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1803)
전생검신 95권 13화
이미 결말은 정해져 있다.
외신(外神)이 소환되었다면 – 아무리 뇌혼이 강대하더라도 감당할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 ‘당연한’ 결과에 안심되기보다는 그저 넋을 놓고 전방을 쳐다보고 있는 내가 있었다.
어째서……?
어째서 저런 존재가 지금 튀어나온단 말인가?
너무나 상식 밖의 상황에 생각을 이어 나갈 수 없다.
혼탁하고 지리멸렬한 사흔(思痕)이 불규칙적으로 뇌세포를 두들길 뿐 생각이 조리 있게 전개되지 않는다. 아니 – 이미 나는 광기(狂氣)라고 부를만한 불규칙한 마음에 사로잡혀 있는 듯했다.
[으오오오.]그리고 뇌혼은 다음 순간 자신의 한쪽 손에 광창(光槍)을 소환해서 쥐었다. 영롱한 빛을 머금은 그 광창 속에서 어마어마한 힘이 느껴졌고, 뇌혼은 광창을 휘두르며 광폭하게 돌진하여 외신에게 덤벼들었다.
번쩍……!
섬광이 천지를 분단시킨다. 그러나 천지가 갈라지는 그 파장 속에서 외신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고 막거나 피할 생각도 없어 보였다.
퍼벅!
무언가가 퍽 하고 떨어져 나가는 소리!
그 소리는 외신의 몸에서 나는 게 아니었다. 광창의 일섬을 날린 뇌혼의 몸뚱이가 마치 베여나가듯 깔끔하게 전신이 이분(二分)되어 떨어져 나간 것이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따질 필요도 없었다. 애초에 외신에게 일격을 날려 성공한다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인 일이었기에 저런 마술적인 결과조차도 어찌 보면 필연일 수밖에 없다.
파지지직
갈라진 뇌혼의 몸뚱이에서 과격한 뇌전이 마구 분수처럼 터져 나왔다. 마치 피처럼 터져 나오던 그 뇌전은 그칠 줄을 몰랐고 뇌혼은 자신의 몸을 수습하려는 듯 허우적거리는 동작을 취했다. 나는 그런 뇌혼의 행동을 보자 순간 대단하다고 느꼈다.
‘뇌혼…… 외신에게…… 대적하려는 것이냐?’
분명 절망적인 힘의 격차를 느끼고 있을 텐데 설마 선공을 할 줄이야!
딴 건 몰라도 뇌혼이 지니고 있는 투지(鬪志)는 굉장한 것이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가 멍하니 눈앞의 전투를 쳐다보고 있을 때 외신의 말이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 부 족 하 다 ]……?
나는 나도 모르게 외신 지네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지네 또한 나를 쳐다보고 있는 듯했는데, 그 시선을 봐서는 내게 한 말이 맞는 것 같았다.
부족하다고?
설마…….
츠츠츠츠
‘……!’
나는 이윽고 지네의 외신, 암천향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존재의 몸뚱이가 서서히 흐려지는 걸 알아채고는 비로소 외신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를 정확히 알 수 있었다.
부족하다는 것은 바로 공양!
더 많은 제물을 바치지 않는다면 더 이상 나 대신 뇌혼과 싸워주지 않겠다는 의미인 것이리라!
‘크으…… 으윽!’
나는 그 순간 내가 얼마나 무모한 도전에 발을 내디뎠는지를 절감하고는 마음속이 절망으로 가득채워지는 것을 느꼈다.
상위명이 외신 암천향이며, 그 외신을 소환한 건 좋지만, 그 외신을 소환하는 대가는 실로 어마어마한 것!
이미 내가 가진 절반 이상의 권능을 제물로 바치고 심지어 흑웅마저도 내 [이름]들을 가지고 함께 공양되었지만, 그 많은 대가를 받아가고도 뇌혼을 상대로 단 일합(一合)을 감당해 주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물론 외신을 상대로도 덤벼드는 뇌혼의 무지막지한 힘과 투지를 감안하면 그럴 만도 했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이건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생하면서 이만큼 막대한 대가를 요구한 신격이 존재하긴 했던가?!
설마 잠깐 소환하는 대가가 이렇게나 클 줄이야!
나는 힐끔 저만치에 있는 뇌혼을 쳐다보았다.
이미 상당히 큰 부상을 입은 것 같지만 치명상은 아닌 것 같군……! 괴물 같은 놈!
뇌혼이 외신의 반격에도 살아남을 정도의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 – 그건 무척 공포스러운 일이었다.
외신만큼은 아니지만 뇌혼 또한 전 우주에서 손꼽힐만한 어마어마한 힘을 보유한 건 마찬가지였다. 이미 많은 권능을 제물로 바쳐서 내 신력이 크게 약화된 걸 고려한다면 이제 와서 뇌혼과 겨룬다 해도 내가 이길 가능성은 극히 적으리라.
…… 하지만…… 더 이상의 권능을 제물로 바친다면…….
나는 어쩌면 최소한 100번 이상의 전생을 더 해야 다시금 이번만큼의 힘을 되찾을 수 있으리라.
이제서야 겨우 삼황오제를 가시권에 두고 있는데…… 이만한 힘이 있다면 현실에서 얼마나 막대한 성취를 볼 수 있을지 기뻐하고만 있었는데…….
과연 이 한 순간의 격돌에 그만한 희생을 치러야 한단 말인가……?
내가 고민하고 있던 그때였다.
“백웅. 내 이름을 바치거라.”
‘미호!’
기신 미호가 그렇게 말하며 앞으로 나왔다. 그러고는 내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이런 가상의 공간에서나마 너를 다시 만난 것만으로도 기뻤다…… 네가 모든 것을 잃는 것보다는 차라리 내가 소멸되는 게 나을 것이다.”
‘…….’
미호의 말에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내가 바보가 아닌 이상 알고 있었다. 지금 외신을 위해 미호 등 다른 [이름]을 바친다면, 그들은 영영 되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그리고 이번에 소멸된다면 영겁의 소멸이 확실할 거라는 걸 모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미호의 마음을 알고 있기에 나는 가슴 속이 먹먹해지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가…….
강해지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었지만…… 내가 강해지려는 건 무엇을 위해서였는가.
이 신력(神力)이라는 힘에 취해서 정말로 중요한 걸 잊어버리고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
내 자신이 한심스럽군.
‘아니. 너희를 바치지는 않을 거야.’
내가 단호하게 말하자 기신 미호가 흠칫하고 놀랐다.
“뭐라고? 설마…….”
‘외신…… 암천향이여!’
나는 이윽고 각오를 다지고는 외쳤다.
‘나 백웅은…… 우선 상업의 권능을 바치겠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뇌혼을 확실히 누르기를 바라기에…… 그 소원을 이룰 만큼의 대가가 필요하다면 지금 말해다오!’
더 이상 애매하게 질질 끌려다니지는 않는다.
한 번에 크게 잃더라도 단호하게 이번에 결론을 낸다!
쿠구구구
내 말이 끝나는 순간 어두운 먹구름 같은 기운이 흐르며 나와 암천향의 외신을 둘만 가두는 듯한 구체가 생겨났다. 이 구체에서 다른 [이름]의 존재들은 어느새 사라져 있었고 나는 외신 지네와 독대(獨對)하는 모양새가 되어 있었다.
쿠르르
나는 지네 외신을 보며 새삼 긴장했다. 그리고 잠시 후 지네 외신에게서 의지가 들려왔다.
[ 죽 음 그 리 고 창 조 의 권 능 그 모 든 것 을 바 쳐 라 ]‘……!’
나는 지네 외신, 암천향이 바라는 대가가 무엇인지를 깨닫고는 이를 악물었다.
‘죽음’이라는 건 바로 전륜성왕(轉輪聖王)의 권능!
‘창조’라는 건 바로 트리무르티!
그 두 가지를 모조리 바치라는 것은 사실상 내가 가진 가장 강력한 권능을 다 잃게 된다는 뜻이었다. 저걸 다 잃게 된다면 내 신력은 상당히 크게 떨어져서, 내가 30회차에 얻었던 전성기의 신력에 비하면 3할도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트리무르티만큼 강력한 권능을 잃게 된다면 향후 현실로 복귀했을 때 최강의 힘을 얻은 삼황 복희를 상대로 이길 방법이 전혀 없어질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미 각오했던 바이기에 지네의 외신을 응시하며 말했다.
‘받아들이겠다. 하지만 내 질문에 하나만 대답해 다오!’
[ 말 하 라 ]‘지네의 외신…… 암천향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당신이…… 어째서 내 팔의 [이름]으로 자리 잡고 있는 거지?!’
내 질문에 지네의 외신이 마치 흑요석처럼 빛나는 눈을 검게 반짝였다.
그는 잠시 후 말했다.
[ 옥 좌 에 도 달 해 라 ]‘…… 뭐?’
[ 결 말 을 보는 자 여 . 너는 그 후 에 자 격 이 생 길 것 이 다 ]츠츠츠츠……!
다음 순간 나는 그 어두운 안개 같은 공간 속에서 내 자신의 존재가 무척 작은 것으로 줄어드는 것을 느꼈다. 아니, 그렇다기보다는 나는 그대로 있는데 공간이 무한대로 커지면서 동시에 지네의 외신이 지닌 몸뚱이가 무한대로 함께 커지고 있다! 그 무한의 몸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크기로 커져서 순식간에 형상을 알 수 없게 되어 버렸고, 이윽고 나는 외신의 몸 속에 깃들어서 허공의 우주에서 어떤 ‘세계’를 내려다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저것이…… 암천향인가……?!
몸 그 자체가 암천향의 세계인 지네의 외신은 서서히 태동하듯이 꿈틀거리며 움직였다. 그리고 잠시 후 정체를 알 수 없는 고차원에서 울려 퍼지듯이 한마디의 주문을 외웠다.
[ 그 리 고 심 연 이 있 었 다 ]번쩍 –
[ 크오오오오!]뇌혼의 전신이 다음 순간 갈가리 찢겨져 나갔다. 아까 반격을 맞았을 때 이상으로 거대한 비명이었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말 그대로 수백 조각으로 터져 버리듯이 찢긴 것이다! 그리고 뇌혼을 찢어 버린 그 파괴의 중심에는 영롱한 은빛으로 빛나는 어마어마한 힘의 덩어리가 있었는데, 나는 저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었다.
그저 허무.
여태껏 내가 보아왔던 그 어떠한 종류의 ‘힘’으로도 정의할 수 없는 절대적인 허공!
텅 비어 있는 그 허무는 도저히 뇌혼의 막대한 힘으로도 저항할 수 없는 속성을 지니고 있는 듯했다.
‘이, 이게 외신…….’
외신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는 알 카르다흐를 보면서 충분히 느끼고 있었지만 이 지네의 외신도 더하면 더했지 그보다 약한 존재가 아닌 것 같았다. 아니, 암천향이라고 하는 별세계 그 자체를 몸으로 삼고 있는 저 존재부터가 규격외의 무언가라고 할 수 있었다.
내가 멍하니 있을 때 외신의 존재감이 서서히 사라지면서 마지막 한마디가 들려왔다.
[ 2 할 이 다…….]슈욱
그 말을 끝으로 외신 지네는 사라졌다. 마치 자신이 할 일은 끝났다는 듯한 태도였다.
‘…….’
2할…….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기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오히려 해야 할 일이 늘어났을 뿐이다.
쿠구구구…….
그리고 잠시 후, 이 트리무르티의 공간의 한가운데에 있던 적색의 보석이 빛을 내기 시작했다. 붉은빛이 점차 나와 [이름]의 존재들, 그리고 부서져 버린 뇌혼을 감싸기 시작했다. 나는 그 빛에 휩싸이면서 의지가 선명한 목소리로 들려오는 걸 느낄 수가 있었다.
[ 빌어먹을! 인정할 수 없어! 더 많은 힘을 축적했으면 이길 수 있었다고! ]광폭하면서도 분하기 그지없다는 목소리.
나는 그 목소리의 주인이 내 앞에 희미하게 떠올라 있는 번갯불이라는 걸 알아채고는 기가 막혀서 말했다.
‘뇌혼이냐……?’
[용납못해!]뇌혼이 틀림없는 그 번갯불은 찌르르 떨면서 발작을 했다.
[너처럼 약한 놈이 내 창조주라는 것도, 그리고 방금 전 외신과의 싸움도! 내가 얻을 수 있는 모든 진화의 가능성을 얻었다면 천상천하 내게 대적할 자는 없단 말이다!]‘…….’
나는 기가 막혔다.
설마 외신의 주문 한 방에 개박살 나고도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니!
자존광대한 오만함 하나만큼은 정말 우주최고가 아닌가?
나는 어이가 없어서 말을 못하고 있다가 뇌혼을 비웃었다.
‘지고 나서 입 터는 건 누가 못하냐.’
[뭐…… 뭐라고!]‘넌 졌어. 나는 모든 대가를 치러서라도 널 이겼고.’
나는 히쭉 웃으며 말을 이었다.
‘패배자 새끼.’
이번 싸움으로 많은 것을 잃게 되어 버렸다.
이렇게라도 조롱해주지 않으면 내 분이 풀리지 않으리라.
[……!]뇌혼이 또 뭐라고 지랄발광을 하려던 그때, 트리무르티의 마지막 빛이 온누리를 감쌌다.
슈우우우…….
‘…… 으음.’
나는 트리무르티의 공간을 나와서 다시 영체 상태로 우주를 떠다니고 있었다. 뇌혼의 몸뚱이는 통제력을 잃었는지 산산이 부숴져 있었다.
잠시 후 나는 내 상태를 깨닫고는 허탈하게 웃었다.
‘하하…… 제기랄.’
신력이 원래의 2할 미만으로 줄었다.
내 신력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사이탄의 언령]이 살아남아서 남은 신력을 속박하고 있지만 진정으로 강력한 권능들을 많이 잃어버린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세간에서 마왕이라 부르는 존재만큼은 되겠지만, [옛 지배자]의 반열에 있는 자들을 상대하기에는 아쉬운 수준이 되어 버린 것이다. 순식간에 대부분의 힘을 상실해 버린 듯했다.
그리고 상실감이 꽤 컸기에 나는 새삼 알 수가 있었다.
내가 신력에 얼마나 의지하고 있었는지를.
‘…… 음?’
하지만 동시에 내 영체에 존재하는 전혀 새로운 힘을 알아채고는 나는 흠칫하고 놀랐다.
파지직!
심장 근처에서 회전하는 가공할 만한 힘의 덩어리!
나는 이 힘을 예전에는 느낀 적이 없었기에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가 있었다.
‘뇌혼의 진짜 힘을 얻은 건가?’
아까 그 뇌혼의 힘이라면 강력하긴 강력할 것이다.
…… 하지만 거의 모든 신력을 다 잃는 대신 뇌혼을 얻다니 이건 결국 손해 아닌가.
게다가 지금은 이 뇌혼을 어떻게 써야 할지 잘 감이 잡히지 않는다.
트리무르티나 신력을 써서 할 수 있는 것들이 굉장히 많았던 걸 생각하니 나는 지금까지 느꼈던 신으로서의 전능감이 단번에 박탈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정말이지 다음번 전생부터는 또 미친 듯이 신력이라도 모으러 다녀야 하는 걸까?
‘하아…… 어떻게 한단 말이냐.’
한숨을 쉬고 있던 나는 팔짱을 끼며 중얼거렸다.
‘이렇게 된 이상 별을 흡수하는 삽질을 또 해봐야 하나? 하지만 대체 이런 짓을 해서 뭐가 남은 건지…….’
손해를 너무 많이 봤다는 생각에 내가 고민을 하고 있을 때였다.
두웅!
‘어……?’
그때였다. 나는 갑자기 내가 보는 시야 자체가 완전히 달라지면서 지금까지 보던 시꺼먼 우주의 별세계가 다른 형상으로 변하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우주는 검지 않다.
마치 흑백(黑白)으로 되어 있는 세계에서 별이나 물질은 백색(白色)의 선(線)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우주라고 하는 것은 무색(無色)의 끓어오르는 바다(海)처럼 보였고 나는 바다에 잠겨 있는 듯한 실감을 느끼고 있었다.
‘…….’
혼돈(混沌)을 호흡(呼吸)한다.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가 없다.
우주를 채우고 있는 물질이 아닌, 좀 더 근원적인 혼돈의 본질을 자연스럽게 호흡하기 시작한 것만 같았다.
우웅…….
세계관이 기이하게 바뀌는 실감과 더불어서 내 심장에 있던 뇌혼이 명동(鳴動)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뇌혼의 고동이 점차 강해지는 걸 느끼자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이 기이한 현상은 뇌혼 때문인가?!
츠츠츠츠
나는 우주와 더불어 호흡하는 게 계속되는 동안에 내 안에 넘실거리는 혼돈의 힘이 자연스럽게 축적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니, 우주와 나의 경계가 마치 사라져 버린 듯한 기분에 전에 없던 해방감이 느껴지고 있는 것이다!
‘다…… 달라!’
이전까지 아무리 내가 강한 신력을 갖고 있었지만, 인간의 몸과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내 영체가 그 한계를 자연스럽게 초월(超越)해 버리고 있다는 게 여실히 느껴졌다.
쿠구구구……!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나는 딱히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몸에 계속해서 축적되는 혼돈의 힘이 막대한 수준까지 이르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혼돈의 힘이 정점에 이르는 듯한 그 순간, 뇌혼이 크게 한 바퀴를 회전하면서 그 모든 힘을 뇌혼 안으로 빨아들여 버렸다.
슈우욱
뇌혼에 흡수된 혼돈의 힘은 사라진 게 아니었다. 그저 뇌혼이 한계까지 압축해서 보관하고 있을 뿐이리라. 나는 그 사실을 눈치 채자 순간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설마…….’
내가 갖고 있던 뇌혼이 지나칠 정도로 막대한 힘을 갖고 있던 이유…….
그것은 세성의 뇌력을 받아들인 후, 각성해 있던 뇌혼이 나 몰래 조용히 계속 힘을 압축해서 키워왔던 것이었던 건가?
내 여정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뇌혼의 잠재력도 폭발적으로 높아졌고 종래에는 방금 전과 같은 무진장한 힘을 발휘한 건 아니었을까?
그리고 만일 그 가설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지금의 내 상태는 간단히 설명할 수 있었다.
나 몰래 뇌혼이 행하던 [힘]의 압축을 이제는 내가 주도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것!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구궁파천뢰의 요결에 따라 전신에 쌓이는 힘을 통제하려 해보았다.
그러나 구궁파천뢰의 공정을 몇 번 돌리다가 나는 이게 의미 없음을 알아차리고 말았다.
‘이미 우주의 본질과 직접 접촉하고 있는데 굳이 구궁파천뢰의 공정대로 회전시킬 필요가 없어…….’
물론 힘을 세밀하게 운용하려면 구궁파천뢰가 필요하겠지만 단지 축공(築功)의 단계만 따진다면 아무런 내공심법의 기교도 필요하지 않다. 바닷물과의 경계가 사라져서 그냥 그릇이 잠겨 버리다시피 했는데 굳이 따로 퍼서 담을 이유가 있을까?
영혼 자체의 내구도와 힘이 계속 상승하고 있다……!
우우웅
그리고 압축과 함께 힘이 강해질수록 나는 말도 안 되는 천문학적인 거리의 지형이 백색 선의 형태로 느껴지며 내 인지(認知)에 감지되어가는 걸 느낄 수가 있었다. 대웅제국의 물리적 단위로는 몇십조 km를 넘는 광대한 거리가 마치 동네의 지도를 들여다보듯이 선명하게 별과 그 운행이 느껴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힘이 쌓이는 것을 기다리다가 홀린 듯이 내 양손을 마주 쳐다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영체의 양손을 가운대로 모아 합장하며 중얼거렸다.
쩌엉!
바로 그때였다. 나는 정신에 쨍한 징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충격과 함께 인지능력이 더 폭발적으로 증가하더니 단숨에 내 시선이 은하(銀河)를 쳐다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 시선과 함께 은하 전체를 흐르고 있는 [힘]의 방향이 느껴졌고, 나는 그 방향에서 새어 나오는 은은한 파동(波動)이 마치 예술작품처럼 펼쳐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슈우우우
백색 연기처럼 내 몸에 서서히 흡수되고 있는 그 파동의 기운을 느끼던 나는 그제서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신력(神力)으로서의 트리무르티는 사라졌지만…… 신기(神技)는 남았다!’
브라흐마의 신력이 사라졌기에 트리무르티를 썼을 때 빨간 보석이 3개의 힘을 자연스럽게 조립해주는 편리함은 사라졌다.
그러나 그 대신에 ‘기술’로서의 트리무르티는 이미 수많은 시행을 통해서 습득했기에, 나는 감각으로 신력이나 ‘힘’을 조합하는 요령을 계속해서 쓸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빨간 보석이 없는 탓에 그 안정성과 결과물은 원래보다 크게 뒤떨어질 것이기에 이것을 진짜 트리무르티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냐…… 뇌혼의 진짜 능력은……!’
진짜 중요한 것은 내가 뇌혼의 힘이 지닌 본질을 알아차렸다는 것이었다.
‘…….’
나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내가 인지하고 있던 드넓은 영역을 더욱 넓혀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말도 안 될 정도로 빠르게 인지영역이 넓혀지고 있던 중, 얇은 막 같은 게 어떤 영역을 감싸며 보호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 얇은 막을 향해 손을 뻗는 의념(意念)을 취해보았다.
콰칭!
그 순간 얇은 막이 깨어지면서 나는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얇은 막을 깨던 순간에 느껴지던 파장의 얽힘, 그리고 그 얽힘을 내 뜻대로 흩어내는 찰나의 감각을 느끼고는 잠시 몸을 떨었다.
‘파동(波動)이구나.’
염상력(念想力)을 이용해서 전 우주에 존재하는 양자(量子)의 파동을 다루는 영역에 도달하는 것.
그것이 바로 뇌혼의 진짜 능력이리라.
번쩍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전신에서 불길 같은 뇌전(雷電)이 일어나며 천지사방에 빛의 파장이 공명하는 것이 느껴졌다.
투둥! 투둥! 투두둥!
상상도 할 수 없는 공명(共鳴)의 연속!
내가 인지능력을 넓힘에 따라서 뇌혼의 힘도 그 인지능력만큼 사방에서 파동을 일으키고 있는 모양이었다. 삽시간에 광대한 영역에서 울려대는 파장이 온누리를 가득 채웠고, 나는 그 파장이 점차 강해지면서 격랑(激浪)을 만들어내어 은하를 뒤흔들기 시작했음을 알아챘다.
빠지지직
그리고 그 격랑의 충돌에서 생겨난 힘이 계속해서 내 몸에 번개의 파동으로 변해서 흡수되는 걸 알 수 있었다.
‘아까와 달리 물질을 직접 흡수하는 게 아니라 파동을 흡수하는 건가?’
신기한 일이었다.
지금 뇌혼의 파동으로 흡수되는 건 신력(神力)이 아니라 전혀 다른 별개의 힘이다.
그런데 왜인지 이 힘은 신력에 못지않으리라는 게 느껴진다…….
동시에 나는 일련의 과정을 느끼면서 알 수 있었다.
‘…… 그랬던 거군.’
뇌혼이라는 놈은 이런 방식으로 전 우주의 파동을 모두 흡수해서 성장할 생각이었으리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