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126)
0126 ———————————————-
암천향(暗天鄕)
13번째 삶이 시작되었다.
“에라이 젠장! 일단 가자.”
나는 대충 정신을 추스르고 천암비서를 얻으러 갔다. 뭔가 앉아서 생각을 하기에는 너무 얻은 정보도 적었고 한 일도 없었다. 그나마 확실해진 것은, 내가 운을 중첩해서 얻을 경우 단시간동안 천하무쌍의 운빨을 손에 넣게 되고 그 댓가로 확실한 죽음이 기다린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 시간동안 아무리 엄청난 성과를 얻어봐야 내가 죽으면 소용이 없는 일이었기에 이런 방법은 다시 쓸 수가 없다.
그리고 천암비서를 얻고 황산에서 천년설삼, 흑백련, 금괴, 막야를 얻고 진랑곡에 갔다. 역시 최대속도는 아무리 빨리 해도 비슷비슷한듯, 진랑곡에 도착했을 때는 딱 밤이 되어 있었다. 나는 또 다시 망량을 깨웠다.
망량에게 다시 한 시진동안 설득해서 납득을 시키자, 망량은 다 듣고 나서 황당해했다.
“당신이 전생자라는 건 믿겠소만, 대체 12번째 삶에서는 왜 그런 선택을 한 거요?”
“천선(天仙)들이 축복을 여러 번 주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궁금해서였소.”
“그건 물어볼 것도 없소. 파멸이오.”
“……”
“당신에게 설명을 해 줘야겠군.”
망량이 부채로 나를 가리켰다.
“먼저 신선이라는 존재가 실재하는 육체가 없는 영체(靈體)라는 사실은 알고 있겠지. 그들은 평상시에 신선계, 혹은 천계라고 불리는 장소에 존재하며 지상에 아주 가끔 내려오지. 여기까진 알고 있을 것이오.”
“알고 있소.”
“그들은 육체를 버린 대신 세상을 움직이는 법칙에 관여할 수 있는 힘을 손에 얻은 것이오. 그러나 그들이 선계에 속해있는 이상 그 힘을 자의적으로 지상계에 행사하는 건 불가능하지. 지상의 존재가 염원하고 바라며 댓가를 바치지 않는 이상 움직이지 않는, 극히 수동적인 존재라 할 수 있소.”
거기까지 설명한 망량이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그 수동성 때문에 신선이 한번 댓가를 받고 움직이기 시작하면 굉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소. 하물며 태허천존은 도교에서 모시는 수많은 신 중에서도 5위 안에 꼽히는 신으로써 영보천존(靈寶天尊)의 화신(化神)이라는 전설마저 있소. 그렇기에 운(運)이라고 불리는 강력한 신성영역을 다룰 수 있는 것이며, 태허천존이 2번씩이나 대운의 축복을 내린다는 것은 이미 필멸자로써는 감당할 수 없는 것이오.”
“으음…”
“다른 천신들도 마찬가지요. 서왕모의 축복을 2번 받을 경우 당신은 삼천갑자 동방삭만큼 오래 살 수 있을 것이오. 그러나 그 경우에도 당신은 그 축복의 과잉된 힘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자멸할 수밖에 없지. 절대 해서는 안되는 일이오.”
나는 망량의 말에 납득할 수 있었다.
앞으로는 그냥 얌전히 축복을 받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결론적으로 내가 황궁의 세력을 괴멸시키기는 했지만 내가 죽어버렸으니 무의미한 시도였던 것이다. 내가 살아있어야 의미가 있다는 걸 되새기며 말했다.
“그럼 이제 갑시다.”
나는 망량과 다시 천우진이 있는 마을로 가서 똑같은 과정을 반복해서 막야의 수기를 공양했다. 열두 번 씩이나 해본 일이지만 볼 때마다 질리지가 않았다. 망량이 말하기를 한 세기에 한번 있을까말까 하는 거대한 도교의식이라고 했다.
우우우우
태허천존이 말했다.
[ 내 기운이 느껴지는구나…] “다른 분께 차례를 넘기시겠습니까?”[ 응.]
태허천존은 아무런 미련 없이 서왕모를 불렀다. 나는 예전에 했던 대로 서왕모에게 구미호의 선처를 진언했고, 서왕모는 그 제안을 승낙했다. 그리고 서왕모가 다른 신선을 부르려고 할 때 나는 급히 말했다.
“서왕모님!”
[ 무슨 일이냐?]
“남화노선만큼은 부르지 말아 주십시오.”
서왕모가 눈에 이채를 띄었다. 그러자 내 뜻을 알아챈 망량이 옆에서 나를 거들었다.
“남화노선은 제 스승이신 망량선사와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서로간에 백해무익할테니 그만큼은 피해 주십시오.”
서왕모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 그것도 일리있는 말이군. 남화노선은 망량선사에게 소멸당했다가 옥황상제의 도움으로 겨우 부활한 적이 있으니.]그런 적이 있었단 말인가?
나는 놀란 눈으로 망량을 바라보았지만 망량은 별 반응이 없었다. 서왕모가 알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우우우우…
잠시 후 천우진의 몸이 덜컥거리더니 새로운 신령이 그의 몸에 깃들었다. 나와 망량이 불안과 기대감을 안고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 너는 무인(武人)이냐?]검선 여동빈이 눈 앞에 있었다. 아무래도 서왕모가 고른 최선의 선택은 검선이자 투선인 여동빈으로 귀결된 모양이었다. 나는 여동빈 때문에 죽었던 기억이 나서 짜증났지만 우선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 그렇다면 천둔검법(天遁劍法)을 전수하겠… 어?!]
여동빈이 그 답지 않게 마치 오리가 목 졸린 듯한 목소리를 내며 놀랐다. 그는 내게 찾아와서 몸을 더듬더듬거리더니 말했다.
[ 천둔검법의 심(心)이 느껴진다!! 너는 이미 천둔검법을 받아들인 적이 있는 것인가?!] “……”[ 놀라운 일이로고. 설마 내 속세의 후예가 천둔검법의 경지에 이르기라도 한 것인가…] “천둔검법을 주실 수 없는 겁니까?”
내가 퉁명스럽게 질문하자 여동빈이 대답했다.
[ 천둔검법은 이미 네 안에 있다. 나와 연결되는 단말(端末)이 네 영혼에 새겨져 있으니 따로 축복을 줄 것도 없음이다.]즉 지금까지처럼 여동빈은 그냥 축복을 따로 빌지 않아도 나타난다는 소리였다.
“아.”
[ 다음 차례로 넘기겠다.]
파앗
나는 순간 천우진의 표정이 괴랄해지는 걸 볼 수 있었다. 강림당하는 찰나였지만, 그는 굉장히 지치고 피곤해 보였다. 하지만 나는 속으로 쌤통이라고 생각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번에 불려온 신령이 입을 열었다.
[ 나는 원원자(元元子)라고 하오…]
그게 누구지?
나는 고개를 갸웃했으나, 순간 옆에 서 있던 망량의 안색이 뒤바뀌었다. 그리고 원원자는 편안하게 웃더니 내게 질문했다.
그 질문은 상당히 내게 생각할 거리를 안겨다 주었다.
나는 과연 무술을 좋아하는가?
물론 무술을 익혀서 강해지면 그때만큼 기쁜 일이 없다. 강한 적과 싸워서 생존했을 때의 기쁨도 굉장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애초에 내가 좋아서 무술을 익힌 게 아니었고 살아남기 위한 일환일 뿐이었다. 힘을 가지면 살아가기 편하기 때문에 무술을 익힌 것이다. 무술 그 자체에 대한 애정이 있어서 입문했다고는 볼 수 없는 것이다.
‘ 뭐, 꽤 좋아하는 편이지.’
하지만 나는 무술을 좋아하는 ‘나’ 또한 나 자신이라는 걸 받아들이기로 했다. 인생이라는 건 하나의 단면이 아니므로, 취미와 흥미와 그밖의 기타등등이 인격을 구성하는 것이다. 적어도 나는 일반인 보다는 무예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었다.
“네.”
[ 좋네… 그대에게 내가 미처 속세에 전하지 못했던 심득(心得)을 전하도록 하지…]
파아앗
원원자가 손을 뻗는 걸 끝으로 막야 수기의 공양의식이 끝났다. 나는 머릿속으로 무언가 엄청난 지식과 무예경험이 빨려들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눈 앞에 천우진이 쓰러져 있었다.
망량이 급히 천우진에게 달려가서 그를 부축했다.
“사제 괜찮은가?!”
“크… 으윽… 괜찮소.”
“수고했네.”
나와 망량은 천우진이 진정되자 마을을 나갔다. 그리고 여태까지처럼 객잔에 가서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정리하기로 했다.
망량이 닭다리를 뜯었다.
“당신이 이번에 받은 축복은 각별하구려. 정말 대단한 기연이라고 할 수 있소.”
“원원자가 대체 누구인데 그러오?”
“하긴 세상사람들은 그 도호(道號)가 누구를 뜻하는지 잘 모르겠지.”
망량은 그렇게 중얼거린 후 말했다.
“원원자라고 함은 본명은 전일(全一)또는 군보(君寶)라고 하는 송나라 말기의 한 도인을 일컫는 말이오. 세상에는 그 도호가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 왜냐하면 그 도인의 다른 이름이 훨씬 유명하기 때문이지.”
“……?”
이어진 말에 나는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무당파(武當派)의 개파사조(開派師祖)이자 현재 민간에서 가장 추앙받는 신선 중 하나, 그것이 바로 원원자 장삼봉이오.”
“헉…!! 내가 장삼봉의 심득을 얻었다 그 말이오?!”
“그렇소.”
장삼봉!
그는 구파일방중에서도 소림사와 함께 태산북두로 군림하고 있는 명문정파 무당파의 개파시조였다. 그는 송 말기에 원나라 정부와 교섭해서 이 땅의 도맥을 지키고 힘없는 민초를 보호한 공로로 이름이 높았으며, 동시에 권성이라 불릴 정도로 고명한 무술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또한 무림인 중에서 장삼봉의 이름을 모르는 자는 거의 없다고 봐도 좋을 만큼 유명한 자였다. 무예계에서 일대종사를 논할 때는 반드시 나오는 이름이기도 했다.
내가 그의 정체를 바로 몰랐던 이유는 바로 원원자라는 고유의 도호를 사용해서 자신을 밝혔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도맥에서나 전승되는 것으로 일반 무림인이 장삼봉의 도호까지 일일이 알기는 힘든 것이다. 내가 마음속으로 놀란 걸 추스르고 있자 망량이 말했다.
“심득을 전해받았다 했는데 어떤 것을 전수받았소?”
“음… 명상을 해봐야 알 것 같소. 지금은 그냥 형태없는 지식이 들어와있다는 기분이오.”
“그럼 틈날 때마다 수련을 해 보기를 권하겠소. 정 안 되면 은거해서 그냥 장삼봉의 심득만 익히고 나와도 절대 패착까지는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드는군.”
“흐음…”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망량이 말했다.
“또한 그 심득을 완전히 소화한다면 큰 장점이 하나 있소.”
“불로장생한다는 거요?”
망량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건 장점이 아니오. 불로장생하면 복마전이 물러가는 게 아니잖소.”
“그럼…”
“당신은 그 심득과 절학을 무당파에 돌려줌으로써, 무당파를 당신의 편으로 만들 수 있는 거요.”
“아!”
“이거 뜻하지 않게 변수가 또 늘었군.”
툴툴거리는 망량이었지만 장난삼아 하는 말일 뿐이었다. 그 말대로라면 내가 잘 하면 무당파 장문인이 될 수도 있다는 소리 아닌가?! 무당파를 내 편으로 만든다면 일이 훨씬 쉬워질 게 분명했다. 나는 혹시나 하는 기대에 망량에게 질문했다.
“그러면 구파일방의 역대 개파조사들을 차례로 불러서 심득을 받으면…”
“말도 안 되는 소리… 구파일방의 개파조사들은 물론 모두가 일대종사이며 기인(奇人)들이었으나 대라신선(大羅神仙)의 경지에 오른 것은 오직 장삼봉 진인 뿐이오. 화산파든 종남파든 곤륜파든 아미파든 점창파든, 도맥의 장문인으로써 대라신선까지 오른다는 게 정말 기적적인 일이지.”
“으음!”
“되려 장삼봉 진인이 특별한 천재라고 생각하시오. 그의 사후 약 200여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대선급이 된 셈이니.”
나는 망량의 대답에서 장삼봉이 별격(別格)의 존재라는 걸 실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신선의 좌에 오르더라도 그 안에서 다시 격이 나뉘게 되고, 막야의 수기를 공양받을만한 격위를 지닌 것은 극히 일부의 대라신선 뿐인 것이다. 장삼봉의 위대함을 되새긴 후 망량에게 재차 물었다.
“그러고보니 아까 남화노선이 망량선사에게 죽을 뻔 했다는 건 무슨 소리요?”
“음… 좀 민감한 비사(秘事)이지만, 당신한테라면 이야기해도 좋겠군.”
잠시 망설이던 망량이 말했다.
“말 그대로요. 내 스승인 망량선사는 한 때 선인계에서 날뛰던 거흉(巨凶)이었소. 그 당시에 스승님은 [경계(境界)의 제망량(帝??)]이라 불렸는데, 그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제자인 나도 정확히 모르오. 다만 확실한 것은 그 때 남화노선이 스승님께 대적했었는데 일 격에 선체(仙體)가 뜯겨나가 소멸했었고, 그걸 옥황상제가 부활시켜 줬다는 사실이지.”
“……!!”
“남화노선이 그렇게 띠꺼운 반응을 보인 것도 이해가 가오. 지금은 선인계를 지키는 수호자의 업을 행하고 있지만, 남화노선이 스승님께 죽었던 것도 사실이니까.”
나는 어이가 없어서 말했다.
“남화노선 또한 대라신선에 속하는 자가 아니오? 그런 자를 일격에 해치웠다고?”
“내 스승은 좀 특별한 존재요. 인간이 수행을 쌓아서 선도(仙道)가 된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인간이 아닌 존재였다고 알고 있소.”
“그럼 요괴선인이오?”
은주시대 때부터 세상에는 인간이 도를 쌓은 선도 외에 요괴가 수련해서 요괴선인이 되는 경우가 있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내가 도가지식에 근거해서 질문하자, 망량이 정말 묘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것도 아니오.”
“그럴 수가 있소?”
“내 스승은 수수께끼가 정말 많은 분이라서 함부로 이해하려 들지 마시오. 그 분에 관해서는 현재 옥황상제와 태상노군조차도 함부로 명을 내릴 수가 없으니.”
“……”
나는 왠지 망량선사의 주변인들이 그에 대해서 정말 중요한 사실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느꼈다. 미호도 망량도 그렇고 망량선사의 화신(化神)으로써의 모습만 알고 있을 뿐, 망량선사의 본질이 무엇인지는 모르는 듯 했다. 이토록 수수께끼에 쌓인 존재가 은둔하고 있다는 게 공포스러울 정도였다.
나는 이내 망량과 진랑곡에서 헤어졌다.
“망량. 나는 계획대로 할 테니 잘 부탁하오.”
“염려 마시오.”
망량에게는 내가 입수했던 물품을 거의 다 넘겼고, 고려에 가는데 필요한 물품만 챙겨서 나왔다.
‘ 자, 이제 망량의 기책대로 시작해 볼까?’
기책이란 건 간단했다.
나는 그 후 며칠동안 달려서 산동성에 도착했고, 도착하자마자 대룡상회의 물류보관소에 숨어들었다. 초급술법인 은형술(隱形術)을 사용하자 표사나 표위에게 안 들키고 찾아볼 수가 있었다.
그리고 물류보관소에 잠복해서 야간중에 열심히 찾아보자, 두 시진만에 목표물을 찾아낼 수가 있었다.
“이거구나!”
내가 꺼낸 것은 비등이 보관되어 있는 화물상자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고는 그 안에서 황금비등을 찾아서 꺼냈다. 이걸로써 내게는 순간이동한 수단이 마련된 셈이었다. 나는 화물상자를 원래대로 넣어두고는 바깥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황금비등의 옆을 문질렀다.
또한 괜히 천리안을 보기 싫어서, 문지르자마자 강하게 의지력으로 외쳤다.
여기에 가고 싶다!
[ 알았다…]파앗!
내가 도착한 곳은 바로 대뢰옥의 심층이었다. 한줌의 빛도 없는 무저갱이었지만 나는 횃불을 미리 들고 있었으므로 어둠 속이 똑똑히 잘 보였다. 나는 물가 너머에 있는 촉수두꺼비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간만이야.”
그 때였다.
거대 촉수두꺼비가 내 존재를 감지하고는 서서히 고개를 돌리는 듯 했다. 그리고는 마치 비강장이 내 머릿속에 의지력을 쏟아냈을 때처럼 강렬한 염파가 느껴졌다.
물론 대부분 해석이 되지 않았으므로, 나는 그 말을 무시했다. 그리고 내면에 침잠해 들어가면서 천둔검법 신(信)의 요결을 발동했다.
‘ 검선 여동빈이여. 눈 앞에 마(魔)가 있으니 쓰러뜨려 주십시오.’
잠시 후 내 눈에서 신령스러운 기운이 번쩍거렸다. 원래라면 나 혼자 쓰러뜨리게 내버려뒀을 테지만, 내가 그를 청하는데야 여동빈이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여동빈은 내 몸에 강림하며 강하게 외쳤다.
[ 달의 뒤편에 사는 암천향의 마물이여! 이런 곳에서 인육을 탐하다니 나 여동빈이 용서치 않겠다!]잠시 후 거대 촉수두꺼비에게 여동빈이 어검술(御劍術)을 날렸다. 어검술은 미끌미끌한 촉수두꺼비의 피부를 용서없이 꿰뚫고 크게 상흔을 입혔고 체액이 뿜어져 나왔다.
[ 끼이이이에에!!]여동빈은 급격히 분신을 만들어내더니 허공에 한 자루의 거검(巨劍)을 소환했고 재차 내리찍었다. 그러자 거대 촉수두꺼비는 그 공격을 전신에서 체액을 분비해서 한 차례 막아내더니, 이번에는 도리어 괴음파를 발산하는 것이었다. 확실히 해상에서 마주쳤던 마물과는 격이 다른 놈이었다.
찌잉 –
그러나 이광과 진소청을 순식간에 무력화시켰던 그 주술음파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저번에는 나에게 일부러 안 날린 건지도 몰랐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아니었다. 애초에 내게는 저 두꺼비의 저주가 통하지 않는 것이다.
그 사실을 여동빈도 깨달았는지 중얼거렸다.
카가강
그렇게 말하면서도 여동빈은 마물의 잠재력을 재어보듯 신중하게 접근하는 기색이었다. 여동빈이 평소처럼 미친듯이 절기를 발휘하면 아무리 거대촉수두꺼비라도 일격에 결단날테지만, 이 장소는 산을 파내어서 만든 동굴이었기에 섣불리 큰 기술을 쓸 수가 없는 것이다.
잠시 틈을 살피던 여동빈은 회색빛 검강을 뿜어낸 채로 뭔가 깨달은 듯 했다.
[ 허허! 연자여, 재밌는 기술을 가지고 있구나. 나도 한 번 써보도록 하겠다.]여동빈은 땅을 딛고 발도자세를 취하는 듯 했다. 그는 검선답게, 내 머릿속에 있던 장삼봉의 심득을 아무런 수련없이 순식간에 다 깨달은 듯 싶었다.
장삼봉(張三峯)
심득(心得)
굴공참(屈空斬)
위이잉
벌떼 우는 듯한 소리와 함께 검로가 공간을 왜곡시키며 뻗어나갔다. 촉수두꺼비가 체액을 마치 탄환처럼 쏘아냈지만 마치 무형의 자국을 지우듯이 쭉하고 밀려나갔고, 궤도도 크게 뒤틀어졌다.
이것은 통상의 무학에서 생각할 수 없는 일로, 공간 그 자체를 빨아들이듯 휘게 만든 것이다! 이 초식만 있다면 온갖 종류의 공격초수를 무효화하는 게 가능했다. 관전하던 내가 놀라고 있을 때 검선이 재차 장삼봉의 심득을 사용했다.
[ 이리 오너라!]심득(心得)
천축검(天縮劍)
츄르르륵
검이 휘둘러지자, 마치 공간이 오그라져서 말려들어가는 듯한 현상이 일어났다. 이번에는 공간을 굴절시키는 걸 넘어서서 오그라뜨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 강대한 흡인력(吸引力)에 몸 크기가 수십 장이나 되는 거대 촉수두꺼비가 몸을 버둥거리며 물에 빠졌다.
여동빈은 충분히 거대 촉수두꺼비를 끌어들였다 생각했는지 이번에는 심득 중에서 칠성둔영(七星遁影)을 사용해서 수많은 분신을 만들어서 접근하더니, 태극요지유검(太極曜志柳劍)으로 촉수두꺼비를 허공으로 튕겨냈다.
[ 꿰에엑!!]촉수두꺼비가 발악을 하듯 다시 괴음파를 발산했지만, 이번에는 현천오신결(玄天五神決)을 펼쳐서 다섯 줄기의 신령스러운 빛줄기를 쏘아내 버렸다. 그러자 괴음파는 허공에서 차단되어 버렸다.
그리고 마무리로 진무칠절경(眞武七截經)으로 반탄강기를 역으로 부딪히면서 촉수두꺼비의 몸뚱이를 박살내 버렸다. 허공에서 무지개빛 거울이 만들어지며 광선을 무작위로 뿜어내었다.
그 모든 것이 무당파 최종절학이 검선에 의해 펼쳐진 결과였다.
쿠콰쾅
촉수두꺼비가 허공에서 폭발하며 사방으로 체액이 비산했다. 체액 하나하나가 산성이었으므로 여동빈은 호신강기와 검막으로 걷어내 버렸다. 토벌을 완료한 여동빈이 만족스러운듯 말했다.
[ 재미있었다. 장삼봉과 이야기나 좀 하러 가야겠다.]털썩
나는 여동빈이 나가자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나는 어깨를 주무르면서 한숨을 쉬었다.
“하아, 다행히 삼문(三門)까지밖에 안 열었군. 내공도 3할은 남아 있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방금 여동빈이 펼친 것은 나도 같이 펼친 느낌이 들었기에, 앞으로 장삼봉의 심득을 수련할 때 크게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투선이 최상의 숙련도로 펼친 일 초식을 체현했다는 것은 그 자체로 몇 년치의 수련을 앞당기는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대로 동굴에 들어가서 목갑, 괴서 나인성본전, 녹옥의 쌍검을 손에 넣었다. 쌍검의 경우 여동빈이 쌍고일대검이라고 부르기는 했는데 이게 정확하게 뭔지 몰랐기에, 나중에 망량에게 가져가서 물어볼 생각이었다.
그리고 목갑 안의 빈 공간에 지금까지 습득한 모든 것을 넣어둔 채 다시 황금비등을 문질렀다.
파앗!
내가 다시 나타난 곳은 망량이 있는 진랑곡 앞이었다. 망량에게 중간보고를 위해 들러야 했다.
망량은 무언가 서책을 보면서 무공(武功)을 수련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마보자세를 풀고는 싱긋 웃었다.
“성공했군.”
“다행히도 성공했소.”
그랬다.
기책이라는 것은 바로 최단기간에 황금비등을 얻은 후, 두꺼비를 쓰러뜨려서 물건을 대거 수납가능한 신비한 목갑을 손에 넣는 것! 필요한 걸 다 얻어버렸으니 이제부터는 시간을 크게 아낄 수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