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259)
0259 ———————————————-
천계(天界)
이후 제갈사의 계획은 다음과 같았다. 그는 수정석비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초상기인을 양산하는 것도 좋겠지만 어차피 동력이 될만한 [힘]이 없다면 그저 허수아비에 불과하지. 그렇다고 막야의 힘을 무작정 초상기인에만 쏟아넣는 건 비효율적이야. 그래서 초상기인은 제물용으로만 제작하고 전투용은 보류하도록 하자.”
“무슨 생각이오?”
제갈사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말했다.
“어이 백 호법. 황궁이 어째서 위협적인 존재라고 생각해?”
“그야 초인병사를 양산했기 때문이지 않겠소.”
“그건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지. 솔직히 말해서 백련교주와 호법사자들이 모두 출동하면 그런 병사가 아무리 많다고 한들 무슨 문제겠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련교는 황궁을 힘으로 박살낼 생각을 하고 있지 않지.”
나는 제갈사의 말뜻을 깨닫고 말했다.
“[옛 지배자]를 등에 업은 세력이라서 강하다는 거군.”
“그래. 바로 그게 문제의 본질이야. 황궁을 쳐서 약화시킬수는 있겠지만, 그 이후에 자신의 하부세력을 건드린 자들에게 [옛 지배자]가 복수할까봐 다들 두려워하는 거지. 실질적으로 이 세상에서 [옛 지배자]의 분노를 감당할 수 있는 건 동격 혹은 그 이상의 존재 뿐이니까.”
그렇게 중얼거리던 제갈사가 고개를 홱 돌렸다.
“그러면 그 본질적인 문제부터 바꿔야 해. 황궁이 [옛 지배자]의 힘을 등에 업었다면, 이쪽도 그와 대등한 존재를 뒷배경에 두는 수밖에 없다고.”
“……”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짐작할 거 같았다. 하지만 여태 생각도 해본 적 없는 발상이었기에 인상을 찡그렸다.
“설마, [옛 지배자]를 섬기자는 말이오?”
“바로 그거야.”
제갈사가 기분이 좋은지 흥얼거렸다.
“우리는 [옛 지배자]라고 뭉뚱그려서 부르지만 사실 성좌를 지배하는 신적인 존재들은 한둘이 아니지. 내가 알기만 해도 최소 40여체 이상이 존재하며 그들 사이에서도 계급이 나뉜다.”
“하아…”
“그렇다면 우리도 적당한 신을 섬기면서 그 권능을 전해받으면 그만이야. 그걸로 황궁의 뒷배를 걱정할 필요는 없어진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나는 격하게 외쳤다.
“그 마신(魔神)들은 인간따위 벌레로 취급할 뿐 전혀 진지하게 상대해주지 않소! 인신공양을 받는 것도 심심풀이에 지나지 않는데다, 그 자들은 하나같이 극악한 성향을 지닌 사악한 존재들이오. 어떻게 그런 존재를 섬길 수가 있소?”
그러자 제갈사가 크큭하고 웃었다.
“그러니까 사람이 아닌 걸 제물로 쓰겠다는 거잖아.”
“… 초상기인을?”
“그래. 지난번에 초상기인 3체를 제물로 쓸 때의 반응을 보면, 초상기인 하나하나는 보통 인간 수백 수천명에 맞먹는 가치가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옛 지배자]가 혈안과같은 보물을 내려주고 가는 일은 없지.”
제갈사의 웃음이 짙어졌다.
“윤리적인 문제도 해결하고 효율도 끝내주지. 전투용으로 기동시키는거면 몰라도 제물용 초상기인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잖아? 마음만 먹으면 [옛 지배자]에게서 끝내주는 보상을 받을지도 모른다고.”
“……”
제갈사의 말대로였다. 확실히 그렇게 되면 윤리적인 문제는 크게 덜어지게 된다. 왜냐하면 초상기인이라는 건 극히 인공적인 생명체이며 영혼이 없었기 때문에 제물로 쓴다고 한들 죄책감이 크게 덜하다. 하지만 나는 이게 틀림없는 마도(魔道)의 방식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고개를 저었다.
“나는 그게 옳은 일일지 모르겠군. 꼭 신을 등에 업어야 하오?”
“아이고… 답답하군. 현이랑 대답할 때는 또 다른 답답함이야. 그 놈은 알아듣는데도 모르는 체 했다면, 네 녀석은 진짜 모르는군.”
왠지 자기 가슴을 팡팡 치는 동작을 하던 제갈사가 말했다.
“잘 들어라. 내가 특별히 사악한 방법을 쓰는 게 아니라, 사신(邪神)의 교단을 상대할 때는 필수적인 전략일 뿐이야. 고대의 사제들은 무조건 이 방법을 썼어.”
“고대?”
내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제갈사가 팔짱을 꼈다.
“아무런 뒷배도 없이 사신의 교단을 쓸어버렸다가는 후환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최소한 비슷한 힘을 지니고 있는 [옛 지배자]를 섬기며 그 가호를 받는 게 기본이다. 그렇지 않으면 악몽 그자체인 저주를 받게 된다고.”
저주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
당장 백련교의 소교주가 [옛 지배자]의 저주를 받지 않았는가.
하지만 나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내가 그걸 모르는 게 아니오. 하지만 [옛 지배자]가 초상기인에 만족한다는 보장이 있소? 더 맛있는 걸 많이 먹기 위해서 수많은 제물을 요구한다면?”
“……”
“[옛 지배자]의 힘이 필요하다는 당신의 말에는 동의하지만 절충안이 필요하오. 그 존재들을 끝까지 섬기다가는 파멸할 뿐이오.”
“끄응…”
제갈사는 골치아프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내가 그의 정곡을 찌른 듯 했다. 이미 마도에 물들어있는 제갈사로써는 인신공양이나 사신을 섬기는 게 당연한 일이겠지만, 나에게 있어서 그 행위는 주변인들에게 얼마나 피해를 끼칠지 모르는 극악한 행위다. 당연히 꺼려질 수밖에 없다.
“절충안이라…”
제갈사가 한참 생각하다가 말했다.
“좋아. 그러면 속전속결로 해 주지. 두 존재의 힘을 동시에 빌리면 충분한 일.”
“무슨 말이오?”
“황궁 따위는 별거 아니니까 모조리 박살내 주겠단 소리야. 한 번에 깔끔하게 끝내버리면 더 이상 섬길 필요가 없으니까 괜찮은 거 아니냐? 이것보다 더 좋은 방법 있어?”
“물론 그렇게 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소만…”
“그~래. 아주 쉬운 일이지. 네가 막야로 조금만 도와주면 말이야.”
제갈사는 킬킬 웃었다. 그의 웃음에는 자신감이 깃들어 있어서, 그는 정말로 황궁을 손쉬운 상대라고 여기고 있는 듯 했다. 지금까지 그렇게 애를 먹어온 상대였는데도 마치 손바닥 뒤집듯이 처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느껴지는 것이다.
‘ 어떻게 하려는 거지?’
나는 우선은 제갈사의 행동을 도와주기로 했으나 궁금한 점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그의 지시대로 움직이던 중 질문했다.
“궁금한 게 있소.”
“넌 정말 궁금한 게 많군. 머리가 나쁜 게 흠이지만.”
나는 그의 개소리를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우선… 이 책을 봐 주시겠소?”
나는 모험을 하기로 했다. 그가 괴어를 해석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이상 지체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천암비서를 제갈사에게 내밀었는데, 제갈사는 책을 받아들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뭐냐?”
“천암비서 라는 마도서요. 그게 어떤 내용인지 알려주시오.”
“그러지. 어디 보자…”
팔락 팔락
제갈사는 천암비서를 천천히 넘겼다. 그러더니 얼굴이 묘하게 되더니 말했다.
“이게 뭐야?”
“무슨 내용이오?”
“모르겠어.”
“……”
내가 그를 실망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자, 제갈사는 변명하듯 말했다.
“괴어라고 해도 그 종류는 수만 가지나 된다. 그 중에서 운이 좋으면 알고있는 언어를 만나는 거고, 그렇지 않으면 못 읽는 거야. 그 중에서도 대표적으로 쓰이는 게 흉신이나 과타노차나 차토구아의 언어같은건데… 이건 그 어느쪽도 아닌 것 같구만.”
“음… 내가 봤던 이족은 이게 무슨 내용인지 알아봤소만. 물론 도망쳐버려서 무슨 내용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이족이 어떻게 생겼는데?”
나는 제갈사에게 ‘주술사’의 생김새를 설명했고 사용했던 인신공양 주술과 정신주술을 설명했다. 그러자 제갈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주술사’는 흉신 크툴루의 후예 중에서도 대단히 고위급 존재인 것 같군.”
“대단한 존재인 거요?”
“대단하고 말고. 아마 르 뤼에에서도 왠만한 건물의 주인 정도는 할걸. 그런 놈이 인간계로 소환되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니까.”
그렇게 중얼거리던 제갈사가 말했다.
“그 정도 되면 반쯤 신에 가깝겠지.”
“그런 것 치고는 육체능력은 별 것 아니었소만…”
“주술사가 뭐하려고 육체능력을 단련하겠어? 르 뤼에의 권능만 제대로 써도 왠만한 놈은 다 죽일 텐데. 그리고 애초에 주술사라는 건 싸움에 익숙하지 않아.”
바보취급하듯 말한 제갈사가 내게 천암비서를 던져주었다.
“아무튼 주류 괴어가 아닌 이상, 그건 괴어 중에서도 특별한 종류의 언어로 쓰여진 거다. 나같은 인간출신이 아니라 본격적인 이족에게 묻는 수밖에 없겠어.”
“흠…”
“난 필요없으니 쓸데없는 일은 맡기지 마라.”
나는 의문이 깊어지는 걸 느꼈다. 제갈사에게 보여주면 천암비서의 정체를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되려 탐색만 어려워졌을 뿐이다.
우우웅!!
잠시 후 제갈사가 다시 초상기인을 이용해서 뭔가 의식을 치르더니, 이번에는 훔쳐왔던 초상기인들이 몽땅 허공에 증발해 버렸다. 내가 놀라서 무슨 일인가 물어보자 제갈사가 대꾸했다.
“회유하는 중이니까 말 걸지 마.”
회유?
그리고 잠시 후 제갈사 앞에 있던 제단에 왠 기묘한 상자가 나타났다. 그것은 금색으로 번쩍거리며 빛나고 있어서 금으로 만들어진 듯 했으며, 은은한 휘광마저 머금고 있었다. [옛 지배자]가 이번에도 무언가를 하사한 모양이었다.
나는 제갈사를 돌아보며 말했다.
“잘 됐군. 저것도 뭔가 좋은 선물 아니겠소?”
나는 탐욕스럽게 혈안과를 취하던 제갈사의 모습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제갈사가 옳거니 하며 대뜸 황금상자를 주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
하지만 제갈사의 안색은 약간 새하얘져 있었다. 그러더니 중얼거렸다.
“뭐… 뭐야… 황금상자? 저게 봉인하고 있는 건 분명… 그렇다면 낙양에 봉인되어 있는 존재라고 하는 게…”
“……?”
“빌어먹을! 뭐야! 뭐가 이렇게 판이 커진 거야?”
제갈사가 갑자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낄낄거리며 웃었다.
“으히히히! 아니야! 이 정도는 되어야 재밌지! 아주 재밌다고, 이히하하하하하!!”
“미쳤소? 갑자기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거요?”
제갈사가 눈을 멀뚱히 뜨더니 갑자기 내 손을 붙잡았다.
“어이 고마워! 살려줘서 정말 고마워!”
“……”
“나는 지금 태어나서 가장 즐거워지고 있어! 내가 원하던 [옛 지배자]의 진실에 최단거리로 다가서고 있어서 당혹스럽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아무튼 아주 인생의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이게 다 네 덕분이다 백웅!!”
“으윽…”
나는 그 순간 제갈사에게서 약간 공포를 느꼈다. 지금 제갈사가 무슨 원리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종잡을 수 없을 뿐더러, 어쩐지 그가 [광기]를 넘어선 광기에 도달한 것 같았다. 지금 그의 행동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그와 똑같은 정신상태를 가진 자가 아니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제갈사가 마치 초승달처럼 휘게 웃으며 말했다.
“문주님께 말하고 와. 내일 오후에 황궁을 공격하자고.”
내일 오후라니?!
나는 당혹해서 말했다.
“뭐라고?! 그렇게 빨리 공격해도 되는 거요?”
“아암, 물론이지. 내가 지금 뭘 했는줄 알아?”
“모르오.”
제갈사가 껄껄 웃었다.
“바로 황궁을 뒤에서 조종하는 [옛 지배자]에게서 허락을 받았다고. 하부세력인 황궁 정도는 몰살시켜도 용인해 주겠다고.”
“……!!”
이 말을 믿어도 될까?
이 자가 우리를 함정에 빠뜨리는 게 아닐까?
뭔가 감정이나 정신상태를 읽어보려고 해도 너무 미쳐있어서 감도 잡히지 않았다. 이런 인간을 상대하는 건 난생 처음이었다. 이성을 유지한 상태인데도 완전히 맛이 가서 미쳐있는 존재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 그 말이 사실이라 칩시다. 그렇다 해도 하루만에 그 강력한 용인이나 마인들을…”
“용인… 마인… 그건 결국 이족의 찌끄러기에 불과하지. 너희 무림인들은 순수하게 힘을 힘으로 대적하려고 하니까 그 놈들을 어려워 할 수밖에 없어. 하지만 배교의 교주이자 마도사인 내게 있어서 그런 놈들은 아무것도 아니다.”
덥썩
제갈사가 황금상자를 한 손에 잡아들고는 미친듯이 웃었다.
“으흐흐하하하하!! 이게 내 손에 있는데 뭘 걱정할까!! 하루면 충분해, 아니 과하다고!!”
“……”
“백 호법. 빨리 말하고 와. 그래야 내일 황궁을 칠 거 아냐.”
나는 별 수 없이 제갈사의 말대로 검마에게 제갈사의 이야기를 전달할 수밖에 없었다. 검마는 독고성과 무론을 토론하고 있다가 난데없는 이야기에 놀라는 기색이었다. 하지만 나도 뭐가 어찌된 일인지 모르는지라 검마에게 설명을 하기가 벅찼다.
이윽고 검마는 내 이야기를 상세히 듣더니 말했다.
“도박이군. 제갈사의 말이 사실이라면 한번에 자네의 가장 큰 숙원이 이뤄지는 셈이지만, 만일 거짓이라면 우리 모두가 몰살당할 함정이야.”
“저는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제갈사에게 걸어 보세. 그에게 정말로 황궁을 멸망시킬 비책이 있다면 알아봐야겠지.”
“하지만 놈이 우릴 속인 거라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제갈사가 우리를 제압해서 감금하고 끔찍한 고문을 행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거의 완벽하게 미쳐있는 인간이 제갈사였기에 그 자에게 붙잡히느니 자살하는게 백배 나을 것이다. 하물며 검마에게는 돌봐야하는 외동딸인 서문혜는 물론이고 무영문의 식솔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검마는 말했다.
“그 때는 나와 독고성이 목숨을 걸고 놈을 베어버리겠네. 우리가 합공하면 설령 백련교주라 해도 멀쩡하게 끝나지는 못할 걸세.”
“……”
나는 그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검마와 독고성이 합공을 하면 호법사자라고 해도 없앨 가능성이 높았다. 천하에서 적수를 찾기 힘든 절세고수들인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제갈사의 흉흉함에 한없는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제갈사는 뭔가 다른 걸 보고 있다.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없어서 불안한 것이다.
“알겠습니다.”
나는 제갈사의 공방으로 돌아가서, 그의 지시에 따라 수요 막야의 힘을 흘려넣는 작업을 반복했다. 제갈사는 피로 마법진(魔法陣)을 그리고는 머리를 풀어헤친 채 한치도 쉬지 않고 무언가 주문을 외며 의식을 하기를 반복했는데, 그 모습은 지켜보는 사람이 되려 섬뜩해질 정도의 혈기(血氣)를 머금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 밝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