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1781)
전생검신 94권 11화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다른 세계의 전생능력의 서(書)를 사용했는데, 탑이 천암비서의 수련세계로 옮겨져 버리다니?!
나는 도저히 믿기지 않아서 당장 청룡무관으로 내려가서 현재 상태를 확인했다.
그러고는 하늘 높이 뛰어올라서 날아가 보고는 침음성을 흘렸다.
“수련세계…… 맞잖아…….”
성층권 근처까지 날아올라 와보니 의심할 여지가 없다.
세계가 평평하다.
‘메피스토펠레스를 흡수해서 내 신력으로 처음 재생성한 수련세계…… 처음이라서 너무 어설픈 바람에 평평한 세계가 탄생해 버렸다.’
하지만 굳이 수련세계를 재편성할 이유도 없었기에 그냥 평평한 채로 놔두고 바깥에 나와 버렸던 것이다. 수련만 하면 되는데 세계가 평평하든 둥글든 알게 뭐란 말인가?
그리고 이 평평한 세계는 내가 창조한 세계의 특징이었기 때문에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여기는 수련세계가 맞았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아니 잠깐…….
그 말은…….
“……여기가 천암비서 내부란 말인가?”
외신과 바둑 두던 중에 도로 천암비서의 내부로 와 버리다니!
전혀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나는 당황했지만 일단 침착해지기로 마음먹었다.
‘음…… 잠깐…… 일단 해야 할 일부터 다시 생각해보자…….’
나는 일단 내 몸 상태를 점검해보았다.
우우웅!
나는 신력을 다시 멀쩡히 발휘할 수 있음을 깨닫고는 중얼거렸다.
“신기 칠황영념에 의한 신력의 봉인이 풀렸다. 그 말은…… [단말] 아바돈이 지금 소멸한 건 의심할 여지 없는 사실이라는 것이군.”
술자(術者)가 소멸했으니 신력봉인도 풀리는 건 당연한 일이다. 나는 그 사실을 확인하고는 한층 마음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아바돈을 죽인 그 무형의 존재는 도대체 무엇인가?
정말로 천암비서의 의지 그 자체가 따로 존재한다는 말인가?
그리고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나는 청룡무관으로 다시 내려가서 무관의 거울으로 내 얼굴을 살펴보고는 끙 하고 침음성을 흘렸다.
“……그런데 얼굴은 여전히 ‘마스터’의 얼굴이군.”
천암비서로 들어왔다면 당연히 얼굴도 내 진짜 얼굴로 되돌아와야 하지 않는가?
그러나 이상하게도 얼굴 자체는 여전히 ‘마스터’의 20대의 영준한 청년이었기에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순간 내 머릿속에는 하나의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이 상태로 바깥에 나가면 어떻게 되는 거지?”
‘마스터’가 존재하던 그 시공간으로 가는 걸까?
아니면 30회차의 내 현재 상태로 되돌아가는 걸까?
어느 쪽인지는 시도해 보지 않는 이상 알 수 없었다. 다만 어느 쪽이든 간에 나는 시도하기 전에 해결해야 하는 전제조건이 있음을 알아챌 수가 있었다.
“흠…… [단말]이 없으니 천암비서에서 나갈 수가 없어.”
원래라면 [단말]이 천암비서 내의 출입을 담당하고 있었기에 나는 전뇌자 같은 녀석에게 부탁만 하면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전뇌자가 실종되어 버렸고 자칭 후임인 메피스토펠레스는 내가 흡수해 버려서 단말이 공석이 되어 버린 것이다. 심지어 ‘마스터’의 [단말]인 아바돈마저도 지금 소멸해 버렸기에 단말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 하지만 저번에 해본 바로는 트리무르티로 창조의 권능을 이용해서 [바깥 세상으로 나가는 문]을 만들면 탈출할 수 있었는데…’
나는 단말의 도움을 받지 않고 탈출하는 방법을 경험으로 떠올리고는 곧장 다시 권능을 시전했다.
트리무르티
[바깥으로 나가는 문]!우웅
권능으로 문이 만들어지자 나는 곧장 그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갔다.
” ……”
문 바깥으로 나와 봤자 똑같은 공간이다. 아공간을 잇는 듯한 마법적인 작용도 없고 그냥 공간에 문짝이 하나 생겨난 듯한 평범한 상황이었다. 즉 이 트리무르티를 시전해서 만든 문은 예전과 달리 천암비서를 탈출하는 능력이 없다는 뜻이었다.
” 뭐야? 왜지?”
나는 내가 뭔가를 잘못했나 싶어서 트리무르티를 재차 써서 여러번 문을 만들어 보았다. 그러나 내가 만들어낸 건 그냥 평범한 문짝일 뿐 이 천암비서를 탈출할 수가 없었다.
‘ … 생각해보면 그 때도 천암비서의 의지가 내가 탈출하는 걸 간접적으로 허용하는 거라고 수보리가 말했었어.’
그렇게 생각한다면…
지금은 천암비서가 바깥으로 내보내주지 않는다는 얘기인가.
” 크윽.”
…… 그렇다는 건 지금 이 수련세계에서 나갈 방법이 없다는 것이고, 더 이상 ‘마스터’의 이름을 알 수 있는 단서가 없다는 뜻인가?
“으으으으윽!”
나는 그만 짜증이 나서 머리를 벅벅 긁고 말았다.
남은 시간은 채 하루도 되지 않는데 설마 이런 식으로 수련세계에 갇히게 될 줄이야!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나는 기가 막혀서 침음성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설마 이번 시련을 시작할 때만 해도 이런 상황에 놓일 줄은 예상치도 못했던 것이다.
“젠장! 탈출방법을 찾아야…….”
나는 이를 악물고 팔을 걷어붙였다. 일단 여기서 탈출해야 죽이되든 밥이 되든 뭔가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멈칫하고 말았다.
다짜고짜 움직이기만 해서 되는 일일까?
“…….”
여기서 나가면 정말로 ‘마스터’의 이름에 대한 단서가 존재할까?
‘마스터’가 수만 번이나 전생한 노괴(老怪)라서 단말조차도 믿지 않고 자기 자신의 기억을 봉인할 정도로 신비주의자인데 바깥세상에 단서가 있기는 할까?
나는 그 순간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아니야. 아바돈이 최대의 단서였어. 전생자의 특성을 생각해보면 [단말]보다 전생자의 비밀을 잘 아는 존재는 통상적으로 있을 수 없다……!’
이게 맞다.
내 경우는 단말 이상으로 망량이나 제갈사에게 내 모든 비밀을 공유하는 편이었지만 아마 내가 특이한 경우일 것이다. 모든 것이 초기화된다는 특성과 신뢰의 전승이 보통 불가능하다는 특성을 볼 때, 보통의 전생자는 마스터처럼 단말 이상의 동료는 존재할 수가 없으리라. 그렇다면 아바돈을 통하는 것보다 더 확실하게 마스터의 정체를 캘 방법은 없다고 생각하는 게 좋았다.
이것은 절망인가?
아니…… 이것은 소거법(消去法)이다.
‘난 이미 정보를 얻는 최적의 길을 선택했어. 그렇다면 정보는 충분히 주어졌을지도 몰라. 지금은 정보를 긁어모을 때가 아니라 모은 정보를 정리해야 할 때가 분명하다!’
나는 경험으로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외신의 시련은 일견 터무니없어보여도 충분히 난이도를 해결할 수 있는 단서를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동빈의 시련에서 귀면상의 가면을 받아들였다면 깰 수 있었다고 공언하는 걸로 봐서 무작정 해결불가능한 난이도를 내놓는 건 알 카르다흐의 취향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그 난이도를 합리적으로 만들어주는 단서를 유추해서 알아내는 것이다!
‘다시 한번 잘 생각해보자…… 내가 지금까지 잘못된 길을 걸어온 게 아니라면 이미 얻은 정보 중에 단서가 있을 거야…….’
처음에 내가 얻었던 단서가 뭐였지?
그 순간 내 머릿속에 임무의 창이 떠올랐던 때가 기억났다.
[임무의 제한시간이 새롭게 설정되었습니다.3일 내에 빙의한 인물의 정체를 알아내십시오.] [모든 능력과 권능이 온전히 주어졌으며 정체를 찾을 방법도 이미 그대의 손에 주어져 있습니다.
조건은 매우 공정하니, 임무를 성공시키는 건 그대의 역량.
더 이상의 이의제기는 받지 않습니다.] [다만 단서를 하나 드리자면, 그대의 관점을 바꾸어야만 할 것입니다.]
…….
관점을 바꾼다……?
‘그래. 여태껏 정신없이 정보수집만 한다고 그 단서를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군…….’
관점을 바꾼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거지?
지금까지 ‘마스터’로서 계속해서 정보를 수집해 왔는데 내가 관점이 어디선가 고정되어서 놓치고 있었던 부분이 있었다는 말인가?
“설마 저 머나먼 우주까지 관찰해서 정보를 얻어와야 하나…….”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마스터가 부족연맹하고 거래할 정도이니 따지고 보면 이 세계관은 이미 우주급으로 스케일이 커져 있다고 할 수 있으리라. 그렇다면 부족연맹한테 가서 정보를 얻어야 한다는 소리인 것일까?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렇게 단순하지 않을 거 같다.”
그저 지구에서 외계인으로 관점을 바꾼다 해서 뭐가 나올 리가 없다. 신비주의자 마스터가 [옛 지배자]까지 토막칠 정도면 외계인한테 자기 비밀을 털어놓을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외계인이 제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전 우주를 주름잡는 신들에게 비견될 바는 아니었다.
…….
…….
“아 젠장할! 마스터 이 새끼는 대체 뭐야!”
나는 짜증이 나서 소리를 버럭 질렀다. 아무리 생각해도 관점을 바꾼다는 이야기가 지금 내 상황에 확 와 닿지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 마스터라는 놈은 대체 뭐 때문에 이렇게 신비주의로 살아온 거야?
“자기 이름 정도는 그냥 안 까먹고 계속 쓰면 되잖아! 뭐한다고 이름을 잊어버린…….”
흠칫!
나는 혼자서 열받아서 중얼거리다가 뭔가를 깨달았다.
“……이름을 실수로 잊어버린 게 아니라…… 의도적으로 잊어버린 거라면?”
여태껏 마스터의 전생경험이 몇만번을 넘는다는 소리에 당연히 이름을 실수로 잊어버렸다 생각했지만…… 만일 그게 아니라면?
‘그…… 그래. 이상하잖아. 태허의 계약이니 뭐니 전생자만의 편법을 써서 강함을 추구하고 주변인한테는 신비주의로 일관한다는 건…… 보통 인간보다 훨씬 더 철두철미한 성격이라는 소리야. 그런 놈이 아무리 전생경험이 쌓이고 두뇌의 용량에 한계가 온다고 해서 이름에 관련된 기억을 통째로 날려 버린다고?’
그건 뭔가 이상하다.
주술이나 마법에는 본인의 ‘이름’을 걸고 하는 것도 많은데다가 애초에 상위존재들과 대화할 때는 본인의 이름을 밝히지 않으면 교섭이 성립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다. 온갖 기상천외한 경험을 시도해 온 마스터의 특성상 이름이 없으면 불편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닐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름을 굳이 찾지 않는다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게다가 내가 기억용량을 정리한 방식은 굳이 그렇게 엄청난 것도 아니었다. 마스터만한 우주적인 존재가 인간의 기억용량 하나를 어쩌지 못해서 쩔쩔 맨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
그렇다면 ‘마스터’라는 놈은 일부러 자기 이름을 잊어버렸을 확률이 높다.
‘왜지?’
자신의 이름을 일부러 잊어버리고 찾지도 않으려 하는 이유가 뭘까……?
왠지 여기에 중대한 이유가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내 이름을 잊고 싶어 한다면…… 그 이유는…….’
그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연상된 기억이 떠오르기 때문인가…….”
왜인지 정답에 가까이 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는 아까 레비아탄에게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주인님의 말이 사실이라면 뇌가 자극을 받아서 연상을 한 것이옵니다!] [주인님께서는 늘 인간의 뇌에 한계가 있다고 불평을 하셨사옵니다. 그래서 뇌에 대해서 많은 연구를 하셨는데 정상적으로는 뇌의 기억용량을 늘릴 수가 없다 하셨사옵니다. 그때 들었던 것 중에 뇌의 기억용량이 포화상태에 이르게 되면 무의식의 영역에 기억을 숨기게 되는데, 숨겨진 기억은 필요할 때만 연상작용으로 불러온다 하셨사옵니다.]레비아탄의 말은 아까 륜(輪)과 무공의 관계를 유추하는데 유용했지만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잘 생각해보면 레비아탄이 말한 [기억의 연상작용]이야말로 지금 문제의 단서일 수도 있었다.
[백웅. 내가 그러했듯…… 당신 또한 자기자신으로서 살아가야 할 날이 오게 될 것이오…… 그렇다 하더라도 포기하면 아니되오. 이 힘은…… 그런 당신을 위해 주는 선물이오.]…….
갑자기 내 이름에 대해 연상을 하기 시작하자 망량이 28회차에서 내게 힘을 넘겨주고 소멸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아…….’
나는 그때 느꼈던 울컥하는 감정이 새삼 치솟아오르는 것을 느끼자 입술을 짓씹었다. 나는 한참 동안 그때의 슬픈 감정을 억누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렇다…… 내가 누군가에게 나의 [이름]을 불린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나는 과거의 내 기억을 연상하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동시에 그 기억에 얽힌 내 모든 감정도.”
그렇다면 마스터가 자신의 본명을 의도적으로 잊어버리고는 애써 찾지 않은 이유도 왠지 알 것 같았다.
놈은 어느 순간 감정이 너무나 마모되어서 견딜 수 없게 되어 버린 게 분명했다.
처음에는 자기 나름대로의 대의(大義) 같은 걸 가지고 전생했을지 몰라도, 소중한 사람들을 잃거나 안 좋은 경험을 하면서 점차 인간성이 뜯겨나간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계속 가지고 불리는 한, 그 모든 안 좋은 기억과 감정들이 계속 연상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그리고 이름 그 자체를 잊어버린다면 모든 것이 초기화된 새로운 전생에서 그 이름과 연관된 기억을 연상할 일이 없을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슬프든, 부끄럽든, 추악하든.
“…….”
그저 내 억측일지도 모르겠지만 왠지 나는 이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전생자로서 이것 외에는 달리 답이 없다는 직감이 확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마 나라도 그랬을 것 같았다.
레비아탄이나 아바돈 등 자신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자들에게조차 대충 거짓말로 변명했을 뿐이고 사실 마스터가 과거에 어떤 일을 겪었는지는 그 자신만이 알고 있으리라.
‘그렇다면 마스터의 기억은 찾지 않은 정도가 아니다. 아마도 본인조차도 일부러 찾으려고 들어도 찾기 힘들 정도로 깊숙한 곳에 숨겨뒀거나 봉인해 두었을 것이다! 자신의 끔찍한 기억을 다시 직시하고 싶지 않다면 그럴 수밖에 없어.’
난이도가 더 어려워진 것 같았지만 나는 도리어 문제가 간결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이 탑 내에서 마스터의 기억을 직접 탐색하는 게 현실적이지 못한 불가능한 방법이라는 걸 빠르게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마스터의 봉인된 기억을 직접 찾아 나서는 게 아니라 다른 간접적인 방법으로 이번 임무를 해결해야만 한다.
자기자신의 과거가 싫어서 봉인해 버렸고 그 과거에 이름이 포함되어 있다면 어떻게 그걸 알아내야 할까?
‘여기에서 [시점을 바꾼다]라는 접근법을 써야 한다는 건가.’
…….
꽤 접근한 것 같지만 아직도 의문이다. ‘시점’이라는 말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나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한숨을 내쉬며 밖으로 나갔다.
“에휴. 몸이나 풀어볼까.”
우웅
나는 양손에 륜을 소환해서 아까 시전했던 혈천마왕륜과 마신비천륜의 무공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영 안 풀릴 때는 몸을 한바탕 움직이다 보면 머리가 깨끗해져서 잘 돌아갈 때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무공연습이 재밌게 느껴지는 것도 한몫하고 있었다.
파바밧
나는 한 손에는 혈천마왕륜, 다른 한 손에는 마신비천륜의 초식을 담아서 동시에 전개해보았다. 그리고 서로 다른 무공을 동시에 쓰니까 서로 초식이 꼬이는 걸 느끼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런 젠장. 동시에 다른 초식을 쓰는 건 어렵…… 아!”
나는 그 순간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알아채고는 곧장 요결(要決)을 운용했다.
양의신공(兩意神功)!
우우웅
무당파의 절학 중 하나이자 현천신공 양의결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익히게 된 양의신공! 나는 이 양의신공을 통해서 한 번에 상이한 두 가지 행동을 쉽사리 할 수 있었으며 또한 이혼대법을 이용해 양의신공을 더욱 쉽게 시전할 수 있었다. 이혼대법이 대성에 이른 지금에 있어서는 양의신공을 별도의 수련 없이도 완전히 내 몸에 맞는 옷처럼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피피핑
양의신공을 발휘한 순간 두 개의 초식은 서로 엇나감 없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발휘되었다. 나는 별다른 의미 없이 시도해본 게 성공하자 흡족해하다가 문득 생각했다.
“어? 뭐야…… 양의신공은 우리 세계의 무공인데 다른 세계의 무공과 접목이 되는 건가?”
이거 생각해 보니까 이상한 일이잖아?
양의신공 또한 하단전과 기혈을 사용해서 진기를 도인하는 건 마찬가지인데 혈천마왕륜과 마신비천륜이 사용하는 다른 세계의 기혈운용법과 충돌하지 않는 건가? 나는 어리둥절해서 다시 한번 양의신공과 더불어 두 개의 무공을 사용해 보았는데 그 순간 이상한 걸 알아챘다.
“……?”
기혈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 기가 멀쩡히 흘러……?
나는 그 현상을 발견하고는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길이 나 있지 않은 험난한 산중에 고급 마차가 전력질주를 한다는 것과 마찬가지로서, 원래라면 기가 억지로 체내를 움직이다가 못 버티고 심기혈정이 터져야 정상인 것이다. 그러나 기혈이 존재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기는 육체에 전혀 손상을 주지 않고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움직이고 있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내가 알고 있는 무공지식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인데?!
나는 혹시나 싶어서 무공시전을 멈추고 방금 흐르던 기의 흐름대로 다시 한번 움직여 보았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나는 눈과 코와 입에서 피가 주르륵 나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쿨룩! 쿨룩! 역시 주화입마에 걸리는군.”
혈관과 경맥이 터졌으니까 당연하지!
강대한 기력이 기혈도 뚫리지 않은 육체를 움직이려 하면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는 건 무공을 펼치는 동안에만 기혈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 멀쩡히 기가 돌아다니는 게 가능해진다는 건가?
‘대체 무슨 원리로?’
나는 이 무공을 도통 이해할 수가 없어서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고는 다시 한번 펼쳐보았다.
파바바밧
나는 슬며시 세 개의 무공을 펼치는 도중에 다시 내 몸속에 흐르는 기의 흐름을 관조했다. 그리고 기의 흐름이 멀쩡히 흐르는 걸 이용해서 다른 무공까지 접목시키려 하는 순간이었다.
푸확
또다시 눈코귀입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또 주화입마에 걸린 것이다.
나는 황당해서 성질을 낼 수밖에 없었다.
“아니 제기랄! 거기에 기가 있으니까 움직이는 거 뿐이잖아! 그런데 건드리려는 순간 기혈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구는 게 어디 있어!”
촤좌좟
나는 빠르게 륜을 회수해서 양손에 잡았다. 무공수련도 좋지만 두 번 연속으로 주화입마에 걸렸으니 아무리 나라고 해도 잠깐동안은 운기해서 몸 상태를 제대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빠르게 대주천을 하면서 전신의 진기를 통제하려 하는 그 순간이었다.
“……!”
잠깐…… 보이는 걸 건드리면 안 된다…….
보는 것까지는 허용되지만 그걸 현실의 법칙으로 수용하려 하면 해악이 되돌아온다…….
그 말은…….
‘내가 관찰(觀察)하는 게 진기에 영향을 준다는 말인가……?’
상식적으로는 말이 안 되는 일이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어찌 된 일인지 모르지만 기(氣)라는 게 내가 관여하지 않을 때는 법칙을 무시하고 다 정상인 것처럼 행동하지만 내가 그 법칙을 이용하려 하는 순간 내게 해악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성질을 깨닫고는 황당함을 느꼈다.
‘관찰하는 게 기 그 자체에 영향을 준다고……? 아니…… 내가 수백 년간 수많은 검호와 절세고수를 스승으로 모시고 가르침을 받았는데…… 그런 무공이론은 단 한마디도 못 들었어…….’
여태까지 수련세계에서 수백 년 수련하면서도 이런 일은 겪은 적이 없었다.
대체 이게 뜻하는 게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나는 깊게 고민하다가 문득 아 하고 탄성을 질렀다.
“도…… 동굴?”
내 머릿속에는 과거 망량이 말했던 이론이 떠올랐다.
[백웅. 지금 당신의 위치에서 육안으로 동굴 바깥의 세상은 한정적으로만 보일 것이오. 특수능력을 쓰면 더 보일지도 모르지만 여하튼 보이는 범위는 한정되겠지. 그렇지 않소?] [그렇다면, 지금 당신의 눈에 보이지 않는 이 동굴 바깥의 세계는 당신이 보고 있지 않으니 존재하지 않는 것이외까?] [그게 무슨 개소리야. 당연히 존재하지.] [허나 유심론에 따르면 그럴 수도 있소.] [이 세상에 존재하는 건 오로지 마음(心)이며 식(識)일 뿐. 마음이 존재하기에 물질의 존재가 있을 수 있는 것이오. 그리고 이 말을 확장시켜서 생각한다면, 존재가 인식하지 않는 범위의 세계는 관측하기 전에는 존재치 않는다고도 할 수 있지 않겠소?] [인식하지 않는 곳에는 마음이 존재치 않으니까. 마음과 식(識)이 없으면 물질도 없지. 그게 유심론에 따르면 합리적일 수도 있소.]…….
인식(認識)!
인식하지 않는 곳에는 존재가 성립하지 않을 수 있다는 그 생경하고 사이비 같은 이론이 머릿속에서 떠돌았다.
나는 그때는 망량이 무슨 개소리를 하느냐는 생각을 했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눈앞에서 보고 있는 이 기묘한 기의 작용이야말로 망량의 말대로인 것 같았다.
‘……내가…… 무공을 펼치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기(氣) 또한 그 인식에 맞춰준다……! 그것 외에는 설명이 되지 않아!’
하지만 왜?
기라고 하는 것은 왜 이런 성질을 갖고 있는 거지?
그것도 그냥 우리 세계의 무공만 사용할 때는 알 수 없었는데 다른 세계의 무공을 사용하니까 이게 드러나는 거지?!
“이유를 알 수가 없어…….”
지금 내가 본 바로 기는 의념과도 상관없이 제멋대로 움직인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니, 내가 관찰하는 것에 영향을 받는다는 시점에서 이미 의념의 집중력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그렇기에 나는 의념을 근간으로 하는 기존의 절세무학의 이론이 통째로 안 통한다는 걸 절감할 수밖에 없었다.
기라는 건 나 자신이 주체가 되는 존재가 아니었던 건가? 그저 우주에 가득 차 있는 자원이 아닌가?
내가 관여하지 않더라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변화한다면 과연 내가 기를 다루고 있는 거라 말할 수가 있는 걸까?
하지만 그 기의 원천이자 집중력이 되는 의념조차도 의미가 없다면…….
’기는 무엇이지?
‘실로 전지적인 시점이 아니라면 기, 그 자체를 설명할 수는…….’
내가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서 황망히 서 있을 때였다.
한참 머리를 굴리던 내 머릿속에 연상작용으로 또 다른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그렇다면…… 묻지…… ‘기억’에 전지적(全知的) 시점이 불가능하다 생각하는가……?]선지자가 했던 바로 그 말.
나는 그 기억이 스쳐 지나가는 순간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고 말았다.
“3인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