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1523)
전생검신 81권 12화
나는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뭐가 나아졌는지 잘 모르겠군.’
신력이 보다 안정되었다지만 당장 체감되는 건 없었다. 다른 때는 확실히 내 힘이 강해졌다거나 쓸 수 있는 힘의 한계가 높아졌다는 실감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냥 내부구조가 바뀌었다는 정도의 느낌밖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브라흐마를 쳐다보자 그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런 식의 구조개선은 당장 힘의 향상을 느끼기 힘들지. 딱 잘라 말해서 자네가 이전보다 더 강해진 건 아니고 그대로니까.”
“비슈누와 시바의 영혼을 내게 주지 않았소? 그러면 그 2개의 영혼만큼이나 내가 강해진 게 아니오?”
브라흐마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신의 힘을 그렇게 단순히 산술적으로 측정할 수는 없네.”
“어째서요?”
“생각해보게. 강한 신이 있으면 약한 신이 있는 법이고 약육강식의 법칙에 따라 신이 신의 힘을 뺏을 수도 있지. 그렇게 치면 수십억 년이 넘는 우주의 장구한 역사 동안 누군가는 신력을 무한히 강화시켜서 절대 강자가 되었어야 해. 허나 잘 보면 우주의 만신전에서도 최상위로 갈수록 그 힘은 균형을 이루고 있으며 쉽사리 위계가 달라지지 않아. 왜 그럴까?”
“흐음…….”
그러고 보니 그렇다.
‘황제나 흉신 같은 놈들도 그냥 태어날 때부터 강했던 것 같고 수십억 년 동안 다른 자의 힘을 마구 먹어치워서 강해졌던 것 같진 않아…… 복희나 여와도 그렇고…….’
타인의 힘을 흡수해서 강해질 수 있는데 왜 그런 법칙은 강력한 신들이 잘 써먹지 않는걸까?
브라흐마의 말은 평소에 잘 생각하지 않던 부분을 짚고 있어서 나는 곰곰이 생각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나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태어날 때부터 계급이 다 정해져 있기 때문에 그런 거 아니겠소? 처음부터 격차가 너무 커서 후발주자나 약한 신들이 아무리 억년의 세월 동안 신력을 모아봤자 상위급 신의 권능에는 우주가 끝날 때까지 도달할 수 없는 거지.”
“호오, 그것도 맞는 말이네. 확실히 그런 점도 적지 않게 있지. 약자들이 절대 범접할 수 없는 힘의 격차가 처음부터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야.”
브라흐마는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허나 그렇게 치면 최상위 신들이 서로 전쟁을 벌여 포식하여 최강자가 탄생하지 않는 이유는 어째서인가? 어찌 되었든 서로 먹어치우게 되면 강자 중에서도 우열과 격차가 금방 벌어질터인데? 방금 자네가 말한 건 그 이유를 설명하지 못해.”
“음…… 그건 모르겠구려. 왜 그렇소?”
브라흐마가 자신의 검지를 마주쳤다.
“아주 간단한 이유야. 신성이 일정한 수준에 도달하면 그때부터는 다른 신을 잡아먹어 포식해봐야 자신이 다룰 수 있는 권능의 계열이 하나 늘어날 뿐, 힘의 절대량이 거의 상승하지 않기 때문일세. 산술적으로 거의 의미가 없어.”
“……!!”
“그렇기 때문에 상위 신들은 자칫하면 서로 죽어서 오랫동안 소멸할 수도 있는 신의 전쟁에 목을 매지 않고 적당한 균형을 맞추고 있는 걸세. 실익이 별로 없는데다가 강대한 신이라 할지라도 약한 신이 필사적으로 날린 저주에 잘못 당하면 고생하게 되어 있거든…….”
그건 몰랐는데?!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삼황오제나 [옛 지배자]들이 서로를 쥐 닭 보듯 별로 싸우고 싶어 하지 않았던 건가?’
확실히 신들끼리 전쟁을 벌이는 게 꽤 특수한 상황이라는 건 그동안 전생을 하며 많이 느꼈다. 그다지 싸우고싶지 않지만 큰 이권이 걸려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싸운다는 경우를 많이 본 것이다. 하지만 신들이 왜 저렇게 소극적인지는 잘 몰랐는데 이제야 그 이유를 알게 된 것이리라.
나는 놀라다가 이윽고 뭔가 반박하고 싶어서 말했다.
“잠깐. 나는 전생하면서 여러 번 신의 유해(遺骸)를 얻어 흡수하면서 강대한 힘의 상승을 느꼈소만? 당신 말대로라면 내 힘이 상승하는 건 모순이잖소!”
“뭐가 모순인가? 그냥 자네가 평범한 인간이었다가 신력을 얻어서 급격히 신의 경지를 얻은 것뿐이지. 아예 무(無)나 다름없는 상태에서 신력이 채워지는 경우는 방금 내가 말했던 힘의 절대량을 따지기에는 너무 낮은 수준이란 거야. 실제로 격조 낮은 신들은 자네처럼 신을 잡아먹고 크게 힘을 늘리는 경우도 많고.”
“…….”
“허나 자네도 언젠가부터 힘의 성장이 부진하다는 걸 느끼고 있었을 걸세. 그렇잖은가?”
“음…… 그런 것 같소.”
어떻게 보면 나는 아마테라스의 반신(半神)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흡수했으니 단순계산으로는 예전에 상위 신을 뛰어넘었어야 정상이다. 거기에다가 추가로 얻은 신력들도 많았으니 삼황오제급의 신력을 가졌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아직 그 수준에는 아쉽게 미치지 못하고 있었고, 브라흐마가 말한 대로 힘의 성장에 정체기가 도래한 게 맞는 것 같았다.
브라흐마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말했다.
“자네도 이제 우주를 주름잡는 존재의 일좌나 다름없어진 걸세. 성장의 한계에 도달한 게야.”
“크윽…… 그런 거요?”
“다만 이건 단순히 신을 포식하는 형태의 성장만 이야기한 걸세. 자네가 전생자라는 것까지 생각하면 아직 몰라.”
“그건 또 무슨 소리요?”
“……전생자는 힘과는 별개로 인과율(因果律)을 흡수하고 있을지도.”
그렇게 중얼거린 브라흐마는 말했다.
“자, 내가 해준 신력의 정리는 언젠가 덕을 볼 날이 있을걸세. 그보다 이제는 무신에 대해서 얘기를 해 줄까?”
무신!!
나는 그 얘기를 듣자마자 신경이 예민해졌고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주시오.”
“내가 알고 있는 무신의 정보란 바로…….”
처억
브라흐마의 손가락이 바로 눈앞에 있는 거대한 궁궐을 가리켰다. 나도 모르게 시선이 궁궐으로 향하자, 브라흐마가 확신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무신이 바로 [큰 굴레]의 시련을 담당하는 존재 중 하나일 거란 사실이다!”
“……?!”
“우리는 저 안에 들어가서 무신을 볼 수도 있어.”
지, 진짜로?!
나는 예상치 못했던 얘기에 놀랄 수밖에 없었고 잠시 후 의심을 담은 목소리로 브라흐마에게 말했다.
“근거 있소? 지금 나를 현혹시키려고 이 자리만 모면하는 헛소리를 하는 거라면 절대 가만두지 않…….”
“내 이름을 걸고 이건 진실일세!”
“헉!”
이름까지 걸었어?!
내가 당황하자 브라흐마가 말했다.
“무신은 본디 메아리처럼 여겨졌네.”
“메아리라고?”
“우리가 존재하는 우주에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그러면서도 자신이 존재한다는 걸 여기저기에 알려주는 자였네. 그건 존재라기보다는 일종의 개념이었고 지금은 소멸한 반고와 같은 존재가 아닐까 예상했지. 그래서 역사의 전면에 무신이 등장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어. 그리고 그 존재가 있다는 것조차 아주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전혀 모르고 있지.”
“당신은 어떻게 알고 있는 거요?”
“[천지를 보는 눈]과 창조신의 힘 덕분이지. 아무리 실존 여부가 애매하더라도 무신을 추종하는 자가 분명히 있으며 그 본질의 메아리가 공명(共鳴)하기에 그자가 있다는 걸 확신하고 있네. 아마 나처럼 확신하는 자는 우주 전체에서 없다시피 할걸세.”
“…….”
창조신의 힘이라는 게 생각보다 대단한 것 같았다.
그 능력만으로도 우주의 끝과 시작이 이어지는 계승지의 존재는 물론이고 무신의 존재마저 확신할 수 있다니!
‘이자는 현실세계에서는 굉장한 신이었겠구나.’
내가 상념하고 있을 때 브라흐마가 뚫어져라 궁궐을 노려보며 말했다.
“헌데 내 [천지를 보는 눈]이 저 궁궐을 주시하며 알게 되었네. 바로 그 메아리의 근원이 저 궁궐의 심층(深層)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정말인가? 무신이 저 궁궐 안에 있다는 말인가?”
“아마도.”
“그는 어디에 있소? 정확한 위치가 보이오?”
내 질문에 브라흐마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안 보이네. 그는 무수한 원(圓)에 둘러싸여 있어서 아지랑이 같은 모습만이 보여. 그 모습은 절대 무신의 실체가 아닐 테니, 원을 걷어내야만 무신을 만날 수 있겠지.”
“원……? 마법진 같은 거요?”
“글쎄. 이곳은 계승지이니 나로서도 확실히 알 수 없는 게 많이 있어.”
“으음…….”
무신이 이 앞에 있다고.
나는 강한 호기심과 의문을 느꼈다.
‘대체 무신은 왜 여기 있는 걸까?’
그리고 어쩌다 보니 옥좌의 내부까지 오게 되었지만 천암비서와 이 장소는 대체 어떤 연관이 있는 거지?
수수께끼가 하나도 해결되지 않고 되레 깊어지는 기분에 나는 괴롭기까지 했다. 책사들조차도 이 문제에 해결을 주지 못하리라는 직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저벅
브라흐마가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나는 들어가겠네. 자네는 마음대로 하게.”
“무슨 말이오? 같이 도전하자는 게 아니었소?”
그가 약간 키득거렸다.
“내가 보기에 자네는 같이 하자고 명령이나 권유를 하면 청개구리처럼 싫어하고 따지는 성격인 것 같아서 말일세. 자유의지로 택하는 걸 더 선호하는 것처럼 보이더군.”
“…….”
“나는 자유의지라는 게 정말 존재하는지 회의적인 입장이네만, 아무튼 자네가 원하는 대로 하시게.”
나는 역정을 냈다.
“참 말을 거지처럼 하는군. 어차피 나와 함께 시련을 통과하기로 한 거 아니요? 당신 성격이야말로 더럽다는 것만 알아두시오.”
“흐흐. 형제들에게도 종종 듣던 소리군…….”
저벅저벅
저벅…….
이윽고 나와 브라흐마는 함께 궁궐의 안으로 진입하게 되었다. 궁궐 안은 스산한 바람이 불고 있었으며 한 줌의 먼지가 흩날리는 듯했다.
‘어둡군.’
마치 과거에 폐궁에 잠입했을 때가 생각났다. 그때와 다른 점은 이곳은 폐궁이라기엔 궁궐 내부가 정갈하게 파손 없이 존재한다는 것이고, 또한 대명제국 궁궐의 양식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또 묘하게 동양풍의 느낌이 나서 친숙함이 느껴졌다.
브라흐마가 앞서 걷던 도중 말했다.
“너무 내 얘기만 했던 것 같군. 자네가 어쩌다가 이 계승지까지 오게 되었는지도 간단히 말해줄 수 있겠나?”
브라흐마의 요청에 나는 대답을 해주기로 마음먹었다. 어찌 되었든 이 살벌한 곳에서 시련을 함께 통과해야 하는 임시 동료인 데다가 그가 내게 신력을 조율하게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걸어가면서 말해주겠소. 내가 여기까지 오게 된 건…….”
나는 일련의 상황을 간략하게 이야기해주었다. 그 이야기를 반 식경 정도 듣고 있던 브라흐마는 황당하다는 듯 웃었다.
“하하하하! 그것참 걸작이군. 요약하자면 현실에서 외우주, 탁록, 천암비서, 천암비서 내의 심층의 시련을 통과하다가 또 육체와 정신이 나눠진 상태로 옥좌의 내부에 있는 계승지까지 왔나?”
“……그렇게 되는구려.”
“그럼 여기서 문제가 되는군. 자네는 그럼 지금 정신체라는 소리인데 자네 육체는 어떻게 된 게야?”
“…….”
그러게…… 내 육체는 뭐하고 있다냐?
생각하기 싫었던 현실적 문제를 지적당하자 나는 불편해졌다. 그러나 결국 마주쳐야 할 현실이었기에 나는 짧게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아마 지금도 자기 멋대로 달마랑 싸우고 있지 않을까 싶은데…… 하아…… 나도 지금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모르겠소.”
“나는 알겠는데.”
브라흐마의 깐족거리는 듯한 말투에 나는 괜히 울컥하는 마음이 들어서 퉁명스레 대꾸했다.
“알긴 뭘 안다는 거요? 나는 정말 기본적인 것만 당신에게 얘기했고 그 사이에 얽힌 일이 너무나 많소.”
“글쎄. 자네가 엄청나게 싸돌아다닌 건 사실이지만 요점은 변하지 않는 것 같네.”
“요점이 무엇이오?”
이어진 브라흐마의 말에 나는 흠칫했다.
“자네가 천암비서의 끝에서 맞닥뜨린 시련은 끝나지 않았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거야.”
“……?! 무슨 소리요. 그 말은…… 달마와 싸우고 있던 시련이 아직 안 끝났다 그 소리요?”
“그래. 아무리 시공간이 달라졌어도 아직 자네는 달마와의 싸움을 끝냈다 할 수 없지 않은가? 내가 천암비서의 시련을 내린 자라면 그런 애매한 상태를 통과했다고 쳐주진 않을 것일세.”
나는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개 같은 기분에 전율했다.
“제기랄…… 씨발…… 그런 개같은 경우가…….”
“없다고 말할 수 있나? 세상이 자기 좋을 대로 돌아가는 거라면 자네가 여기까지 오는 일도 없었겠지.”
“…….”
내가 할 말이 없어져서 입을 다물자 브라흐마는 말했다.
“외신이 무슨 생각으로 자네를 여기까지 보냈는지는 모르겠어. 허나 나 또한 외신이란 존재가 나름대로의 수단으로 이야기에 끼어들려 한다는 건 알고 있네. 그렇다면 손쉽게 유추할 수 있는 수수께끼 풀이가 있지.”
“그게 무엇이오?”
“간단해. 외신 [검은 산양]은 자네가 그 시점에서 달마를 꺾어서 천암비서의 1단계 시련을 통과하는 걸 원치 않았던 거야.”
멈칫
내가 놀라서 그 자리에 정지하자 브라흐마가 나를 돌아보았다.
“왜 그러나? 계속 걷지 않고.”
“……내가 시련을 통과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고? 외신이 어째서?”
“흐음. 아무래도 조금 충격을 받은 모양이군.”
브라흐마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 싸움의 양태를 들어 보니 달마가 자네를 처리하려고 외신을 소환했고 외신이 그에 감응하여 소환된 모양이더군. 헌데 그거 알고 있나? 외신쯤 되는 존재는 일개 소환수나 신격과 달리 그 어떤 소환의 법칙도 무효가 되네. 즉 계약을 했을 때 그 어떤 방식으로 외신에게 제약을 걸었어도 외신이란 존재는 계약서 자체를 찢어발기거나 그 자리에서 계약조항을 고쳐쓸 수 있단 게야. 이게 바로 외신의 계약이 일반적인 [옛 지배자]와의 계약과 다른 점이지.”
이건 처음 듣는 얘기였다. 지금의 이야기가 언젠가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서 잠시 외우고는 반문했다.
“하고 싶은 말이 뭐요?”
“즉 그 자리에서 달마의 소환에 응했다는 건 처음부터 자네를 노리고 일부러 소환되어 줬단 걸세. 얘기를 들어 보니 자네가 그 상황에 꽤 승산이 있었기 때문이겠지. 치우의 뿔에 잠재되어 있던 힘으로 단숨에 역전하여 달마를 몰아쳤다고 하지 않았는가?”
“…….”
“허나 그렇게 자네가 달마에게 승리하게 놔두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외신인 [검은 산양]은 어떻게든 자네를 이 [옥좌]의 내부까지 보내버린 걸세. 사실은 자네가 치우의 뿔을 발현시키는 순간 이겼어야 하는 싸움인데도 말이야.”
브라흐마의 말은 꽤 일리가 있어 보였다. 그리고 나는 여태껏 혼란스러웠던 상황이 논리적으로 정리가 됨을 느꼈고 이내 충격을 받았다.
‘외신이 직접 나를 방해했단 소리군……!’
대체 왜?
아니 그것보다 외신이 나를 방해한다면 앞으로 어떻게 된다는 말인가?
그 압도적인 존재를 이기기는커녕 그 앞에서 살아남을 방법조차 생각이 나지 않는데!
브라흐마가 말했다.
“내가 훈수를 둘 입장은 아닌 거 같지만 굳이 조언해주자면 너무 지금 상황을 나쁘게 생각하지 말게.”
나는 황당해서 버럭 외쳤다.
“아니 씨발! 나쁘게 생각 안 할 상황이오? 전 우주에서 다섯 손가락에 들어가는 절대악신이 대놓고 날 방해한다는데 앞으로 내 운명이 어떻게 될지 감도 안 잡힌단 말이오! 게다가 계승지에서 난데없이 시련을 겪다니.”
“당연히 절망적인 상황이긴 하네만 나라면 절망하지 않을 거란 말일세. 왜냐하면 절망하기엔 뭔가 이상하거든.”
“뭐가 이상하오?”
브라흐마는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만사(萬事)는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달리 해석되네. 그리고 외신이라는 존재들은 상위신조차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고차원적인 자들이라 자네 생각처럼 단순한 의도로만 움직이지 않아. 정말로 자네를 방해할 셈이었으면 더 단순한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왜 굳이 시련 도중에 여기까지 보냈겠나?”
“…….”
“[1차 시련통과를 방해했다]는 사실이 정말로 꼭 해가 되는 건지를 생각해보게.”
“말을 정말 어렵게 하는구려. 그래서 그게 어떻게 상황을 긍정적으로 생각할 만한 얘기가 된단 거요?”
그러자 브라흐마는 기가 막히다는 듯 껄껄 웃었다.
“허 참…… 너무나 인간적이군. 전생자가 이렇게까지 인간적일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는데.”
“아니 무슨…….”
“그런 건 알아서 생각해보게. 다 떠먹여 줘서야 재미가 없잖나?”
휑하니 대꾸해 버린 브라흐마가 문득 걸음을 멈춰 서며 말을 이었다.
“그보다 우린 함정에 걸린 것 같네. 시련이 시작된 건가.”
“함정이라니?”
“우리가 꽤 긴 이야기를 나누었지. 그리고 최소한 오천 걸음은 걸었다네. 헌데 주위를 둘러보게.”
나는 근처의 건물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깨달았다.
“그렇군. 여긴 시작지점이구려.”
“그래. 아마 내 지식으로 이건 무림인들이 사용하는…….”
“틀림없소.”
나는 근처의 기둥 모서리에 새겨져 있는 팔괘 문양을 보자 눈빛을 날카롭게 만들었다.
“지금 우리는 진법(陣法)에 걸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