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197)
0197 ———————————————-
삼황오제(三皇五帝)
그리고 북해빙궁주는 대초원 이북의 상황을 우리에게 설명해 줬다. 금괴를 받은 값은 해야한다고 생각하는지 그만이 알 수 있는 정보도 다수 섞여 있었다.
“현재 아라사 제국은 이반 4세라고 하는 전제군주를 중심으로 강력한 정복활동을 벌이는 중일세. 아직 우리가 사는 이 일대까지는 오지 못했지만, 매년 북방의 민족들을 통합하면서 세력을 불리고 있지. 이반 4세는 뇌제(雷帝)라고 불릴 정도로 광폭하고 사나운 정복군주라고 할 수 있네.”
“그렇군요.”
“그리고 아라사 제국은 서방의 대륙, 서역(西域)이라 불리는 땅과 밀접한 관련이 있지. 파란(波蘭)이라는 나라와도 자주 충돌하기도 하고… 하여간 중원의 중화문명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곳일세. 원 제국 시절에는 그다지 교류가 없었지만 갈수록 세력이 넓어지면서 근자에는 소식이 자주 들리지. 자네들이 북극으로 가고자 한다면 반드시 아라사 제국의 영향권을 지나쳐야 할 것일세.”
나는 거기까지 듣다가 질문했다.
“혹시 그곳에도 무림인이 있습니까?”
내 질문에 북해빙궁주가 쓰게 웃었다.
“음… 뭐라 말하기가 힘들군. 정말 힘들어.”
“……?”
“물론 그들도 기(氣)를 사용해서 전투할 수 있는 기사(驥士)라는 존재가 있네. 그러나 그들은 무림인과는 달리 전적으로 영주나 군주에게 충성을 바치지. 그리고 서방의 왕국들은 갈수록 그런 육탄전투의 비중이 줄어가는 추세일세.”
“궁수(弓手)를 많이 양성한다는 소리입니까?”
“그게 아닐세. 흐음…”
북해빙궁주는 고민하다가 갑자기 옆에 있던 자신의 서재 쪽으로 갔다. 그리고는 서재에서 왠 이상한 물체를 꺼내서는 내게 보여 주었다.
“이게 뭘로 보이나?”
“……? 처음 봅니다만.”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옆에 있던 미호가 그 물건을 알아보고는 눈을 가늘게 떴다.
“화승총(火繩銃)이군요.”
화승총?
그러자 북해빙궁주가 왠지 살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총에 대해 아는 자가 있었군. 아녀자인 듯 한데 어찌 알았는가?”
“왜국(倭國)에 지낸 적이 있어서 화란(和蘭)의 문물을 보고들은 적이 많아요.”
“그렇군… 화란 상인들이 그쪽을 통했나보군.”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서 눈을 꿈뻑거리자 북해빙궁주가 그 ‘화승총’이란 것을 들고는 내게 설명해 주었다.
“서방의 왕국들은 이제 기사의 전투에서 총의 전투로 전쟁의 양상을 바꾸고 있는 상태일세. 물론 아직은 기사의 강력한 갑옷을 뚫기 힘들지만 앞으로는 총의 시대가 되겠지. 자네들이 아라사 제국을 통과할 생각이라면 이 ‘총’에 대해서 알지 못하면 큰일 날 거라고 생각하네.”
“이건 뭐하는 겁니까? 철덩어리 같은데…”
내가 신기해서 길쭉한 화승총의 구멍을 가까이서 보자 북해빙궁주가 기겁을 했다.
“뭐하나?! 위험하게.”
그는 급히 화승총을 내게서 치웠다. 영문을 몰라서 꿈벅거리며 보고 있자, 북해빙궁주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군. 이게 뭐하는 물건인지 보여주지.”
그는 나와 미호를 데리고 왠 한적한 공터로 향했다. 그리고는 화승총을 꺼내서 동그란 무언가에 연기를 붙이는 듯 했다. 그 동그란 걸 화승총 안에 넣더니 왠 기름접시같은 것에 톡톡하고 자극을 가했다. 그리고 일련의 잡스러운 과정을 좀 더 거치더니, 전방에 있던 왠 나무통을 향해 화승총을 겨누었다.
파쉿!
잠시 후 화승총의 끝에서 뭔가가 엄청난 속도로 격발되었다. 그것은 고수의 검초에 못지 않을 정도로 빨라서 나는 일순간 경동했다. 화살같은 것보다 몇 배는 빨랐기 때문이다. 그 무언가는 나무통에 순식간에 박혔다.
“대, 대단히 빠르군요.”
내가 솔직한 감상을 말하자 북해빙궁주가 말했다.
“이것이 바로 총이라는 것이고, 화약을 이용해서 격발(擊發)하는 화승총의 방식일세. 아마 왜국에 전해진 것도 이런 총이겠지.”
“음…”
“짐작했겠지만 이걸 장전하는 건 꽤 어렵지만, 만일에 다수의 병대가 도열해서 이걸 순차적으로 발사하면 굉장한 위력을 발휘할 것일세. 우습게 볼 만한 무기가 아니야.”
“그런 것 같군요.”
화승총이 지근거리에서 내게 발사되더라도 나는 아마 쉽게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초절정고수의 반사신경 뿐만 아니라 멸혼보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고수이기 때문이고, 일반인인 경우에는 이런 게 동시에 사격되면 왠만해서는 피할 수 없을 게 분명했다. 활(弓)보다 단연 앞선다고 할 수 있는 무기인 것이다.
북해빙궁주가 화승총을 다시 자신의 서재에 넣으며 말했다.
“게다가 현재 아라사의 총기술은 더욱 발달해서 치륜식(齒輪式) 총이 실전에 배치되었다더군. 구조가 복잡한 대신에 화승을 쓰지 않는 방식이라서 훨씬 휴대가 용이하고, 기병(驥兵)도 사용이 가능하지.”
“흠…”
“내가 설명해주지 않고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자네가 다수의 총병(銃兵)과 맞닥뜨린다면 위험할수도 있겠지. 그렇지 않은가?”
“맞습니다.”
나는 그의 말을 솔직하게 인정했다. 나는 아마 총알을 피할 수 있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총이란 게 원거리무기이며 엄청난 직선속도를 지니고 있다는 선행지식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런 지식도 없는 경우 멀뚱멀뚱 쳐다보고만 있을 것이고 그 경우 갑작스러운 공격에 멸혼보로도 피해내지 못하고 총탄을 몸에 맞을지도 모른다. 북해빙궁주가 전해 준 총기의 정보는 분명히 금괴만한 가치가 있었다.
옆에서 보고 있던 미호가 말했다.
“너무 과대평가하는 거 아닌가요? 일반인도 무림고수를 쓰러뜨릴 수 있는 위력이 있다는 건 인정하지만, 절정고수급이나 강철방패를 운용하는 철갑병에게까지 먹히지는 않을 거라고 봐요.”
자신의 말에 반박을 가했지만 도리어 북해빙궁주는 반가운 듯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그 말이 맞지. 경갑은 몰라도 아직까지 기사의 중갑을 뚫기에는 힘이 부족하니까. 그리고 고수의 신법이나 신체능력을 따라잡기는 버겁네. 하지만 이게 수천 수만의 군병(軍兵)의 싸움이 되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겠지.”
“그럴지도 모르죠…”
북해빙궁주는 자리에 앉아서 다시 화주를 음미하며 말했다.
“지금 명 제국은 원나라를 쓰러뜨렸다는 자부심 때문에 그 어느때보다 중화에 대한 오만함이 강력한 상태… 하지만 본좌가 볼 때는 그 오만함은 결국 크나큰 실책이 될 걸세. 이 순간에도 서방의 열국(列國)들은 수많은 국지전을 벌이면서 전쟁기술을 발달시키고 있고 그 선두에는 총기가 있지. 수백년 후에는 따라잡지도 못할 정도로 총기에 차이가 벌어질 게야.”
“……”
그가 피식 웃었다.
“뭐, 이런 걸 걱정해봐야 뭘 하겠냐마는… 하여간 아라사 제국의 총병은 조심해야 할 것일세. 자네가 아무리 고수라도 총을 잘못 맞으면 즉사할 테니.”
“설명 감사드립니다.”
“좀 이상하긴 해. 원래 아라사는 그렇게 강력한 나라가 아니었는데 근 20년 사이에 갑자기 성장을 해서…”
북해빙궁주가 중얼거리는 동안에 나는 그에게서 들은 정보를 머릿속에서 정리했다. 그리고는 정말 중요한 걸 물어보았다.
“그럼 그 북극이란 곳이 빙하의 대륙이라 하셨는데 인간은 살 수가 없습니까?”
“아주 못 사는 건 아니라 들었네. 몇몇 족속들이 살고있다고 듣긴 했지만,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는 전혀 아는 바가 없어. 그 추운데 뭐 얻을 게 있다고 사람들이 쳐들어가겠나? 교류할 일도 전쟁할 일도 없으니…”
“살긴 산다는 거군요.”
“그들은 나라를 이루지 못하고 있지. 그저 소규모 부족에 불과할 걸세.”
북해빙궁주가 대수롭지 않은 듯 이야기했지만 나는 이 정보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되었든 간에 인간이 사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은 큰 차이가 난다. 비등으로 한번 가본 곳을 다시 가볼 수 있다는 이점이 있는 이상, 그 부족의 생활거점을 찍기만 하면 다음번에는 쉽사리 다시 북극으로 갈 수 있는 것이리라.
나는 연거푸 물었다.
“그럼 혹시 그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어떤 길을 따라가는 게 좋을지 아십니까?”
“응? 생각도 안 해 봤는데… 흠… 금괴 값은 해야하니 잠깐 생각 좀 해 보겠네.”
“네에.”
북해빙궁주는 고민하다가 말했다.
“… 아무래도 아라사 제국으로 먼저 갔다가 그 곳 사람들의 지식을 먼저 얻는게 좋지 않을까 싶구만.”
“아라사 제국은 여기서 한참 북서쪽에 있지 않습니까? 빙빙 돌아가는 셈이 아닙니까?”
“북방에 관련된 지도나 지리지식은 그 곳에 모두 마련되어 있을 게야. 물론 여기서 바로 북쪽으로 쭉 올라가면 최단거리이긴 하지만 인세 최악의 험지(險地)를 통과할 거라고 단언할 수 있네. 자네가 아무리 대단한 고수라도 아무 준비 없이 북극에 도달하진 못해.”
“음… 그렇군요.”
“그리고 아라사 제국의 수도는 의외로 춥지 않네. 완전히 내륙지역이라서 그런지 그럭저럭 사람이 살 만 해. 젊었을 적에 그 근처에 가본 적이 있었는데 되려 여기보다 덜 춥더군, 껄껄.”
옆에 있던 미호가 물었다.
“혹시 아라사 어를 알고 계시나요?”
“기본 회화와 문법 정도라면 알고 있네. 본좌 뿐만이 아니라 북해빙궁의 혈족이라면 누구든지 배우고 있지.”
왜 그렇게 한단 말인가? 의아한 눈으로 나와 미호가 그를 쳐다보자 북해빙궁주가 부연설명했다.
“북해빙궁이란 원래 아라사의 일족이 어쩌다보니 요동 근처까지 내려와서 무공을 익히게 되고 정착한 것일세. 우리의 본류는 서방에 있지… 당연한 일일세.”
“아라사 어를 저희에게 가르쳐주실 수 있겠습니까?”
“어렵지 않네. 그걸로 우리의 거래는 끝내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나와 미호는 북해빙궁의 빈객이 되어서 아라사의 말과 글을 기초나마 배우기로 했다. 그리고 북해빙궁에 머무는 동안 북해빙궁의 일족들의 생김새를 볼 기회가 생겼는데, 확실히 그들 대부분이 피부가 하얗고 금발(金髮)에 푸른 눈동자를 가진 색목인들이었다. 다만 군데군데 검은 머리를 지닌 사람도 많아서 요동 민족과 피가 섞였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 억양과 강세가 굉장히 중요한 말이군.’
나와 미호는 언어의 습득을 용이하게 하는 법구(法具)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보통 인간보다도 배우는 게 빠른 편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라사 어는 상당한 난이도를 지니고 있었고, 그건 특히 문자에서 느껴졌다.
“이 꼬불꼬불한 문자는 무엇입니까?”
“그건 키릴 문자라고 하네.”
“키릴 문자요?”
“좀 습득하기 어렵겠지만 어쩔 수 없네. 그건 아라사의 성직자들도 어려워하는 글자이니.”
성직자?
뜻밖의 말이 나오자 나는 그에게 반문했다.
“마도사(魔道師)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왠지 이 키릴문자가 괴어와 비슷하게 생긴데다가 성직자라고 하는 말이 이족신앙을 연상시켜서 질문한 거였다. 그러나 북해빙궁주는 이족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지 고개를 갸우뚱했다.
“흠… 뭘 말하는지는 모르지만 성직자는 성직자일세. 그들은 유일신교를 믿는다네.”
“유일신이라…”
“하여간 중원인들은 서방에 대해서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군.”
툴툴거리던 북해빙궁주가 말을 이었다.
“거긴 완전히 새로운 세계일세. 편견을 갖고 접근하면 자네들만 손해라는 걸 알아두시게.”
그렇게 약 석 달의 시간이 지났다. 나와 미호는 북해빙궁주에게서 아라사 어를 왠만큼 터득할 수 있었고 현지인과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되는 수준까지 오른 듯 했다. 북해빙궁주는 우리의 빠른 습득에 놀라면서 말했다.
“대단히 빨리 배우는군. 훌륭해.”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하여간 그 보물이란 걸 꼭 찾기를 바라겠네.”
그가 송별하면서 기원해줬지만 그게 진심이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 애초에 북극같은데 인간이 가서 제대로 생존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반쯤은 동정하듯이 지식을 알려준 것이다. 나는 미호와 함께 북해빙궁을 나와서 말했다.
“미호. 전부터 묻고 싶었는데.”
“응?”
“그럼 동영에서도 그 화승총이라는 걸 쓰고 있는 건가?”
“화란 상인들이 가져온 걸 오다 노부나가라는 자가 개량했고, 조총(鳥銃)이 되었느니라. 그리고 동영의 전국시대를 끝내는데 큰 역할을 했지. 지금도 도쿠가와 막부는 조총병을 주 병대로 운용하고 있으니 모를 리가 있겠느냐.”
“국가 단위로 화승총을 쓴다고…?”
나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물론 내 무공이 화승총병대 따위를 두려워할 정도는 아니지만, 국가간의 전쟁에서 그 조총이라는 병대의 위력이 기존의 창병이나 보병에 비해 압도적일 수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 표정이 심각해지자 미호가 묘하게 웃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고려를 침공하려다가 난데없이 급사(急死)하는 바람에 온건파인 이에야스는 전쟁을 포기했지. 그래서 고려와 명나라에는 조총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본녀는 천황궁에 있는 동안 총을 질릴만큼 볼 수 있었느니라.”
“그렇군.”
“우후후… 북해빙궁주의 생각이 그리 틀리지 않을지도 몰라.”
“기분나쁜 소리군…”
나는 중얼거렸다.
그도 그럴것이 전투에 있어서 ‘거리’라는 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창(槍)이 검보다 강력한 이유 중 대부분이 거리를 장악하기 때문이었으며, 원거리 무기인 활이 전쟁에서 빠지지 않는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대부분의 병종은 각자의 거리를 지니면서 장단점을 겨루면서 지휘관의 운용에 따라서 천차만별의 위력을 보이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총은 다르다. 활과 거의 다를 바 없는 사거리를 지니면서 한 번 발사되면 절정고수가 아니고서야 피할 수 없는 엄청난 속도로 적을 격살할 수 있다. 이런 게 탄막(彈幕)을 이루며 발사된다면 전쟁의 양상 자체가 뒤바뀌게 될 것이다.
‘ 그리고 총이 더욱 발달한다면…’
무인(武人)의 종말(終末).
나는 왠지 답답한 기분이 들었지만 애써 고개를 털어냈다. 아무리 그래도 화승총은 너무 장전이 느리고 불발 가능성이 높아서, 왠만큼 무예를 익힌 일류고수라면 혼자서 서너 명이라도 손쉽게 벨 수 있었다. 지금 저 정도 총기로는 무공을 익힌 무림을 뒤집어엎기에는 완전히 딸리기 때문이었다.
“자, 그럼 가자!”
아라사 제국의 수도로 간다!
그리고 아라사에서 가장 해박한 지식을 지니고 있다는 정교회(正敎會)를 찾아가라는 게 북해빙궁주의 조언이었던 것이다. 정교회라면 북극으로 향하는 지도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