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1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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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부웅 부웅
나는 이광에게 란, 나, 찰을 1만번씩 시전하게 하는 과제를 내놓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를 생각해 보았다.
‘흠! 생각해보니 아직도 안 데려온 자들이 몇 있는데….’
당장 급한 사정이 있는 자들은 다 소을촌에 데려왔으나 나와 전에 인연이 있던 인물이 몇 있었던 게 생각난다. 나는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다시 머리에 힘을 풀고 편하게 있기로 했다.
‘…아 몰라. 좀 편하게 살고싶다 이젠.’
지금만 해도 대충대충 살려고 도리어 일을 열심히 하게 된 모순에 봉착해버렸다. 더 이상 일을 했다가는 도리어 심려가 쌓일 것만 같았다. 나는 일단 당분간은 널럴하게 지내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신녀문에서 전서구가 오기 전 며칠 동안 새로이 뇌신류에 입문하게 된 연종휘, 당산, 사공린 등에게 기초를 가르치기로 했다. 이광이나 진소청에게 시킬 수도 있지만 너무 일이 많아보였기에 나도 적당히 몸을 풀 겸 교육을 시작한 것이다.
“백웅 님. 소녀는 이 마을에서 무엇을 하면 되겠사옵니까?”
미호가 그러던 와중 나긋한 목소리로 내게 질문해 왔다. 나는 내 턱을 만지작하다가 그녀에게 말했다.
“같이 뇌신류 무공이나 배워보는 게 어떨까?”
“아시다시피 저는 대요괴라서 인간이 배우는 무공을 익혀도 쓸모가 적으며 대성하기 힘드옵니다….”
“흐음….”
그러고보니 미호는 원래부터 무공을 배우진 않았었다.
‘하긴 요괴가 주로 쓰는 건 요력이니 인간의 무공과는 꽤 다른 성질이 있지…. 요력을 다루는 요령을 미호한테 배울 때도 거기에 관해서 들었던가.’
요괴란 게 원래 그랬다. 요괴도 일단 반정반사이므로 무공을 배울 수는 있었지만 요력과 상이한 기력의 운용 때문에 무공을 달통하는 건 몹시 힘든 일이었다. 요력은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게 전제가 되지만 기공은 정해진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는게 큰 차이점이었다. 전대 요괴왕으로서 요력과 기력을 모두 최고수준으로 지닌 제천대성이 특이한 경우이리라.
나는 새삼 그 사실을 기억해내곤 미호가 뭘 해야 할지를 고민하다가 문득 생각난 게 있어서 전욱의 동상을 목갑에서 꺼내어 미호에게 건네주었다.
“미호. 너는 오늘부터 이 동상을 품은 채 늘 명상수련을 해라. 호흡법을 가르쳐줄 테니 음의 기운이 강해지는 시간에 더 집중해서 기운을 흡수해라.”
“…이 동상은?”
“전욱의 음신지력이 일부 스며들어 있는 동상이다.”
“아!”
“여기에 스며있는 신력만 흡수할 수 있어도 네 힘이 크게 강해지겠지. 몇 년 동안 노력하면 충분히 흡수가 가능할 거다.”
미호는 크게 기쁜 표정을 지었다.
“열심히 수련하겠사옵니다.”
“그래….”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이건 내가 천우진한테서 음신지력을 대성하기 위해 조언을 구했을 때 알게 된 수련법이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이게 대요괴의 수련에 가장 걸맞는 수련법이기에 시간이 흘러서 미호에게 전수하게 되었다는 게 참 묘한 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동안 망량의 부하처럼 움직이며 일을 하고 있던 금천재에게도 찾아가서 말했다.
“금천재. 너도 틈틈이 무공수련에 참여하도록 해라.”
“으으으. 정말로 저는 싸움같은 건 못합니다….”
“어허 징징대지 말고.”
나는 금천재도 반강제로 뇌신류를 익히게 만들었다. 여하튼 이번 생은 꽤 넉넉하게 갈 셈이었으므로 그가 노환이나 숙환으로 죽게 할 순 없었다. 끝까지 나를 위해서 일하게 만들려면 무공을 익혀서 건강해져야만 한다.
어느 정도 기틀이 닦이자 나는 다음 날 흑백련을 잔뜩 꺼내어서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그리고는 말했다.
“자아. 흑백련을 다들 섭취해라!!”
“촌장. 정말 괜찮으시겠소? 이 흑백련은 영약이기에 한 번 먹으면 되돌릴 수 없는 보물일 터….”
망량이 귀중한 보물이 없어진다는 생각에 걱정하는 듯 했지만 나는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괜찮소. 나중에 더 불릴 수 있소!”
“허어?!”
“걱정말고 당신도 한 뿌리 하시오.”
이윽고 진귀한 흑백련 단체 시식이 이뤄졌다. 진소청, 이광은 물론이고 여태 마을에 끌어들인 중요인물은 거의 다 먹었기에 단숨에 흑백련 수량의 절반 이상이 날아갔다. 심지어 현천도인이나 금천재, 금만재도 먹었다. 그리고 흑백련의 기운을 다스리기 쉽도록 내가 옆에서 호법을 서면서 그들의 기운을 통제해 주었고, 머지않아 대부분 수십 년치 이상의 내공을 단숨에 얻게 된 것이다.
쿠구구
“으아아.”
“대, 대단한 내공증진!”
뇌신류의 사범인 윤광과 지평이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다. 게다가 연종휘는 정말로 기쁜지 내게 절을 할 정도였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심지어 지금껏 내게 무척이나 불만이 많아보였던 이광조차도 예사롭지 않은 표정으로 나를 보더니 말했다.
“스승님. 도량이 대단하시오.”
“하하. 이광 너는 요즘 특히 체력소모가 많았기에 이번 흑백련 섭취로 크게 보양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흐흐흐흐….”
나는 음충맞은 미소를 지었다.
‘너무 좋아하지 말라고… 이광….’
십만 번을 달성할 수 있게 차분하게 기초체력과 기력을 늘려주는 것 뿐이니까 말이다…!!
다같이 축제분위기로 떠들썩할 때 망량이 내게 다가와선 말했다.
“정말로 이만한 영약소모를 재충전할 방법이 있소? 영약은 괜히 영약이 아니오. 흑백련 정도면 강호인들이 수백 명이나 피를 흘릴 정도로 귀한 영약이 틀림없소. 그런데 단숨에 다 먹어버리다니…. 천하의 백련교가 아닌 이상에야 감내하기 힘든 소모요.”
나는 망량의 말에 득의양양해서 대답했다.
“후후. 혹시 식토(息土)라는 걸 들어 보았소?”
“……? 설마 우와 곤이 치수를 행했을 때 식양으로 뭍을 만들어 홍수로 물난리가 난 지역을 메웠던 고사(古事)를 말하는 것이오?”
역시 박식한 망량답게 단숨에 내가 말하는 걸 이해한 듯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소. 그 신화시대의 식토는 실존하오. 바로 황산(黃山)에 말이오.”
“……!!”
“내가 천년설삼과 흑백련을 가져왔던 바로 그 분지. 거기의 흙에 가장 농도가 진한 식토가 있을 테니 그걸 퍼 와서 이 소을촌에서 영약을 재배하면….”
전생하면서 알아냈던 지식을 설파하자 망량이 크게 감탄했다.
“호오…. 그게 정녕 사실이라면 당장 그 흙을 퍼와야 하오! 신녀문에서 전서구가 오면 내가 보관하고 있을 테니 당장 움직여 주시오.”
“알았소.”
“지금 마을을 개축하고 있는 일꾼들 중에서 힘 좀 쓰는 이들을 데려가시오.”
나는 같이 흙을 펄 사람들을 목갑에 넣어서 천년설삼과 흑백련이 있던 분지로 향해서 흙을 펐다. 특히 흑백련이 자라던 연못은 물을 모조리 퍼내고 연못 아래의 진흙까지 모조리 포대에 담았다. 그리고 다시 되돌아와서는 마을에 흙자루를 잔뜩 쌓았는데 무려 오십여 포대나 되었다.
망량은 그 포대들 하나하나를 자세히 살피다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흠…. 이 모든 포대가 영기(靈氣)가 강하지는 않구려? 아무래도 흙마다 지니고 있는 힘이 차이가 있소.”
망량이 그 동안 삼황내문을 이용해서 술법을 수련했기 때문인지 영기를 구분하는 안목이 생긴 모양이었다.
“그런가….”
“영기의 질에 따라 등급을 구분해서 따로 영약을 재배할 비밀장소를 마련해야겠군. 그 장소는 당신이 정하시오.”
“내가 정하라니?”
그러자 망량이 내게 다가오더니 속삭였다.
‘흑백련 맛을 본 사람들이 영약재배장소를 알면 몰래 훔쳐먹을 게 뻔하잖소. 당신만 아는 장소에서 몰래 키워야 하오.’
아하….
나는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이라 망량의 말에 납득했다. 나는 어디서 키우면 좋을지 생각을 해 보았는데 아무래도 이 근처는 계속해서 마을을 확장시킬 예정이니 사람들이 몰려들 것이고 이목이 많으므로 영약을 키우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원래 장소인 천년설삼의 비동 또한 소을촌 사람들에게 알려져 버렸으므로 비밀유지가 되는 장소가 아니다.
‘그렇다고 너무 멀면 관리하기가 힘드니…. 이를 어쩐다.’
결국 내가 장소를 정할 수 없어서 망량에게 조언을 구하자, 망량이 대뜸 말했다.
“스승님께 허락받고 스승님의 마을에 키우시오. 그것보다 좋은 방법은 없을 것 같소.”
“헉! 그래도 되오?”
“정 안되면 내가 같이 가 주지.”
“고, 고맙소.”
나는 망량과 함께 망량선사의 마을으로 갔다. 그리고 나와 동행한 망량을 보자 천우진이 깜짝 놀랐다.
“사형! 그 자와 함께 행동한단 말이오?”
“그렇게 되었다. 소을촌의 촌장을 앞으로 도울 생각이다.”
“…….”
“스승님! 백웅을 도와 이 마을에 식토를 뿌려 그 위에 영약을 재배하려 하는데 허락해 주십시오.”
망량이 외치자 이윽고 망량선사의 목소리가 되돌아왔다.
[그렇게 하거라.]그러자 천우진이 전에 없이 당황해했다.
“지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요?”
“사제. 사제도 소을촌에 오지 않겠나? 농사짓고 살기에는 딱일 걸세.”
“제길…. 일 없소!! 사형, 그 자는 사기꾼같은 놈이니 조심해야 하오.”
“하하. 천하를 속이는 사기꾼과 함께 하는 것도 좋겠지.”
“…….”
이윽고 나는 망량과 함께 마을 벽지에 있는 곳에 큰 밭을 만들어서 식토를 뿌리고는 그 위에 연못을 만든 후 흑백련이 양생할 수 있게끔 했다. 그리고 내가 천년설삼을 꺼내자 망량이 가장 영기가 강해보이는 장소에 천년설삼을 묻은 후 말했다.
“백웅. 영물들은 서로 모여 있으면 서로 기운을 보강해주는 성질이 있다 하오. 그러므로 앞으로도 영물이나 영약을 얻게 되면 모두 이곳에 몰아넣는 게 좋을 것이오.”
“알겠소.”
나는 망량과 함께 되돌아왔다. 그리고 며칠 후, 신녀문에서 전서구가 날아왔고 그 전서구에는 마도팔문의 위치와 그 문주들이 현재 기거한 곳의 내부구조가 그려진 약도가 그려져 있었다.
나는 꾹하고 종이를 잡고는 말했다.
“그럼 마도팔문을 어디 때려잡아볼까!”
사실 이 중에서 무영문의 검마는 내 편이니 공격할 대상이 아니며 신녀문의 문주인 음마(陰魔)도 정보를 제공한 당사자이니 쳐서는 안 된다. 그렇게 치면 마도팔마가 아닌 마도육마(魔道六魔) 여섯 명을 쳐서 굴복시키는 셈이 되리라.
‘어디보자. 누구누구 있지.’
수라문(修羅門)의 투마(鬪魔).
혈마중(血魔衆)의 혈마(血魔).
천지문(天地門)의 지마(地魔).
광마련(狂魔聯)의 광마(狂魔).
흑야문(黑夜門)의 흑마(黑魔).
만독문(萬毒門)의 독마(毒魔).
모두가 흑도를 대표하는 초절정고수이며 마도팔문의 문주였다. 나는 전생경험으로 이들 중에서 특기할만한 게 딱 2명, 투마와 흑마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투마는 풍신류의 부하다. 그리고 이미 용인(龍人)으로 변신하는 개조수술을 받았지. 신체능력이 급격히 높아지기 때문에 보통 초절정고수보다 훨씬 강하다. 그리고 흑마놈은 무척 신중하고 도망을 잘 치기 때문에 자칫했다가는 놓칠 수도 있다….’
투마는 용인변신 때문에 저 육마 중에서 가장 강하다고 볼 수 있으므로 신경써야 하고, 흑마는 워낙 잘 튀는 놈이라서 주의해야했다.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렸다.
“좋아. 흑야문의 흑마부터 잡자.”
용인변신 투마가 강하다고 한들 지금의 나라면 충분히 베어죽일 수 있다. 하지만 다른 팔마를 때려잡는 사이에 흑마가 불안함을 느끼고 도주한다면 정말 귀찮아진다. 지금 내 입장에서는 적이 강하다고 해도 송사리에 불과했기에 도주를 막는 게 더욱 중요했다.
‘도움을 받아야겠군.’
나는 흑마를 잡을 때 나 혼자 가면 자칫했다가는 교묘한 탈주실력에 속아서 놓칠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우선은 당장 전력이 될 수 있는 연종휘와 진소청을 대동한 후 무영문에 가서 검마에게 날 도와줄 것을 요청했다.
검마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흑마는 원래부터 싫어하던 놈. 잡는다면 두말할 것 없이 도와주겠소.”
“감사하오.”
나는 넷이서 흑마의 은거지로 향했다. 역시나 그 장소는 예전에 가 보았던 안휘성의 성내였으며, 안휘성의 깊은 내실로 들어가자 흑마의 은신처가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예전에 여기 와 보았던 기억이 났으므로 기(氣)에 반응하는 비밀통로에 내력을 불어넣었다.
쿠르릉
“아니! 어떻게 거기에 비밀통로가 있다는 걸 알았소?”
“그냥 감이오….”
전에도 한 번 와봤다는 걸 굳이 말할 이유는 없으리라. 그리고 넷이서 비밀공간에 들어가자 흑마가 은신해 있다가 도주하려 했다.
“거기냐!!”
파밧
진소청이 호령을 내지르며 흑마에게 달려들었다. 흑마는 자신의 소검을 휘둘러서 진소청을 떨쳐내려 했으나 진소청은 찰의 수법으로 빠르게 그의 심장을 찔렀고, 흑마는 기겁하며 데구르르 굴렀다.
퓨웅!
“허억.”
이어서 연종휘가 엄청나게 빠른 화살로 흑마의 퇴로를 막듯 견제시를 날리자 흑마는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고 말았다. 게다가 검마가 앞으로 나서면서 기세로 흑마를 견제하자 그는 이마에 땀을 송골송골 흘렸다. 죽었다 깨어나도 이 포위를 뚫지 못하는 걸 깨달은 것이다.
이도 저도 못하고 있는 흑마는 크게 당황한 듯 말했다.
“너, 너희는 대체 누구냐? 대체 누구길래 나를 공격하는가?”
나는 앞으로 나서서 말했다.
“흑마. 너 태산노옹과 연락하냐?”
“…….”
흑마가 긴장해서 입을 꾹 다물었다. 나는 흑마를 게슴츠레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뭐 연락하든 안 하든 상관없다. 나는 이제부터 마도팔문을 모두 내 수하에 둘 것이고 넌 이제부터 날 위해서 정보를 가져다줘야 할 것이다.”
“넌 누구냐?”
“알 필요 있을까? 사람을 청부살인하는 너같은 쓰레기한테는 그 누구도 이름을 알려주지 않겠지.”
“크윽. 후회할 것이다.”
“흥.”
나는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까닥였고, 그 신호에 맞춰서 장내의 초절정고수들이 다같이 흑마의 퇴로를 막고 협공했다. 흑마는 개 중 연종휘 하나도 뚫을 실력이 되지 못했으므로 나까지 합공하자 고작해야 삼 초도 버티지 못하고 혈도를 모두 제압당해서 무릎 꿇려졌다.
나는 무릎 꿇려진 흑마의 머리 위에 손을 대었다.
이혼대법(移魂大法)
탈백(奪魄)
우웅
이혼대법을 쓰자 흑마의 백이 내게로 빨려들어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것으로 앞으로 나는 흑마의 생사를 조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본래 악독한 수법이라서 인간에겐 쓰지 않으려 했지만, 이 놈은 수십 년이나 살인으로 밥벌어먹은 청부살인업자. 천하의 쓰레기이니 이 놈을 포함한 마도팔마에겐 써도 상관없을 것 같군.’
다른 마도팔마도 어쨌든 마도에 몸을 담은 놈들이니 악독한 놈들이다. 광마나 혈마는 도리어 흑마가 귀여울 수준으로 학살을 하기도 했으므로 그놈들은 더 봐주지 않을 것이다.
“자, 봐라.”
휘익
나는 위협하기 위해 이혼대법을 써서 내 팔을 옆으로 들어올렸다. 그러자 내 팔의 동작과 똑같이 흑마의 팔이 들어올려졌다. 흑마가 깜짝 놀라자 나는 내 팔다리를 이리저리 움직였고 그 때마다 흑마는 자기 몸을 통제하지 못하고 멋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흑마가 뭔가를 눈치챈 듯 경악했다.
“이건 서, 설마 이, 이혼대법…!! 서, 설마 배교?!”
“응? 이혼대법을 아나?”
흑마는 이윽고 눈물을 흘리며 덜덜 떨었다.
“소, 소문으로 들었지만 사실일 리가 없다 생각했건만… 다, 당신이 설마… 그 악랄하기 그지없다는… 장령곡주 제갈사란 말이오?!”
“…….”
“제발 죽여주시오…. 제갈사에게 걸리면 차라리 죽는 게 낫다 들었소….”
“…….”
아니 제갈사… 어둠의 세계에서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닌 거야.
흑마가 제갈사 이름만으로도 벌벌 떨다니….
‘제갈사. 이왕 이렇게 된 거 이름 좀 빌릴게.’
예상치 못한 사태에 나는 당황했지만 이윽고 제갈사의 이름을 팔기로 마음먹었다.
“하하, 그래! 내가 바로 제갈사다. 넌 까불면 이혼대법으로 죽는다! 앞으로 내게 충성을 맹세하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좋아. 그리고 살수조장을 소을촌으로 인질로 보내라. 알겠느냐?”
“네? …알겠습니다.”
이혼대법으로 탈백을 했으니 앞으로 흑마가 배신해도 조종해서 대가를 치르게 할 수 있으리라.
나는 흑마제압을 완료한 후 이어서 다른 마도팔마도 제압하러 움직이기 시작했다.
“크아아악.”
쿠웅
“어어억.”
쿠웅
광마와 혈마 등 마도팔마들은 우리 넷이 한꺼번에 본거지로 쳐들어가자 별로 반항도 하지 못하고 제압당했다. 그저 중원 곳곳을 돌아다니는 게 귀찮을 뿐 그리 어려움 없이 하나하나에게 이혼대법을 시전해서 위협하고 무릎 꿇릴 수가 있었다.
그렇게 가볍게 다섯 놈을 제압했으나 나는 투마제압에 있어서는 조금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내가 낙양 외곽에서 고민하고 있자 검마가 말했다.
“소을촌장. 왜 그러시오?”
“음…. 수라문의 투마는 폐궁인 용운궁(龍雲宮)을 거점으로 삼고 있소. 외곽이긴 하지만 낙양 근처인데, 낙양에서는 지금 심상찮은 일이 벌어지는 중이오. 자칫했다가는 휘말려버릴까봐 걱정이오.”
“그건 사소한 걱정같군. 진짜 걱정은 무엇이오?”
나는 검마가 귀신처럼 내 속내를 읽어내자 멋쩍게 말했다.
“투마놈은 백련교 사대무류인 풍신류의 부하요. 투마를 건드렸다가 풍신류, 나아가서는 백련교주가 우리 행사에 관심을 가질까봐 염려하는 것이오.”
“흠…. 그건 확실히 걱정할만한 일이구려.”
“검마. 뭔가 후환을 줄일 방법은 없겠소?”
“좀 더 상황을 알고 싶구려. 내게 당신이 여태 백련교에 관해서 겪었던 일을 좀 더 이야기해줄 수 있겠소?”
“음…. 그러니까 용중일을 최근에 제압했긴 했는데….”
내가 용중일을 제압한 일을 이야기해주자 검마가 금방 알아들었다는 듯 입을 열었다.
“아주 간단한 계책이 있겠군.”
이윽고 나는 검마의 계책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다같이 용운궁으로 쳐들어가서 빠르게 투마를 포위했고, 수하들이 하나둘씩 쓰러지며 퇴로가 막힌 투마는 성난 목소리로 내게 외쳤다.
“네놈은 누구냐! 누구인데 우릴 공격하느냐?”
“투마. 너는 근래 용중일을 쓰러뜨린 자가 누군지 듣지 못했느냐?”
내가 반문하자 투마가 깜짝 놀라며 외쳤다.
“헉! 서… 설마 네가 그….”
투마는 내가 변태술을 써서 변용한 늙은 도인의 모습을 보며 경악했다.
“무당제일검(武當第一劍) 현천도인(玄天道人)이란 말이냐!”
“…….”
무당제일검이라니 용중일 하나 쓰러뜨렸다고 이름값이 엄청 올라갔구만!
그만큼 용중일이 고평가되고 있었던 건가?
나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네가 마도팔마로서 천하에 해악을 끼치고 있으며 수라문이 암경무투회의 배후에서 악랄한 투기장을 운용한다는 걸 알아냈노라. 너를 제압해서 두 번 다시 악한 짓을 하지 못하게 해주지.”
“웃기지 마라!! 무당파 따위가 감히 내 뒤에 누가 있는지 알기나 하고 떠드느냐!”
나는 짜증이 나서 버럭 외쳤다.
“흥. 있어봐야 풍신류밖에 더 되겠나? 용비천 발가락 빠는 게 자랑이냐?”
“…….”
투마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더 당황해서 외쳤다.
“내, 내 뒤에 풍신류가 있다는 걸 알고도 덤빈다고? 무당파가 설마 백련교에 맞서려는 것이냐?”
“무당파는 상관없다. 이건 내 개인적인 정의실현이니라!”
“광오한 놈. 내 진짜 힘을 보여주마…!!”
고고고고
[크아아아!!]투마가 용인으로 변신해서 굉음을 내질렀다. 나는 놈의 변신모습과 그 위력을 보면서 내심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엔 그렇게 강해보였는데 별로군…. 아니 정말 별로는 아니지만…. 그 동안 천외천의 괴물들을 너무 많이 봐서 눈이 높아진 건가.’
천계의 탑에서 봤던 거대괴물들이나 팔부신중 마왕들이나 악신들에 비하면 저 용인은 귀여운 수준이다. 나는 그 위화감 때문에 잠시 멍하니 있다가 진소청과 연종휘에게 말했다.
“너희는 검마를 도와서 셋이서 저 괴물을 쓰러뜨려봐라.”
“직접 나서지 않으십니까?”
“이런 실전경험을 쌓기도 쉽지 않지. 저 놈 정도면 좋은 수련상대일 것 같다. 위험하다 싶으면 내가 나서겠다.”
“알겠습니다.”
다음 순간 엄청난 속도로 날듯이 공격해오는 투마의 공격에 제일 먼저 검마가 앞서서 무영검강으로 검막을 만들며 막았다. 하지만 검마는 그 공격의 육중함에 예전처럼 쉽게 떨쳐내지 못하고 뒤로 크게 밀렸고, 그런 검마를 돕기 위해 옆에서 진소청이 합공을 개시했다. 그리고 약간 거리를 둔 곳에서 연종휘가 기를 담은 화살을 날리며 견제를 했다.
쿠콰쾅! 콰쾅!!
[끄아아악! 까악!]“으음!”
삼대일로 싸우자 제법 팽팽한 전황이 지속되는 게 눈에 보였다. 용인투마의 순수한 공방력이 너무 높아서 검마를 비롯한 이쪽의 고수들이 놈에게 치명상을 먹이기가 힘들었고 투마 또한 셋이 합을 잘 맞춰서 방어와 회피를 잘 해내니 딱히 압도를 하지 못했다.
나는 옆에서 관전하면서 생각했다.
‘역시 인간의 순수한 무공실력으론 인간을 뛰어넘은 이족의 육체에 대항하기 힘들어. 초절정에서도 한꺼풀 뛰어넘은 극강의 의념절기를 갖추어야 상급 이족들에 맞설 수 있겠군….’
이 정도면 실전경험은 충분히 준 것 같다. 나는 슬슬 투마를 마무리 하려고 움직이려 했는데 그 순간 뜻밖의 상황이 벌어졌다.
“하아아아아.”
진소청의 입에서 강렬한 기합성이 내질러졌다. 그와 동시에 그의 창이 수많은 변화를 멈추고 단 하나의 단순한 흐름에 따라 움직였고, 그 흐름은 영활하게 투마의 빈틈을 파고들어서 단숨에 꽂혔다.
퍼벅 하는 소리와 함께 찰(扎)의 찌르기가 용인의 비늘에 꽂혔지만 막상 깊게 꽂히진 않은 듯 했다. 곧이어 분노한 투마가 손톱을 휘둘러 진소청을 찢어발기려는 순간 진소청의 신형이 환영을 남긴 채 그대로 사라졌다. 나는 그걸 옆에서 보며 눈을 부릅떴다.
‘완벽하게 투마의 속도를 읽고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이형환위(移形換位)를?!’
이형환위를 진소청의 현재 무공수위에서 시전하는 건 이상할 게 없지만 투마의 현재 속도는 인간고수들을 훨씬 뛰어넘는다. 그걸 완벽하게 인식하고 흐름에 맞춰서 시전했다는 건 결국 상대의 속도를 완전히 읽었으며 다음 수까지 읽어내는데 성공했다는 뜻이다.
내가 놀란 걸 멈출 틈도 없이 진소청은 어느 새 투마의 뒤통수 쪽으로 나타나서는 창날을 회전시키며 무심지경(無心之境)의 일격을 날렸다.
무심(無心) 란(欄)
그 회전은 여태껏 진소청의 역량을 훨씬 벗어나는 광대한 파괴력을 담고 있었다. 진소청의 창술이 여태 지니고 있던 단점 중 하나인 깔끔하지 못한 동선의 낭비가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쿠콰콰쾅
후두둑….
파열음이 튀었다. 그대로 용인투마는 대가리가 날아가며 절명해 버리고 말았으며 전투가 끝났다. 완벽한 흐름을 탄 깨달음의 일격을 맞았으니 아무리 강화된 용인이라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
“허억, 허억….”
내가 멍하니 있자 진소청이 턱에 맺힌 땀을 닦으며 밝게 웃었다.
“태사부님!! 방금 뭔가를 깨달은 것 같습니다.”
“…….”
“소중한 실전경험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한참 후에야 정신을 차리고는 급히 말했다.
“…그, 그래!! 잘했다 진소청! 근데 전에 말했던 대로 수련은 금지한다, 알겠느냐!”
“네!! 명상만 하겠습니다.”
나는 당황해서 소리를 빽 질렀다.
“아니 명상도 하지 말라고!!”
“네?”
“…….”
내가 실수했다.
한 번쯤 실전경험을 겪게 해주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했지만 그건 범재나 수재, 아니 평범한 천재에게나 통용되는 상식. 진소청은 조금만 목숨을 건 싸움이 되어버린다면 뭔가를 얻어내버리고 마는 것이다.
설마 실전경험 한 번 얻었다고 창술의 깨달음을 한꺼풀 벗어버리는 괴물이 있다고 누가 상상이나 했으랴.
‘씁…. 하지만 진소청을 추방하거나 죽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치사하게 진소청을 아예 내쳐버리거나 봉인할 순 없다. 성장한 진소청이 이광 괴롭히기에 방해된다고는 해도 어쨌든 진소청은 내 전생동료다. 28번째 삶에서는 엄청난 도움을 주기까지 했으므로, 그런 치사한 짓을 동료에게 할 순 없는 것이다.
‘젠장….’
나는 또 다른 과제가 이번 생에 생겨났다는 걸 깨달았다.
치사하지 않게 정당한 방법으로 진소청의 성장속도를 내 입맛에 맞게 조절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