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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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그 사슴이 단의 일족에서 왔다는 말에 나는 흠칫했다.
그리고는 대꾸했다.
“근거는? 나는 처음 보는 사슴이야.”
“…처음으로 목격된 건 당신이 실종되고 얼마 후, 연종휘(燕鍾揮)가 십이율주의 동향을 살피기 위해 신시(神市) 부근을 정찰할 때였습니다. 그는 은빛 사슴이 신시의 경계에 있었다는 사실을 본진에 보고해 왔고, 그 당시에는 다들 그다지 대단치 않은 정보로 취급했습니다.”
사공린이 말을 이었다.
“그 사슴은 10년 후, 우리 대웅제국이 고려에 잔존해 있던 십이율의 문주와 그 세력들을 복속시키던 당시에 또 한 번 나타났습니다. 그 때 사슴을 생포하려 했으나 무위로 돌아갔었고, 이후로도 별다른 일은 없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있었나?”
“네. 요괴전쟁 당시에 그 사슴이 큰 일을 일으켰습니다.”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아군과 팔부신중이 싸우는 한가운데에 난입해서 팔부신중 가루라를 꿰뚫어 죽였습니다.”
“…뭐?”
“그 후로도 종종 출현했고…. 제 3제국과의 전투 때도 난입했습니다. 적아를 구분하지 않고 날뛰었지요. 그때마다 아군측에서는 일단 부딪히지 않고 후퇴를 감행했습니다.”
“그게 뭐야.”
난입하기를 좋아하는 전투생명체란 말인가?
나는 사공린의 말에 혼란스러워하다가 이해가 안 되는 점을 물었다.
“센 놈이라고 치지. 그런데 단의 일족이란 건 무슨 이유냐.”
“500년 전부터 우리는 계속해서 신시 근처에 결계를 쳐서 그들의 행위를 감시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슴은 언제나 신시 근처에서 출몰한 후 뜬금없이 전장에 나타나게 마련이었습니다.”
“흠…. 신시 근처에서 늘 나타나기 때문에 단의 일족이 보낸 놈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것도 있고, 그 사슴이 쓰는 정체불명의 힘이 마도(魔道)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고유한 능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고유한 능력?”
“네. 그 사슴을 관찰한 제갈가의 책사들은 그 존재의 힘이 마도나 술법이 결코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런 성격을 가진 힘의 소유주라면 단의 일족 출신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지요.”
“…과연.”
신시 근처에서 늘 출몰하며 마도도 술법도 아닌 강대한 힘을 사역하는 존재.
단의 일족이거나 놈들이 보낸 전투병기라고 볼 근거는 충분하다.
나는 사공린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말했다.
“근데 여태껏 너희도 사슴이라고만 부를 뿐 제대로 잡거나 싸워본 적은 없었던 거야?”
“차원이 다른 존재입니다.”
“응?”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그 은빛사슴은 팔부신중 가루라를 죽였습니다. 그런데 가루라를 기습해서 죽인 게 아니라 정면으로 돌격해서 순식간에 해치웠던 겁니다. 그 정도 역량을 보이는 존재를 우리들의 힘만으로 생포하거나 쓰러뜨리는 건…. 수백 년 전 시점에서는 무리였습니다.”
“…….”
나는 사공린의 말에 멍해져 있다가 말했다.
“마왕(魔王)급이란 말인가?”
“분명히 그렇습니다. 가루라 또한 팔부신중 중에서 최강급의 공격력을 자랑하는 신염(神炎)을 내뿜는 자라서 아군의 희생이 컸는데, 그 사슴은 가루라의 신염을 그대로 중화시켜버리더군요. 그리고 당황한 가루라가 돌진한 사슴의 일격에 살해당했습니다.”
“……!!”
“정체도 의도도 불분명하지만, 제갈일족은 그 사슴이 십이율주 하은천의 의지를 대행하는 놈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했습니다.”
“십이율주….”
나는 침음성을 흘렸다.
‘가능성 높군.’
십이율주 하은천은 해신토벌전 이후로 신시에 틀어박혀서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들은 바가 있었다. 그리고 하은천 휘하의 단의 일족들도 이후로는 두문불출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십이율주라는 괴인이 잠자코 은둔해서 세상일에 관심을 끊을 리는 없었기에, 놈이 전면에 나서지 않고 자신을 대신해서 암약할 존재를 세상에 내보낼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아니, 아마 틀림없으리라.
‘그리고 십이율주가 자신의 의지를 대신 맡길 정도라면 그 정도의 강함은 이해할 수 있다…. 놈은 정체모를 기술력을 갖고 있었지만 세상에 숨기고 있던 중이었으니까.’
제갈일족의 추론을 내가 이해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자 사공린이 말했다.
“정체를 알 수 없기에 쉽사리 명명하지는 못했습니다. 섣불리 이름을 지었다가 놈의 실체가 드러나면 혼란이 올 수 있어서…. 그저 은빛 사슴이라고만 불렀죠.”
“그래. 그럼 그 은빛 사슴에 대한 대처법은 따로 없는 건가?”
“지금으로서는 힘으로 찍어누른다는 것밖에 없습니다. 사용하는 기술의 근원이 출처가 명확하지 못하고 무효화기술이 많기 때문에.”
“힘으로?”
“네. 은빛 사슴도 폭주상태에 들어간 아수라를 상대로는 이겨내지 못하고 도주해 버렸으니까요. 그 존재의 힘도 일정한계를 넘어선 존재를 상대로는 통하지 않는 듯 했습니다.”
“으음. 칠요를 써서 공격해 봤나?”
“그럴 기회는 없었습니다.”
“그렇군….”
나는 사공린의 정보를 머릿속에 일단 자세히 기억해 두기로 했다.
‘왠지 그 사슴과는 다시 볼 것 같다.’
전생자의 직감이라고 해야 할까?
반드시 한 번은 마주쳐서 싸워야 할 것 같은 직감이 들었다. 나는 지금 내 전력으로 그 사슴과 싸워서 이길지를 마음속으로 견주어 보았는데 확실하지가 않았다. 단순한 상대적 비교라면 싸워볼만한 상대일 것 같긴 했는데 정체불명의 기술을 쓴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미지의 기술을 상대로 할 경우 피차 공격수준이 너무 높아서 뜻밖의 즉사기에 순식간에 결판이 나버리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생각을 정리한 후 사공린에게 말했다.
“사슴은 그렇다 치고 이제 뭘 하면 되지?”
“하고 싶은 걸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하고 싶은 거라….”
지금 당장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은 딱히 없다. 외계인들이 기술을 전해주러 오는 건 1년 후인데다가 은빛 사슴이라는 놈도 내가 당장 처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나마도 천암비서가 지금 없으니 찾아내야 하겠지만 천암비서를 찾을 방법이 딱히 없는 상태였다. 전 세계를 뒤져서라도 찾으려 시도할 순 있겠지만 바다 밑바닥을 다 뒤져야 할까?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일단, 칠요부터 각성시키는 게 좋겠어.”
“그렇게 하시길….”
파앗
나는 지상으로 돌아간 후 우선 몇 시진 동안 심신을 쉬었다. 따뜻한 목욕물에도 몸을 담그고 딱히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침대 위에서 빈둥빈둥거렸다. 이제 또 쉴새없이 움직여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조금만 쉬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한참을 놀다가 만 하루가 지나자 수요를 꺼냈다.
“수요의 정령이여, 모습을 드러내라!”
우웅!
[나를 불렀는가, 백웅이여!]“그래 불렀다!”
[왜 불렀는가.]“어…. 그게….”
[…….]“…….”
나는 불렀는데 막상 할 말이 생각 안나자 뻘쭘해서 머리를 긁었다. 할 말이 잔뜩 있었는데 갑자기 머리가 엉켜서 생각이 안 난 것이다. 그러자 수요의 정령이 팔짱을 낀 채로 말했다.
[나는 그간 휴식을 취해서 조금 나아졌다. 그러니 그대에게 전에 약속한대로 천빙을 쓸 수 있도록 도와주도록 하겠다.]“아 맞다 그거! 저번에 쓸 수 있게 해준댔지?”
[그렇다. 다만 설명을 좀 들어라.]“어떤 설명?”
[그대는 지금 당장도 내 인정을 받았으니 천빙을 시전할 수 있다. 다만 천빙을 쓸 때 알아두어야 할 점이 몇 가지 있다.]“말해 줘.”
수요의 정령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우선 첫 번째. 천빙의 위력은 사용자의 역량에 비례한다. 그대가 강하면 강할수록 천빙의 위력 또한 강력해질 것이다. 여기서 역량이라 함은 단순한 무술역량 뿐만 아니라, 그대의 총체적인 모든 힘을 말하는 것이다.]“흐음. 그렇군.”
[그러므로 굳이 무인(武人)이 아니라도 천빙의 위력을 살리는 건 가능하다. 다만, 무(武)를 함께 쓴다면 내가 잠재력을 더 발휘할 수 있게 되어 있다.]그 말대로라면 내가 수요천빙을 쓰더라도 대라신선 수백 명을 일격에 죽일 수는 없다는 소리가 되겠군.
‘[옛 지배자]가 쓰면 가능하겠지만, 나는 인간이니까 수요천빙의 위력도 제한된다는 말이겠구나.’
이건 아주 오래 전부터 예상하고 있었던 점이었다. 왜냐하면 이런 제약이 없다면 칠요의 주인이 진작에 천하를 제패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알고 있는 걸 직접 수요의 정령을 통해서 확인하는 차원이었다.
그리고 수요의 정령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수요천빙을 시전할 때는 시동어(始動語)와 신력(神力)이 필요하다.]“시동어와 신력?”
[시동어는 그대가 원하는 어떤 것으로 해도 좋다. 그러나 그 시동어에는 신력이 담겨있어야 하며 언령(言靈)이어야 한다. 제대로 된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수요천빙은 절대 발동하지 않을 것이다.]“잘 감이 오지 않는 걸…. 일단 바깥에서 써 볼까.”
파앗
나는 수요를 가지고 인적없는 서장의 고원지대로 갔다. 그리고 대뜸 수요를 휘두르면서 외쳤다.
“수요천빙!!”
……
정적이 흘렀다. 내가 물끄러미 수요를 내려다보자, 어느 새 눈앞에 구현화된 수요의 정령이 내게 말했다.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된다는 소리다.]“뭐가 잘못된 거야?”
[그대의 말은 언령이 아니었다. 또한 말에 힘을 담지도 않았으며, 그 힘이 신력도 아니었다. 모든 요소가 틀렸으니 발동하지 않는다.]“…어떻게 해야 언령에 신력을 담아서 쓸 수 있다는 거지?”
[그대는 말에 힘을 담는 법을 모르는가?]“잘 몰라. 술법은 조금 공부했지만 언령은 일반술법과는 다른 계열이라서….”
술법을 쓸 때도 언령을 담은 말을 발휘하곤 했지만 그건 고대의 선각자가 이미 개발해놓은 언령의 공식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 수요천빙에 필요한 언령의 발현은 처음부터 말의 언령을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었으므로 내가 알 수 없는 영역이었다.
[그렇다면 근처의 강력한 술법사나 언령사에게 물어서 그 방법을 알아두는 게 좋을 것이다. 그대만의 발동법을 만들어 두도록….]“근데 화룡진인같은 경우는 화요를 얻었을 때 바로 화요천염을 시전했었어. 왜 그녀는 바로 쓸 수 있었던 거야?”
[그 존재는 태생부터 신적인 존재이므로 신력과 언령을 숨쉬듯이 쓸 수 있다. 인간술법사처럼 이해하고 쓰는 게 아니라 생각하며 느끼는 모든 것이 술법이 되는 존재. 그런 존재에게 인간같은 별도의 수련은 필요치 않을 것이다.]“흐음…. 신공표는 시동어도 안 쓰고 칠요의 고유기술을 시전했었는데.”
[그 존재가 어떤 존재인가?]나는 신공표에 대한 설명을 해 주었다. 그러자 수요의 정령이 고개를 끄덕인 후 말했다.
[술법의 종사이며 초월경지에 도달한 자가 아닌가? 그 정도면 시동어를 생략시킬 수 있으리라.]“그럼 수요천빙, 화요천염이라고 치고…. 화요와 수요의 힘을 합치면 신살(神殺)이 가능하다던데 그것도 사실인가?”
이건 망량선사에게서 얻어냈던 정보였다. 나는 지금까지 줄곧 이 정보만큼은 무조건 기억해오고 있었다. 수요의 정령이 그걸 알고 있었냐는 듯 의외의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래, 사실이다.]“신살이라면 어떤 신까지 죽일 수 있단 말인거냐.”
세상에 의외로 신적 존재는 많았다. 그러나 인간이 워낙 미약하기 짝이 없는 존재인지라 인간을 조금만 초월해도 신으로 신봉되는 일이 잦았고, 그런 신격 중에서도 격차는 하늘과 땅만큼 나게 마련이었다. 그래서 나는 수요의 정령에게 신살의 범위를 물어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칠요의 시련에서 화요와 수요를 교차시켜서 공격했는데도 토요의 정령이 바로 안 죽었었고….’
핵을 터뜨리는 데는 성공했었지만 사실 그 정도는 다른 기술로도 비슷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신살의 권능이라기엔 아직 힘이 증명되지 않은 게 바로 화요와 수요의 합체기인 신살이었다.
그러자 수요의 정령이 대꾸했다.
[수요천빙과 화요천염의 힘을 모두 극상(極上)으로 끌어낼 때 등장하는 신살능력…. 그것은 삼황오제에게 치명상을 입히기 위해 만들어졌다.]……?
뭐라고?
나는 순간 잘못 들었나 싶어서 눈을 휘둥그레 뜨고 수요의 정령을 쳐다보았다. 나는 황당해서 말했다.
“저, 정말이냐? 누가 그런 용도로….”
“너, 수요를 만든 건 바로 삼황오제 전욱이잖아. 그는 오제(五帝)의 일원인데 어째서 그들 스스로를 죽이는 칼을 만들었단 말이냐.”
[아니, 전욱이 아니다.]“뭐?”
[수요천빙은 전욱이 불어넣어준 권능이지만 신살능력은 다른 자가 불어넣었다. 화요도 마찬가지.]“……?!”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나는 또 다시 수수께끼에 직면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지만 일단 고개를 흔들고는 말했다.
“…그럼 삼황오제 이외의 신에게는 잘 안먹히는 신살능력이란 말인가?”
[아니. 그건 아니다. 도리어 삼황오제급 이상의 강대한 신격에게 쓰기 위해 만들어진 능력인 듯하니 주객이 전도되었지. 다 통한다.]나는 수요의 말을 곰곰히 생각한 후 말했다.
“흠…. 신살로 일단 다 한칼씩 먹일 수 있는데, 그 중에서 삼황오제가 유독 수요와 화요의 합체공격에 치명타를 입는다…. 라고 이해하면 되냐?”
[그렇다. 잘 이해했구나.]“…….”
[제대로 먹인다면 삼황오제의 본체라 하더라도 최소한 중상을 입을 것이다.]왜일까. 저 신살능력은 대체 왜 만들어진 것일까?
삼황오제에게 해악밖에 되지 않는 신살기능을 누가, 대체 왜 넣었단 말인가?
그것도 칠요의 제작자 본인도 아닌 제 3자가 불어넣었다는 게 의문투성이였다.
‘또 하나 궁금한 점은… 역시….’
이 사실을 내게 가르쳐 준 망량선사는 왜 알려준 거지?
“음….”
알아내려 해도 아는 게 너무 없고 방법도 없다. 게다가 당사자인 삼황오제조차 소멸상태이니 어떻게든 비벼볼 방법도 없는 상태다.
나는 당장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뒤로 하고는 수요에게 말했다.
“잠깐 기다려. 그 언령인지 뭔지를 배워올 테니까.”
파앗
나는 천우진에게 갔다. 연구실에서 인공폭포를 보면서 전자담배를 피고 있던 천우진은 나를 보자마자 인상을 팍 찡그렸다.
“…큭.”
“천우진, 도와줘!”
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천우진에게 수요천빙의 언령과 시동어에 대한 걸 문의했다. 그러자 이야기를 끝까지 들은 천우진이 말했다.
“그렇군…. 칠요에 어울릴 정도의 고급언령을 시전하려면 수준이 꽤 높은 술사(術師)이거나 신의 혈족이어야겠지. 막힐 만도 하군.”
“언령이라는 거 어떻게 할 방법 없냐?”
“…….”
천우진이 전자담배를 뻑뻑 피다가 말했다.
“제대로 된 언령사가 되려면 재능있는 자라고 해도 최소 10년간 뛰어난 스승 밑에서 용맹정진해야 하는데 지금 당장 그 정도 수준이 되는 건 무리겠지…. 하물며 그 병신같은 술법재능으로는 50년을 해도 잘 안 되겠지…. 언령술은 특히 난이도가 높은 유파이니 넌 절대로 죽었다 깨어나도 안돼….”
“…….”
“너를 가르치는 건 나로서도 무리야. 하지만 너라면 그런 정석적인 방법으로 언령을 취득할 필요는 없겠다.”
“응?”
놈이 전자담배를 갑 안에 집어넣으며 말을 이었다.
“언령을 생략해라. 너 또한 선택받은 자의 범주에 있다 할 수 있으니, 수련하는 자의 방식으로 굳이 수요천빙을 쓸 필요는 없어.”
“……!!”
“술법은 결국 필멸자를 위해 마련된 신분상승의 계단이며 장치. 너는 이미 수많은 신력을 가지고 있으니 계단의 [위쪽]에 있다. 넌 수련을 하는 게 아니라 깨닫는 방법으로 힘을 얻는 게 더 빠를 것이다.”
“뭔 말인지 모르겠는데…”
천우진이 홱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냥 수요에 신력 몰아넣고 정령과 공명만 하란 소리다. 언령을 안 쓰면 최대위력은 안 나오겠지만 네놈은 양으로 깔아뭉개는 타입이니까 필요한 만큼은 위력이 나오겠지.”
“아…!! 알았어!”
파앗
나는 다시 서장의 고원에 가서 천우진이 말한대로 수요에 잔뜩 음신지력을 불어넣었다.
우우웅!!
“수요의 정령이여, 나와 공명하라!”
[알았다!]피잉 하는 소리와 함께 일순간 수요의 정령이 영체 형태가 되어서 내 몸과 겹쳐지며 정신적으로 일치되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잠시 후 공명이 파장처럼 일어났고, 나는 그 상태에서 그대로 칼을 전방으로 내뻗었다.
수요천빙(水曜天氷)!
쿠콰콰콰콰 – !!
천지를 절반으로 가르는 일참이 가공할 음기(陰氣)를 머금고 전방으로 뻗어나가더니, 높이가 수천 장은 되어보이는 설산을 갈라버리는 게 보였다. 설산을 두쪽내버린 검참은 계속해서 맹진하더니 지평선 너머까지 날아갔다.
가히 전설적인 위력이었지만 나는 그걸 보자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력의 제한이 있군!’
내가 평소에 쓸 수 있는 절대지경의 일참보다는 몇 배나 강한 위력이지만 칠요신기의 권능이라기엔 좀 부족한 힘이었다. 천계에서 [옛 지배자]가 수요천빙을 써서 수백 명의 대라신선을 주륙했을 때만큼의 힘이라고는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이번 수요천빙을 쓰면서 크게 만족했다.
공력의 소모가 거의 없다!
그것은 내가 아무리 절대지경에 공력이 무진장이라고 해도 격렬한 싸움일수록 공력소모에 신경써야 했던 단점이 크게 해결되었다는 소리였다. 수요천빙을 써서 무예를 시전하면 공력은 별로 소모하지도 않으면서 그 위력이 엄청나니 가히 전설의 신병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신력이야 좀 소모되지만 단기결전이라면 이 정도 소모는 감당할 만한 수준이었다.
‘좋아…. 이 정도라면….’
나는 마음속에 묘한 흥분이 감도는 걸 느꼈다.
어쩌면…. 수요천빙만으로도 이 정도라면, 화요까지 얻는다면 삼황오제와 싸워볼 만 할지도 몰라!
나는 흥분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이후로도 몇 시진동안 수요천빙을 연습하면서 응용해 보았다. 그리고 충분히 연습을 했다고 생각되자 곧장 사공린에게 가서 화요를 달라고 했고, 사공린은 화요가 보관되어 있는 기밀내궁의 출입권한을 내게 주었다.
위잉!
“이것이 화요입니다.”
나는 시종장의 안내를 받아서 화요를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곧장 화요에 신력을 불어넣어서 각성시키기로 마음먹었다.
쿠구구구…!!
‘으윽, 역시나 또 음신지력이…!!’
알을 각성시킬 때만큼은 아니었지만 역시나 버거운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마에 땀을 삐질삐질 흘렸고 이윽고 음신지력이 밑바닥을 보일 때쯤이 되자 초회복 현상이 일어났다.
푸화악!!
결과적으로 음신지력을 반쯤 소모한 상태로 화요의 정령이 각성되었다. 화요의 칼날이 부서지고 거기에서 새하얀 칼날이 치솟았으며, 전방에는 적룡(赤龍)의 용린갑옷을 입은 적발(赤髮)의 미녀가 장도(長刀)를 허리춤에 빗겨찬 채 당당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수요의 정령과 거의 비슷한 형태의 갑옷이었기에, 마치 성별과 색깔만 반전된 것처럼 보였다. 수요와 화요가 형제로 만들어진 존재라는 건 틀림없어 보였다.
[나는 화요의 정령! 그대여, 나를 각성시켰는가!]“그, 그래….”
왜 이래?
나는 머리가 크게 어지러워지는 걸 느끼면서 휘청거렸다.
‘어라….’
머리가 왜 이렇게 어지럽지? 마치 술을 진탕 마신 것처럼….
이런 어지럼증은 한 번도 없었기에 내가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불렀으면 용건을 말해라!]“…나는 백웅! 내가 이제부터 너의 주인이니, 화요천염을 쓸 수 있게 해 다오.”
[거절한다!]엥?
뜻밖의 소리에 내가 눈을 둥그렇게 뜨자 화요의 정령이 나를 쳐다보며 끄응 하고 고민하더니 말했다.
[그대는 너무 못생겼다! 마음을 정할 시간을 다오.]“…….”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내가 황망하게 서 있자 수요의 정령이 말했다.
[화요여! 인간은 외모가 다가 아니다.] [그런가, 수요여. 나도 알고 있다. 알고는 있으나….]화요의 정령이 한숨을 쉬었다.
[저건 좀 너무하지 않은가…] […….] [날 각성시켜준 은혜는 고마우나 조금 생각할 여유를 다오.]수요의 정령이 침묵했다.
내가 멍하니 서 있자 수요가 내 등을 두들겨 주었다.
[백웅…. 상처받지 말라! 그대는 남자답게 생겼다.]“됐어!”
하지 마!
내가 살면서 제일 많이 들어본 쓸데없는 격려라고!
“…제기라아알….”
나는 내가 심하게 못생긴 편이란 걸 알고 있었기에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평범 이하로 심하게 못생기긴 했지만 설마 정령한테 이런 소리를 듣게 될 줄이야! 나는 잠시 좌절하고 있다가 화요의 정령에게 말했다.
“이렇게 생겨먹은 걸 어떻게 하란 말이냐? 그리고 그렇게 실망할 일이냐?”
[으음…]“네 심미안이 어떤지 몰라도….”
[몰라도?]나는 우물쭈물하다가 용기를 내서 말했다.
“나… 나도 제법 인기있어. 의외로 말이지!”
[…….] […….]잠시 침묵이 흘렀다. 수요의 정령은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화요의 정령이 말했다.
[미안하다, 백웅이여! 내가 그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그토록 상처받을 줄이야….]“으응?”
[그대를 나의 주인으로 인정하며 화요천염을 쓸 수 있게 해 주겠다!]화아악
화요가 다시 검신으로 되돌아갔다. 이로써 2개째의 칠요를 각성시킨 셈이 된 것이다.
하지만 나는 기쁨을 느끼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수요에게 말했다.
“…내가 뭐 잘못 말했냐?”
[음… 그게….]수요는 꽤 곤란한 표정을 짓다가 뭔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백웅! 차(茶)나 마시러 가는게 어떤가? 오늘 여러가지 해서 피곤하지 않은가.]“그, 그럴까!”
[세상구경도 좀 하고 싶군.]“그래 오늘은 쉬자고!”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제 남은 것은 월요와 토요!
2개의 칠요를 더 각성시키게 된다면 우리쪽 전력은 엄청나게 강해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