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113)
0113 ———————————————-
암천향(暗天鄕)
나와 미호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관중에 올 수 있었다. 하남에서 관중까지의 거리가 아주 먼 편은 아니었으므로 굳이 경공술을 쓰지 않았음에도 5일만에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이다. 미호는 관중에 들어오자 제일 고급객잔을 잡아서 들어갔고, 관중에서 가장 비싼 음식을 먹으려고 했다.
“관중에서 가장 맛난 음식점이 어디냐?”
“……”
“흐응? 본녀에게 밥을 사주기 싫다는 게냐?”
“나중에 먹어도 되지 않겠냐. 지금 이광을 만날 생각을 하니까 머리가 아파.”
미호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침상 위에서 말했다.
“본녀는 네가 이해가 되지 않는구나. 어차피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목숨이 아니냐? 돈도 있겠다 본녀라면 각지를 돌아다닐 때마다 가장 맛난 음식을 질릴 때까지 먹어치울 것이다.”
“그러다가 정작 필요할 때 돈이 없으면 어쩌라고? 또 죽어서 여기까지 돈을 아껴서 와야겠냐.”
“… 짠돌이.”
나는 미호가 투덜거리며 나를 노려보자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대룡상회주에게 환전하고 남은 돈을 미호에게 건네주었다. 미호가 내가 내미는 돈을 물끄러미 보더니 깔깔 웃었다.
“농담인데 또 진담으로 받아들이느냐? 본녀라면 환술로 얼마든지 인간을 속일 수 있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됐고, 그냥 이 돈 써. 환술인 거 들키면 또 나중에 골치아플텐데.”
“정말 주는 것이냐?”
“그래.”
“흐응, 고맙게 잘 쓰겠다.”
미호는 돈을 받아들자 왠지 신난 표정이었다. 관중 육대가에서 가장 유명한 요리가문인 종씨 가문에서 신나게 시켜먹을 생각으로 가득찬 듯 했다.
“원하는대로 네가 이광을 독대할 수 있겠구나.”
“꼭 그런 의도로 준 건 아니지만.”
“우후후, 본녀도 이광이란 자를 별로 마주하고 싶지는 않구나. 뛰어난 고수들에게는 본녀의 매혹이 통하지 않아서 짜증이 나니.”
“……”
“그럼 나중에 보자꾸나.”
쉬리릭!
미호는 전이술로 사라져 버렸다. 아마도 제 멋대로 놀다가 필요할 때 내 앞에 나타날 생각인 듯 했다. 나는 폭풍이 지나간 느낌이 들어서 침상에 슬며시 드러누웠다. 천장을 한동안 바라보던 나는 결심했다.
‘ 그래. 죽기밖에 더 하겠는가?’
여기서 죽는다고 하더라도 얻은 건 충분히 많다. 다음 전생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그 때는 이광에게 투신하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을 찾아봐도 된다. 지금은 내 정신적인 괴로움을 떨쳐버리는 게 중요했다.
나는 잠시 후 일어나서 청룡무관으로 향했다.
청룡무관 앞에는 방일 형제가 서 있었다. 정말로 내 입장에서는 10년 넘게 보아왔던 얼굴들이라서 반가움마저 느껴졌다. 물론 나를 처음보는 방일이 말했다.
“너는 뭐냐?”
“편지의 심부름을 하러 왔소.”
“편지? 누구한테?”
“청룡무관주 삼절 이광님께 긴히 전해드릴 편지이니 안내해 주시오.”
방일이 코웃음을 치며 내게 손을 뻗었다.
“이 놈이 어디서…”
타악
나는 슬며시 방일의 손을 뇌영보로 피하고는 목 뒤를 수도(手刀)로 치고 지나갔다. 방일은 거의 한 동작으로 연결된 제압초식에 그대로 의식을 잃은 듯 했다. 방일이 앞으로 고꾸라지자 나는 혀를 끌끌 찼다.
“신선한 반응이야.”
옆에서 보고 있던 다른 문지기는 어어 거리다가 청룡무관 내로 달려들어가려 했다. 소리를 쳐서 침입을 알릴 생각인 듯 했기에, 나는 그가 소리를 지르기 전에 빠르게 접근해서 혈도를 제압해 버렸다.
투둣
“……!!”
아혈과 마혈을 순식간에 제압당한 그는 제자리에 멈춰서 움직이지 못했다. 나는 침을 품 속에 넣으며 말했다.
“반 식경 후면 움직일 수 있을 거요. 별 일 없을테니까 걱정 마시오.”
괜히 시끄러워지는 건 원하지 않으니 별 수 없이 직접 들어가서 말하는 수밖에 없을 듯 했다. 나는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건물의 지붕 위로 올라가서 뇌영보로 빠르게 이동했고, 머지 않아서 와룡전 앞에 내려앉을 수 있었다.
나는 와룡전 앞에서 와룡전 건물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생각하는 것만 해도 성가신 존재가 이 문의 뒤편에 있는 것이다. 나는 잠시 심호흡을 하고는 크게 말했다.
“저는 백웅이라고 합니다. 심부름을 하기 위해 멀리서 왔습니다.”
대답은 한동안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침묵이 흐른 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게.”
드르륵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긴장된 기색으로 와룡전의 희미한 어둠속을 걸어들어가자, 익숙한 광경이 나타났다. 탁자 앞에 앉아있는 장년인이 조용히 찻잔에 차를 따르고 있는 모습이었다. 검마 서문대룡 때와는 달리 광대한 체구도 패기도 느껴지지 않았으나 나는 저 장년인이야말로 천하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청룡무관주 삼절 이광은 나를 잠시 바라보더니 말했다.
“심부름이라… 누가 보내서 온 건가?”
“장경익 장군이 이광 님께 이 편지를 보내셨습니다.”
“줘 보게.”
나는 다가가서 그에게 공손하게 편지를 내밀었다.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서 내가 도중에 편지를 개봉한 적은 없었다. 어차피 편지를 보내는 당사자인 장경익을 세뇌해서 내용을 다 알았으니 그렇게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
편지를 뜯어서 안의 내용을 한동안 읽던 이광은 안에 별첨되어 있던 지도 또한 자세히 읽었다. 나는 그가 편지를 다 읽을 때까지 조용히 시립해 있었다. 한참 후가 되어서야 이광이 말했다.
“백웅이라 했지. 자네의 무공연원은 뇌신류(雷神流)로 보이는데 맞는가?”
나는 내심 놀랐다. 지금까지는 내가 직접 타 뇌신류라고 밝히고 증명했었는데, 이번에 이광은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그걸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한쪽 무릎을 꿇고 사문의 어른을 대하는 뇌신류의 예(禮)를 취했다.
“그렇습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뇌영보가 상당한 경지에 이르러 있군.”
나는 그 말에 왠지 모를 기쁨이 생겨났다. 칭찬에 인색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그 이광이 내 보법진경을 칭찬한 것이다. 하지만 이걸로 기뻐하기에는 이광에게 당한 수난의 세월이 있었기에, 나는 다시 마음이 무거워지는 걸 느꼈다. 이광이 내게 일어나라고 손짓해서 자세를 바로잡자 이광이 말했다.
“너무 긴장할 필요 없네. 자네가 타 뇌신류의 제자라면 내게도 제자뻘이 되는 것이다. 내게는 자네를 해할 이유가 없네.”
“알겠습니다.”
“자네 스승은 어디서 뭘 하고 있는가?”
“돌아가셨습니다. 지병이 악화되셔서…”
“뇌령의 경지를 성취하지 못했다는 건가? 자네를 가르칠 정도의 달인이?”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이 내공을 얻은 것은 그 후 천하를 떠돌다가 우연히 얻게 된 기연 덕이었습니다. 한탄스럽습니다.”
“어떤 기연인가.”
“천년설삼(千年雪蔘)을 복용했습니다.”
“천년설삼…!! 과연, 그 정도 영약이니 가능한 거겠지.”
고개를 주억거리며 납득하는 이광이었다. 반면 그를 보는 나는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눈 앞에 보이는 이광은 나를 죽일듯이 미워하며 괴롭히던 그 때의 이광과는 아예 다른 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매사에 무심무정하고 자기 일밖에 관심없는 무(武)의 천재아이자 일세의 고수가 눈 앞에 서 있었다. 또한 그는 나를 미워하기는 커녕 그저 필요한 수준의 관심밖에 없는 듯 했다. 사실 이게 이광의 본래 모습이었기에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 망량. 당신 말이 맞아… 그 때의 이광이 독특했을 뿐이었군.’
아직까지 앙금이 풀린 건 아니지만 어느정도 이성으로 납득이 되는 듯 했다. 내가 조용히 감정을 가라앉히고 있자 이광이 말했다.
“자네는 뇌신류의 무공을 상당한 경지까지 익힌 듯 한데, 어쩌다 장경익의 심부름을 하게 된 건가?”
나는 여기서는 크게 거짓말을 하지 않고 고하기로 했다. 차후 이광이 직접 장경익을 찾아가서 확인해 볼 가능성이 있는 이상, 쓸데없는 거짓말은 발목을 잡을 우려가 있었다.
“저는 천하를 떠돌던 중에 화씨세가와의 연으로 광명신의 화서명 가주를 만나기 위해 고려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그 도중에 장경익 장군과 연줄이 통하게 되었고, 그 분과 이야기하던 중에 심부름을 해 주기로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고려에 갔다온 후 서찰을 받아서 청룡무관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광명신의 화서명? 천하 오대의원이군. 백련교와 얽혀서 따돌림당했다 들었는데…”
“네. 제 스승께서 화서명 가주와 친했기에 만나보기 위해 고려로 향했습니다.”
“그렇군.”
이광은 내 이야기가 상세하고 얼개가 분명하자 납득하는 기색이었다. 내가 어설프게 꾸며낸 부분도 없었기에 의심할 부분도 없었다. 잠시 생각하던 이광이 말했다.
“이제 어디에 갈 생각인가?”
나는 여기가 중요한 대목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그래서 다시 뇌신류의 예를 갖추며 이광에게 말했다.
“이광 님께서 뇌신류의 달인이시라면, 밑에서 가르침을 얻고 싶습니다.”
“그리 말할거라 생각하고 있었네.”
그러더니 이광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 전에 자네의 무공진경을 잠시 확인하고 싶군.”
“대련장을 써도 되겠습니까?”
“마음껏 써 보게.”
우우웅
나는 지금까지 몇 번이고 해 오던 것처럼, 대련장으로 달려나가서 내가 알고 있는 모든 뇌신류 무공의 시연을 보였다. 물론 뇌명 같은 비기는 모두 모르는 척 봉인을 해 두었다. 뇌령팔식과 뇌영검법, 뇌운장만으로 시연이 끝나자 그때까지 지켜보고 있던 이광이 말했다.
“그 나이에 대단한 성취군. 면허(勉許)를 주기에 부족함이 없어.”
“감사합니다.”
“허나 어찌 천뢰무극창과 만승검결을 쓰지 않는 건가?”
이광은 ‘쓰지 않는’ 것이라고 단정짓고 말하고 있었다. 내가 일단 모르는 척을 해 두었지만 이광의 눈에는 그 기색이 눈에 보이는 모양이었다. 나는 속으로 찔끔하면서도 둘러대었다.
“형(形)은 배웠습니다만 제 재질이 미천해서 보여드릴 만한 게 아니라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한 번 펼쳐보게.”
“네.”
나는 서서히, 하지만 전력을 다해서 천뢰무극창과 만승검결을 펼치기 시작했다. 어차피 이걸 보게 되면 이광 또한 내 재능을 알아차리고 실망할 것 같았기에 한결 편한 마음으로 임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홀황(惚恍)이 눈 앞에 펼쳐지더니,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듯한 기이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내 몸의 행동을 바깥에서 지켜보는 듯했다. 여동빈이 내 몸을 조종할 때와는 또 다른 기분이었고, 내 손에 들린 게 무기인지 뭔지도 잘 분간이 가지 않았다.
부우우웅…
나는 그 상태에서 더할 나위없이 유려하고 빠르게 창식(槍式)과 검식(劍式)을 연계했고, 이윽고 만승검결으로 넘어갔다. 신기하게도 검을 잡게 되자 검이 내 팔의 연장이 된 것 같아서 잡는 느낌조차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만승검결에 존재하던 각종 요결이 내 손 끝에서 하나로 팍 팍 이어지면서 흐름에 거스르지 않고 이어지는 것마저 느껴졌다.
흐른다.
선검(仙劍)이 유영한다.
나는 어느 새 검무(劍舞)를 펼치고 있었다. 몸을 축으로 세상의 진기를 자연스럽게 휘돌자 검영(劍影)이 마치 꽃잎처럼 일어났고, 지금까지 연계가 되지 않던 초식들이 연계가 되었다. 나는 그 와중에 천둔검법(天遁劍法)의 흐름이 조금씩 만승검결에 융화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동안 겪어 왔던 수십 년 동안의 검법수련, 강적들과의 전투경험, 천둔검법의 감성, 검마에게 가르침받은 검리의 기본, 무수한 생사의 고비속에서 얻어왔던 지혜가 한 덩어리가 되었다. 나는 지금이 바로 ‘벽’을 넘어설 때라는 걸 알아차렸다.
마지막 일 검(一劍)이 허공을 스쳤고, 파공음이 진하게 울려퍼졌다.
나는 전신에서 땀을 흘리며 방금 전에 느낀 심후한 감성을 내 안에 쌓으려고 집중했다. 이광 앞에서 무공시연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잊은 채 그저 격렬하게 내 무(武)에 침잠해 있었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정리가 되어서 고개를 들자, 거기에는 명백히 감격한 기색의 이광이 서 있었다.
“만승(萬乘)의 묘(妙)를 얻다니…!! 귀한 걸 보았구나.”
휘리릭
내가 뭐라고 대답할 새도 없이, 이광은 허공섭물의 수법으로 대련장에 있던 창을 하나 끌어와서 손에 잡았다. 그리고는 그 자신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무공을 내게 보여주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나는 설명할 필요도 없이 이광이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무(武)의 극치(極致).
거기에 순수한 무인으로써 감격한 이광이 보답으로 자신의 깨달음을 보여주려는 것이었다. 나는 이성이 가까스로 자리를 잡은 동안에도 눈을 크게 떠서 이광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눈에 새기려 했다. 과거 이광에게 열성적으로 가르침받을 때도 비슷한 걸 본 적은 있었지만, 그 때는 도무지 이해조차 가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이광이 움직이는 게 어쩐지 이해가 될 것만 같았고 그의 움직임이 어떤 뜻을 품고 있는지 알 수가 있었다. 검의 깨달음을 얻은 직후의 상태이므로 아무런 재능의 방해물도 없이 뜻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후우우웅
거대한 흐름이 스쳐지나갔다.
이광의 창(槍)은 안개빛을 뿌리며 기이한 시간 속을 떠돌았다. 이광의 몸은 멈춰있는 것 같았는데 움직이고 있었는데, 움직이는가 하면 다시 멈춰 있었다. 그의 창은 분신을 뿜어내지도 빠르지도 않았으나 정확히 하나의 움직임을 추구하며 사용자와 한마음이 되어 있었다.
이것은 예술이다.
마음이 가는 곳에 이미 움직임이 지나간 후였다. 초식조차 잊어버린 자의 창극이 무형의 적을 향해 더할 나위없는 필살의 절격을 다하고 있었다. 뇌령팔식이나 천뢰무극창이라는 무공의 분류로는 이미 이광의 경지를 설명할 수가 없다. 흐드러지는 뇌극(雷戟)은 시시각각 천지를 분단하고 있었다.
동시에 부끄러움이 느껴졌다. 이런 절세고수 밑에서 창을 배우겠다고 설쳐댔으니 얼마나 가소로운 일이었던가!
이상한 일이었지만, 이광에게서 받았던 과거의 괄시와 괴로움이 잊혀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쩐지 그 때의 이광이 어째서 그렇게까지 화를 내었던 것인지, 무인 대 무인으로써 이해한 듯 했다.
꾸웅
마지막 진각과 함께 이광이 찌르기로 마무리를 지었다.
그는 나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내 제자에 못지 않은 천하의 기재가 또 있었군… 천재적인 재능이야.”
“……”
그게 끝인가.
나는 이광이 홀로 납득하려는 걸 보자 울컥해서 말했다. 잘못된 걸 고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습니다.”
“응?”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저, 재능 없습니다.”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이렇게 나이어린 놈이 뇌신류의 무예를 익혀서 초절정의 벽을 방금 전에 넘어놓고, 재능이 없다고 하는 게 병신같아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말할 수밖에 없다. 말하지 않으면 영혼이 죽어버릴 것이다.
이광은 처음에는 황당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짚이는 게 있는지 입을 다물었다.
“……”
나는 천천히 말했다.
“재능이란 한 마디로 모든 걸 납득하지 마십시오. 그런 말은 무책임한 것입니다.”
이광.
이 잘나빠진 인간아.
그 한 마디에 상처받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 거라고 생각하느냐.
내가 청룡무관에 들어가지 않아도 좋다.
시간을 더 낭비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 이 말은 꼭 해야겠어.’
나는 더 이상 이광이 절세절무한 완벽한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또한 거세게 성내고, 괴로워하고, 때로는 실수도 하는 인간이었다. 인간이 서로의 잘못을 고쳐주기 위해서는 우선 용기를 내서 말을 해야만 했다.
상대방을 진심으로 위한다면 감추고 기만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전달하는 게 먼저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내 반평생을 지배해 온 ‘스승’에 대한 나의 예의였다.
이광은 내 말에서 뭔가를 느낀 듯 했다.
그리고는 진중한 얼굴로 대답했다.
“알겠네.”
평소의 이광이라면 내 말을 개소리라고 대충 치부하고는 비웃거나 무시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나와 무(武)로써 대화를 한 상태였기에 내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알 수가 없다.
겨우 저런 몇 마디로 – 내가 겪었던 수 년간의 괴로움이 보상받을 리가 없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유받은 기분이 들었다. 몇 년 동안이나 가장 가까이에서 가르침받았으나, 서로 마음의 문을 닫고 있었다가 이제야 조금 열린 것 같았다.
“어찌 울고 있는 것인가?”
그 말대로였다. 내 눈에는 어느 새 한을 씻어내리는 듯한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필설로는 함부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통째로 흘러내리는 것이다.
“……”
“… 아니, 잘못 말했군. 미안하네.”
이광은 겸연쩍게 말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은 내가 수십 년동안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아니, 이광이라는 인물의 자존광대한 자존심을 생각하면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도 더 이상의 분노를 느끼지 않고 눈가를 쓱하고 닦았다.
“괜찮습니다.”
이걸로 나는 앙금을 반 이상 털어버렸다.
시간이 걸렸지만, 검(劍)으로 초절정의 벽을 뚫음과 동시에 – 청룡무관에 다시 들어오는 데 성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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