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1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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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나는 출발하기 전에 앞서 청룡무관에서 보호하고 있다던 남궁환과 모용연을 찾았다. 이광이 그들을 데리고 나오자 나는 그들의 면면을 살피다가 이광에게 전음을 보냈다.
[이광. 남궁환의 본가인 남궁세가가 망한 걸 알고 있을텐데 어찌 그들을 맡아주게 되었지? 남궁환이 스스로 오려 하던가?] [그 말대로 남궁환이 스스로 의탁하려 들었습니다.] [흠. 맡아줘봤자 청룡무관에 그다지 득은 없었을텐데 왜 받아들였지?] [소청이의 친우였기에 머지않은 미래에 떠난다는 조건으로….] [따라온다던가?] [네.]대충 받아들이게 된 배경은 알게 되었다. 나는 뜬금없는 폐관 소식에 어리둥절해하는 남궁환에게 말을 걸었다.
“남궁환 소협. 나는 소을촌의 촌장이자 이광의 스승이 된 백웅이라 한다.”
“허억…. 설마 전설의 반로환동이십니까?”
“그렇다 할 수 있지. 몇 가지 물어볼 게 있다만.”
“물어보시면 이 강호후학 남궁 모가 성실히 답하겠습니다.”
“남궁세가로 굳이 돌아가지 않는 것은 망했기 때문인가?”
주춤
정곡을 찌르는 질문에 썩은 표정을 감출 수 없는 남궁환이었다. 그는 잠시 힘겨워하는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그렇습니다….”
“내가 듣기로 남궁세가는 가주와 남궁팔검이라는 간부들만 죽고 나머지 무력단체들은 그저 기절과 타박상으로 끝나 그 세력이 완전히 죽지 않았을 텐데, 남궁세가의 소가주로서 그 세력을 수습하러 가지 않는 건가?”
“…….”
“이광도 방금 전 자네가 우리가 소을촌에 가는 걸 따라온다고 하더군. 좀 이해하기 힘든 일이야. 자네가 간자일 수도 있으니, 똑바로 말하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어.”
멸문이 아니라 망문이라는 표현을 쓰는 건 그 때문이다. 악의 근원이었던 간부급만 주살했을 뿐 나머지는 죽이지 않고 적당히 패기만 했을 뿐, 남궁세가는 아직 멸하지는 않았다 할 수 있다. 그래서 원래는 내가 남궁세가를 패망의 길로 몰아갔더라도 남궁환은 일단 가문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어째서 남궁환은 그 사실을 알 텐데도 가문으로 안 돌아가고 하필 이번 전생에서는 청룡무관행을 택한 것인가? 그리고 청룡무관이 문을 닫아도 끝내 이광과 진소청을 따라오는 이유는?
그러자 남궁환이 씁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앞으로 제 삶을 의탁드릴 분이니 말씀드릴 수밖에 없겠군요. 사실 가문의 전령을 통해서 하북팽가(河北彭家)가 황보세가(皇甫世家)와 연합하여 남궁세가의 잔당을 치러 남진(南進)한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호오?
나는 뜻밖의 이야기에 살짝 흥미가 생겼고 이광은 옆에서 듣고 있다가 다소 떫은 표정으로 말했다.
“창천검룡. 처음 우리 청룡무관에 의탁할 때 그런 얘기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을 텐데.”
“죄…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와 제 약혼녀의 목숨이 걸린 일인지라.”
나는 손을 들어서 이광이 추궁하려는 걸 막고는 남궁환이 말을 잇도록 종용했다.
“계속 말해보게. 하북팽가도 황보세가도 천하오대세가(天下五大世家)의 일좌일 터인데 둘이 연합해서 남궁세가를 친다는 게 진짜인가?”
“……네.”
“자네는 양대세가의 무력단체가 남궁세가를 치러 오는 걸 감당하기 싫어서 안전한 곳으로 몸을 뺀 것이군.”
“그, 그렇지만 지금 제가 가도 할 수 있는 게 없….”
그 때였다. 옆에서 이야기를 같이 듣고 있던 모용연이 황당하다는 듯 소리를 빽하고 질렀다.
“어이없군요!! 가가, 왜 내게는 그런 말을 한 마디도 안 하신 건가요?!”
“아, 아니 그건… 당신이 날 떠날까봐.”
“약혼녀이자 정인일진대 그렇게 간단히 당신을 버릴 리가 있나요!! 그렇게나 저를 못 믿으셨던 건가요.”
“…다, 당신은 모용가의 적손. 이번 일과는 아무 상관도 없고 남궁세가도 망하다시피 했으니 당연히 날 버리지 않겠어! 어차피 가문의 정혼자로 엮였을 뿐인데 어디서 가식적인 소리를 하는 거야!”
“뭐라고요?!”
도리어 얼굴이 붉어져서 항변하는 남궁환을 보자 모용연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는 황망한 표정으로 돌변하더니 이내 얼굴이 울음기가 맺혔다.
“…솔직히 얘기했다면…. 모용 가문을 등지는 한이 있어도 끝까지 당신을 도우려 했을 거예요…. 아버님께 당신을 도와달라 했을 거예요! 강호의 무뢰배들에게 쫓기는 걸 감수하면서까지 당신을 따라왔다는 게 어떤 뜻인지 몰랐던 건가요…?”
“어….”
“그래요…. 당신에게 한줄기 의심이 있었다는 건 부정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설마 내 정인이 이런 쓰레기였다니.”
모용연은 자신의 눈물을 손으로 훔치고는 홱하고 돌아서며 말했다.
“아아…. 저는 가문으로 돌아가 두 번 다시 세상으로 나오지 않겠습니다.”
타닷
그녀는 곧장 경공을 발휘해서 이 자리를 떠나버리고 말았다. 갑작스러운 일이었기에 다들 당황하고 있는 동안 남궁환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갈 사람은 가라고 하고, 저 창천검룡 남궁환도 여행길에 함께 따라가겠습니다! 하하하하.”
“…….”
“…….”
너무나 태연자약한 모습에 나도 이광도 진소청도 옆에서 보고 있던 극호도 경악하는 얼굴이 되었다. 설마 그 고난을 함께했던 약혼녀가 눈앞에서 위험한 길을 떠나는데도 붙잡지도 않고 자기 살 길만 찾을 줄이야?
극호는 무척이나 불쾌한 어투로 말했다.
“백웅 태사부. 저런 쓰레기를 굳이 데려가야 할까요?”
“뭐라고! 어디서 굴러먹다온지도 모르는 놈이 내가 이런 처지라고 얕보는 거냐. 그 말을 취소해라!”
남궁환이 버럭 화를 냈지만 극호는 무시하듯 대꾸도 하지 않았고 그런 극호에게 남궁환이 갑자기 검을 빼 들고 덤벼들었다. 남궁세가 제왕검법의 초식이 펼쳐지며 극호의 신형을 꿰뚫었다 싶은 순간, 극호의 신형이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더니 따당 하는 소리와 함께 남궁환의 검이 허공으로 튕겨져서 날아갔다.
스윽
“허억.”
극호의 창날은 어느 새 남궁환의 목젖에 닿아서 살짝 베어 피를 내고 있었다. 생각보다 더 현격한 실력차이였고 남궁환이 극호를 얕보고 방심한 탓에 일 초만에 승부가 난 듯 했다. 애초에 제대로 싸워도 극호가 오십 초 내에 남궁환을 가볍게 쓰러뜨릴 정도인데 얕보기까지 했으면 이게 당연한 일인 것이다.
극호가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강호에서 그럴듯한 별호를 붙여주니까 네놈이 정말 강한 줄 알았나 보구나. 윤광이나 지평보다 조금 나은 실력인 주제에.”
“…….”
“어디서 굴러먹다 온지 모르는 창 맛이 어떠냐?”
나는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가 극호에게 말했다.
“극호. 만일에 남궁환의 뒷배에 남궁세가가 건재하다 하더라도 너는 남궁환을 찔러죽일 수 있었겠느냐?”
“왜 그런 걸 물어보십니까? 남궁세가가 있고 없고가 저 놈이 쓰레기라는 사실에 어떠한 변화도 주지 않습니다. 죽일 놈은 죽여야 하니 말리지 말아주십시오.”
“말리기는… 역시 너도 훌륭한 뇌신류다.”
상대가 누구든 간에 할 말은 해버리는군.
그래야 극호지.
나는 극호의 대답이 마음에 들어서 싱긋 웃고는 남궁환에게 다가가서 극호의 창끝을 치워주었다.
“가, 감사드립니다. 저를 구해주시다니.”
남궁환은 구사일생이 된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그의 말에 담담하게 대답했다.
“남궁환. 사실 너희 아버지와 남궁팔검은 내가 다 쳐죽였다.”
“……?!”
“……?!”
남궁환의 표정이 완전히 넋이 나간 것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도 내 말은 미처 예상치 못했는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고 심지어 방금 전까지 살기를 내뿜던 극호도 멍해져 있었다. 남궁환이 잠시 후 몸을 부들부들 떨다가 말했다.
“어, 어, 어째서….”
“너희 가문의 밀실에 온갖 세가의 여자들을 납치감금해서 노예로 써먹고 있었잖나. 그리고 중소세가를 위력으로 멸망시킨 악행도 다 알고 있어. 귀찮아서 아직 그 일을 세상에 공표하진 않았지만 그들도 곧 소을촌의 주민이 되어 세상에 남궁세가의 악행을 알리게 될 거다.”
“……!!”
“그리고 너희 가문이 갖고있던 비밀의 보물 순어구는 어디보자, 여기있군. 아무튼 망할 놈들이 망하게 된지라 나로서는 속이 시원하구나.”
“으아아아아…!!”
풀썩 하고 남궁환이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좌절했다. 그리고 옆에서 상황을 보고 있던 진소청의 얼굴이 흙빛이 되어 내게 말했다.
“…태사부… 정말입니까…?”
“그래. 내 이름을 걸고 사실이다. 남궁세가는 멸망시킬 만 해서 멸망시켰다.”
“하아…. 죄송합니다. 친구를 잘못 사귀었습니다.”
“괜찮다 진소청. 어차피 앞으로도 계속 저 놈을 지옥에 빠뜨릴 생각이니까.”
“……?”
진소청은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예전부터 줄곧 생각해 왔었다.
죽일 놈은 몇 번을 죽여도 시원찮으니 전생하는 내내 심심하면 쳐죽이는 게 옳은 것이다. 해적섬의 해적들을 씨알 하나 남기지 않고 없애듯, 앞으로도 남궁명은 내가 전생할 때마다 대가리가 터질 것이고 남궁환 또한 덤으로 죽거나 절망하게 되리라.
나는 힐끔 극호를 쳐다보며 말했다.
“극호. 모용연이 신경쓰이면 가서 그녀를 호위해 줘라.”
“…네? 하지만.”
“그녀가 천음지체라는 걸 노리고 강호의 잡놈들이 계속 달려들 테니 모용세가까지 호위해 줘라. 그 후에 소을촌에 알아서 돌아오는 걸 네 임무로 하겠다.”
“감사합니다, 태사부.”
파앗
“그럼 가 볼까.”
일련의 과정이 끝난 후 나는 일행을 모두 마차에 태운 후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마차에 모두를 싣고 날아가기 시작했다.
마차가 하늘을 나는 것을 보자 이광과 진소청도 크게 놀란 듯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이 정도의 내공이라니…!!”
“인간의 무공이 아닙니다.”
이윽고 소을촌에 모두 도착하자 나는 청룡무관 사람들이 머물 숙소에 짐을 풀게 한 후 그들이 황연 대장군과 만나게 했다.
이번에야말로 이광은 깜짝 놀라서 황연에게 말했다.
“자, 장군. 어찌 이런 곳에….”
“음…. 소을촌장에게 얘기를 듣지 못했나? 우리 모두는 그에게 구원받았네.”
이윽고 황연이 상황설명을 해 주자 이광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 눈빛에 신뢰가 점차 생기는 게 보이자 나는 내심 히죽거리며 웃었다.
‘후후후후. 그래 믿어라. 어차피 넌 이광이니까 마음속 깊은곳에서는 계속 날 의심하고 있겠지. 하지만 조금만 믿어줘도 나는 널 굴릴 수 있어…!!’
소을촌에 온 걸 환영한다 이광…!!
내가 당한 만큼 당해야 할 거다!
나는 속으로 복수의 칼날을 갈면서 이광에게 말했다.
“이광. 회포는 천천히 풀고 우선 수련부터 하는 게 좋을 것 같구나. 용중일을 쓰러뜨리려면 하루라도 부지런히 연마를 해야 한다.”
“좋습니다. 뭐든 배우겠습니다.”
내 무공을 인정하고 있으니 이제 신뢰가 생긴 걸까? 이광의 눈에 투지와 독기가 서리자 나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느냐? 기초가 완벽한 자일수록 고수라고들 하지.”
“음, 맞는 말입니다.”
“나는 너의 기초가 보고 싶구나.”
나는 팔짱을 끼며 말을 이었다.
“뇌령팔식(雷靈八式)을 일단 5천 번만 시전해 보자.”
나처럼 십만 번 하기에는 내공도 부족하고 나이도 있어서 일단 봐줬다.
“…….”
이광은 매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말했다.
“이제와서 그걸 반복시전한다 하여 얻을만한 건 없을 것 같습니다만….”
“어허!! 형(形)을 파(破)하고 무아의 경지로 향할 수 있는 것이야!”
“그건 이미 깨달은 경지인데….”
나는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갈(喝)! 무공의 수련은 언제나 기초가 가장 중요하다! 감히 내 말을 의심하는 게냐?”
“그건….”
“뇌신지혼 배우기 싫지?”
그러자 이광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아닙니다.”
“좋아! 그럼 닥치고 하라고!”
부웅 부웅
이윽고 이광이 뇌신류의 기초창술에 가까운 뇌령팔식을 열심히 휘두르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쳐다보며 생각했다.
‘좋아. 내일이나 모레쯤 흑백련을 이광에게 먹이자.’
나는 그 때의 은혜를 잊지 않고 있다. 내 무공이 향상되고 벽을 깼지만 정말로 힘들어서 죽을 뻔 했으니 똑같이 해주고 싶다.
더도말고 덜도 말고 십만 번.
나중에 꼭 할 수 있게 해주지 이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