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139)
0139 ———————————————-
암천향(暗天鄕)
나는 이 싸움에서는 눈치를 볼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질적으로 저 놈만 쓰러뜨리면 거의 끝나는 것이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모든 패를 내놓기로 마음먹었다.
‘ 여동빈.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는 거겠지?’
마(魔)로 변이한 금의위 총령’이었던’ 촉수괴물이 눈 앞에서 기음을 토하고 있다. 그런데도 여동빈은 아직 강림하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것은 여동빈이 볼 때 눈 앞의 상대는 충분히 나 혼자서 감당할만 하다는 뜻이었다.
파지직!
뇌명(雷鳴)의 결전오의가 내 몸에 끌어올려졌다. 동시에 진기의 이동과 계산을 쉽게 해 주는 백웅결이 맴돌았고, 두 가지의 상승효과가 합쳐지자 내 전력(戰力)이 갑작스럽게 몇 배나 증폭했다.
“하아앗!”
콰광
내가 외치며 달려듬과 동시에 몸 크기가 오 장에 이르던 촉수괴물이 일 검(一劍)에 튕겨져서 날아갔다. 옆에서 보던 연금술사가 깜짝 놀란 얼굴로 옆을 돌아보았고, 그 때는 내 검염이 쏜살같이 놈의 목을 노리고 있었다.
쉬익
‘ 순간이동?’
나는 연금술사의 모습이 순간적으로 사라진 걸 보고 흠칫했다. 하지만 이내 다른 곳에서 놈의 기척이 느껴지자, 비등을 사용하는 공간이동과 달리 짧은 공간 내를 이동하는 능력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연속으로 연금술사를 추적하려고 재차 대지를 박찼다.
파밧
“윽… 받아라…”
연금술사가 자신의 손에서 난데없이 거대한 장(杖)을 소환해서 꺼내들더니 시뻘건 화염을 응축시켰다. 그리고 수십 개나 되는 화염의 구슬이 허공에서 맴돌았다. 그것은 공격용이라기보다는 방어용으로, 내가 섣불리 접근하지 못하게끔 하려는 모양이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판단을 내려야 했다.
‘ 일단 화염구슬을 쳐 보자.’
콰앙!!
검기를 날려서 화염구슬을 때리자, 화염구슬은 잠시 두조각 나는 듯 하더니 허공에서 폭발했다. 폭발의 범위는 반경 일 장 정도로, 상당한 수준인 듯 했다. 나는 나를 뒤에서 쫓아오는 촉수괴물의 공격을 뇌영보 천주살으로 피한 후 재차 중거리에서 검기를 화염구슬더미에 날려 보았다.
꽈과광
자욱한 연기가 일어나고, 거기에는 다시 화염구슬을 떼거지로 소환한 연금술사가 있었다. 놈은 이제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듯 끌끌거렸다.
“내 마법에 내가 해를 입을 것 같으냐?”
귀찮은 마법이었다. 저 화염구슬은 다가오는 자에게 반응해서 폭발하며, 시전자에게는 아무런 타격도 주지 않는 방어용인 듯 했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저런 폭발을 수십 개씩 맞아버리면 재기불능의 치명상을 입을 게 분명했다.
꿔어어어
쿠웅!
촉수괴물이 다시 기음을 내지르며 내게 둔중한 공격을 해 왔다. 이번에는 촉수까지 쫙 내뻗으며 공격하는게, 확실하게 나를 ‘적’으로 인식한 듯 했다. 나는 촉수괴물의 공격을 피하면서 순간적으로 판단을 내렸다.
‘ 촉수괴물을 먼저 없애느냐 저놈을 먼저 없애느냐로군.’
그렇다면 전자를 선택한다. 섣불리 화염의 방어마법에 도전하다가 치명상을 입기보다는 그나마 만만한 쪽을 빨리 없애는 게 나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마음먹고는 뇌영보 천주살을 시전해서 뇌영(雷影)을 남기며 되려 뒤쪽으로 후퇴했다.
그리고는 능란한 경공으로 어둠 속의 기둥을 거미처럼 타고 올라서 천천히 기를 다듬었다. 나는 어느 새 품에서 침을 하나 꺼낸 상태였고, 집중력을 더욱 끌어올렸다. 연금술사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으하하하! 안되니까 꽁무니를 빼는 것이냐.”
나는 놈의 비웃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침착하게 내 경맥과 혈을 살폈다. 그리고 뢰풍상박을 더더욱 활성화시켜주는 비공(秘孔) 세 군데에 침을 찔렀다. 동시에 다 사용되지 못하고 단전에 잠재되어 있던 내공이 울컥거리며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쿠르르릉
뇌명과 백웅결, 거기에다가 더더욱 증폭된 기(氣)가 끓어오른다. 나는 기둥에서 뛰어오르며 기합을 내질렀다. 내 눈에 들어오는 목표는 오직 하나, 어슬렁거리는 촉수괴물 뿐이었다.
“이야아압!”
만승검결(萬乘劍決)
비기(秘技)
천참만륙(千斬萬戮)
백광(白光)이 이지러졌다. 내 몸이 돌개바람처럼 휘돌며 연속으로 초승달같은 검기를 내뿜었고 그 속도는 무시무시하게 빨라졌다. 쾌(快)결과 환(幻)결, 변(變)결을 온전히 깨달은 후에야 사용할 수 있는 뇌신류의 검술비기로써, 그 실체는 그저 연속베기일 뿐이었다.
피잉
속도가 끊어진 것 같았다. 실상은 내 검의 빠르기가 한도를 넘어서면서 백광이 검염으로 승화하고, 소리조차 빨아들이며 가공할 연속참격을 가하는 중이었다. 찌직거리면서 짐승이 우는 듯한 속도가 참격 속에서 비명을 질렀다. 흰색의 검광이 더욱 강렬하게 우윳빛을 발하며 촉수를 일 초에 수십 개나 베어 내었다.
파파파팟
삼백참(三百斬)까지는 순식간이었다. 백광은 어느 새 뇌광(雷光)으로 변해 있었고, 오 장에 이르는 촉수괴물의 전신이 빛에 뒤덮인 것 같았다. 저만치에 있던 연금술사는 급작스러운 상황을 이해 못하는지 멍하니 서 있었고, 나는 그 놈을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베기(斬)에만 전신전령을 집중했다.
푸콱
칠백참(七百斬)
팔백참(八百斬)
구백참(九百斬)
푸콰콰콱
소용돌이치는 검광은 마치 구름이 뇌전을 뿜어내는 것 같았다.
철컥!
마무리다.
납검(納劍)과 함께 내 몸이 만신창이가 된 촉수괴물에게서 등을 돌렸다.
촉수괴물이 최후의 발악으로 촉수를 뻗어온다.
눈은 반개(半開)한채 집중상태에 들어갔다. 팔뚝의 힘줄이 꿈틀거린다.
나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천참만륙(千斬萬戮).”
위잉
등을 돌린 상태에서 후면으로 빛이 쏟아졌다. 실상은 지금까지 베어왔던 검기의 동력을 모아서 마무리로 검광을 때려박는 것이다. 동시에 구백참까지 버텨내던 촉수괴물의 몸뚱이가 크게 이분(二分)되었다.
콰앙!!!
촉수괴물의 몸뚱아리가 빛 속에서 수만 조각이 나면서 터져버렸다. 쌓여있던 참격을 동시에 터뜨리며 적을 박살낸 것이다. 나는 그동안 죽어라 연습했던 만승검결의 비기를 최초로 실전에서 써먹어보았다는 생각에 뿌듯해졌다.
후두두둑…
촉수괴물이 터져버리자 먼 발치에서 보고 있던 연금술사는 당황한 듯 했다. 그리고 버럭 외쳤다.
“이럴수가… 어떻게 그 정도의 힘을?”
“어째서일까나!”
나는 진득한 살기를 내뿜으며 품속에서 단도를 꺼냈다. 그리고는 쏜살같이 투척했다.
쓔욱 – 쾅!!
“크아아아아악!!”
내 내공으로 인해 가공할 역도(力導)를 머금은 단도가 놈의 팔을 끊어냄과 동시에 연금술사의 몸뚱이를 벽에 처박아버렸다. 수많은 화염구의 방어도 소용없이, 내가 수십 장이 넘는 거리에서 놈의 약점을 노리고 투척해 버렸기 때문이다. 놈의 방어술법이 원거리 투척에 약하다는 생각대로 였다.
연금술사는 벽에 박혀서 선혈을 내뿜으며 몸을 버둥거리고 있었다. 그 버둥거림도 잠시 후 잦아들기 시작했다. 나는 물끄러미 그 모습을 보다가 검을 치켜들었다.
‘ 틈을 줄 필요는 없지. 바로 목을 치자.’
나는 어설프게 연금술사에게 정보를 캐내려 하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저 놈은 너무 위험한 상대였다. 자칫하다가는 역전을 허용할 여지가 있었으므로, 나는 아무 말도 없이 입을 꾹 다물고 돌격했다.
이미 놈은 반쯤 혼절해서 의식이 없는 듯 했다.
“뒈져라!”
까앙 – !!
그 순간이었다. 내가 연금술사를 마무리내려는 때, 갑작스럽게 무언가가 내 앞을 막아서 있었다. 그 자는 부신(符神)을 몸에 원구처럼 두르고 있었는데 내 진심을 담은 공격도 그걸로 무리없이 막아낸 듯 했다. 나는 상대의 모습을 확인하고 이를 악물었다.
“제갈부…!!”
“결국 내가 무리를 하게 만드는군.”
제갈부가 어느 새 궁 내에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그는 바로 내 영언을 듣자마자 근처로 이동해와서 옥좌의 방까지 따라들어온 듯 했다. 제갈부는 손가락을 마주치며 미리 시전해 둔 술법을 사용했고, 나는 다시금 몸이 짓눌려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합!”
콰앙
내가 다시 내공의 발(發)을 시전하자, 이번에는 술법이 흔적도 없이 날아가고 말았다. 제갈부는 놀란 얼굴로 연금술사를 데리고 십 장 밖으로 순간이동해서 피해버렸다. 그는 꽤 떨어진 거리에서 진심으로 놀라워하는 기색이었다.
“굉장하군… 기합만으로 상급 술법을 떨쳐내다니.”
나는 잠시 숨을 골랐다. 그리고 정보를 캐내기 위해서 검을 치켜들며 제갈부에게 물었다.
“제갈부. 그 놈을 살리려는 이유가 뭐냐? 놈만 쓰러뜨리면 되는 게 아니냐?”
그러자 제갈부가 한쪽 손에 잡고 있던 연금술사를 땅에 내팽개치며 말했다.
“너는 아무것도 모른다. 이 놈은 그저 말단에 지나지 않는다.”
“뭐?”
“이 놈을 죽여봤자 어둠의 세력은 코웃음밖에 치지 않겠지. 그리고 놈들은 더 치명적이고 은밀하게 이 세상에 손을 뻗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연금술사가 제멋대로 날뛰게 둘 수는 없다.”
나는 제갈부를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거기서 비켜!”
“……”
제갈부는 가라앉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네게는 가르쳐줘도 되겠지. 나를 따라와라.”
휘익
제갈부가 난데없이 더욱 깊은 황궁의 심처 어디론가로 향했다. 나는 제갈부의 뒷모습을 노려보다가, 일단은 연금술사에게 다가가서 침법으로 전신을 금제했다. 아까는 일격에 죽여버리려고 했지만 제갈부가 타협하려 나섰으니 미호의 매혹술로 이놈을 홀려서 정보를 알아보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금침대법으로 연금술사의 심령까지 완전히 제압한 후 목갑 안에 넣어버렸다.
타닷
제갈부를 따라서 더욱 깊은 황궁의 어둠 속으로 갔다. 나는 제갈부의 기척을 따라서 황궁 심처로 가는 중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뭐지? 이 궁(宮)이 이렇게 컸나?’
지금은 쓸데없는 소모를 막으려고 뇌명을 끈 상태이지만 내 경공은 상당히 빠른 편이다. 이 정도 달렸으면 왠만한 궁은 당연히 끝이 보여야 정상이다. 그러나 아직도 계속해서 지하로 내려가고 있으니, 엄청난 크기였다.
하지만 나는 이내 이 황궁이란 게 겉보기와 달리 ‘밖보다 안이 큰’ 술법으로 이루어져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십이율주의 거처에 펼쳐져 있던 술법같은 것이다. 어둠 속에서 거대한 문(門)이 두세 개 있었고, 제갈부가 먼저 그 문을 열어서 통과한 것을 내가 뒤따라갔다.
이윽고 무저갱같은 거대한 공간과 함께, 무저갱을 따라 원형 나선으로 이어진 기다란 층계참이 보였다. 또한 곳곳에는 알 수 없는 기포와 괴이쩍은 건축물이 가득했다. 제갈부가 먼 곳에서 말했다.
[ 이 쪽이다.]한참동안 나선 층계참을 따라서 뛰어내려갔다. 그리고 수십 장을 내려왔다 싶을 때 서서히 빛이 보였고, 그 곳이 아마 이 무저갱의 바닥인 듯 했다. 제갈부는 바닥에 서서 왠 제단(祭檀) 위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위이이잉
위이잉…
“이건?”
나는 제단 위에 떠 있는 거대한 녹색빛 수정을 바라보며 넋을 잃었다. 수정의 크기는 무려 일 장이나 되었고,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빛을 내뿜고 있었다. 이렇게 거대한 수정이 있다고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이 수정은 마치 인간을 현혹시키듯이 굉장한 마력(魔力)을 잠재하고 있는 듯 했다.
제갈부가 말했다.
“이것이 바로 연금술사 놈이 만들고 있던 현자의 돌이다.”
“현자의 돌?”
“모르나 보군.”
제갈부는 고적한 눈빛으로 현자의 돌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정확히는 이것은 현자의 돌을 제작하는 방법이 적혀있는 비석(碑石)이다. 연금술사가 서역(西域)에서 가져온 것이지. 연금술사는 이족(異族)의 땅에서 소환된 후 줄곧 이 비석의 내용을 해석하며 현자의 돌을 제작하는 일에만 매달렸다.”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적으로 인식하고 있던 놈이 난데없이 설명을 시작하자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어쩌라는 거야? 현자의 돌이 만들어지면 뭐가 어떻게 되는데?”
“기본적으로는 세 가지가 있지.”
제갈부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첫 번째, 불로불사(不老不死).”
“……!!”
“두 번째, 무한의 동력(動力). 현자의 돌은 무궁한 동력원이 될 수 있다.”
“으음.”
“마지막 세 번째… 만물의 창성(昌盛). 현자의 돌을 매개로 그 어떤 것도 만들어낼 수 있고, 그 어떤 것으로도 변화시킬 수가 있다. 서양 마도사들의 꿈의 경지다.”
나는 침음성을 흘렸다. 현자의 돌이 뭔가 했더니 엄청난 사기적인 유물인 것이다. 첫번째로 소환된 이족 주술사와 달리 이번에 소환된 연금술사가 현자의 돌의 제작에만 매달린 이유가 설명되었다.
‘ 그 말대로라면 평범한 돌멩이도 금으로 바꿀 수 있다는 소리가 아닌가?’
하지만 왠지 그것만이 아닐 것 같았다. 그래서는 천하의 모든 부와 권력을 소유한 황제가 연금술사에게 협조할 이유가 되지 못한다. 내가 수상쩍은 표정을 짓고 있자 제갈부가 피식 웃었다.
“눈치챘나 보군. 그래, 사실 첫번째 불로불사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족들은 대부분이 기본적으로 불로불사이기 때문에 금의위 총령처럼 마체(魔體)를 이식하기만 하면 손쉽게 이룰 수 있지. 황제도 그래서 연금술사의 도움으로 손쉽게 불로불사를 손에 넣었다. 그런데도 난데없이 영혼을 흡수당해 죽은 건 예상 외였지만.”
“2차 계약이 뭐지?”
“……”
제갈부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그리고는 말했다.
“아무래도 너는 내 생각보다 훨씬 똑똑한가 보군.”
저게 칭찬인지 욕인지 몰라서 내심 고민하고 있을 때 제갈부가 대답했다.
“그래. 황제는 거기서 욕심을 끝내지 않고 이 세상 모든 것을 지배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현자의 돌을 제작하는 걸 도우면서 칠요(七曜)를 모았다. 칠요의 힘만 있으면 현자의 돌이 손쉽게 제작될 것이기 때문이다.”
“칠요나 현자의 돌하고 세계정복이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이냐?”
“너는 과거 태감 정화(鄭和)가 일곱 차례에 걸쳐서 세상 방방곳곳으로 원정을 떠났던 사실을 알고 있나?”
“……?”
나는 잘 모르는 일이다. 내가 고개를 갸우뚱하자 제갈부가 말을 이었다.
“그때 이미 어둠의 세력은 세계 각지로 통하는 문(門)을 만들어 둔 것이다. 정화의 원정도 처음부터 그 목적으로 보내진 거였지. 대명제국의 군사를 손쉽게 전이(傳移)시켜서 이민족의 땅을 정벌할 목적이었다.”
“뭐?!”
“현자의 돌은 무한의 동력원임과 동시에 그 ‘문’을 자유롭게 열고 닫을 수 있는 힘도 있다. 즉 현자의 돌이 완성된다는 건 전 세계를 지배하는 대명제국이 성립된다는 소리와 같은 것이다.”
나는 멍해졌다.
뭐가 이렇게 이야기가 거대하다는 말인가?
어떻게 이야기가 진행되는지도 감이 안 잡힐 정도로 차원이 큰 이야기였다. 나는 멍하니 듣고 있다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 무한의 동력원… 설마 첫번째 인신공양을 행한 주술사도 문을 열고닫을 동력을 얻기 위해서 인간을 희생시켜서 악신에게 소원을 빌었던 건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나는 제갈부를 노려보며 말했다.
“너희는 혹시 이족을 소환하려는 시도가 한 번 실패한 적 있는 거 아니냐?”
“그걸 어떻게 알았지?”
“… 그렇군. 그래서 두 번째로 연금술사가 불려온 거였어.”
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 제갈부에게 말했다.
“네 녀석은, 연금술사가 현자의 돌을 완성하는 걸 기다리고 있었군.”
“그렇다.”
“완성하고 나면 그걸 네가 가질 생각이었겠지.”
“물론이지.”
나는 제갈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제갈부의 술법과 달리, 현자의 돌을 제작할 수 있는 건 마법 뿐이며 그건 연금술사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제갈부는 거기에 눈독을 들이고 가만히 황제만 호위하고 있다가, 연금술사가 현자의 돌을 완성하는 순간 그걸 강탈하려고 황궁에 남아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제갈부 놈이 황연군과 대치해서 간을 보고 있었던 것은 연금술사에게 협력하는게 나을지 황연군을 도와서 지위를 유지함과 동시에 개인적으로 현자의 돌을 완성시키는 게 나을지를 재어보고 있었던 것이리라.
나는 기가막혀서 목에 핏대를 세웠다.
“빌어먹을!! 이족이 어떤 놈들인지 몰라서 네 생각만 하고 앉았냐?! 이 놈들이 민초들을 얼마나 학살하고 괴롭힐지 모르는 거냐? 지금까지 네 잇속만 챙기려고, 이족을 막을 수도 있는데 방관하고 있었단 소리냐!!”
“물론 알고 있었지만…”
제갈부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대답했다.
“내가 현자의 돌을 얻고나서 막아도 되지 않나? 그냥 그런 문제지.”
“네놈은 인간에게 눈꼽만큼도 관심이 없군.”
“그럴지도.”
나는 최초에 제갈부와 대면했을 때 느꼈던 이질감이 뭔지 알 수 있었다.
이 놈은 인간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다. 별다른 감정도 없다.
그저 자기 이외에는 전부 지력으로 이용할만한 대상으로 취급할 뿐이다.
차라리 이족(異族)에 가까운 사고방식이었으며, 나는 이족과 많이 대면해 봤기에 놈의 성향을 본능적으로 감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기가 질려있자 제갈부가 훗하고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너라면 괜찮을 것 같군.”
이어진 제갈부의 제안에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이제 황궁의 수호를 풀고, 천하를 황연 대장군에게 넘겨주지. 그러나 그 대신에 연금술사를 빼돌려서 이 현자의 돌을 우리 둘이서 마저 완성하자.”
“……”
“나라면 너를 완벽하게 도와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네가 현자의 돌을 얻어서 차후 천하의 주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매혹적인 제안이었다.
현자의 돌의 획득!
제갈부와의 타협이 전제되긴 했지만, 전생자인 내게 있어서는 거대한 기회가 굴러들어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