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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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방금 전까지 같이 있던 삼황오제들이 모조리 멸한 것 같다는 사실에 잠시동안 멍했지만 나는 이윽고 정신을 차렸다.
‘나도 위험해!’
만일 기어오는 혼돈이란 게 삼황오제를 없앴다면 당연히 나까지 추적해서 죽일 수도 있으리라! 복희는 그걸 알고 있었기에 나를 대피시키면서 빨리 이 세계를 벗어날 방법을 궁리하라고 한 듯 했다. 나는 마음이 급해져서 근처에 있던 원시인들에게 말했다.
“이봐!! 여기가 낙양 맞아?!”
“……#&*%^&@^&$$&*??”
“…….”
뭔가 말을 하긴 하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다. 어렴풋이 말의 억양은 내가 원래 구사하던 중원어와 미묘한 공통점이 있었지만 그게 전부였고 차라리 외국의 언어와 같았다. 나는 이 원시인들도 나름대로의 언어가 있으나 지금 내가 알아듣지 못하자 답답함을 느꼈다.
‘으 제기랄! 너무 옛날옛적이라서 대화자체가 안 통할 줄이야….’
지금은 말 그대로 신화시대, 문명의 여명기! 주나라나 은나라가 세워지기도 몇천년 전. 당연히 내가 아는 언어를 쓸 수 있을 리가 없다. 나는 머리를 벅벅 긁었지만 이내 다르게 생각했다.
‘그래. 그 복희가 설마 허튼짓을 했겠어? 당연히 낙양으로 보내준 거겠지. 여긴 낙양이 맞아. 그리고 복희가 낙양으로 나를 보낸 까닭은, [관찰자]가 낙양에 존재하는 인물이란 뜻이다.’
나는 솔직히 아직 관찰자가 누군지 아직 확실히 단정지을 수 없다. 아무리 나라도 바보는 아니기에 몇 명으로 좁힐 수는 있었지만, 만일에 섣부른 추측을 하고 행동했다가 실패하면 바로 끝장이란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누군진 대충 알겠는데…. 어떻게 찾지.’
그 때였다.
부웅!
갑자기 사불상과 함께 원시천존이 내 앞에 나타났다. 그의 얼굴은 전에 없이 어두워져 있었는데 힘겹게 내게 말했다.
“사제. 스승께서 말씀하시길 자네를 도우라 하셨네.”
“사형. 스승님께선….”
“알고 있네.”
“…….”
“무엇이 곤란한가?”
나는 원시천존의 말에 대답했다.
“우선 제가 찾으려는 인물을 찾으려면 여기 사람들에게 물어서 단서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자들과는 대화가 통하지 않습니다.”
“간단한 일이군.”
우웅!
원시천존이 손가락을 좌에서 우로 휘두르자, 잠시 후 내 귀에는 근처의 원시인들이 하는 이야기의 뜻이 명확하게 전달되기 시작했다.
웅성웅성
“헉…. 바로 통역이 되는 술법입니까? 이건 무슨….”
“술법이랄 것도 없네. 내가 가진 혼돈의 재능일세.”
“…….”
“서두르지. 언제 스승님을 죽인 혼돈이 이 땅에 밀려올지 모르네.”
“알겠습니다.”
나는 원시인들에게 말을 걸어서 그들 중 가장 높은 자가 누구인지 알아보았다. 그러자 이 촌락의 촌장으로 보이는 자가 앞으로 걸어나왔고, 이윽고 우리에게 크게 무릎꿇고 절을 하며 말했다.
“위대한 신이시여! 무엇이든 물어보십시오.”
“우린 신이 아닌데…. 뭐 어쨌든.”
나는 촌장에게 말했다.
“망량선사를 알고 있소?”
복희가 준 단서로 내가 내놓은 답은 바로 망량선사다. 망량선사가 바로 천우진에게 보패 산하사직도를 준 당사자인데다가 관찰자라고 할만한 인물이 그일 가능성이 제일 높아보였다.
‘망량선사 맞겠지?’
사실 확실치는 않았지만 지금으로서는 가장 가능성이 높은 자부터 찾아낼 수밖에 없다.
“……?”
촌장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하다가 말했다.
“모르겠습니다!”
“…….”
거짓말은 아닌 것 같다. 나는 원시천존을 돌아보며 말했다.
“사형. 이 일대는 이후에 낙양이라 불립니다. 그리고 낙양의 넓이는 아마 좌우로 사백 리 정도인데 그 안에 있는 모든 촌락의 촌장에게 물어봐야겠습니다. 좀 귀찮겠지만….”
“그거야 손쉬운 일이지.”
“네? 손쉬운 일은 아닌….”
우웅!
원시천존이 무언가 술법을 시전했다. 그리고 팔괘가 허공에 떠올라서 신비한 빛을 내뿜더니, 이윽고 사방 일 리 이내에 원시인들이 잔뜩 소환된 것이다!
슈슈슛
원시인들의 숫자는 족히 일만은 되어 보였다.
‘뭐?! 저만한 숫자의 인간을 모두 탐지해서 강제로 순간이동 시킬 수 있다니…!!’
대라신선 수준에서도 꿈도 못 꿀 기적같은 일이다! 뭔가 의식이나 준비를 잔뜩 하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그저 술수 한 번으로 가볍게 행한다는 건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멍하니 원시천존을 바라보자 그가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서두르게. 하늘의 흉행(凶行)이 갈수록 심해지는군.”
“아, 알았습니다.”
천계의 삼청이라기에 대단한 인물인 건 알고 있었지만 원시천존의 술수는 과거 내가 봤던 천계 십이대선이라는 자들과도 격을 달리했다. 지금껏 원시천반의 조력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그 보패와는 별개로 본인의 능력도 초월적인 것이다. 나는 그들 모두에게 외쳤다.
“망량선사를 알고 있는 자는 앞으로 나오시오!”
…….
아무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윽…. 이런 식으로는 역시 못 찾나?’
너무 단순한 방법이었다 생각해서 머리를 긁적이고 있을 때 원시천존이 말했다.
“사제. 내가 너무 마음이 급해서 몰아붙인 듯하군. 좀 더 차분하게 생각을 해 볼 필요가 있겠네.”
“망량선사를 찾아야 하는데 도통 방법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망량선사…. 그게 어떤 존재인지 내게 말해줄 수 있겠나?”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망량선사의 정보에 대해서 간략하게 원시천존에게 말해주었다. 약 일 각 동안 내 설명을 듣던 원시천존이 말했다.
“말하자면 어쩌면 스승 복희님의 힘을 뛰어넘을 지도 모르는 어마어마하게 강력한 신성(神聖)이란 말이군. 그리고 그 존재는 과거 낙양이라는 곳으로 내려와서 [사상최악의 마]라는 존재를 봉인했었으니, 스승님께서는 관찰자가 망량선사라 생각하고 사제를 낙양으로 보냄으로써 단서를 준 것인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인간 중에 아는 자가 있을 리는 없겠지. 현재의 인간들은 나 같은 존재조차 신으로 여길 정도로 우매하니 어찌 그리 위대한 존재를 인식할 수 있겠나?”
“아….”
“이 단순무식한 방법은 나중에나 써볼 법한 방도였네. 이 원시인들은 아직 청동기조차 변변히 만들 줄 몰라.”
스윽
원시천존이 다시 손을 휘두르자 이 자리에 밀집했던 원시인들의 거대한 무리가 다시 원래 자리로 되돌아간 듯 했다. 원시천존의 말이 이어졌다.
“숨겨진 신을 찾기 위해서는 그 신과 인과(因果)가 이어진 매개물로 찾는게 가장 일반적인 일일세. 혹은 문헌이나 전승으로 이어진 신의 이름을 이용해서 소환하기도 하지. 자네는 둘 중 어떤 걸 갖고 있는가?”
“…….”
인과의 매개물?
신의 이름?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낭패스러운 걸 느꼈다.
‘이 산하사직도 자체가 망량선사와의 매개물이잖아….’
매개물 그 자체인 보패 안으로 들어와버린 상황에서 그런 걸 찾을 수나 있을까? 나는 이 사실을 원시천존에게 말해야하나 생각했지만 망설여질 수밖에 없었다. 복희는 손쉽게 자신이 허상이라는 걸 납득했으나 원시천존까지 그게 가능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이 세계가 고작해야 보패 속의 세계이며 자기자신이 한낱 백일몽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걸 누가 쉽게 납득할 수 있을까?
‘제길…. 잘못하면 원시천존한테 미친놈 취급받고 도움을 더 받지 못할 수도 있어.’
나라도 그런 소리를 들으면 납득하기 힘들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일단 후자의 가능성부터 대답했다.
“전자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후자는…. 그 자의 이름이 망량선사라는 걸 알고 있으면 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대가 신력을 지니고 있으니 신력을 담아 망량선사의 이름을 세 번 외쳐 보게.”
“……? 네.”
나는 그 말대로 내 전신에 신력을 감돌게 한 후 세 번 외쳤다.
“망량선사! 망량선사! 망량선사!”
그러나 아무 반응도 없었다. 그걸 옆에서 지켜보던 원시천존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말했다.
“역시 가명(假名)이었군.”
“가명?! 무슨 말입니까.”
“말 그대로일세. 위대한 신의 이름은 보통 일반적인 인간이 보고 인식하기도 힘들고, 읽는 순간 미쳐버리거나 죽어버리기 일쑤지. 내 스승 복희의 진짜 이름도 따로 있으나 그 이름을 인식한 필멸자들은 죽어버렸기에 인간들과 접촉하기 위해서 일부러 [복희]라는 가명을 따로 만드셨던 것일세. 여와같은 경우도 마찬가지지.”
“…….”
“그 신의 진짜 이름은 망량선사가 아닐세.”
음, 그랬던 건가….
나는 원시천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진짜 이름을 알 수 있을까요? 우주의 온갖 위대한 신들의 이름이 마도서에 기록되어 있는 걸 보면 뭔가 방법이 있을 텐데.”
“글쎄…. 나도 자세한 건 모르네. 하지만 그 신이 원하는 대가를 바친다면 가능하겠지.”
우리가 대화를 하고 있을 때였다.
슈욱!
태상노군이 갑자기 나타나서 말했다.
“원시천존. 만신전이 완전히 닫혔네.”
“스승님을 살해한 혼돈의 존재는 강림하지 않았는가?”
“그렇네. 아무래도 당장 내려올 생각은 없는 듯하네. 하지만….”
태상노군의 얼굴이 잘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는 곤란한 표정을 지은 듯 했다.
“어째서인지 바다 쪽에서 강대한 신이 부상(浮上)하는 게 느껴지고 있네….”
“…흉신(凶神)인가?”
“아마 그렇겠지. 허나 당장은 깨어날 생각이 없는 건지 그의 부하인 해신(海神)이 움직여서 각지에 자기의 권속들을 뿌리고 있군.”
“으음…. 스승님께서 건재했다면 그따위 놈이 설치진 못했을 것을.”
침음성을 흘리던 원시천존이 말했다.
“알았네. 그럼 자네가 잠시 해신을 봉인하게. 나는 사제를 돕고 가지.”
“빨리 오게. 쉬운 일이 아니니까.”
파앗
태상노군의 신형이 신묘한 구름과 함께 사라졌다. 나는 방금 전 그들의 대화를 듣고 믿을 수가 없어서 눈을 둥그렇게 떴다.
“네…. 네?! 해신을 혼자서 봉인한다니 무슨 말입니까?!”
“왜 그리 놀라는가?”
“그…그 놈은 약한 편에 속하긴 하지만 [옛 지배자]이지 않습니까. 게다가 그 밑의 해신족도 수백만 마리나 되고….”
“음. 크게 걱정할 건 없네.”
원시천존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태상노군이 신술(神術) 환계소환(幻界召換)을 써서 환계의 환수를 불러 해신족들을 때려눕힐 것일세. 그리고 여의봉(如意棒)을 써서 해신의 몸뚱이를 눌러놓고 태극도(太極圖)로 봉인하면 되지 않을까 싶군.”
“…….”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해신이 그리 강한 자는 아니니 충분하겠지….”
나는 원시천존이 정말로 태상노군 혼자서도 해신을 제압할 수 있을 거라 예상하는 걸 보자 기가 막혔다. 설마 천계 삼청이 이렇게 강한 존재였단 말인가? 내가 내심 경악하고 있을 때 원시천존이 말했다.
“그런 것보다 이제야 내 원시천반을 쓸 때가 왔군.”
우웅
원시천존이 원시천반을 꺼내서 허공에 둥둥 띄웠다. 내가 원시천반을 쳐다보자 원시천존이 말했다.
“원시천반은 모든 성좌와 이세계를 관측할 수 있는 보패일세. 만일 자네 말대로 낙양에 망량선사라 하는 존재가 잠들어 있는 게 사실이라면, 아무리 깊숙이 몸을 숨기고 있어도 그 낌새와 위치를 알 수 있지.”
“……!!”
그러고보니 원시천반을 이용해서 우희를 찾아내서 항우에게 알려준 적이 있었지! 원시천반에 검색기능이 있다는 걸 깜박하고 있었기에 나는 반가운 마음이 들었고, 원시천존에게 재촉했다.
“찾아봐 주십시오!”
파아앗
“원시천반이여, 이 낙양 사백 리에 존재하는 위대한 신성을 모두 찾아달라!”
원시천존의 외침과 함께 원시천반이 둥글게 빛을 내었고, 잠시 후 원시천반에서 늙은 선인의 환영이 나타나더니 말했다.
[그런 존재는 없습니다.]“뭣이…. 그렇다면 범위를 좀 더 넓혀서 반경 일천 리 이내를 찾아보아라!”
일천 리라면 거의 낙양과 강북 일대를 포함하는 범위나 다름없었다. 중원대륙의 3할이나 되는 영역이었는데 이미 낙양의 범위는 한참 뛰어넘어 있었다. 원시천존의 전신에서 강렬한 영기가 피어올랐고, 이윽고 원시천반이 대답했다.
[없습니다.]“…….”
허탕이라니!
원시천존이 곤혹스러운 듯 말했다.
“원시천반이 찾지 못한다면 나로서는 더 이상 방법이 없구나…. 하긴 스승님과 황제같은 강대한 신성이 날뛰는 현재의 이 대륙에서 다른 [지배자]가 설칠 수 있을 리는 없다. 정말 망량선사라는 존재가 실재하는 것이냐?”
“어…. 그게….”
이 미친 고양이 녀석이 이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았단 말인가?
‘아! 그러고보니 낙양의 대결계는 우공시대에 만들어진 신화적인 결계라고 했던가…!!’
우공시대라고 하면 삼황오제의 시대이기 때문에 얼추 맞을 줄 알았는데, 아닌 듯 했다. 나는 기억을 더듬거리다가 뭐가 문제인지를 깨달았다.
‘치수(治水)의 시기에 만들어진 대결계라면, 전욱이 천지간의 통로를 끊어버리고 하늘로 돌아갔던 시기. 그렇다면 삼황오제 사이에 최소한의 합의가 존재했고 고대 하 왕조가 성립된 이후의 일이니…. 지금보다 최소한 몇백 년 후의 일이겠구나!’
너무 고대로 와 버렸어!
그렇다면 망량선사를 찾을래야 찾을 수 없단 말인가? 찾으려 해도 망량선사가 떨어지는 건 몇백 몇천년 후의 일이니!
내가 황망하게 서 있자 원시천존이 말했다.
“백웅이여. 더 도와줄 게 없다면 잠시 태상노군을 도우러 가겠네. 혼자서도 괜찮을 것 같지만 그가 부상을 입으면 곤란할 터.”
“…네, 제 일은 걱정말고 가십시오.”
“그럼 부디 망량선사를 잘 찾아내길 바라겠네. 사불상을 놔두고 갈 테니 이동할 때 사용하게. 나중에 봅세.”
파앗
원시천존이 사불상을 놔두고 사라졌다. 나는 진정으로 곤란함을 느끼고는 머리를 감싸쥐었다.
“으윽…. 방법이 없나?!”
원시천반의 검색력은 세계최고라고 할 수 있다. 전국옥새로도 못 찾는 걸 대번에 찾아내버릴 수 있을 정도인 것이다. 그런 원시천반으로도 망량선사의 낌새조차 찾지 못했다면 정말로 없는 것이다.
…아니, 망량선사를 찾는 건 둘째치고 이러면 어떻게 원래 세상으로 돌아가지?
설령 운 좋게 천상에 있는 혼돈이 내려와서 날 죽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대로 지상에 수백 년이고 수천 년이고 살아야 하는 건가? 여기서 죽으면 현실로 되돌아간다는 보장도 없는 상태에서?
‘아냐…. 방법은 있어! 내가 아직 못 찾았을 뿐이야! 생각을 좀 더 해보자.’
나는 억지로 마음을 긍정적으로 먹으며 생각을 거듭했다. 여기서 포기해버리면 아무것도 안 된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기 때문에 근성으로 버티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한참을 생각한 끝에 뭔가 위화감을 느꼈다.
“흠….”
그러고보니 이 세계로 들어오기 직전에 망량선사가 뭐라고 했었지?
그것부터 떠올려 보자.
[사고뭉치 녀석. 설마 했는데 결국 내가 직접 봉인했던 고대의 기억을 풀어헤쳐 버리는구나.] [알아서 탈출하거라. 지금 나는 [사상최악의 마]를 견제하고 있기에 널 도와줄 수 없다….]뭔가 여기에 단서가 있을 것 같다.
‘알아서 탈출하라고 했다면 분명히 탈출법이 존재한다는 소리가 아닐까?’
이곳이 봉인된 고대의 기억이고 탈출법이 존재하며 망량선사가 바로 기억을 봉인한 당사자이며 관찰자라면 – 내 입장에서는 망량선사를 만나는 게 탈출법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망량선사가 존재하지 않는 것에 좌절한 게 현재 상황이다.
나는 생각의 나래를 펼치다가 문득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생각해 왔던 게 전제부터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 설마 나 잘못 생각했던 걸까?’
나는 중대한 사실을 알아차리고는 재빨리 사불상 위에 올라탔다.
“사불상! 빨리 태상노군에게 가자!”
[뜬금없는 녀석이군. 방금 전에 원시천존이 갈 때 같이 갔으면 될게 아니냐.]“에잇, 닥쳐! 지금은 할 말이 생각났단 말이다.”
[좋다. 꽉 잡아라.]파앗!
사불상을 타고 이동하자, 그 곳에서는 화려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휘오오오
끼이이이 –
하늘에서 수백 개의 차원문이 떠올라 있었고 그 곳에서 신령스러운 오채(五彩)를 내뿜는 기이한 환수(幻獸)들이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환수들은 바다로 내려가면서 해신족들을 물고 뜯어서 죽였으며, 해신족들도 마법을 써서 응수하고 있었지만 환수들의 마법저항력이 굉장히 높은지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못했다.
쿠쿠쿵!!
콰광
그리고 태상노군이 허공에서 여의봉을 소환해서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해신을 때려 패고 있었으며 해신은 여의봉을 연신 팔으로 막아내고 있었지만 막을 때마다 몸통이 깎여가고 있었다.
‘여의봉이 백열(白熱)로 불타고 있어.’
저런 현상은 제천대성이 쓸 때도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태상노군은 여의봉을 만든 존재답게 보패의 진짜 힘을 끌어쓸 수 있는 듯 했다.
휘잉
콰앙
그렇게 한참 해신을 때리던 태상노군이 문득 손가락으로 신호를 주었고, 그러자 어디선가 나타난 원시천존이 쌍장을 앞으로 내뿜으며 외쳤다.
“반고번!! 눌러버리거라!”
쿠콰콰쾅
[우어어어어.]해신이 보패 반고번의 힘에 짓눌려 무릎이 꺾이며 크게 휘청거렸다.
콰앙 콰앙 콰앙
그리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태상노군이 여의봉으로 해신의 머리를 세게 3번 때렸고, 해신의 머리 위에 여의봉을 짓누른 채 두 손가락을 앞으로 뻗었다.
“태극도!! 봉인하라!”
큐우우웅
해신의 몸뚱이가 태극도의 공간에 크게 빨려 들어가서 사라지고 말았다. 일련의 과정은 매우 빠른 시간 내에 이뤄진 것이었으므로 나는 멀리서 멍하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원시천존이 내 쪽으로 오며 말했다.
“사제여. 해신을 완전히 봉인하지 못했으니 여긴 위험하다. 태극도는 신을 봉인할 수 있으나 신이 저항하면 가끔 풀린다.”
“…아뇨, 사실 태상노군에게 할 말이 있어서 온 겁니다.”
“태상노군! 사제가 그대에게 할 말이 있다는군!”
원시천존의 외침에 멀리에서 여의봉을 수납하던 태상노군이 힐끔 이 쪽을 보았다. 그리고 그가 내 쪽으로 날아와서 말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
“음….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나는 태상노군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마음의 준비를 한 후 말했다.
“이건 당신의 기억이 아닙니까? 태상노군.”
태상노군이 나를 쳐다본다.
역시, 지금도 그의 얼굴이 흐릿해서 잘 보이지 않는다.
“하늘에서 떨어진 망량선사에게 이름을 지어준 건 당신이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