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102)
0102 ———————————————-
암천향(暗天鄕)
나는 반문했다.
“세 가지?”
“그렇소. 첫째부터 먼저 이야기 하자면.”
망량은 우물에서 떠온 차가운 물을 꿀꺽꿀꺽 마시고는 말을 이었다.
“애초에 ‘변화’가 없었을 때 금의위가 칠요를 어디에서 얻은 것이었나, 라는 문제겠지.”
“그건 정말 궁금한 일이오.”
“이걸 알아내지 못하면 시간낭비라고밖에 할 수 없소.”
나는 침음성을 흘렸다. 실제로 나는 의술을 배우면서도 그 고민에 줄곧 시달렸다. 원래 역사대로라면 가만히 있으면 금의위가 칠요를 얻어서 세력을 강화시키는데, 금의위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쉽사리 백련교에게 중원무림을 내어주고 말았다. 왜 그렇게 역사가 변화한 것일까? 망량의 말이 이어졌다.
“내 생각에 그 변화라는 건 당신의 행동밖에 없소. 당신이 고려로 갈 때 대룡상회와 서궁표국을 구해 준 행위 자체가 미래에 변화를 준 것이오. 다시 말하자면, 당신이 그들을 구하지 못했다면 그들은 해적들에게 붙잡혔을 것이고, 노예가 되거나 인신공양의 제물로 쓰였을거란 이야기지. 그 패배결과가 칠요의 행방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밖에 없소.”
“그 해적들은 한두번 해적질을 한게 아니라던데 그 한번의 해적질이 금의위가 칠요를 얻는 인과로까지 이어졌다는 것이오?”
“당신도 느끼고 있지 않소? 인과의 시작점과 도달점은 인간의 지혜로는 감히 추측할 수가 없소. 신통력을 이용해서 엿보는 것조차도 신선지경의 도력이 필요하지. 그렇기에 그 일이 어떤 식으로 흘러가서 ‘미래’에 도달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소.”
망량이 섭선을 부쳤다.
“굳이 짐작을 해 보자면 금의위와 해신족들이 손을 잡았다는 게 현실적이겠지. 그리고 서경의 해신족 습격과도 연관이 있을 것이고.”
“으음…”
그가 섭선으로 나를 가리켰다.
“다시 말해서, 당신은 어찌되었든간에 일단 대룡표국을 해적에게서 구해줘야 하는 것이오. 그걸로 일단 금의위의 칠요의 획득 자체를 막을 가능성이 높아지겠지.”
“그건… 전생과정으로 치면 너무 큰 낭비요.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일이긴 하지만 고려로 향하는 천리뱃길을 왕복해야만 하는 것인데.”
“정 그게 싫다면, 인과의 과정과 원인을 당신 자신이 직접 알아보는 수밖에 없소.”
“직접 알아본다고?”
“그렇소. 방법은 두 가지요. 첫째는 당신 스스로가 금의위에 들어가서 그들이 칠요를 어떻게 획득하는지를 옆에서 끝까지 지켜보는 것이고, 두번째는 그 물고기괴물들의 소굴에 들어가서 어떤 식으로 칠요가 전달되는지를 알아보는 거요. 전자가 좀 더 쉽고 가능성이 높겠지.”
“으음. 당신은 저번 전생에서 내가 금의위에 들어가는 걸 크게 반대하며 위험하다고 했었는데.”
내가 꿍얼거리자 망량이 피식 웃었다.
“그 때야 당신이 무공 외에는 가진것도 없고 막무가내로 돌격부터 하는 성미였으니, ‘내’가 볼 때는 금의위같은 용담호혈에서 끝까지 목숨을 보전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을 거요. 덤으로 당신이 너무 자주 죽어서 서왕모의 축복을 이용해 자기자신을 키우고 다듬을 시간을 주고싶었겠지.”
“……”
“금의위의 엄선된 인재들은 무공 뿐만이 아니라 지략과 재치에도 탁월하오. 뿐만 아니라 세간에는 알려지지 않은 초고수들도 잠복하고 있다고 들었소. 자칫하면 이용만 당하다가 고문되는 신세가 될지도 모르지.”
뭐라 할 말이 없다.
정말 그랬을 거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오. 내가 이야기를 들어본 결과, 당신은 예전에 비해 상당히 침착해졌고 자기 머리로 생각하게 되었소. 솔직히 어지간한 사람보다 뛰어난 학식을 쌓은 것도 사실이며, 무공 뿐만 아니라 술법과 의술까지 한 몸에 갖추고 있소. 지금의 당신이라면 충분히 금의위에서 잠복하며 목적을 이룰 수 있을 거요.”
“칭찬 고맙소.”
즉 첫 번째는 금의위에 잠입해서 그들의 꿍꿍이와 진행과정을 알아보는 생애를 추천해준 것이었다. 내가 망량의 말에 귀를 기울이자 그가 말을 이었다.
“자, 그럼 두 번째를 짚어보겠소.”
“말해 주시오.”
“두 번째는, 이미 짐작하고 있겠으나, 십이율주는 상당히 음흉스러운 인물이라는 사실이오.”
“나도 그렇게 생각하오.”
“서산대사와 유정이라는 두 고승(高僧)이 칠요의 유적이란 것도 모른 채 그 곳을 지키고 있었다는 것, 당신에게는 그저 동영에 월요가 있다고 말해둔 것, 그리고 본인은 인형탈을 쓴 채 당신에게 정체를 노출시키지 않으려 한 것… 어떻게 봐도 거짓말을 한 것이고, 당신을 전혀 신뢰하고 있지 않는 모습이오.”
그렇게 말한 망량이 나무등걸로 시선을 옮겼다.
“십이율주라면 나도 들어서 알고 있소. 동방무림을 지배하는 지존이자 십이율의 영존이며 대단한 천재아라고 하오. 스승님과 아는 사이였다는 건 금시초문이지만, 아무튼 그정도 되는 인물이 이유없이 거짓말을 할 리는 없소. 틀림없이 무언가 목적이 있기 때문에 월요에 대해서 당신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오.”
“그는 분명히 칠요를 하나로 모으기를 바라고 있었소.”
그때 내가 파악한 십이율주의 감정은 진짜같았다. 하지만 망량이 고개를 저었다.
“그게 사실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백웅, 너무 한가지 명제를 절대적으로 맹신하지 마시오. 십이율주의 지략이 뛰어나며 능구렁이같은 존재라면, 하나의 진실에 집착하지 않고 수많은 사실을 교묘하게 뒤섞을 수 있소. 당신이 보았던 그의 감정은 그저 한 단면에 지나지 않으므로 진의(眞意)를 파악하고 있다고는 확신할 수 없는 거요.”
“……”
나는 그 말을 듣자 되려 혼란스러워졌다.
십이율주가 내게 거짓말을 했다는 건, 월요의 유적에 들어갈 때부터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가 대체 왜 거짓말을 한 것일까? 만일에 내가 갑작스럽게 일이 생겨서 미호를 따라나서지 않았다면 나는 의술을 수련하다가 언젠가 동영 땅으로 떠났을 것이다. 그리고 서왕모의 축복을 믿고 백 년이고 이백 년이고 동영 땅을 탐색하다가 어느날 사망했을지도 모른다.
‘ 오싹하군.’
나는 온갖 상상이 다 떠올랐지만 일단 가라앉혔다. 망량의 말이 이어졌다.
“하지만 지금은 당신이 십이율주를 찾아갈 명분도, 그럴만한 여유도 없소. 최급(最急)이 아니라 후수(後手)로 알아볼 일이오. 당신이 지금 알아둬야 하는 것은 십이율주나 십이율이란 세력을 결코 전적으로 믿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이오. 문주 개개인은 선할지 몰라도 단체의 의지는 언제든지 십이율주에 의해 표변할 수 있는 것이니.”
“알았소.”
“월요 또한 지금은 바로 얻으러 갈 수 없을 것이오. 위치만 기억해두고 나중에 찾아가는 게 좋겠소.”
망량은 거기까지 이야기한 후 다시 우물에 물을 뜨러 갔다. 그릇에 물을 받아와서 한모금 들이키던 망량이 말했다.
“셋째. 이게 가장 중요한건데, 당신은 앞으로 어떻게 강해질 생각이오?”
“스스로 수련을 해서 강해지고자 하오.”
“내가 그런 걸 묻는 게 아니라는 건 이미 알고 있을 것이오.”
“……”
“이광은 당신에게 모든 걸 가르쳐준 게 아니오. 겉으로 보이는 무공 자체는 다 가르쳐 준 셈이겠지만 진정한 비밀을 모두 공유하지 않았을 거요. 그건 당신이 죽기 전에 풍신류의 호법사자와 싸우며 깨달았을 것이오.”
“그 말이 맞소.”
나는 다시 힘이 빠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풍신류의 호법사자의 실력은 차원이 달랐다. 그건 확실했다. 그러나 단순히 차원이 다른 것 이상으로, 익히고 있는 기(技)의 종류와 수준이 지나치게 차이가 났다. 특히 풍신류의 보법이나 비기, 최종오의를 직접 본 입장에서는 떨떠름할 정도였다.
이광이 말하기를 같은 경지라면 뇌신류가 풍신류를 7할 이상의 확률로 승리할 수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녔다. 그게 설령 뇌명 덕분이라고 할지라도, 뇌신류에는 아직까지 내가 배우지 못한 비기가 많이 있는게 틀림없었다. 내가 초절정고수들과의 비무경험을 쌓으며 무수한 실전을 거쳤지만, 이 경험들을 종합해서 한단계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고수의 가르침이 필요했다.
망량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당신은 아무래도 현재 이광에게 많은 두려움과 분노를 느끼고 있는 듯 하군. 그래서 청룡무관에 다시 갈 생각을 못 하고 있는 듯 하군.”
“어쩔 수가 없소.”
나는 힘겹게 내뱉었다.
“그 당시에, 이광같은 초고수의 살기와 괄시를 받아가며 살아가는 게 얼마나 살떨리는 일이었는 줄 아시오? 간절한 목적의식이 아니었다면 진작에 자살했거나 그냥 폐인이 되었을 것이오. 나는 그때의 기억만 생각하면 아직도 악몽을 꿀 정도요.”
“그 정도요?”
“백 년이 걸리든 천 년이 걸리든 나는 이광 밑에서 다시 수학할 자신이 없소. 그게 솔직한 내 심정이오.”
나는 이광에게 괄시받을 때 정말로 괴로웠다. 첫번째 생에서 개같은 선임표사때문에 괴롭힘당하고 굴렀을 때 이상으로 괴로웠었다. 뱀 앞에 놓인 개구리같은 감정을 몇 년 내내 느꼈다. 그래서 이광 밑에서 수행하는 게 제일 편하고 빠르게 성장하는 길이라는 걸 알면서도 일부러 저번 전생에서는 다른 길을 골랐던 것이다.
사실 내가 이광 밑에 들어가서 다시 수련하는 계획 자체는 짜 놓았다. 침술을 이용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실행할 엄두가 나지 않아서 줄곧 끙끙대고 있었다.
한참 생각하던 망량이 말했다.
“그건 좋지 않은 일이군. 흐음, 상당히 예정이 꼬이겠는데… 몸은 하나인데 해야할 일이 너무 많아보여.”
“……”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이건 정신적인 외상에 관련된 일이었으므로 나도 쉽게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망량이 손가락을 튀기며 말했다.
“그러면 일단 막야의 수기를 공양하러 가 봅시다. 어떤 축복을 받는지 알아보고 나서 방침을 정해도 늦지는 않겠지.”
“알겠소.”
나는 망량과 함께 천우진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번에도 나는 소나무 숲에 천암비서를 놓아둔 후, 천우진을 만나러 들어갔다. 이번에도 천우진은 나를 못마땅해하다가 대충 망량에게 설득되어서 막야의 수기를 공양하는 의식을 치르게 되었다.
한바탕 축문을 외우고 의식을 진행하던 천우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러더니 나를 매섭게 내려보며 말했다.
“으음… 강신(降神)이…”
“태허천존이 내게 할 말이 있나보군?”
그러자 천우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뜻밖인 듯 했으나 나는 심드렁했다. 이 짓도 벌써 세 번째였기 때문에 어떤 말이 나오게 될지는 대충 짐작하는 것이다.
잠시 후 천우진의 몸이 빛났다. 그리고 얼굴이 시뻘겋게 변하고, 눈에서 선연한 광채가 흘러나왔다. 태허천존이 그의 몸에 강림한 모습이었다. 그는 뚫어져라 나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 수기는 잘 먹었다. 인간들이여. 헌데… 이상하군. 너와 제의를 주관한 자들에게 축복을 내리고자 하거늘, 너희에게는 이미 내 힘의 흔적이 남아 있다. 너희는 삼황오제(三皇五帝)의 혈족과 관련이 있는 자들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태허천존!”망량은 맹세같은걸 하지 않았다. 어차피 거짓말을 판별하는 능력이 있는 상대이니 최소한의 대답만 하면 되는 것이다.
[ 끄응… 분명히… 내 힘의 흔적이 느껴진다…]신음성을 내며 고민하던 태허천존이 말했다. 그러더니 말했다.
[ 그렇다면 너희에게 힘을 내리는 자를 다른 존재로 교체하겠다.] “그리 해도 되는 것입니까?”[ 물론이다. 물론 나와 다른 영역을 다루는 자이기에, 너희가 받는 보답은 다소 다른 것이 되리라.]
나는 여기서 약간 질문을 꼬아보기로 마음먹었다.
“만일 그 분께서도 축복을 껄끄러워하시면 어찌됩니까?”
내 질문은 태허천존도 예상못한 것이었는지, 천우진의 몸뚱이가 잠시 휘청거렸다. 잠시 후 태허천존이 말했다.
[ 그런 일은 없겠으나… 그 때는 또다른 신이 지명될 것이다.] “그렇군요.”[ 자아, 오시게, 서왕모(西王母).]
파아앗
오색 구름이 흐르더니 천우진의 몸에, 한 순간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이 환영처럼 아로새겨졌다. 이번에는 서왕모가 빙의된 것이다.
천우진에게 빙의한 서왕모가 내 쪽을 휙하고 바라보았다. ‘그녀’는 나를 찬찬히 뜯어보더니 말했다.
[ 이게 어찌된 일이냐…?] “네?”서왕모가 진심으로 곤혹스러운듯 말했다.
[ 너에게서 반도(蟠桃)의 기운이 느껴지며… 동시에 과거 내 권속의 기운이 남아 있구나. 너는 혹여 구미호(九尾狐)와 관련이 있는 자이냐?]나는 순간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갑자기 미호의 죽음이 머릿속에 스치고 지나갔다. 그래서 서왕모에게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서왕모님! 저는 불민하지만 구미호와 친한 관계에 있었습니다. 구미호는 현재 지상에서 악행을 저지르고 있으나, 그 본심은 천계로 돌아가고싶은 것밖에 없습니다. 서왕모께서 구미호가 그 죄를 뉘우치고 천계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주셨으면 합니다.”
[ 설마… 그게 너의 소원이냐?]
“네, 그렇습니다.”
다른 신의 축복따위 안 받아도 상관없다. 죽는 횟수가 좀 더 늘어날 뿐이다. 나는 미호가 조금이라도 구원받기를 원했다.
[ ……]신 중에서 매우 높은 서왕모로써도 뜻밖인지 입을 다물었다. 그러더니 잠시 후 말했다.
[ 그 부탁은 들어주겠다. 그러나 그것은 수기의 공양에 대한 부탁을 들어주는 것은 아니다. 너희의 일은 또다른 신에게 맡기겠다.] “그 말씀은…”[ 내 구미호에게 시련을 내릴 것이다. 그 아이가 진심으로 참회하고 천계로 올라올 수 있는지를 알아보겠다.] “감사합니다.”
나는 꾸벅 절을 하면서도 놀랐다. 이 말은 내 부탁은 부탁대로 들어주고 축복의 기회를 남겨준다는 뜻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신이 인심이 좋아도 되는 것일까?
[ 설마 인간이 그 아이를 변호할 줄은 몰랐구나.]그렇게 말하는 서왕모는 포근하게 웃는 듯 했다. 내가 멍하니 서왕모를 바라보고 있자 잠시 후 서왕모가 손을 높이 들었다.
[ 오시게, 남화노선(南華老仙).]부르르
천우진의 몸이 떨렸다. 그리고 서왕모가 나가는 기척이 느껴지더니, 그 자리에는 알 수 없는 신령스러운 기운이 깃들었다. 지켜보던 망량이 떨리는 목소리로 두려워했다.
“으으… 무슨 이런…”
스승인 망량선사는 몰라도 망량에게는 그를 두려워 할 이유가 있는 듯 했다. 그러자 소환된 남화노선이 천우진의 입을 빌려서 퉁명스럽게 말했다.
[ 나도 그리 오고 싶지 않았다. 그 무시무시한 경계의 제망량이 인간놀이나 하고 있는 곳에서 인간에게 축복을 줘야한다고? 흐흥… 정말 각별한 일이구나.]나는 남화노선의 말투에 놀랐다. 망량이 남화노선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둘째치고, 내가 알기로 남화노선이라는 인물은 삼국시대의 전설적인 선인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에게 질문했다.
“경계의 제망량이라니요?”
[ 그건…]
스으으으으
그 순간 남화노선의 기운이 싸늘한 빙기(氷氣)에 얼어붙는 게 눈에 보였다. 실체하는 한기가 아니라 영기를 직접 때리는 기운인지, 천우진의 몸은 멀쩡한데 남화노선의 영체만 서서히 뽑혀나오고 있었다. 남화노선이 놀라서 외쳤다.
[ 그, 그만! 그만! 알았다 망량선사여! 내가 할 일을 하고 물러가겠다!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겠다!]빙기의 세례가 멈추었다.
남화노선의 영체가 다시 천우진에게 깃들었다. 그는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그 때 지켜보고 있던 망량이 끼어들어서 강하게 항의했다.
“잠깐!”
[ 뭐냐?]
“태평요술서가 이름만 그럴듯한 잡서에 불과하다는 걸 누가 모르는줄 아시오?”
[ 무어라.]
“스승님께 다 들었소. 태평도의 장각이 망한 이유는 당신이 가짜 법서를 내렸기 때문이오. 이 자리를 스승님께서 지켜보고 있으니 허튼소리를 하지 마시오.”
남화노선은 찔끔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말했다.
[ 그럼 묻지. 내가 이 인간에게 과대한 축복을 내려야 할 이유가 무어냐? 수기를 준 것은 고마우나, 우리가 축복을 베풂은 어디까지나 의식에 불과하다. 태평요술서로도 감지덕지해야 할텐데?]나는 남화노선의 이야기를 듣자 기가 막혔다. 태허천존이나 서왕모는 굉장한 축복을 내려줬지만, 남화노선은 숫제 귀찮다는 듯 대충 하고 돌아가려는 것이다. 게다가 상황을 보니 망량선사도 남화노선이 내게 뭘 주는지까지는 관여하지 않으려는 듯 했다.
나는 앞으로 나서서 남화노선에게 말했다.
“그러면 다른 분께 넘겨 주십시오. 부탁 드립니다.”
[ 알았다.]
내 부탁을 흔쾌히 들어준 남화노선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
[ 오시게, 여동빈(呂洞賓).]덜걱 덜걱
천우진의 몸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나는 문득 이렇게 많은 강령을 받고도 천우진이 괜찮을까 싶었지만, 원체 재수없는 놈인데다가 내 일도 아니었으므로 신경을 껐다. 잠시 후 천우진에게 내려앉은 여동빈이 말했다.
[ 너는 무인(武人)이냐?]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천둔검법(天遁劍法)을 전수하겠다.]
파아앗 –
빛이 일어나더니 곧 사라졌다. 그리고 천우진은 역할이 끝나자 그 자리에 탈력해서 무릎을 꿇었다. 천우진이 헉헉대며 하는 소리가 가관이었다.
“배, 백 년 내에 나보다 대선급 신령을 많이 받아들인 자는 없을 것이다…”
“그건 됐고 내가 무슨 축복을 받은 것이오?”
쿨럭 쿨럭
기침을 토해내던 천우진이 말했다.
“검선(劍仙) 여동빈의 천둔검법을 얻었군. 축하하오.”
“무슨 소리요? 난 지금 아무것도 얻은 느낌이 없소.”
나는 황당해서 반문했다.
뭔가 기억에 새겨지거나, 가공할 절세신공이 느껴질 줄 알았다. 그러나 그냥 빛만 번쩍거렸을 뿐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무공에 관련된 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어이가 없어하자 천우진이 말했다.
“나도 잘은 모르지만 천둔검법은 인간의 검법이 아니라 신선의 검법이라고 들었소. 즉 천둔검법을 얻어서 발현하기 위해서는 뭔가 조건이 있는지도 모르지.”
“그래서?”
“그냥 지내보라는 소리요. 여동빈은 쩨쩨한 신이 아니라 되려 호탕한 신이므로, 당신은 머지않아서 그 진수를 알 수 있을 것이오.”
“……”
결국 아무것도 못 얻었다는 소리가 아닌가?
뭔가 찝찝한 느낌을 남긴 채, 나는 망량과 함께 천우진이 있던 마을을 나왔다.
============================ 작품 후기 ============================
탈혼경인 및 타 작품에 나오는 천둔과는 다름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ㅠㅠ 원래는 작중에서 보여드려야 하는 내용이지만 오해때문에 을 순수하게 즐기실 수 없을까봐 말씀드리고 갑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