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1752)
전생검신 93권 02화
무슨 말이지?
내가 그 의미를 생각하기도 전에 흉신은 또 다른 말을 꺼냈다.
[아집(我執)으로 움직이는 부제(腐帝)들이여. 진정한 혼돈을 거부하더라도 소용없을 것이다…….]“…….”
알 카르다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마치 그를 대신하듯 주변에 소환되어 있던 음영 중 하나가 자신의 의지를 떨쳐서 흉신에게 말했다.
[진정한 혼돈이라…… 우둔한 아버지의 적자(嫡子)임을 경쟁이라도 하자는 말인가? 후흐흐흐.] […….] [너와 우리…… 그걸 따질 의미는 없음에도 스스로 우둔해졌구나.]마치 흉신을 비웃는 듯한 말투.
그러나 나는 저 외신이 ‘무엇’을 ‘왜’ 비웃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찌 되었든 네 스스로 부정한 멸망을 초래하여 손해를 감수해 주었다니 영겁의 세월 동안 거의 없었던 일이거늘.]그 존재가 가느다란 촉수인지 발톱인지 모를 기이한 자신의 몸을 뻗어서 흉신을 가리켰다.
[너의 인과율…… 고맙게 받으마.]츠츠츠츠!
다음 순간 흉신의 전신에서 희미한 안개 같은 게 일어나는 것 같더니 미세한 입자가 떠오르며 그의 전신이 분해되기 시작한 듯했다. 아주 천천히 흉신이 소멸하는 형상과 같았기에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
결국 외신의 손에 흉신이 소멸당하는 것인가?
외신들이 굳이 흉신을 공격적으로 대하지 않는 것도 이런 결과가 일어날 거라는 걸 미리 예측했기 때문이란 말인가?
내가 상황을 파악하려고 애쓰고 있을 때 흉신의 목소리가 내 귀에 들려왔다.
[이게 네가 원하는 결말인가?]“…….”
나는 흉신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흉신의 눈에는 여전히 아무런 감정도 없었고 시꺼먼 안광만 흘리고 있을 뿐이었다. 심지어 자기자신의 소멸조차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듯한 저 섬뜩한 눈에 나는 그만 전율하고 말았다.
흉신은 내게 뭔가를 말하고 싶어 한다.
그것도 아주 중대한 뭔가를.
하지만 그걸 위해서는 ‘선행 단계’가 충족되어야 한다.
나는 그걸 직감으로 깨달았지만 이 자리에서 그걸 티 내서는 안 된다는 것 또한 느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이 자리에 있는 외신들조차 믿을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이 새삼 머릿속에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가능하면 침착하게 흉신의 질문에 대답했다.
“……세계가 멸망했는데…… 만족하고 자시고가 어딨어! 네놈 하나 죽는다고 다 해결될 거면!”
애초에 흉신을 쓰러뜨리는 게 목적인지도 모르겠다고!
아직도 과정을 찾고 있었기에 흉신의 말은 내 역린을 건드린 거나 마찬가지였다.
내가 분노를 꾹 눌러참으며 말하자 흉신이 대꾸했다.
[그러나 너는 멸망 이후에도 존재한다. 멸망하는 과정에 따라서는.]“……?”
[너는 ‘종말’ 이후를 생각해보았는가…… 우둔한 자여.]흉신의 안광이 더욱 검게 물든다.
[승천(昇天)만이 네가 할 수 있는 선택의 전부인가……!]무…… 무슨 말이지?
흉신이 하고 싶어 하는 말은 뭔가 섬뜩하게 내 마음속에 와 닿았다.
그것은 내가 애써 외면해왔던 ‘금기’ 그 자체에 손을 뻗는 듯한 한마디였기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퍼벅!
갑자기 흉신의 두 팔이 터져 버리듯이 고깃조각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것은 갑작스럽게 흉신의 양팔을 잡아먹듯이 출현한 두 권의 책장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책을 소환한 듯한 외신이자 허공록의 상급사서 알 카르다흐는 냉막하게 말했다.
“아까의 빚일세.”
[…….]흉신은 말없이 알 카르다흐를 쳐다보았다. 그들은 침묵 속에서 대치했고, 나는 그 기묘한 대치를 지켜보며 생각했다.
‘뭐지……? 이 분위기는…….’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흉신은 가루가 되어서 소멸해 버리고 말았다.
파아아…….
그 막강한 힘을 보여주었던 흉신의 최후 치고는 너무나 허망했기 때문에 나는 당황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동안 흉신을 쓰러뜨리려고 그렇게 노력했는데 외신들이 끼어들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리고 흉신이 소멸하자 알 카르다흐가 좌중의 외신들에게 말했다.
“이 굴레에 한해 폐곡(廢曲)의 원환(圓環)은 설정하지 않겠습니다. [기억]으로 도서관에서 관리하도록 하지요.”
우우웅
한 차례 진동이 울렸다. 그것은 외신들이 머나먼 차원의 능력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해 알 카르다흐의 말에 대응하는 듯했고, 이것만큼은 나도 전혀 해석이 되지 않았다. 마치 외신들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의사소통 수단이 따로 있는 것처럼 보였다.
우우우…….
잠시 후 주변에 나타났던 음영들이 일제히 사라졌다. 외신들이 물러났음이 느껴지자 알 카르다흐는 한숨을 쉬며 자신의 손가락을 딱 하고 마주쳤다.
슈슉!
알 카르다흐의 손가락에서 소리가 남과 동시에, 나와 알 카르다흐가 서 있는 곳은 아까의 대국장으로 바뀌었다. 전생연기를 두고 있는 바둑판이 겨우 세 걸음 앞에 있었고 고즈넉한 서재와 같은 방은 조금도 시간이 흐르지 않은 듯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흘리고 있었다.
알 카르다흐는 천천히 자신의 손에 담뱃대를 들더니 한 모금을 피웠다. 그리고 잠시 후 입을 열었다.
“흉신이 이렇게 나올 줄은 예상치 못했군.”
“그 말씀은…….”
“우리에게 장단을 맞춰주느니 출혈을 감수하겠다니. 까다로운 놈…….”
저 말은 내게 하는 거라기보다는 혼잣말처럼 느껴졌다. 창가에 서서 잠시동안 말없이 담배를 피우던 알 카르다흐가 말했다.
“이번 연기의 한 수는 네가 승리했다. 서문혜 구출에 성공했으니 인정하도록 하지.”
“정말입니까? 그러면 서문혜는 소멸되지 않는 겁니까?”
내 반문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믿을 수 없는 얘기를 했다.
“그렇다. 그리고 너를 흉신 앞에서 제때 꺼내지 못한 인과율의 책임도 있으니, 상급사서로서 네게 이 도서관의 책을 한 권 열람할 권한을 주도록 하지.”
“……!”
“이 권한은 지금 즉시 써야 하니 일단 나가라.”
뭐?! 허공록의 책을 한 권 열람할 수 있다고?
‘그럼 뭐가 좋은 거지?’
전 우주의 기록이 있으니 뭐든 알 수 있긴 할 테지만 정작 한 권이라고 하니 당혹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전 우주의 지식 중에서 내게 필요한 한 권이 대체 뭐란 말인가?
내가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알 카르다흐가 나가보라는 듯 내게 담뱃대로 손짓을 했다.
“나가.”
후웅
그 말과 함께 나는 저항도 하지 못하고 어느새 바람에 흩날리듯이 문밖으로 날아가 있었다. 겨우 중심을 잡아서 착지하자 저만치에 닫힌 문이 보였다. 나는 또다시 대국 중에 밖으로 나올 줄은 예상도 못 했기에 어이가 없었다.
‘뭐야? 너무 뜬금없잖아…… 왜 한 권을 열람하라는 거지?’
좋은 기회긴 하지만 뭔가 수상하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생각하다가 순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아까 흉신의 양팔을 터뜨리듯 절단했던 그 두 권의 책…….
’정말로 알 카르다흐는 흉신에게 빚을 갚기 위해 반격을 했을 뿐인가?
아니면 그 책 자체에 흉신의 입을 봉하는…….
“…….”
…… 어찌 되었든 지금은 기회를 살릴 때다.
어떻게든 이 드넓은 허공록의 도서관에서 아무거나 한 권을 읽을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이윽고 나는 책이 꽂혀 있는 책장을 쳐다보고는 문제점을 느꼈다.
“이런 젠장…… 역시 모든 책에 표지가 없잖아.”
표지가 없으면 무슨 책인지 어떻게 안단 말이냐!
진짜로 대단한 것 같으면서 별 의미 없는 기회잖아!
아무런 의미도 없는 책을 고를 확률이 너무 높잖아!
나는 속으로 잔뜩 불평을 했지만 동시에 어떻게든 이 기회를 살리기 위해서 고심을 했다.
‘아니야. 표지가 없어도 뭔가 가치 있는 책을 고를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거야.’
허공록이라 하더라도 어찌 되었든 도서관이었다.
그리고 도서관의 특징은 책이 일정한 기준으로 정렬되어 있다는 것!
그렇기에 같은 칸에 꽂혀 있는 책들은 비슷한 종류일 확률이 높다.
‘여기까지는 기본적인 건데…… 가치 있는 책을 찾는 방법이 따로 있을까?’
나는 고심을 하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나중에 길을 찾기 쉽게끔 그냥 아무생각없이 앞으로 걸었다.
그리고 걸어가던 중에 문득 좋은 생각이 났다.
“아!”
그게 있구나!
내가 좋은 생각을 떠올린 순간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뭐가 ‘아’냐?”
나는 이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목소리를 들은 순간 뒤를 돌아보았고 그 목소리의 주인에게 말했다.
“가치 있는 책을 찾는 법을 알아낸 것 같아서.”
“후. 참 거지 같은 놈이군. 짐승마냥 직감으로 중요한 지식을 알아내다니.”
“……또 내 기억을 읽은 거냐? 크로노스.”
내가 언짢은 목소리로 반문하자 허공록의 하급사서이자 과거에는 신격이었던 자, 크로노스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너 때문에 감봉당했다. 감봉이라는 건 이 허공록에서 승급할 때까지의 시간이 몇억 년이나 미뤄졌음을 의미하지. 내가 너를 원망하지 않을 이유가 있는가?”
“…….”
그러고 보니 그랬다. 이 허공록에서 대국장을 찾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그에게 부탁했었는데 그 때문에 알 카르다흐가 크로노스를 감봉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너를 도와서 책을 찾아주겠다.”
“이유가 뭐지?”
크로노스는 무척 띠꺼운 눈으로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전에 너를 도운 후 상급사서께서 새로운 예규를 만드셨고 하급사서가 외부인을 돕는 게 의무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반대로 너를 도우면 내 업적이 쌓인다.”
“호오! 근데 눈깔 좀 깔지?”
“흥…… 이 책이나 읽어봐라.”
휙
크로노스가 내게 웬 두꺼운 책을 한 권 던져주었다. 나는 그 책을 받고는 말했다.
“이봐! 내가 읽을 책은 내가 고를 거야. 네가 아무리 중요한 책을 준다한들…….”
“무슨 소리냐? 그 책은 청구기호지(請求記號誌)다.”
“청구기호지? 그게 뭐냐.”
“네가 생각했던 대로 허공록의 도서는 일정한 기준으로 분류된다. 청구기호를 이용하면 원하는 책을 찾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
“그 책은 열람해도 읽은 것으로 치지 않으니까 읽기나 해라.”
나는 의심어린 눈으로 크로노스를 보다가 청구기호지의 책장을 열었다. 그러자 그 순간 무수한 지식들이 내 머릿속에 들어와서 박히는 것을 느꼈다.
“……!”
별치기호…… 분류기호…… 도서기호…… 부차기호…… 4가지의 기호로 이뤄져 있고 각각의 기호에 따라 배치된다……?
그런데 머릿속에 들어오는 기호의 종류와 양이 너무나 방대했다.
가히 무한대에 가까운 양이었기에 나는 청구기호지의 기억을 받아들이다 말고 비명을 지르며 책을 닫아 버렸다.
“으아아아!”
머, 머리가 터질 것 같아!
하나의 책에 새겨진 청구기호의 양 그 자체가…… 가볍게 수억을 넘어!
내가 두통 때문에 머리를 부여잡고 혼란스러워하자 크로노스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비웃음을 흘렸다.
“우리 하급사서들은 무한대에 가까운 시간 동안 그 청구기호지를 계속 공부하고 계속 습득하지. 몇억 년이 지나도 그 책의 티끌만큼도 익히지 못하는 편이라서 우리는 영겁토록 서적을 분류하고 정리하는 것이다. 너는 필멸자의 육체라서 청구기호지가 지닌 찰나의 기억도 못 버티는구나.”
“…….”
“그리고 네놈이 생각했던 건 대충 맞다. [띠지]가 있는 책일수록 더욱 귀중하다.”
“역시…… 그렇냐.”
크로노스의 말에 나는 예상이 맞음을 알 수 있었다.
띠지!
내가 허공록을 탐험하면서 느낀 것은 어떤 책은 띠지가 걸려 있고 어떤 건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리고 띠지가 걸려 있는 책은 상당히 드물었고 띠지의 색깔도 저마다 달랐다. 표지는 없지만 띠지야말로 중요한 기준이라는 걸 느낄 수가 있었다.
나는 크로노스에게 또다시 궁금한 점을 물었다.
“이 정도 지식이면 귀중한 책을 찾을 수도 있는 거 아니야? 왜 찾을 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다는 거지?”
“허공록에는 ‘모든 것’의 지식이 있다. 삼천세계의 모든 지식이 어떤 양인지 상상이나 해본 적 있는가?”
“…….”
“우주가 멸망할 때까지 여기서 원하는 책을 찾아도 못찾을 수도 있지.”
“야, 그럼 네가 좀 찾아줘. 네가 사서잖아.”
“미안하지만 거기까진 도와주지 않는다. 청구기호지를 주는 것까지가 하급사서의 의무이고 찾는 건 네놈이 직접 해야 한다.”
“이런 씨발……!”
내가 역정을 냈지만 크로노스는 차갑게 뒤돌았다.
“말해두는데 또 책 어지르면 가만 안 둔다. 새로운 예규 중에는 책을 어지르는 자를 하급사서가 징벌할 권리도 생겼다.”
“하! 너 싸움 좀 하냐? 뭘 잘난척을…….”
“그래……?”
스아앗!
그 순간 크로노스가 나를 뒤돌아보며 스산한 눈빛과 함께 신력을 방출했다.
나는 그 신력을 마주치는 순간 전신이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
이, 이 새끼…… 말도 안 되게 강한데……?!
지금까지 입만 살아 있는 놈이라고 생각했던 게 갑자기 싹 사라질 정도였다. 지금 내가 가진 힘으로 도전하면 이런 놈에게 이기는 건 하늘의 별따기라는 게 느껴질 정도의 심대한 격차! 이 정도라면 당장 지상에 내려가도 전 우주를 주름잡는 강자일 것이리라.
크로노스는 얼어붙은 내게 못을 박듯이 말했다.
“만에 하나 나를 이긴다고 해도 하급사서는 나뿐만이 아니다. 다 때려잡을 자신이 있다면 난장판을 쳐도 좋다.”
“…….”
잠깐 까먹고 있었다.
이 곳은 허공록…… 가장 위대한 지식의 보고이자 외신의 터전.
외신의 일개 부하라 하더라도 지상의 존재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할 수밖에 없으리라.
“뭐, 어차피 네가 가진 인과율에 따라 얻게 되겠지…… 너무 머리 굴리지 말고 대충 골라라.”
“인과율이라니 무슨 소리냐?”
“진정한 무한 속에서 유한한 존재가 알량한 지혜를 구사해 봤자란 말이지.”
그렇게 뇌까린 크로노스는 천천히 걸어서 뒤편으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책을 고르는 건 네 운명을 시험하는 것이다.”
크로노스가 사라진 자리에서 나는 한참 동안 서 있다가 한숨을 쉬었다.
“하아.”
결론은 띠지가 있는 책을 찾는 것이다.
다만 띠지의 등급 자체는 청구기호지에도 명확하게 나와 있지 않았다. 띠지에 관한 지식은 상급사서만의 전유물이었고 하급사서들은 그저 중요한 것이라고 짐작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확실한 건 띠지의 색깔에 따라 중요도가 다르다는 것…… 그냥 운빨이구만.’
나는 그래도 청구기호지의 지식을 잠깐이라도 얻은 덕에 이제는 무작위로 보였던 허공록의 도서관에 존재하는 법칙을 아주 기본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마치 지상의 문헌정보학을 극단적으로 발전시킨 듯한 형태였으며 정해진 법칙을 따라가기만 하면 어떤 책이 어느 지역에 있는지는 대충 알 수 있는 것이다.
‘이제는 크로노스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대국장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것도 소득이군. 청구기호지 덕분에 그 정도 분별력은 생겼어.’
나는 청구기호지의 지식에 의존해서 헤매듯이 걸어갔다. 그리고 한참을 걸은 끝에 특이한 띠지가 있는 책에 시선이 가는 것을 느꼈다.
“…….”
주황색 띠지로군.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색이다…….’
특이한 띠지면 특별한 책이겠지? 그럼 무슨 책인지 모르지만 일단 볼까?
크로노스 말대로 고민해봤자 의미도 없고…….
나는 천천히 그 주황색 띠지의 책을 들어서 펼쳤다.
어떤 책이든 후회하지 않기로 마음의 준비를 한 상태였다.
그러나 책을 여는 순간, 나는 아차 하고 후회를 느끼고 말았다.
‘이…… 이 책은?’
번쩍
머릿속에 즉시 이 책의 제목이 읽혀들어왔다.
[네크로노미콘(死者之書) ]우우우우!
나는 이 책이 마도서(魔道書)임을 바로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네크로노미콘을 읽는 순간 수많은 마도(魔道)의 기호와 수식 따위가 바로 새겨지듯이 뇌 한 켠에 들어오는 실감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이상한 점은 네크로노미콘이 지금 내게 주고 있는 지식은 여태껏 제갈사에게 배웠던 그 어떠한 마도의 지식과도 중복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아, 아니야…… 중복되지 않는 게 아니라…….’
아예 법칙이 달라?!
이게 말이 돼?!
나는 네크로노미콘이 주는 지식이 얼마나 이질적인지를 깨닫고는 기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마치 다른 세상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제갈사가 가르쳐준 모든 마도의 기본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제갈사가 알려준 마도의 지식 아니면 이 네크로노미콘의 지식 둘 중 하나는 완전히 엉터리일 수밖에 없었다.
만일 이 네크로노미콘이 주는 게 엉터리 지식이라면?
나는 괜히 엉터리 지식 때문에 더 혼란스러워져!
‘망했다! 이…… 이런 젠장!’
제갈사한테 네크로노미콘이라는 마도서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도 없어! 유명한 마도서의 이야기는 다 들었는데!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이런 잡마도서 때문에 기억용량만 낭비하게 된다니?!
그것도 하필 허공록에서 얻은 기회인데 이런 썩을 마도서를 얻다니!
나는 크게 당황해서 서둘러 네크로노미콘에서 손을 떼려고 했다.
“헉!”
하지만 마치 달라붙은 것처럼 손이 떼어지지 않는다!
“이런 씨발 삼류마도서!”
내가 그렇게 외치는 순간, 머릿속에서 기이한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삼류라고? 이런 건방진 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