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1745)
전생검신 92권 16화
나는 이전에도 명경 근처에서 [별을 뒤트는 자]의 몸을 뺏은 적 있었기에 저놈의 다음 반응이 어떨지를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저놈은 자신의 몸을 빼앗긴 것 자체가 흉신에 대한 불경(不敬)이라 생각해서 참을 수 없어 한다. 내가 어떤 조건을 내밀든 간에 협상에 응하겠지.’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여유작작하게 내 몸에 들어간 [별을 뒤트는 자]에게 말했다.
[몸을 다시 되돌려받고 싶나? 내 요구조건을 들어준다면 생각해보지.]내가 협상에 나서자 [별을 뒤트는 자]는 내 몸에서 시꺼먼 사기(邪氣)를 흘리며 말했다.
“그대가 절대적 우위라 생각하시오? 몸이 바뀌었어도 영혼의 힘은 쇠하지 않았나니, 소생은 이 상태에서 싸워도 충분히 그대들 모두를 죽일 수 있소.”
[…….]나는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내 코웃음 쳤다.
[허세 부리기는. 이쪽도 만전은 아니지만 당초 너희의 숫자가 넷이었는데 이젠 너 하나 남았고 그나마도 영혼밖에 없는 반쪽짜리잖아. 그 상태로 우리를 전멸시키겠다고?]내 말에 [별을 뒤트는 자]는 조용히 한 손을 들어서 하늘을 향해 뻗는 것 같았다.
초절신주(超絶神呪)
영겁(永劫)의 단두대(斷頭臺)
철컹!
바로 그다음 순간, 나를 포함한 모든 사도들의 목에는 죄수들을 옭아매는 칼이 매여 있었다.
‘어……?’
스칵!
내가 미처 반응하지 못한 바로 그때 순식간에 모두의 목이 베여버리고 말았다. 마치 칼 위에 놓여 있던 모가지만 쓱싹 베어가는 듯한 형상이었다.
[큭!]내 목도 베여나갈 뻔했지만, 다행히 내 목은 큰 고통만 느낄 뿐 잘려나가진 않았다. 아무래도 이 [옛 지배자]의 육체가 무척 강인한 덕분인 듯했다.
[크아악.] [으윽.]모두가 목이 뎅겅 베여서 날아가자 하나같이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다들 사도가 되어서 인간의 육체를 초월했기에 목이 베인다고 바로 죽지는 않았으나 고통은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다. 특히 아수라의 경우 이를 갈면서 외쳤다.
[이런 개 같은! 목 따위는 당장 붙여주마.]그는 잘려나간 자신의 목을 붙잡아서 다시 절단면에 붙이고 마왕 특유의 초재생력으로 이으려 했지만, 이윽고 당황하는 듯했다.
[뭐? 이거 왜 안 붙어.] […….]나는 주의 깊게 그 상황을 지켜보다가 [별을 뒤트는 자]에게 말했다.
[인간에 불과한 내 육체를 갖고도 그만큼 강력한 주문을 쓸 수 있단 말인가?]“영혼의 힘은 건재하다고 말했을 것이오. 그 육체까지 합해지면 더 강하지만 이 상태로도 그대들을 멸하는 데는 별문제가 없다는 소생의 말을 못 믿나 보군.”
[…… 허세가 아니군.]나는 저놈이 괴물 딱지라는 걸 새삼 실감했다. 저 주문 하나만으로도 단숨에 우리 모두에게 중상을 입히고 혼란스럽게 만들었으니 전력을 다하면 어느 정도일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마왕이나 사도를 상대로도 가볍게 학살을 할 수 있다니 실로 필멸자가 상대할 수가 없는 마신(魔神) 그 자체였다.
제갈사가 내 머릿속으로 말을 걸었다.
‘시간 끌지 말고 협상해라. 아직 네가 유리하지만, 시간을 끌면 어찌 될지 모르니까.’
‘알았어.’
나는 더 이상 [별을 뒤트는 자]를 도발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판단하고는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난장판을 만들어봤자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네 녀석과 협상하지 않고 이대로 도주할 수도 있으니까.]“도주라? 동료를 구하기 위해 예까지 오실 만큼 애틋한 정열을 지닌 분께서 그런 선택을 하시지는 않을 것으로 사료되오만.”
[나는 전생자다. 나는 내가 필요하다면 너보다 더욱 냉혹해질 수 있는 존재지. 흉신이 그런 말을 하지는 않더냐?]“흐음…….”
[10초 주마. 응하지 않는다면 나는 네 육체를 이용해서 더욱 흉신에게 불경을 저지르도록 하지.]“불경이라고?”
나는 불길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작정하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는 건 너도 알 텐데?]움찔!
내 말에 [별을 뒤트는 자]는 크게 당황한 듯한 기색을 보였다. 내 몸으로 표정이 크게 일그러질 정도로 감정의 동요를 보인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흉신에게 불경을 저지르는 것 그 자체가 놈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게 분명했다.
[하나…… 둘…… 셋…….]놈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만두시오. 협상에 응하지.”
[잘 생각했다. 그럼 협상에 응하는 의미로 주문을 해제해라.]“원하시는 대로.”
파앗
잠시 후 모두의 목에 씌워져 있던 칼이 소멸되고 목 또한 도로 날아와서 붙었다. 마치 마술처럼 신기한 현상이었기에 다들 얼떨떨해하는 듯했다. 특히 백련교주는 자신의 목을 매만지며 침음성을 흘렸다.
[사도로서 이만큼 강화되었는데도 마법 저항으로 막지 못하다니…… 이것이 우주적 존재의 역량인가.]그의 반응을 보면 아무리 사도가 강화되더라도 진짜 상위급 마신과는 하늘과 땅 수준의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아무래도 우주적 신격을 상대로 사도를 늘려서 인해전술로 이기는 건 불가능할 것 같군……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별을 뒤트는 자]뿐만이 아니라 다른 마장들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관여하지 않고 신기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면 사도끼리만 몰려가서 마장을 쓰러뜨리는 건 불가능하리라.앞으로 아군 전력을 강화시키는 방안 때문에 내가 내심 고민하고 있을 때 [별을 뒤트는 자]가 말했다.
“말씀하시오. 그대의 제안을 경청하도록 하지.”
[별거 아니야. 네 몸을 다시 원상복구 해주는 대신에 너는 이 세계수의 공간에서 더 이상 우리를 공격하거나 막아서거나 방해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서문혜가 어디에 있으며 어떤 놈들이 지키고 있는지, 그리고 그녀를 구출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해줘야 한다.]“후후. 철저히 소생만 불리하구려. 그렇게나 불리한 제안을 받아야 한다고?”
[간 보지 마라. 나는 지금도 깽판 치고 싶은 걸 참고 있으니까.]“알았소. 그대의 승리요.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음?]나는 생각보다 순순하게 [별을 뒤트는 자]가 내 제안을 받아들이자 어리둥절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놈이 아직 전투력을 보유하고 있기에 좀 더 뻗댈것이라 생각했는데 순순히 넘어간 것이다. [별을 뒤트는 자]는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허나 감당할 수 있겠소? 그대들은 다음 관문에서 지금보다 더한 지옥을 볼 터인데 지금이라도 포기하는 게 옳으실 거라 생각하오.”
[…… 웃기는 소리 하지 말고 필요한 말만 해라.]“좋소. 잘 들으시길.”
[별을 뒤트는 자]의 설명이 이어졌다.“서문혜는 그대들의 예상대로 세계수의 최상층에 있소. 세계수에 동화되어 흡수되는 술식에 갇혀 있으며 666일 후에 완전히 영육(靈肉)이 흡수되어 세계수를 깨우는 양분이 될 것이오. 그리고 그런 서문혜를 지키기 위하여 소환진이 깔려 있는데, 그 소환진은 그대들이 최상층에 한 발짝만 내디뎌도 곧장 발동할 것이오.”
[뭐라고? 무엇을 소환하는 거지?]“르 뤼에.”
[……!]“그곳에서 불러낼 수 있는 모든 마신이 소환될 것이오, 전부는 아니겠지만 소생보다 더 상위서열의 마신도 최소 10분이 계신다는 것만 말해두지.”
[뭐…… 뭐라고?!]나는 정신이 멍해지는 것을 느꼈다.
‘르 뤼에의 마신들이?!’
르 뤼에!
그것은 수저(水底)에 잠들어있는 악몽의 도시로서 흉신을 섬기는 수백의 마신들이 동면을 하고 있는 끔찍한 장소라고 들은 바가 있었다. 다만 여태껏 르 뤼에의 마신들을 제대로 대면한 적은 없었는데, 설마 세계수 최상층의 시련으로 르 뤼에의 마신들이 소환될 줄이야!
게다가 놈의 말은 지나치게 허세처럼 느껴졌기에 나는 되묻지 않을 수가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마라. 르 뤼에에 네놈보다 더 강한 고위마신이 10명이 넘게 있다는 걸 믿으란 말이냐?] [별을 뒤트는 자]는 우주적 마신이라고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자였다. 상위마신 중에서도 마도에 특화된 존재로서 과거 삼황오제 전욱과 정면으로 싸워도 크게 밀리지 않을 정도였던 것이다. 그런 [별을 뒤트는 자]보다 훨씬 강대한 마신이 10개체가 넘게 르 뤼에에 존재한다니! 설마 르 뤼에의 전력이 그 정도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기에 놈의 말이 허황되게 들릴 수밖에 없었다.그러자 [별을 뒤트는 자]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대가 소생을 높게 평가해주어 심히 영광이오. 허나 본인은 르 뤼에에서 결코 최상위 서열이라 할 수 없는 하찮은 몸…… 진정으로 주를 도와 세계를 멸망시킬 주축이라 하실 수 있는 위대한 분들은 감히 소생 따위가 범접할 수 없는 맹자(猛者)들이외다. 무량한 시공간 속에서 주께서 직접 데려오신 분들이외다.”
[……!]“제곡 또한 르 뤼에의 강대한 위상에 매료되어 우리의 편에 서기로 한 것. 그대가 과연 이 힘의 차이를 뒤엎고 동료를 구출하실 수 있으실지……?”
나는 놈의 말에 멍하니 있다가 이를 악물었다.
[거짓말하지 마라.]믿을 수가 없다.
그냥 흉신만 강력할 뿐 나머지 르 뤼에는 떨거지 마신들이 가득한 것 아니었던가?
저 말대로라면 르 뤼에는 흉신을 제외하고도 이미 대우주를 멸망시킬만한 초절의 힘을 보유한 절대무적의 세력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별을 뒤트는 자]가 허세를 부리는 거라고밖에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때 제갈사가 내 머릿속으로 진언했다.
[괜한 공포에 휘둘리지 마라, 백웅. 침착해.] [제갈사.] [놈의 말이 사실이든 거짓이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저놈은 한 가지 사실을 일부러 뭉개고 있지.] [어떤 사실?] [강대한 존재를 소환할수록 거대한 인과율이 필요하다. 흉신을 부활시킬 인과율을 얻기 위해 세계수를 이용해 부활의식을 치르는 것인데 너무 강력한 마신을 소환하는 바람에 인과율을 낭비하면 주객이 전도되지. 우리를 없애봤자 흉신의 부활만 더 늦어지는 것이다. 최상층의 방어체계에도 뭔가 맹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아!] [그리고 강력한 마신이 소환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목적은 서문혜를 구출하는 것일 뿐 놈들과 싸워서 이기는 게 아니야. 그렇다면 전략만 잘 짜면 여전히 할 만하다는 이야기다.] [그, 그렇군.]나는 제갈사의 냉정한 지적에 겨우 현실감을 되찾을 수 있었다. 나는 [별을 뒤트는 자]를 노려보며 말했다.
[서문혜를 구출할 수 있는 방법도 말해! 그녀가 갇혀 있는 곳을 어떻게 해야 뚫을 수 있는지.]“어렵지 않소. 어둠의 육망성(六望星)이 새겨진 마법진이 최상층에 있는데, 그 마법진의 모든 각에 불을 붙이면 되오. 불을 붙이려면 강력한 마력으로 심지를 태우면 될 것이오. 그러면 육망성에 반응하여 마법진의 중앙에 세계수에 흡수되고 있는 서문혜의 모습이 드러나겠지.”
[그게 끝이냐?]“끝이오. 허나 그대가 마력으로 불을 붙이려 하면 소환된 마신들이 막을 테지. 그건 알아서 잘하리라 믿소, 후후.”
[…….]놈의 말이 거짓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공략법을 다 들었음에도 내 마음은 편치 않았다. 딱 봐도 엄청나게 어려울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정면승부를 피한다 하더라도 이런 식이면 마법진의 육각 심지에 불을 다 붙일 때까지 필연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결국은 소환된 마신과 싸울 수밖에 없어.’
무척 악랄하게 짜여져 있는 함정!
어쩌면 어설프게 마신과의 전투를 피하려 하다가 더 심각한 위기에 처할 가능성이 높았다.
내 마음이 복잡할 때 제갈사가 내게 머릿속으로 추가로 조언을 했고, 나는 그 조언에 따라 [별을 뒤트는 자]에게 말했다.
[그럼 지금부터 몸을 되돌려주겠다. 그리고 네놈은 되돌려받는 즉시 이 세계수를 나가도록.]“철저하구려. 그렇게 하지.”
파앗!
내가 다시 만상지투로 놈과 몸을 교체하자, 놈은 마신의 몸을 얻자마자 박쥐 날개를 펄럭이며 웃었다.
[소생의 말에는 거짓도 과장도 없소. 그대가 서문혜를 구출할 가능성은 극미(極微)할 터, 즐겁게 관전하도록 하지…… 하하하!]파앗
[별을 뒤트는 자]가 장내에서 사라지자 나는 무거운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극악한 난이도의 함정에 직접 뛰어들어야 한다는 게 실감이 난 것이다. 그러자 내 정신세계에 들어와 있던 제갈사가 말했다. [백웅. 내게도 몸을 하나 만들어다오. 들은 대로의 함정이라면 장기말이 하나라도 더 있어야 유리할 거다.]“알았어.”
나는 곧장 신력과 트리무르티를 조합하여 제갈사에게 몸을 다시 만들어주었다. 제갈사가 그 육체에 깃들어서 다시 살아나자,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백웅. 너는 31회차를 어떻게 할지 감이 잡히고 있느냐?”
“…….”
“확실한 건…… 두각을 드러낸 흉신은 더 이상 우리만의 힘으로 감당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이 계란으로 바위 치기를 하지만, 다음 회차부터는 뭔가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다른 방법이라니…….”
“나중에 잘 생각해봐라. 그럼 이번 작전을 설명해주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제갈사가 말을 이었다.
“너를 포함해 모든 사도들이 동시에 육망성의 각에서 불을 붙인다. 그 직후 출현한 서문혜를 네가 만상지투로 회수한 후 곧장 최상층을 탈출해라.”
“…….”
나는 좌중을 둘러보고는 말했다.
“지금 나를 포함해서 총 5명이야. 육망성이라서 한 명이 부족해.”
마장을 물리치는 위업을 달성했지만, 그 대가로 원정대 대부분이 사망했으며 지금 남은 건 나, 제갈사, 백련교주, 아수라, 무사시 총 5명뿐이었다. 물론 각각이 마왕급 이상으로 성장해 있긴 했지만 중요한 건 육망성의 6이라는 숫자였고 이대로라면 1명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자 제갈사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사도 하나 더 만들어라.”
“아니…… 그게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닌데. 어떻게 만들라고? 지금 상황에서 사도를 만든다고 더 신력을 낭비하면…… 강력한 마신 앞에서는 버티지 못할 거야.”
솔직히 믿고 싶지는 않았지만 만일 [별을 뒤트는 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최상층에서 우리를 막아설 마신이 소환될 경우 그놈보다 더 강력한 괴물이 출현할 수 있었다. 그런 놈을 상대로는 내 신력이 만전이라고 하더라도 승산이 별로 없을 텐데 지금 사도를 더 만든다고 신력을 크게 소모하면 정말로 앞날이 불확실했다.
“머리가 잘 안 돌아가는군. 네 힘을 쓰기 아까우면 다른 놈의 힘을 쓰면 될 것 아닌가?”
“응? 다른 놈?”
“백련교주! 백련교에 남아 있는 보물을 전부 다 신에게 공양해야겠다. 그러니 마법 주문을 써서 내게 인과율을 연결하도록 해라. 괜찮겠지?”
뜬금없이 백련교주를 호명해서 요청하는 제갈사였다. 제갈사의 말을 들은 백련교주는 뭔가를 눈치챈 듯 말했다.
[그가 움직이겠는가? 판이 너무 커져 버렸다.]“후후. 그건 내가 알아서 하겠다. 지금은 백련교의 신앙의 힘이 필요하지.”
[…… 최대한 끌어모아 보도록 하지.]잠시 동안 백련교주는 주문을 염불 외듯이 한참 동안 중얼거렸다. 알아들을 수 없는 괴어(怪語)를 한참 동안 웅얼거리는 걸 보고 있으니 그가 마도사(魔道師)라는 걸 새삼 실감할 수가 있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대주문을 영창하던 백련교주가 양손을 번쩍 들며 외쳤다.
[본교의 모든 신도들이여! 위대한 신 백웅께서 난관에 처하셔서 도움을 필요로 하시나니…… 그대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재물과 보물을 당장 불에 태울지어다! 그 공양으로서 너희의 신실함을 증명하도록 하라!]그러자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내 머릿속에 수많은 백련교 교인들의 생각이 들려왔다.
[오오! 교주님…….] [저희 집의 모든 패물을 태우겠나이다!] [저희 집을 태우겠나이다!] [제가 일하는 전장(錢場)의 돈 창고를 모조리 태우겠나이다!] [저희 가문이 백 년 내내 모은 모든 돈을 태우겠나이다!] [백련교의 보물창고가 불타고 있습니다!] [황실의 금고를 불태웠습니다!]……?!
지, 진짜로 그걸 다 태우네?!
나는 온 중원에 흩어져 있는 백련교인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모든 재물을 불 싸지르는 기억을 공유받으며 내심 당황했다. 단순히 감숙 백련교의 재물만 불타는 게 아니라 전 중원 각지에서 살고 있던 모든 백련교인들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든 재물을 불태우고 있다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나는 설마 백련교의 광신도들이 이만큼 열정적일 줄은 몰랐기에 내심 오싹해졌다.
‘세, 세상에…… 거의 모든 무림문파와 세력, 관아에 백련교가 침투해 있었어! 미친 건가?!’
우우웅
그와 동시에 백련교주의 몸에서 빛이 나면서 상당한 인과율이 모여드는 게 느껴졌다. 백련교주는 그대로 제갈사를 향해 자신의 손바닥을 내밀었고, 제갈사는 그 손바닥을 마주치며 씩 웃었다.
“모든 걸 보고 있으셨겠지요. 충분히 인과율 공양을 할 터이니, 강력한 사도를 내려주시길 바랍니다…… 위대한 삼황오제여!”
파앗!
다음 순간 제갈사의 몸에서 환한 섬광이 터져 나왔다. 그러고는 그 섬광이 걷혔을 때 제갈사의 앞에 두 명의 존재가 소환되어 있었다.
우우웅…….
그 존재 둘은 강대한 힘을 내뿜고 있었다. 하나는 마치 장군처럼 군갑(軍鉀)을 착용하고 있었으며 다른 하나는 문신(文臣)의 관모(官帽)를 쓰고 있는 모양새였다. 장군과 대신이 소환된 듯한 형상이었는데 나는 그들 모두가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잠시 후 장내에 출현한 두 존재가 차례로 입을 열었다.
[만귀전(萬鬼殿)의 서열 2위, 려(黎). 주군의 명에 따라 참전한다.] [만귀전(萬鬼殿)의 서열 3위, 열(?). 주군의 명에 따라 참전한다.]나는 그들의 모습을 보자 깜짝 놀랐다.
“……!”
군갑을 입은 존재, 려! 저 존재는 바로 고대의 거신족이자 현 만귀전의 상위마신인 축융!
그리고 열 또한 만귀전에서 려 바로 다음가는 강대한 마신!
‘저자들이 참전한다는 건……?!’
그리고 내가 놀라고 있을 때 장내에 웅웅거리는 신어(神語)가 들려왔다.
[싸우는 게 아주 제법이더구나…… 너희가 바친 인과율은 그리 많지 않았으나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보고 본좌의 부하를 파견했다.]그 중후한 한마디에 제갈사는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그저 감읍할 따름이옵니다, 전욱이시여!”
그 말에 전욱은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
[죽을힘을 다해 싸워라…… 그리고 흉신의 계획을 무너뜨리도록 하라!]그랬다.
제갈사와 계약한 전욱이 백련교의 공양을 받고는 만귀전의 최고서열 마신들을 파견해 준 것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