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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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향(暗天鄕)
나는 검마의 인도대로 무영문의 의약전으로 향했다. 무영문이 사파제일문이기 때문인지 의약전을 따로 둘 정도로 번창해 있고, 의약전을 담당하는 의약전주는 꼬장꼬장해보이는 초로의 노인이었다. 그는 힐끔 내 상태를 보더니 말했다.
“앉아!”
옆에 있는 검마도 아랑곳하지 않는 태도라서, 나는 말없이 그의 앞에 앉았다. 의약전주는 무영문에서도 상당히 귀하신 몸인 듯 했다. 그는 천천히 내 몸을 만지작거리다가 경혈을 세 군데 눌렀다.
“아프냐?”
“아픕니다.”
“신경이 아직 붙어있군. 잘 잘라서 그렇나.”
팔 잘린 사람 입장에서 듣기에는 험악한 소리를 하던 그 의약전주는 이윽고 빠른 속도로 침술을 시전했다. 그러자 신체의 경맥이 빠르게 활성화되더니, 대충 붙어있던 팔이 더욱 빠르게 아무는 게 느껴졌다. 인체의 생명력과 살점의 흡착력을 높이는 비전침술을 시전한 듯 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붕대를 감아주고는 내 어깨를 치며 말했다.
“다 됐다! 하루만 푹 자면 다 붙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그리고는 의약전주가 곱지못한 눈으로 검마를 바라보았다.
“문주. 이 어린 놈에게 뭔 억하심정이 있어서 팔씩이나 베었나?”
“강(姜) 의원, 미안하오. 내 실수였소.”
“음… 내가 탓할 처지가 아니니 뭐.”
의약전주가 어물쩡 넘어갈 때였다. 나는 혹시나 해서 질문했다.
“혹시 강전길(姜田吉) 의원이십니까?”
휙, 하고 동시에 두 사람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검마는 진심으로 놀랍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고 의약전주는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의약전주가 더듬거리며 물었다.
“너, 왜 그, 렇게 생각하느냐?”
“천하에 오대의원이 있는데 무영문의 의약전주로 있을만한 강씨 의원이라고 하면 하남제일의(河南第一醫) 강전길 의원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내 대답에 침묵이 흘렀다. 의약전주가 검마의 눈치를 보는 듯 하자 검마가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의약전주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렇다. 내가 강전길이다.”
하남제일의 강전길!
그는 광명신의 화서명과 마찬가지로 천하 오대의원으로써 천하에서 가장 의술이 뛰어난 다섯 사람 중의 한 명이었다. 하남에서 가장 뛰어난 의술을 지니고 있으며 소림사의 고승마저 살려냈다는 솜씨를 지닌 신의가 어째서 사파제일문에 의탁하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나는 이내 마음속으로 그 해답을 알아냈다.
‘ 백련교 소교주의 일 때문이겠지.’
천하 오대의원은 백련교 소교주의 치유를 위해 백련교에 반강제로 납치되어서 불려간 적이 있었다. 그들은 약 일 년간 힘썼지만 결국 소교주의 병을 고치지 못했고, 무사히 중원으로 돌아온 대신에 백련교와 결탁한 첩자 혐의를 받게 되었다. 그래서 광명신의 화서명은 견디다 못해서 자신의 의가를 고려로 옮기기로 한 것이다.
의약전주 강전길이 말했다.
“문주. 이 아이는 대체 뭐요? 이 엄청난 내공에 담대함과 침착함… 도대체 뭘 하는 아이인지 모르겠군.”
“보다시피 천하에 둘도 없는 기재요. 그래서 내 마음의 빚이 더욱 크게 느껴지는군.”
“흐음.”
강전길이 침음성을 흘릴 때, 나는 그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저는 화씨 일문의 방계로써 의술을 전수받았습니다. 그리고 화씨세가의 가주께 백련교 사건의 진실을 전해 들었습니다.”
“……!!”
너무 직설적으로 꽂았나 싶었지만 그 순간 강전길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리고 옆에서 지켜보던 검마도 더욱 놀란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그들은 비밀을 공유하는 사이인 듯 했고, 또다시 비밀을 알고 있는 내가 나타나자 경악한 것이리라.
강전길이 시치미를 뗐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자네가 의술을 전수받았다는 증거는 있나?”
나는 말 없이 멀쩡한 오른쪽 팔을 들어서 침을 들었다. 그리고는 내공을 실어서 빠르게 화씨백팔침을 시전했고, 도중에 각 경맥과 혈도의 위치를 나직이 외웠다. 화씨백팔침의 기본 시연을 보고 있던 강전길은 입을 쩍하니 벌렸다. 내 의술 실력이 일류의 경지라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아시다시피 화씨백팔침입니다.”
“허… 허허… 설마 자네는 광명신의 화서명의 제자인가?”
“그렇습니다. 방계이지만 잠시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강전길이 침음성을 내었다.
“천재로고… 그 나이에 무공과 의술을 그 정도 경지까지 익힌다는 게 가능하다는 건가…!!”
잠시 후 강전길이 말했다.
“그래. 그래서 어쩌라는 거지? 왜 굳이 그 사실을 밝힌 건가?”
“저는 그 당시에 있었던 일의 실체를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어째서 소교주가 치유되지 않았는지, 백련교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인지…”
“……”
“무례했다면 죄송합니다.”
강전길이 또다시 힐끔 검마를 바라보았다.
검마가 말했다.
“나도 알고 싶소.”
“이 아이는 문주 당신과 어떤 관계요?”
“보다시피 내 실수로 씻을 수 없는 빚을 졌소. 그가 알고싶어하는 걸 알려주고 싶군.”
무영문주 검마는 이걸로라도 내게 마음의 빚을 갚으려는 듯 싶었다.
“덤으로 당신도 비밀을 공유하고 말이지.”
“부정하지 않겠소.”
“……”
강전길은 크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말했다.
“우선 네가 화서명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말해 보아라.”
내가 간략하게 소교주의 치료 및 오대의원의 첩자누명에 대해서 설명하자 그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는 말했다.
“그렇군. 화씨 노인네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 말이지. 고려로 가 버렸다니.”
화서명은 의가를 고려로 옮겨버리는 이민행을 택했지만, 혼자서 살아가는 강전길은 그냥 사파제일문인 마도팔문 무영문에 몸을 의탁해버린 모양이었다. 확실히 무영문의 의약전주로 있는다면 강호무림의 그 누구도 시비를 걸 수 없으리라.
“어떻습니까?”
“어떻고 뭐고, 내가 겪은 것도 똑같다. 오대신의가 힘을 합쳐서 일년간 노력했지만 어쩔수 없긴 했지.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내게는 흑호(黑虎) 가면의 호법사자가 찾아왔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풍신류의 호법사자다. 나는 반문했다.
“은색 여우가면이 아니라요?”
“그래.”
강전길이 말을 이었다.
“헌데 나는 좀 다르게 생각한다. 화씨 노인네는 그저 소교주의 병을 우리 손이 닿지 않는 불치병으로 생각한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게 애초에 병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
“병이 아니라고요?”
“그렇다.”
강전길은 침중하게 말했다.
“천외제일세력인 백련교의 전폭적인 협조가 있었고, 천하오대의원이 모였다. 솔직히 말해서 죽은 사람이라도 한 식경 이내라면 되살릴 자신이 있었어. 그러나 우리는 소교주를 치료하기는 커녕 그가 앓고 있는 증세가 무엇인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그건 단언컨대 질병같은 게 아니야.”
“질병이 아니라면…”
“저주(詛呪)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저주!
그것은 술법 중에서도 가장 악독하고 잔인한 위력을 가진 위험한 술법이었다. 강력한 원한을 매개로 해서 상대방에게 해악을 꽂아넣는 공격법으로써, 오로지 적의 파멸만을 위해서 생겨난 술법이기도 했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러면 의원을 부를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저주는 술법사가 치료해야 하거늘.”
“… 모르지. 하지만 뼛속까지 의원이었던 화씨 노인네와는 달리 나는 술법저주일 가능성도 염두에 두었다. 그건 동방무결도 마찬가지였어. 동방노인네의 실력은 우리보다 살짝 위였는데 그조차도 손을 써보지 못했거든.”
“으음.”
“내가 아는 건 여기까지다.”
그가 쓴웃음을 지으며 뒷말을 남겼다.
“동방노인네는 좀 더 알고있을지도 모르지. 마지막 날에 돌아가기 전에 백련교주와 일대일로 뭔가 이야기를 했거든.”
“그들이 성련을 이용해서 소교주를 치유할 수는 없었을까요?”
“그건…”
머뭇거리던 강전길이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아, 맞아. 그게 이상하긴 했다. 놈들은 성련 이야기가 나오면 긴장하고 전전긍긍하는 모습이었다. 그게 뭣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성련에는 비밀이 숨겨져 있는 듯 했어.”
“흐음.”
나는 팔이 잘린 덕에 강전길을 만나서 의외의 수확을 얻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머릿속에 한 가지 가정이 떠올랐다.
‘ 그렇다면 흑백련에는 저주를 치유하는 능력이 있다는 게 아닌가?’
예전 10번째 삶에서 백련교 소교주는 흑백련에 의해 구원받았었다. 그렇다면 성련과 흑백련의 차이는 [저주치유능력]의 유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성련은 내공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키는 능력이 있지만 흑백련같은 능력이 없는 게 확실했다. 왠지 이 사실은 앞으로 요긴하게 쓰일 것 같았다.
나는 이야기가 끝나자 검마에게 말했다.
“죄송하지만 오래 머물 수가 없겠습니다.”
“왜인가?”
“급히 처리할 일이 있어서 지금 가 봐야 합니다.”
“으음.”
검마가 침음성을 흘렸다. 하긴 겨우 강전길에게 비밀을 토해내게 하는 정도로 내 팔을 자른 마음의 빚을 갚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하물며 딸을 해적에게서 구해준 빚도 갚지 못하지 않았는가.
고민하던 검마가 결심한 듯 말했다.
“다음에 꼭 다시 찾아오게. 내 하나의 선물을 준비해 놓겠네.”
“말씀 감사합니다.”
“약속일세. 꼭 찾아오게.”
“네. 안녕히 계십시오.”
나는 검마에게 인사를 하고는 무영문에서 나왔다.
‘ 검마에게 끝까지 빚을 받아낼 수도 있지만 지금은 아냐.’
현재 목갑에 해적포로들을 넣어둔 지 꽤 시간이 지났다. 그들을 한시바삐 고향으로 돌려보내 주는 게 중요했다. 나는 비등을 사용해서 산동성으로 이동했는데, 이제 막 새벽이 밝아오는 중이었다.
지끈
‘ 아프군…’
신경이 잘 붙었지만 아직도 간헐적인 고통이 느껴졌다. 이래서야 안정될 때까지 왼쪽 팔을 쓰는 건 불가능했다. 나는 최대한 전투를 자제하기로 마음먹으며 인적없는 곳에서 사람들을 목갑에서 꺼내었다.
우르르
무영문에 간 여인들을 제외한, 순수한 중원인 남성들이 차례대로 몰려나왔다. 나는 그들 중 부상자를 하나하나 살펴봤는데 다행히 크게 상처가 덧나지는 않았다. 다시 상처를 처치하며 물었다.
“배고프거나 용변이 마렵지는 않소?”
그러자 뜻밖의 대답이 들려 왔다.
“무슨 소리입니까? 들어갔다 나오니 야간이 되어 있는데.”
“……?”
“갑자기 시간이 뒤바뀐 느낌입니다.”
나는 그들의 대답에 깜짝 놀랐다.
‘ 설마 목갑 안에 들어가면 시간이 거의 흐르지 않는다는 말인가?’
해적포로들이 말하는 양을 보면 내가 목갑에 넣은지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눈깜짝할 사이에 나온 듯 했다. 그걸로 보아, 목갑 내부의 시간은 바깥보다 매우 천천히 흐르는 게 틀림없었다.
나는 우선 마음을 진정시키며 그들을 인솔해서 객잔으로 향했다.
“주인 나오시오.”
그리고 새벽에 잠에서 깬 객잔 주인에게 망량에게서 받았던 금괴를 환전한 거금을 내놓으며 말했다.
“오늘 이 객잔을 우리가 쓰려고 하오.”
“네이?! 농담이시죠?”
“이 돈이 농담처럼 보이면 별 수 없군.”
내가 슬며시 돈꾸러미를 가져가려고 하자 객잔 주인이 덥썩하고 붙잡았다. 내가 물끄러미 쳐다보자 객잔 주인이 헤헤 웃었다.
“그럴 리가요. 맘껏 쓰십시오.”
나는 그들에게 우선 밥을 먹이고 씻기고 한숨 푹 재웠다. 새벽인데도 객잔이 시끌벅적할 정도였다. 객잔주인은 물론 아내와 점소이까지 다 나와서 그들의 수발을 들었다. 나는 부상자를 재차 봐 주고는 해가 뜨기를 기다렸다.
해가 뜨고 중천이 되어서 사람들이 충분히 쉬자, 나는 그들을 모아서 말했다.
“이제 헤어질 시간이오. 여기 조금씩 여비를 나누어 줄 테니, 고향으로 돌아가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오.”
“아이고 나으리…”
“고맙습니다…”
내가 은자를 쥐어주며 하나하나 보내주자, 그들은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다. 자주 보는 광경이었지만 사람을 도우니 왠지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 그들에게는 충분한 은자를 주었기에 여비가 크게 모자랄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그 애꾸눈 노인 포로와 마주쳤다.
“은인이시여… 저는 너무 큰 은혜를 입었기에 보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 목숨을 걸고… 비장의 의뢰권을 드리고자 합니다… 누구든… 단 한 명… 죽이고픈 자가 있다면… 태산(泰山)의 칠살(七殺) 마을에 이 나무패를 갖고 와 주십시오… 단 한 명이라면… 그 누구라 할지라도…”
흑색 나무패를 받았다.
나는 끝까지 듣고 있다가 그에게 물었다. 저번에는 하도 허튼소리라고 생각해서 그냥 넘겼지만, 이번에는 허투루 넘기지 않을 셈이었다.
“당신은 무림인이 아닌 듯 한데, 이 나무패를 갖고 가면 칠살마을의 무림고수가 내 의뢰를 받아주는 것이오?”
그러자 애꾸눈 노인이 기쁨으로 몸을 떨었다. 그리고는 만면에 웃음을 띄며 말했다.
“관심이… 있으시군요…”
“뭐 없는 건 아니지.”
“아닙니다… 무공같은 게 아니라… 신(神)께서 소원을 들어주십니다.”
“신?”
나는 황당한 소리가 나오자 의아해졌다.
왜 신이 살인의뢰를 받아준다는 말인가?
노인이 콜록거리며 말했다.
“저도… 그 목패를 가지고 가면… 신께서 소원을 들어주신다는 것밖에 모릅니다… 그러나 그 소원은… 오로지 하나의 존재를 죽이는 것 뿐… 그것 뿐입니다…”
“으음…”
“언제든… 찾아오십시오… 저희 마을 사람들은… 칠살마을에 사는 대신… 평생 단 한 명의 은인에게… 그 목패를 드릴 수가 있으니까요…”
“알겠소.”
나는 더 알아낼 게 없는 것 같아서, 별 수 없이 애꾸눈 노인을 보내 주었다. 그리고 호기심에 검은색 목패를 내려다 보았다.
‘ 신에게 살인의뢰를 한다라?’
뭔가 재밌는 일이 일어날 것 같았다.
나는 포로까지 풀어주자 이제 할일을 얼추 다 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할 일이라고 해봐야 뇌신류를 반천맹과의 동맹에 끌어들이는 건데, 그건 망량 쪽에서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내가 억지로 청룡무관에 의심을 각오하고 입관하느니 황연 대장군을 충분히 회유한 후 대등한 자격으로 맞이하는 게 좋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즉, 지금은 한가하다.
그리고 딱히 청룡무관에 가고싶은 생각도 안 든다. 나는 무공수련에 있어서 현재 각성의 단계를 벗어나서 점수단계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단기간에 경지를 올리기보다 꾸준한 수련이 더욱 중요했다.
당장 검마에게 되돌아가서 ‘대가’를 받기도 별로 내키지 않는다. 팔을 잘린 원한이 있는 게 사실이었기에 당분간은 그 일을 잊을 겸 새로운 일을 바라보고 싶었다.
이렇게 남는 시간에 뭔가 다른 걸 해서 변화를 만들어보고 싶다. 새로운 정보가 생기면 돌아다닐만한 장소가 늘어난다. 비등을 쓰기에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 했기에, 나는 무엇을 해야할지 고민했다.
“음… 태산의 칠살마을에 가 볼까?”
나는 만 이틀동안 팔이 제대로 붙을 때까지 객잔에서 누워있다가 결론을 내렸다.
누구든지간에 한 명은 반드시 죽여준다는 칠살마을.
그 곳에 가서 [황제]를 죽여달라고 의뢰하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 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