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241)
0241 ———————————————-
천계(天界)
나는 숙소로 돌아와서 앞으로의 일을 생각해 보았다.
‘ 역시 의심스러워. 뭔가 말려드는 기분이야.’
십이율주의 제안대로라면, 내가 그와 힘을 합쳐서 [옛 지배자] 해신을 쓰러뜨리고 나면 십이율의 지배권을 넘겨받을 수가 있다. 그 이후에는 십이율의 힘을 이용해서 명나라 황실도 어떻게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건 너무나 낙관적인 상상이다. 우선 [옛 지배자]를 쓰러뜨릴 수 있다는 보장도 없고, 십이율주가 약속을 이행한다는 보장도 없다. 무엇보다도 이족과 싸운답시고 내몰리다가 뒤통수를 맞고 죽을 확률이 높을 것 같았다.
그러므로 십이율주의 말에는 동참할 수 없다. 내가 그를 신뢰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지금이 굉장히 좋은 기회인 건 사실이었다. 성좌에 대한 정보를 알아낸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었으며, 십이율주라면 다른 자들이 모르는 특급정보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머리를 굴리다가 생각을 정리해서 다음 날 아침에 십이율주를 찾아갔다.
“상담드리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십이율주는 여전히 인형탈을 쓰고 있었다.
“뭔데?”
“사실은…”
나는 검마가 투마를 쓰러뜨렸으며, 그 과정에서 용인화(龍人化)를 목격했다는 점, 그리고 투마의 몸을 재생시키던 수상한 촉수가 흑룡으로 변태했다는 점, 그리고 흑룡이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점을 그에게 말했다. 전반적인 이야기를 차분하게 듣고 있던 십이율주가 말했다.
“흥미롭군. 그래서 궁금한게 뭐지?”
“그 촉수와 용은 무슨 관계일까요? 그리고 황궁은 그런 걸 자유자재로 증식시킬 수 있는 겁니까?”
“촉수나 용은 잘 모르겠어. 하지만 후자의 질문은 대답해줄 수 있을 것 같군.”
십이율주가 턱을 괴며 말을 이었다.
“만일 촉수를 이식시키는 방식이라면, 용인화를 버텨내기 위해서는 상당히 강력한 체력과 정신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지 않는다면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촉수의 힘에 먹혀버릴테니까. 즉 상당한 역량을 지닌 무사만이 받을 수 있겠지.”
“그렇다면…”
“백웅 네가 걱정하는 것처럼 용인이 수천 수만 마리씩 양산되는 일은 일단 없다고 봐도 좋지 않을까?”
그렇게 말한 십이율주가 말을 덧붙였다.
“물론 상황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어. 만일에 황궁에 있는 주술사가 이족(異族)이라면 변수는 얼마든지 생길 수 있지. 그 자들은 [옛 지배자]에게 인신공양을 하는 것으로 온갖 주술의 제한조건을 가볍게 극복할 수 있으니까.”
“역시 명나라 황궁을 쳐야하는 거군요.”
“나중에는 그래야 할지도 모르지~”
가볍게 대답하는 십이율주였다. 역시나 그의 마음같은 건 읽히지 않아서 진심인지 어떤지도 애매모호했다.
“음… 감사합니다. 그러면 이만 가보겠습니다.”
“살펴 가.”
나는 그에게 인사를 하고는 신단을 떠났다. 당장 대답을 해주기에는 너무나 중대한 문제이므로 다음에 방문해서 대답하겠다고 말한 것이다. 십이율주는 강압하지 않고 나를 순순히 보내주었지만 그게 그의 순전한 호의라고 믿기는 힘들었다.
나는 신단을 나와서 한참동안 추적이 없다는 걸 확인한 후에야 황금비등을 써서 무영문으로 돌아왔다.
파앗!
“오오, 돌아왔는가!”
그리고 무영문에 돌아오자마자 검마를 찾아가서 십이율주를 만났던 이야기를 했다. 검마는 내가 무사한 걸 보자 크게 기뻐하다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얼굴이 납빛으로 굳어갔다. 종래에는 긴장하며 뭔가를 중얼거릴 정도로 깊게 생각에 빠진 듯 했다.
이윽고 검마가 말했다.
“우선 자네가 거기서 확답을 주지 않은 것은 잘 한 일일세.”
“십이율주의 심계가 너무 깊어서 도저히 읽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솔직한 심경을 말하자 검마가 동의했다.
“과연 그렇군. 그 자리에 자네가 아니라 내가 갔다고 하더라도 그의 심계를 읽기는 힘들었을 게야. 동방무림의 지존답군.”
“그를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요?”
“질문이 잘못 되었군. 어디까지 이용할 수 있느냐 라고 해야겠지.”
검마는 나와 탁자를 마주앉은 채 말을 이었다.
“십이율주는 굉장한 비밀주의자인 듯 하네. 그와 신뢰를 공유하는 건 불가능할 게야.”
“비밀주의자…”
“자네는 뭔가 이상한 점을 깨닫지 못했나? 십이율주는 이미 자네를 기만했건만.”
“……?”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는 깨닫고는 말했다.
“월요(月曜)! 강화도 마니산에 있는 월요의 존재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던 거 말씀이시죠.”
“그렇네.”
그랬다.
나는 10번째의 전생에서 미호와의 인연으로 마니산 참성단 아래의 산에 사실 고대유적이 있고, 그게 월요의 수호자 이자나기노미코토가 봉인되어 있는 월요의 유적지라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십이율주는 나와 이야기를 하면서 거기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하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심각한 표정을 짓자 검마가 말했다.
“서산대사를 보내서 그 유적을 지키게끔 했던 십이율주였지. 월요의 존재를 몰라서 놔뒀다고는 생각할 수 없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이율주는 해신을 쓰러뜨리려고 칠요의 힘을 모으는데 혈안이 되어있지…”
“확실히 이상하군요.”
“만일 자네가 이 위화감을 십이율주에게 말했다면, 즉시 월요를 해방했을지도 모르나…”
검마는 팔짱을 꼈다.
“안 말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하네.”
“……”
“우리는 그 자의 진의를 몰라. 이런 상황에서 공연히 칠요라고 하는 강력한 무기를 하나 더 쥐어주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까요?”
이 판국은 너무나 어지럽고 혼돈스럽게 느껴졌다. 내가 질문하자 검마가 말했다.
“십이율주가 끼어들어서 자네를 혼란시켰을 뿐 사실 자네가 해야할 일 자체는 단순하네. 지금까지처럼 열심히 수련만 하면 돼.”
“정말 그걸로 다 될 까요?”
“흐음… 그것도 전생자로서의 직감인가?”
검마의 반문에, 나는 상체를 앞으로 약간 숙이며 말했다.
“네. 뭔가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안될 듯한 초조한 마음이 듭니다.”
“그런 직감은 무시할 수 없지. 특히 자네같은 경우에는.”
그렇게 대꾸한 검마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좋아. 그러면 기분풀이라도 할 겸 2군데를 다녀와 보는 게 어떤가?”
“어디입니까?”
“용왕곡(龍王谷)과 장령곡일세.”
나는 검마에게서 그 지명을 듣자 처음에는 어딘지 잘 감이 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용왕곡이 어떤 곳인지 알아채고 말했다.
“용왕곡이라면 그…”
“그렇네. 백리정운(百里正雲)이 자네에게 말했던 정보였지. 용왕곡이라는 장소에는 엄청난 실력을 지닌 은거고수가 있다고.”
그렇게 기억에 남은 정보가 아니었는지 검마가 말하기 전까지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나는 새삼 흑요석의 힘을 실감했다. 나는 머리가 그리 좋지 않아서 내 기억을 잘 활용할 수 없지만, 똑같은 기억을 전달받은 검마는 마치 어제 일처럼 온갖 일을 생각하고 활용하는데 익숙했다.
“그 용왕곡의 고수를 만나서 우리 편으로 만들면 되는 겁니까?”
“그러면 좋겠지. 그렇지 못하다고 하더라도, 강력한 고수의 정체와 소재를 아는 것만으로도 나중에 도움이 될 날이 올 걸세. 자네에게 전생자로서의 직감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건 내 무림인으로서의 직감이네.”
그렇게 대꾸한 검마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자네의 기억에 백리세가가 들어본적도 없는 가문 취급을 당하고 있지만, 백리세가는 내가 알기로 삼십 년 전까지만 해도 사천에서 손꼽히는 명문세가였네. 그런 백리세가의 장손인 백리정운이 비밀리에 이어받은 정보라면 아마 확실할 거라고 생각하네.”
“그렇군요.”
나는 검마의 혜안에 감탄했다. 확실히 용왕곡을 찾아가는 일은 득이 되면 되었지 실이 될 일은 별로 없는 것이다. 어찌보면 진즉에 써먹었어야 할 일인데도 검마의 도움으로 이제야 인연을 찾아가는 셈이다.
“그런데 장령곡은 왜입니까? 장령곡주 제갈사는 이미 자살했을 겁니다.”
“분명 자네의 기억에는 그렇게 기억되어 있었지.”
“네. 그는 몇 번을 찾아가 보아도 죽을 예정이었거나 죽었거나 둘 중 하나였습니다.”
바로 이것때문에 내가 장령곡주 제갈사를 영 쓸모없는 인연으로 생각하는 것이었다. 살아있는 제갈사를 만난 적도 있었지만, 망량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오만함을 지니고 있는 자였다.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자기자신은 물론 세상마저도 비웃는 듯한 반골(反骨)이었다. 내가 함께 일을 도모하기에는 영 거리낌이 느껴지는 상대였다.
그러자 검마가 말했다.
“나는 그 기억을 보고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네.”
“이상하다니요?”
검마는 고개를 끄덕이곤 말했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천하제일의 지략을 지니고 있는 그 망량이 몇 번이고 자신의 대신으로 제갈사를 염두에 두었네. 심지어 망량은 그를 개인적으로 싫어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일세. 그건 개인의 인격과는 별개로 제갈사의 지략과 능력이 굉장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의미하는 것이네.”
“……”
“물론 정상적인 ‘역사’ 대로라면 제갈사는 이미 자살했겠지. 그러나 나로서는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네.”
“자살한 놈에게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보통이라면 의미가 없겠지. 그러나 자네는 의미를 만들 수가 있네.”
나는 검마가 무슨 소리를 하나 싶었다. 죽었으면 죽은거지 왠 의미란 말인가?
하지만 이내 내 기억을 뒤적이다가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아채고는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서, 설마…”
“바로 그 설마일세.”
“꼭 그렇게까지 해야합니까?”
“물론일세.”
검마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 표정에는 어딘가 치기어린 호기심같은 것도 감돌고 있었다. 그것은 검마가 제갈사의 능력에 흥미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였다.
“이쯤되면 궁금하지 않은가? 그 자가 입만 앞세운 떠벌이인지 뭔지 한 번 시험은 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네.”
나는 떫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 내키지 않습니다만.”
“후후. 나는 충분히 의미있다고 보네.”
껄껄 웃던 검마가 말했다.
“그럼 내친 김에 당장 같이 가 봅세. 용왕곡에 어떤 고수가 숨어있는지 나도 알아보고 싶군.”
“사천의 정보조직을 이용하려면 역시 개방을 이용해야 할텐데 좀 위험하지 않을까요?”
“정보조직은 개방만 있는 게 아냐. 신녀문(神女門) 또한 개방에 못지 않은 정보력을 지니고 있지. 그리고 나는 그 정보를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네.”
“신녀문!”
“뇌신류의 이광도 신녀문의 정보를 이용하는 듯 하더군. 하여간 그 자도 은근히 발이 넓다니까.”
그러고보니 이광 또한 신녀문의 정보력을 이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두 사람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는 건 의외였지만, 이 경우는 검마 본인이 마도팔문의 최강자였기에 도리어 당연한 일이었다. 황궁 사신위 출신으로서 신녀문과 통해있는 이광의 경우가 독특한 것이리라.
파앗!
나는 검마와 함께 중원의 사천으로 이동했다. 사천 땅에 황금비등으로 도착하자 검마는 나를 이끌고 사천성 내부로 향했고, 이내 정체를 알 수 없는 무림문파의 건물으로 들어갔다. 검마는 소유자가 하나도 없을 법한 을씨년스러운 건물에 비치되어있는 왠 함(函)에다가 글자를 써서 넣었다.
그렇게 약 한 식경 정도를 가만히 기다리자, 건물 한켠에서 왠 새하얀 옷을 입은 여인이 걸어나왔다.
“강호에 명성이 드높은 무영문주 검마를 뵙게 되어 영광이군요.”
“그대는 누구지?”
여인의 주변에는 대략 다섯 명 정도의 다른 여인들이 따라나와 있었다. 그들 하나하나가 무공을 익힌 듯 발걸음이 가벼웠다. 그녀들을 통솔하는 듯한 흰 옷의 여인이 포권을 하며 말했다.
“신녀문의 당주인 가화(假花)라 하옵니다.”
“당주라… 요근래 신녀문주가 불운한 결과를 맞이한 것에 명복을 비네.”
“신경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검마의 말은 신녀문주 음마가 진소청과의 비무에서 사망한 일을 위로하는 것이었고 신녀문 당주 가화도 그 말을 정중하게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이윽고 검마가 본론을 꺼내놓았다.
“우리는 현재 무림의 정세를 알고 싶네. 기왕이면 용왕곡이란 곳의 정보도 알고 싶군.”
“그건 조사없이 바로 알려드릴 수 있습니다.”
“정말인가?”
“네. 단지 정보료를 주셨으면 합니다.”
“그야 당연한 일이지.”
이윽고 검마는 가화에게 정보료를 지불했고, 가화는 우리에게 현재 무림의 정세와 용왕곡에 대해서 알려 주었다. 개중에 특이한 것은 용왕곡의 위치가 심산유곡에 있으며 험준한 만장단애의 연속이라는 사실이었다. 보통은 전문적으로 산을 타는 자라고 할지라도 접근할 엄두를 못낼 정도라는 것이다.
이윽고 정보거래가 끝나자 검마는 지체없이 그 건물을 떠났다. 왠만큼 떠나왔을 때 검마가 내게 말했다.
“방금 갔던 저 곳이 신녀문과 정보를 거래하는 지부일세.”
“유용하겠군요.”
“용왕곡까지는 대략 이틀만 달리면 되겠군. 가 보세.”
타앗
나는 검마와 함께 용왕곡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검마의 말대로 용왕곡에 도착하는데는 대략 이틀의 시간이 걸렸고, 험준하다는 사천 땅에서도 더욱 험준하기 그지없는 거대한 절벽지형이 한눈에 들어왔다.
나는 안개에 휩싸인 산 정상에서 그 엄청난 계곡을 바라보며 질려서 말했다.
“저런 곳에 인간이 살 수 있을까요?”
옆에서 나무열매를 우물거리며 먹던 검마가 말했다.
“안될 건 또 뭔가?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건 인간일지니, 저 정도의 자연은 되려 애교겠지.”
“그 말씀도 맞습니다만.”
“자, 그럼 가 볼까.”
검마는 휴식을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의념을 돋우게. 저기는 틀림없이 절진이 설치되어 있을테니 정신 바짝 차리는 게 좋을 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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