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279)
0279 ———————————————-
천계(天界)
여동빈을 소환하라는 말에 나는 잠시 놀랐다. 그리고는 그가 어떤 의도로 말한건지 생각한 후,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여동빈은 마(魔)를 앞두고있지 않으면 나타나지 않습니다. 인간을 상대로는 강림하지 않습니다.”
“마? 그게 뭐지?”
“그게…”
나는 마물과 이족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했다. 독고성은 내 설명을 듣고 있다가 뭔가 짐작가는 게 있는 듯 말했다.
“그런 족속을 신강의 오지에서 봤던 기억이 난다.”
“이족을 말입니까?”
독고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신강의 척박한 산맥과 절지에는 자연적인 생물이라 볼 수 없는 것들이 더러 사람을 습격하는 일이 있었다. 백련교의 고수들이 그 놈들을 토벌하는게 정기적인 연례행사처럼 되어 있었지.”
“마물이 확실합니까?”
“뭐 이렇게 두꺼비처럼 생겼었고 크기는 일 장 정도. 이름은 각(脚)이라고 부르는 놈이었다. 그 외에도 이런저런 놈들이 있었지.”
독고성이 땅바닥에 그림을 그리며 설명하는 걸 보자, 나는 대번에 내가 마주친 적 있었던 놈이라는 걸 깨달았다. 분명히 대뢰옥을 지키고 있던 촉수두꺼비와 대동소이한 생김새인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일개 각은 몸 크기가 일 장에 불과하지만 촉수두꺼비는 열 배나 크다는 점이었다.
‘ 이족이 세상 여기저기에 흩어져 사는가 보군.’
그렇게 따지면 백련교인들은 이족생물과의 전투경험이 꽤 있는 듯 했다.
동영에서는 [옛 지배자]의 영향력이 너무 큰 나머지 마기와 마물이 곳곳에서 창궐하는 바람에 아오키가하라 수해를 만들어서 거기에 마물을 몰아넣었다. 중원도 마찬가지라서 종종 마기가 끓어오르는 지점이 있는 모양이었고, 그 중 하나가 신강인 듯 했다.
나는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어째서 중원에는 마(魔)가 그리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 것일까?
고려나 동영 사람들은 요괴에 익숙했으며 더러는 이족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자들도 있었다. 왜냐하면 동영은 물론이고 고려에도 그런 괴물들이 종종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원에서는 그런 마물은 커녕 요괴를 보기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물론 아는 사람은 알지만 중원의 땅크기를 생각하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었다. 상식적으로 중원 땅의 크기를 생각하면 몇 배나 많은 마물들이 들끓어야 정상이다.
‘ 왜지?’
나는 이 궁금증을 나중에 해결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골똘히 생각에 잠기자 독고성이 말했다.
“검선이라 불린 자를 소환할 수 있다면 분명 큰 도움이 될텐데 아쉽구나.”
“대련을 하시는 건 어째서입니까?”
“바보같은 질문이군. 무인으로서 검선 여동빈과 겨뤄볼 수 있다는데 그 기회를 마다할 자가 있겠느냐.”
“……”
나는 그의 대답을 이해할 수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어이가 없었다. 내가 봤던 여동빈의 실력이라면 지금의 독고성을 십초만에 죽여버릴수도 있었다. 수만 개의 검기가 천공을 메우며 어마어마한 기세로 날아오던 기억이 생생했다. 대라신선의 무력이란 게 뭔지 모르기 때문에 독고성이 저런 말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흠… 아냐. 저 무인의 기질을 잘 이용하면 좋을지도.’
나는 방법을 떠올리고는 말했다.
“스승님. 정 그러시다면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뭐냐?”
“저를 따라와 주십시오.”
파앗!
잠시 후 나는 독고성과 손을 잡고 동영 아오키가하라 수해의 초입부, 생해(生海)에 도착했다. 여전히 여기에는 전진기지 같은 건물이 서 있었으며 동영의 대검호 두 명이 묵고 있는 흔적이 보였다. 마침 고기를 구워먹고 있던 카미이즈미 노부츠나가 우리를 발견하자 놀란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나타나다니, 당신들은 누구요?”
“아… 아니.”
당황한 것은 독고성도 마찬가지인 듯 했다. 얼떨결에 오긴 했지만 생전 처음 보는 노인네가 고기를 굽고 있는데다 오랑캐의 말을 쓰고 초절정고수로 보였기 때문이리라. 나는 두 사람의 혼란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독고성에게 먼저 말했다.
“설명드리겠으니 저 자들을 공격하지 말아주십시오.”
“알았다.”
나는 이윽고 동영의 대검호 두 명을 불러놓고 독고성이 동석한 자리에서 통역을 시작했다. 나는 이제 중원말과 동영말, 고려말을 모두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러 있었기 때문이다. 전후사정을 사람들에게 설명한 나는 건물의 벽으로 걸어가서 독고성에게 말했다.
“이 글씨는 한어군요…”
“으음!”
독고성은 한어로 쓰여진 내용, [ 나는 원월천살법을 찾아서 교주를 죽여버리고 말겠다 ]를 확인하자 침음성을 흘렸다.
“청월의 글씨군. 청월이 예까지 왔던 게야.”
“……”
“일석삼조(一石三鳥)로군. 청월까지 찾아내서 중원으로 돌아가자.”
“할 수 있다면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이미 이 수해의 2단계인 사해(死海)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8인의 인원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수해를 수호하고 있는 음양사 일족이 문을 열어주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전진기지에서 나서서 수해의 초입으로 들어갔다.
우우우 –
‘ 오는군.’
나는 마물의 기척이 강해지고 마기가 들끓기 시작하자 여동빈의 강림이 시작된 것을 느꼈다. 천둔검법의 요결인 신(信)의 단계를 지나서 해(解)에 이르자, 염이 해방되며 내 팔문이 서서히 열리는 게 느껴졌다. 나는 여기까지 수월하게 신기를 끌어올리며 여동빈의 혼을 인도한 후 그의 강림을 받아들였다.
[ 마를 척결하리라!]순간적으로 나타난 여동빈은 갑자기 내 내공을 해방시켰다. 팔문 중에서 세 개밖에 열지 않았는데도 여동빈이 다룰 수 있는 인체의 가능성은 그 이상인 듯, 마치 천공에서 폭염이 비산하는 듯 했다.
콰르르릉
천둔검법(天遁劍法)
육의성천도(六意聖天圖)
천결(天決)
번개와 불벼락이 쏟아지는 듯한 검강이 사방으로 용솟음쳤다. 그리고 천결은 막강한 파괴력을 머금고 사방에 가득한 무간화와 대요괴급 마물들을 순식간에 쓸어버리기 시작했다. 내구력이 강해서 좀 버티고 있던 마물들이 보이자, 이윽고 여동빈이 어검비행술을 시전하며 장력(掌力)을 내뿜으며 처리하기 시작했다.
의령수(意靈手)
의념으로 만들어진 손이 허공에 슥하고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러나 그 투명한 손은 마치 산을 덮을 듯한 크기였고, 한바탕 대지를 내리치자 지진이 울리는 듯 했다.
콰과과광
끼에에엑 –
마물들은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검은 피를 내뿜으며 터져나갔고, 이윽고 여동빈이 의령수에 이어서 의령각과 의령권을 연속으로 난사하자 황무지처럼 변해버렸다. 여동빈의 몸이 환영처럼 수십 개로 늘어나서 수천 번이나 되는 연속공격을 하는 것은 공포 그 자체였다.
[ 마무리다!!]천둔검법(天遁劍法)
육의성천도(六意聖天圖)
우결(雨決)
피피피피피핑 –
여동빈이 하늘에 검을 내던지자 구름을 뚫고 높이 치솟았다. 그리고 육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상승해버린 검은 이윽고 비바람을 머금고 지상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놀라운 것은 그 빗방울 하나하나에는 가공할만한 거력이 담겨있어서, 재생능력을 가진 마물이건 금강불괴같은 마물이건 마치 녹아내리듯이 터지기 시작했다. 수십 수백만 개의 검기가 지상을 관통하는 셈이었다.
후두두둑…
한 차례 검풍의 소용돌이가 지나간 후, 장내는 허허벌판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마물로 꽉 차 있어서 발디딜 틈도 없던 수해에는 마물이라고는 흔적조차 보이지 않게 되었다. 생존한 놈들이 더러 있어보였지만 그 놈들은 공포에 질려서 어디론가 도망가버린 것이다.
슈슈슉
[ 연자여, 간만에 마를 대량토벌했노라!]여동빈이 만족스럽게 떠나버리려 했다. 하지만 나는 이대로 그를 보낼 수가 없었기에, 여동빈에게 마음속으로 말을 걸었다.
[ 여동빈! 잠깐 기다리십쇼.] [ 무슨 일인가? 마는 모두 척결했건만.] [ 여기는 아오키가하라 수해이고 이 뒤에는 더욱 강력한 마물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힘만 빌릴 수가 없으니, 가르침을 주십시오.] [ 가르침이라고?]여동빈은 약간 곤혹스러워하는 듯 했다. 나는 필사적으로 그를 설득했다.
[ 나는 당신이 말한 천둔검법의 2단계인 해(解)에 이르렀습니다. 이 이후의 단계를 가르쳐 주시던가, 아니면 내 지인에게 검술을 강연해 주십시오. 그래야 앞으로 살아남을 수가 있습니다.] [ 연자여. 천둔검법은 신선의 검법이기에 초식이 없거늘… 그래도 배우겠다는 건가?] [ 초식이 없다고 하지만 당신은 육의성천도와 화룡검법을 사용하지 않습니까?! 나도 좀 가르쳐 주십쇼.]내가 따지듯이 묻자 여동빈이 대답했다.
[ 화룡검법은 내가 인간시절에 익혔던 무공이라서 익숙한 형태를 사용할 뿐이다. 그리고 육의성천도는 초월기(超越技)이기에 인간의 수준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초월기?
이게 무슨 소리인가?
내가 의문을 표하자 여동빈의 설명이 이어졌다.
나는 극도로 높은 신선급 무술경지에 기가 질렸다.
‘ 방금 여동빈이 빗방울에 검기를 실었던 게 바로 자연검이구나.’
이러니 대라신선과 싸우는 게 어불성설일 수밖에 없다. 사실은 검마와 독고성을 상대로 2대1로 싸울때도 안 죽이려고 대충 봐주며 싸웠던 게 아닐까? 신선이라는 존재가 무예를 쌓아서 승천했을 경우 엄청난 힘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문득 생각난 게 있어서 그에게 질문했다.
[ 현재 인간세계의 최강자인 백련교주는 천령단은 원신(元神)에 이르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원신 그 자체가 아니라 중간과정에 불과하다고 하였고, 종래에는 상단전, 중단전, 하단전이 모두 열린 마음의 경지에 도달해서 무한(無限)한 힘을 얻고 인간을 초월하는 것이 원신이라 했습니다.] [ ……] [ 여동빈 님의 말과 너무 상이한데 이걸 어찌 해석해야 합니까?]그러자 여동빈이 말했다.
[ 연자여. 혹시 수명을 10년만 내놓을 수 있겠는가?] [ 무슨 말씀이십니까?] [ 설명해 주려면 천기를 거슬러야 하는데 그 댓가로 받아야 한다.]나는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 그 정도쯤 얼마든지 가져가십시오.]어차피 죽고 나면 전생하는데 10년 더 살아봐야 뭐 하겠는가. 검선 여동빈에게 무술강의를 듣는다는 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 알았다.]스스스스…
그 때였다. 갑자기 내게 강림해서 머릿속으로 대화를 나누던 여동빈의 기척이 씻은 듯 사라지더니, 눈 앞에 안개처럼 희뿌연 환영이 생기는 게 아닌가? 그 환영은 이윽고 실체화되더니 온전히 사람의 모습을 지니고 나타났다.
진중해 보이고 청수한 이목의 중년 도사.
그것이 바로 여동빈의 인간모습인 듯 했다. 여동빈이 장내에 나타나자 초절정고수들은 다들 긴장했지만 여동빈은 그들따위 아랑곳하지 않는 듯 근처의 나무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차분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현계(現界)할 수 있는 시간은 반 시진 뿐이네. 그 시간동안 원하는걸 물어보게.”
아마도 지선 망량도 자신의 술법을 이용해서 수명을 댓가로 바치고 여동빈을 소환했던 것이리라. 신선도 방법에 따라서는 현실에 소환할 수 있다는 귀중한 정보를 얻은 셈이다. 내가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옆에서 독고성이 조심스레 말했다.
“그… 그대가 정말로 검선 여동빈이오?”
“인간이여. 내가 나라는 걸 증명할 도리는 검술밖에 없네.”
“그러면 나 뇌신류의 독고성, 신선의 가르침을 받아 보겠소!”
파아앗!!
독고성의 신형이 득달같이 여동빈에게 달려들었다. 내가 보고도 믿기지 않을 정도의 쾌검이라서, 독고성의 검술경지가 나보다 훨씬 높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순식간에 독고성은 검뢰를 수십 줄기나 뽑아내면서 여동빈의 전신을 회치려 했지만, 여동빈은 가만히 눈을 감은 채 손가락을 좌에서 우로 그었다.
치링
소환된 거검(巨劍)이 방울소리를 내며 독고성의 검뢰를 옆으로 쳐 내 버렸다. 필살절초가 막힌 독고성은 자신의 몸을 추스리며 곧장 다음 동작으로 넘어가려 했으나, 여동빈은 너무나 빠르게 움직이면서 독고성의 몸을 장력으로 밀어내었다.
독고성이 밀리면서도 화경으로 버텨서 반격을 하듯 의념절기를 실은 검뢰를 내쏘았다. 검뢰에는 용의 형상이 담겨 있었는데 엄청난 힘이 그 안에 압축되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자 여동빈은 거검을 기울여서 느긋하게 검뢰의 용을 땅으로 처박아 버렸고, 이내 검을 휘둘러서 독고성의 상반신을 베어갔다.
쿠쿵
심적권청의 찰나에 여동빈은 무려 한꺼번에 세 동작을 연속으로 했다. 독고성은 상변으로 베고 하단으로 미는 동작까지는 막아냈으나 마지막으로 발로 허벅지를 차는 동작은 어떻게 대응하지를 못했다. 독고성의 중심이 흐트러져서 엉거주춤하게 되자 여동빈은 가볍게 의령수를 전개해서 독고성의 몸을 허공에 던져 버렸다.
“……!!”
땅에 내려앉은 독고성의 얼굴에는 낭패한 기색이 가득했다. 그러더니 꺼지듯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의심의 여지가 없군… 오늘 천외천을 보았소.”
놀라운 일이었다. 백련교의 삼대 호법사자조차도 독고성을 결코 이백 초 이내에 제압할 수 없을 텐데, 여동빈은 장난이라도 하듯이 살초를 전혀 쓰지 않고 독고성을 제압한 것이다. 여동빈의 무술경지는 인간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수준이라는 걸 이 순간 실감한 셈이었다.
하지만 여동빈은 독고성을 꺾었다는 사실에는 그리 흥미가 없는 듯 내게로 시선을 옮겨서 말했다.
“연자여. 방금 그 천령단과 원신이라는 경지에 대한 질문에 대답해 주겠노라.”
시선이 집중되었다.
특히 독고성은 눈이 튀어나올 듯이 여동빈의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건 무술이 아니라 신력(神力)이다.”
“네?”
이어진 말에 장내의 모두가 경악했다.
“애초에 천령단부터가 인간에게 허용된 경지가 아니다. 그러므로 그대는, 천령단과 원신을 익혔다는 존재들이 모두가 신의 사도(使徒)라고 생각하라.”