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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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계(天界)
명룡자의 이야기를 들은 검마는 잠시동안 납득할 수 없다는 기색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무인이라는 건 평생 자신이 수련한 무(武) 하나만으로 살아가는 존재였으며 무신론자에 가까웠다. 그런데 최강중의 최강인 호법사자들의 강함의 비결이 신(神) 때문이라고 하는 건 도저히 납득하기 힘든 일이었다.
검마는 그래서인지 한참을 침묵하며 머뭇거리는 모습이었다. 그러더니 말했다.
“그래, 신이란 게 있다고 치지. 그럼 호법사자들은 신에게 대가도 없이 그 엄청난 힘을 빌리고 있단 말인가?”
“그렇진 않을것이다. 하다못해 잡귀라고 해도 힘을 빌리기 위해서는 상응하는 대가를 내놓아야 한다. 그정도의 과다한 힘을 휘두른다면 무언가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엄청난 댓가라…”
검마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명룡자. 나는 납득하기가 힘들군. 신이라고 해도 너무 뜬구름 잡는 소리요.”
“그렇게 생각하는 게 보통이겠지. 허나 그 외에는 천령단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
명룡자는 확신을 지니고 있는 듯 했다. 무당파의 도사 출신이라서 우도와 좌도 모두에 익숙하기 떄문이리라. 검마가 따지듯 물었다.
“도가에도 천령단에 준하는 경지가 있지 않소?”
“환골탈태(換骨脫態)를 말하는 건가.”
“그렇소.”
환골탈태!
그것은 전설상의 경지로써 자신의 몸에 존재하는 허물을 벗고 완벽한 무예의 신체로 재탄생함과 동시에, 평신 혹은 반로환동을 손에 넣을 수 있음을 뜻했다. 내가 예전에 듣기로 천령단의 증거는 무한의 내공과 환골탈태였으므로 검마의 말에는 일리가 있었다.
그러나 명룡자는 코웃음을 쳤다.
“그럴 리가! 환골탈태는 그저 기가 극점에 이르러서 최상의 상태로 몸을 바꾸는 현상에 불과하다. 환골탈태를 하고 난 후 기의 최대치가 급상승하는 건 사실이지만, 반영구적이며 무한의 내공인 천령단에는 비교할 수 없다.”
“……?”
나는 명룡자의 말에서 혼란을 느꼈다.
‘ 이광의 설명과 얘기가 다르잖아?’
나는 과거 이광이 했던 천령단의 설명을 되새겼다.
[ 천령단이란 중단전(中丹田)이 개시됨을 의미한다. 하단전에 쌓인 기가 흘러넘쳐서 기경팔맥 생사현관을 타통하고도 모자라 주변 공간에 영향을 미치게 되지. 그리고 그때까지 모였던 기가 단(丹)을 본격적으로 형성하게 되고, 써도써도 줄지 않는 반영구(半永久)적인 내공을 지니게 된다.] [ 하지만 너는 아직 천령단은 아닌 듯 하구나. 천령단에 이르기 위해서는 자신의 기로써 특별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걸로 알고 있다. 천령단의 증거는 무한에 가까운 내공과 환골탈태(換骨脫態)이다.] [ 반로환동도 환골탈태의 일부이지. 그 과정을 거치면 어려지는 반로환동이 되거나, 혹은 전성기의 육체를 유지하는 평신(平身)이 된다. 너에게는 아직 그 과정이 찾아오지 않았으니 완전한 천령단이 아닌 것이다.]뭔가가 이상하다.
뭔가가 모순되어 있다.
아니… 빠져있는 게 아닐까?
나는 머릿속으로 골똘히 생각하다가 번쩍 손을 들었다. 명룡자의 시선이 내게 닿자, 나는 거침없이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뭐냐?”
“천령단은 중단전이 개시되는 것이라고 호법사자의 제자뻘 되는 자가 말한 적이 있습니다. 하단전의 기가 흘러넘쳐서 단을 형성하게 되며 환골탈태를 하게 된다고 했는데, 명룡자 님의 설명과 다른 듯 합니다.”
내 말에 명룡자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호법사자의 제자? 너는 또 누구에게서 그런 말을 들은 거냐?”
“……”
내가 머뭇거리자 검마가 일단 제지하고 나섰다.
“놔두시오. 우선 이야기에 대답해 줬으면 하오.”
검마는 이미 내가 백련교에서 내쫓긴 뇌신류라는 걸 들어서 알고 있었다. 당연히 이번 생에서 내게 있어서 최대의 아군은 검마이기 때문에 그 정도는 털어놓아야 하는 것이다. 그는 내 스승이 이광이었다는 건 모르지만 뇌신류의 어떤 고수라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흐으음…”
나를 수상쩍은 눈으로 바라보던 명룡자가 대답했다.
“일단 백웅 네 녀석의 말이 사실이라고 친다면, 아마 우리가 모르는 단계가 하나 빠져있는 거겠지.”
“빠져있다니요?”
“그 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하단전의 기가 흘러넘쳐서 중단전의 단을 만드는 것은 천령단을 얻기 위한 기본조건일 뿐, 천령단 그 자체가 아니라는 말이다. 즉 그걸 얻고 나서 환골탈태까지 거친 후에야 천령단에 진입할 수 있다는 뜻이겠지.”
“……!!”
환골탈태가 결과가 아니라 기본조건에 불과하다니!
‘ 뭐야? 그렇다면 설마 그건…’
나는 망량이 14번째 전생에서 화신류에 입문했을 때 해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 사실은 사대무류 중 최강이라 칭송받는 수신류(水神流)를 익히고 싶긴 했지만, 왠지 특별한 의식을 치러야만 하는 것 같아서 관두었소.] [ 특별한 의식?] [ 그렇소. 교주는 내가 수신류를 배우는 것도 상관없다 했으나, 그걸 위해서는 백련교의 금지(禁地)에서 특별한 대법을 1년동안 받아야 한다고 했소. 지금 당장 당신의 일이 중요했고 수상쩍은 점이 많아서 나는 수신류를 선택할 수가 없었던 거요.]동영의 검성 카미이즈미 노부츠나의 말도 떠올랐다.
[ 수신류를 익힌 자는 천하최강이 되겠지만, 절정고수는 되지 못할테니.] [ 그들의 무공은 백련교주의 혈맥(血脈)만이 익힐 수 있는 특수한 비법이오. 그걸 무문(武門)이라고 볼 수는 없지. 또한 그들 수신류는 극도로 폐쇄적이라 하오.]“……”
머릿속에 정보가 뒤섞이더니 하나의 결론을 이끌어냈다.
‘ 수신류에서 1년동안 치른다는 특별한 의식, 그건 천령단과 연관이 있는 게 아닐까?!’
틀림없다!
수신류만의 독특한 능력을 전수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왠지 그럴거라는 예감이 든다. 천령단이라는 힘이 신적인 존재의 힘을 빌리는 것이라면 – 신에 가장 가까운 힘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받는 백련교주의 문파인 수신류는 반드시 큰 연관이 있다. 그것도 일부러 ‘의식’이라고 이름붙인다면 더욱 의심스러운 것이다.
‘ 그렇다면 이광이 천령단에 대해 제대로 모르는 것도 이해가 간다.’
이광은 뇌신류의 수석 전승자이지만 어린 시절에 백련교에서 내쫓긴데다가 제대로 전수를 받지 못했다. 천령단이라고 하는 거대한 비밀을 미처 듣지 못하고 반쪽짜리 지식을 알고있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내가 크게 고민하고 있을 때 명룡자가 말을 이었다.
“천령단을 어찌하지 못하는 한 백련교에 대항하는 건 자살행위다. 적어도 놈들과 대등한 힘을 지니던가, 아니면 무한의 내공을 무시하고 격살할 수 있는 궁극의 의념절기를 익히는 수밖에 없지.”
검마가 피식 웃었다.
“둘 다 미친소리군. 후자는 아예 현실성이 없소.”
“그거야 그렇지. 그정도의 의념절기는 대라신선이나 쓸 수 있겠지. 인간이 그런걸 쓰려다가는 도중에 말라죽을 것이야.”
“……”
두 사람의 대화에서 나는 또 하나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내가 아는 대라신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 검선 여동빈의 화룡소환! 그 정도면 가능하지 않을까?’
내 내공에다가 팔문까지 통째로 개방해서 겨우 소환해낼 수 있는 천계의 화룡을 내뿜어서 수백 장 범위를 쓸어버리는 여동빈의 최강 필살기! 여태 달기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화룡소환을 버티지 못했고, 심지어 호법사자들의 절기조차도 화룡소환의 위력을 따라가지는 못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여동빈의 화룡소환이야말로 궁극의 의념절기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예감이 들었다.
‘ 에이, 그래도 현실성이 없군.’
화룡소환은 검선이라고까지 불리는 여동빈의 최강 필살기다. 당연히 검의 깨달음이 검선지경에 올라야 쓸 수 있었고, 그것도 팔문을 해방해야 하기에 사용하고 나면 반드시 사망한다. 쓸 수도 없고 써봤자 죽으니 의미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는 다음번에 여동빈에게 화룡소환 및 그의 검기를 자세히 물어보기로 마음먹었다.
검마가 말했다.
“지금 천령단이 신의 힘이고 아니고는 상관없소. 중요한 건 우리가 충분한 힘을 얻을 수 있느냐 아니냐는 것이오.”
“그래서 같이 굴공검과 천축검을 연마하자는 거냐?”
“바로 그렇소. 비록 무한의 내공이 없다고 하더라도 단기전에서 우위를 이끌어낼만한 실력이 된다면, 호법사자를 상대로도 승기를 잡을 수 있겠지.”
“으음…”
검마의 말은 핵심을 짚고 있었다.
실제로도 나는 이광과 진소청이 무의 깨달음으로 용비천을 넘어선 덕분에 단기전에서 그를 압도해서 죽일뻔한 걸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다. 역시 검마 또한 그들에 못지 않은 천재라서인지 전투의 진리를 꿰고 있었다.
‘ 호법사자가 내공의 우위를 믿고 방심한 틈에 격살할 수 있다면…’
물론 이것도 용비천에게나 통할 뿐 독고준이나 한백령에게는 안 통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했다.
명룡자는 한참 고민하다가 말했다.
“나야 환영하는 일이지만 네녀석은 일신의 문파가 있으니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기 쉽지 않을 텐데?”
“나는 내 문인들을 믿고 있소. 잡배들 정도는 물리치며 버텨줄 것이오.”
“뭐 그렇다면야.”
명룡자가 힘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그럼 우리 셋이서 무예를 연구하도록 하자! 청풍에게는 내가 말해둘테니 이 세상 누구도 수련을 방해하지 못할 것이다.”
“아, 그 전에 잠시…”
검마는 나를 데리고 수십 장 떨어진 수풀쪽으로 갔다. 그리고는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말했다.
“뭔가 짚인 게 있나 보구나.”
“뇌신류의 제자인지라 천령단에 대해서는 의심스러운게 있습니다.”
“지금 말해줄 수 있겠느냐?”
“네.”
나는 방금 추측했던 사실들을 검마에게 이야기했다. 내 이야기를 들은 검마는 눈썹을 꿈틀거리더니 말했다.
“그거 참… 사실이라면 엄청난 일이군. 헌데 이상하구나.”
“……”
“네 나이는 많아도 약관을 넘어보이지 않는다. 훨씬 적어보이지. 그런데 그만한 정보를 얻어낼만큼의 엄청난 경험을 거쳤다는 게 믿기지 않는구나.”
검마의 의심은 지당한 것이었다.
‘ 더 이상은 무리야.’
더 이상 묻어둘 만큼 검마는 녹록하지 않고 바보도 아니다. 그리고 도리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나는 더 이상은 숨길 수 없음을 깨닫고는 목갑에서 커다란 흑요석을 꺼냈다. 검마가 고개를 갸우뚱하자 나는 말했다.
“저를 믿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믿는다.”
“그러면 여기에 손을 대어 주십시오.”
이건 내 나름의 도박이었다. 만일 이광이라면 이렇게 수상스러운 제안은 단칼에 거절하고 나를 속박하거나 죽이려 들었을 것이다. 검마가 나를 완전히 아군으로 믿고 있다는 가정 하에 기억을 공유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망량과 미호와도 인연을 터놓지 않은 지금, 검마는 내게 있어서 유일한 동료였기 때문이다.
검마는 한참 고민하다가 손을 뻗어서 흑요석을 잡았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럼… 보여드리겠습니다.”
파아아앗!!
흑요석에 넣은 기억이 순식간에 검마에게로 들어갔다. 검마는 찰나지간에 많은 양의 정보가 머리에 들어오자 놀란 표정이다가 이내 침착해 졌다. 그리고 먼 하늘을 바라보며 내 기억 하나하나를 되새기는 모습이었다.
“으음…”
그러더니 검마가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내 딸을 거절한 이유가 있었군. 과연… 그런 거였군.”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여기서 검마에게 죽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도박을 걸었기 때문이다. 보통이라면 전생자라는 존재를 대했을 때 공격적으로 돌변할 가능성이 매우 컸다.
검마는 침묵하다가 말했다.
“궁금한 게 있군, 백웅.”
“네.”
전에 없이 진중한 어조였다.
“자네가 걸어온 길은… 산전수전 다 겪었다 자부하는 나로서도 생각도 해본 적 없는 아수라장(阿修羅場)이었네. 자네 앞에서 고생이나 노력을 들이대는 건 그 누구라도 우스꽝스러운 수준이라고 보네. 자네의 인생은 이 세상 그 어떤 인간보다도 괴롭고 구차한 것이었겠지.”
그렇게 운을 띄운 검마가 말했다.
“그런데도 자네는 편한 삶을 선택하지 않고 끝내 황궁을 쓰러뜨리기 위해 싸워나가려 하는군. 천계의 대라신선에게 거역하면서까지. 그렇게까지 싸워나갈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나는 검마의 이 질문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섣불리 대답하지 않고 한참을 생각했다.
하지만 고민을 하면 할수록 수렁에 빠지는 느낌이 들었으므로 내 솔직한 생각을 털어놓기로 했다.
“포기하는 게 분하기 때문입니다.”
“분하다…? 황궁의 힘은 그렇게도 절대적인데, 자네는 이미 편하게 한평생 먹고살 밑천을 마련했는데도 분한 건가? 원한다면 삼처사첩을 거느린 거부가 되어서 일대의 패주가 되어 주지육림을 누릴수도 있을 텐데?”
검마의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주지육림 좋겠죠. 하지만 저는 아직 친구의 원수도, 내 분함도 갚아주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는 모든 걸 걸고 사랑할 수 있는 여인이 있습니다.”
“……”
“저는 전생자입니다. 그런 제 입장에서 생각해 보십시오.”
나는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끝이 없을지도 모르는 삶을 살아가면서 누군가의 횡포를 무한대로 견디며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황궁이 인신공양을 한다던지 백련교가 깽판을 놓는다던지 그들과 관련되어서 난데없는 횡액을 당할 가능성도 있다. 그때마다 내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쉽게 회피할 수는 없다. 인과라는 건 전혀 생각지도 못하는 곳에서 이어져 버리는 걸 수 차례 체험했기 때문이다.
“……!!”
“저에게는 그게 더 낭비입니다.”
“그런가…”
검마는 내 말을 이해한 듯 했다.
그렇다.
천암비서라고 하는 역행의 기회가 존재하는 한, 나는 아마도 무한에 가깝게 살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 정신력이 고갈되어서 인성을 잃을 때까지 황궁이라고 하는 거대한 적의 횡포를 멀찍이서 보면서 ‘내가 아니라 다행이다’ 라고 속앓이하면서 지내야 하는 것인가? 그걸 주지육림 하나로 견딜 수 있는가?
절대 그건 아니다. 되려 그게 더 짜증나는 일이다.
놈들의 횡포를 못본 체하고 부조리한 안빈낙도를 즐기며 살아갈 수 있을까?
내가 특별히 정의로운게 아니다.
그건 멍청한 짓이다.
앞으로 몇 번을 죽을지 모르지만 – 나는 강호정의나 인륜같은걸 때려치고 순수한 힘으로 황궁을 능가하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망량과 미호를 괴롭혔던 황궁이라는 개자식들을 원할 때 언제든 밟아버릴 정도가 되어야, 진정한 의미에서의 [행복]이 찾아올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한 방 제대로 먹여줄 때까지는 포기할 수 없다.
망량과 미호에게 행복한 미래를 보여줄 때까지는, 남자의 오기로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검마는 훗하고 웃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지금부터 죽을 각오를 하고 따라오게.”
“……!!”
“뇌신류의 기재들과 수련할 때 이상으로 철저하게 장삼봉의 심득을 파고들 테니까. 아마 그 무쌍패라는 절기까지 얻어내야 할 것일세.”
나는 놀라서 물었다.
“정말로, 저를, 이해해주시는 겁니까?”
어찌나 놀랐는지 말이 더듬거렸다. 아예 이해받지 못하고 내쳐지거나 공격받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말을 하면서도 내심 이 설득은 실패했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런데 검마는 뜻밖에도 나를 받아들인 것이다.
검마가 말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자네의 말을 듣기 전까지는 자네를 죽일까 생각했네.”
그는 하늘을 쳐다보더니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어. 자네의 정신력이라면 끝까지 타락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생겼네.”
“타락이라니요?”
“자네의 기억을 들여다본 자라면 누구라도 타락을 생각할 걸세. 전생에 도취되어 선과 악의 구분을 잃고 절제하지 못하고 패악을 부리는 타락 말일세… 그 때 가장 불행해지는 건 다름아닌 자네와 가장 가까운 자들이겠지.”
“……”
뭐라 할 말이 없다.
안 그래도 이번 전생의 초반에는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왠지 그렇지 않을 거라는 예감이 드는군. 자네는 내가 보았던 인간 중 가장 정신력이 뛰어난 인간이야. 그 누가 있어서 15번 죽고 100년 가까이 밟히면서도 올바른 마음가짐과 열정을 지닐 수 있겠는가? 그 누가 있어서 고대의 신을 상대로 미치지 않고 당당할 수 있겠는가? 나도 그럴 자신이 없네.”
검마가 한숨을 쉬었다.
“어쩌면 이 순간조차도 그저 고난의 일부에 지나지 않고, 모든 인과(因果)를 끌어모으는 게 자네의 숙명일지도 모르지.”
인과를 끌어모은다.
나는 그 말을 되새김질하듯 중얼거렸다.
왠지 어디선가 들은 기분이 들었다.
“자네가 이 자리에 서 있다는 게 무슨 뜻인지 생각해본 적 있는가? 그건 망량과 미호라는 자들이 자네를 끝까지 믿어왔기 때문일세. 자네는 끝까지 사람의 도리를 잃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네를 위해서 인생을 바칠 수 있었던 게야. 자네가 그들을 지키려 했듯, 그들도 자네를 지키려 한 거겠지.”
“……!!”
“살면서 누군가에게 그 정도의 신뢰를 받는 건 쉽지 않아. 하물며 배신도 당하지 않는다는 건…”
그렇게 중얼거리던 검마가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렇다면 나도 이 자리에서 맹세하겠네.”
검마의 눈이 빛났다.
“자네의 힘을 길러주기 위해 내 모든 생을 다하겠네! 자네가 다음 생으로 희망을 이어갈 수 있도록.”
그 순간 내 눈에서 뭔가 울컥하는 게 비어져 나왔다.
목도 막힌다.
나는 그 뜨거운 걸 재빨리 닦아내고는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죽고 또 죽어온 나는, 내게만 적용되는 편리한 기적이 있다고 믿지 않는다.
죽을 때가 되면 당연히 죽는 걸 십수 번 씩이나 겪게 되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지금은 믿고싶어졌다.
이번 생에서 진정으로 믿을 수 있는 동료를 지금 얻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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