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1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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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1000회차의 백웅?!
“아……!!”
나는 단숨에 전뇌자가 무엇을 말하는지를 알아챘다.
최초로 외우주로 나가던 그 때! 외신(外神) 주시자를 맞닥뜨렸을 때 주시자는 내 전생횟수를 자유자재로 조절하면서 내 모든 경험과 힘을 변화시켰다. 그 때 주시자가 했던 말이 정확히 기억났다.
[그럼 어림짐작으로 해 볼까. 한 1000번째 전생자로… 그 놈을 만나려 했던 거니까.]그리고 우주의 시간을 1만배 빠르게 하면서 갑자기 내가 상상치 못했던 괴물같은 모습으로 변화하려 했고, 나는 그 모습에 큰 거부감을 느끼며 그만하라고 했던 것이다. 다행히도 주시자는 내 요청을 받아들여 나를 원상복구시켜준 적 있었다.
나는 아까 이 괴물을 보았을 때 느꼈던 혐오의 감정이 무엇인지 알아챌 수 있었다.
‘자기혐오!!’
나와 같은 존재이지만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진화해버린 [무언가]를 볼 때 느끼게 되는 정체성의 불쾌감!
나는 단숨에 냉철하게 상황을 판단했지만 동시에 뭔가 모순점이 있다는 걸 깨닫고는 말했다.
“잠깐… 말이 안 돼!!”
“뭐가 말이 안되지?”
“분명 나는 주시자 때문에 저 괴물의 모습을 했던 적이 있어…. 하지만 그 때 주시자가 1000회차의 상태에서 나를 원상복구시키면서 그 기억을 전부 망각시켰어! 그래서 지금까지도 전혀 기억이 안 나고 있다가 지금에서야 알게 된 거라고.”
“…….”
“전뇌자, 나도 모르는 기억을 네가 어떻게 알고 구현화시킨단 말이냐!!”
내 외침은 당연했다.
언뜻 보고서 저 괴물의 모습이 [미래의 나]라는 걸 전혀 연상하지 못한 이유 – 그것은 주시자가 나를 원상복구시키며 경험과 기억도 망각시켰기 때문이다. 보고 나서야 뒤늦게 떠오르긴 했지만 당사자인 나조차도 알 수가 없는 모습! 그런 걸 전뇌자가 무슨 수로 구현할 수 있는가?
그러자 전뇌자가 대꾸했다.
“당신은 망각의 저주라고 생각했지만 그 때 주시자에게 당했던 건 기억의 봉인(封印)이었어. 그래서 가능한 거야.”
“봉인? 무슨 소리지?”
“진정한 망각이라면 기억의 내면에서 아예 소실되는 것. 하지만 주시자는 그냥 당신의 심층의식에 1000회차의 기억을 봉인해서 쑤셔 넣었을 뿐이야. 내가 한 일은 심연에 내던져진 블랙박스(blackbox)를 가져왔을 뿐.”
“…….”
나는 그 말을 멍하니 듣다가 뭔가를 알아채곤 말했다.
“그렇다면… 너는 지금 그 때 1000회차의 지식과 경험이 담겨있는 블랙박스를 해금(解禁)했다는 거냐?!”
주시자의 말대로라면 이야기가 그렇게 된다!
내가 추궁하자 전뇌자는 잔잔히 고개를 흔들었다.
“외신이 그렇게 만만한 존재일 리가 없잖아. 외신에 근접하는 힘을 가지지 않는 한 이런 건 아무리 나라도 해제할 수가 없어. 하지만 겉면의 데이터를 모아서 실제로는 어떤 강함을 가지고 있었는지 시뮬레이션(simulation)을 만들어보는 건 가능해.”
“시뮬레이션이라고?”
“그래, 시뮬레이션. 그저 당신의 기억에 남아있는 잔향과 봉인된 기억의 겉면을 해석해서 내 맘대로 만들어본 시뮬레이션 결과일 뿐이야. 하지만 내 연산량을 고려할때 실제와 무척 흡사하다는 건 자신있게 말할 수 있어.”
“…….”
점점 얘기가 어려워지는 것 같다. 나는 잘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머리를 벅벅 긁다가 말했다.
“…그래, 아무튼 1000회차의 ‘그걸’ 구현화했다 치자. 갑자기 이런 공간으로 나를 납치해서 저 괴물과 나를 싸우게 한 이유가 뭐야?”
“흠….”
“네 목적은 뭐냔말이다, 전뇌자.”
괴물의 정체같은 건 대충만 납득하면 족하다. 어차피 저 괴물은 지금 전뇌자의 수하나 다름없어서 지금은 나를 공격하러 달려들 생각도 없어보였다.
중요한 건 전뇌자다.
지금 이 공간은 가짜나 환술이 아닌 것 같고 눈 앞에 있는 것도 아마 진짜 전뇌자이리라.
그렇다면 전뇌자가 무슨 목적으로 내게 이런 짓을 하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내가 본질적인 질문을 하자 전뇌자는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백웅. 28번째 죽음을 기억해?”
두쿵
나는 그 질문에 잠시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그것은 약간은 고통어린 감회때문에 생겨나는 기억의 고동이었다. 나는 잠시 숨이 가빠지는 걸 느꼈고, 그것은 내 정신이 약간은 충격을 받아서 몸에 반영된 증거였다. 나는 잠시 후 이를 악물며 말했다.
“기억한다.”
“그렇구나. 사실 나는 당신의 최후를 직접 목격하지 못했어. 이유는 당신도 알 거야….”
“…….”
전뇌자가 직접 내 죽음을 못 봤던 이유. 그것은 전뇌자가 갑자기 나를 습격해서 심장을 칼날로 찌르고나서 뜬금없이 소멸했었기 때문이다. 내가 착잡한 표정을 짓자 전뇌자가 말했다.
“그 후에나 다시 한 번 볼 수 있었던 건, [여기]였어. 그 후 위험한 순간이 한 번 있었지만 어떻게든 넘길 수가 있었어. 운이 좋았어….”
“……?”
“백웅. 당신은 나를 다시 보니 화가 나? 죽이고 싶어?”
뜬금없는 얘기에 나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도 내가 어떤 마음으로 널 보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게 분노나 원망의 감정과는 거리가 멀다. 그것만은 확실했다.
전뇌자가 너구리인형의 머리에 자신의 코 아래를 묻으며 중얼거렸다.
“솔직하네.”
“너무 제멋대로라서 당황스러운 마음은 강하군.”
나는 쓴웃음을 짓다가 한결 냉정해져서 전뇌자에게 말했다.
“전뇌자. 그렇다는 말은 네가 정말로 [큰 굴레]를 넘어서 내 전생(轉生)을 따라왔다는 소리가 되는 거냐?”
내 질문에 전뇌자가 잠시 침묵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
나는 짐작하고 있었던 이야기지만 본인의 입으로 듣자 약간 충격을 받고 눈을 부릅떴다. 왜냐하면 전뇌자의 지금 말은 내 전생여정에 있어서 엄청난 의미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큰 굴레]를 넘어서 전생할 수 있는 건 전생자 뿐.그렇기에 나는 동료들을 아무리 육성시켜도 그 생의 죽음 이후에는 새롭게 육성해야만 했다.
그런데 만일에 [큰 굴레]를 넘어서 기억과 강함을 보존한 채 같이 여행할 수 있다면…!!
그래서인지 나는 약간 흥분하며 전뇌자에게 물었다.
“어, 어떻게 한 거냐? 전뇌자 너 말고 다른 동료들도 그 방법을 할 수 있는 거냐?”
“…….”
“제발 알려줘. 그렇게만 한다면…!! 삼황오제 뿐만 아니라 흉신도 어떻게든 해치울 수 있을 거야!”
빈말이 아니다. 동료들의 육성 성과를 가지고 수백, 수천년의 수련을 거치게 된다면 정말로 가능해질 일이다. 재능이 뛰어난 동료들이 모여있을 때 얼마나 큰 상승효과가 일어나는지는 대웅제국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고작 500년으로도 동료들은 천계를 상대할 정도로 강해졌는데 그 이상 연마하고 보물을 모아서 격을 높이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 아니리라!
그러자 전뇌자는 약간 냉막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알려주면…. 앞으로 당신은 더 맘대로 생을 내던질 수 있게 되겠지. 그리고 그 생이 내던져질때마다 그 생의 모든 존재들은 전생에 휘말려서 소멸되겠지. 그렇지 않아?”
나는 전뇌자의 말에 흠칫했다. 내가 잠시 말을 잇지 못하자 전뇌자가 말했다.
“내가 왜 28번째 생을 언급한 줄 알아? 그 생은 당신의 패배였기 때문이야.”
“…….”
“당신이 패배함에 따라 28번째 생의 모든 인류는 당연한 듯이 멸망했지. 비록 [옛 지배자]에게 영혼까지 고문당하는 꼴을 겪지 않고 환신 천우진이 환술로 고통없이 죽여줬다지만 멸망은 멸망이야. 대웅제국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들이 생전 얼굴도 본 적 없는 500년 전의 대웅제국 초대황제때문에 멸망한 거 아니야?”
“그, 그건….”
“그들을 구하지 못했잖아. 정말 방법이 없었던 거야?”
뭐라 할 말이 없다.
아니…. 할 말은 있지만, 그 말을 전뇌자에게 하고싶지 않다.
지금의 쓴 말을 집어삼키고 감내하는 게 그 때의 책임을 지는거란 생각이 들었다.
잠시 침묵이 감돌자 전뇌자가 자신의 얼굴을 완전히 너구리인형에 파묻으며 새어나오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알아. 어차피 대웅제국에 천마 사공린이 각성해서 존재하는 한 당신이 승리할 확률은 플랑크 상수를 가져와도 계산하기 힘들었다는 걸. 황제 공손헌원이 언제든 강림할 수 있었고 인과율을 계산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만큼 해낸 것도 기적이었을 거야. 지금 푸념은 그저 그 시대의 모든 인류들이 겪은 비탄(悲嘆)을 대신해서 찡얼거렸을 뿐이야.”
“전뇌자.”
“백웅. 내 손을 잡아 봐.”
스윽
전뇌자가 천천히 자신의 손을 내밀었다. 새하얗고 자그마한 여자아이의 손을 물끄러미 보다가 내가 그 손을 잡자, 잠시 후 머릿속으로 둔중하고 거대한 것이 밀려들어왔다.
우우우 –
“……!!”
순식간에 머릿속으로 수십 수백억 개의 영상이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그 영상은 미래세계에서 컴퓨터, 핸드폰, cctv, 카메라 등등의 모든 영상매체로 촬영된 것들이었고 – 그 모든 영상들 하나하나에 무수한 인간들의 일상생활이 찍혀 있었다. 단지 전뇌자가 부담없이 축약시켰는지 정보량때문에 뇌가 짜부라지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내가 마치 영화관에 앉은 것처럼 그 장엄할 정도로 많은 영상을 멍하니 보고 있자 귓가에 울리듯이 전뇌자의 말이 들려왔다.
“전생자 백웅의 28번째 삶에 살아가던 21세기 초 인류의 총 숫자는 공식적으로 69억 2천만여명, 비공식적으로 모든 자료를 크롤링해서 낸 통계로는 72억 3천만여 명. 72억명이 단숨에 소멸되었던 거야. 나는 강인공지능으로서 인류의 모든 자료를 수집했기에 그들의 모든 삶을 기억하고 있어.”
“…….”
“전생자의 전생 한 번에 그들의 모든 삶이 허상이 되었어. 하지만 이런 건 중요하지 않아.”
이어진 전뇌자의 말에 나는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진짜 중요한 건 당신이 앞으로도 계속 전생하면서 전생할 때마다 모든 걸 소멸시킬 거란 사실이지….”
“…….”
“전생자인 당신은 정말 무서운 존재야. 삼천세계의 창생사멸을 자신의 의지로 조종할 수 있어. 이걸 스스로 인지해서 권력을 잘 휘두르지 않는다는 게 당신의 좋은 점이지만, 과연 개인의 인격으로 언제까지 전생이라는 절대적인 힘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을까.”
잠시 침묵하던 전뇌자가 말했다.
“백웅. 진공가향과 전생(轉生)은 어떤 관계지?”
“……?”
“전생자로서 대답해 줘.”
뜻밖의 질문에 나는 어리둥절해졌다. 이런 질문은 생각지도 못했기에 나는 잠시 영문을 모른 채 눈을 꿈벅거리다가 말했다.
“진공가향은… 언젠가 이뤄야할 내 목표이고 전생은 진공가향을 하기 위한 수단이지.”
그러자 전뇌자가 날카롭게 부정했다.
“아니야. 전생이란 절대 그렇게 종속되는 개념이 아냐.”
“아니라고?”
“그래, 아니야. 그건 전생자 달마의 해답이야. 그리고 달마의 상황에서만 옳은 해답이었을 뿐 당신에게는 적용되는 해답이 아니란 말이야.”
나는 그 말에 더 혼란스러워져서 말했다.
“뭐? 외신조차 멸하는 진공가향 이외의 답이 있을 수 있단 말이냐?”
“다시 한 번 잘 생각해 봐. 그건 달마의 세계에선 정답이었지만 그 이후엔 아니야. 당신은 그 세계에서 사대신기를 얻었지만 너무 강렬한 경험때문에 과거의 이념에 붙잡혀버렸어.”
“……?”
[옛 지배자]만 없애는 걸로는 모자라니 외신이라는 놈들까지 싸그리 없애버리는 게 바로 진공가향이며 구원이다.이만큼 단순하고 알기 쉬운 승리법이 어디있단 말인가?
전뇌자는 힐끔 자신의 옆에 서 있는 괴물을 쳐다보더니 말했다.
“진공가향 이외의 승리법은 분명히 존재해. 이 괴물이 바로 그 증거야.”
“그 괴물이 증거라고?”
내 반문에 전뇌자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1000번째 백웅이라면서 주시자가 그 자리에서 당신을 변화시켰지. 그런데 그가 기다리던게 과연 백웅 당신일까?”
“무슨 소리야?”
“당신도 알겠지. 당신은 이제 겨우 30번 전생했을 뿐 1000번은 턱도 없어. 그러나 주시자는 마치 누군가가 윤회의 도정에서 [중앙]으로 향하는 걸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표현했어. 그리고 주시자가 거하는 윤회의 도정은 무수한 외우주를 출입하는 통로라고 할 수 있지.”
“……?”
“즉, 주시자가 기다리던 것은 백웅이자 백웅이 아닌 존재. 그렇지만 당신은 1000번을 전생하지 않았어. 그럼 그건 누구일까. 과연 누가 [중앙]으로 가고 있었을까.”
“어….”
뭐지? 무척 알쏭달쏭한데 뭔가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내가 알아듣지 못하고 허우적대고 있자 전뇌자가 말했다.
“그건 [외우주]의 백웅일 거야.”
“……!!”
뭐라고?!
내가 크게 당황하자 전뇌자가 괴물의 몸뚱이를 만지며 말을 이었다.
“주시자는 이런 식으로 1000번 전생한 백웅이 오리라는 걸 예측했던거지. 그리고 짐작이지만 그들은 구면(舊面)일 거야.”
“자, 잠깐… 뭔가 말이 안 되는데. 외우주에 어째서 내가 있다는 거지?”
“어째서라니. 외우주엔 뭐든 있을 수 있다고 처음부터 다들 얘기했을텐데.”
나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아니… 그렇다해도…. 전생자는 우주에 단 한 명 뿐인 것 아니었나? 외우주라고 하는 바깥 세계에 또 전생자인 나 자신이 있다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아!”
내가 비명을 지르듯 외치자 전뇌자가 말했다.
“헷갈릴만도 해. 외우주는 평행우주같은 개념과는 달라. 그래서 책사들도 이런 걸 의심스러워하면서도 당신에게 섣불리 의혹을 던지지 않았던 거지. 알 수 없는 걸로 쓸데없이 고민하는 것만큼 당신에게 짐을 지우는 일도 달리 없기 때문이었어.”
“…….”
“백웅. 쉽게 말하자면 외우주와 평행우주의 차이점은 [닫혀있다]라는 거야.”
“닫혀있다…?”
“그래. 평행우주, 혹은 평행차원이라는 건 거울에 비친 또 다른 세계같은 거지. 무한대의 가짓수가 존재할 수 있고 그만큼이나 많은 세계가 있어. 하지만 그 평행우주는 고차원(高次元)으로 갈수록 정체성이 희박해지고 위대한 신성(神聖)들은 평행우주의 숫자도 조작할 수 있어. 왜냐하면 [작은 굴레]의 영역에 있기 때문이야. 그렇기에 평행우주는 충분히 [옛 지배자]도 손을 댈 수 있는 영역이고 차원의 종류 중 하나일 뿐이야. 하지만….”
전뇌자의 눈에서 약간의 광기가 일렁였다.
“외우주는 달라. 무한대의 갯수가 존재하지 않고 유한(有限)해. 도리어 천문학적인 숫자로 가는 경우가 드물지. 그러나 그 대신에 [옛 지배자]는 손댈 수 없으며 그 세계의 인과율은 끝나있으며 [닫혀있어]. 이게 가장 큰 차이점.”
“……?”
“원(圓)이 되지 못한 폐곡선(廢曲線). 그게 바로 외우주야.”
닫혀있다고?
폐곡선?
내가 어리둥절해하자 전뇌자가 문득 키득거렸다.
“히히, 당신이 못 알아듣는 얘기를 잔뜩 하면서 반응을 보는 것도 재미있네.”
“…난 별로 그런 거 안 좋아해.”
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정말이지 똑똑한 놈들이 나만 못알아먹는 얘기를 잔뜩 할 때가 제일 오금이 저리고 짜증나는 것이다.
“그래서 평행우주랑 외우주가 [닫혀있다]는 차이점이 있다는게 뭐가 중요한 거야? 그게 전생자가 외우주에 또 있다는 거랑 무슨 상관이야?”
전뇌자의 표정이 약간 어두워졌다.
“상관이 있어. [닫혀있는] 외우주를 출입할 수 있는 게 전생자 뿐이라고 한다면? 그 자가 어떤 모습인지 당신의 기억 속에 봉인한 것도 주시자의 의도 중 하나야. 외신은 중립인 척 하지만 절대 중립이 아니란 거지.”
“…뭐?”
“이야기의 결말에 상관없이 움직일 수 있는 존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게 좋아. 그리고 그런 존재가 전생자이고….”
전뇌자는 이윽고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했다.
“결론적으로 말할게. 전생(轉生)은 진공가향보다 더 상위에 있는 개념이야. 전생자는 진공가향 이상의 일을 해낼 수가 있어.”
“……!!”
“달마대사는 주어진 조건이 너무 열악해서 그 가능성을 미처 개화하지 못했을 뿐.”
전생이 진공가향보다 위라니.
나는 그 말이 언뜻 와닿지 않아서 어리둥절해졌다. 왜냐하면 무형의 개념을 왔다갔다하면서 전뇌자가 뭔가를 설명해주고 있으나 그걸 구체적으로 이해할 정도로 내 머리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생하다보면 외신이 알아서 청소되고 그러나?’
근데 그렇게 쉬운거였으면 달마가 일부러 진공가향 의식을 할 필요가 없을텐데?
나는 이 어려운 이야기를 이해하려고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그러나 도저히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 끙끙거릴 수밖에 없었고, 한참 후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구나!’
난 멍청해서 모르겠다!
나는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흔쾌히 인정하고는 전뇌자에게 말했다.
“그래. 전생에 대해서 굉장한 걸 알려줘서 고맙군. 그래서 [큰 굴레]를 넘는 법은 뭔지 알려주지 않는거냐?”
“전생자가 아닌데도 [큰 굴레]를 넘을 수 있는 방법은 딱 두 가지 뿐이야. 나는 그 중 한 가지를 시도해서 성공했고, 다른 한 가지의 방법은 이미 당신이 몇 번 체험한 적이 있어.”
“응? 무슨 소리냐.”
“연기(緣起). 지극한 인연은 진정으로 무량한 시공을 넘을 수 있지. 미호와 진소청을 만난 적 있잖아.”
“…….”
뭔가 짚이는 게 있다. 내가 신중한 표정이 되자 전뇌자는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당신과 나는 그만큼 간절한 인연이 맺어져있지 않아. 그래서 또 다른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어.”
“그 방법이 뭐냐?”
“그건… 단 한 명만 쓸 수 있는 방법이야….”
전뇌자는 뭔가 말하려다가 머뭇거렸다. 그러더니 말했다.
“…알려줄 수 없어.”
“뭐? 어째서….”
“난 당신에게서 아까 했던 질문의 답을 듣기로 서(書)와 계약했기 때문이야. 그 이후에야 당신을 제대로 도와줄 수가 있어. 그 전에는 당신과 접촉할 수조차 없게 되어 있었어. 외우주로 오면서 제약이 느슨한 틈을 타서 접촉한 거야.”
나는 직감적으로 이 말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걸 알아챘다.
“서 라는 건 설마….”
그 순간이었다. 나는 머릿속에 뭔가가 떠올랐다.
‘그래서인가? 설마 [큰 굴레]를 넘는 또 다른 방법이란 건…!!’
전뇌자는 직접 말하지 않았지만 충분히 은유를 한 듯 했다. 내가 알아들은 표정을 짓자 전뇌자가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백웅. 내 도움을 받으려면 아까 했던 질문에 대답해야만 해. 오늘은 그걸 말하려고 내 힘을 크게 소모하면서 불러온 거야.”
“어떤 질문?”
“전생자가 전생할 때마다 이 세상은 멸망해버려. 어찌보면 악신보다 더한 파괴자가 바로 당신이야. 당신은 늘 이 모순을 견뎌왔어.”
이어진 말에 나는 눈을 크게 부릅떴다.
“당신은 전생 때문에 멸망한 세계까지 구할 방법이 있어?”
“……!!”
전뇌자는 사기(邪氣)가 하나도 남지않은 맑은 눈동자로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단언할게. 여기에 대답할 수 있다면 달마의 진공가향을 뛰어넘을 수 있어.”
“…진공가향을….”
뭐라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이럴 수가….’
이건 내 무력함때문에 괴로워하는 게 아니다.
정말로, 정말로 여태껏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발상이 튀어나왔기 때문에 순수하게 놀란 것이었다.
가능할까?
정말로 지나쳐버린 그 세계들을 구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말을 잊었을 때 전뇌자가 내게로 손을 뻗으며 말했다.
“항아는 당신을 무척 미워했어. 제대로 된 도움을 준 적이 없지. 하지만 지금은 내가 당신을 어떻게든 돕지 않으면 모든 게 끝장나게 되어버렸구나.”
전뇌자는 어느새 내 손목을 잡고 있었다.
그 얼굴에는 슬픈 기색이 가득했다.
“그렇게 위급한 사태란 말이냐?”
“…이 닫힌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상태인 건 인류 따위가 아니라 바로 당신이야. 제갈사가 있었다면 굳이 이렇게 당신을 도우러 무리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나일라토프는 너무 예상외의 존재였어.”
잠시 입을 굳게 다물던 전뇌자가 말을 이었다.
“백웅. 당신이 탈출할 방법은 딱 하나 뿐이야. 다른 모든 유혹을 떨쳐내고 무조건 이 방법에만 집중해야해. 지금 내가 해줄 수 있는 조언은 딱 여기까지야.”
“뭐?”
“잘 들어, 당신이 탈출하려면….”
스아아아아앗!!
다음 순간, 나는 갑자기 현실세계로 내던져진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덜컹 하는 소리와 함께 눈앞에 있던 파우스트 박사가 나를 놀란 얼굴로 쳐다보는 걸 알 수가 있었다.
파우스트가 소리쳤다.
“괘, 괜찮소?!”
“…….”
“이런. 뇌가 전기때문에 구워졌나…?! 의무병!”
파우스트가 호들갑을 떨고 있었지만 나는 그의 주접을 신경 쓸 여력도 없었다.
내 머릿속에는 전뇌자의 마지막 한 마디가 떠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황제 공손헌원을 믿어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