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10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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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원시천존의 궁이었다고?
나는 그 사실에 궁금해져서 초무린에게 말했다.
“초무린. 당신도 그 궁에 가본 적이 있나?”
초무린이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조사에 대한 존중은 밥말아먹었나보군. 이전에는 예의차리는 척이라도 했던 것 같은데.”
“아니, 가본 적 있소?”
“입구까지는. 폐궁에서 혹시 요기가 흘러나올까봐 순찰을 갔던 거였는데 별다른 일은 없었다. 그런데 그 곳이 설마 삼황 복희가 봉인된 곳으로 향하는 미궁이었다니.”
“당신은 우리 대웅제국이 복희를 탐사한다는 사실을 몰랐소?”
“전혀 몰랐지. 현허궁주가 모든 걸 통제했기에 바깥으로 정보가 전혀 새지 않았나보군.”
그렇게 중얼거리던 초무린이 말했다.
“너희들은 정말로 종말에 대항하려는 것 같구나. 설마 복희를 찾아내려 하다니 생각지도 못했다.”
“초무린. 당신은 우리가 종말에 대항하려는 게 쓸모없는 짓이라 생각하는 듯 하군.”
초무린이 내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훗…. 내가 그런 희망을 갖고 있었다면 이렇게 자폐적으로 살고 있겠느냐.”
“…….”
그것도 그렇네….
초무린의 말이 이어졌다.
“그나저나 네가 그 복희 탐사대에 참가하고자 한다면 수준을 좀 더 높여야겠군.”
“흠…. 내 실력이 등선한 동료들에 비하면 낮다는 이야기요?”
“그럴 리가. 너는 분명히 천하에서 손에 꼽힐만한 초고수다. 지금 당장 천계에 가더라도 출중한 무위를 선보일 수 있겠지. 하지만 그것과 생존은 별개의 이야기가 아닌가.”
“…생존이라.”
“언뜻 내가 천계에서 탐사대의 이야기를 소문으로 들은 적이 있었다. 전원이 절대지경 이상인 그들조차도 전멸위기를 여러 번 겪은데다 결코 수월치 않다고 했다. 네 녀석은 대웅제국의 수장이자 선두에서 지휘해야할 입장이니 평균 이상의 실력을 갖춰야만 생존을 도모할 수 있지 않겠나?”
일리있는 말이다. 천계에 등선한 동료라고 해서 나보다 압도적으로 강한 자는 거의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내가 충분한 실력이라는 보장은 없는 것이다. 최소한 지금보다 한두단계 더 강해지지 않으면 천계에 올라가봤자 무의미하리라.
내가 생각을 거듭하고 있을 때 옆에 있던 방룡 이설표가 말했다.
“쓸데없이 고민만 해도 무의미하지 않겠소! 결국 수련을 해야 강해질 것이오, 종사여!”
“맞는 말이군!!”
방룡 이설표 말이 맞는 것 같다! 머리만 굴려가며 이런 고민을 해봐야 실력향상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구궁파천뢰와 선검술, 어느 쪽에 먼저 집중하는 게 맞을까?
지금 두 가지 수련을 같이 진행할 수도 있겠지만 둘 다 난이도가 만만치 않은 수련이었기에 내 재능으로 둘 다 하려다가 하나도 건지지 못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단기간에 성과를 얻어서 천계 탐사대에 합류하려면 하나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내가 이 고민을 이야기하자 주현성이 말했다.
“본디 폐하께서는 구궁파천뢰 수련이 너무 장구하고 더뎌서 해결책으로 선검술을 수련하고 계셨지요. 원래 하던대로 선검술부터 집중하시는 게 낫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렇긴 한데, 사실은….”
나는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마지막에 여동빈이 줬던 과제…. 심검(心劍)과 심인(心刃)을 구분하라는 게 아직 이해가 안 되거든. 그 단서를 찾으려고 사공린한테도 갔던 건데 별다른 성과가 없고.”
이게 문제다. 지금까지 여동빈의 도움으로 선검술의 수련은 꽤 진도를 나갔는데, 막상 저 과제가 제대로 풀리지 않는 것이다. 마음의 검과 칼날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현묘한 이치가 담긴 게 틀림없었고 자칫하다가는 수십 년동안 고민만 하게 될 수도 있었다.
만일에 몇 년이고 저 과제를 고민하고 있는데 끝내 깨닫지 못한다면?
시간은 시간대로 낭비하고 최악의 경우 17년을 그냥 날려버릴 가능성도 크다.
그러자 방룡 이설표가 흠, 하고 자신의 턱을 쓰다듬더니 감탄하듯 말했다.
“종사께선 너무 재능이 뛰어나셔서 그런가 가끔 병신같은 소리를 하실 때도 있구려…. 천재란 본디 그런 법이지.”
“…….”
한 치의 악의도 느껴지지 않아서 약간 괴롭다….
옆에서 초무린이 히죽거리고 있는 게 보여서 쏘아보고 있을 때 이설표가 입을 열었다.
“종사께서 말씀하시기로 여동빈은 진정한 심검이란 활인(活人)을 성취할 수 있다고 이미 단서를 주지 않았소이까! 그러면 그 단서대로 해보면 될 일이오.”
“…엉? 그 말은….”
“검으로 사람을 살리는 일에 도전해보시면 될 것이오!”
나는 이설표의 말이 논리적으로 옳다 생각했으나 황당해서 입을 쩍 벌렸다.
활인이라니!
칼이란 건 결국 사람을 찔러죽이고 해하려고 만들어진 건데 그걸로 어떻게 사람을 구하는가?
‘백 번 양보해서 약자를 괴롭히는 강자를 토벌하면 활인을 이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여동빈이 말하는 활인은 그런 게 아니었다. 완전히 있는 그대로의 의미였어. 칼을 써서 순수하게 생명을 살려내야 해.’
그 때문에 너무 과제가 난해해서 사공린까지 찾아가며 도움을 청했던 것이다. 내가 할 말을 잃자 초무린이 옆에서 팔짱을 끼고 있다가 말했다.
“이치 그대로 따지자면 의술(醫術)이 거기에 들어맞는 게 아닌가?”
“의술?”
“칼을 써서 수술을 하여 인간을 살리니까.”
“…나 놀리는 거냐? 여동빈이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란 건 알고 있잖아. 심검이 무슨 말장난도 아니고.”
“크크큭. 크큭.”
“웃어?”
초무린이 광소를 터뜨렸다.
“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 키키킥.”
초무린이 재밌다는 듯 나를 놀려먹는 걸 보자 내 표정이 썩어 들어갔다. 무슨 놈의 신선이 저따위로 성격이 파탄나 있단 말인가? 인성이 망가진 게 틀림없었다.
내가 짜증때문에 인상을 찌푸리자 주현성이 주의를 환기시키듯 말했다.
“폐하. 우선 하루의 수련치를 매일 꾸준히 하면서 남는 시간에 스스로 생각해보심이 좋을 듯합니다. 전에도 말씀드렸듯 저희는 경지가 낮아서 폐하의 과제에 직접 해결점을 드리진 못하니….”
“알았어. 그래야겠다.”
나는 할 수 없이 그 날부터 선검술의 수련을 꾸준히 하면서 구궁파천뢰의 수련도 병행하기 시작했다. 누구한테 도움을 청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되자 나 혼자서 폭포 아래에 앉아서 명상하는 시간이 갈수록 늘어났다.
쿠구구구
나는 폭포를 맞으면서 생각했다.
‘사람을 어떻게 해야 검으로 살릴 수 있지?’
의미 그대로의 위력을 어떻게 해야 시전할 수 있는 걸까….
‘여동빈은 과거 백련교주와 낙양에서 겨룰 때, 한백령의 심령을 심검으로 격중시켜 물리적인 상처 없이 베어낸 적 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심검은 여러번 형체없는 것을 베어내거나 활인(活人)을 성공시켰어…. 이 경지는 결코 말장난으로 이룰 수 있는 게 아냐.’
실제로도 나는 살아오며 무수한 고수들을 보아왔으나 그 모든 고수들 중 심검을 제대로 시전한 존재는 딱 하나, 여동빈뿐이었다. 검선 외의 모든 무림고수들은 파괴만 할 줄 알 뿐 여동빈처럼 파괴력을 승화시켜서 활인을 실천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귀걸이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와라, 황룡마신(黃龍魔神).”
인적없는 곳에서 한 번쯤 시험해본다는 게 지금까지 까먹고 안 했던 것이다.
쿠구구구!!
다음 순간, 내 전신에 황금빛의 갑주가 뒤덮이며 완전한 철갑전사같은 모습으로 변했다. 마치 서양의 기사와 같은 위용이었으며 연못에 비치는 모습은 굉장히 멋있었다. 마치 황금의 용을 상징하는 듯한 투구가 햇살에 비쳤다.
“오오…?!”
마음에 든다!
심지어 허리춤에 매여있는 장검도 휘황찬란한 황금빛을 내뿜고 있는 금검(金劍)이었다. 나는 혹시나 이게 진짜 금이 아닐까 싶어서 살짝 깨물어보았는데 이빨흔적이 남지 않았다.
“어 이거 금이 아닌가…?!”
나는 약간 실망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이건 전투용 보패로 만들어진 것이니 이빨에 흔적이 남을 정도로 물렁하다면 전투용으로 쓸 수 없으리라. 내가 황룡마신의 갑주를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을 때 문득 머릿속에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OS 황룡마신. 착용자의 DNA 스토리지(Storage)에 추가입력 감지. 사용자께서는 명명 히든피스(Hidden Piece)라는 내용물을 열람하시겠습니까?]아무래도 황룡마신은 인공지능까진 아니고 OS를 탑재한 최신 인공보패인 모양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열람하겠어.”
[퀀텀 크래프트 발동.]슈아아악
갑자기 내 손의 혈관이 불룩 튀어나오더니 손바닥에서 쭈욱하고 무언가가 밀려나오는 기분이 들었다. 이윽고 내 손바닥에서 중력을 역전해서 솟아오른 핏방울 몇 개가 새하얀 빛을 은은하게 내뿜었고, 눈앞에는 금색 목걸이가 나타나 있었다.
촤락
나는 금색 목걸이, 히든피스를 현실에서 매만지자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도대체 무슨 원리로 전뇌세계의 자료를 현실에서 만질 수 있게 된 걸까? 미래의 과학기술은 정말로 발전해있는 모양이었다.
“흠. 히든피스라…. 어디 뚜껑을 열어 볼까.”
꾸드득
“헉! 이런.”
나는 힘을 주어서 뚜껑을 열어보려 했는데 갑자기 안쪽에서 뭔가 뭉개지는 소리가 들리자 기겁했다. 그리고는 이걸 억지로 열어봤자 섬세한 장치가 되어있기 때문에, 완력때문에 망가지게 되면 안쪽의 내용물을 볼 수 없게 되어있다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이런 식의 기계장치는 종종 보아왔기 때문이다.
“뭔가 정해진 방법을 이용해서 열어봐야 하는 거군…. 황룡마신! 다시 한 번 퀀텀 크래프트로 히든피스를 꺼낼 수 있겠나?”
[원본이 현실에 존재하면 중복구현화는 불가능합니다.]“어? 중복은 왜 안 되는데?”
[양자의 역공존 법칙 때문입니다.]“……? 아 모르겠고, 새로운 걸 소환하려면 원본을 부숴야한다 이 말이군.”
[사용자의 인식이 중요합니다.]“부숴서 없앴다는 인식이 중요하단 말이겠지.”
콰앙!!
나는 곧장 괴력으로 히든피스를 깨서 없애버렸다. 그리고 원본이 사라졌다고 강하게 염(念)하며 인식으로 고취시켰고, 한참 후에 다시 한 번 히든피스를 퀀텀크래프트로 소환했다.
슈슉
“신규소환을 하면 기존에 있던 건 사라져 버리는군.”
새로운 히든피스가 소환되자 망가져서 조각나 있던 히든피스의 조각들이 갑자기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퀀텀 크래프트로 구현화된 것은 의념으로 구현되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기 때문에 잔류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현실에 있던 물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히든피스에 관해서 혼자서는 알아낼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고는 방법을 생각해보기로 했다.
‘주현성에게 물어볼까? 녀석은 현대문물에 익숙하며 똑똑하니까…. 아니지, 주현성은 사공린에게도 충성하고 있으니까 히든피스에 대해서 물어본 건 모두 사공린도 알게 될 거야. 그렇다고 초무린이나 이설표가 이런 첨단장치에 대해 알 것 같진 않고….’
나는 문득 현 시대에 오면서 모든 걸 사공린과 대웅제국에 의지하고 있었다는 걸 실감했다. 몇몇의 조력자들을 빼고 나니 이 시대에서 친하거나 알고있는 인간이 단 하나도 없다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하…. 생각보다 어렵겠군.”
나는 이윽고 전국옥새의 정령을 불러서 질문했다.
“전국옥새! 이 금색 목걸이가 뭔지 알고 있나?”
우웅
전국옥새의 정령이 잠시 후 내 말에 대답했다.
[그것은 목걸이며 동시에 회중시계입니다. 15세기 독일 뮌헨의 시계공방에서 유행했던 하일리히(Heilig) 양식으로 판단됩니다.]“회중시계? 그게 뭐지?”
[시계의 발달과정에 생겨난 휴대용 시계이며 주로 서방에서 발달했습니다. 시계의 닫힌 안쪽에는 주로 시계가 들어 있으며, 또는 초상화나 사진이 함께 들어가 있습니다.]“시계란 거군. 휴대용 시계라…. 초상화나 사진은 왜 넣는데?”
[가까운 지인과 가족을 추억하기 위해 쓰였습니다.]“…….”
뭔가 감이 잡히려고 한다.
‘파우스트 박사가 제갈부에게 준 리소스는 자신의 죽은 딸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리소스에 담겨있던 히든피스는 추억을 담는 회중시계라….’
그렇다면 이 금색 회중시계에는 시계뿐만이 아니라 사진이 담겨있을 것 같다.
그 사진이나 내용물을 볼 수 있다면 파우스트의 진짜 의지를 알 수 있지 않을까?
그 정도 되는 자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강인공지능으로 성장할 수 있는 리소스에 이런 숨겨진 자료를 넣어두진 않았으리라. 그리고 파우스트의 뜻을 알 수 있다면 내 전생여정에 큰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회중시계의 뚜껑을 열 수 있는 방법이 있겠나?”
[알 수가 없습니다.]아 맞다. 이런 식으로 질문하면 대답하기를 꺼리는 놈이었지.
나는 머리를 굴리다가 다시 질문했다.
“시계를 열 수 있는 최첨단 공방을 검색해 줘. 세계 최고의 실력을 가진 곳으로.”
[총 1곳이 검색되었습니다.]세계 최고라는 단서를 붙여서 쉽게 검색한 듯싶었다.
“어딘데?”
[스위스의 최고공방인 쿼츠 아겐투어(Quartz Agentur)입니다. 위치를 좌표에 표시해 드리겠습니다.]위잉!
나는 서방에 있는 높은 산 위의 공방의 전경을 살짝 볼 수 있었다. 확실히 저기에 수많은 첨단기계가 공장에서 돌아가는 게 보였다. 그런데 쿼츠 아겐투어의 본사 지붕을 보자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저거 오망성 아냐?”
오망성.
그것은 술사들이 즐겨 쓰는 표식으로써 주술에서 굉장히 큰 의미를 갖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잘 보니 쿼츠 아겐투어는 다섯 방위에 제각각 건물이 하나씩 세워져 있고 그 사이를 연결하는 유통선이 있는데, 그 전체적인 전망 또한 오망성처럼 보였다. 명백히 의도적인 게 틀림없었고, 나는 이내 마음속으로 단정지었다.
‘저기엔 마도사들이나 술법사들이 있겠군….’
나는 내심 중얼거리다가 망설이지 않고 비등을 써서 쿼츠 아겐투어 본사로 갔다. 황룡마신을 두른 채였다.
파앗!
내부로 들어가자 여러 명의 과학자나 연구자들이 돌아다니는 게 보였다. 나는 이미 투명술을 시전한 상태였으므로 그들의 눈에 띄지 않고 깊은 곳까지 태연하게 갈 수가 있었다. 투명술법이 끝날 것 같으면 도로 시전하는 식으로 무한히 투명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깊은 공방까지 들어오자, 사람의 인적이 사라졌고 거대한 광로(廣盧) 앞에서 흰 옷을 입은 안경낀 여성이 뭔가 주문을 중얼거리며 마법을 시전하는 게 보였다.
스스스
“……!!”
내가 투명을 풀자 금발청안의 젊은 여성이 움찔하며 나를 주시했고, 나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
“회중시계의 분석을 의뢰하러 찾아왔다. 너희가 세계 최고의 공방이란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금발청안의 미녀가 주변을 휙 살펴보았는데, 주변에 아무도 없자 이윽고 말했다.
“금빛 갑옷을 입은 기인이여, 당신은 누구입니까? 어째서 중세 중국어를 쓰는 거죠?”
“그러는 너도 바로 알아듣고 명나라 말을 쓰는군. 통역술법을 쓴 건가?”
“아뇨…. 그냥 CEO니까 공부해서 배웠습니다. 27개국 언어 중에서도 대웅제국 말은 고대어와 중세어도 공부했죠.”
“…….”
“신분을 밝히세요.”
“너부터 밝혀라. 마도사.”
“적반하장이군요…. 그리고 난 사악한 마도사가 아니에요, 마법사지.”
기가 막혀하던 그녀가 말했다.
“나는 쿼츠 아겐투어의 CEO이자 서방마법결사의 대마녀(Grand Witch)인 바토리 에르제베트. 이 곳에 침입한 걸 후회하게 해 드리죠.”
따악!
“성좌의 피빛이여, 춤출지어다!”
슈우우욱….
그녀가 손가락을 마주치는 순간 내가 서 있던 시공간이 모조리 왜곡되고 일그러졌다. 그리고 내 전신이 피의 바다에 먹혀서 금세 익사할 것만 같았다.
“우웃….”
나는 검을 휘두르려 했지만 환영이 내 감각을 빠르게 지배했기에 여의치가 않을 정도였다. 웬만한 술법과는 차원이 다른 장악력에 나는 내심 놀랐다.
‘강한 술법사다!’
적어도 대라신선급일 것 같다!
이 정도로 강할 줄은 예측하지 못했다. 적어도 팔선 수준이 아닐까? 일개 술법사의 환영 정도가 아니라 모든 감각을 삽시간에 지배하고 공간마저 변형시킬 정도라니!
이것이 인간세상에서 보기 힘들 정도로 강력한 마법이라는 걸 알아차린 나는 전신에서 음신지력을 강하게 뿜어냈다.
후와악!!
그 순간 음신지력이 시공간의 장악력을 역으로 뒤집어엎으며 바토리의 피빛 공간을 무효화시켰다. 단순하게 힘의 파장으로 격돌해서 밀어내는 형상이었으나 타격이 큰지 바토리는 금세 주춤거리며 물러섰고, 이윽고 땅에 풀썩 쓰러지고 말았다.
“허, 허억…. 신력이라니…. 설마 당신은 사도….”
바토리가 공포심을 느낀 듯 덜덜 떠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그 말에 약간 내가 공격적으로 굴었다는 걸 깨닫고 바토리에게 말했다.
“무례를 범해서 미안하다. 하지만 사정상 내 신분은 밝힐 수 없고, 비밀리에 의뢰하려 찾아왔다. 그리고 난 인간이고 사도가 아니다.”
“…….”
“의뢰를 받아들여주면 충분한 대가를 주겠다.”
내 말에 바토리가 나를 정탐하듯 살피다가 이윽고 공포심을 거두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떤 의뢰인지 말씀해주시면 좋겠군요. 대가도.”
“간단한 거다. 이 회중시계를 열어줬으면 한다.”
스윽
내가 회중시계를 내밀자 바토리가 받아들었다. 그녀는 한동안 회중시계를 살피다가 깜짝 놀라서 외쳤다.
“이, 이것은 아티팩트(Artifact)…!! 어떻게 이렇게 강력한 마도구를!!”
“그게 마도구인가?”
“그래요. 이 정밀함과 마력을 봐서는 크로노 팩터(Chrono factor)중에서도 최상위의… 아마 예전 연금술사 길드의 그랜드마스터가 갖고있던 것 같은데….”
그렇게 흥분해서 외치던 바토리는 잠시 입을 다문 후 말했다.
“열어드리기만 하면 되는 건가요?”
“그래. 그거면 된다.”
“좋아요. 의뢰를 받지요. 충분한 대가가 있다면 굳이 당신의 정체를 묻지 않겠어요.”
다행이다.
어거지로 밀어붙일 수밖에 없었는데 어떻게든 통한 모양이다. 나는 어떤 대가를 제시할까 생각하다가 마음을 정했다.
“그렇게 해 준다면… 이걸 주지.”
나는 목갑에서 성창을 꺼내서 바토리에게 보여주었다. 그 성창을 본 바토리가 기절할 듯이 놀랐다.
“…그, 그것은… 서… 설마…!!”
“이 창의 정체를 알고 있나?”
“그걸, 그걸 치우세요!! 그 저주받은 창을….”
바토리가 덜덜 떨며 뒷걸음질치며 외쳤다. 마치 창의 힘에 위압당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롱기누스의 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