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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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나는 뜻밖에 생겨난 선택의 상황에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본디 일직선으로 쭉 흘러가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헤르메스가 끼어들어서 또다른 선택지를 제시한 것이다. 문제는 그 선택지를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나일라토프라고 하는 조력자 또한 의심스럽다는 지금의 상황 그 자체였다.
“…제길… 믿을 놈이 아무도 없잖아.”
나는 외우주에서 돌아다니는 동안 내가 믿고 의지할만한 동료가 하나도 없다는 게 너무 뼈아프게 느껴졌다. 물론 달마의 우주에서도 그렇긴 했지만 적어도 달마나 신투지존은 공통의 목표를 위해 잠시 손을 잡을 수는 있는 인물들이었고, 나일라토프나 헤르메스는 둘 다 음흉하기 그지없는 사갈 같은 자들로 보였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제갈현에게 되돌아가자.’
나는 고민하던 중 일단은 제갈현을 찾아가보기로 했다. 애초에 나는 제갈현의 권유로 서문공백을 만나러 갔었다가 여러 가지 일에 휩쓸렸던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빠르게 일펜레드 부족의 주둔지로 향했고 거기서 치료받고 있는 제갈현을 바로 만날 수 있었다.
“왔소?”
나는 제갈현을 힐끔 바라보았다. 전신이 전기에 타서 연기가 흘러나올 정도의 부상이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건강해 보였다. 일펜레드의 의술이 인류보다 뛰어나다는 공공의 말은 헛소리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얘기할 게 있소.”
“그럴 것 같은 얼굴이군. 여기는 듣는 귀가 많으니 동북아해방군 주둔지로 갑시다.”
“좋소.”
나는 제갈현을 데리고 주둔지에 있는 그의 호텔숙소로 갔다. 그리고 커다란 호텔의 소파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는 제갈현에게 이야기를 할려다가 문득 멈칫했다.
‘음…. 메피스토를 지금 손목시계로 차고 있었군. 메피스토를 통해서 지금 내 상황은 나일라토프에게 모두 흘러들어가니 이야기로 상황을 전하면 헤르메스의 계획이 바로 들키겠지.’
목갑 내에서 있었던 상황은 헤르메스가 신의 힘으로 알아서 통제했겠지만 현실로 나왔다면 내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흑요석을 써서 기억을 전승하는 수밖에 없다. 다행히 얼마 전 의천검의 마력을 제물로 바쳤기에 내 마력은 상당히 소모되어 있는 상태였고, 이제 내게 남아있는 잔여마력을 좀 더 소모하면 흑요석을 써도 될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는 조심스레 제갈현에게 말했다.
“…내가 사대신기에게 마력을 쓰려 하는데 지금 뭘 하는 게 효율이 좋겠소?”
마력이 소모되고 나면 흑요석을 써서 제갈현에게 기억을 전달하려 한다는 행간을 굳이 설명하진 않았지만 제갈현은 두뇌가 뛰어났기에 바로 알아들은 듯 고개를 끄덕이곤 말했다.
“염신기 아그니에게 형산(衡山)에 있는 외계종족을 쓸어버려달라고 부탁하시오.”
“응? 그래도 되는 거요?”
“물론…. 당신이 없을 때 형산에 있는 놈들이 극악무도한 외계무리라는 걸 이미 조사해뒀소. 양심의 가책은 느낄 필요 없소.”
“그렇다면야.”
나는 사대신기 아그니에게 가서 내 잔여마력을 바치는 대신 형산에 있는 외계종족을 심판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아그니가 말했다.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네가 직접 나를 조작해서 놈들을 공격하는 인과(因果)가 필요하다.]“말을 어렵게 하는군. 가서 쏘기만 하면 되오?”
[그래.]파앗!
나는 단숨에 메피스토를 써서 형산 근처로 순간이동한 후 곧장 아그니를 소환했다. 아그니를 소환해서 총(銃)의 형태로 구현화시키는 순간 내 몸에 남아있던 잔여마력이 싸그리 긁혀나가는 게 느껴졌고, 나는 약간 움찔거리는 고통을 느끼면서도 아그니를 전방에 정조준했다.
타앙!!
쿠콰콰쾅
마치 원래 세계에서 노예시장을 쓸어버렸을 때처럼 아그니는 단숨에 형산에 있던 이름모를 외계종족을 싸그리 쓸어버렸다. 나는 일련의 작업을 마치고 원래 있던 곳으로 되돌아왔고 제갈현이 흡족하게 말했다.
“잘 했소. 이걸로 이제 과업을 달성했으니, 나일라토프는 당신에게 이환웅의 인과를 운운할 수 없을 것이오. 그에게 빚진 걸 하나라도 털어내는 게 낫소.”
“그렇군. 차후에 꼬투리 잡힐 일을 미리 처리하는 게 좋다는 말이구려.”
“그런 셈이지….”
제갈현이 눈치 챈 듯 시선을 주자, 나는 조심스레 흑요석에 기억을 불어넣어서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기억이 모두 전송되자, 제갈현은 잠시 눈을 부릅뜨는 듯 했다. 그리고는 조심스레 말했다.
“백웅. 목갑에 성좌의 가호가 부여되었다는 게 참 신기하구려. 같이 목갑 안에 들어가서 확인하는 게 필요할 듯 하오.”
나는 제갈현의 말에 숨겨진 은근한 눈치를 알아채고는 목갑을 내밀었다.
“갑시다.”
제갈현은 목갑 내부야말로 나일라토프의 이목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라는 걸 눈치 챈 것이다.
슈욱
나는 제갈현과 함께 목갑 내부로 들어갔다. 그리고 내부에 꽂혀있던 헤르메스의 지팡이에 손을 올렸다.
우웅하는 소리와 함께 헤르메스가 출현했고, 제갈현은 그가 나타나자마자 정중하게 인사했다.
“위대한 마법의 신 헤르메스여! 저는 대학원생 제갈현입니다.”
“지식을 탐미하려 수라도에 뛰어들어 축생의 취급을 버텨내는 근성있는 자로군. 찾아온 걸 환영한다.”
“몇 가지 질문드려도 괜찮겠습니까?”
그러자 헤르메스가 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럴 필요는 없을 텐데 굳이 책사 노릇을 하려 드는군. 어쩌면 그게 네 노림수인가?”
“…….”
“아무튼 좋다. 나도 저 놈 말고 얘기가 좀 통하는 자와 계획을 짜고 싶었으니.”
“감사합니다. 그럼 첫 번째 질문입니다만….”
제갈현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헤르메스 님의 목적부터 알려주십시오. 황제나 흉신처럼 승천(昇天)을 노리시는 겁니까?”
“단도직입적이군. 그 말에는 긍정하겠다.”
“역시 그렇군요.”
“전생자가 황제를 봉인할 정도로 전생을 진행했다면 내 어리석은 제자를 안 만날 수가 없었겠지. 그 놈이 대놓고 데미우르고스의 존재를 이야기했을 터이니 내 목적을 숨기진 않겠다.”
“…또 하나. 사실 저희는 귀하가 보여주신 소을촌의 존재가 마법인지 환영인지 확신할 근거가 없습니다. 좀 더 확실한 증거를 보여주신다면 귀하의 계획에 전적으로 협력하겠습니다.”
“핵심만 찌르는 놈이군. 마음에 들었다….”
기묘한 웃음을 흘리던 헤르메스가 갑자기 내 쪽을 쳐다보더니 손가락을 까닥였다.
“백웅. 이리 와봐라.”
나는 어리둥절해서 놈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고, 내가 수정구슬 바로 옆에 서자 헤르메스가 말했다.
“제갈현이 책략을 짜준다 해도 결국 결정권은 네게 있지. 내가 너를 소을촌으로 되돌려 보낼 수 있는 가장 큰 근거를 지금 네게 알려주마.”
“어떻게 알려준다는….”
“수정구슬 위에 손을 대 봐라.”
“…….”
“해를 끼치는 게 아니란 걸 내 이름을 걸고 맹세하지.”
나는 맹세가 나오자 경계하면서도 일단 지팡이의 수정구슬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손을 올리는 순간, 헤르메스가 주문을 외웠다.
“위대한 세피로트여… 클리포트와 감응하여 나 여기서 종말의 경계를 넘나드나니. 이는 외신(外神)께서 허락한 규약이며 인과(因果)의 구현이매, 뒤집힌 차륜(車輪)을 긍정하는 행위로다. 위대한 자들이여, 부디 이 인과를 받아주시옵소서.”
두쿵!
“……?!”
놈이 주문을 외우고 있는 동안 나는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리면서 일순간 보이지 않는 무형의 끈 같은 게 눈앞을 스쳐지나가는 걸 알아챘다. 너무 순식간이라서 그게 뭔지는 잘 알 수 없었지만 동시에 원(圓)이 머릿속에 떠올라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둥글다.
하지만 둥글게 보일 뿐 – 사실은 선(線)이다.
그러므로 불완전하다….
의미를 알 수 없는 개념이 머릿속에 나열되는 동안 헤르메스가 주문을 완결지었다.
“그리하여 나 헤르메스… 불멸의 뱀의 이름으로 염원하나니….”
츠츠츠츠
헤르메스가 쓰고 있던 나무가 새겨진 듯한 가면이 백색으로 휘발되듯 번쩍이며 빛나기 시작했다. 눈이 아릴 정도의 섬광을 뿜어내던 헤르메스의 가면이 서서히 그의 전신에 빛을 공급하듯 더 환하게 빛났다. 빛이 너무 강해져서 눈을 뜰 수조차 없게 되었을 때 짧은 완결어가 떠올랐다.
“닫힌 세계의 경계를 이어주소서!”
파아아앗!!
“……!!”
나는 정신을 차렸을 때 내가 어딘가 무척 익숙한 장소에 서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고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면서 내게 외치는 걸 들을 수 있었다.
“초, 촌장님!!”
“백웅 촌장님이 돌아오셨다!”
“뭐? 정말이냐?”
“네, 사범님.”
“이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동시에 저만치 먼 곳에서 수련을 하고 있던 누군가가 빠르게 뛰쳐오는 걸 볼 수 있었다. 그는 노호성을 내지르며 나를 공격했다.
“사부, 벼르고 벼르던 이 한 수를 받아보시오!”
엉?! 넌 또 갑자기 왜 그러는 건데!
츠아아앗
엄청난 속도로 쇄도하는 창격(槍擊)이 내 미간을 꿰뚫을 듯 날아오는 게 느껴진다. 나는 절대지경의 감각으로 그 창격을 감지해서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삼보절기를 시전했고, 그의 손을 금나수법으로 잡아서 떨구려 했지만 그는 뛰어난 창술재간으로 내 반격에 도리어 금나수법으로 목덜미를 잡아채려 했다.
‘어? 어느 새 이 정도로 실력이….’
나도 쉽게 떨쳐낼 수 없어서 어느샌가 서로 멱살을 잡는 형태가 되고 말았다. 여기에서부터 서로 슬격이나 박치기나 권법을 써서 다시 거리를 벌리고 대무하는 게 일반적인 뇌신류끼리의 비무였다.
바로 그 순간 – 다시 공간이 뒤바뀌었다.
파앗!!
나는 어느 새 다시금 목갑의 내부공간에 와 있었다. 그리고 약간 숨을 크게 몰아쉬는 헤르메스의 목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
“하아, 하아… 역시 이 외신의 주문은 나로서도 지치는군.”
“…….”
헤르메스가 턱의 땀을 닦는 듯한 시늉을 하며 말했다.
“보았느냐? 고작해야 십여 초에 불과했으나 방금 너는 원래 세계의 소을촌에 간 것이다. 지금은 내가 힘이 없고 인과율이 부족해서 십여 초밖에 체류할 수 없으나, 세계수의 핵을 가져오면 그 시간을 크게 늘려서 완전히 [문]을 열어서 귀환할 수 있는 것이다.”
“…….”
“이제 나를 믿을 수 있겠지?”
헤르메스가 으스대는 듯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지만 사실 나는 그의 말이 전혀 귀에 들려오지 않았다. 헤르메스도 그제서야 뭔가 이상함을 눈치 챈 듯 했고 이윽고 눈을 크게 뜨는 것 같았다.
“뭐, 뭐지?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나?”
나는 누군가와 서로 멱살을 잡은 상태로 마주보고 있었다. 창을 한쪽 손에 짧게 거머쥔 채 방금 전까지 막 투닥거리던 상태로 멈춰있는 건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몹시 당황했는지 백색으로 가득 찬 목갑의 공간을 둘러보더니 말했다.
“사부. 여기는 또 어디요? 사술(邪術)을 쓴 것인가?”
중후한 중년의 목소리. 무척 익숙한 목소리.
제갈현은 옆에서 이 상황을 멍하니 지켜보다가 당황한 듯 말했다.
“저, 정말 백웅 당신은 무슨 일을 벌일지 알 수가 없구려. 기억으로는 봤지만 어째서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지.”
헤르메스와 제갈현이 경악하고 있었지만 사실 제일 경악한 것은 나였다.
나는 나도 모르게 맥이 풀려서 상대의 멱살을 천천히 놓으며 말했다.
“…되돌아가질 않네. 음….”
“사부. 나는 귀신 씨나락까먹는 사술을 무척 싫어하오. 농은 그만하고 나를 소을촌으로 되돌려 보내 주시오.”
그는 내가 멱살을 놓자 내 멱살에서 손을 풀며 투지가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방금 전 초수교환으로 깨달았소. 머지않아 나는 더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니, 지금은 좀 더 수련을 할 시간이 필요하오.”
“아, 아니 그게….”
“빨리. 당신의 동료들과 무슨 짓을 하고 다니든 내가 알 바 아니오. 그러고 보니 여긴 동영이라는 곳이오?”
나는 멍하니 서 있다가 왠지 눈치가 보여서 쭈뼛거리며 말했다.
“…여기는… 동영이 아니라 다른 우주다, 이광.”
“…….”
뜬금없이 내게 덤볐다가 외우주로 오게 된 나의 이번 생 제자, 이광의 수염이 푸들거리며 떨리는 게 보였다. 그리고 힘이 풀리려던 멱살에 다시금 핏줄이 설 정도로 힘이 들어가며 압박이 느껴졌다.
내 멱살을 잡은 이광이 버럭 외쳤다.
“날 우습게 보는 거요? 함부로 놀리면 사부라 해도 쳐죽이겠소!!”
“…….”
나는 이광의 빡친 목소리를 들으면서 멱살을 잡혔지만 그저 실없는 웃음만 나왔다.
“흐흐, 흐흐흐흐흐….”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뜬금없이 외우주 여행에 이광이 참여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