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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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우웅
류하를 따라서 전이문을 나오자, 나는 순간 놀랐다.
높은 건물이 이리도 많다니!
얼추 보아도 층수가 50층도 넘는 육중한 건물들이 유리창의 태양빛을 반사시키고 있었으며 심지어 그런 고층건물보다 더욱 장대한 탑 같은게 도시의 중앙에 세워져 있었다. 그 탑같은 건물은 좌우로만 십 리는 되어보였다. 저렇게까지 거대한 건물은 외계의 문명에서밖에 보지 못했기에 내가 아연해하고 있자, 옆에 있던 류하가 말했다.
“어라, 좌표를 잘못 잡았슴다. 앱을 업데이트할걸 그랬네~~ 백련교 총단에 바로 가려고 했는데, 여긴 감숙성청(甘肃省廳) 옥상임다….”
“무슨 소리지?”
“저기 보이는 제일 높은 건물이 백련교 총단임다.”
“…높군. 저건 몇 층이지?”
“검색 좀 하겠슴다.”
류하는 단말기를 톡톡 건드리더니 말했다.
“1942년에 지어졌고 높이는 182층임다. 유라시아 최대높이로 세계 기록 3위임다~~”
저 탑처럼 높은 엄청난 건물이 백련교 총단이란 말인가….
과거의 백련교도 크긴 했지만 저 정도 위용은 아니었다. 문명이 많이 발전하긴 한 모양이었다.
나는 류하에게 말했다.
“이 정도 거리면 그냥 날아가면 되겠군.”
류하가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러셈! 허공답보 대박! 저는 여기까지 안내하겠슴다.”
“어?”
“일 다 보시면 이 스마트폰으로 연락주셈! 1번 누르시면 바로 저한테 연결될검다. 그리고 그게 있으면 신분확인도 될 검다. 아, 웬만하면 시큐리티 때문에 1층으로 가시는 게 소동이 없으실 건데 말임다.”
슥
류하가 방긋 웃으며 내 손에 또 하나의 단말기를 건네주었다. 이 단말기를 스마트폰이라고 부르는 것 같았다.
“…….”
나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류하를 쳐다보았다.
“왜 백련교 총단에 가기 싫어하지?”
“에 그게… 프라이버시임다.”
“말해 줘.”
류하는 약간 우물쭈물하다 말했다.
“전술무력요원은 모두 의무적으로 백련교 총단에서 무공연수를 받슴다. 근데 전 무공은 별로 안 좋아해서 그다지 좋은 기억이 없네영~ 또 하필 그 사람 만나는 거면….”
“내공은 출중해 보이는데 무공을 별로 연마하지 않았다는 건가?”
류하의 내공은 매우 높다. 그냥 강호에서 지나치는 수준이 아니었고 초절정고수가 평균적으로 지니는 적공(積功)의 두 배는 가뿐히 넘어 보이니, 과거의 원로원 고수 수준이라 해도 좋았다. 그런데도 무공을 싫어한다는 게 특이해 보였다.
류하는 질색하듯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면서 토끼모자의 귀를 흔들었다.
“저어는 무공 시러요~~ 그냥 시러요.”
“…알았다. 그럼 나중에 연락하지.”
“넵! 초대황제님 충성충성!!”
파앗
류하는 재빨리 경례를 하고는 도망치듯 이 자리에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이번에는 전이문을 안 쓰고 그냥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는데, 그게 류하가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초상능력이란 건 쉽게 눈치 챌 수 있었다.
‘산만한 녀석이군.’
나는 고개를 돌리고는 곧장 허공답보를 써서 백련교 총단을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건물의 중간쯤에 도착해서 건물의 창문을 열고 안에 들어가려 하려다 문득 멈칫했다.
삐비빅….
투명한 유리창의 내부에 순간적으로 새빨간 글자나 회로가 빠르게 비쳤다. 나는 그걸 보자마자 이 유리창에 모종의 장치가 되어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이게 류하가 말했던 시큐리티인가?’
이걸 깨거나 건드리면 소동이 날 것 같다. 나는 방금 전 류하가 1층으로 가는 게 좋을 거라는 말에 무슨 뜻인지 알아채고는 곧장 허공답보를 써서 지상으로 내려왔다. 적이라면 몰라도 아군인 백련교와 괜한 충돌을 할 필요는 없었기에 그냥 정상적인 출입구를 찾았다.
그리고 거대한 건물의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또 한 번 깨달았다.
‘진법(陣法)이다.’
언뜻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주변의 지형과 사물 하나하나가 고도의 진법이었으며 침입자를 교묘하게 가두게끔 되어 있었다. 방향감각을 혼란시키는 건 물론이고, 좌도의 방술로 공간을 만들어내는 기능도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나름대로 진법공부도 많이 했기 때문에 이 진법의 흐름을 읽어서 생문(生門)을 찾아내었다.
내 진법실력으로도 한 식경 만에 돌파한 걸 보면 그리 어렵지는 않은 것 같다. 제갈사나 제갈유룡이 지니고 있던 극악한 난이도의 진법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애교로 보였다. 본격적으로 침입자를 잡아내기 보다는 어중이떠중이를 걸러내기 위한 용도로 보였다.
내가 생문을 통과해서 1층의 정문에 도착해서 문을 열고 들어가자, 거대한 광장처럼 펼쳐진 내부의 한가운데에서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듯한 반백발의 장년인. 백련교의 전통복장을 입고 있던 그 자는 내게 깍듯하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백련교의 귀빈을 모십니다. 다과를 대접해드려도 되겠습니까?”
“넌 누구지?”
“현 백련교의 부교주(副敎主)이며 수신류(水神流) 호법사자(護法師者) 독고숭(獨孤崇)이라 합니다. 미천한 자가 대웅제국의 초대 황제를 뵙니다.”
부교주이자 수신류 호법사자.
나는 독고숭의 자기소개를 듣자 힐끔 그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여기저기에 보이지 않게 고수들이 은둔하는 걸 알아채고는 말했다.
“안내하게.”
“이쪽으로….”
묻고 싶은 게 산더미 같지만, 보는 이목이 많은 상태에서 상대에게 섣불리 물어봤자 깊은 얘기를 못하고 난처하게 할 뿐이다.
나는 잠시 후 독고숭을 따라서 하늘을 날아다니는 기계를 탔고, 기계가 상승하여 탑의 최상층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기잉
전자문을 열고 들어가서 앉자 독고숭이 준비된 다과를 내어왔다. 나는 다과를 힐끔 쳐다보고는 독고숭에게 말했다.
“내가 오는 걸 알고 있었나?”
“귀하를 모시는 전술무력요원들은 실시간으로 귀하의 동향을 보고하게끔 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보고를 받은 황성(皇城)에서 저희 쪽에 방문하시려 한다는 사실을 알려왔지요. 게다가 본교의 절진을 돌아다니실 때 CCTV와 위성으로 인상착의를 확인했습니다. 전승되어오는 대로 진법에도 매우 해박하시더군요.”
나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중얼거렸다.
“…과학이 발달하니 별 게 다 되는군.”
“진정한 고수들 앞에서는 그저 장난감에 불과하지요.”
나는 독고숭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내가 왜 백련교에 왔는지도 알고 있나?”
“네. 현 백련교주를 뵈러 오셨다 들었습니다.”
와작
나는 호박맛이 나는 사탕을 깨물어 먹었다.
“시간 끌지 않고 그녀의 얼굴만 보고 돌아가고 싶군. 그녀는 어디 있지?”
“죄송합니다만 그 분은 폐관수련 중이라 섣불리 안으로 들어가면 저희도 목숨이 위험한지라… 바로 뵐 수는 없을 듯합니다.”
“목숨이 위험하다고?”
독고숭이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일반적인 폐관수련이 아닌지라…. 목숨을 걸고 고대의 백련교주가 남긴 수련법대로 시행하시는 중입니다. 그래서 예전에도 폐관을 억지로 열려 하다가 고수 수십 명이 중상을 입은 바가 있습니다. 저희의 실력으로는 폐관을 멈춰 달라하기도 힘듭니다.”
“…….”
나는 독고숭의 말에 침묵하다가 말했다.
“이해가 안 되는군.”
“어떤 게 말씀이십니까?”
“너도 수신류 독고일족. 그런데 왜 천령단(天靈丹)이 없는 거지? 천령단이 있다면 아무리 폐관의 봉인이 엄중해도 뚫을 수 있을 텐데?”
그렇다.
내가 독고숭을 만나자마자 묻고 싶었던 게 바로 이거였다. 호법사자들에게는 천령단 소유자 특유의 막대한 무한의 내공의 기척이 느껴졌다. 보통 초면에는 잘 알 수 없지만, 나는 전생하면서 호법사자들을 하도 많이 접했기에 그걸 구별할 수 있었다. 그런데 독고숭은 내공이 심후하긴 했지만 결코 천령단을 갖고 있는 걸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독고숭이 흠칫하고 놀라더니 말했다.
“과연…. 전설에 전해지는 대로 신인(神人)이시군요. 천령단의 유무까지 일견에 간파하실 수 있다니.”
“왜지? 독고운천 사후에는 독고 일족이 천령단을 전승하지 않았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그는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그건 독고운천 교주의 유언이었습니다.”
“유언이라고?!”
“네. 그 분께서는 자신의 사후에는 백련교의 그 누구도 원영신과 천령단을 얻으려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원영신과 천령단의 계약마법과 술식은 금지된 비고동에 봉인되어 있는 중입니다.”
“…어째서지?”
이해가 안 간다. 물론 원영신과 천령단은 사기계약이긴 하지만, 달리 말하면 파멸로 치닫는 이 세계에서는 결과적으로 마찬가지일 수도 있다. 그리고 해신을 없애고도 독고운천이 원영신의 힘을 구사할 수 있었다는 건 내가 사대신기 바유에 소원을 빈 대로 계약이전이 원활히 이뤄졌다는 뜻이 아닌가?
그런데도 백련교가 스스로 강대한 힘을 성취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다니!
“고대의 교주께서는 원영신과 천령단이라는 힘이 나중에 귀하의 발목을 잡을지도 모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의 대에서 끝내겠다 말씀하셨습니다.”
“발목을 잡는다?”
“제가 아는 건 그것뿐입니다. 명확한 이유를 아는 건 현 교주와, 대웅제국의 최고위 수뇌부뿐입니다.”
“음….”
“꼭 교주를 지금 만나셔야겠습니까? 236일 전에 폐관에 들어가셨으니 129일 후에 폐관에서 나오실 겁니다. 그 때 보셔도 되지 않을지….”
나는 독고숭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 기간이 딱 365일이군. 그녀는 폐관수련을 반복하고 있는 건가?”
“네. 일 년을 채우고 열흘 동안 교내의 대소사를 처리하십니다. 그리고 다시 폐관수련을 하시지요.”
“거의 일 년 내내 수련을 하는 셈이군. 얼마나 오랫동안 그렇게 해 온 거지?”
“모릅니다.”
“모른다고?”
“제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그렇게 하셔서… 최소한 백 년이 넘었겠군요. 게다가 본인이 얼마나 수련했는지 그리 신경 쓰지 않으십니다.”
“…….”
설마 그렇게까지 수련을 하고 있었을 줄이야.
나는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여태껏 그녀에 대해서 거의 신경 쓰지 않았는데 설마 폐관수련을 백여 년 이상 할 줄이야! 예전의 그녀를 알고 있는 나로서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폐관 도중에 방문하면 그녀에게 폐가 되는 건가?”
“아뇨. 단지 폐관을 깨러 가는 자가 위험할 뿐입니다.”
“좋아. 그럼 지금 가지.”
“알겠습니다. 귀하의 요청이라면 거부할 수 없군요.”
위잉
하늘을 나는 기계에 타서 더욱 더 탑의 위층으로 올라가자, 최상층에는 새빨간 문이 있었고 단단하게 봉인되어 있는 걸로 보였다. 그 문 앞에 선 독고숭이 말했다.
“이 안쪽은 고도의 술법으로 만들어진 공간입니다. 최상위 결계가 적용되어 있기 때문에 이계(異界)나 다름없으니 물리법칙이 거의 적용되지 않을 것입니다.”
“알았어. 열어. 넌 따라오지 않아도 좋아.”
“그럼… 열겠습니다. 만일 도중에 탈출하고 싶으시다면 백색을 연속으로 다섯 번 따라가시길….”
“……?”
뭔 소리지?
끼익
새빨간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나는 이윽고 한 치의 빛도 없는 어둠이 내 주변을 가득 채우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어둠 속에서 화안금정을 끌어올렸고, 화안금정은 술법의 어둠을 순식간에 걷어버리고 진정한 내부의 모습을 드러냈다.
‘꾸불꾸불한 미로군.’
미로라곤 해도 뛰어오르면 한 달음이면 미로의 벽을 뛰어넘을 수 있을 듯하다. 그러나 술법으로 만들어진 미로라면 그런 원시적인 방식으로는 파해할 수 없음을 알 수 있었기에, 나는 일단 백 걸음 정도를 걸어보았다. 그리고 아무리 걸어도 미로가 사라지지 않는 걸 깨달았다.
끼기깅
그리고 미로의 벽면에는 오색(五色)이 번갈아가며 바뀌는 게 보였다. 색깔은 청홍흑백황(靑紅黑白黃)이었으며 일정한 규칙을 따르는 듯 했다. 나는 한참동안 미로를 헤매면서 그 변화를 관찰하다 침음성을 흘렸다.
‘…팔진도(八陣圖)잖아, 이건.’
정확히는 팔진도에 오행을 가미한 고급결계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냥 팔진도도 깨기 힘든 판에 오행의 변화를 섞었다면 이미 내 진법실력으로는 파해가 불가능하다. 제갈일족만이 깰 수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나는 방금 전 독고숭의 조언을 이해했다. 당연히 멀쩡한 백련교 교도들을 진법에 갇혀 다 죽게 만들 수는 없었으므로, 백색의 벽을 다섯 번 따라가면 무사히 탈출할 수 있게끔 만들어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오기가 생겼다. 그리고 검을 치켜들고는 의념을 모았다.
‘힘으로 부수자!’
우우웅
압도적인 검뢰가 검 끝에 맺혔다. 나는 그 힘을 한동안 정제하면서 고도로 집중했고, 이윽고 의념을 미간에 모으면서 절대지경의 일섬을 내질렀다.
쩌어억-
공간이 갈라지면서 눈앞에 있는 모든 게 베여나갔다. 하지만 일 참 만으로는 이 공간의 결계를 벨 수 없었으므로 나는 의념을 소모하면서 연속으로 어검(御劍)을 펼쳤다. 수백 개의 검이 환영처럼 날아다니면서 결계의 미로를 난도질했다.
쿠콰쾅!!
콰쾅
몇 번의 폭음 후 결계의 미로는 폐허가 되었고, 나는 지평선 너머에 시뻘건 용광로 같은 불빛이 나타났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부서진 결계가 서서히 다시 만들어지는 기색이 보였으므로 급히 재빨리 멸혼보의 극성을 써서 지평선까지 달려갔다.
파앗
내가 시뻘건 불빛에 도착했을 때였다. 눈앞까지 도달하자 그 화염은 어마어마한 기세로 커져 있었으며 마치 조그마한 산을 연상케 할 정도였다. 그리고 화염의 한가운데에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돌아왔구나.]나는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고약한 취미군. 기껏 폐관수련 하는데 뭐 이런 거창한 결계를 세워둔 거지?”
[마도(魔道)의 괴물들이나 과학세력들이 심심하면 본교에 침입하려 했으니까. 제갈일족의 도움을 받아서 수련에 집중할 공간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하여간. 내가 없는 동안 많은 일이 있었나 보군….”
[그래.]후우우우….
잠시 후 엄청난 기세로 거대한 화염이 사그라들어서 한 점으로 압축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대한 화염에 둘러싸여 있던 한 명의 인영이 회색빛 공간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건 나도 익히 알고 있는 자였다.
‘세상에. 그 때부터 외모가 하나도 변하지 않았군….’
사공린처럼 그녀 또한 그 당시부터 하나도 변하지 않은 듯 했다. 내가 내심 놀라고 있자, 그녀가 쌍검 중 하나를 치켜들어 나를 겨누면서 말했다.
“백웅. 들어온 김에 실력 좀 보자.”
“뭐? 잠깐…!”
까앙!!
나는 순식간에 그녀가 쇄도해서 내게 일 참을 날리자 급히 막아내었다. 하지만 그 일 검에 담겨있는 역도(力導)가 어마어마했기에 나는 순간적으로 전신이 굳어질 정도였다. 급히 전력을 끌어내어서 튕겨내자 그녀는 한 바퀴 돌면서 재차 일 검을 날렸고, 나는 그 공격을 막아내려다가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막으면 안 돼!’
파앗
나는 급히 철판교의 수법을 씀과 동시에 뒤로 유려하게 몸을 뺐다. 그러자 마치 하나의 검이 두 개로 갈라진 듯한 환영이 스쳐 지나갔고, 나는 저게 어떤 검격인지 깨닫고는 말했다.
“용아(龍牙)! 그런데 어떻게 검마의 무영검법을….”
분명히 저건 화신류의 기초검술에서 파생된 비기인 용아! 그러나 통상적인 용아와 달리 현실과 환검이 구분되지 않는 양자택일의 성질을 지니고 있었는데, 저걸 그냥 막으려 하면 환검에 내장이 찢기게 되어있었다. 문제는 저런 환검법의 성질은 원래 용아에 없는 것이었고, 본디 검마의 비전검기인 무영검법의 오의라 할 수 있었다.
철컹
그러자 상대가 검을 허리춤의 검집에 넣으며 대꾸했다.
“검마에게 억지로 배웠지. 500년 후까지 살아남을 가능성이 큰 게 바로 본녀였으니 검마는 내게 무영검법을 가르칠 수밖에 없었다.”
“뭐…?”
“화신류의 무공을 좀 더 강화시키지 않으면 그 동안의 아수라장에서 버틸 수가 없었다. 운이 좋게도 살아남았노라.”
잠시 후 그녀는 내 쪽으로 저벅저벅 걸어왔다. 그리고는 말했다.
“그건 그렇고 참 늦게도 왔구나. 황제여, 정말로 네가 다른 이들이 말하던 것처럼 기적을 일으킬 수 있을까? 인간을 초월한 자들이 종말만을 학수고대하는 상황에서.”
나는 이를 악물었다.
“…해야지. 할 거다.”
절대 이대로 무력하게 죽음만 기다리진 않는다. 죽을 때 죽어도 뭔가 이뤄놓고 죽고 말 테다.
상대는 내 대답이 만족스러운지 훗 하고 웃었다.
“그래야지.”
따악
그녀가 손가락을 마주치자 갑자기 주변 풍경이 다과실처럼 변했다. 이 공간에 대해서 그녀가 지배력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앉아라. 네가 나한테 물어볼 게 많은 것처럼, 나 또한 물어보고 싶은 게 있으니.”
“알았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았다.
“한백령.”
현 20세기 백련교의 수장이자 교주.
화신류의 종사.
그리고 500여년을 살아온 자이며 그 당시 나와 얼굴을 맞대던 동료 중 하나인 호법사자 한백령! 그녀가 현재는 전술무력요원의 서열 1위이자 백련교주로서 전술요원의 무공을 다듬어주는 교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들어서 찾아오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