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1732)
전생검신 92권 03화
뭐……?!
나는 니알라토텝의 말에 내 팔이 잘려나간 통증조차 잊을 정도로 놀라고 말았다.
‘놀아달라는 건…… 싸우자는 말이나 다름없어!’
아무리 니알라토텝이라지만, 외신에게 싸움을 걸어 버리다니!
정작 그 말을 들은 알 카르다흐는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었다. 그 대신에 마치 확인이라도 하듯이 니알라토텝에게 되물었다.
“어떻게 놀아줄까?”
“언제는 물어봤던 것처럼 말씀하시는군. 언제든, 어떻게든, 무엇으로든 놀아주던 자들이.”
알 수 없는 말투로 비아냥거리는 니알라토텝이었다.
그러자 알 카르다흐는 천천히 손을 들어서 말했다.
“진심으로 놀아줄 수는 없음을 알아두어라.”
후왁!
그 순간 니알라토텝의 등 뒤편에 책이 소환되어 있었다. 나는 그 책을 보는 순간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저…… 저거다!’
과학의 가면 나일라토프는 물론이고 창힐도 단숨에 파리 잡듯이 잡혀 버린 공격! 아무리 한가락 하는 놈이라 하더라도 예외 없이 단숨에 즉살 당했던 것이기에 나는 본능적인 공포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다. 비록 나를 향한 공격은 아니라 할지라도 저 새하얀 책장을 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릴 정도였다.
니알라토텝이 순간 힐끔 하고 책장(冊張)을 뒤돌아보는 것 같았고 그와 동시에 알 카르다흐가 주먹을 쥐자 책장이 그대로 접혔다.
콰직
끔찍하게 무엇인가가 터지는 소리!
‘역시!’
나는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니알라토텝이라 해도 별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신의 권능은 정말로 차원이 다른 영역에 있는 것이다. 옆에서 보면 언뜻 속도, 기술, 권능 같은 걸로 피할 수 있는 것처럼 보여도 저 공격 자체가 온갖 능력을 다 무시한다는 걸 알게 되면 소름이 끼칠 지경이었다.
그러나 이어진 상황은 나를 당혹하게 만들었다.
끼기기긱…….
끼기긱
마치 심연에서 긁혀나오는 듯한 괴음이 장내에 울린다. 그리고 닫혀 있던 책장에서 삐죽거리며 핏물이 서서히 새어 나왔고 그 핏물이 세포 덩어리로 변해서 책장의 바깥으로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주르륵거리며 흘러나오는 그 끔찍한 세포 덩어리 핏물이 책장을 더럽히는 모습은 역겨우면서도 초현실적인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핏물 속에서 촤악 하면서 전신에 피칠갑을 하고 있는 니알라토텝이 다시금 부활하여 모습을 나타내었다.
“……!”
이, 이럴 수가!
저 무시무시한 외신의 권능을 자력으로 극복했다고?!
‘이런 적은 처음이야!’
초현실적인 광경에 내가 깜짝 놀라고 있을 때 니알라토텝은 껄껄 웃는 듯했다.
“하하하…… 아주 기나긴 굴레 속에서…… 몇 번이고 이런 적도 있었지 않은가!”
츄와아악
말이 끝나는 순간 니알라토텝이 만들어낸 피웅덩이에서 만들어진 수많은 피빛 촉수덩어리가 날아가서 외신 알 카르다흐의 전신을 덮쳤다. 알 카르다흐의 몸은 그 촉수덩어리에 속절없이 붙잡혀 버렸고, 어찌 된 일인지 알 카르다흐조차도 니알라토텝의 핏빛 촉수를 떨쳐낼 수 없는 모양이었다.
여전히 무표정하게 알 카르다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자 니알라토텝이 또다시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신이여……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는 그 눈빛이 기억난다…… 네 놈들은…… 그래…… 조금이나마 기억났다…….”
“…….”
“그 무의미를 지워 버릴 수 있는 존재를 예전부터 찾고 있지 않았는가?”
퍼버벅!
다음 순간 알 카르다흐의 몸은 핏빛촉수의 압력에 산산조각나서 터지고 말았다. 적나라하게 휘날리는 육편을 바라보던 나는 지금 상황이 도저히 믿기지 않아서 눈을 부릅떴다.
‘니…… 니알라토텝…… 설마 외신조차도 이길 수 있다는 거냐!’
저놈이 외신의 가장 강력한 가면이라지만 외신 그 자체는 아니라고 알고 있는데 설마 이런 결과가 나올 줄이야!
그렇다면 나는 외신조차 쓰러뜨린 저 니알라토텝을 도대체 무슨 수로 상대해야 하는 건가!
‘아니 그것보다 전생연기는?! 어떻게 되는 거지?!’
미치겠다!
나 진짜 큰일난 거 아냐?!
내가 절망과 공포를 느끼고는 몸이 굳어 있던 바로 그 때였다.
번쩍
갑자기 달마대사의 배후에 있던 어둠의 영(靈)이 눈빛을 번득이는 듯했다. 그러고는 마치 자신의 의지가 있는 것처럼 장중한 신언(神言)을 말했다.
[오래된 자여…… 이 모든 게 그대의 뜻대로인가…… 원하는 대로 해 주마.]그와 동시에 어둠의 영의 눈에서 더욱더 강렬한 안광(眼光)이 맺히기 시작했고, 그 앞에 있던 달마 또한 전신이 어둠으로 물들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여태까지도 강력한 신력을 보여주고 있었던 달마였지만 어둠의 영이 힘을 더 많이 내려준 듯, 달마의 마력은 갑작스럽게 증폭되는 게 눈에 보였다.
쿠구구구!
[크아아아……!]달마가 증폭되는 마력의 소용돌이 속에서 괴성을 내질렀다. 합장을 하면서 자신의 힘을 더욱 도야시키는 달마의 전신에는 핏줄이 잔뜩 서 있었으며 눈에서도 혈광(血光)이 내뿜어지고 있었다. 달마의 힘이 갑자기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자 장내의 상황에도 변화가 생겼다.
빠지직!
‘차원(次元)이 부서진다!’
여기저기에서 공간에 균열이 일어나고 차원이 부서져 나간다는 게 느껴졌다. 나는 여태껏 니알라토텝의 힘이 압도적이던 상황에서 달마의 힘이 그 수준을 따라잡기 시작해서 나타난 현상이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힘이 대등해지면서 차원에 가해지는 압박이 더 강해진 거야! 이대로 가다가는…….’
쉬리리릭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 공간 여기저기에는 시꺼먼 구멍 같은 게 출현하기 시작했다. 마치 텅 비어 있는 듯한 그 공허한 어둠 속에는 아무것도 없었으며 점차 그 숫자를 늘리는 듯했다.
‘큭!’
나는 전신을 신력으로 방어하고 있는데도 전신이 땡기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저 시꺼먼 구멍 하나하나에 막대한 힘이 서려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니알라토텝이 즐겁다는 듯 히죽 웃었다.
“블랙홀이 만들어지는 중이군. 이곳을 내 정원으로 바꾸지 않았다면 진작 지구는 물론 태양계도 순식간에 소멸되었을 텐데…… 뒷일은 생각도 하지 않는구나. 하하하.”
그러자 달마가 노호성을 질렀다.
[진공가향이 이루어져 삶도 죽음도 없는 세계에…… 더 이상 네 놈이 만든 생지옥은 없을 터이니……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있겠느냐!]달마는 단지 호통만으로는 끝낼 생각이 아니었는지 말이 끝나자마자 니알라토텝을 향해 일 장(一掌)을 날렸다.
대일여래장(大日如來掌)!
콰직
빛으로 이루어진 이기어수(以氣御手)처럼 보이는 역장(力場)! 대일여래장의 일격은 순식간에 니알라토텝의 몸뚱이에 쐐기처럼 박혔고, 니알라토텝은 그 한 방의 장력에 전신이 뒤틀어지듯 회전을 하며 뒤로 날려갔다.
콰광!
“……!”
나는 저만치 뒤로 날아가는 니알라토텝을 보고는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달마의 힘이 아무리 강해졌다지만 설마 저렇게까지 강해질 수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나는 자세히 달마의 잠재력을 살펴보고는 내가 섣불리 생각했었다는 걸 깨달았다.
‘가…… 강해! 눈깜짝할 사이에 더 강해진 거야!’
도리어 지금의 달마가 나 따위는 손쉽게 잡아죽일 수 있을 만큼 강해졌다! 잠깐 눈을 뗀 사이에 또다시 수십 배는 강해진 듯한 달마의 어마어마한 성장세는 도저히 상식적인 수준이 아니었다. 달마 배후에 있는 어둠의 영이 부여하는 힘은 말 그대로 천문학적이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콰과광
니알라토텝의 몸뚱이는 차원을 수십 겹이나 뚫고 날아가서 이윽고 장내에서 사라져 버렸다. 아마 큰 부상은 입지 않았을 테고 조만간 돌아올 테지만, 니알라토텝을 저렇게 만들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했다.
내가 멍하니 있을 때 달마가 말했다.
[그대여…… 물러나라! 니알라토텝은 되돌아올 것이다!]“음……!”
[최후의 일격에 휩쓸리기 싫다면 비켜라!]나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말했다.
“달마! 정말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오? 당신이 강해졌다지만 저 니알라토텝은 외신을 쓰러뜨렸단 말이오.”
[…….]달마는 내 회의적인 말에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아후라 마즈다를 알고 있는가?]“어? 그…… 배교의 빛의 신…….”
[대일여래(大一如來)의 시대는 반드시 올 것이니…… 진정한 법신(法身)의 광명(光明)이 이 땅에 도래하리라…… 미륵(彌勒)이 하생(下生)하는 날에…….]“…….”
[나의 믿음이 건재한 한…… 그 무엇도 포기할 수 없노라.]나는 달마를 무척이나 복잡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벌써 몇 번이나 다른 모습으로 만나는 달마였지만 어째서인지 나는 볼 때마다 달마를 마냥 미워하거나 싫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 어째서인지 내 직감은 그가 세상에서 가장 거친 삶을 살아온 존재이며 모든 시작과 연관이 된 자라고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달마…… 아무런 근거도…… 없잖소.”
내 말에 달마는 눈에 공허한 혈광을 담은 채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의 믿음에……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이오? 아후라마즈다도…… 대일여래도…… 실재하지 않는 환상이면 대체 어떻게 하려는 거요? 아니…… 그 신들이 실존한다 한들…… 저 니알라토텝보다 강할 수가 있겠냔 말이오.”
[…….]“니알라토텝이 외신을 쓰러뜨렸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나보다 잘 알지 않소? 그런데도 진공가향을 추구하다니…… 그건 이미 광기가 아니오.”
이런 말을 해선 안 되는 건 안다.
비록 실패할지라도 달마의 의지야말로 가장 숭고한 것이란 건 알고 있고, 이렇게 찬물을 끼얹어봤자 좋을 건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나는 달마에게 이 질문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외신을 쓰러뜨린 니알라토텝.
그 말은 이미 전 우주의 모든 신격 중에 최강이라 해도 무방하다는 소리다.
이토록 확실한 절망 속에서 실존하는지도 애매한 환상을 뒤쫓아 진공가향을 추구하는 게 어리석음 그 외의 표현이 있겠는가?
그러자 달마는 천천히 말했다.
[그대는 신이 존재하기 때문에 믿음을 갖고 있는가?]“…… 당연히 그렇지 않겠소. 신이 있으니 믿음도 있는 것이오.”
[그렇지 않다네.]달마는 무척 깊은 현기를 담은 울림으로 또박또박 말을 이어나갔다.
[설령…… 아후라 마즈다도 대일여래도 없다 하더라도…… 내가 광기의 고행 속에서 보았던 그 계시가 그저 나만의 미혹이며 환상이었을 뿐일지라도…… 그 어떠한 희망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하더라도…… 나는 세계멸망에 대한 나만의 신념을 멈추지 않았을 것일세.]“……?!”
[믿음이란…… 자기만의 광기일지도 모르지…… 허나…… 믿음이란 동시에 상상력이며…….]달마는 쩌렁쩌렁 커다란 외침을 외쳤다.
[이 필멸의 굴레 속에서 허락된 유일한 자유인 것이다!]콰광!
다음 순간, 난데없이 달마 앞에 불쑥 나타난 니알라토텝이 칼날처럼 변한 자신의 손가락을 휘둘러 달마를 베어 버리려 했지만 달마가 그 공격을 그대로 맞받아치며 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니알라토텝은 달마와 손속을 겨루며 광소를 터뜨렸다.
[아하하하…… 자유인가! 자유의지 따위 존재하지 않는 주제에 자유를 논하는가!] [그렇다!] [존재 자체가 착각일진대 믿음에 의미가 있는가? 내가 유희를 즐기는 한 네 놈이 믿을 만한 것은 이 우주에 아무것도 없다!]콰광
니알라토텝과 달마 사이의 격돌이 더더욱 격렬해지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충돌 하나하나에 어마어마한 신력의 잠재력이 맺혀 있는 걸 보니 기가 질릴 정도였다.
‘달마는…… 아직도 강해지고 있다……! 하지만 니알라토텝은 그런 달마에게 딱 맞춰서 자신의 힘을 올리고 있어.’
누가 봐도 무한의 힘을 지닌 니알라토텝에게 달마가 농락당하는 그림!
아닌 게 아니라 니알라토텝이 간간이 우세를 점할 때마다 달마의 육체가 청혈을 뿜어내며 크게 뜯겨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절망적인 상태에서도 달마는 결코 투지를 잃지 않고는 연거푸 외쳤다.
[믿음이 존재치 않더라도 법신(法身)은 언제나 내 마음속에 있을지니…… 이 마음이야말로 내가 섬기는 신일 것이리라!]부부북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달마의 장포가 크게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그와 동시에 달마의 몸이 새하얗게 빛나기 시작했고 니알라토텝은 그 빛을 피하지 못하고 휩싸여 버리고 말았다. 니알라토텝은 뜻밖인 듯 말했다.
달마가 최후의 절규를 내질렀다.
[진공가향을 이루지 못하는 건 원통하나…… 내 후대의 전생자가 이루어줄 것이리라!]번쩍……!
그리고 온누리를 비추는 듯한 강렬한 섬광! 그 빛이 너무 강해서 부서진 차원에서 흘러나오던 블랙홀이나 니알라토텝의 끔찍한 정원이 섬광에 말려들자마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순식간에 사기(邪氣)가 사라진 청정한 공기가 느껴졌다.
그러나 나는 달마가 소멸한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을 보고는 그만 숨을 멈추고 말았다.
“……!”
니알라토텝은 멀쩡했다.
놈의 말끔한 몸뚱이에는 아무런 피해도 없었고 그저 우두커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누가 봐도 멀쩡한 모습이었기에 나는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다.
‘그…… 그만한 힘을 가진 달마가 자폭까지 했는데 멀쩡하단 말인가……!’
저런 괴물을 어떻게 이겨야 하지?!
하지만 잠시 후 나는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응?”
잘 보니 니알라토텝은 하늘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하늘에 떠있는 어둠의 영을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달마의 배후에 있던 어둠의 영은 달마가 소멸한 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한동안 니알라토텝을 주시하고 있다가, 갑자기 휙 하고 꺼지듯이 사라지고 말았다.
이상한 변화가 일어난 것은 바로 그때였다.
우두둑! 우두둑!
니알라토텝의 모습이 일그러졌다. 끔찍한 촉수 같은 대가리를 갖고 있던 이형(異形)의 괴물 같은 모습에서 마구 골격과 몸뚱이가 뒤틀리더니 더욱 기이한 형태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한동안 그 모습을 쳐다보았는데, 니알라토텝의 모습은 그렇게 약 반 각 정도 변하더니 마침내 형태를 고정했다.
우드득!
니알라토텝의 변한 모습은 핏빛의 구름을 몸 주변에 두른 시꺼먼 어둠의 정령(精靈)처럼 보였다. 정령이라 해도 정령수(精靈獸)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았는데 그 모습이 마치 늑대를 연상하게 했다. 그런데 흉측하다기보다는 어느 정도 고대신의 전령을 닮아 있었으며 신령스러운 기운도 흐르고 있었기에 나는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의외로 정상적인데……?’
여태껏 끔찍하기 짝이 없는 괴물의 모습으로만 변했던 니알라토텝을 생각해 볼 때 저 형태는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적어도 내가 아는 니알라토텝과는 달라 보였다.
정작 정령수처럼 변한 니알라토텝은 뭔가를 깨달은 듯 중얼거렸다.
[이런 적도 있었던 거군. 재미있구나!]“……?”
아까부터 저놈은 뭔 소리를 하는 거지? 뭐가 재밌다는 거야?
내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때 니알라토텝이 내 쪽으로 시선을 돌리더니 말했다.
[너는 무엇이냐?]“갑자기 무슨…… 전생자 백웅이다!”
[백웅…….]내 이름을 되뇌이던 니알라토텝이 문득 썩은 웃음을 지었다.
[아주 재밌군…… 너는 아주 재밌는 존재다!]“뭐…… 뭐가 재밌다는 거냐!”
[너 하나를 돕기 위해서 방금 외신 두 명이 움직였음을 알고 있는가?]“어?”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어리둥절할 때 니알라토텝이 말을 이었다.
[원래 역사에서 내가 달마에게 이런 반격을 당할 일 따윈 없었겠지. 황도궁의 주인도 한낱 전생자에게 그렇게까지 큰 힘을 몰아줄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만유의 지모가 인과율을 무시하고 말도 안 되는 힘을 달마에게 부여한 결과…… 나는 커다란 진공가향의 봉인(封印)에 당하고 말았구나.]“……!”
[어째서지? 어째서 외신들은 너에게 이토록 집착하는 것이냐? 전생자의 숙적인 내게 가해진 이 봉인이…… 실제 너의 전생에 계승된다는 걸 모르지 않을 터. 또한 그것은 아무리 외신이라 하더라도 그들에게 부담이 되는 행위이다.]“아, 아니…….”
[너는…… 뭔가 다르다…… 다른 전생자들과는 뭔가 달라! 굴레 바깥의 존재들이 왜 너 하나를 위해서 나서는지 알고 싶다!]니알라토텝의 눈이 번들거렸다.
[나 또한 인과율의 희생을 치르는 한이 있더라도!]후와악
다음 순간 니알라토텝의 전신에서 끔찍한 어둠의 촉수들이 솟아올라서 내게 덮쳐왔다.
나는 그 촉수에 대항할 수 없음을 깨닫고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악!”
이대로 끝장나는 건가……!
“여기까지.”
외신 알 카르다흐가 책을 덮었다.
***
텁
나는 그 조그맣지만 단정한 소리와 함께 마치 꿈에서 깨어나듯이 정신을 차리고 말았다.
내 눈앞에는 여전히 전생연기의 바둑판이 놓여 있었고 알 카르다흐가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
뭐지?! 방금 흐름과 전혀 안 어울리는 뭔가가 있었는데?!
아니 방금 내가 겪은 건 꿈인 건가?
니알라토텝도 달마도 전부 꿈?!
내가 혼란스러워서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있을 때 알 카르다흐가 말했다.
“무척 영악하군.”
“네……?”
“…….”
알 카르다흐는 처음으로 눈살을 찌푸리며 바둑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내가 혹시 알 카르다흐의 심기를 거슬렀나 눈치를 살폈지만, 알 카르다흐는 한동안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는가?”
나는 조심스레 말했다.
“방금…… 니알라토텝에게서 저를 구해주신 겁니까? 어떻게…….”
“책을 덮었을 뿐이다.”
나는 그 말에 알 카르다흐의 손 옆에 있는 한 권의 책을 쳐다보았다. 그 책에 표지는 없었지만 특이하게도 비단으로 만들어진 듯한 띠지가 둘러져 있었다. 나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말했다.
“책을 덮는 것만으로 니알라토텝을 제압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게 사서의 특권이다.”
“…….”
나는 알 카르다흐의 담담한 그 말에 섬뜩해지는 걸 느꼈다.
‘격이 다르다…….’
어째서 온 우주의 신격들이 외신을 경외하고 [굴레] 바깥의 존재가 되려고 갈망하는지가 간접적으로 느껴졌다. 방금 전 나는 생생한 현실처럼 니알라토텝을 마주하고 심지어 살해당할 뻔했지만. 알 카르다흐에게 있어서는 그저 책의 한 장에 불과했던 것이다.
나는 핫 하고 뭔가를 깨닫고는 말했다.
“그, 그렇다면 그냥 아까 니알라토텝 앞에 출현하셨을 때도 그냥 니알라토텝을 제압해 버렸으면 되지 않습니까? 왜 당해주신 거지요.”
“당해준 게 아니다. 거기서는 당할 수밖에 없었지.”
“네?”
“우리 외신들은 전능에 가깝지만 진짜 전능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방금처럼 책을 덮어서 니알라토텝을 굴레 아래에 제압할 수는 있지만 직접 내가 그 굴레에 들어갈 경우 놈을 제압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
“그만큼 강한 화신을 만들어서 굴릴 수도 있지만 내 본업인 사서를 허술히 하면서까지 그럴 이유는 없음이다.”
그렇다는 건, 니알라토텝을 갖고 놀았다기보다는 외신조차도 니알라토텝을 다루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소리가 되는 것인가?
‘적어도 하나의 굴레 내에서는 외신조차도 놈을 쉽게 제압할 수 없다는 얘기인가…….’
그렇다면 여전히 니알라토텝은 극복하기 어려운 최악의 난적이 확실하다.
외신이 이번처럼 도와줄 일이 또 있기나 할까?
내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알 카르다흐가 말했다.
“쉬어라.”
“네?”
“조금 쉬었다가 다시 둔다. 너는 충분히 쉬었다면 자리에 다시 돌아와라.”
그렇게 말한 알 카르다흐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창가로 향했다. 그러고는 말없이 담배를 꺼내서 피웠는데, 내가 알기로 저건 서양인들이 선호하는 파이프 담배라는 것이었다.
‘쉬라니…… 갑자기 무슨 생각이지?’
나는 어리둥절했지만, 확실히 방금 전 니알라토텝을 상대하면서 진이 다 빠진 건 사실이었기에 조금 쉬어서 나쁠 건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알 카르다흐에게 말했다.
“도서관 안을 돌아다녀도 되겠습니까?”
“책을 읽는다는 금기를 어기지 않는다면.”
“…… 알겠습니다.”
마침 잘 된 것 같다. 이 기이한 장소가 어딘지 둘러보아서 나쁠 것은 없으리라.
새로운 장소를 탐험한다는 생각에 묘한 고양감이 들고 있던 그때였다.
‘음?’
나는 창가에 서 있던 알 카르다흐의 시선이 창밖을 향하고 있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의 시선은 도리어 창가 근처의 어딘가를 향하고 있었는데, 나는 그 시선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아챌 수 있었다.
‘저건……?’
바둑판이었다.
음영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어쩐지 꽤나 진행된 듯한 바둑이었다.
내가 아닌 누군가와 두고 있는 바둑 – 외신 알 카르다흐는 그 바둑판을 쳐다보며 뭔가를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