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1400)
태룡후(太龍吼)!
투쾅 – !!
갑자기 거대한 소리의 기둥이 생겨 나서 심수력을 감싸듯이 뻗어나갔다. 태룡후의 범위에 있던 심수력은 잠시동안 발버둥을 치는 듯하더니 이윽고 다시금 몸이 인간으로 되돌아왔고, 잠시 후 혼절하여 뻗어 버렸다.
“꺼억.”
쿠웅
기절한 심수력의 맥을 짚어보자 다행히도 신체는 정상이었다. 그냥 기절한 것뿐이었기에 나는 안도의 한 숨을 쉬며 말했다.
“후우, 감사합니다.”
“자네는 정말 운이 좋군. 진룡의 각성을 제대로 막을 수 있는 건 전우주를 통틀어 열 명도 안 될 텐데 그중 한 명이 자네 앞에 있었던 거야.”
“……”
그렇게 말한 복희는 천천히 걸어서 기절한 심수력 근처로 왔고 그의 용태를 살피는 듯했다. 그러더니 말했다.
“진룡으로 각성하려 한 이유를 알 것 같군.”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자는 ‘누군가가 갖고 있던 강대한 진룡의 힘을 나눠받았어. 이 자에게는 술법이나 마도의 역량이 없으니 강탈한 건 아닐테고 자의적으로 나눠받는 의식에 동의한 게 틀림없겠군. 그래서 나눠받은 진룡의 힘이 내면에 잠자고 있었던 걸세.”
“음…… 그렇다는 건 설마……”
내 얼굴이 굳어지자 복희는 얼굴을 끄덕였다.
“아마 내 생각이지만, 이건 나눠 받은 진룡의 힘의 일부에 불과해. 호월이란 자가 광룡의 힘을 각성하면서 엄청난 힘이 폭주하려 했고, 그 과정에 옆에 있던 호월의 동료들 이 호법을 서는 상태로 호월의 힘을 4등분 하듯 나눠 받아서 광룡의 폭주를 멈추려 했던 모양이군.”
“……!!”
“그리고 자네는 그런 상태에 있던 호월의 호법, 심수력을 갑자기 소환한 것이지.”
나는 복희의 말에 눈을 둥그렇게 떴다.
“소환요? 저는 그냥 창조를 한 게 아니었습니까?”
“그래. 아무리 생각해도 자네가 신력으로 창조를 했다기엔 말도 되지 않는 상황이야. 이 우주의 모든 마법과 주술의 법칙에서 위배 되는 상황이지. 창조를 하면 물질과 영혼 정도는 만들어낼 수 있으나 인과를 자유자재로 생성할 수는 없으니까. 그렇기에 자네가 창조를 했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소환]을 시전 했다고 보는 게 맞을 걸세.”
그럴 수가!
나는 어이가 없어서 말했다.
“그, 그렇다는 건 제가 [큰 굴레]를 넘어서 다른 시대에 존재하는 심수력의 몸과 영혼을 동시에 소환했다는 뜻이 되는 겁니까?”
“일단 그렇게 되지.”
“말도 안 됩니다. 그것도 있을 수가 없는 일 아닙니까? 지금은 초고대인데 그래도 인류문명시대에 있던 자를 여기에 소환하다니……”
“……”
복희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그 말대로일세. 소환 쪽이 좀 더 가능성이 높지만 그 또한 말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 아무래도 심수력이라는 이 자를 깨워서 좀 더 얘기를 들어봐야만 의문이 설명이 될 것 같네.”
“음…… 당장 깨우겠습니다.”
“잠깐 기다려보게. 진룡의 힘이 내면에서 소용돌이치고 있으니 겉으로는 멀쩡해도 시한폭탄이나 다름없어. 기운이 진정될 때까지는 최소한 칠 주야의 시간이 걸릴 테니 그때까지는 정양하게 내버려 두는 게 나을 걸세.”
“알겠습니다.”
그때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흑웅이 불쑥 말을 꺼냈다.
[주인. 다시 한번 창조를 시전 해 보시오. 이번에도 뜻밖의 존재가 튀어나올 가능성이 있지 않겠소?]“아니 이 난리를 겪었는데……”
[한번 해보시오. 나중에는 더 하기 힘들 거요.]흑웅이 힐끔 복희를 쳐다보는 걸 보자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나마 방금처럼 수습을 해 줄 수 있는 복희가 있을 때 시도해보는 게 낫다는 소리 이리라.
“인간이여, 창조되어라!”
파앗.
그리고 이번에는 방금 전과 달리 평범하게 넋이 없는 인간이 만들어졌다. 그 모습을 본 복희가 말했다.
“아무래도 그동안 응축되어 있던 인과가 첫 시도에서 창조를 소환으로 바꿔서 시전해 버린 모양이군.
[굴레]를 돌리는 전생자라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야.”“그 말씀은.”
복희가 바닥에 있던 심수력을 내려 다보며 말했다.
“이자는 우연히 소환된 게 아니야. 아마 자네와 구면(舊面)일 걸세.”
심수력이 기절한 후 나는 그를 대충 목갑에 집어넣었다. 구면이라고 해도 전혀 기억나는 바가 없었기 때문에 진룡의 힘이 들끓는 자에게 굳이 더 손을 댈 필요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다시 신력으로 창조를 하는 연습을 했다.
우웅!!
벌써 [인간을 만든 지 10번째. 내가 10번째 인간을 만들어낸 모습을 본 복희가 부채를 촥 하고 접으며 말했다.
“이제 연습은 그 정도면 됐네. 더 해도 의미가 없을걸세.”
“네? 아직 실패도 좀 하는데……”
무려 20번 이상 시도해서 10번을 성공한 셈이라 성공률은 사실 높은 게 아닌 듯했다. 반타작보다 조금 낮은 정도로 느껴졌기에 이제야 연습을 열심히 할 시기라고 느낄 즈음 인 것이다. 그러자 복희가 말했다.
“자네가 지금 실패하는 경우는 숙련도가 부족한 게 아니라 거부감 때문이야.”
“거부감요?”
“내가 이런 신적인 힘을 가져도 되나 싶은 회의감과 인간의 경계를 넘 어 버리는 두려움이 실패율을 만들고 있을 뿐이야. 그런 게 없다고는 말 못 하겠지?”
“……”
나는 침묵했다. 복희가 정곡을 찌른 것 같았기 때문이다. 확실히 이렇게 맘대로 인간을 뚝딱 하고 만들어낼 수 있다면 이미 인간을 한참 전에 벗어나 버린 게 아닌가? 단순히 힘만 강해진다면 인간의 정체성에 대해 크게 고민할 일이 아니었지만, 인간을 화수분처럼 찍어낼 수 있는 능력을 직접 발휘할 수 있게 되니 두려움이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복희가 느긋하게 말했다.
“애초에 신은 이런 걸 굳이 연습하지도 않아. 신이 연습과 노력을 하다니 그것도 웃긴 일이지 않나? 신은 처음부터 정점에 도달해 있기에 노력으로 강해지는 것도 거의 불가 능하고 한다고 해도 잡기술을 많이 익히는 것일 뿐이야. 단지 자네가 인간의 정체성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그 틀을 벗어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좋겠군.”
나는 그 말에 움찔하며 대답했다.
“저는 인간입니다.”
“그래. 자네는 자기가 인간이라고 생각하면 인간이라는 세계관을 갖고 있는 걸로 보이는군. 가장 보편적이고 타당한 인간의 정체성에 관한 사견(私見)일세. 그 보편성에 비춰보면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철학적 질문은 그저 말장난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
복희는 빙긋 웃었다.
“허나 용신인 내가 볼 때 자네는 이미 명실상부한 신이야. 그것도 상위 신에 가까워지고 있는 재능있는 신격이지. 인간이 스스로를 가리켜 나는 벌레라고 외치고 다니는 꼴이니 우스울 수밖에 없다네.”
“……”
은근히 독설이 강한 복희였다. 나는 복희의 말을 더 깊게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머리를 강하게 저으며 말했다.
“아무튼 좋습니다. 그 거부감만 떨치면 이제 저는 뭐든 창조할 수 있다. 그 말이 되겠지요?”
“바로 그걸세. 다만 창조를 하는 만큼 자신의 인과율과 신력이 동시에 소모되지. 강력한 창조물을 만들수록 더 소비가 커. 그런 기본원칙만 알고 있다면 신으로서 존재하는 건 아무 문제가 없네.”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으음…… 혹시 영혼도 만들 수 있는 겁니까?”
“이제 와서 그런 질문을? 당연히 할 수 있지. 이거 보게나.”
후와악
잠시 후 복희의 손끝에서 아지랑이 같은 불빛이 피어올랐다. 나는 그 불빛이 둥실거리며 떠다니는 걸 쳐다보았고, 복희가 나직이 말했다.
“이게 영혼일세. 아주 간단한 거니까 한번 만들어 보게.”
“아, 아니 만들라고 해도 뭐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긴 그저 언령만 뿌리면 되는 육체생성과 달리 영혼은 본질적으로 무형(無形)이라 조금 더 난이도가 있긴 하군. 간단히 요령을 가르쳐 줄까.”
팅 하는 소리와 함께 복희가 손가락을 튕기자 아지랑이 같은 영혼이 내가 만들어놓은 [인간의 육체로 새어들어갔다. 눈코귀입을 통해서 흡수된 영혼이 잠시 후 사라지자 이 윽고 [인간]이 제정신이 들었는지 비틀거렸다.
“우어. 어…… 나는 누구인가……”
나는 그걸 보자 신기해서 복희에게 말했다.
“역시 영혼이 육체를 움직이는 거군요.”
“그렇네. 여기에서 혼백(魂魄)이라는 개념을 추가하여 좀 더 움직이기 쉽게 조정할 뿐일세. 다만 신은 굳이 혼백 하나하나를 설정할 필요가 없으니, 혼돈에서 막 뽑아 올린 영혼의 덩어리는 저절로 그 균형이 맞춰져 있지.”
“어렵게 생각할 거 없네. 그저 호수에서 국자로 물을 푸듯이 아무렇게나 끌어올리면 그만이야. 영혼에 굳이 별개의 인격을 생각하고 만든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어. 어차피 혼돈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뒤죽박죽 이고 창조된 후의 일은 신이 생각할 게 아니니까.”
나는 복희의 말에 눈을 감고 정신 을 가라앉혀 보았다. 그러고는 오감이 아닌 육감의 영역으로 들어가서 한없이 머릿속을 비웠고, 영혼이란걸 혼돈 속에서 끌어내 보려고 했다.
아무것도 안 느껴지는데?!
그러자 복희가 말했다.
“그건 인간이 혼돈과 반대되는 영역을 느끼려 할 때 쓰는 방식이니 완전히 반대로 하고 있잖은가.”
“자, 잘 이해가 안 됩니다.”
“흑웅도 말했지. 이건 집중이 필요한 일이 아니라고, 자네는 숨 쉴 때 들숨과 날숨을 전부 집중하면서 하는가? 물고기가 물을 헤엄칠 때 아가미를 펄럭거리는 일에 하나하나 신경을 쓰지 않듯, 혼돈이라는 바닷속을 헤엄치며 숨을 쉬는 것에 불과 하다네.”
“으으음……”
“아무래도 기와 의념을 너무 오래 수련해서 버릇이 그렇게 들어 버렸나 보군…… 그럼 진짜 요령을 알려 줘야겠어.”
“진짜 요령이요?”
복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이건 놀이니까 그냥 대충대충 하게.”
“…… 네? 놀이라고요?”
“신이라는 건 대충 살아도 위대한 것이라네. 이딴 건 그냥 영겁에 가까운 세월을 살아가며 심심풀이로 하는 것뿐이고 필멸자처럼 노력해서 위업을 달성하려는 의지도 동기도 없네. 실패하면 또 하면 되잖은가.”
“……!!”
“신에게 있어서는 그냥 모든 게 유희이고 놀이일 뿐이야.”
유희(遊戲)….
나는 그 단어를 듣는 순간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리고 마치 지금까지 잊어왔던 것을 떠올린 것처럼 즐거워졌다. 특히 실패해도 다시 하면 된다는 말에서 강한 자극을 받아서, 나는 나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그래.
나는 지금 즐기는 중이었지.
“얍!”
영문모를 도야감에 휩싸여서 나는 히쭉 웃은 채 그대로 손바닥을 앞으로 향했고, 그러자 손바닥 앞에는 새파란 영혼의 불꽃이 나타나 있었다. 수박만큼 커다란 크기였으므로 복희가 만들어낸 것보다 훨씬 컸고, 복희는 약간 놀란 듯했다.
“이런! 그건 영혼이 아닌 것 같은 데 뭘 퍼낸 건가?”
“네? 영혼 아니라구요?”
“좀 더 밑바닥에서 끌어온 뭔가로 군……”
호기심어린 눈으로 내가 만들어낸 불꽃을 쳐다보던 복희가 고개를 까닥했다.
“육체에 한 번 넣어보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흥미가 생겼네.”
슈욱
나는 복희의 말대로 내가 만든 불꽃을 육체에 넣어보았다. 그러자 방금 전처럼 영혼이 육체로 새어들어가는 듯했는데, 이윽고 전신이 검붉게 물들더니 그 육체의 주변에 일렁거리는 듯한 총천연색의 힘이 촉수처럼 발현되었다.
쿠구구욱
어어어아
그와 동시에 인간의 육체 위에 진흙색의 가면이 덧씌워졌다. 가면에는 마치 생명체의 혈관 같은 게 돋아나서 꿈틀거리고 있었기에 기괴하게 느껴졌다.
“으앗.”
그 괴기스러운 모습을 보며 내가 약간 놀라고 있자 복희가 말했다.
“이것도 방금 전 심수력 같은 현상으로 보이는군. 자네의 인과가 너무 크기 때문에 첫 시전 때는 변형되어서 이상현상을 일으키는 거야. 심수력은 창조가 소환으로 발현된 경우 라면 이번 것은 우주의 심층에서 너무 깊은 존재를 퍼 올려 버린 듯싶네.”
“우주의 심층이라니요?”
“평상시에는 신들도 손을 못 대는 억겁의 무간(無間)…… 경계(境界) 의 혼돈이라고 부르는 것들이지. 이런 건 확실히 영혼이 아니라 인간들의 표현으로는 외계의 악령이라고 부를 듯싶어. 저 정도 힘이면 하위 차원 하나 뭉개는 건 일도 아니겠군.”
“……!!”
“그런데 오래 살아온 나조차 저건 대체 [어디]에서 왔는지 짐작도 안 가는 걸. 진짜 뭘 어떻게 한 거지?”
차분하게 말한 복희가 부채를 휘둘렀다.
“아무튼 이 자리에 필요 없는 놈이니 추방한다.”
퍼엉!!
끄아아악 – !!
다음 순간 불꽃이 끔찍한 비명 소리를 내며 사라져 버렸고 동시에 인간의 육체도 마치 소금기둥처럼 변해서 무너져 버렸다. 나는 인간의 육체가 부숴지자 깜짝 놀라서 말했다.
“아니! 죽어 버리다니……”
“영혼도 없는 거였으니까 죽었다는 표현은 옳지 않다네.”
“……”
나는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아까 부터 신의 힘을 다루는 요령을 배우고는 있지만 정말로 인간을 가볍게 넘어서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방금 전 외계의 악령을 불러내 버렸을 때는 내가 아닌 또 다른 나가 되어 버린 것 같은 기분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다시 해 봐.”
“네.”
나는 이번에는 제대로 영혼을 만들어 보았다. 그리고 인간에게 불어넣으니 이번에는 제대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본 복희가 말했다.
“이것 참 전생자라는 건 골치 아프 군. 신의 힘을 쓸 때마다 일일이 이상현상이 일어난다면 이 세계가 남아나지 않을걸세.”
“…… 죄송합니다.”
“이렇게나 적성이 뛰어난데 마도사가 안 된게 정말 신기하군……”
그렇게 중얼거린 복희는 흑웅을 돌아보며 말했다.
“정령이여. 너는 주인의 인과율에 대해 짚이는 게 없는가? 일단 가르칠 건 다 가르쳤다만 그대의 주인이 품고 있는 혼돈은 범상치 않은 것 같구나.”
[……]흑웅은 아까부터 팔짱을 끼고 뭔가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는 뒤늦게 복희의 말에 반응하고는 대꾸했다.
[내 주인은 무척 아슬아슬하게 태극(太極)의 균형을 이루고 있소. 그러나 세상에서 이르는 태극과는 완전히 다른 것일지니, 나는 머지않아 그 균형을 위하여 전신전령을 다할 생각이오.]“호오, 그런가……”
[아무튼 신력수련은 이정도면 될 것 같군. 그럼 이제 신술을 가르쳐 주면 될 것 같소.]“그거 말인데, 순서를 바꾸는 게 좋을 것 같네.”
[선신의 가호를 먼저 주겠단 말이오?]“그래. 신술은 혼돈과 완전히 반대되는 재능이 필요하니 시간이 얼마나 필요할지 몰라. 얻을 건 빨리 얻어놓고 움직이는 게 나나 그대들이나 편하지 않겠는가?”
[일리 있군. 주인이여, 어쩌시겠소?]흑웅이 내게 대답을 구하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야. 일단 가호부터 받겠어.”
“좋네. 그러면 나를 따라오도록 하게.”
저벅
복희가 몸을 홱 돌려서 밖으로 나가려 하자 나는 순간 당황해서 말했다.
“잠깐! 여기 만들어놓은 인간들은 어떻게….”
“음? 영혼을 넣어서 탁록촌에 보내도록 하게. 마을 인구가 많아져서 좋겠군.”
“여, 연고도 없는 인간을 이렇게 많이 만들어도 됩니까?”
“……? 이 시대에 그게 무슨 상관인가.”
“……”
“귀찮으면 내가 영혼을 넣어주지.”
복희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건물에 있던 영혼 없는 인간들은 모두 영혼이 생겨나서 의식이 생겨났다. 복희는 말없이 손가락으로 동굴 바깥을 가리켰고 인간들은 어기적거리며 걸어서 나가게 되었다.
뭔가…… 너무하다…….
내가 멍청하게 그 모습을 쳐다보고 있자 흑웅이 내게 말했다.
[주인, 정신 차리시오.]”아니…… 암만 그래도 이건……”
[인간의 영혼이 무가치하다는 건 제갈사에게 이혼대법을 얻으며 이미 알고 있지 않았소? 신에게 있어서 인간 따위는 벌레나 다름없고 원할 때 언제든 찍어낼 수 있는 하찮은 존재일 뿐이오. 그리고 주인은 인간을 만들어낼 권리를 얻은 것뿐이지.]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겪게 되니 인간의 존엄이란 것에 대한 내 생각이 크게 타격을 입은 것 같았다.
‘복희도 그렇고 신이란 존재들은 인간 따위는 수백만 명씩 원할 때마 다 찍어낼 수 있는 거야……’
촉룡도 그런 걸 알고 있으니까 죄책감 따위 없이 수천 년 동안 명부가 사라진 세계에서 인간의 영혼을 마음껏 포식한 것이다. 인간에게 존엄 따위 없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겪게 되니 좀 더 충격이었다.
이런 하찮은 인간을 지키려고 굳이 노력할 필요 있을까? 신이 원한다면 수백 수천 번도 더 인류를 만들었다가 없앨 수 있는 건데.
그리고 죽음과 삶조차도 신에게 무의미하다는 걸 이미 여실히 느껴 버렸다.
내가 혼란스러워할 때 흑웅이 나직이 말했다.
[주인. 태극의 균형이란 빈말로 한 게 아니오. 오로지 천상천하에 주인 만이 [끝]을 볼 수 있을지니, 주인에게 진짜로 중요한 건 강대한 힘 따위가 아니라 업(業). 나는 주인이 자신만의 해답을 낼 수 있도록 끝까 지 도와주겠소.]“…… 고맙다.”
[별말씀을.]흑웅의 말을 듣자 적잖게 위로가 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복희를 따라서 밖으로 나가자 복희는 곧장 차원문을 열면서 말했다.
“그럼 가호를 받으러 가볼까.”
“어디로 갑니까?”
“우선 내가 아는 가장 가까운 신격에게로 가봅세. 아마 말한 대로라면 자네도 구면이겠지.”
파앗!
복희를 따라 차원문을 넘어가자 우리는 이윽고 신비한 바람이 가득 불고 있는 고산준령(高山峻靈)의 대지에 도착했다. 인간 세상과 달리 어마어마한 절벽이 가득했고 기화요초가 가득 피어 있었으며, 곤륜산과는 많이 다른 느낌이었다.
후우웅
그리고 여기저기에 용이 많이 날아 다니는 게 보였다. 내가 이 기이한 장소를 열심히 구경하고 있을 때 복희가 하늘을 보며 말했다.
“오는군.”
파앗!!
하늘에서 거대한 용이 떨어지듯이 활강하여 내려앉았고, 내려앉음과 동시에 인간의 형상으로 변신해서 대지에 섰다. 물흐르는 듯한 변신술 처럼 보였고 나는 상대의 모습을 보자마자 강대한 압박감을 느꼈다.
빠지직
‘강하다!!
신력을 좀 더 자유자재로 다루게 된 지금은 상대가 어떤 힘을 갖고 있는지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상대는 어마어마한 신력을 응축해서 인간의 형상에 내재시키고 있었고, 그 힘은 틀림없는 삼황오제급으로 보였다. 그리고 상대는 굳이 인간을 배려하여 힘을 숨길 생각도 하지 않으니 평범한 인간이 보면 아마 즉시 미치거나 죽었으리라.
나타난 존재는 준엄한 외모를 하고 있는 백색 옷의 장년인이었다. 장년인은 복희와 나를 번갈아서 쳐다보더니 말했다.
“복희여. 똑같이 생긴 저자는 대체 무엇이오? 어마어마한 정령을 거느리고 있군.”
“후후, 역시 자네도 흑웅에게 반응 하는군. 하긴 자네 입장에서는 신경 쓰이겠지.”
“무슨 일로 찾아왔소.”
“별다른 일은 아닐세. 그저 자네가 예전부터 나와 황제 사이에서 어느 편에 붙을지 지속적으로 갈등하고 있지 않았는가? 오늘은 그 대답을 듣고 싶군.”
그러자 장년인은 인상을 찌푸리더니 말했다.
“우리는 이 별의 자식이며 수호자. 어느 한쪽의 편에 서지 않겠소. 끝까지 중립을 지키겠다고 의사를 표명했소만.”
“압도적인 약육강식의 논리 앞에서 그런 어설픈 중립이 통하겠는가? 어느 쪽이 이기든 간에 자네들은 결정 해야만 해. 그래야 이 별에서 생명체가 살아남도록 유지를 시킬 수가 있겠지.”
“그 어떤 협박에도 우리는 굴하지 않소.”
“그래?”
복희는 짓궂은 미소를 짓더니 힐끔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백웅. 인(印)을 되살려서 보여주게. 그러면 눈앞의 못된 풍룡(風龍)도 마음이 바뀔 것 같군.”
“네?”
무슨 소리야?
그러자 나 대신에 내 옆에 있던 흑웅이 눈치챈 듯 말했다.
[과연…… 맨입으로 선신의 가호를 줄 리가 없지. 처음부터 일거양득을 노리고 나를 데려왔구나.]“하기 싫은가, 흑웅?”
[아니오. 주인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하겠소.]그렇게 중얼거린 흑웅이 갑자기 자신의 쌍장을 마주치더니 권능을 발휘했다.
성라회천(星羅回天)
재귀발현(再歸發現)
응룡왕(應龍王)의 인(印).
파앙!
다음 순간 내 손등에 화끈한 느낌이 들더니 언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은 기묘한 문장이 새겨졌다. 그리고 그 문장이 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아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복희가 다가와서 내 손등을 휙하고 들어서 백의의 장년인에게 보여주며 말했 다.
“보게. 이자는 자네에게 인정을 받은 게 아닌가?”
“……!!”
그러자 백의의 장년인은 눈을 부릅뜨고 경악한 듯했다. 그러고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너희는 누구냐!”
이어진 말에 나는 상대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었다.
“누구이길래 나 응룡(應龍)이 준 적도 없는 왕의 인장을 갖고 있는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