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124)
0124 ———————————————-
암천향(暗天鄕)
“왜 그렇게 장담하오?”
“이광 사부도 진소청도 중원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천재들인데 못 익혔잖아? 니가 익힐 조건을 어떻게 만족시킬지 짐작도 안 된다.”
“그런건 해 봐야 아는 거요.”
“그려~ 어디 해 볼까~”
나는 극호에게서 한 시진동안 멸혼보의 주요동작과 요결을 전해들었다. 요결이 그리 길지도 않았기에, 나는 서너번 다시 듣자 다 외워서 머리에 넣을 수가 있었다. 극호가 마지막 멸혼보의 요결을 불러주고는 말했다.
“자, 끝! 이제 남은 건 요결대로 멸혼보를 쓰기만 하면 돼.”
“이게 정말 끝이오? 비기 치고는 너무 간단한데.”
극호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알게 뭐야. 다들 그런 말을 했지만, 아무도 못 익혔어.”
나는 설마하는 마음에 극호의 말대로 멸혼보를 한 번 시전해 보았다. 그러나 그의 말마따나 전혀 시전이 되지 않았고, 심지어 뇌영보의 흐름마저도 꼬이는 기분이 들었다. 겨우 2보를 걸었을 뿐인데 마치 장애인이 춤을 추는 것같은 형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분명히 요결대로 했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뭐 이런 무공이 다 있단 말인가?
내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자 극호가 말했다.
“사부가 오셨군.”
한씨 세가와 교섭하러 갔던 세 사람이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다들 표정이 그다지 좋지 않았기에 뭔가가 꼬였다는 사실을 예감했다. 망량이 참담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틀렸군…”
“처음부터 어쩔 수 없었던 게지. 본거지를 옮깁세.”
“후우…”
망량에게서 듣기로는 한씨 세가에 들어가서 한백령 가주와 이야기하는 것까지는 성공했다. 그러나 한백령 가주는 선대의 빚과는 별개라고 못박으며, 자신이 만족할만한 [보물]을 가져오라고 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천하제일의 부를 차지하고 있는 한백령의 눈에 들 만한 보물이란 걸 가지고 있을 리가 없었기에, 그들은 되돌아 온 것이다.
망량이 내게 씁쓸하게 말했다.
“이광 님이 거기서 화를 눌러참은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겠군. 거기서 화신류와 대립했다면 정말 끝장이었을 거요.”
“그럼 본거지를 어디로 옮길 생각이오?”
망량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말했다.
“장령곡으로 가야겠소.”
“장령곡?”
“그 곳에 또다른 반천맹의 후원자가 기다리고 있소.”
우리는 짐을 싸서 장령곡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낙양에서는 꽤 먼 길이었으므로 은밀하게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목갑을 이용해서 잡스러운 짐을 전부 목갑 안에 담아버리자 사람만 이동할 수 있게 되었고, 약 사흘동안 잘 위장한 결과 모두가 성공적으로 낙양을 탈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낙양을 나오면서도 꺼림칙한 기분이 가시질 않았다. 왠지 이 전력이면 잘하면 황궁의 금의위를 쳐서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주위상황이 도와주지를 않아서 내쫓긴 기분이 들었다.
우리가 장령곡까지 거의 다 왔을 때였다. 이제 반나절만 더 가면 장령곡의 입구가 나오는 산야에서 반천맹과 뇌신류 고수들이 쉬었다. 나는 망량에게 물었다.
“장령곡이란 세 가지의 질문을 해서 모두 맞추면 금괴를 준다고 하는 곳이 아니었소?”
“그렇소. 또한 은밀히 숨어있는 무림세력이기도 하오.”
“장령곡주는 뭐하는 사람이오?”
“장령곡주의 원래 명호는 귀곡자(鬼谷子)이며, 무림에서 가장 머리가 뛰어난 책사 중 한 명이오.”
“귀곡자라. 그런 사람이 어째서 우리를 도와주는 거지?”
이어진 대답에 나는 살짝 놀랐다.
“내 삼촌이기 때문이오.”
“진짜요?”
“그렇소.”
망량이 쓴웃음을 지었다.
“무림 대대로 머리쓰는 가문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귀곡자가 망량의 삼촌이라니!
내가 흥미로운 사실에 좀 더 캐어물으려 할 때였다.
쿠구구구….
쿠구구…
“……?!”
나무그늘에 앉아서 쉬던 무인들은 갑자기 평야 저편에서 소용돌이가 다섯 개 씩이나 물결치며 날아오는 걸 발견하자 깜짝 놀랐다. 동시에 모두가 일어나서 무기를 잡았고, 재빨리 도망칠 준비를 했다. 저런 규모의 소용돌이면 자칫하면 죽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바로 그 때, 가공할 사자후가 쩌렁쩌렁 천지를 울렸다.
[ 하하하하하!! 뇌신류의 패잔병을 처리하러 내가 왔느니라!!]소용돌이의 한가운데에서 무언가가 능공허도로 날아오고 있었다. 일개 인간이 저런 소용돌이를 등지고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사실이 놀라웠지만, 이내 나는 놈의 목소리에서 정체를 알아내고는 좌절했다.
“빌어먹을! 이런 곳에서 대체 왜!!”
“백웅! 무슨 일이오?! 저 자의 정체를 아시오?”
“저 자는 풍신류의 호법사자요!”
콰과과광
그리고 풍신류 호법사자가 끌어낸 대자연의 소용돌이가 그대로 산을 강타했다. 놀랍게도 산 전체가 마치 피부가 쓸려나가듯 나무가 수천 그루씩 뽑혀 나가서 하늘을 날았다.
“우와아악.”
당연히 인간이 당해낼만한 위력이 아니었기에 3할 이상의 무인들이 훨훨 날아서 허공을 유영했다. 소용돌이의 궤도에 쓸린 몇몇 무인들은 그대로 몸이 찢겨서 즉사해 버리고 말았다.
완전한 전투태세로 변한 이광이 눈에 불꽃을 튀겼다.
“원수 놈! 내 눈앞에 찾아와 주었구나, 용비천(龍飛天)!!”
용비천이라고 불린 풍신류의 호법사자는 허공에서 팔짱을 낀 채 껄껄 웃으며 육합전성을 외쳤다.
[ 으하하하… 그 때의 애송이가 꽤 많이 컸구나… 중원에서 대장노릇하는 건 재밌더냐?] “닥쳐라. 네놈은 내가 상대해 주마!!”이광의 몸이 빛살처럼 전방으로 튕겨나갔고, 용비천은 그에 맞서서 자신의 도(刀)를 발도하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잠시 후 이광의 창이 풍신류 호법사자 용비천의 심장을 꿰뚫을 듯 뇌공섬을 발출함과 동시에, 용비천의 도에서 풍신류 결전비기 신풍(神風)이 일어나며 가공할 환영이 뿜어져 나오는 걸 보았다.
절세고수들의 충돌 직후 눈 앞이 새하얗게 변하는 듯 했다. 그리고 뒤늦게 후폭풍이 천지에 퍼져나갔다.
꽈과과광….!!
뇌공섬(雷公殲)의 회전이 폭염을 뚫고 급격하게 용비천의 방어를 뚫었다. 무시무시한 기세로 쇄도하는 이광의 창을 보던 용비천은 자신의 도에 기운을 가득 모았다. 시꺼멓게 보일 정도로 응축된 바람의 도강(刀?)이 뇌공섬과 재차 충돌했다.
쿠구궁
“으윽…!!”
나는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서 그들의 대결을 지켜보던 중에 생각했다.
‘ 풍신류의 주 무공은 도법(刀法)이라더니 과연 대단하구나.’
권법은 어디까지나 겸사겸사 쓰는 듯 싶었다. 실제로도 월요의 수호자와 싸울 때 풍신류 호법사자 용비천은 천령단을 이용해서 바람의 도강을 전개해서 싸웠다. 현재 용비천은 이광을 상당한 적수로 인정한 모양이었다.
나는 옆에서 같이 보고 있던 진소청에게 말했다.
“사형!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 무리야. 이제 와서 끼어들기에는 너무 흉험해. 내가 섣불리 끼어들면 스승님이 틀림없이 위기에 빠진다.”
끼어들고 싶은 마음은 진소청 쪽이 더 강한지, 그는 입술을 피가 나게 깨물고 있었다. 진소청은 멍하니 중얼거렸다.
“왜 거기서 달려드신 거지…? 초수에서 손해만 보는데.”
“그럼 결판이 날 때까지 지켜봐야 하는 겁니까?”
“걱정 마, 사제. 내가 어떻게든 스승님을 돕겠다. 그것보다 사제는 사람들을 데리고 대피해 줘.”
“알겠습니다.”
현재 이광이나 진소청 수준이 아니면 나머지는 모두 그들이 싸우는 데 방해가 될 뿐이었다. 나는 망량을 포함해 다른 사람들을 모아서 대전의 근원지에서 멀어지려고 했다. 등 뒤에서 연신 천지를 집어삼킬 듯한 폭음과 함께 폭풍이 날뛰고 있었으나 애써 의식하지 않으려 했다.
나를 따라오던 미호가 짜증난다는 듯 영언으로 말했다.
[ 저 놈이 나를 전생에 죽였다는 놈이냐?] “그래.”[ 저런 괴물을 상대로 어디로 피할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 그런거 걱정할 필요도 없겠군.”
이윽고 우리는 퇴로를 막아놓은 듯 대기하고 있는 금의위의 정예들과 황실어림군을 마주치게 되었다. 금의위는 나머지 병력을 다 털어온 듯 5개조 정도였고 황실어림군이 약 5천기 정도 대기하고 있었다. 격렬하게 무기가 부딪히는 소리가 산중에 울려퍼졌다.
까가강
까깡!
“죽엿!”
“우오오오!!”
반천맹의 고수들도 녹록치 않은 자들이라서 절대적인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버티고 있는 모습이었다. 나도 전장에 뛰어들어서 내공을 담은 일격으로 적들을 한방에 날리려고 할 때였다.
콰광
“네 녀석이 내 다리를 자른 꼬맹이였지? 흐흐흐.”
음산한 미소를 지으며 내 공격을 막은 은색 가면의 사내가 있었다. 그는 찰나지간에 내 내공을 모은 검격을 권(圈)으로 막아내었다. 놀랍게도 정면에서 막아냈는데도 한 걸음도 물러나지 않은 걸 보면, 그에게는 내 공격에 상응하는 엄청난 내공 혹은 방어력이 존재했다.
“총령!!”
금의위의 총령이 말했다.
“여기가 네놈들 무덤이다!!”
“내가 옛날의 나인 줄 아냐? 어디 한 번 받아 봐라.”
나는 총령에게 뇌영보로 달려들어서 공격했다. 그러자 총령은 이형환위를 쓰면서 내 공격을 피했고, 나는 그대로 총령의 진짜 본체에게 달려들어서 연속으로 검염을 날렸다.
카캉!
내 검과 총령의 권이 불꽃을 튀기며 충돌했고, 한 차례 초수를 나눈 총령은 놀랍다는 듯 말했다.
“호오… 대단해… 그 나이에 정말 대단해.”
총령의 권에 달려있는 월아의 칼날은 살짝 금이 가 있었다.
역시 현재 나와 총령의 실력차는 그렇게 대단한 게 아니었다. 총령이 나보다 고수이긴 했지만 이 정도 차이는 전략과 내공격차로 충분히 메울만한 것이었다. 나는 승산을 강하게 느끼고 도발을 걸었다.
“네 목을 베면 좀 더 대단해질 것 같으니 협조 바란다!”
“하하, 그건 불가능하지.”
내 검을 막아내던 총령의 눈동자가 붉어졌다.
“나는 이제 무적의 힘과 영생을 손에 넣…”
퍼엉!
말이 끝나기도 전에 총령의 전신에 화염이 터졌다. 내가 뒤를 보니, 어느 새 미호가 반인반요의 형태를 한 채 여우불을 몰래 발출시킨 것이다. 푸른 화염으로 타오르고 있는 총령은 도저히 인간으로써 재기할 방법이 없어 보였다. 미호가 싸늘하게 외쳤다.
[ 흥! 영생이고 뭐고 잘 구운 고기나 되거라.]보통 인간이라면 여기서 죽을 것이다. 그러나 전신이 시꺼멓게 타오르던 총령이 그 상태로 열옥(熱獄) 속에서 웃어대었다.
“흐흐, 흐흐흐, 흐하하하하하…!!”
총령의 피부가 마치 고구마껍질 벗겨지듯 탄 부분이 흩날렸다. 그러더니 총령의 온 몸의 살갗에 시뻘건 선이 난잡하게 나타나더니, 이윽고 안쪽에서 살덩이같은게 꾸물거리며 흘러나왔다.
“나는 인간을 초월했다!!”
쿠르르륵
순식간에 육질에 파묻힌 금의위 총령의 몸뚱이는 계속해서 커지기 시작했다. 종래에는 하늘에 반쯤 떠오른 총령이었던 [살덩이]가 갑작스럽게 수백 개의 촉수를 내뻗었다. 그리고 촉수를 휘두르며 우리를 견제하던 그 살덩이는 하늘 높이 떠오르더니 구름 너머로 사라져 버렸다.
‘ 뭐지?’
갑자기 이족으로 변하더니 전장 이탈이라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바로 그 때 여동빈의 환영이 느껴졌다.
내가 의식을 띄워서 묻자 여동빈이 대답했다.
[ 네게는 쉬운 상대였기 때문이다! 실전을 겪을수록 쉽게 성장하는 법! 하지만 이번엔 아니다! 연자 그대의 실력으로는 10할 확률로 죽는다!]대충 대답한 여동빈이 급히 내 머릿속에 외쳤다.
[ 그러니 천둔검법 두 번째 요결 해(解)에 따라서 자신의 가능성을 개방해라!]요결 해.
그것은 인체의 팔문(八門) 중 일부를 염으로써, 검선 여동빈이 좀 더 자기 힘을 발휘하기 쉽게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나는 저렇게 검선 여동빈이 재촉하는 걸 느끼곤 금의위 총령이 보통 마물이 된 게 아니란 걸 알아차렸다.
‘ 팔문을 다 열면 죽는데.’
내가 망설이자 여동빈이 나를 설득했다.
[ 다 열 필요는 없다. 내가 순차적으로 열겠다.]“부탁합니다!!”
나는 신(信)의 요결에 따라 내 몸을 맡겼다. 동시에 팔문을 열기 쉽도록 내 몸을 재조정했다.
우우우웅
[ 마도섬멸을 위해 내가 왔노라!]내 눈에서 신령스러운 기운이 흘러나왔다. 재차 강림한 여동빈은 목갑을 뒤적거리더니 한 구석에 박아두었던 녹옥빛 쌍검(雙劍)을 꺼냈다. 그리고 잠시 뭔가 감정하는 듯 하더니 감탄했다.
[ 삼국시대 소열제(昭烈帝)의 쌍고일대검(雙股一對劍)이구나!! 이건 아주 좋다.]요도 무라마사보다 훨씬 더 힘을 발휘하기 좋은 무기인 듯 했다. 여동빈은 자검(雌劍)을 자신의 몸 근처에 어검술로 띄우고 웅검(雄劍)을 오른손에 쥐어서 기수식을 잡았다. 구름 저 멀리로 치솟아서 사라져버린 마물이 자신의 적이라고 생각하는 듯, 그는 한동안 검을 잡고 기다렸다.
그리고는 벼락같이 소리를 내질렀다.
[ 하압!!]쩌정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여동빈이 띄우고 있던 쌍고일대검의 자검이 그의 발 밑에 자리잡았고, 여동빈은 그대로 검을 타고서 천공 높이 떠올랐다. 나는 내 몸으로 이런 일을 한다는 게 신기하기 그지 없었고, 눈 깜짝할 사이에 지상에서 날아올라서 구름 위까지 치솟아오르는 걸 느꼈다.
이것이 바로 – 전설의 어검비행술(御劍飛行術)!
어검비행술로 구름층 위에 올라서서 햇빛이 고요히 내려쬐는 것을 즐길 여유도 없었다. 구름바다 저편에는 어둠의 기운을 뭉게뭉게 피어내는 [총령이었던 마물]이 있었다. 그건 이미 인간의 이성도 남아있지 않은지, 촉수를 끝도 없이 흘려내며 기운을 모으고 있었다. 자줏빛 기운이 치솟는 걸 보니 예전에 해상에서 마주쳤던 흉신의 후예보다 훨씬 강대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검선 여동빈은 검 위에 올라탄 상태로 마물 총령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쉬카카칵
마물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에 수백 장이나 되는 크기로 촉수를 사방에 내뻗더니, 잠시 후 번개와 화염을 연이어서 토해내기 시작했다. 구름바다를 순식간에 갈라놓을 정도로 거대한 번개와 화염의 파장이 끝도없이 날아왔다. 그 엄청난 기세는 눈 앞에 있는 마물 총령이 무저갱의 마물과 차원을 달리하는 놈이라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 허튼 수작!]천둔검법(天遁劍法)
육의성천도(六意聖天圖)
운결(雲決)
순식간에 여동빈의 몸 근처에 기검(氣劍)의 환영이 수천 개나 떠올랐다. 빛의 검은 구름처럼 엄청난 밀도로 쏟아지더니 정면에서 번개와 화염의 파장을 떨쳐 내었다. 시공간을 격하고 여동빈의 손에서 웅검이 떨쳐나가더니 이윽고 마물의 앞다리를 크게 베어 내었다.
퍼억
하지만 동시에 무시무시한 속도로 재생을 시작하는 마물을 본 여동빈이 진심으로 분노한 듯 외쳤다.
[ 이 놈!! 애초에 나와 승부를 낼 생각이 아니었구나! 악한 자의 생명과 영혼을 이용해서 인간세상에 암천향으로 통하는 문을 열 계획이었던가?! 사신(邪神)의 계략이라니…!!]뭔가 이상하다.
[ 용서할 수 없다!! 절대 용서할 수 없어!]여동빈의 감정이 느껴지는데, 여태까지 강인하고 열혈스럽긴 했지만 그래도 선인의 기품을 잃지 않았던 여동빈이 흥분하고 있었다. 단순히 흥분하는 정도를 넘어서 머리가 돌아버릴 정도로 분노하고 있었다. 그것은 투선(鬪仙) 여동빈이 진심으로 꼭지가 돌아버렸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무시무시한 분노!
[ 하아아아아아아!!]여동빈이 갑자기 내 몸의 팔문을 열기 시작했다. 일문은 이미 열려 있었지만 갑작스럽게 이문(二門)에서부터 육문(六門)까지가 급격히 열렸다. 여동빈에게서 흘러나오는 힘은 무시무시하게 강력해지더니 이내 허공에 명옥(明玉)을 만들어 내었다.
어지럽다.
나는 명옥에 내 모든 힘과 생명력이 다 빨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이 느낌은 매우 익숙했기 때문에, 나는 머리가 멍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니, 이건 너무나 익숙하게 다가오는 죽음의 예감이었다.
‘ 여동빈 님! 잠깐만! 잠깐만요!!’
내가 필사적으로 외쳤으나 여동빈은 아랑곳하지 않고 거대한 분노의 함성을 내질렀다. 그와 동시에 자동으로 펼쳐진 대라멸진의 힘이 팔문을 모조리 열어버렸다.
[ 이것이 바로 천계의 화룡(火龍)이다!!]천둔검법(天遁劍法)
화룡소환(火龍召還)
쿠구구구구
명옥은 그 자체가 공격수단이 아니었다. 대신에 명옥이 깨어지더니, 그 공간을 뚫고 거대한 용(龍)이 천상천하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영체로 이루어진 신령한 적룡(赤龍)은 전방에 있는 마물 총령을 노려보았다.
본디 인간으로써는 행할 수 없는 – 천계 최강급 신수의 직접 소환!
그것은 고려에서 소환되었던 봉황 소환에 맞먹는 일인 것이다.
우우
잠시 후 화룡이 자신의 몸을 뒤틀더니 신통력을 전신에 가득 모았다. 그리고 돌진해서 마물 총령을 물어뜯었고, 촉수가 발버둥치듯 꿈틀거리자 무시무시한 염령(炎靈)이 휘발하며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거대한 대폭발이 일어났다.
소리가 멈춘다.
대지가 울린다.
천지가 뒤집어진다.
쿠콰콰콰쾅 – !!!
화룡의 위력! 그것은 진정한 천재지변이었다.
구름바다가 소멸되고 직경 수백 장이나 되는 폭발이 천공에 낙인처럼 새겨졌다. 마물 총령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압도적인 힘으로 마물을 처단했으나, 나는 승리를 기뻐할 수가 없었다.
떨어지고 있다.
“……”
휘이이이잉
나는 낙법을 취하거나 내공의 힘으로 몸을 보호하고 싶었지만, 여동빈이 팔문까지 죄다 열어버린 탓에 내공이 전무했으며 또한 몸도 부숴지고 있었다. 말 그대로 대라신선이 와도 살릴 수가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이긴 건 이긴 거지만 도대체 이런 승리가 어디 있단 말인가.
‘ 으아아아… 씨발… 이럴수가…’
할만큼 해 놓고 이렇게 죽는다는 게 믿겨지지가 않았다.
“여동빈 개새…”
퍼억
추락의 고통은 아주 찰나였다.
그것이 나의 11번째 죽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