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1786)
전생검신 94권 16화
뭐? 뭐라는 거야?
나는 네크로노미콘의 말이 뭔지 전혀 못 알아들어서 멍하니 있었다.
그러자 네크로노미콘은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자신의 체구에 맞는 조그마한 지팡이를 소환하고는 그걸 잡고서 내 쪽을 향했다.
“멍청한 놈아. 봉인을 풀지 못하는 한 내가 직접 너한테 설명해 줄 수 있는 기회는 이번뿐이니까 잘 듣는 게 좋을 것이다. 알아들었냐?”
‘뭐 어쩌라고!’
이 삼색고양이 녀석 너무 건방진데!
내가 신경질을 냈지만, 네크로노미콘은 신경도 쓰지 않고 말했다.
“우선 여기가 어떤 장소인지 말해주지.”
‘여긴 우주의 가장 깊은 심연 아니냐?’
네크로노미콘은 비웃듯이 쿡쿡 웃었다.
“그렇게 말해봤자 이 장소의 본질을 설명해 주지는 못하지. 일단 너부터가 여기가 왜 존재하는 곳인지 전혀 모르고 있지 않느냐?”
‘너는 이 허괴가 존재하는 이유를 알고 있단 소리냐?’
“물론.”
그렇게 말한 네크로노미콘이 묘안(猫眼)으로 성겁체를 한 번 훑어보더니 말했다.
“이 허괴란 우주의 더미데이터다.”
‘그게 뭔데?’
“쉽게 말해서 쓰레기 자료라고 할까? 이 우주를 돌아가게 만드는 법칙에는 하등 쓸모없는 잔재(殘在)들이 쌓여 있는 곳이지.”
‘……!’
쓰, 쓰레기 자료?
여기가?
뜻밖의 말에 내가 당황하면서 제강 쪽을 쳐다보았지만, 우리의 대화를 모두 듣고 있는 제강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잠자코 있었다. 제강의 반응이 없자 나는 다시금 네크로노미콘을 쳐다보곤 말했다.
‘……외신이 굳이 쓰레기를 따로 모아놓는 이유가 뭔데?’
“후후후. 그게 참 중요한 질문이지. 우주가 완전무결한 일원(一元)이라 믿는 자들을 농락하는 진실이기도 하고.”
내 반응을 즐기듯 잠시 쳐다보던 네크로노미콘의 말이 이어졌다.
“더미데이터가 존재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 효율적인 운용을 위해서라든가…… 타인의 간섭을 막기 위해서라던가…… 이것저것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하나뿐이다. 바로 유사시에 손쉬운 리팩토링(refactoring)을 하기 위해서지.”
‘리팩토링? 그건 또 뭔데?’
네크로노미콘이 마치 무언가를 비웃듯 허공을 바라보며 음산하게 웃었다.
“용어는 어렵지만 원리는 간단하다. 외부의 결과를 바꾸지 않고 내부의 인과율만을 재조정하기 위해서지. 악랄한 외신들에게는 꼭 필요한 자료들이야.”
‘뭐……? 무슨 소리냐?’
“훗…… 못 알아들은 척하지 않아도 된다. 나 정도면 조금쯤 천기누설을 해도 외신에게 바로 제재당하지 않으니까.”
‘아니…… 모르겠는데…….’
“…….”
그러자 네크로노미콘이 기가 막힌다는 듯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뭐…… 뭐냐…… 허공록에서도 느낀 건데 너는 왜 이렇게 돌대가리냐? 알 카르다흐를 통해 나, 네크로노미콘을 만날 기회를 얻을 정도면 최소한 우주의 구원자 정도는 될 텐데 이렇게 멍청할 줄은 생각도 못 했군!”
‘…….’
“방금 정도면 설명할 건 다 설명했다!”
으윽…… 멍청하다는 욕을 또 듣다니…….
하지만 실제로 못 알아들으니 억울하고 분하다기보다는 외면하고 싶은 이야기였다.
‘거…… 사람이 모를 수도 있는 거지…….’
내가 애써 먼 산을 쳐다보고 있자 네크로노미콘이 말을 이었다.
“뭐 좋아…… 아무튼 중요한 건 더미데이터가 있어야 외신들이 ‘표면적으로는’ 인과율을 건드리지 않고 우주를 재조정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거 반칙 아냐? 외신들은 인과율이 무(無)라서 이 세상에 개입할 수 없다면서.’
“……중요한 걸 아무것도 못 알아들은 주제에 쓸데없이 핵심적인 걸 알고 있군. 대체 어떻게 대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구나.”
‘…….’
“외신이 정말로 세상에 개입할 수 없다고 생각하느냐? 그렇지 않다…….”
‘어?’
이게 무슨 말이지?
중요한 이야기라는 예감에 내가 눈을 크게 뜨고 네크로노미콘을 바라보자 놈은 나직이 말했다.
“아주 교묘하고 간접적인 개입 방식. 그 꼼수에 쓰이는 게 바로 이 더미데이터이며 허괴이다. 정확히는 더미데이터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을 이용하는 것이지. 우주의 조정 역할을 자처할 수 있기에 가능한…….”
‘그, 그게 어떤 꼼수인데?’
순간 네크로노미콘은 움찔했다.
“글쎄…… 사서가 지켜보고 있군. 아무리 나라도 이 이상 직접적으로 언급하면 위험할 거 같아서 그냥 여기까지만 말해두마.”
‘아니 이 새끼야! 말을 하다가 마는 게 어딨어!’
의뭉스럽게 말을 끊어 버린 네크로노미콘의 태도에 내가 화를 내자 네크로노미콘은 피식 웃었다.
“억울하면 내 지식의 봉인을 풀어라. 네놈이 아직 1단계 봉인도 못 풀어서 우주의 비밀을 말할래야 말해줄 수가 없지 않느냐?”
‘큭…… 그래서 마법을 수련하라는 말이냐?’
“하면 되지 못할 건 또 어디 있나? 보통의 마도사라면 네 머릿속에 있는 지식 1줄을 위해서 평생 모든 것을 바치는 종놈이 될 터인데 보물창고에서 헤엄치면서 지랄이 짜구나.”
‘…….’
이 자식 은근히 말투가 험한데…….
나는 조심스레 네크로노미콘에게 말했다.
‘혹시…… 마법을 수련하면 이 허괴에서 빠져나갈 방법도 알 수 있을까?’
지금 내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일단 허괴에서 빠져나가야 치우의 몸을 얻든가 말든가 할 수 있다는 절대조건!
내 질문에 네크로노미콘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다. 이 정도 허괴쯤은 내 지식의 봉인을 2단계만 풀어도 빠져나갈 수 있다.”
‘……! 진짜냐?!’
“그래. 2단계에는 허괴를 탈출할 주문이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네가 일단 1단계 봉인을 완전히 풀어내야 하겠지.”
‘그, 그렇다면야 열심히 마법을 수련하겠어!’
마법을 수련해야 탈출할 수 있다면 안 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네크로노미콘은 자신의 지팡이로 내 손을 툭툭 치면서 말을 이었다.
“자, 잡설은 이쯤하고 내가 여기에 온 본론을 이야기하도록 하지. 수인(手印)부터 맺어 봐라.”
신기하게도 놈은 영체인 내게 아무렇지도 않게 간섭할 수 있는 것 같았다.
‘수인?’
“수인 모르냐? 마법의 발동 요소잖아. 알고 있는 거 아무거나 써 봐라.”
‘그렇다면야…….’
파바밧
나는 그 말에 내가 알고 있는 수인 중 하나를 펼쳐 보았다.
그러자 네크로노미콘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이혼대법(移魂大法)의 분백(分魄) 수인(手印)이구나. 혼을 분리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거지.”
‘……!’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건 제갈사가 자작술법으로 개발한 수인인데 어떻게 알고 있지?!’
그렇다. 이것은 과거 제갈사에게 처음으로 이혼대법을 수련받을 때 망량과 함께 전수받은 수인!
나중에 알게 된 거지만 이건 시몬마구스에게서 배운 것도 아니고 제갈사 스스로가 이혼대법 대성의 경지에 이른 후 수련방식을 최적화하면서 개발해 낸 수인이었다.
그렇기에 이 수인을 알고 있는 것은 제갈사 본인 혹은 제갈사에게 사사한 이혼대법 전승자뿐인데, 어떻게 이 마도서 네크로노미콘이 이 수인의 정체를 알고 있단 말인가?!
그러자 네크로노미콘이 대꾸했다.
“술자(術者)의 고유성 따위는 내 앞에서 무의미하다. 일단 ‘존재’하고 있다면 그 어떤 마법, 술법, 현상이든 모두 그 본질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시작과 끝, 파훼법마저도.”
‘뭐……!’
“이런 기본적인 능력에 놀라서야 갈 길이 멀군. 내가 진짜 대단한 건 이딴 분석 능력이 아닌데.”
자존심이 상한다는 듯 말한 네크로노미콘이 내 수인을 슬며시 쳐다보다가 흠 하고 자신의 턱을 쓰다듬었다.
“그렇군…… 역시…… 네놈의 문제점을 알겠다.”
‘내 문제점이 뭔데?’
네크로노미콘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법(魔法)을 수행하기에 네놈은 너무 뛰어난 천품(天品)을 갖고 있다. 그래서 도리어 기초를 열심히 다질 필요가 있겠다.”
‘……?!’
나는 그 말에 잠시 당황하다가 이윽고 믿기지 않아서 말했다.
‘뭐…… 뭐? 내가 뛰어나다고? 마법에 재능이 있어?’
“재능이라기보다는 천품이지.”
‘뭐가 다른데?’
“재능이 경지(境地)에 필요한 소양이라면 천품은 그 경지를 이룰 필요조차 없게 만드는 본성(本性)이다. 즉 경지에 이르러서 얻게 되는 ‘무언가’를 이미 얻었기에 노력도 재능도 필요가 없는 것이다.”
‘……?’
그게 뭐야……?
나는 생전 처음 듣는 개념에 황당해서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네크로노미콘이 한숨을 쉬며 설명해 줬다.
“하아…… 쉽게 말하자면 이런 거다. 네놈은 마법의 이론이나 수인, 응용력, 복잡성같은 건 눈곱만큼도 알지 못하겠지만 그 마법을 한평생 수양한 대마도사가 간신히 얻을까 말까 한 고유(固有)한 소양을 이미 갖고 있다. 이는 마왕이나 마신조차 거의 지니지 못한 천품이라 할 수 있다.”
‘……!’
“정말 마법을 수련한 적이 없느냐? 내면의 역사를 읽어봐도 그런 적 없는 건 확실한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네크로노미콘이 정말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하지만 나는 이해가 안 되어서 외쳤다.
‘나한테 그런 소양이 있다고? 그 소양이 뭔지 가르쳐 줘!’
내가 소환의 재능이 있다는 얘기 정도는 들은 것 같지만 마도서 네크로노미콘이 천품이라는 단어로 고평가를 할 정도였단 말인가? 네크로노미콘이 내 말에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말했다.
“만마(萬魔)에게 사랑받는 자. 만종(萬種)를 설득하는 혀. 만사(萬邪)을 끌어들이는 족적(足跡).”
‘…….’
“크게 보면 3가지이고 그 외에도 있는 것 같지만 나머지는 잘 모르겠군. 아직 발현이 안 된 건가? 그런데 이런 소양을 어떻게 혼자서 다 가질 수가 있지? 천품 하나하나를 가진 자는 어딘가에 존재했지만, 웬만한 마신조차도 이 중에 하나 이상을 갖기 힘들 텐데…….”
‘무슨…….’
나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응룡이 내게 만마에게 사랑받는 재능이 있다고 말한 적은 있지만 설마 그 외에도 2개나 되는 천품이 더 있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나 마법에 있어서 타고난 인간이었단 말인가?
하지만 나는 납득이 되지 않아서 네크로노미콘에게 말했다.
‘그렇지만 나는 소환술 외에 다른 마법은 별로 잘 익히지도 못했고 천재처럼 진도가 빨리 나가지도 못했어! 네가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니야?’
“크으…… 역시 머리가 나빠서 재능과 천품의 차이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구나.”
뭔가 골치 아프다는 듯 자신의 미간을 모으며 조그마한 삼색고양이 손을 얹은 네크로노미콘은 잠시 후 말을 이었다.
“너는 말이다…… 사실은 마법을 수련할 필요가 별로 없다. 그 3가지 천품 모두가 마도(魔道)를 연마해 탈각(脫覺)의 단계를 거쳐서 확률적으로 얻게 되는 소양! 그 완성된 결과물을 이미 얻었는데 뭐 하러 마법을 수련하냐.”
‘……?! 하지만 마법 자체를 잘 못 쓰면 그 소양이 있으나 마나 아니야……?’
“모든 마법의 목적은 상위존재 혹은 마신을 소환해서 그 힘을 빌리는 거다. 그런데 마신은 자신에 못 미치는 대부분의 존재들을 벌레 취급하기 때문에 소환하다가 다 죽지. 그 때문에 마도서의 상위단계로 갈수록 소환시의 생존율이 올라가는 주문이 많다.”
네크로노미콘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런데 너는 생존율을 넘어서서 웬만한 신이나 마물을 상대로 이야기하면 커다란 친밀감을 얻거나 무조건 좋은 결과를 얻는 편이었지. 차원을 주름잡는 대신격을 상대로 대화하면 무조건 성공이라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어딨단 말이냐. 심지어 외신에게 호의를 살 수 있다니…… 이미 그 자체가 마법이 지향하는 이상향에 도달해 있다는 말이다.”
‘……!’
“특히 만마에게 사랑받는 천품은 그걸 얻고 싶어 하는 마도사들이 삼천세계에 산처럼 쌓여 있다. 마신들조차 탐을 내는 천품이다. 넌 이미 자신의 천품을 극한으로 활용하는 것처럼 보이는군.”
그…… 그런가……?
나는 얼떨떨했지만, 최고의 마도서라는 네크로노미콘의 평가이니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것도 나보고 멍청하다면서 틱틱거리며 면박을 주던 놈이 하는 칭찬이었기에 객관적이라고 느껴질 수밖에 없다.
…….
어…… 근데 별로 기분이 좋지는 않군…….
내 뜻은 이미 무(武)에 고정되어 있는데 이제 와서 마도의 재능이 대단하다고 해도 실감이 안 난다.
오히려 그 재능이라는 게 그렇게 와 닿지 않았기에 허무한 느낌마저 들고 있었다. 전우주의 신마(神魔)에게 호의를 얻는 게 그렇게 대단한 건가?
나는 멍하니 있다가 문득 핫 하고 정신을 차리고는 말했다.
‘잠깐…… 천품이란 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는 알겠는데 그래도 마법이라곤 쥐뿔도 모르겠는데 어쩌라는 거야! 뭐라도 알아야 써먹든가 말든가…….’
“그래서 기본기를 수련하라는 말이다. 다시 수인을 맺어 봐.”
‘이렇게?’
내가 엉거주춤 수인을 맺자 네크로노미콘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너도 알다시피 마법의 근원이자 기본기는 5가지다. 수인, 영창, 주문, 제물, 염원(念願). 이 정도는 제갈사라는 마도사에게 배워서 알고 있겠지?”
나는 네크로노미콘의 말에 깜짝 놀랐다.
‘너…… 너는 제갈사를 어떻게 알지?’
“방금 네 천품을 분석하면서 대략적인 기억도 다 읽었으니까. 이런 말로 시간 낭비할 필요 없다.”
‘……그래. 마법의 기본이론은 알아.’
“알더라도 다시 한번 짚어가며 설명해 주마. 나는 지금 그걸 위해 소환되었으니까.”
나는 지금이 중대한 시기라는 걸 알아챘다.
제갈사는 따지고 보면 마도사라기보다는 이혼대법술사에 가까웠기에, 진짜 차원에서 손꼽히는 마도서가 직접 가르쳐주는 건 제갈사의 가르침보다 높은 경지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제갈사의 마법계통 또한 신력의 한 갈래인 세피로트였기에 정식마도와는 약간 다른 사파 계열이었던 것이다.
정통 상위마법 그 자체를 사사하는 건 아마 이번이 처음일 수도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을 느끼고는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설명해 줘.’
네크로노미콘은 지팡이로 내가 수인을 맺은 손을 툭 건드리며 말을 이었다.
“가장 먼저 수인. 이건 사실 5대 요소 중에서 가장 쓸데없다. 왜인지 알고 있냐?”
‘……수인 없이 그냥 주문만으로 발동하는 마법도 있어서.’
“그렇다. 수인은 그저 주문의 위력을 증폭시켜주는 보조효과에 치중되어 있는 요소다. 그래서 기본기 중에서 가장 나중에 수련하는 편이지. 그러면 가장 중요한 5대 요소는 무엇이냐?”
나는 그 질문에 곰곰이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염원.’
“어째서지?”
‘다른 4가지가 모두 없어도 염원만 있어도 발동하는 마법이 있으니까…….’
“그렇다. 강력한 의지와 마력만 있으면 사실 나머지 4개는 다 없어도 되는 경우가 많다. 그게 극한으로 발달한 게 바로 신들이 쓰는 신력(神力)이라고 할 수 있지. 그렇다면 마도사는 염원만 수련해도 될 텐데 어째서 나머지 4가지 요소를 다 수련할까?”
‘음…… 어째서였더라…….’
이거 제갈사가 말해준 거 같은데 까먹었네…….
내가 머리를 굴리고 있자 네크로노미콘이 말했다.
“바로 신력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마도(魔道)만의 경지가 따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모든 5대 요소를 다 극한으로 수련할 필요가 있지.”
‘……?’
나는 뭔가 이상해서 멍하니 있다가 당황해서 말했다.
‘아, 아니 인간의 힘으로는 염원이나 주문만 수련해서 강력한 힘을 얻는 게 불가능해서 아니었어?! 제갈사는 그렇게 말했는데?!’
이제야 제갈사가 말해줬던 이유가 생각났는데 지금 네크로노미콘이 말하는 정답과 영 딴판이잖아?!
내가 당황하자 네크로노미콘이 피식 웃었다.
“그거야 인간 마도사 수준에서 하는 말이고…… 나는 기본적으로 마왕급 이상의 경지에 오른 마도사를 기준으로 말하는 건데 힘의 한계를 왜 언급하겠냐? 마신 이상의 경지를 노리고 수행해야지.”
‘…….’
“도리어 반대지. 염원이나 주문만으로도 마왕을 이길 수 있을 정도는 되어야 나, 네크로노미콘의 수행을 따라올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이런 미친…….’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이제 보니까 이놈의 마도서 네크로노미콘이 요구하는 기준은 터무니없이 높은 것이다! 진짜 마도의 극에 도달하기를 원하는 거 아닌가?
네크로노미콘의 말이 이어졌다.
“아무튼 본론으로 되돌아와서…… 그 기본기의 중요성을 차치하고서라도 넌 기본기를 수련해야 한다. 왜냐하면 천품을 마도능력에 녹여낼 필요가 있기 때문이지.”
‘천품을 마도능력에 녹인다고?’
“그래. 네 말대로 너는 이미 천품을 잘 써먹고 있어서 마법을 수련할 필요가 없는데 굳이 또 수련을 한다면 천품으로 인한 이득을 보는 편이 좋지 않느냐? 그러려면 기본기의 발동을 숙련시켜서 마법의 근원부터 이해하는 게 제일 빠르다.”
‘흐음…… 어쩐지 무공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하군.’
나는 묘하게 네크로노미콘의 수련이론이 내가 익힌 무공의 이론과 비슷하다는 걸 느꼈다. 무공에서도 가장 기본부터 탄탄하게 쌓아야만 상승단계의 무공을 익힐 수 있지 않은가? 또한 막대한 내공을 몸에 녹여낼 때도 기본기를 수련해야 한다는 걸 감안하면 정말 비슷했다.
내 말에 네크로노미콘이 대답했다.
“무공과 마법의 이론이 비슷한 게 이상하느냐?”
‘마법이라는 건 사법(邪法) 중에서도 사법(邪法), 좌도방문보다 훨씬 사특한 술수잖아…… 정법(正法)과 이론이 비슷하다는 생각을 누가 하겠냐고.’
“쿠쿠쿠쿠쿠.”
내 말에 네크로노미콘이 특유의 비웃음을 지었다. 고양이가 웃는 것이라 귀엽긴 했지만, 왠지 더 열받는 느낌이 있는 미소였다.
“왜 무공이 정법이라고 생각하지? 나는 그게 더 웃기구나.”
‘뭐라고?’
“마법이란 우주가 시작된 이래 가장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초월의 능력이자 외신을 비롯하여 온갖 [옛 지배자]와 마왕들이 즐겨쓰는 파워다. 그에 반해 무공이란 건 마법수련자의 인구에 비하면 쥐뿔도 안 되는 극소수의 인구가 알음알음 명맥을 이어 나가는 능력…… 수련자의 숫자만 비교하면 마법 수련자가 몇천억 배는 더 많을 거다. 태생적으로 마법을 쓸 수 있는 종족은 많아도 무공을 쓰는 종족 같은 건 거의 없고 마도제국은 있어도 무공제국은 없다.”
‘…….’
“전 우주에 설문조사를 하면 마법이 정법이라 할 텐데 대체 소수파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냐, 쿠쿠쿠쿠.”
…….
에잇 젠장…… 할 말이 없네!
나는 성질이 났지만 맞는 말이라서 입맛만 다셨다. 그래서 말을 돌리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마법의 5대 요소 중에서 어떤 기본기를 수련하면 되는 건데?’
“수인이다.”
‘뭐? 아까는 수인이 마법의 5대 요소 중에서 가장 쓸데없다고…….’
네크로노미콘이 단호하게 말했다.
“가장 쓸데없지만 가장 천품(天品)의 영향을 덜 받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천품이 강한 너 같은 경우는 수인부터 달통해야 마법을 이해하기가 쉬워질 것이다. 염원이나 주문 같은 건 네게 있어서 신력처럼 다룰 수 있는 것이기에 이해도가 높아지기 힘들어.”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으음…… 무슨 말인지 대충 알 것 같은데…… 그래서 수인은 어떻게 수련하는데?’
“지금 맺고 있는 수인에 집중해 봐라.”
‘알았어.’
“수인이란 염원을 간접적으로 나타낸 요소다. 염원이란 깨달음이니, 네가 맺고 있는 인(印)은 누군가의 깨달음을 표현하고 있다. 그 깨달음이 지금 느껴지느냐?”
‘…….’
나는 침묵하며 내가 맺고 있는 수인을 쳐다보았다. 이건 제갈사가 이혼대법의 분백을 쉽게 하려고 만든 수인이니 제갈사의 이혼대법 깨달음이 깃들어있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나는 아무리 봐도 그 깨달음을 실감할 수 있었기에 한참을 고민하다가 말했다.
‘아니…… 전혀 모르겠어…….’
“그걸 모르고 수인만 맺으니까 실력이 허접인 것이다. 너한테 그 수인을 가르친 제갈사는 분백의 수인이 어떤 깨달음을 갖고 있는지 다 이해하고 응용까지 한 게 아니냐? 너와 달리 진짜 이혼대법의 종사(宗師)인 거지.”
‘끄응.’
“너한테 야단만 치려고 소환된 건 아니니 걱정 마라. 알기 쉽게 수인에 내포된 깨달음을 이해하는 법을 가르쳐 줄 테니.”
‘정말이냐?!’
내가 네크로노미콘의 말에 화색이 돌자 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외신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더미데이터를 이용한 꼼수를 쓸 수 있지. 이것만이 방법은 아니지만 마침 허괴에 와 있으니 이걸 써 볼까.”
키잉 –
네크로노미콘이 들고 있던 지팡이가 밝게 빛났다. 그리고 네크로노미콘이 나직이 한마디의 주문을 외웠다.
“연무진(緣舞塵)!”
지이이잉……!
그와 동시에 나는 갑자기 내 몸이 여러 겹으로 나누어지는 걸 느꼈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내가 이 공간에 서 있지만 나와 다른 차원에 나와 완벽하게 겹치는 또 다른 ‘나’가 연속되는 것만 같았다. 이것은 내가 쓰던 분신술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라서 그것은 자아의 혼란조차 생길 여지조차 없었고 도리어 거울 저편에 있는 환영과 나 자신의 실존을 비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스윽
내가 혼란을 느끼고 있을 때 네크로노미콘이 천천히 지팡이로 내 수인을 맺은 손을 밀어서 오른쪽으로 향하게 했다. 내가 조그마한 힘에 끌려들어 가서 오른쪽으로 몸이 향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 동시에 나는 기이한 감각에 전율했다.
‘나, 나는 오른쪽으로 가는데 동시에 왼쪽으로 가고 있다?’
뭐지? 왜 동시에 같지만 다른 일이 벌어지는 거지?
내가 말도 안 되는 경험에 당황하고 있을 때 네크로노미콘의 설명이 귀에 들려왔다.
“두 사람이 춤을 춘다고 생각해라.”
‘……!’
“너는 왼쪽으로 춤을 추려 하고 너와 춤을 추는 자는 오른쪽으로 춤을 춘다. 너는 왼쪽이나 오른쪽, 둘 중 하나로 가고 있지만 동시에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뭔가…… 이해가 될 것 같으면서 안 된다…….
아니…… 이걸 이해는 하고 있지만 아직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다.
내가 여전히 혼란에 휩싸여 있을 때 계속 설명은 들려왔다.
“……너와 춤을 추는 건 너 자신이니까. 움직임은 둘이지만 존재는 하나. 그렇다면 동작 하나하나를 떼어서 이해할 수 있을까?”
그 순간.
나는 머릿속을 뇌정(雷精)이 관통하는 듯 깨달음이 스치고 지나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래…… 아니다.
나와 겹쳐 있는 이 무수한 실존들은 나누어져 있는 게 아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인 것이다.
일(一)의 이치를 깨닫는 그 순간, 나는 갑작스레 내가 쥐고 있는 이 수인(手印)의 의미가 머릿속으로 물밀듯이 밀려들어 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니, 이것은 없었던 지식이 갑자기 생긴 게 아니라 제갈사에게 수행을 받는 동안에 수인을 보면서 생각났던 모든 종류의 통찰(通察)이 합일(合一)되는 생경한 경험이었다.
아주 잠깐씩 스쳐 지나갔던 무의식에 잠겨 있던 미세한 한 조각의 통찰.
그 통찰이 스며서 만들어 내는 물방울과 같은 깨달음!
그 깨달음은 본디 점수(漸修)를 통해 깊이를 더해가는 것이었지만 나는 강제로 그 한 방울을 맺히게 만든 것처럼 느껴졌다.
물 한 방울이 수면에 떨어진다.
번쩍!
‘……아!’
나는 그 순간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수인에 담겨 있는 제갈사만의 깨달음을!
제갈사가 어떤 마음으로 분백의 수인을 만들었으며 어떤 식으로 효율적으로 술식을 압축했는지 전반적인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해가 된 것이었다. 마치 수많은 수학의 도식이 머릿속에 즉흥적으로 들어왔는데 아무런 위화감이 없는 것만 같았다.
내가 깨달음을 음미하며 그 자리에 멈춰있자 네크로노미콘이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떠냐? 상큼하지?”
‘이, 이건 대체 어떤 주문이지? 갑작스럽게 깨달음이…… 짜내어졌어!’
네크로노미콘은 왠지 자부심이 느껴지는 말투로 말했다.
“이 허괴에서만 쓸 수 있는 주문이지. 잊혀진 세계의 법칙을 이용해서 강제로 더미데이터의 텐서를 읽어들인 것이다.”
‘……?’
“뭐 체감으로는 다 이해했을 테지만 다시 한번 설명해 주지. 깨달음이란 갑작스레 얻기도 하지만 수많은 경험 속에서 통찰을 쌓아 올리며 그 통찰 속에서 최적화를 얻어내는 것이라 할 수 있지. 하지만 깨달음을 얻기 힘든 이유는 경험 자체의 양이 부족한 것도 이유이지만, 동일한 환경 속에서 변인을 통제하지 못하고 무의식으로 묻혀 버리는 경험 때문에 트리거가 매몰되기 때문이다. 통찰의 양을 극대화시켜서 매몰 확률을 낮추든가 우연의 도움으로 매몰되는 트리거가 전부 의식에 떠오르는 순간을 얻든가 라고 할 수 있지. 그러나 이 허괴에서는 모든 얽힘이 더미데이터의 형태로 보존되어 있기에 강제로 모든 트리거를 발동하게 만들 수가 있어.”
음…… 하나도 모르겠군…….
나는 네크로노미콘의 장황한 설명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
‘뭐라는 거야? 좀 알아듣게 설명해!’
네크로노미콘은 삐진 듯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 허괴에서만 강제로 깨달음을 얻게 하는 주문인 연무진을 쓸 수 있다. 됐냐?”
‘그렇군!’
진작 그렇게 간단하게 말하면 될 걸 갖고 외계어를 말하고 자빠졌냐!
나는 투덜거리다가 네크로노미콘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그…… 연무진을 쓰면서 내 수인의 깨달음을 강화시키면 되는 거겠지?’
“그래.”
‘어떤 수인을 수련하면 되지?’
“생각나는 거 아무거나 전부.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넌 네가 터득한 모든 수인의 의미를 단 하나도 모르는 무지렁이잖느냐? 넌 이제야 마도의 걸음마를 뗐다.”
‘…….’
“이제 겨우 1개 깨달았지.”
아…… 사실이지만 듣고 보니까 기분 나쁘네…….
내 인상이 구겨지고 있을 때 네크로노미콘이 말했다.
“그러다 보면 마법의 형이하학적인 원리를 많이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수인이야말로 마법의 형체를 가장 많이 다루는 것이니까.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봉인의 1단계를 깰 수 없어.”
‘뭐?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데?’
“주문.”
네크로노미콘이 천천히 말했다.
“수인의 수련이 끝나고 나면 너만의 주문을 개발해야 한다. 그걸 할 수 있어야 한 명의 마도사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