는 미친놈에게 힘이 많이 소모되는 기적을 함부로 사용할 수는 없었다.
대신 땅 밑에서 솟구쳐 올라온 한기가 아이작의 발목을 휘감았다.
평범한 추위가 아니었다. 불사 교단이 쓰는 한기는 사후세계에서 기어 올라오는 부정의 기운이었다. 그러자 아이작은 기다렸다는 듯 루앗딘 열쇠로 바닥을 긁어 버렸다. 루앗딘 열쇠의 열기에 긁혀 나간 한기가 쫓겨났다.
‘기적은 안 쓰나? 하지만 루앗딘 열쇠가 좀 골치 아프군.’
그래도 아이작이 계속 기적을 쓰지 않는다면 문제가 될 수준은 아니었다. 아이작의 솜씨는 나쁘지 않아 보였지만 성배기사고 뭐고, 기적을 쓰지 못하는 자는 사제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다만 알 두아자드는 아까 산 허리를 긁어 버린 그 강력한 기적을 잊지 않고 주의를 기울였다.
아이작이 알 두아자드 앞으로 빠르게 들이닥쳤다. 알 두아자드는 침착하게 몸을 마치 안개처럼 영체화하며 뒤로 빠르게 물러났다.
아이작의 칼날이 허무하게 스쳐 지나갔다. 아까도 알 두아자드는 정체불명의 공격을 영체화로 피해 냈었다.
하지만 아이작은 공격을 그대로 이어 나가며 이삭 검술: 여덟 갈래를 사용했다.
콰드드드득! 알 두아자드는 주변의 땅 거죽을 찢어발기며 날아드는 여덟 개의 궤적을 보며 흠칫했다.
‘기적은 아니야. 그런데 기세가……?’
검술에서 느껴지는 흉포한 기세와 잔혹한 기운이 아까 그 기적과 비슷했다.
그리고 그 궤적의 끝은 정확히 알 두아자드의 영체화가 끝나는 지점을 노리고 있었다.
‘영체화의 간격을 이미 알고 있어? 새파란 놈이 무슨!’
알 두아자드는 영체화가 끝나기 직전 황급히 기도문을 외웠다. 영대에 새겨진 검은색 문양 하나가 타들어 가며 또 하나의 구멍이 생겼다. 영체화가 끝나는 순간, 루앗딘 열쇠가 정확히 알 두아자드의 두개골과 팔다리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그러나 그와 아이작 사이로 불쑥 무언가 나타났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그것은 아이작을 강하게 들이받으며 밀어냈다.
아이작의 눈썹이 휘어졌다.
“데스나이트? 아니…… 듀라한이군.”
데스나이트와 유사한 갑옷에 거대한 체구, 검을 가지고 있었지만 머리는 없었다. 대신 타들어 가는 듯한 검은 연기가 목 주변에서 쉴 새 없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데스나이트처럼 기적을 쓰지는 못하지만 대등한 수준의 힘과 검술 실력을 갖춘 존재였다.
이렇게나 강한 존재를 소환하려면 매개와 의식, 준비가 필요했다. 이때까지는 아까 피워 둔 화톳불을 통해 의식을 치렀지만, 아이작이 휩쓸어 버리는 바람에 알 두아자드는 준비물을 모조리 잃어버린 상태였다.
‘저 영대에 미리 기도문과 제물을 준비해 둔 건가?’
꽤나 귀한 성물임이 분명했다. 탐나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귀찮게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 두아자드는 적진 깊은 곳에서 움직이는 해방주교답게 홀로 돌아다니다가 필요할 때 다른 존재들을 소환하고 통솔하는 데 전문화되어 있었다. 뭔가를 소환할 틈을 주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렇게 즉시 소환할 수 있을 줄은 몰랐다.
하지만 평정심을 잃은 쪽은 알 두아자드였다.
‘아까운 패를 이렇게 빨리 쓰게 될 줄이야…….’
그가 불러낸 듀라한은 해방구를 만들면서 우연히 획득한 엘릴 교단의 전사였다.
엘릴 교단은 무력으로 초월자가 된 신을 섬기는 집단답게 사제와 성기사의 구분 없이 모조리 전사로 구성된 집단이었다. 그만큼 그 안에서 이름난 전사는 엄청난 실력을 자랑했는데, 알 두아자드는 우연히 노화로 죽어 갓 매장된 전사를 듀라한으로 만든 것이다.
개종이 불가능했던 탓에 듀라한으로 그치긴 했지만 그래도 실력은 여전히 출중했다. 그만큼 아끼고 있었지만, 아이작을 상대하면서는 꺼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알 두아자드는 자신의 두개골이 그을린 흔적을 매만졌다.
‘새파란 애송이의 솜씨가 아니야.’
혼란스러운 와중에, 소환이 마무리된 듀라한이 자신의 몸만큼이나 거대한 검을 휘둘렀다.
아이작은 갑작스럽게 나타난 듀라한에도 별로 당황하지 않고 바로 맞대응을 시작했다.
쩍, 쩍, 쩍! 검과 검이 부딪치는 거라곤 믿을 수 없는 소리들이 울려 퍼졌다.
전투를 지켜보던 알 두아자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듀라한의 실력은 역시나 순식간에 아이작을 몰아붙이기에 충분했지만 루앗딘 열쇠가 여전히 문제였다.
듀라한이 아이작을 몰아붙이던 것도 보람없이, 듀라한의 검은 순식간에 만신창이가 되었다.
하지만 언데드가 되었다 해도 듀라한은 실력자였다. 그는 장비의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검을 맞대는 것을 피하며 빈틈을 노렸다. 하지만 아이작은 호락호락하게 상대방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상대가 맞대결을 피하려는 것을 알자마자 아이작은 바로 공세로 전환하며 힘 대결을 강요했다. 검술에 대해 잘 모르는 알 두아자드조차도 아이작의 솜씨가 보통 이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콰드드득, 쩍!
마침내 듀라한의 검이 부서진 순간, 아이작은 지옥 같은 한기를 느꼈다. 은유가 아니라 알 두아자드가 지옥에서 불러들인 한기였다. 봄이었던 주변의 풀밭과 숲은 싸늘하게 죽고 하얗게 얼어붙었다.
마치 온몸에 누군가가 들러붙어 잡아당기고 있는 듯한 저주 속에서 아이작은 제대로 움직이는 것조차 어려웠다. 루앗딘 열쇠의 열기가 없었다면 이 정도 버티는 것도 어려웠을 것이다.
‘이래도 기적을 안 쓰나?’
알 두아자드는 끝까지 기적을 쓰지 않는 아이작을 보며 의구심을 느꼈다. 지옥의 한기를 불러들이는 것은 고급 기적이지만, 열과 빛을 다루는 빛의 법전 성기사나 사제라면 물리칠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아이작은 여전히 근성으로 버티고 있었다.
쩌저저저적. 아이작은 몸에 얼어붙은 서리를 부수며 알 두아자드를 노려보았다. 그 눈빛을 마주한 알 두아자드는 섬찟함을 느꼈다.
‘무슨 백전노장의 성기사단장과 싸우기라도 하는 기분이군.’
알 두아자드는 시간을 더 끌어서는 안 된다는 초조함에 듀라한에게 아이작을 마무리 지을 것을 강요했다. 하지만 듀라한은 두 번째 무기인 도끼창을 꺼내든 시점에도 아이작을 공격하지 않고 있었다.
‘뭐야?’
‘리치.’
알 두아자드는 불현 듯 듀라한에게서 기묘한 의지를 느꼈다.
‘방해하지 마라. 내가 알아서 할 수 있으니.’
언데드가 된 이후로 단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는 듀라한의 자아와 의지였다. 그렇게나 불러내서 데스나이트로 각성시키려고 했던 엘릴 전사의 영혼이 지금 듀라한에게 깃들어 있었다. 듀라한은 아이작에게 강한 호승심을 불태우며 도끼창을 치켜들었다.
아이작은 그에 호응하듯이 루앗딘 열쇠를 힘겹게 뽑아 들었다.
아이작이 한기에 사로잡혀 제 상태가 아니듯, 듀라한도 전성기의 육체가 아닌 만큼 제 실력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에 상관없이 바로 둘은 무기를 맞부딪쳤다.
***
듀라한은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알 두아자드가 그를 무덤 속에서 ‘징집’했을 때, 그는 강대한 엘릴의 전사로서 그 징집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듀라한은 얌전히 그 징집을 받아들였다.
죽음이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그가 무려 ‘노화’로 늙어 죽었기 때문이었다.
명예와 투쟁, 용기를 기치로 받드는 엘릴 교단에서 노화로 인한 사망은 그가 그만큼 강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척도인 동시에 수치이기도 했다.
천사라도 됐다면 자신의 실력이 증명됐을 텐데 그 정도는 또 아니었다. 그는 이 애매모호한 최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의 시체가 도굴당하는 것도 용납하고 기꺼이 불사 교단에 제 육신을 맡겼다.
오로지 영원한 투쟁을 위해서.
살아서 불사 교단과 붉은 성배 놈들을 잔뜩 베어 봤으니, 이젠 죽어서 빛의 법전 놈들을 베면서 실력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시원찮은 화전민이나 바르바리들을 베는 나날뿐이었다. 듀라한은 이 무료한 일상에 지루함을 느끼며 서서히 의식을 침전시키고 있었다. 알 두아자드의 꼭두각시가 되어서.
그러나 오늘, 듀라한은 딱딱하게 굳은 심장이 다시 뛰는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쾅, 까드드드득!
두 무구가 부딪치며 맹렬하게 불꽃이 튀어 올랐다. 하지만 깎여 나가는 것은 듀라한의 도끼창뿐이었다. 그는 아쉬움을 느꼈다. 무기만 자신이 쓰던 것이었다면, 하다못해 비슷한 수준만이라도 됐다면 좋았을 텐데.
한편 아이작은 아득한 기분에 취해 있었다.
한동안 그는 수준 높은 검술가와 싸울 기회가 없었다.
수도원에서 떠나기 직전 로튼해머 단장의 실력을 본 게 전부였다. 블러드 나이트가 있긴 했지만, 그때는 심연의 손아귀로 너무 순식간에 끝났다.
하지만 눈앞의 듀라한, 이 머리 없는 기사의 솜씨는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실력 자체는 빛의 법전 성기사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 몰라도, 완전히 다른 형식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아이작은 의도적으로 상대의 공격을 막아 내는 데 집중하며 마른 스펀지처럼 그의 검술을 흡수하고 있었다. 보통의 데스나이트의 검술은 아닌 것 같았다. 그보다는 엘릴 교단의 검술에 가까워 보였다. 아이작은 그렇게 생각하다가 의아함을 느꼈다.
‘내가 이걸 어떻게 구분할 수 있지? 이것도 칼센 밀터의 기억인가?’
무엇이 어찌 되었든 간에, 아이작은 실시간으로 한동안 정체되어 있던 자신의 검술 실력이 빠르게 상승하는 것을 느꼈다.
처음 알 두아자드를 기습할 때와 듀라한과 한창 싸우고 있는 지금. 불과 몇 분 차이지만, 그 사이 아이작은 빠른 속도로 상대의 검술을 배워나가고 있었다.
그 사이 아이작이 든 루앗딘 열쇠의 빛깔이 묘한 색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하지만 검의 움직임에 취해 있던 아이작은 그 사실을 미처 인지하지 못했다.
한순간, 아이작은 듀라한의 검보다 자신의 검이 아주 약간 더 빠르다는 것을 알아챘다.
아이작은 자신이 비로소 검술의 어떤 한 경지를 넘어섰음을 깨달았다.
“조금 알 것 같군.”
“음?”
아이작이 중얼거림과 동시에 알 두아자드는 의아한 듯 고개를 기울였다. 순간적이지만 주홍빛으로 불타오르고 있어야 할 루앗딘 열쇠가 다른 색깔로 빛났던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니, 설마…… 그럴 리가. 빛의 법전 성기사가 그런?’
순간 아이작의 검이 뱀처럼 휘어지며 순식간에 듀라한의 도끼창을 휘감았다.
콰드득.
비현실적인 움직임에 듀라한은 놀라면서도 흥미로워하며 아이작의 검을 떨쳐 내려 했다. 하지만 도끼창을 타고 올라간 아이작의 검이 그의 손목을 물어뜯는 순간 그것도 할 수 없었다.
그것은 마치 세계를 구멍 내고 파먹는 뱀 같았다.
손목을 물어뜯고, 팔을 부러뜨린 아이작의 검은 단숨에 듀라한의 가슴팍을 꿰뚫었다.
쩌억. 정확히 중심부.
갑옷 안쪽에 숨겨진 듀라한의 차가운 심장이 남아 있는 자리였다. 심장이 순식간에 불타오르며 갑옷 안이 열기로 가득 찼다.
머리가 없는 듀라한은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아이작은 여전히 아득한 기분 속에 취해 검을 횡으로 베었다. 듀라한의 가슴을 그대로 종잇장처럼 찢으며 아이작의 검이 회전했다.
이 순간 아이작의 검술은 명백히 물리적인 한계를 뛰어넘고 있었다.
그의 검은 베는 것이 아니라 씹어 삼키는 듯한 기세로 뼈와 금속을 찢어발겼다.
듀라한은 검이 자신을 베는 것이 아니라 삼키는 것 같다고 느꼈다.
‘멋진 실력이군.’
듀라한은 두 번째 죽음을 맞이하며 솔직하게 감탄했다.
마침내 허망하게 마무리했던 그의 생애에 제대로 된 종지부가 찍혔다.
***
“어떻게……?”
알 두아자드는 듀라한이 어떻게 쓰러졌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했다.
분명 방금 전까지 듀라한이 아이작을 밀어붙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이작이 뭔가를 중얼거리더니 순식간에 쓰러뜨린 것이다. 기적이라도 쓴 건가 싶었지만, 도저히 빛의 법전 기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한순간이지만 아이작의 검이 발하는 색이 변했기 때문이었다.
‘검기? 검기는 엘릴의 기적 아닌가? 놈은 빛의 법전 성기사가 아니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